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뗏목 비유를 말하려니 너희들은 잘 생각하고 명심하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뗏목 비유란 무엇인가. 너희들이 혹 길을 가다가 도적에게 사로잡히더라고 마음을 바로 가져 미워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보호하는 마음을 일으켜 일체 곳에 두루 채워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게 하라.
땅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땅은 깨끗한 것도 받고 더러운 것도 받아 똥, 오줌 같은 더러운 것을 모두 다 받는다. 그러나 땅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이것은 좋고 이것은 더럽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너희들의 소행도 그와 같아서 도적에게 사로잡히더라도 나쁜 생각을 내거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저 땅, 물, 불, 바람과 같이 나쁜 것도 받고 좋은 것도 받더라도 조금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쁘게 하는 마음, 보호하는 마음을 일으켜 일체 중생을 대하여야 한다. 왜 그러냐 하면 선한 법도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악한 법을 익혀야 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무섭고 어려운 곳을 당해 그 어려운 곳을 지나 안온한 곳에 이르려고 하여, 마음대로 돌아 다니면서 그 편안한 곳을 구할 때에 그는 매우 깊고 넓은 큰 강을 당했으나 저쪽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나 배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서있는 곳은 매우 두렵고 어려운데 저쪽 언덕은 무사 태평하였다.
그 때에 그 사람은 어떤 방법을 생각하였다. '이 강물은 매우 깊고 넓다. 이제 나무와 풀잎을 주워 모아 뗏목을 만들어 건너가자. 이 뗏목을 의지하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곧 나무와 풀잎을 모아 뗏목을 만들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갔다. 그는 저쪽 언덕에 이르러 다시 생각하였다. '이 뗏목은 내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이 뗏목으로 말미암아 액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두려운 곳에서 편안한 곳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 뗏목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다니면서 쓰리라.'
어떠냐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과연 어디로 그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쓸 수 있겠느냐."
비구들은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의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그 뗏목을 다시 어디 쓰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한 법도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나쁜 법이겠는가."
그 때에 어떤 비구는 사뢰었다.
"어찌하여 '법을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나쁜 법이겠느냐.'고 하시나이까. 저희들은 법으로 말미암아 도를 배우지 않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교만을 의지하여 교만, 만만(慢慢), 증상만(增上慢), 자만(自慢), 사견만(邪見慢), 만중만(慢中慢)을 없앤다. 즉 교만이 없음으로써 만만을 없애고 무만(無慢), 정만(正慢)을 없애며 사만과 증상만을 없애어 네 가지 만을 모두 없애느니라.
……(중략)……
비구들이여, 이런 사실로 보아 알 수 있다. 즉 법도 오히려 멸하거늘 하물며 그른 법이겠느냐.
나는 항상 너희들을 위해 일각유경(一覺喩經)을 설명하였지마는 그 글도 기록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그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왜 그러냐 하면 그 법은 그윽하고 깊어 성문이나 벽지불로서 이 법을 수행하는 이는 큰 공덕을 얻어 단 이슬이 하염없는 곳을 얻기 때문이다.
뗏목 비유란 무엇인가. 이른바 교만을 의지하여 교만을 없애는 것이니 교만이 모두 없어지면 다시는 온갖 번뇌의 어지러운 생각이 없어지느니라.
마치 삵쾡이의 가죽을 잘 다루고 거기에 또 주먹으로 두드리면 그것은 소리도 없고 뻣뻣한 데도 없는 것처럼 만일 비구로서 교만이 없어지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전연 없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도적에게 사로잡히더라도 나쁜 생각을 내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체 세계에 두루 채워, 저 지극히 부드러운 가죽처럼 되면, 그는 언제나 하염없는 곳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항상 이와 같이 생각하라."
이렇게 설법할 때에 그 자리에 三천 천자는 모든 번뇌가 다해 법눈이 깨끗하게 되었고, 六十여 비구는 법복을 버리고 속인으로 돌아갔으며, 또 六十여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려 법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대정장 2/760 상~761 중 ;『한글 증일아함경』2, pp. 252~258.
'아함경 주제별 정리 > 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法) (18) 七佛通偈의 해석 (0) | 2013.08.28 |
---|---|
법(法) (17) 현철한 비구들의 9법 성취 (0) | 2013.08.28 |
법(法) (15) 비구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즐기게 하는 여래의 여덟가지 법 (0) | 2013.08.28 |
법(法) (14) 때때로 법을 듣는 다섯 가지 공덕 (0) | 2013.08.28 |
법(法) (13) 죽음을 면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네 가지 법의 근본을 생각하라. (0) | 2013.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