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雜阿含經) 제 2권
33. 비아경(非我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舍衛]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물질은 <나>가 아니다. 만일 물질이 <나>라면 응당 물질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물질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물질>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생기는 것이며,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물질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 되지 않은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물질은 항상 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항상 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 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거기서 과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의 물질은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르지 않으며, 둘의 합한 것도 아니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다'고 참다이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참다이 관찰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연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내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4. 오비구경(五比丘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波羅 ]국의 선인(仙人)들이 사는 사슴 동산[鹿野苑]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남아 있는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물질은 <나>가 없다. 만일 물질이 <나>가 있다면 물질에는 응당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물질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물질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생기는 것이요,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물질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 되지 않은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항상 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항상 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항상 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거기서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관찰하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다섯 가지 쌓임을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다라고 본다. 이렇게 관찰하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연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말씀하시자 그 다섯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5. 삼정사경(三正士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지제(支提)에 있는 대나무 동산 절에 계시었다. 그 때에 집을 나온 지 아직 오래지 않은 세 정사(正士)가 있었다. 즉 존자 아니룻다[阿那律陀],, 존자 난다[難提], 존자 킴빌라[金毘羅]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곧 훈계하여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이 마음과 이 뜻과 이 의식을 생각하여 항상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욕심을 끊고 이 물질을 끊고 몸으로 완전히 진리를 증득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과연 물질은 항상 있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바르게 머무르는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물질은 덧없어 변하고 바뀌는 것인데, 거기서 바르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물질은 덧없어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그것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은 본래부터 그 일체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이렇게 그것을 안 뒤에는 그 물질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번뇌의 해로움과 불꽃처럼 일어나는 걱정과 번민은 모두 끊어져 없어진다. 그것이 끊어져 없어진 뒤에는 벌써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어진 뒤에는 안락하게 머무르게 되며, 안락하게 머무른 뒤에는 열반을 얻게 되나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세 정사는 여러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모든 비구들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6. 십륙비구경(十六比丘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투라(摩偸羅)국의 발제하(跋提河) 곁에 있는 일산 같은 암라(菴羅) 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자기를 피난처(避難處)로 삼고, 자기를 의지해 머무르며, 법을 피난처로 삼고, 법을 의지해 머물러서 다른 것을 피난처로 삼거나 다른 것을 의지해 머무르지 말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바르게 관찰하여 자기를 피난처로 삼고, 자기를 의지해 머무르며, 법을 피난처로 삼고 법을 의지해 머물러서, 다른 것을 피난처로 삼거나 다른 것을 의지해 머무르지 말라. 무엇이 원인이 되어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생기며, 어떻게 이 넷이 있으며, 또 어떻게 스스로 아직 생기지 않은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은 생기고, 이미 생긴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은 더욱 자라고 더해 간다고 관찰하는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뿌리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하는 곳입니다.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시면 저희들은 듣잡고 그 말씀과 같이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비구들이여,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어 물질을 인하고, 물질에 얽매이기 때문에 아직 생기지 않은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은 생기고, 이미 생긴 그것들은 더욱 자라고 커 간다고 관찰하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혹 물질로서 항상 있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 있더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덧없는 것이다. 만일 착한 남자가 물질은 덧없는 것으로서 이미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면, 그는 욕심을 떠나고 욕심을 멸해 모든 번뇌가 없어질 것이다. 본래부터 모든 물질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인 줄을 안 뒤에는 혹 물질을 인연하여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끊고, 그것을 끊은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고,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게 되면 그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세 정사는 여러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모든 비구들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대나무 동산과 바이샤알리[毘舍離]와
청정(淸淨)과 바른 관찰과
덧없음과 괴로움과 <나>가 아님과
五와 三과 十六이니라.'
37. 아경(我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데 세상이 나와 다투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만일 법다이 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하느니라.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물질은 항상 있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항상 있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하나니, 이것이 이른바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세간에는 세간법이 있으니 나는 그것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어 보이지마는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허물이 아니니라. 비구들이여, 어떤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어 보이지마는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고 말하는가. 비구들이여, 이른바 물질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덧없고 괴로운 것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비구들이여, 이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어 보이지마는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구나! 그러나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저 눈먼 장님들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8. 비하경(卑下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세상 사람들은 천한 직업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재물을 구해 살아가면서 또 큰 부자가 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다 아는바로서 세상 사람이 아는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모든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어떤 그릇이 어떤 곳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건자( 茨)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바리[鉢]라 하며, 어떤 사람은 비비라(匕匕羅)라 하고, 어떤 사람은 차류(遮留)라 하며, 어떤 사람은 비실다(毘悉多)라 하고, 어떤 사람은 바사나라 하며, 어떤 사람은 살뢰(薩牢)라 하는 것과 같나니, 그들의 아는 것과 같이 나도 도한 그렇게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세간에 있는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어 보이는 것은, 내가 알고 보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지마는,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구나! 그러나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을 낸들 그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고 말하는가. 이른바 물질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비구들이여, 이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아...... 저 눈먼 장님들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9. 종자경(種子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종자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이른바 뿌리 종자, 줄기 종자, 마디 종자, 절로 떨어지는 종자, 열매 종자이니라. 이 다섯 가지 종자가 비록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으며, 썩지도 않으며, 바람을 맞지도 않고,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라 하더라도 땅만 있고 물이 없으면 그 종자는 나서 자라고 뻗어 가지 못한다. 또 그 종자가 비록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으며 바람을 맞지 않았더라도, 물만 있고 땅이 없으면 그 종자도 또한 나서 자라고 뻗어 가지 못한다. 만일 그 종자가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으며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 않고 땅과 물이 있으면 그 종자는 나서 자라고 뻗어 갈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그 다섯 가지 종자는 잡음의 쌓임[取陰]과 의식[識]에 비유하고, 땅은 의식[識]이 머무르는 네 곳에 비유하고, 물은 탐욕과 기쁨에 비유해 본다. 네 가지 <잡음[取]>이 서로 반연하여 의식이 머무르나니, 어떤 것이 넷인가. 물질 안에 의식이 머물러 물질을 반연하고, 기쁨과 탐욕으로써 불어나서 자라나고 뻗어 간다. 느낌, 생각, 지어감 안에 의식이 머물러 느낌, 생각, 지어감을 반연하고, 기쁨과 탐욕으로서 불어나서 자라나고 뻗어 간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의식은 그것을 안에서 혹은 오기도 하고 혹은 가기도 하며, 혹은 머무르기도 하고 혹은 잠기기도 하며, 혹은 나서 자라 뻗어 가기도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물질, 느낌, 생각, 지어감을 떠나서도 의식이 혹은 오기도 하고 혹은 가기도 하며, 혹은 머무르기도 하고 혹은 나기도 하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말만이 있을 뿐으로써 그것을 물어 보고도 알지 못하여 더욱 미련하게만 될 것이니, 그것은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물질의 경계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고, 탐욕을 떠난 뒤에는 물질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것을 끊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질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것을 끊으려는 마음이 생긴 뒤에는 끊음을 반연하고, 끊음을 반연한 뒤에는 그 의식은 머무를 곳도 없고, 또 나서 자라고 뻗어 가지도 못한다. 느낌, 생각, 지어감의 경계에 대해 탐욕을 떠나고, 탐욕을 떠난 뒤에는 그것들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닿임을 끊으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들에 대해 집착하고 얽매이는 닿임을 끊으려는 마음이 생긴 뒤에는 끊음을 반연하고, 끊음을 반연한 뒤에는 그 의식은 머무를 곳도 없고 또 나서 자라고 뻗어 가지도 못한다. 나서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뒤에는 머무르며, 머무른 뒤에 만족한 줄 알고, 만족한 줄 안 뒤에는 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연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는 뒤에는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내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그래서 내가 말하는 그 의식은 동, 서, 남, 북 四유(維), 상하의 어디로도 가지 않고 아무 데로도 달려가는 곳이 없어 다만 법을 보아 시원하고 깨끗하며 진실한 열반의 고요한 곳으로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0. 봉체경(封滯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집착하면 해탈하지 못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하느니라. 어떻게 집착하면 해탈하지 못하는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잡음을 반연하여 의식이 머무르나니, 어떤 것이 넷인가. 물질에 집착하여 의식이 머무르고, 느낌, 생각, 지어감에 집착하여 의식이 머무른다.... 그것은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하는가. 물질의 경계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 탐욕을 떠나.... 맑고 깨끗하고 진실한 열반에 들어가면 이것을 '집착하지 않으면 해탈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1. 오전경(五轉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으니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나는 이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 다섯 가지를 참다이 아나니, 곧 물질과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안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참다이 아나니, 곧 그것들의 모임과 그것들의 맛과 그것들의 근심과 그것들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을 참다이 아는가. 곧 모든 물질은 모두가 네 가지 요소와 네 가지 요소로 된 물질로서 이것을 <물질>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물질>을 참다이 아느니라. 곧 물질에 대해서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물질의 모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물질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곧 물질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물질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물질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물질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물질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물질>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곧 만일 물질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물질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을 참다이 아는가. 곧 여섯 가지 받는 몸이 있으니 눈으로 부딪쳐 느낌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으로 부딪쳐 느낌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느낌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느낌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의 모임을 참다이 아는가. 곧 부딪침의 모임이 느낌의 모임이니 이렇게 나는 물질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곧 여섯 가지 느낌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느낌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느낌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느낌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느낌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곧 느낌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고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느낌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느낌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생각하는 몸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으로 부딪쳐 생각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으로 부딪쳐 생각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생각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생각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의 모임을 참다이 아는가. 곧 부딪침의 모임이 생각의 모임이니, 이렇게 나는 생각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곧 생각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생각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생각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곧 생각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이것을 생각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생각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생각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생각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생각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생각[思]하는 몸이 있으니, 곧 눈으로 부딪쳐 생각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으로 부딪쳐 생각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지어감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지어감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의 모임을 참다이 아는가. 곧 부딪침의 모임이 지어감의 모임이니, 이렇게 나는 지어감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곧 지어감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지어감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지어감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지어감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지어감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지어감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지어감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지어감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지어감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의식[識]의 몸이 있으니, 곧 눈의 의식이 몸, 귀, 코, 혀, 몸, 뜻의 의식의 몸으로서 이것을 나는 의식의 몸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의식의 몸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의 모임을 참다이 아는가. 곧 정신과 물질의 모임으로서 이것을 의식의 모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의식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곧 의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의식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의식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의식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의식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의식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곧 의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의식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의식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물질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알고 본 뒤에 탐욕으로 향하는 마음을 여의면 이것을 바르게 향하는 것이라 한다. 만일 그가 바르게 향하면 나는 그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하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물질에 대해서 참다이 알고 참다이 보면, 그는 물질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을 것이다. 만일 마음의 해탈을 얻으면 곧 순일(純一)하게 된 것이요, 순일하게 되면 곧 범행이 이루어질 것이며, 범행이 이루어지면 다른 것을 떠나 자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한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2. 칠처경(七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일곱 곳의 착함[善]과 세 가지의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 있다. 만일 이 법을 다 알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고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 스스로 알고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무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곱 곳의 착함인가. 비구들이여, 참다이 물질을 알고, 물질의 모임, 물질의 멸함, 물질을 멸하는 길, 물질의 맛, 물질의 근심,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알며,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과 그것들의 모임, 그것들의 멸함, 그것들을 멸하는 길, 그것들의 맛, 그것들의 근심, 그것들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 것이니라.
어떻게 물질을 참다이 아는가. 모든 물질은 모두가 네 가지 요소와 네 가지 요소로 된 물질로서 이것을 물질이라 하나니, 이렇게 물질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의 모임을 아는가. 애정과 기쁨으로서 이것을 물질의 모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물질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의 멸함을 참다이 아는가. 애정과 기쁨의 멸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물질의 멸함이라 하나니, 이렇게 물질의 멸함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니, 곧 바른 소견,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念], 바른 정(定)으로서 이것을 물질을 멸하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물질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곧 물질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물질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물질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만일 물질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물질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물질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곧 물질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물질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느낌이니, 눈으로 부딪쳐 느낌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으로 부딪쳐 느낌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느낌이라 하나니, 이렇게 느낌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의 모임을 아는가. 부딪침의 모임이 곧 느낌의 모임이니, 이렇게 느낌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의 멸함을 참다이 아는가. 부딪침의 멸함이 곧 느낌의 멸함이니, 이렇게 느낌의 멸함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으로서, 이것을 느낌을 멸하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느낌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느낌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느낌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느낌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만일 느낌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느낌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느낌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만일 느낌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느낌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느낌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생각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각이 생기고 귀, 코, 형, 몸, 뜻으로 부딪쳐 생각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생각이라 하나니, 이렇게 생각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의 모임을 아는가. 부딪침의 모임이 곧 생각의 모임이니, 이렇게 생각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의 멸함을 참다이 아는가. 부딪침의 멸함이 곧 생각의 멸함이니, 이렇게 생각의 멸함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으로서 이것을 생각을 멸하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생각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생각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생각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생각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만일 생각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생각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생각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만일 생각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생각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생각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생각하는 몸[想身]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각[想]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으로 부딪쳐 생각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지어감이라 하나니, 이렇게 지어감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의 모임을 참다이 아는가. 부딪침의 모임이 곧 지어감의 모임이니, 이렇게 지어감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의 멸함을 참다이 아는가. 부딪침의 멸함이 곧 지어감의 멸함이니, 이렇게 지어감의 멸함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으로서 이것을 지어감을 멸하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지어감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지어감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지어감의 맛이라 하나니, 이것을 지어감의 맛을 참다이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만일 지어감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지어감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지어감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지어감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만일 지어감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지어감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지어감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의식의 몸이니 눈의 의식과 귀, 코, 혀, 몸, 뜻의 의식의 몸으로써 이것을 의식이라 하나니, 이렇게 의식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의 모임을 참다이 아는가. 정신과 물질[名色]의 모임이 곧 의식의 모임이니, 이렇게 의식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의 멸함을 참다이 아는가. 정신과 물질의 멸함이 곧 의식의 멸함이니, 이렇게 의식의 멸함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는가.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으로서 이것을 의식을 멸하는 길이라 하나니, 이렇게 의식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의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의식의 맛이라 하나니, 이것을 의식의 맛을 참다이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만일 의식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의식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의식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의식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만일 의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의식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 것이라 하나니,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곱 곳의 착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 이치를 관찰하는 것인가. 비구가 만일 비고 한가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한데에서 <쌓임(陰)>과 <계(界)>와 <입(入)>을 관찰하고 바른 방편으로써 그 뜻을 생각하면, 이것을 비구가 세 가지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상의 것을 비구의 일곱 곳의 착함과 세 가지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이 법을 다 알면 번뇌가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무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3. 취착경(取著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잡음[取]하기 때문에 집착이 생기고, 잡음 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느니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예, 듣잡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떻게 잡음 하기 때문에 집착이 생기는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고, 또 '물질은 <나>요, <내 것>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잡음>한다. 그것을 <잡음>한 뒤에 그 물질이 만일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또한 그 따라 옮긴다. 마음이 그 따라 옮긴 뒤에는 또한 집착이 생기어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곧 두려움과 장애가 생기어 마음이 어지러워지나니, 이것을 다 취착[取著]하기 때문이니라. 또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고, 또 '이것은 <나>요, <내 것>이다'라고 보아 그것을 <잡음>한다. 그것을 <잡음>한 뒤에 만일 그것들이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또한 그 따라 옮긴다. 마음이 그 따라 옮기기 때문에 곧 집착이 생기어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게 되며, 거기에 머무른 뒤에는 곧 공포와 장애가 생기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이것은 다 취착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취착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잡음>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 <나>와 <다른 나>와 둘의 합한 것을 보지 않고, 물질에 대해서 <나>와 <내 것>을 보아 <잡음>하지 않는다. <나>와 <내 것>을 보아 <잡음>하지 않은 뒤에는 그 <물질>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이 그 따라 옮기지 않는다. 마음이 그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집착이 생기어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고,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장애가 생겨 마음이 어지럽지 않나니, 이것은 다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도 <나>와 <다른 나>와 둘의 합한 것을 보지 않고 <나>와 <내 것>을 보아 <잡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들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은 그 따라 옮기지 않고, 마음이 그 따라 옮기지 않기 때문에 집착이 생기어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장애가 생겨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다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취착>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그래서 이것이 이른바 취착하는 것과 취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4. 계착경(繫著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마음을 내면 얽매어 집착하고,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어 집착하지 않나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희들의 위해 설명하리라.
어떻게 마음을 내면 얽매어 집착하는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의 모임, 물질의 멸함, 물질의 맛, 물질의 근심,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 사랑하고 기뻐하며 찬탄하고 취착하며 물질에 대해서 '이것은 <나>요, 이것은 <내 것>이다'하여 그것을 <잡음>한다. 그것을 <잡음>한 뒤에는 그 물질이 만일 변하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그 따라 변하고 달라진다. 마음이 그 따라 변하고 달라지기 때문에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기 때문에 곧 두려움과 장애와 돌아보는 생각이 생기나니, 이것은 마음을 냄에 얽매이고 집착하기 때문이니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을 마음을 내면 얽매이고 집착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의 모임, 물질의 멸함, 물질의 맛, 물질의 근심,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안다. 그것을 참다이 알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 사랑하고 기뻐하거나 찬탄하거나 취착하지 않으며 <나>와 <내 것>에 얽매어 <잡음>하지 않는다. <잡음>하지 않기 때문에 그 물질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은 그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으며, 마음이 그 따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얽매이고 집착해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거두어 받으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과 장애와 돌아보는 생각이 생기지 않나니, 이것은 마음을 내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을 마음을 내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5. 각경(覺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만일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나>가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다 이 다섯 가지 쌓임에서 <나>를 보는 것이니라.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물질은 곧 <나>다. 물질은 <나>와 다르다. <나>는 물질에 있고 물질은 <나>에게 있다. 그것들은 <나>와 다르다. <나>는 그것들에 있고 그것들은 <나>에게 있다'고 본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물질은 곧 <나>요, 나와 다르고,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고, <나>는 진실한 것이라고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근(根)이 더욱 자라고, 모든 근이 더욱 자란 뒤에는 모든 <부딪침>을 더하며,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 부딪치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거나 즐거운 감각을 일으키나니, 그것은 다 감각 기관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섯 인가. 이른바 눈의 감각 기관과 귀, 코, 혀, 몸, 뜻의 감각 기관이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뜻의 경계와 법의 경계와 무명의 경계가 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의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있다는 감각, 없다는 감각,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 내가 낫다는 감각, 나는 저와 같다는 감각, 나는 못하다는 감각, 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감각은 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말미암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서 무명을 버리고 밝음[明]을 내어 있다는 감각, 없다는 감각,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 나는 낫다는 감각, 나와 저와 같다는 감각, 나는 못하다는 감각, 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 뒤에는 먼저 일어난 무명의 부딪침은 멸하고, 그 뒤에는 밝음의 부딪침의 감각이 일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 삼세음세경(三世陰世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만일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로서 숙명(宿命)을 아는 지혜로써 여러 가지 숙명을 알아 이미 알았고 장차 알 것이며 현재에서 안다면, 그것은 다 이 다섯 가지 쌓임에서 이미 알았고 장차 알 것이며 현재에 아는 것이니라. 곧 '나는 과거에 이러한 물질이었고 이러한 느낌이었고, 이러한 생각이었고 이러한 지어감이었으며, 이러한 의식이었다'고 아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걸리고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을 물질의 쌓임이라 하느니라. 또 걸리는 것으로서 손, 돌, 막대기, 칼, 추위, 더위, 목마름, 굶주림이나 혹은 모기나 등에의 모든 독한 벌레, 바람, 비에 부딪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부딪치는 걸림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걸리는 것은 다 물질의 쌓임이요, 다시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기 때문에 물질의 쌓임이라 하느니라.
모든 깨닫는 모양은 다 느낌의 쌓임이니, 무엇을 깨닫는가. 괴로움을 깨닫고, 즐거움을 깨달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깨닫나니, 그러므로 깨닫는 모양은 다 느낌의 쌓임이요, 다시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기 때문에 느낌의 쌓임이니라. 모든 생각[想]은 다 생각의 쌓임이니, 무엇을 생각하는가. 적은 생각, 많은 생각, 한량이 없는 생각, 전연 가진 것이 없을 때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생각이니, 그러므로 생각의 쌓임이라 하고, 다시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생각의 쌓임이니라. 지어 가는 모양은 지어감의 쌓임이니, 무엇을 지어 가는가. 물질에 대해서 짓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 짓나니, 그러므로 지어 가는 모양은 지어감의 쌓임이요, 다시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지어감의 쌓임이니라. 분별해 아는 모양은 의식의 쌓임이니 무엇을 아는가. <빛깔>을 알고, 소리, 냄새, 맛, 부딪침, 법을 아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의식의 쌓임이라 하며, 다시 그것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의식의 쌓임이니라.
비구들이여, 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의 쌓임에 대해서 이렇게 비운다. 곧 '나는 현재에 물질에서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저 물질에게 먹히고 있었다'고. 내가 만일 다시 미래의 물질을 즐겨 해 집착하면 다시 현재와 같이 그 물질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과거의 물질은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물질을 즐겨 해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물질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고, 근심을 멸하고자 하여 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에 대해서도 이렇게 배운다. 곧 '나는 현재에 현재의 <그것들>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그것들>에게 먹히고 있었다. 내가 이미 현재의 <그것들>에게 먹히고 있으면서 만일 다시 미래의 <그것들>을 즐겨 해 집착하면 반드시 장래에도 현재와 같이 <그것들>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고. 이렇게 안 뒤에는 과거의 그것들은 즐겨 해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그것들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고, 근심을 멸하고자 하여 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그래서 멸하고서 더하지 않고,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으며,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버리고서 잡음 하지 않나니, 무엇을 멸하고서 더하지 않는가. 물질을 멸하고서 더하지 않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멸하고서 더하지 않는다. 무엇에서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는가. 물질에서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으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가. 물질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서 잡음 하지 않는가. 물질을 버리고서 잡음 하지 않느니라. 멸하고서 더하지 않나니 고요하고 멸하여 머무르고,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나니 고요하고 물러나 머무르며,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나니 고요하고 멸하여 머무르고, 버리고서 잡음 하지 않나니 얽매이고 집착하니 않는다.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많은 비구들은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나[我]와 천함[卑下]과 종자와
집착[封滯]과 다섯 가지 쌓임[五轉]과 일곱 곳[七處]과
두 얽매임과 감각[覺]과
삼세의 쌓임[三世陰世食]이니라.'
47. 신경(信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신심(信心)이 있는 착한 남자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곧 '나는 마땅히 법을 그대로 따르리라. 나는 마땅히 물질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리라'고. 그래서 신심이 있는 착한 남자는 곧 물질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기 때문에 물질을 싫어하게 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게 되며, 싫어한 뒤에는 욕심을 떠나 해탈하고, 해탈했다는 지견(知見)이 생겨 '나는 남[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 신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신심이 있는 착한 남자는 바른 믿음으로써 집을 나와 집이 없는 몸이 되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곧 '나는 마땅히 법을 그대로 따르리라. 나는 마땅히 물질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리라'고. 그래서 신심이 있는 착한 남자는 바른 믿음으로서 집을 나와 집이 없는 몸이 되어 물질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 머무른 뒤에는 물질을 떠나게 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떠나게 되리니, 이들은 다 생, 노, 병, 사와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을 일체 떠난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9. 아난경(阿難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신심이 있는 장자(長者)나 장자의 아들이 너에게 와서 '어떠한 법에서 그 나고 멸하는 것을 아는가.'고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제게 와서 그것을 묻는다면 저는 '물질은 나고 멸하는 법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고 멸하는 법인 줄을 안다고 대답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마땅히 그렇게 대답하여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물질은 나고 멸하는 법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고 멸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만일 물질은 나고 멸하는 법인줄을 알면, 그는 물질을 아는 사람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고 멸하는 법인줄을 알면, 그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아는 사람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0. 아난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집을 나온 여러 외도(外道)들이 너에게 와서 '아아난다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梵行)을 닦게 하는가.'고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집을 나온 외도들이 제게 와서 '아아난다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는가.'고 묻는다면 저는 '물질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아 욕심을 다 멸하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 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존께서는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 것이요,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아 욕심을 다 멸하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 나게 않게 하기 위하여 세존께서는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시는 것이니라'고 대답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집을 나온 외도가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마땅히 그렇게 대답하여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진실로 물질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아 욕심을 다 멸하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 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아 욕심을 다 멸하고 해탈하여 그것이 다시 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모든 범행을 닦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1. 괴법경(壞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지금 너희들을 위하여 무너지는 법과 무너지지 않는 법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모든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너지는 법이요, 그 물질이 멸하면 열반이니,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무너지는 법이요, 그것들이 멸하면 열반이니, 이것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2. 울저가경(鬱低迦經)
울저가수다라(鬱低迦修多羅)는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넷법>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다.
53.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코오샬라[拘薩羅]국에 계시면서 세간에 노닐으시다가 사알라[薩羅]촌 북쪽에 있는 싱사파[申恕]숲에 계시었다. 그 때에 그 촌의 주인인 큰 성(姓) 바라문은 '샤아캬[釋迦]종족의 아들 사문은 샤아캬의 큰 성(姓)으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서 집을 나와 집이 없는 몸으로 도(道)를 배워 위없는 등정각(等正覺)을 이룬 뒤에 이 코오샬라국에서 세간에 노닐다가 사알라촌 북쪽에 있는 싱사파숲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또 '그 사문 고오타마는 훌륭한 모습과 명성(名聲)과 진실한 공덕이 있어 하늘과 사람이 찬탄하여 八방에 두루 들리며, 여래(如來), 다 옳게 깨달은 이, 지혜와 행을 갖춘 이[明行足], 잘 간 이[善逝], 세상 아는 이[世間解], 위없는 선비[無上士], 장부 다루기[調御丈夫], 하늘과 사람 스승[天人師], 부처[佛], 세존(世尊)이 되어 모든 세간과 모든 하늘, 악마, 범(梵), 사문 바라문들 가운데서 큰 지혜를 스스로 증득해 알고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며, 세상을 위해 연설하는 법은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이 다 좋아 좋은 이치와 좋은 맛은 순일(純一)하고 원만하고 깨끗하며, 범행은 깨끗하고 묘한 법을 연설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훌륭하구나! 나는 뵈오리라. 훌륭하구나! 나는 가리라. 나는 가서 공경하고 섬기리라'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는 곧 훌륭한 수레를 타고 많은 무리를 데리고 금병과 금지팡이와 일산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 가 공경하고 섬기려 하였다. 그 숲 어구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나아 가 문안 드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설명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인(因)을 주장하고 인을 설명하느니라."
"어떻게 인을 주장하고 어떻게 인을 설명하시나이까."
"인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을 모으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모이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멸하고,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멸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모으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모이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 물질의 맛, 물질의 근심,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알지 못한다. 그것을 참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을 사랑하고 즐겨 하며, 물질을 몹시 찬탄하고 마음으로 집착하여 거기에 머무른다. 그는 물질을 사랑하고 즐겨 하기 때문에 그것을 <잡음[取]>하고,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으며, <존재>를 인연하여 <남[生]>이 있고, <남>을 인연하여 생, 노, 병, 사와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이 있다. 이것이 곧 큰 괴로움의 무더기이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모으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모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멸하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멸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 물질의 맛, 물질의 근심, 물질을 떠나기를 참다이 안다. 그것을 참다이 알기 때문에 물질을 사랑하거나 즐겨 하지 않고 몹시 찬탄하지 않으며, 물들여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랑하거나 즐겨 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사랑은 곧 멸하고, 사랑이 멸하면 <잡음>이 멸하며, <잡음>이 멸하면 <존재>가 멸하고, <존재>가 멸하면 <남>이 멸하며, <남>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을 멸하며, 인이 있고 연이 있어서 세간이 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바라문이여, 이것이 이른바 인을 주장하고 인을 설명하는 까닭이니라."
바라문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고오타마께서는 그렇게 인을 주장하시고 그렇게 인을 설명하셨나이다. 나는 세상일이 많아 이제 하직하고 물러가겠나이다."
"좋도록 하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니 여러 바라문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함께 기뻐하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54. 세간경(世間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국의 선인(仙人)이 사는 사슴 동산[鹿野苑]에 계시었다. 그 때에 비가다로가[毘迦多魯迦)촌에 있는 어떤 바라문은 부처님께 나와 공손히 문안 드린 뒤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내게는 젊은 제자가 있습니다. 그는 천문(天文)과 족성(族姓)을 알고, 대중을 위해 길흉(吉凶)을 점치는데,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있고, 없다고 하면 반드시 없으며, 이루어진다고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무너진다고 하면 반드시 무너지나이다. 고오타마시여, 당신의 뜻에는 어떠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너의 젊은 제자가 천문과 족성을 안다는 것은 우선 그만 두고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네 생각대로 대답하라. 바라문이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물질은 본래 종자가 없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본래 종자가 없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내게는 젊은 제자가 있습니다. 그는 천문과 족성을 알아 대중을 위해 이렇게 말합니다. 곧 있다고 하면 반드시 있고, 없다고 하면 반드시 없다'고 말하지마는 그 알고 본 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혹 물질로써 백 년 동안 늘 머무르는 것이 있는가. 혹은 다르게 났다가 다르게 멸하는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으로서 백년 동안 늘 머무르는 것이 있는가. 혹은 다르게 났다가 다르게 멸하는가."
"다르게 났다가 다르게 멸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너의 젊은 제자가 천문과 족성을 알아 대중을 위해 '이루어 진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마는 그 알고 본 것은 다르지 않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이 법과 저 법, 이 말과 저 말에 어느 것이 났다고 하는가."
"세존이시여, 이 법다운 말은 부처님 말씀과 같아서 진리를 나타내고 마음을 열어 주나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에 그것을 구(救)해 주어 헤맬 때에는 바로 길을 보여 주며, 어둠 속에서 등불을 주는 것과 같이, 세존께서 오늘 훌륭한 법을 말씀하신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진리를 나타내고 마음을 열어 주시나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비가다로가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대중과 함께 기뻐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55. 음경(陰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국의 선인이 사는 사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쌓임[陰]>과 <받는 쌓임[受陰]>을 말하리라. 어떤 것을 <쌓임>이라 하는가.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모두 물질의 쌓임이라 한다. 따라서 모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그와 같아서 그 일체는 모두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라 하나니 이것들을 모두 쌓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받는 쌓임>이라 하는가. 만일 물질이 번뇌가 있으면 그것을 잡음[取]라 한다. 만일 그 물질이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및 그 밖의 여러 가지 큰 번뇌의 마음의 법을 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러하면 이것을 <받는 쌓임>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6. 누무루법경(漏無漏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국의 선인이 사는 사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법을 말하리라. 만일 물질이 누(漏)가 있어서 그것을 잡음 하면 그 물질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한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누(漏)가 있어서 그것을 취하면, 그것들은 능히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하나니, 이것을 유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무루의 법이라 하는가. 모든 물질이 누가 없어서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 물질은 과거거나 혹은 미래거나 혹은 현재에 있어서도 그 물질은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누가 없어서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것들은 미래거나 혹은 현재에 있어서도 사랑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게 하지 못하니, 이것을 무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두 가지 믿음과 두 가지 아아난다의 물음과
허물어지는 법과 울저가(鬱低迦)와 바라문과 세간과
쌓임 번뇌와 번뇌없음[漏無漏法]이니라.'
57. 질루진경(疾漏盡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슈라아바스티이성으로 들어가 걸식(乞食)을 하시었다. 걸식을 마치고 돌아오시자 가사와 바리를 가지고 대중에게도 말하지 않고 시자(侍者)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다만 혼자서 서쪽에 있는 나라로 가시어 세간에 노시었다.
대에 안타(安陀) 숲에 있던 어떤 비구는, 세존께서 대중에게도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다만 혼자서 가시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그는 그것을 보자 존자 아아난다에게 가서 아뢰었다.
"존자여, 알으소서 세존께서는 대중에게도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다만 혼자서 나가 노실으시나이다."
때에 아아난다는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세존께서 대중에게도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다만 혼자서 나가 노닐으신다면 아무도 따라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오늘 세존께서는 적멸(寂滅) 속에 계시고자 하심이니 적멸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요."
그 때에 세존께서는 북쪽으로 노닐면서 반사국의 파타(波陀)촌으로 가시어 동산 지기가 있는 숲 속에서 어떤 밧다사알라[波陀沙羅] 나무 밑에 계시었다.
때에 많은 비구들은 아아난다에게 가서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지금 들으니 세존께서는 북으로 반사국 파타촌에 가시어 동산 지기가 있는 숲 속의 밧다사알라 나무 밑에 계신다고 합니다."
"존자여, 알으시오. 우리들은 세존님을 뵈옵지 못한지 오래입니다. 만일 수고를 꺼리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을 가엾이 여기어 세존님에게로 같이 가실 수 없겠습니까."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형편을 이해하여 잠자코 허락한 뒤에 많은 비구들과 함께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슈라아바스티이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걸식을 마친 뒤에 절에 돌아 와 침구를 챙기고 가사와 바리를 가지고 서쪽으로 나가 세간에 노닐었다. 거기서 다시 북으로 반사국 파타촌의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존자 아아난다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가사와 바리를 놓고 발을 씻은 뒤에 세존에게 나가 그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한 쪽에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해 가르치시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시었다. 그 때에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하게 될까'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누가 다하게 될까.'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그것을 설법하였느니라. 곧 모든 <쌓임>을 잘 관찰하여야 하나니, 이른바 '네 가지 생각하는 곳과 네 가지 바른 정근(精勤), 네 가지 여의족(如意足), 다섯 가지 뿌리,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라고. 나는 이미 이러한 법을 말하며 모든 <쌓임>을 관찰하였느니라. 그런데 아직도 착한 남자로서 부지런히 하고자 하지 않고 부지런히 즐겨 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게으르면 그는 더욱 나가지 못해 모든 누를 다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만일 어떤 착한 남자로서 내가 설명한 법에서 모든 <쌓임>을 잘 관찰하여 부지런히 하고자 하고, 부지런히 즐겨 하며, 부지런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믿는다면 그는 능히 모든 누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물질을 <나>라고 보나니, 만일 그것을 <나>라고 보면 이것을 <지어감[行]>이라 하느니라. 그 지어감은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生]이며, 무엇의 변함인가. 무명(無明)이 부딪쳐 애욕이 생기나니, 애욕을 인연하여 그 지어감을 일으키느니라. 그 애욕은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변함인가. 그 애욕은 <느낌[受]>이 원인이요, 느낌의 모임이며, 느낌의 남이요, 느낌의 변함이다. 그 느낌은 <닿임[觸]>이 원인이요, 닿임의 모임이며, 닿임의 남이요, 닿임의 변함이다. 그 닿임은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변함인가. 이른바 그 닿임은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원인이요,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모임이며,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남이요,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변함이니라. 그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은 덧없고 변하는 것으로서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이요, 그 닿임의 느낌과 지어감의 느낌도 또한 덧없고 변하는 것으로서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이니라.
이렇게 관찰하면서도 그는 물질을 <나>라고 본다. 물질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물질을 <내 것>이라고 보며, 물질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물질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물질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물질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물질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느낌을 <나>로 보며, 느낌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느낌을 <내 것>이라고 보며, 느낌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느낌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느낌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느낌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느낌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생각을 <나>라고 보며, 생각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생각을 <내 것>이라고 보며, 생각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생각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생각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생각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생각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지어감을 <나>라고 보며, 지어감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지어감을 <내 것>이라 보며, 지어감을 <내 것>이라 보지 않더라도 지어감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지어감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지어감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지어감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의식을 <나>라고 보며, 의식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의식을 <내 것>이라고 보며, 의식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의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의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의식 안에 있다고 보느니라.
<나>는 의식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다시 단견(斷見)을 지어 유견(有見)을 부수고, 단견을 지어 유견을 부수지 않더라도 아만(我慢)을 떠나지 못하나니, 아만을 떠나지 못하면서 다시 <나>를 보고 <나>를 보면 그것은 곧 지어감이니라. 그 지어감은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변함인가... 그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으며... 내지 아만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8. 음근경(陰根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동쪽에 있는 녹모 강당(鹿母講堂)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해질녘에 선(禪)에서 깨어나 모든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으니 어떻게 다섯인가. 이른바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때에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쌓임이란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돌아 가 앉아 물으라. 나는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다시 본 자리로 돌아 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다섯 가지 <쌓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고, 무엇을 원인으로 하며, 무엇으로써 나고, 무엇으로 부딪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그 다섯 가지 <쌓임>은 욕심이 근본이 되고, 욕심이 원인이 되며, 욕심에서 나고, 욕심으로서 부딪치느니라."
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다섯 가지 쌓임은 곧 느낌이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은 훌륭하시나이다. 이제 다시 여쭈옵나니 세존이시여, <쌓임>이 곧 느낌이옵니까. 다섯 가지 <쌓임>은 느낌과 다르나이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곧 느낌도 아니요, 또한 다섯 가지 <쌓임>이 느낌과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욕심의 탐함이 있으면 그것이 곧 다섯 가지 받는 <쌓임>이니라."
"훌륭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이제 다시 여쭈옵나이다. 세존이시여, 두 <쌓임>은 서로 관계가 있나이까."
"그러하니라. 마치 어떤 비구가 '나는 미래에 이러한 물질과 이러한 생각, 이러한 지어감, 이러한 의식을 타고나자'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비구의 <쌓임>과 <쌓임이 서로 관계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그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시나이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다시 여쭈옵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쌓임>이라 하나이까."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를 모두 <쌓임>이라 하나니, 이것을 <쌓임>이라 하며,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나니 비구여, 이것을 <쌓임>이라 하느니라."
"그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시나이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다시 여쭈옵나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과 연으로 물질의 쌓임이라 하며, 무슨 인과 연으로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네 가지 요소를 인연으로 하나니, 이것을 물질의 쌓임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물질의 쌓임은 다 네 가지 요소요, 네 가지 요소를 인연하여 되었기 때문이다.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 생각, 지어감이 생기나니, 이것을 느낌, 생각, 지어감의 쌓임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느낌, 생각, 지어감은 모두 닿임을 인연하기 때문이요, 이름과 물질을 인연하기 때문에 의식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의식은 모두 이름과 물질을 인연하기 때문이니라."
"그 말씀은 훌륭하시나이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다시 여쭈옵나이다. 어떤 것을 물질의 맛이라 하며, 물질의 근심이라 하며, 물질을 떠남이라 하나이까. 어떤 것을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맛이라 하고, 그것들의 근심이라 하며, 그것들을 떠남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물질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나니 이것을 물질의 맛이라 한다. 만일 물질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물질의 근심이라 한다. 만일 물질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물질을 떠남이라 하느니라. 만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면 이것을 그것들의 맛이라 한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을 그것들의 근심이라 한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그것들을 떠남이라 하느니라."
"그 말씀은 훌륭하시나이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다시 여쭈옵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아만(我慢)이 생기나이까."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물질에서 <나>와 <다른 나>가 함께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나>와 <다른 나>가 함께 있는 것을 보나니, 여기서 아만이 생기느니라."
"그 말씀은 훌륭하시나이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다시 여쭈옵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아만이 없게 되겠나이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물질에서 <나>와 <다른 나>와 둘의 합한 것을 보지 않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나>와 <다른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그 말씀은 훌륭하시나이다!"
그 비구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다시 여쭈옵나이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아야 번뇌가 다하게 되나이까."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렇다고,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될 것이니라."
그 때에 그 자리에는 어떤 비구가 있어 미련하고 무식하였다. 그는 무명(無明) 껍질에 싸여 있어서 사특한 소견을 일으켜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나>가 없다면 <나>가 없는 업(業)을 지을 것인데 미래 세상에서 누가 그 갚음을 받을 것인가'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대중 가운데서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지혜도 없고 밝지도 못하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곧 '만일 물질에도 <나>가 없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도 <나>가 없다면 그는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인데 누가 그 갚음을 받아야 할 것인가'고. 만일 이렇게 의심한다면 먼저 그것을 해석하리라. 어떤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 됨이 없는 것인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항상 됨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 됨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움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 됨이 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거기서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이렇게 보면 그것은 바른 소견이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이렇게 보는 사람은 곧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싫어하는 마음을 닦은 뒤에는 욕심을 떠나며, 욕심을 떠난 뒤에는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한 줄을 알고 보느니라.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많은 비구들은 아무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쌓임의 뿌리[陰根]와 <쌓임>은 곧 받음이라는 것과
두 <쌓임>은 서로 관계된다는 것과
명자(名字)와 인(因)과 두 맛과
아만과 빨리 번뇌가 다한다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