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잡아함경

잡아함경 제3권

다르마 러브 2012. 6. 17. 20:05

잡아함경(雜阿含經) 제 3권

 

59, 생멸경(生滅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 이 다섯 가지 쌓임은 다 나고 멸하는 법이라 관찰하라. 이른바 '이것은 물질이요, 이것은 물질의 모임이며, 이것은 물질의 멸함이다. 또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요,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이며,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이다'고 관찰하라. 어떤 것이 물질이 모인 것이며, 어떤 것이 물질의 멸함인가. 어떤 것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인가. 사랑과 기쁨의 모임은 <물질>의 모임이요, 사랑과 기쁨의 멸함은 물질의 멸함이다. 닿임의 모임은 느낌, 생각, 지어감의 모임이요, 닿임의 멸함은 느낌, 생각, 지어감의 멸함이다. 정신과 물질의 모임은 의식의 모임이요, 정신과 물질의 멸함은 의식의 멸함이다. 비구는 이와 같이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을 아나니, 이것을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이라 하고,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을 아나니, 이것을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60. 불락경(不樂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이른바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착하다! 비구들이여, 물질을 즐거워하지 말고, 물질을 찬탄하지 말며, 물질을 <잡음>하지 말고, 물질에 집착하지 말라. 착하다! 비구들이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즐거워하지 말고, 그것들을 찬탄하지 말며, 그것들을 잡음 하지 말고, 그것들에 집착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만일 비구가 물질을 즐거워하지 않고, 물질을 찬탄하지 않으며, 물질을 잡음 하지 않고, 물질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물질을 즐겨 하지 않아서 마음의 해탈을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것들을 찬탄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잡음 하지 않고 그것들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그것들을 즐겨 하지 않아서 마음의 해탈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가 물질을 즐거워하지 않아서 마음이 해탈을 얻고,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즐거워하지 않아 마음이 해탈을 얻으면, 그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평등한 버림[捨]에 머무르고 바른 생각[念]과 바른 지혜가 될 것이다. 그 비구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다면 과거는 그와 동시에 영원히 다해 남음이 없음을 볼 것이요, 전세가 그와 동시에 영원히 다해 남음이 없음을 본 뒤에는, 미래도 또한 동시에 영원히 다해 남음이 없음을 볼 것이다. 후세도 그와 동시에 영원히 다해 남음이 없음을 본 뒤에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영원히 다해 남음이 없음을 보아 집착할 바가 없어질 것이다. 집착할 바가 없어진 뒤에는, 모든 세간에서 전연 취할 바가 없어질 것이요, 취할 바가 없어지면 구할 것이 없어질 것이요, 구할 것이 없어지면 스스로 열반(涅槃)을 깨달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61. 분별경(分別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이른바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쌓임인가. 모든 물질로서 그 일체는 네 가지 요소(要素)와 그 네 가지 요소로 된 물질이니, 이것을 물질의 쌓임이라 하느니라. 다시 그 물질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만일 그 물질의 쌓임을 영원히 끊어 남음이 없고 끝까지 버리어 떠나고 멸해 다하며, 욕심을 떠나 완전히 고요해지면 다른 물질의 쌓임은 다시 계속하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않고 나지도 않나니, 이것을 <묘(妙)>함이라 하고, <고요함>이라 하며, <버려 여임>이라 한다. 그래서 일체의 남음이 있는 애정이 다하고 욕심이 없어지고 번뇌가 다 멸하여 열반을 얻느니라.

어떤 것이 느낌의 쌓임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받는 몸이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이 부딪쳐 느낌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이 부딪쳐 느낌이 생기나니 이것을 느낌의 쌓임이라 한다. 다시 그 느낌의 쌓임은 다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내지 번뇌가 멸해 열반을 얻는다. 어떤 것이 생각의 쌓임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생각[想]하는 몸이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이 부딪쳐 생각이 생기고 귀, 코, 혀, 몸, 뜻이 부딪쳐 생각이 생기나니 이것을 생각의 쌓임이라 한다. 다시 그 생각의 쌓임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번뇌가 다 멸해 열반을 얻는다.

어떤 것이 지어감의 쌓임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생각[思]하는 몸이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이 부딪쳐 생각[思]이 생기고......내지 뜻이 부딪쳐 생각이 생기나니 이것을 지어감의 쌓임이라 한다. 다시 그 지어감의 쌓임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내지 번뇌가 다 멸해 열반을 얻는다. 어떤 것이 의식의 쌓임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아는 몸이니,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으로 아는 몸이요......내지 뜻으로 아는 몸이니 이것을 의식의 쌓임이라 한다. 다시 그 의식의 쌓임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번뇌를 다 멸하고 열반을 얻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이 법을 지혜로서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며 분별하여 인정하면 그는 믿음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뛰어올라 남[生]을 떠나고 범부 자리를 뛰어넘어 아직 스로타아판나과[須陀洹果]는 얻지 못했으나 중간에서 죽지 않고 반드시 스로타아판나과를 얻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 법을 기운이 왕성한 지혜로써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여 인정하면 그는 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뛰어올라 생을 떠나고 범부 자리를 뛰어넘어 아직 스로타아판나과는 얻지 못했으나 중간에서 죽지 않고 반드시 스로타아판나과를 얻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을 참다운 바른 슬기로써 평등하게 보면 내 몸이 있다는 소견과 사특한 계(戒)와 법에 대한 의심과 이 세 가지 <맺음>이 다 끊어진 줄을 알 것이니 비구들이여, 이것을 스로타아판나과라 한다. 그는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바른 깨달음으로 바로 나아가 일곱 번 천상과 인간에 태어난 뒤에는 완전히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 법을 참다운 바른 슬기로써 평등하게 보아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는 아라한(阿羅漢)이다. 그는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기의 이익을 완전히 얻고 모든 맺음을 다 끊고 바른 지혜로써 마음의 해탈을 얻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62. 분별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으니 이른바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슬기도 없고 밝음도 없어서 다섯 가지 쌓임에서 <나>라는 소견을 내어 거기에 집착하여 마음을 얽매고 탐욕을 낸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슬기도 있고 밝음도 있어서 그 다섯 가지 쌓임에서 <나>를 보아 집착하여 마음을 얽매거나 탐욕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어떻게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슬기도 없고 밝음도 없어서 다섯 가지 쌓임에서 <나>를 보아 집착하여 마음을 얽매고 탐욕을 내는가. 비구들이여,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슬기도 없고 밝음도 없어서 '물질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고,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 본다. 이와 같이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슬기도 없고 밝음도 없어서 다섯 가지 쌓임에서 <나>를 말해 집착하여 마음을 얽매고 탐욕을 내느니라.

비구들이여, 어떻게 거룩한 제자들은 슬기도 있고 밝음도 있어서 <나>를 말해 집착하여 마음을 얽매거나 탐욕을 내지 않는가.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라 보지 않고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슬기도 있고 밝음도 있어서 다섯 가지 쌓임에서 <나>를 보아 집착하여 마음을 얽매거나 탐욕을 내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를 바르게 관찰하면 그것은 다 덧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으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를 바르게 관찰하면 그것은 다 덧없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63. 분별경 3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쌓임이 있으니 이른바 물질의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들이 <나>가 있다고 헤아리면 그것은 다 이 다섯 가지 쌓임에 <나>가 있다고 헤아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인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물질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 보고,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 본다. 이와 같이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나>를 헤아려 무명(無明)으로써 분별하고 이렇게 관찰하여 <내 것>이라는 생각을 떠나지 못한다. <내 것>이라는 생각을 떠나지 못하면 모든 근(根)에 들어가고 모든 근에 들어간 뒤에는 닿임[觸]이 생겨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 부딪치느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런 마음과 또 다른 마음을 내나니, 이른바 여섯 가지 부딪치는 몸이다. 어떤 것이 여섯인가. 곧 눈이 부딪치는 감각 기관과 귀, 코, 혀, 몸, 뜻이 부딪치는 감각 기관이다.

비구들이여, 뜻의 경계(境界)와 법의 경계와 무명의 경계가 있다. 무명의 <닿임>에 부딪쳐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나>가 있다고 말하고, 없다고 말하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말하고, 나는 저와 같다고 말하며, 나는 알고 나는 본다고 말하느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많이 안은 거룩한 제자는 여섯 가지 부딪치는 감각 기관에 머무르면서도 능히 무명을 싫어해 떠나 밝음을 낼 수 있다. 그는 무명과 욕심을 떠나 밝음을 내기 때문에 '<나>는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도 아니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훌륭한 것도 아니요, 내가 못한 것도 아니며, 내가 저와 같은 것도 아니며, 내가 아는 것도 아니요, 내가 보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본 뒤에는, 앞에 일어난 무명의 닿임은 멸하고 뒤의 밝음의 닿임은 모이어 일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64. 우타나경(優陀那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티이국 동쪽 동산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해질녘에 선(禪)에서 일어나 강당으로 나가시어 강당 그늘에 있는 대중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으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우다아나[優陀那] 게송(偈頌)으로 찬탄하시었다.

 

법은 <나>가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나>가 이미 없거니

<내 것>이 또 어디서 생겨나랴.

만일 비구가 여기서 벗어나면

그는 곧 하분(下分)의 맺음 끊으리.

 

때에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법은 <나>가 없고 <내 것>도 또한 없다. <나>가 이미 없거니 <내 것>이 또 어디서 생겨나랴. 만일 비구가 여기서 벗어나면 그는 곧 하분의 맺음 끊으리라'는 이 말은 무슨 뜻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헤아린다.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지 않고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지 않는다. 또한 '아는 것도 아니요, 보는 것도 아니다. 이 물질은 덧없는 것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덧없는 것이다. 물질은 괴로운 것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괴로운 것이다. 물질은 <나>가 없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나>가 없다. 이 물질은 있는 것이 아니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은 무너지는 것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며, <나>와 <내 것>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탈하면 곧 욕심 세계의 다섯 가지<맺음>을 끊을 것이다."

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욕심 세계의 다섯 가지 맺음을 끊은 뒤에는 어떻게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없어,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 스스로 알고 원만히 증득하여 머무를 수 있으며,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아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리석은 범부와 무식한 중생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두려워하느니라.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어 그 두 가지는 꼭 생겨야 할 것이 아니건마는, 다만 네 가지 의식의 집착을 반연하나니, 어떤 것이 넷인가. 이른바 물질에 대한 의식의 집착이니 물질은 물질을 반연하여 사랑하고 즐거워함은 더하고 나아가며 넓어지고 커지고 자라나며, 느낌, 생각, 지어감에 대한 의식의 집착을 반연하여 사랑하고 즐거워함은 더하고 나아가며 넓어지고 커지고 자라나다. 비구여, 의식은 여기서 혹은 오고 혹은 가고 혹은 머무르며 혹은 일어나고 혹은 멸하며 더하고 나아가며 넓어지고 커지며 자라나느니라. 만일 그가 '다시 다른 법이 있어서 의식이 혹은 오고 혹은 가고 혹은 머무르며 혹은 일어나고 혹은 멸하며 혹은 더하고 나아가며 넓어지고 커지며 자라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말이 있을 뿐으로서 물어보고도 알지 못하여 더욱 어리석음만 나게 할 것이니 그것은 대경(對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의 경계에 대한 탐욕을 떠나고 나면 물질에 대해서 뜻이 생기는 얽맴이 끊어진 뒤에는 의식의 반연이 또한 끊어져, <의식>은 다시 머무르지도 않고 다시 더하고 나아가거나 넓어지고 커지거나 자라나는 일이 없다. 느낌, 생각, 지어감의 경계에 대한 탐욕을 내고 나면 느낌, 생각, 지어감에 대해서 뜻이 생기는 얽맴이 끊어지고, 느낌, 생각, 지어감에 대해서 뜻이 생기는 얽맴이 끊어진 뒤에는 반연도 또한 끊어져 <의식>은 머무를 곳이 없어 다시는 더하고 나아가거나 넓어지고 커지거나 자라나는 일이 없다. 의식이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에 더하고 자라지 못하고, 더하고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활동하는 바가 없으며, 활동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머무르고, 머무르기 때문에 족한 줄을 알며, 족한 줄을 알기 때문에 해탈하고, 해탈했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연 취할 것이 없으며,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비구여, 나는 말하노니 의식은 동방, 남방, 서방, 북방, 사유(四維), 상하의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다만 욕심을 없애고 법을 보면 <열반>을 얻어 번뇌가 다하고 완전히 고요하고 맑고 시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나고 멸하고 즐겨 하지 않는 것과

또 세 가지의 따로따로 분별한 것으로서

탐착(貪着)을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

이것을 우다아나라 이름하느니라.'

 

65. 수경(受經) = 관찰경(觀察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항상 방편(方便)을 써서 선정(禪定)을 닦아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비구는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참다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참다이 관찰하는가. '이것은 물질이다. 이것은 물질의 모임이요, 이것은 물질의 멸함이다.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다. 이것은 그것들의 모임이요, 이것은 그것들의 멸함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모임이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 '이것은 느낌의 모임이요 느낌의 멸함이며 느낌의 맛이요 느낌의 근심이며 느낌을 떠남이다'라고 참다이 관찰하지 못하나니, 참다이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느낌을 즐겨 하고 집착하여 <잡음[取]>이 생긴다.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늙음, 앓음, 죽음과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임>을 쫓아 생기나니, 이것을 물질의 모임이라 하고, 이것을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멸함이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모든 괴롭고 즐거우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받으면, '이것은 느낌의 모임이요 느낌의 멸함이며 느낌의 맛이요 느낌의 근심이며 느낌의 떠남이다'라고 참다이 관찰하나니 참다이 관찰하기 때문에 느낌에 대한 즐거움과 집착이 멸한다. 집착이 멸하기 때문에 <잡음>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멸하며, <존재>가 멸하기 때문에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앓음, 죽음과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와 같이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다 멸하게 되나니 이것을 물질의 멸함이라 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는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한다. 비구가 선정에 머물러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 꾸준히 힘쓰고 방편을 쓰면 참다이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관찰(觀察)과 같이 분별(分別), 종종 분별(種種分別), 지(知), 광지(廣知), 종종지(種種知), 친근(親近), 친근 수습(親近修習), 입(入), 촉(觸), 증(證)의 십이경(十二經)도 또한 이와 같이 널리 설명하셨다.'

 

66. 생경(生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禪定)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참다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참다이 관찰하는가. '이것은 물질이다. 이것은 물질의 모임이요, 이것은 물질의 멸함이다.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다. 이것은 그것들의 모임이요, 이것은 그것들의 멸함이다'라고 참다이 관찰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인가. 비구들이여,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물질을 즐겨 하고 찬탄하며 애착하여 미래 세상에서 물질이 다시 난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이 널리 말할 수 있느니라. 그 물질이 생기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생기고 나면 물질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해탈하지 못하나니, 그는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의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이것을 물질의 모임이라 하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멸함이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관찰하고 참다이 안다. 참다이 알기 때문에 물질을 즐겨 하지 않고, 물질을 찬탄하지 않으며, 물질에 애착하지 않아서, 미래의 물질이 생기지 않는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이렇게 널리 말씀하셨다.

물질이 생기지 않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물질에서 해탈할 수 있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해탈할 수 있나니 그는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의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해탈하였다고 나는 말한다. 이것을 물질의 멸함이라 하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는 항상 방편으로써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 꾸준히 힘쓰고 방편을 쓰면 참다이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관찰>과 같이..... 내지 <증(證)>의 십이경(十二經)도 또한 널리 설명할 수 있다.'

 

67. 낙경(樂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비구들이여,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참다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참다이 관찰하는가. '이것은 물질이다. 이것은 물질의 모임이요, 이것은 물질의 멸함이다.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다. 이것은 그것들의 모임이요, 이것은 그것들의 멸함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알지 못한다. 참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물질을 즐겨 하고 물질을 찬탄하며, 그 물질을 즐겨 하고 찬탄하기 때문에 그것을 잡음 한다.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남[生]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늙고 죽음과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리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나니, 이것을 물질의 모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멸함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안다. 참다이 알기 때문에 물질을 즐겨 하지 않고 물질을 찬탄하지 않으며, 물질에 즐겨 하지 않고 물질을 찬탄하지 않으며, 물질을 즐겨 하지 않고 물질을 찬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과 즐거움이 멸한다. 사랑과 즐거움이 멸하기 때문에 잡음[取]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멸하며, 존재가 멸하기 때문에 남[生]이 멸하고, 남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앓음, 죽음과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하나니, 이리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어떻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과 그것들의 모임과 그것들의 멸함과 그것들의 맛과 그것들의 근심과 그것들을 떠남을 참다이 아는가. 그것들을 참다이 알기 때문에 그것들을 즐겨 하지 않고 그것들을 찬탄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즐겨 하지 않고 그것들을 찬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과 즐거움이 멸하고, 사랑과 즐거움이 멸하기 때문에 <잡음>이 멸하며, <잡음>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有]가 멸하고, 존재가 멸하기 때문에 남이 멸하며, 남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앓음, 죽음과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리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고, 모두 멸하게 되나니, 비구들이여, 이것을 물질의 멸함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는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관찰>과 같이..... 내지 <증(證)>의 십이경(十二經)도 또한 널리 설명하였다.'

 

68. 육입처경(六入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 참다이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어떻게 참다이 관찰하는가. '이것은 물질이요, 이것은 물질의 모임이며, 이것은 물질의 멸함이다.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요, 이것은 그것들의 모임이며, 이것은 그것들의 멸함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물질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인가.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식(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서로 합하여 <닿임[觸]>이 생기며,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이 생기고, 느낌을 인연하여 욕망이 생기며..... 이리하여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나니, 이것을 물질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과 냄새, 맛, 부딪침을 인연하는 것도 그러하여,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물질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서로 합하여 닿임이 생기며,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이 생기고, 느낌을 인연하여 애착이 생기며..... 이리하여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까지 생기게 되나니, 이것을 물질의 모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물질의 멸함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인가.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서로 합하여 <닿임>이 생긴다. 그러므로 <닿임>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나니..... 이리하여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까지 멸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과 냄새, 맛, 부딪침을 인연하는 것도 그러하며,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서로 화합하여 <닿임>이 생긴다. 그러므로 닿임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이리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까지 멸하게 되나니, 이것을 물질의 멸함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멸함이라 하느니라.

그리하여 비구는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히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관찰>과 같이..... 내지 <증>의 十二경도 또한 이와 같이 널리 설명하였다.'

 

'느낌[受]과 남[生]과 또 낙(樂)과

육입처(六入處)를 말하였다.

낱낱의 十二경도

선정 삼매경(禪定三昧經)이다.'

 

69. 기도경(其道經) = 당설경(當設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몸의 모임으로 나가는 길과 또 몸의 모임을 멸하는 길을 말하리라. 어떤 것이 몸의 모임으로 나가는 길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그것을 보면서도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알지 못한다. 참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을 즐겨 하고 물질을 찬탄하며 물질에 집착하고 물질에 머무른다. 물질을 즐겨 하고 물질을 찬탄하며 물질에 집착하고 물질에 머무르기 때문에 사랑하고 즐겨 하며 그것을 잡음 한다.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남[生]이 있으며, 남을 인연하여 늙음, 앓음, 죽음과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이 있나니, 이리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느니라.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널리 설명할 수 있나니 이것을 몸의 모임으로 나가는 길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몸의 모임으로 나가는 길은 곧 괴로움의 모임으로 나가는 길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몸의 모임을 멸하는 길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과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안다. 참다이 알기 때문에 물질을 즐겨 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다. 즐겨 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으며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그 물질에 대한 사랑과 즐거움이 멸한다. 사랑과 즐거움이 멸하면 곧 잡음[取]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면 곧 존재[有]가 멸하고, <존재>를 멸하면 곧 남[生]이 멸하고, 남이 멸하면 늙음, 앓음, 죽음과 걱정, 슬픔, 괴로움, 번민의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물질과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을 몸의 모임을 멸하는 길이라 하며, 몸의 모임을 멸하는 길은 곧 괴로움의 멸하는 길이니라. 그러므로 몸의 모임을 멸하는 길을 말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당설(當設)과 같이 존재[有]와 당지(當知)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하였다.'

 

70. 실각경(實覺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몸의 경계(境界)와 몸의 모임과 경계와 몸을 멸하는 경계를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몸의 경계인가. 이른바 다섯 가지 받는 <쌓임[陰]>이니,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받는 <쌓임>이니, 이것을 몸의 경계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몸의 모임의 분간인가. 이른바 사랑[愛]과 미래의 <존재>를 위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이 어울린 이것저것에 대한 애착이니, 이것을 몸의 모임의 경계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몸을 멸하는 경계인가. 곧 이 사랑과 미래의 <존재>를 위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이 어울린 이것저것에 대한 애착을 남김없이 끊고 다 토(吐)하고 욕심을 떠나 완전히 고요해지나니, 이것을 몸을 멸하는 경계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몸의 경계와 몸의 모임의 경계와 몸을 멸하는 경계를 말해야 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당설(當設)과 같이 존재[有]와 당지(當知)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하였다.'

 

71. 유신경(有身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몸과 몸의 모임과 몸의 멸함과 몸을 멸하는 길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몸인가. 이른바 다섯 가지 받는 <쌓임>이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받는 <쌓임>이니, 이것을 몸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몸의 모임인가. 미래의 <존재>를 위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이 어울린 이것저것에 대한 애착이니, 이것을 몸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몸의 몸의 멸함인가. 미래의 <존재>를 위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이 어울린 이것저것에 대한 애착을 남김없이 끊고 다 토하고 욕심을 떠나 멸한 것이니, 이것을 몸의 멸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몸을 멸하는 길인가.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니, 바른 소견,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업(業),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정(定)이다. 이것을 몸을 멸하는 길이라 하며, 이것이 곧 몸과 몸의 모임과 몸의 멸함과 몸을 멸하는 길을 마땅히 말해야 한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나머지는 이렇게 말한다. 곧 만일 차별하면 마땅히 몸을 알아야 하고 몸의 모임을 끊을 줄을 알아야 하며, 몸의 멸함을 증득할 줄 알아야 하고 몸을 끊는 질을 닦을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당설(當設)과 같이 존재[有]와 당지(當知)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하였다.'

 

"다시 차별하면 비구는 몸을 알고 몸의 모임을 끊고 몸의 멸함을 증득하고 몸을 끊을 길을 닦나니 이것을 비구의 <애욕의 결박과 모든 맺음을 끊는 법>이라 하며 그것을 곧 닦으면 괴로움의 경계에서 완전히 해탈하느니라.

다시 차별하면 비구들이여, 이것을 <진리의 끝을 완전히 보았고, 더러움을 완전히 떠났으며 범행(梵行)을 완전히 이룬 순수하고 깨끗한 상사(上士)>라 하느니라.

다시 차별하면 비구들이여, 이것을, <아라한(阿羅漢)이 모든 번뇌를 다하고, 할 일은 이미 마치고, 무거운 짐을 이미 버리어 자기의 이익을 얻고, 모든 맺음을 다해 바른 지혜로써 마음이 해탈한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차별하면 비구들이여, 이것을 관문(關門)을 부수고 해자[塹]를 건너고 경계를 뛰어넘고 모든 그물[防邏]을 벗어나서 거룩한 법의 당기를 세운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차별하면 어떻게 관문을 부수었는가. 다섯 가지 하분(下分)을 맺음을 끊은 것이다. 어떻게 해자를 건넜는가. 이른바 무명(無明)의 깊은 해자를 건넌 것이다. 어떻게 경계를 뛰어넘었는가. 이른바 비롯이 없는 생사(生死)를 완전히 뛰어넘은 것이다. 어떻게 모든 그물을 벗어났는가. 이른바 <존재[有]>에의 애욕이 다한 것이다. 어떻게 거룩한 법의 당기를 세웠는가. 이른바 아만(我慢)이 다한 것이다.

다시 차별하면 비구들이여, 이것을, 다섯 가지[枝]를 끊고 여섯 가지를 이루고 하나의 의지[依]와 네 가지를 보호하며, 모든 제(諦)를 버리고 모든 구(求)함을 떠나고 모든 깨달음을 깨끗하게 하며 몸의 지어감[行]이 쉬고 마음이 잘 해탈하고 슬기가 잘 해탈하여 순일(純一)하여 범행을 세운 위없는 선비라 하느니라."

 

'기도(其道)에 세 가지 있고

실각(實覺)도 또한 세 가지요

유신(有身)은 네 가지를 말하고

나한(羅漢)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72. 지법경(知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알 수 있는 법과 지혜와 지혜 있는 사람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알 수 있는 법인가. 이른바 다섯 가지 받는 쌓임이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받는 쌓임이니, 이것을 알 수 있는 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는가.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넘는 것이니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그는 곧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다른 세상의 죽음이 있지도 않고 다른 세상의 죽음이 없지도 않으며, 다른 세상의 죽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않고, 다른 세상의 죽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않지도 않나니, 넓게 말하면 한량이 없어서 모든 수(數)가 아주 멸하였다. 이것이 알 수 있는 법과 지혜와 지혜 있는 사람을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3. 중담경(重擔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무거운 짐과 짐을 가짐과 짐을 버림과 짐꾼에 대해서 말하리,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무거운 짐인가. 이른바 다섯 가지 받는 <쌓임>이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받는 <쌓임>이다. 어떤 것이 짐을 가짐인가. 미래의 존재를 위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이 어울린 이것저것에 애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짐을 버림인가. 만일 미래의 <존재>를 위한 사랑과 탐욕과 기쁨이 어울린 이것저것에 대한 애착이 있으면 그것을 아주 끊어 남김이 없이 멸해 다하고 다 토(吐)하고 욕심을 떠나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짐꾼인가. 이른바 사부(士夫)가 그들이니 그들은 어떠한 이름과 어떠한 남[生]과 어떠한 성을 가졌고, 어떻게 먹으며, 어떠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어떻게 오래 살고, 어떻게 오래 머무르며, 어떻게 수명의 제한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것을 무거운 짐과 짐을 가짐과 짐을 버림과 짐꾼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게송(偈頌)으로 말씀하시었다.

 

이미 무거운 짐 버리었거든

다시는 그것을 취하지 말라.

무거운 짐은 큰 괴로움이요

짐을 버림은 큰 즐거움이네.

 

마땅히 모든 애욕 끊어 버려라.

일체의 지어감[行]은 이내 끝나리.

<존재[有]>의 남은 경계를 환히 알면

다시는 굴러 <존재>로 돌아오지 않으리.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4. 왕예경(往詣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받는 <쌓임>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받는 <쌓임>이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알지 못한다. 참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을 즐겨 하고 찬탄하며 거기에 얽매어 머무르게 된다. 물질의 얽맴에 얽매이고 마음의 얽맴에 얽매이어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 끝간데를 알지 못하며, 거기서 떠날 줄을 알지 못하나니, 이것을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라 하느니라. 얽매이어서 나고, 얽매이어서 죽으며, 얽매이어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다가 거기서 또 얽매이어서 나고, 얽매이어서 죽나니, 이것을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라 하느니라. 악마의 마음대로 따라 악마의 그물에 들어가서 악마의 시킴을 따르고, 악마의 얽맴에 얽매이고 악마의 이끌음을 따르나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사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과 물질의 모임과 물질의 멸함과 물질의 맛과 물질의 근심과 물질을 떠남을 참다이 안다. 참다이 알기 때문에 물질을 탐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으며 거기에 얽매어 머무르지 않는다. 물질의 얽맴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의 얽맴에 얽매이지 않아서 그 근본을 알고, 그 나루터를 알아서 거기서 떠날 줄을 아나니, 이것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 하느니라. 얽맴을 따라 나지도 않고, 얽맴을 따라 죽지도 않으며, 얽맴을 따라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지 않는다. 악마의 마음대로 따르지 않고, 악마의 손에 들어가지도 않으며 악마의 시킴을 따르지 않고, 악마의 얽매이지 않아 악마의 얽맴을 벗어나며, 악마의 이끌음을 따르지 않나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사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5. 관경(觀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받는 <쌓임>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인가. 이른바 물질의 받는 <쌓임>들이니라. 비구들이여, 물질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그것을 멸하여 일으키지 않고 해탈하면 이것을 여래(如來), 응정등각(應正等覺)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그것을 멸하여 일으키지 않고 해탈하면 이것을 여래, 응정등각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또 물질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그것을 멸하면 이것을 <아라한>의 슬기의 해탈이라 하며,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그것을 멸하면 이것을 <아라한>의 슬기의 해탈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여래, 응정등각과 아라한의 슬기의 해탈과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께서는 법의 근본이시요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依止)이십니다.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그 뜻을 널리 설명해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듣고 마땅히 받들어 행할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여래, 응정등각은 일찍 법을 듣지 못하고도 능히 스스로 법을 깨달아 위없는 보리(菩提)를 통달하시어 미래 세상에서 성문(聲聞)들을 깨우치시어 설법하시나니, 이른바 네 가지 생각하는 곳[四念處], 네 가지 바른 정근[四正勤], 네 가지 여의[四如義足], 다섯 가지 뿌리[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七覺], 여덟 가지 길[八道]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 응정등각이라 하나니 그는 다른 이가 얻지 못한 것을 얻었고, 다른 이가 이롭게 하지 못한 것을 이롭게 하였으며, 도(道)를 알고 도를 분별하며, 도를 설명하고 도를 통달하였으며, 다시 능히 모든 <성문(聲聞)>들을 성취시키어 가르치고 훈계하시느니라. <아라한>은 이러한 여래의 말씀을 바르게 순종하고 그 좋은 법을 즐거워하나니 이것을 여래와 아라한의 차별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6. 욕탐경(欲貪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다섯 가지 받는 <쌓임>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의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받는 <쌓임>이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마땅히 물질을 관찰해보라. 물질을 관찰해 본 뒤에도 거기서 <나>와 <다른 나>와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을 보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물질은 <나>가 없다. <나>가 없으면 덧없는 것이요, 덧없으면 괴로운 것이며, 만일 괴로운 것이면 그 일체는 <나>가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니,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라.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다섯 가지 받는 <쌓임>에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서 전연 취(取)할 것이 없나니 취할 것이 없으면 곧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으면 스스로 <열반>을 깨닫느니라. 그래서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의 생명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7. 생경(生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마땅히 물질에 대한 탐욕을 끊어라. 탐욕을 끊고 나면 곧 물질이 끊어지고, 물질이 끊어진 뒤에는 끊은 줄을 알며, 끊은 줄을 알고 나면 곧 근본이 끊어지나니, 마치 타알라아[多羅] 나무의 줄기를 끊은 것과 같아서 미래에 다시 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한 탐욕을 끊으면..... 내지 미래 세상에 다시 나지 않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8. 생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물질이 일어나고 머무르고 나오면 곧 괴로움이 거기서 일어나고 병이 거기서 머무르며 늙음과 죽음이 거기서 나온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물질이 멸하고 쉬며 없어지면 괴로움은 거기서 멸하고 병은 거기서 쉬며 늙음과 죽음은 거기서 없어진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9. 생경 3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과거와 미래의 물질도 오히려 덧없거늘 하물며 현재의 물질이겠느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과거의 물질은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물질은 기뻐하지 않으며, 현재의 물질은 싫어해 떠나고 욕심은 멸하여 완전히 고요해지나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과거의 물질이 없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과거의 물질을 돌아보지 않는 것조차 없을 것이다. 과거의 물질이 있기 때문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과거의 물질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만일 미래의 물질이 없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미래의 물질을 기뻐하지 않는 것조차 없을 것이다. 미래의 물질이 있기 때문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미래의 물질을 기뻐하는 것이다. 만일 현재의 물질이 없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현재의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욕심이 다 멸하는 곳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물질이 있기 때문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현재의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욕심이 다 멸하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무상(無常)과 같고 고(苦), 공(空), 비아(非我)의 세 경(經)도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80. 법인경(法人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거룩한 법인(法印)과 소견의 청정(淸淨)함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만일 어떤 비구가 '나는 공삼매(空三昧)에서 아직 얻은 바가 없지마는 모양[相]의 없음과 가진 바 없음과 거만을 떠나는 지견(知見)을 일으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만일 <공(空)>에서 얻은 바가 없으면서 '나는 모양의 없음과 가진 바 없음과 거만을 떠나는 지견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그럴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나는 <공>을 얻어 능히 모양의 없음과 가진 바 없음과 거만을 떠나는 지견을 일으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은 말이다. 왜냐 하면, 만일 <공>을 얻은 뒤에 능히 모양의 없음과 가진 바 없음과 거만을 떠나는 지견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그럴 이치가 있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어떤 것을 거룩한 제자와 소견의 청정함이라 하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법의 근본이시요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依止)이십니다. 원하옵노니 말씀해 조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설법을 들은 뒤에는 그 말씀대로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비구가 비고 한가한 곳이나 나무 밑에 앉아 <물질은 덧없이 없어지고 그에 대한 욕심을 떠나야 할 법>이라 관찰하고, 이와 같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덧없이 없어지고 그것에 대한 욕심을 떠나야 할 법이라 관찰하고, 그 <쌓임>은 덧없이 없어지고 단단하지 않으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 관찰하면, 마음은 청정한 해탈을 즐겨 할 것이니 이것을 <공>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관찰하는 사람은 아직 거만을 떠나 지견이 청정해지지는 못하였지마는, 다시 바른 생각[思惟]의 <삼매(三昧)>가 있어서 물질의 모양이 끊어지고, 소리, 냄새, 맛, 부딪침, 법의 모양이 끊어지는 것을 관찰하나니, 이것을 <모양의 없음>이라 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사람은 아직 거만을 떠나 지견이 청정해지지는 못하였지마는 다시 바른 생각의 <삼매>가 있어서 탐하는 모양이 끊어지고 성내는 어리석은 모양이 끊어지는 것을 관찰하나니 이것을 <가진 바 없음>이라 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사람은 아직 거만을 떠나 지견이 청정해지지는 못하였지마는 다시 바른 생각의 <삼매>가 있어서 '<나>와 <내 것>은 무엇을 좇아 생기는가'고 관찰하고, 다시 바른 생각의 <삼매>가 있어서 '<나>와 <내 것>이 혹은 보고 혹은 들으며 혹은 냄새 맡고 혹은 맛보며 혹은 부딪치고 혹은 의식(意識)하는 데서 생긴다고 관찰하고, 다시 인(因)이나 혹은 연(緣)이 있어서 의식(意識)이 생긴다면 그 <의식>의 인연은 덧있는 것인가 덧없는 것인가'고 관찰할 것이다. 다시 인과 혹은 연이 있어서 <의식>이 생긴다면, 그 인과 그 연은 다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요, 다시 '그 인과 그 연이 다 덧없는 것이라면 거기서 생긴 <의식>이 어떻게 덧있겠는가. 덧없는 것은 곧 함[爲]이 있는 지어감이다. 인연을 따라 일어난 것은 곧 근심스러운 법이요, 멸하는 법이며 욕심을 떠나야 할 법이요 알음[知]을 끊어야 할 법이다'고 생각하나니, 이것을 거룩한 법인(法印)과 지견의 청정함이라 하며, 이것이 '비구들이여, 거룩한 법인과 지견의 청정함을 설명하리라'고 한 그것으로서 이렇게 널리 설명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1. 부란나경(富蘭那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이샤알리이[毘那利]의 잔나비 못곁에 있는 중각강당(重閣講堂)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리챠뷔[離車] 족(族) 마하알리[摩訶南]는 날마다 거닐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고자 하였다. 때에 그 리챠뷔는 '만일 내가 세존께서 계시는 곳에 일찍 가면 세존께서나 내가 아는 비구들은 다 선정(禪定)에 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일곱 개 암바라[菴羅] 나무가 있는 아지이봐카 외도(外道)가 있는 곳으로 가리라'고 생각하고 곧 푸라아나 카아샤파[富蘭那迦葉]가 있는 곳으로 갔다. 때에 푸라아나 카아샤파는 외도들의 우두머리로서 五백 외도에게 앞뒤로 둘러싸이어 높은 소리로 떠들면서 세속 일을 지껄이고 있었다. 때에 푸라아나 카아샤파는 멀리서 리챠뷔의 마하알리가 오는 것을 보고 그 권속들에게 분부하여 조용하게 하였다.

"너희들은 조용하라. 저이는 리챠뷔의 마하알리다. 저 이는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다. 저 이는 사문 고오타마의 속인의 제자로서 이 바이샤알리이에서 제일 우두머리가 된다. 그는 항상 고요한 것을 즐겨 하고 고요한 것을 찬탄한다. 그는 언제나 조용한 대중이 있는 곳으로만 간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조용히 하여야 한다."

때에 마하알리는 그 대중들 가운데 있는 푸라아나에게 가서 서로 인사하고 서로 위로한 뒤에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때에 마하알리는 푸라아나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푸라아나는 모든 제자들을 위해 설법하기를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이 중생들은 때[垢]가 있다. 중생들은 인도 없고 연도 없이 맑고 깨끗하다'고 한다고 들었다. 세상에는 이런 주장이 있는데, 너는 이런 주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너를 헐뜯는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만든 이 말은 옳은 법인가 그른 법인가. 혹은 세상 사람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와서 서로 힐난하고 꾸짖는 데 쓰지 않는가."

푸라아나 카아샤파는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런 주장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함부로 퍼뜨리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주장을 주장한다. 그것은 법다운 주장이다. 내가 이 법을 설명하면 세상 사람들은 다 거기에 따른다. 그래서 아무도 내게 와서 그것을 힐난하고 꾸짖는 사람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마하알리여, '중생들은 인도 없고 연도 없이 때가 있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은 맑고 깨끗하다'고 나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때에 마하알리는 푸라아나의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그를 꾸짖은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 숙여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아까 푸라아나와 서로 말로 다투던 일을 부처님께 모두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리챠뷔의 마하알리에게 말씀하시었다.

"그 푸라아나의 뜻밖의 말은 기억할 것도 못 되는 것이다. 푸라아나는 그처럼 어리석어 착하지 않은 것과 인(因)이 아니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은 때가 있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들은 맑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인도 있고 연도 있어서 중생들은 때가 있고, 인도 있고 연도 있어서 중생들은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니라. 마하알리여, 어떤 인이 있어서 중생들은 맑고 깨끗한가. 마하알리여, 만일 물질이 한결같이 괴로운 것으로서 그것은 즐거운 것도 아니요 즐거움을 따르는 것도 아니며, 즐거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즐거움을 떠나는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그것 때문에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하알리여, 물질은 한결같이 괴로워 즐겁지 않은 것이 아니요 즐거움을 따르고 즐거움을 자라게 하며 즐거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물질에 더러워져 집착하고, 더러워져 집착하기 때문에 그것에 얽매이기 때문에 번뇌가 있느니라.

마하알리여, 만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한결같이 괴로운 것으로서 그것은 즐거운 것도 아니요 즐거움을 따르는 것도 아니며, 즐거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즐거움을 떠나는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그것 때문에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하알리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한결같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요, 즐거움을 따르고 즐거움을 자라게 하며 즐거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그것들에게 더러워져 집착하고, 더러워져 집착하기 때문에 그것들에 얽매이며, 얽매이기 때문에 번민이 있느니라. 마하알리여, 이것이 이른바 인도 있고 연도 있어서 중생들은 때가 있다는 것이니라.

마하알리여, 어떤 인과 어떤 연이 있어서 중생들은 맑고 깨끗한가. 마하알리여, 만일 물질이 한결같이 즐거운 것으로서 그것은 괴로운 것도 아니요 괴로움을 따르는 것도 아니며, 걱정과 괴로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괴로움을 떠나는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그것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하알리여, 물질은 한결같이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을 따르고 걱정과 괴로움이 자라나며 괴로움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물질을 싫어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바라지 않으며,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느니라.

마하알리여, 만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한결같이 즐거운 것으로서 그것은 괴로운 것도 아니요 괴로움을 따르는 것도 아니며, 걱정과 괴로움이 자라는 것도 아니요 괴로움을 떠나는 것이라면, 중생들은 응당 그것들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하알리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한결같이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괴로운 것이요 괴로움을 따르는 것이며, 걱정과 괴로움이 자라는 것이요, 괴로움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그것들을 싫어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바라지 않으며,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느니라. 마하알리여, 이것이 이른바 '인고 있고 연도 있어서 중생들은 맑고 깨끗하다'는 것이니라."

때에 마하알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여럿과 함께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지법(知法)과 중담(重擔)과

왕예(往詣)와 관(觀)과 욕탐(欲貪)과

남[生]과 약설(略說)과

법인(法印)과 푸라아나[富蘭那]이니라.'

 

82. 죽원경(竹園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지제(支提)의 대나무 동산 절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어떤 곳에서 덧없음과 괴로움을 보는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依止)이십니다. 원하옵노니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말씀과 같이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에서 덧없음과 괴로움을 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덧없음과 괴로움을 보느니라. 비구들이여, 물질은 덧있는 것인가 덧없는 것인가."

"덧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덧없는 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로서 과연 거기서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혹은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다 <나>도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하여 물질을 싫어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싫어한다. 싫어하기 때문에 바라지 않고,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며, 해탈하기 때문에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때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3. 비사리경(毘舍離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이샤알리이의 잔나비 못곁에 있는 중각강당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어떤 곳에서 <나>도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보며, 이와 같이 평등하고 바르게 관찰하여 참다이 알고 보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요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이십니다. 원하옵노니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 말씀과 같이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은 <나>가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보나니, 이것을 참다운 바른 관찰이라 하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물질은 덧있는 것인가. 덧없는 것인가."

"덧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덧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로서 과연 거기서 '<나>와, <다른 나>와,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이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혹은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다 <나>도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니라. 이것을 참다운 바른 관찰이라 하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하여 물질에서 해탈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해탈하나니, '그는 생, 노, 병, 사와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의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해탈하였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4. 청정경(淸淨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물질은 덧없는 것이다. 덧없으면 괴로운 것이요 괴로우면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아나니, 이것을 바른 관찰이라 한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다섯 가지 받는 <쌓임>에서 그것은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면 모든 세간에서 전연 취할 것이 없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으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닫느니라.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니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5. 정관찰경(正觀察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어떤 곳에서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지 않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요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이십니다. 원하옵노니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과 같이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너희들은 물질에서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지 않는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물질은 덧있는 것인가. 덧없는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덧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덧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로서 과연 거기서 <나>와, <다른 나>,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이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혹은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다 <나>도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다섯 가지 받는 <쌓임>에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나니, 이렇게 관찰하면 모든 세간에서 전연 취할 것이 없고, 취할 것이 없으면 집착할 것이 없으며,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닫느니라.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6. 무상경(無常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덧없는 물질에 항상됨이 있다면 응당 그 물질에는 병이 있거나 괴로움이 있지 않을 것이요, 또한 그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덧없기 때문에 물질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며, 또한 이렇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없는 것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물질은 덧있는 것인가. 덧없는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덧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덧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로서 과연 거기서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혹은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다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아나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을 바르게 관찰하고, 바르게 관찰한 뒤에는 물질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욕심을 떠나고 바라지 않아 거기서 해탈하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욕심을 떠나고 바라지 않아 거기서 해탈하느니라.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7. 고경(苦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물질은 괴로운 것이다. 만일 물질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며 응당 물질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것이요, 또한 이렇게 되지 않았으며 하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니, 그것은 물질은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물질에서 병이 생기고,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던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물질은 덧있는 것인가. 덧없는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덧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덧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로서 과연 거기서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혹은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다 <나>도 아니요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관찰해서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에서 해탈을 얻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해탈을 얻나니, '그는 생, 노, 병, 사와 걱정, 슬픔, 번민, 괴로움의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해탈하였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제3권.hwp

 

잡아함경 제3권.h30
0.06MB
잡아함경 제3권.hwp
0.04MB

'초기경전 > 잡아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아함경 제5권  (0) 2012.06.17
잡아함경 제4권  (0) 2012.06.17
잡아함경 제2권  (0) 2012.06.17
잡아함경 제1권  (0) 2012.06.17
잡아함경 해제  (0) 201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