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雜阿含經) 12권
283. 종수경(種樹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맺음[結]이 잡아매는 법을 따라 맛들여 집착하며, 돌아보아 생각하여 마음이 묶이면 곧 <욕망[愛]>이 생긴다. 욕망을 인연하여 <잡음[取]>이 있고,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으며, 유를 인연하여 <남[生]>이 있고, 남을 인연하여 남[生],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나니,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마치 사람이 나무를 심을 때에 처음에는 작고 연약한 것을 사랑하고 보호하여 편안하게 하고, 살찐 흙으로서 채워 주고 때를 따라 물을 대며 차고 따스함을 맞추어 주면 이 인연으로서 그제야 그 나무는 자라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맺음이 잡아매는 법에 맞들이고 집착하여 자라게 하면 곧 은혜와 사랑이 생긴다. 욕망을 인연하여 잡음이 있고,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으며,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고, 남을 인연하여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고통이 있나니,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만일 잡음이 잡아매는 법에 대해서 덧없다는 관찰을 그대로 따르고 나고 멸한다는 관찰, 하고자 할 것이 없다는 관찰, 멸해야 할 것이라는 관찰, 버려야 할 것이라는 관찰에 머물러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아서 마음이 묶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곧 욕망이 멸하나니, 욕망이 멸하면 잡음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면, 존재가 멸하며, 존재가 멸하면 남이 멸하고, 남이 멸하면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마치 나무를 심을 때 처음에 작고 연약한 것을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아 편안치 못하게 하고 살찐 흙으로써 채워 주지 않으며 때를 따라 물대지 않고 차고 따스함을 맞춰 주지 않으면 그것은 자라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만일 다시 뿌리를 끊고 가지를 꺾어 동강동강 자르고 총총 썰어서 바람에 바래고 햇볕에 쪼이며 불로 태우고 불살라서 가루를 만들어, 혹은 빠른 바람에 날리고 혹은 흐르는 물에 던지면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나무 때문에 그 뿌리를 끊고..... 내지, 불살라 아주 없애 버리면, 미래 세상에 나지 않는 법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맺음을 잡아매는 법에 대해서 덧없다는 관찰을 그대로 따르고 나고 멸한다는 관찰, 하고자 할 것이 없다는 관찰, 멸해야 할 것이라는 관찰, 버려야 할 것이라는 관찰에 머물러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고 마음이 묶이어 집착하지 않으면 곧 욕망이 멸하나니, 욕망이 멸하면 잡음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면 존재가 멸하며 존재가 멸하면 남이 멸하고 남이 멸하면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4. 대수경(大樹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잡음 하는 법을 따라 맛들여 집착하며 돌아보고 생각하여 마음을 묶으면, 그 마음이 휘몰아 달리면서 정신과 물질[名色]을 쫓아다니느니라.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여섯 감관[六入處]이 있고, 여섯 감관을 인연하여 <닿임[觸]>이 있으며,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受]이 있고, 느낌을 인연하여 욕망이 있으며, 욕망을 인연하여 잡음이 있고,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으며,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고 남을 인연하여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비유하면 큰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잎, 꽃, 열매들은 뿌리를 내리기가 깊고 단단하고 살찐 흙으로 채워 주고 물을 대어 주어 그 나무가 굳고 튼튼하면 영원히 썩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잡음 하는 법을 따라 맛들여 집착하며 돌아보아 생각하여 마음이 묶이면 그 마음은 휘몰아 달리면서 정신과 물질을 쫓아다니나니,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여섯 감관이 있고, 여섯 감관을 인연하여 닿임이 있으며,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고, 느낌을 인연하여 욕망이 있고, 욕망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으며,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고, 남을 인연하여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만일 잡음 하는 법에 대하여 덧없다는 관찰을 그대로 따르고 나고 멸한다는 관찰, 하고자 할 것이 없다는 관찰, 멸해야 할 것이라는 관찰, 싫어해야 할 것이라는 관찰에 머물러, 마음이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고 매이어 집착하는 일이 없으면 <의식[識]>은 곧 휘몰아 다니지 않아 정신과 물질이 곧 멸하나니, 정신과 물질이 멸하면 여섯 감관이 멸하고, 여섯 감관이 멸하면 닿임이 멸하며, 닿임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욕망이 멸하고, 욕망이 멸하면 잡음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면 존재가 멸하며, 존재가 멸하면 남이 멸하고, 남이 멸하면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마치 나무를 심을 때에 때를 따라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아서 편안하게 하지 않고 차고 따스함을 맞춰 주지 않으면 그것이 자라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만일 다시 뿌리를 끊고 가지를 꺾어 동강동강 자르고 총총 썰어서 바람에 바래고 햇볕에 쪼이며 불로 태우고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혹은 빠른 바람에 날리고, 혹은 흐르는 물에 던지면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나무 때문에 그 뿌리를 끊고..... 내지, 불살라 아주 없애 버리면, 미래 세상에 나지 않는 법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잡음 하는 법을 따라 덧없다는 관찰을 그대로 따르고, 나고 멸한다는 관찰, 하고자 할 것이 없다는 관찰, 멸해야 할 것이라는 관찰, 버려야 할 것이라는 관찰에 머물러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고 마음이 매이어 집착하지 않으면 의식이 휘몰아 다니면서, 정신과 물질을 쫓아다니지 않으면 정신과 물질은 곧 멸하나니, 정신과 물질이 멸하면 여섯 감관이 멸하고, 여섯 감관이 멸하면 닿임이 멸하며, 닿임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며, 느낌이 멸하면 욕망이 멸하고, 욕망이 멸하면 잡음이 멸하며, 잡음이 멸하면 존재가 멸하고, 존재가 멸하면 남이 멸하고, 남이 멸하면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5. 불박경(佛縛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과거에 아직 정각(正覺)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를 기억하고 있는데,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선사(禪思)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세간에는 들어가기 어렵다. 이른바 혹은 나고 혹은 늙으며 혹은 병들고 혹은 죽으며 혹은 옮기고 혹은 남[生]을 받는다. 그런데 모든 중생들은 남, 늙음, 병, 죽음과 그것이 의지하는 바를 참다이 알지 못한다'고.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남[生]이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때문에 남이 있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를 일으켰다. 즉 '존재가 있기 때문에 남이 있고, 존재를 인연하기 때문에 남이 있다'고.
다시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때문에 존재가 있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를 일으켰다. 즉 '잡음(取)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있으며, 잡음을 인연하기 때문에 존재가 있다'고.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잡음은 또 어떤 인연과 인연하기 때문에 잡음이 있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를 일으켰다. 즉 '잡음은 법에 맛들이고 집착하며 돌아보고 생각하여 마음이 묶이면 애욕이 더하고 자라나나니, 그 욕망이 있기 때문에 잡음이 있고, 욕망을 인연하기 때문에 잡음이 있다.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으며,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으며, 남을 인연하여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인다'고.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비유하면 기름과 심지를 인연하여 등불을 켜지는 것과 같나니 자주자주 기름과 심지를 더하면 그 등불은 오래오래 가겠느냐."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모든 비구들이여, 물질을 취하고 맛들이고 집착하며 돌아보고 생각하면 욕망의 묶음은 더하고 자라난다. 욕망을 인연하기 때문에 잡음이 있고,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으며,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고, 남을 인연하여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때에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이 늙음, 병, 죽음이 없으며, 어떤 법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병, 죽음이 멸하겠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를 일으켰다. 즉 '남이 없으면 늙음, 병, 죽음이 없고, 남이 멸하면 늙음, 병, 죽음이 멸한다'고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남이 없으며, 어떤 법이 멸하기 때문에 남이 멸하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를 일으켰다. 즉 '존재가 없기 때문에 남이 없고, 존재가 멸하기 때문에 남이 멸한다'고. 다시 또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존재가 없으며, 어떤 법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없으며, 어떤 법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멸하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관찰이 생겼다. 즉 '잡음이 없기 때문에 존재가 없으며, 잡음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멸한다'고.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잡음이 없으며, 어떤 법이 멸하기 때문에 잡음이 멸하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관찰이 생겼다. 즉 '잡음 하는 바 법은 덧없어 나고 멸하는 것이다'고. 그러므로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하며 버리고 떠나 마음으로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아서 마음이 묶이지 않으면 욕망이 곧 멸한다. 그 욕망이 멸하기 때문에 잡음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멸하며, 존재가 멸하기 때문에 남이 멸하고, 남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비유하면 기름과 심지로 등불을 켜는 것과 같다. 만일 기름을 더하고 심지를 돋우지 않으면 그 등불은 앞으로 다 닳아 없어지지 않겠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잡음 하는 법에 대해서, 덧없어서 나고 멸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여,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하며 버리고 떠나서 마음이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고 마음이 묶이어 집착하지 않으면 욕망이 곧 멸하나니, 욕망이 멸하면 잡음이 멸하고.....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6. 취경(取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과거에 아직 정각(正覺)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를 기억한다.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선사(禪思)하면서..... 위와 같이 널리 말씀하시었다. 다른 것은, 비유하면 나무를 쌓되 十 다발, 二十 다발, 三十 다발, 四十 다발, 五十 다발, 백 다발, 천 다발을 쌓아 태워 큰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나니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마른풀이나 섶을 더하면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불은 계속하여 오랫동안 탈 수 있겠느냐."
비구들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잡음 하는 법에 대해서 맛들여 집착하며 돌아보아 생각하여 마음이 묶이고 집착함이 더하면, 그 욕망을 인연하여 잡음이 있고,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으며......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그 불 더미가 왕성하게 일어나더라도 나무나 풀을 더하지 않으면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그 불을 꺼지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모든 비구들이여, 취하는 바 법에 대해서 덧없어서 나고 멸한다고 관찰하고,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하며 버리고 떠나 마음이 돌아보거나 생각하며 묶이어 집착하지 않으면 욕망이 곧 멸하나니, 욕망이 멸하면 잡음이 멸하며......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7. 성읍경(城邑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과거에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를 기억한다.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선사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있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를 생겼다. 즉 '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있고, 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존재, 잡음, 욕망, 느낌, 닿임[觸], 여섯 감관, 정신과 물질에 있어서, 어떤 법이 있기 때문에 정신과 물질이 있으며, 어떤 법을 인연하기 대문에 정신과 물질이 있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가 생겼다. 즉 '의식이 있기 때문에 정신과 물질이 있으며, 의식을 인연하기 때문에 정신과 물질이 있다'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였을 때에 의식을 한정(限定)하여 그것을 능히 지날 수가 없었으니, 이른바 의식을 인연하여 정신과 물질이 있고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여섯 감관이 있으며, 여섯 감관을 인연하여 닿임이 있고,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으며, 느낌을 인연하여 욕망이 있고, 욕망을 인연하여 잡음이 있으며,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으며, 남을 인연하여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었다.
때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없으며, 어떤 법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멸하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가 생겼다. 즉 '남이 없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없고, 남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죽음이 멸한다'고..... 이와 같이 남, 존재, 잡음, 욕망, 느낌, 닿임, 여섯 감관, 정신과 물질, 의식, 지어감을 널리 말씀하시었다.
나는 다시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즉 '어떤 법이 없기 때문에 지어감이 없으며, 어떤 법이 멸하기 때문에 지어감이 멸하는가'고. 곧 바르게 생각하여 참다운 지혜가 생겼다. 즉 '무명(無明)이 없기 때문에 지어감이 없고,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지어감이 멸하며, 지어감이 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멸하고, 의식이 멸하기 때문에 정신과 물질이 멸하며, 정신과 물질이 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관이 멸하고, 여섯 감관이 멸하기 때문에 닿임이 멸하며, 닿임이 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기 때문에 욕망이 멸하고, 욕망이 멸하기 때문에 잡음이 멸하고, 잡음이 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멸하며, 존재가 멸하기 때문에 남이 멸하고, 남이 멸하기 때문에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한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한다'고.
때에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나는 옛 선인(仙人)의 길과 옛 선인의 지름길과 옛 선인의 길의 자취를 얻었다. 옛 선인은 이 자취를 쫓아갔다. 나도 이제 따라 가자'고.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광야에서 놀면서 거칠음을 헤치고 길을 찾다가 문득 옛 사람이 다니던 묵은 길을 만나면 그는 곧 따라 갔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 묵은 성읍(城邑)과 옛날의 왕궁, 동산, 목욕못, 수풀의 청정한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나는 마땅히 왕에게 가서 알게 하리라'고. 그는 곧 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알으소서. 나는 광야에서 놀면서 거칠음을 헤치고 길을 찾다가 문득 옛 사람이 다니던 묵은 길을 발견하고 저는 곧 따라 갔습니다. 저는 따라 가자 옛 성읍과 옛 왕궁, 동산, 목욕못, 수풀, 물이 청정한 것을 보았습니다. 대왕은 가서 거기서 살으소서.'왕은 곧 거기 가서 그 안에서 살매, 풍성하고 즐겁고 안온하여 인민들이 불꽃처럼 성하였던 것과 같나니, 이제 나도 그와 같이 옛 선인의 길, 옛 선인의 지름길, 옛 선인의 자취, 옛 선인의 가던 곳을 얻어서 나도 그것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른바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니, 즉 바른 소견,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정(定)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늙음, 병, 죽음과 늙음, 병, 죽음의 모임과 늙음, 병, 죽음의 멸함과 늙음, 병, 죽음의 멸하는 길의 자취를 보았고, 또 남, 존재, 잡음, 욕망, 닿임, 여섯 감관, 정신과 물질, 의식, 지어감과 지어감의 모임, 지어감의 멸함, 지어감의 멸하는 길의 자취를 보았다.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을 이루었고, 비구, 비구니, 우파아사카, 우파아시카와 및 다른 외도의 사문 바라문과 속인과 집난이들을 위해 설법하였더니, 그 여러 四중(衆)들은 법을 듣고 바로 향하며 믿고 즐겨 하면서 법의 좋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범행이 더하고 넓어져 요익(饒益)되는 바가 많게 열어 보이고 나타내어 드날렸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8. 노경(蘆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샤아리풋트라와 존자 마하아 코티카는 그리드라쿠우타산에 있었다.
그 때에 존자 샤아리풋트라는 해질녘에 선(禪)에서 깨어나 존자 마하아 코티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앉아, 존자 마하아 코티카에게 말하였다.
"물을 일이 있는데 혹 틈이 있으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존자 마하아 코티카는 존자 샤아리풋트라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우선 물으시오, 아는 대로 대답하리다."
존자 샤아리풋트라는 존자 마하아 코티카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존자 마하아 코티카여, 늙음이 있습니까."
존자 코티카는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존자 샤아리풋트라여."
"죽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늙음과 죽음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혹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며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존자 코티카는 대답하였다.
"존자 샤아리풋트라여, 늙음과 죽음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또한 자기나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마는 인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다면, 남, 존재, 잡음, 욕망, 느낌, 닿임, 여섯 감관, 정신과 물질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도 남도 아니요 인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존자 샤아리풋트라여, 정신과 물질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마는 인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의식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며, 인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존자 샤아리풋트라여, 그 의식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마는 인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의식은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존자 샤아리풋트라는 다시 물었다.
"존자 마하아 코티카여, 아까는 말하기를 '정신과 물질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요, 자기와 남이 지은 것도 아니지마는 인이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정신과 물질은 의식을 인연하여 생기는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다시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의식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치는 어떠합니까."
존자 마하아 코티카는 대답하였다.
"이제 비유를 말하리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말미암아 해득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비유하면 세 개 갈대가 빈땅에 서려고 할 때에는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되는 것과 같나니, 만일 그 하나를 버려도 둘은 서지 못하고 만일 둘을 버려도 하나는 도한 서지 못하여,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의식이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나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존자 샤아리풋트라는 말하였다.
"좋고 좋습니다! 존자 마하아 코티카여, 세존의 성문(聲聞) 가운데서 지혜가 밝고 통달하고 잘 다루어 두려움이 없으며 <단 이슬 법>을 보고 단 이슬 법을 두루 갖추어 몸으로 증득한 사람은 곧 존자 마하아 코티카입니다. 이에 이와 같은 매우 깊은 이치의 변론이 있어서 갖가지 어려운 물음을 다 능히 대답하시니 값할 수 없는 보배 구슬과 같아서 세상이 떠받드는 바입니다. 나도 이제 떠받드나니 존자 마하아 코티카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서 유쾌하게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다른 모든 범행자들도 자주 당신에게 나아 오면 그 또한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니 존자는 설법을 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이 존자 마하아 코티카의 말씀하신 법을 마련하여 마땅히 三十 三종으로써 찬탄하고 높이 일컫고 따라서 기뻐하겠습니다. 존자 마하아 코티카는 늙음과 죽음을 싫어하고 근심하며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할 것을 말씀하였으니 이것을 법사(法師)라고 합니다. <남>, <존재>, <잡음>, <욕망>, <느낌>, <닿임>, <여섯 감관>, <정신과 물질>, <의식>을 싫어하고 근심하며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할 것을 말씀하였으니 이것을 법사라고 합니다. 만일 비구로서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싫어하고 근심하며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하는 데로 향하면 이것을 법사라고 합니다...... 내지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근심하며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하는 데로 향하면 이것을 법사라고 합니다. 만일 비구로서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싫어하고 근심하며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하여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면 이것을 법사라고 합니다..... 내지 의식에 대해서 싫어하고 근심하며 욕심을 떠나고 멸해 다하여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면 이것을 법사라고 합니다."
존자 마?아 코티카는 존자 샤아리풋트라에게 말하였다.
"좋고 좋습니다! 세존의 성문 가운데서 지혜가 밝고 통달하고 잘 다루어 두려움이 없으며 <단 이슬 법>을 보고 단 이슬 법을 두루 갖추어 몸으로 증득한 사람은 곧 존자 샤아리풋트라입니다. 능히 그와 같이 갖가지 매우 깊은 바른 지혜의 물음을 물었습니다. 마치 세간의 값할 수 없는 보배 구슬을 사람들이 다 떠받드는 것과 같이, 당신도 이제 그와 같아서, 두루 일체 범행자들의 떠받들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는 바가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 유쾌하게 좋은 이익을 얻었고 존자와 더불어 묘한 이치를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때에 두 정사(正士)는 함께 기뻐하면서 제각기 머무르는 곳으로 돌아갔다.
289. 무문경(無聞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四대(大)로 된 몸에 대해서는 싫어하고 근심하며 욕심을 떠나고 등져 버리지마는 <의식[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四대로 된 몸에서는 더함이 있고 감함이 있으며 취(取)함이 있고 버림이 있음을 보지마는 마음과 뜻과 식에 대해서는,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능히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 하면, 그는 긴 밤 동안에 이것을 보호하고 아끼면서 <나>에 매달리어, 혹 얻거나 혹은 취하는 것이 있으면,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둘의 합한 것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능히 그것에 대해서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등져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차라리 四대로 된 몸에 대해서는 <나>와 <내 것>에 얽매일지언정 의식에 있어서는 <나>와 <내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四대로 도니 물질 몸은 혹은 十년에 머무르고 二十년 三十년 내지, 백 년 동안을 혹은 잘 활동하고 혹은 그보다 적은 것을 보지마는 마음의 의식은 밤, 낮과 때를 다투어 잠깐 동안에 변하고 옮기어, 다른 것으로 생기고 다른 것으로 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숲 속에서 놀 때에, 잠깐 동안에 여러 곳의 나뭇가지를 더위 잡아 하나를 놓자 곧 하나를 잡는 것과 같나니, 그 마음의 의식도 또한 그와 같아서 다른 것으로 생기자 다른 것으로 멸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모든 연기(緣起)에 대해서 잘 생각하고 관찰한다. 즐거움의 닿임[觸]을 인연하여 즐거움의 느낌[受]이 생기고, 즐거움의 느낌을 깨달을 때에는 즐거움의 느낌의 깨달음을 참다이 알아, 그 즐거움의 닿임이 멸하게 되나니, 즐거움의 닿임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도 또한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치느니라. 즐거움의 느낌과 같이, 괴로움의 닿임, 기쁨의 닿임, 근심의 닿임과 버림[捨]의 닿임을 인연하여 버림의 느낌이 생기고 버림의 느낌을 깨달을 때에는 버림의 느낌의 깨달음을 참다이 알아, 버림의 닿임이 멸하게 되나니, 그 버림의 닿임을 인연하여 생긴 버림의 느낌도 또한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치느니라.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즉 '이 느낌과 닿임은 닿임의 즐거움의 닿임의 얽맴을 낸다. 이러저러한 닿임의 즐거움 때문에 이러저러한 느낌의 즐거움이 있고, 이러저러한 닿임의 즐거움이 멸하면 이러저러한 느낌의 즐거움도 또한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친다'고.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 싫어함을 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 대해서 싫어함을 낸다. 싫어하기 때문에 바라지 않고,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고 또 해탈한 줄을 안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참다이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0. 무문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四대(大)로 된 물질 몸에 대해서는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등져 버리지마는 다만 의식[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四대로 된 물질 몸은 현재에 더함이 있고 감함이 있으며 취함이 있고 버림이 있다. 그러나 혹은 마음이나 뜻이나 의식에 대해서는 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그것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등져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긴 밤 동안을 보호하고 아끼면서 <나>에 얽매어 혹은 얻고 혹은 취하면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와 <남>의 합한 것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능히 그것에 대해서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등져 버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차라리 四대로 된 물질 몸에 대해서는 <나>와 <내 것>에 매일지언정 의식에 대해서는 <나>와 <내 것>에 매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四대로 된 물질 몸은 혹은 十년, 二十년, 三十년 내지, 백 년 동안을 혹은 잘 활동하고 혹은 그보다 적은 것을 보지마는, 마음과 뜻과 의식은 밤, 낮으로 때를 다투어 잠깐도 멈추지 않고 갖가지로 옮기고 변하여, 다른 것을 낳고 다른 것으로 멸한다. 마치 원숭이가 숲 속에서 놀 때에 잠깐 동안에 여러 곳의 나뭇가지를 더위 잡아 하나를 놓자 곧 하나를 잡는 것과 같나니, 그 마음과 뜻의 의식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갖가지로 변하고 바뀌어 다른 것으로 났다가 다른 것으로 멸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모든 연기(緣起)에 대해서 생각하고 관찰한다. 즉 '즐거움의 닿임을 인연하여 즐거움의 느낌이 생기고, 즐거움의 느낌을 깨달을 때에는 즐거움의 느낌의 깨달음을 참다이 알아, 즐거움을 인연하여 생긴 즐거움의 느낌도 또한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치느니라. 즐거움의 느낌과 같이, 괴로움의 닿임, 기쁨의 닿임, 근심의 닿임과 버림의 닿임을 인연하여 버림의 느낌을 깨달을 때에는 버림의 느낌의 깨달음을 참다이 알아, 그 버림의 닿임이 멸하게 되나니, 버림의 닿임을 인연하여 생긴 버림의 느낌도 또한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치느니라. 비유하면, 두 나무가 서로 비비고 화합하여 불을 내지마는 만일 두 나무가 각각 떨어지면 불도 도한 그 따라 멸하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이, 모든 느낌은 닿임의 모임을 인연하고, 닿임은 닿임의 모임을 내나니, 만일 이러저러한 닿임이 모이면 이러저러한 느낌도 또한 모이지마는, 이러저러한 닿임이 멸하면 이러저러한 느낌도 또한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관찰하면 물질에서 해탈하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서 해탈하고,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하나니, 그는 괴로움에서 해탈을 얻었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1. 촉경(觸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말한 <안의 닿임 법[內觸法]>을 너희들은 이해하는가."
때에 어떤 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안의 닿임 법은 저희들은 이미 이해하였나이다."
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 앞에서 이러이러하다고 스스로 설명하였지마는, 이러이러하다는 설명을 부처님께서는 반가워하지 않으시었다.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부처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쳐 드리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거룩한 법률에서 말하는 안의 닿임 법은 이 비구가 말한 것과는 다르니라."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오직 원하옵노니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거룩한 법률의 안의 닿임 법을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들으면 마땅히 받아 받들어 가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착하다! 자세히 들으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이 모든 비구들이 안의 닿임을 이해하려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즉 '만일 중생들에게 갖가지 많은 괴로움이 생기면, 이 괴로움은 무엇이 인(因)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生]이며 무엇의 닿임인가'고. 이와 같이 이해할 때에는 마땅히 알라. 이 괴로움은 우파디[優波提]가 인이요 우파디의 모임이며 우파디의 남이요 우파디의 변한 것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 안의 닿임 법이나 또는 우파디는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닿임인가. 그것을 이해할 때에는 다시 마땅히 알라. '우파디는 욕망[愛]이 인이며 욕망의 모임이며 욕망의 남이며 욕망의 닿임 법이라'고. 다시 비구들이여, 안의 닿임 법을 이해하려면 마땅히 다시 알라. 욕망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닿임인가'고. 이와 같이 이해할 때에는 마땅히 알라. 세간의 사랑하는 바 밝고 단정한 물질, 거기서 욕망은 생기고 또 생기며, 매이고 또 매이며, 머무르고 또 머무르느니라.
만일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세간에서 사랑하는 밝고 단정한 물질에 대해서 항상이라는 생각, 한결같다는 생각, 안온하다는 생각, 병이 없다는 생각, <나>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또 본다면 곧 그 물질에 대한 욕망은 더하고 자란다. 욕망이 더하고 자란 뒤에는 우파디가 더하고 자라며, 우파디가 더하고 자라난 뒤에는 괴로움이 더하고 자라며, 괴로움이 더하고 자라면 곧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비유하면 길 곁에 맑고 시원한 못물이 있어 향기와 맛이 모두 훌륭한데, 어떤 사람이 그 안에 독을 넣었다 하자. 따뜻한 봄날에 모든 길가는 사람들이 바람과 더위에 목이 몹시 말라 다투어 와서 마시려 할 때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부(士夫)들이여, 이 맑고 시원한 못물은 향기와 맛이 모두 훌륭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독이 있으니 너희들은 마시지 말라. 만일 마신다면 혹 너희들을 죽게 할는지도 모르며 혹은 죽는 것처럼 괴로워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목마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그것을 마셨다. 그들은 비록 아름다운 맛은 얻었지마는 잠깐동안에 혹은 죽거나 혹은 죽는 것처럼 괴로워하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이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세간에서 사랑할 만한 단정한 물질을 보고, 항상이라는 소견, 한결같다는 소견, 안온하다는 소견, 병이 없다는 소견,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을 가지고 보면..... 내지,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세간에서 사랑할 만한 단정한 물질에 대해서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살기와 같으며, 덧없고 괴로우며 비고 <나>가 아니다'고 관찰하면 그 욕망은 곧 떠난다. 욕망이 떠나기 때문에 우파디가 떠나고, 우파디가 떠나기 때문에 괴로움이 떠나며, 괴로움이 떠나기 때문에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떠나느니라.
비유하면, 길 곁에 맑고 시원한 못물이 있어 향기와 맛이 모두 훌륭한데, 어떤 사람이 그 속에 독을 넣었다 하자. 따뜻한 봄날에 모든 길가는 사람들이 바람과 더위에 목이 몹시 말라 다투어 와서 마시려 할 때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물은 독이 있다. 너희들은 마시지 말라. 만일 마시면 혹은 너희들을 죽게 할는지도 모르며 혹은 죽는 것처럼 괴로워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는 곧 생각하였다. 즉 '이 물은 독이 있다. 만일 마시면, 혹은 나를 죽게 할는지도 모르며 혹은 죽는 것처럼 괴로워할 것이다. 나는 우선 목마른 것을 참고 마른 기울 밥을 먹자'고. 그래서 그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이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세간에서 사랑할 만한 물질에 대해서,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살기와 같으며, 덧없고 괴로우며 비고 <나>가 다니다'고 관찰하면..... 내지,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아난다여, 이 법에 대해서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듣고 이와 같이 깨닫고 이와 같이 알라. 과거나 미래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은 길을 이와 같이 관찰하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2. 사량경(思量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떻게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하면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겠는가. 때에 중생들의 모든 괴로움이 갖가지로 차별되는 그 모든 괴로움은, 무엇이 인(因)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生]이며 무엇의 닿임인가를 생각해 헤아리면, 그것은 잡음의 인이며 <잡음>의 모임이며, 잡음의 남이며 잡음의 부딪침이라고 생각해 헤아린다. 만일 그 잡음이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모든 괴로움이 곧 멸하나니, 그것이 탄[乘]바 괴로움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고 향하여 법을 따라 수행하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이른바 잡음의 멸함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한다. 때에 그 잡음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부딪침인가를 생각해 헤아리면, 그 잡음은 욕망[愛]이 인이며 욕망의 모임이며 욕망의 남이며 욕망의 부딪침이라고 생각해 헤아린다. 그 욕망이 아주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잡음도 또한 따라서 멸하나니, 그것이 탄바 잡음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라. 그리로 향하여 법을 따라 닦아 익히면 이것이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데로 향하는 것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생각해 헤아린다. 곧 그 욕망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이 부딪침인가를 생각해 헤아리면 그 욕망은 느낌이 인이며, 느낌의 모임이며 느낌의 남이며 느낌의 부딪침이라고 안다. 그 느낌 아주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곧 욕망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고 향하여 법을 따라 닦아 익히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이른바 느낌의 멸함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한다. 때에 그 느낌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이 닿임인가를 생각해 헤아리면, 그 느낌은 닿임이 인이며, 닿임의 모임이며 닿임의 남이며 닿임의 부딪침이라고 안다. 그 닿임이 아주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곧 느낌도 멸하나니, 그것이 탄 바 닿임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로 향하여 법을 닦아 익히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르게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한다. 때에 그 닿임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이 닿임인가를 생각해 헤아리면, 마땅히 알라. 그 닿임은 여섯 감관이 인이며, 여섯 감관의 모임이며 여섯 감관의 남이며 여섯 감관의 닿임이니라. 그 여섯 감관이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곧 닿임도 멸하나니, 그것이 탄 바 여섯 감관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로 향하여 법을 닦아 익히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로 향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르게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한다. 때에 그 여섯 감관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이 부딪침인가를 생각해 헤아리면, 그 여섯 감관은 정신과 물질이 인이며, 정신과 물질의 모임이며 정신과 물질의 남이며 정신과 불질의 부딪침임을 안다. 정신과 물질이 아주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곧 여섯 감관도 멸하나니 그것이 탄 바 정신과 물질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로 향하여 법을 닦아 익히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이른바 정신과 물질의 멸함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한다. 때에 정신과 물질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부딪침인가고 생각해 헤아리면, 다시 그 정신과 물질은 의식[識]이 인이며, 의식의 모임이며 의식의 남이며 의식의 부딪침이라고 아나니, 그 의식의 욕심이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곧 정신과 물질도 멸한다. 그것이 탄 바 의식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로 향하여 법을 닦아 익히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이른바 의식의 멸함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한다. 때에 그 의식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의 부딪침인가고 생각해 헤아리면, 그 의식은 지어감이 인이며, 지어감의 모임이며 지어감의 남이며 지어감의 부딪침으로서, 모든 복되는 지어감을 지으면 좋은 의식이 생기고, 모든 복되지 않고 착하지 않은 지어감을 지으면 착하지 않은 의식이 생기며, 아무 것도 없는 지어감을 지으면 아무 것도 없는 의식이 생김을 안다. 이것을 그 의식은 지어감이 인이며, 지어감의 모임이며 지어감의 남이며 지어감의 부딪침이라 나타내나니 그 지어감의 욕심이 멸하여 남음이 없으면 곧 의식도 멸한다. 그것이 탄 바 지어감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로 향하여 법을 따라 닦아 익히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 이른바 지어감의 멸함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기를 생각해 헤아리고 관찰한다. 때에 그 지어감은 무엇이 인이며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이며 무엇이 부딪침인가고 생각해 헤아리면, 그 지어감은 무명[無明]이 인이며, 무명의 모임이며 무명의 남이며 무명의 부딪침으로서, 저 복되는 지어감도 무명의 인연이요, 복되지 않은 지어감도 무명의 인연이며, 복도 아니요 복되지도 않은 지어감도 무명의 인연임을 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저 지어감은 무명이 인이며 무명의 모임이며 무명의 남이며 무명의 부딪침이니 그 무명이 아주 멸해 남음이 없으면 곧 지어감도 멸한다. 그것의 탄 바 무명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아. 그리로 향하여 법을 따라 닦아 익히면 이것을 비구가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한다. 이른바 무명의 멸함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무명을 즐거워하지 않아서 <명(明)>이 생기면, 그리고도 다시 그 무명을 인연하여 복되는 지어감과 복이 아닌 지어감과 아무 것도 없는 지어감을 짓겠느냐."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무명을 즐거워하지 않아서 <명>을 내기 때문입니다. 무명이 멸하면 지어감이 멸하고, 지어감이 멸하면 의식이 멸하며.... 이와 같이 내지,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멸합니다.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그와 같이 말하였고 너희들도 또한 그것을 알았다. 즉 '이러저러한 법에서 이러저러한 법을 일으키고, 이러저러한 법이 생겼다가, 이러저러한 법을 멸하면 이러저러한 법이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친다'고. 만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무명에 대해서 욕심을 떠나 <명>이 생기어, 받아 날 몸의 지위를 깨닫게 되면 받아 날 몸의 지위를 깨달을 때에는 그것을 참다이 안다. 혹은 받아 날 목숨의 한계(限界)를 깨닫게 되면, 받아 날 목숨의 한계를 깨달을 때에는 그것을 참다이 안다. 그래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려고 할 때에는 이 모든 쌓임에 대한 일체의 깨닫는 바가 멸하여 남음이 없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역사(力士)가 갓 구운 오지 그릇을 가지고 뜨거움을 재면서 땅에 두면, 잠깐동안에 뜨거운 기운은 다 흩어지고 무너져 멸하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무명에서 욕심을 떠나 <밝음>이 생기어, 받아 날 몸의 지위를 깨닫게 되면, 받아 날 몸의 지위를 깨달을 때에는 그것을 참다이 알고, 받아 날 목숨의 한계를 깨닫고는 그것을 참다이 안다. 그래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일체의 받음에 대한 깨달음은 다 멸하여 남음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3. 심심경(甚深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미 의심을 끊었고 망설임에서 떠났으며 사특한 소견의 가시를 빼어, 다시는 물러나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거니 어느 곳에 <나>가 있겠느냐. 나는 저 비구들을 위하여 법을 말하리라. 저 비구들을 취하여, 현성(賢聖)은 세상에 나와, <공(空)>과 서로 응하는 연기(緣起)를 수순(隨順)하는 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니, 즉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지어감[行]이 있고, 지어감을 인연하여 의식[識]이 있으며, 의식을 인연하여 정신과 물질[名色]이 있고,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여섯 감관이 있으며, 여섯 감관을 인연하여 닿임[觸]이 있고,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受]이 있으며, 느낌을 인연하여 욕망[愛]이 있고 욕망을 인연하여 잡음[取]이 있으며,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고, 존재가 있기 때문에 남[生]이 있으며, 남을 인연하여 늙음,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며...... 내지, 이와 같이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한다'고.
이와 같이 설법하였건마는 그래도 저 비구들은 아직도 의혹과 망설임이 있어, 일찍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생각하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었다 생각하며,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법을 듣고서도 마음에 근심, 괴로움, 뉘우침, 한함, 흐리멍덩함, 빠짐, 막힘, 걸림이 생겼다. 무슨 까닭인가. 이 지극히 깊은 곳은 이른바 저 연기보다 몇 곱이나 더 깊어 보기 어렵기 때문이니 즉, 일체의 잡음에서 떠나 욕망이 다하고 욕심이 없어 <적멸(寂滅)>하고 <열반(涅槃)>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二 법이 있으니 이른바 <함이 있음[有無]>과 <함이 없음[無爲]>이다. <함이 있음>이란 혹은 나고 혹은 머무르며 혹은 달라지고 혹은 멸하는 것이다. <함이 없음>이란 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달라지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의 모든 지어감의 괴로움이 <적멸>하고 <열반>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인(因)이 모이기 때문에 괴로움이 모이고, 인이 멸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멸한다. 모든 오솔길을 끊고 서로 이어감을 멸하고, 서로 이어감의 멸함이 멸하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그 어떤 것이 멸하는가. 이른바 남음이 있는 괴로움이니, 그것이 만일 멸하고 그치어 맑고 시원하며 쉬고 마치면 이른바 일체의 잡음이 멸하여 욕망이 다하고 욕심이 없어, <적멸>하고 <열반>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4. 우치철혜경(愚癡 慧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욕의 인연에 매이어 이 의식[識]을 얻었다. 몸 안에는 이 의식이 있고 몸밖에는 정신과 물질[名色]이 있으니 이 두 가지 인연으로 닿임[觸]이 생기고, 이 여섯 감각 기관에 부딪쳐,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괴롭고 즐거운 느낌의 감각을 인하여 여러 가지를 일으킨다. 어떤 것을 여섯이라 하는가. 눈의 감관과 귀, 코, 혀, 몸, 뜻의 감관이니라.
혹은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무명에 덮이어 애욕의 인연에 매이어 이 의식을 얻었다. 몸에는 이와 같이 안에 의식이 있고, 몸밖에는 정신과 물질이 있으니, 이 두 가지 인연으로 닿임의 감관이 생기고, 여섯 닿임에 부딪치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괴롭고 즐거운 느낌의 감각을 인하여 여러 가지를 일으킨다. 어떤 것을 여섯이라 하는가. 눈의 감관과 귀, 코, 혀, 몸, 뜻의 감관이니라. 그러면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은, 저 내가 닦는 모든 범행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依]이십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나니 연설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듣고 마땅히 받아 행할 것입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모든 비구들이여, 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인연에 매이어 이 의식의 몸을 얻었건마는 그는 무명을 끊지 못하고 애욕의 인연을 다하지 못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다시 도로 몸을 받는다. 도로 몸을 받기 때문에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 어리석은 범부는 본래 범행을 닦음으로써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다시 도로 몸을 받고, 도로 몸을 받기 때문에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무명에 덮이고 애욕의 인연에 매이어 이 <의식>의 몸을 얻었지마는 그는 무명을 끊고 애욕의 인연이 다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 몸을 다시 받지 않기 때문에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는 일찍부터 범행을 닦아 바로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길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다시는 몸을 받지 않고, 몸을 다시 받지 않기 때문에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느니라. 이것을 범부와 지혜로운 사람의 저 내가 닦는 범행에 있어서의 갖가지 차별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5. 비여소유경(非汝所有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몸은 너의 소유(所有)도 아니요 또한 남의 소유도 아니니 이른바 여섯 감관으로서 본래부터 닦고 행한 원(願)이 이 몸을 받은 것이다. 어떤 것을 여섯이라 하는가. 눈의 감관과 귀, 코, 혀, 몸, 뜻의 감관이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모든 연기(緣起)에 있어서, 이 여섯 가지 식신(識身), 여섯 가지 촉신(觸身), 여섯 가지 수신(受身), 여섯 가지 상신(想身), 여섯 가지 사신(思身)의 있음을 잘 생각하고 관찰한다.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미래의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인다'고. 이것을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어서 세간이 모이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없기 때문에 여섯 식신이 없고, 여섯 촉신, 여섯 수신, 여섯 상신, 여섯 사신이 없다. 이른바 이것이 없기 때문에 미래의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없나니,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만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세간의 모임과 세간의 멸함을 참다이 바로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들어가면 이것을, '거룩한 제자의 이 착한 법을 불러 이 착한 법을 얻고 이 착한 법을 알고 이 착한 법에 들어가, 세간의 나고 멸함을 깨달아 알고 깨달아 보아 현성(賢聖)들의 생사(生死)를 뛰어남과 참되고 고요함을 성취하여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여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세간의 모이고 멸함을 참다이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들어가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6. 인연경(因緣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인연법(因緣法)과 연생법(緣生法)을 말하리라. 어떤 것을 인연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것이니, 이른바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지어감[行]이 있고, 지어감을 인연하여 의식이 있으며.... 내지, 이와 같이 이렇게 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연생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무명의 지어감은 혹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혹은 세상에 나오시지 않거나 이 법은 항상 머물러, 법의 머무름이요 법의 세계로서 저 여래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 다 옳은 깨달음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보이시고 나타내어 드날리신 것이니라.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내지, 남[生]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혹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혹은 세상에 나오시지 않으시거나 이 법은 항상 머물러, 법의 머무름이요 법의 세계로서 저 여래는 스스로 깨닫고 알아 등정각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시어, 열어 보이시고 나타내어 드날리시는 것이니, 이른바 '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다'는 것이니라.
이러한 모든 법은 법의 머무름, 법의 <공(空)>, 법의 <여(如)>, 법의 <이(爾)>이니라. 법은 <여(如)>를 떠나지 않고 법은 <여>와 다르지 않으며 분명하고 진실하여 뒤바뀌지 않아서 연기(緣起)를 그대로 따르나니 이것을 연생법이라 한다. 이른바 무명, 지어감, 의식, 정신과 물질, 감관, 닿임, 느낌, 욕망, 잡음, 존재, 남과 늙음, 병,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니 이것을 연생법이라 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인연법과 연생법을 바르게 알고 잘 보아 과거를 구(救)라여 '내 과거 세상은 있었던가 혹은 없었던가. 내 과거 세상은 어떤 종류였던가. 내 과거 세상은 어떠하였던가.'고 말하지 않고, 미래를 구하여, '내 미래 세상은 있을 것인가. 혹은 없을 것인가. 어떤 종류일까. 어떠할까.'고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며, '이것은 어떤 종류인가. 어떻게 이것이 잇는가. 장래를 위해 누가 마침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중생들은 어디서 왔는가. 여기서 사라지면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고 마음으로 망설이지도 않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범속(凡俗)한 소견을 일으키고 거기에 매이어 이른바 <나>라는 소견에 매임을 말하고 중생이라는 소견에 매임을 말하며 수명(壽命)이라는 소견에 매이어 꺼리고 싫어하며 길(吉)하고 경(慶)하다는 소견에 매임을 말하면, 그 때에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다 끊고 다 알아 그 근본을 끊기를 타알라[多羅] 나무 줄기를 끊는 것과 같이 미래 세상에 있어서 나지 않는 법으로 만드나니 이것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의 인연법과 연생법에 대하여 참다이 바르게 알아, 잘 보고 잘 깨닫고 잘 닦고 잘 들어가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7. 대공법경(大空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수[拘留 ]의 조우부락(調牛部落)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고, 좋은 뜻과 좋은 맛으로 순일하고 청정하며 범행이 맑고 깨끗하나니 이른바 <대공법경(大空法經)>이니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대공법경이라 하는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지어감을 인연하여 의식(識)이 있으며.,....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느니라.
남[生]을 인연하여 남[生]과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하면 혹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 누가 늙고 죽으며, 늙고 죽음은 누구에게 붙어 있는가.'고 하면 그는 곧 대답하리라. '내가 곧 늙고 죽으며 늙고 죽음은 지금 내게 붙어 있다. 늙고 죽음은 곧 나다. 말하는 바 명(命)은 이 몸이다'고. 혹은 '명은 다르고 몸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곧 한 뜻으로써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이다. 만일 '명은 곧 한 몸이다'고 말한다면 저 범행자는 있을 수 없을 것이요, 만일 다시 '명은 다르고 몸은 다르다'고 말한다면 범행자는 또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극단에 대해서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이 바르게 중도(中道)로 향하는 것이다.
현인(賢人)과 성인(聖人)은 세상에 나와 참다워서 뒤바뀌지 않고 바르게 보시나니 이른바 '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고 이와 같이, 남, 존재, 잡음, 욕망, 느낌, 닿임, 여섯 감관, 정신과 물질, 의식, 지어감은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다'고. 만일 누가 묻기를 '무엇이 곧 지어감이며 지어감은 무엇에게 붙어 있는가'고 하면 그는 곧 대답하리라. 지어감은 곧 나요 지어감은 곧 내 것이다'고. 그는 이와 같이 '명은 곧 이 몸이다'고. 혹은 '명은 다르고 몸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명은 곧 몸이다'고 본다면 범행자는 있을 수 없을 것이요, 혹은 '명은 다르고 몸은 다르다'고 말한다면 범행자는 또한 있을 수 없을 것이니 이 두 극단을 떠나면 바르게 중도로 향할 것이다. 현인과 성인은 세상에 나와 참다워서 뒤바뀌지 않고 바르게 보시나니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다고 하시느니라.
모든 비구들이여, 만일 무명에서 욕심을 떠나 명(明)이 생기면 그 누가 늙고 죽을 것이며 늙고 죽음은 누구에게 붙일 것인가. 늙고 죽음이 곧 끊어지면 그 근본을 끊을 줄을 알아 타알라 나무 줄거리를 끊는 것 같아서 미래 세상에 있어서 나지 않는 법으로 될 것이다. 만일 비구들이여, 무명에서 욕심을 떠나 <명>이 생기면 그 누가 날 것이며, 남[生]은 누구에게 붙일 것인가.... 내지, 누가 행할 것이며 지어감은 누구에게 붙일 것인가. 지어감이 곧 끊어지면 그 근본을 끊을 줄 알아 타알라 나무 줄거리를 끊은 것과 같아서, 미래 세상에 있어서 나지 않는 법으로 만들 것이다. 만일 비구들이여, 무명에서 욕심을 떠나 <명>이 생기어 그 무명이 멸하면 곧 지어감이 멸하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나니 이것을 <대공법경>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8. 법설의설경(法設義設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수의 조우 부락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지금 연기법(緣起法)의, 법의 말과 뜻의 말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연기법의 말인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지어감을 인연하여 의식(識)이 있으며.,....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인다. 이것을 연기법의 법의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뜻의 말인가.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을 무명이라 하는가.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며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고,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며 안팎을 알지 못하고, 업(業)을 알지 못하고 갚음을 알지 못하며 업과 갚음을 알지 못하고, 부처를 알지 못하고 법을 알지 못하며 중을 알지 못하고,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모임을 알지 못하며 멸함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며, 인(因)을 알지 못하고 인을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며, 착하고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익히고 익히지 않음과, 혹은 못하고 혹은 나음과 더럽고 깨끗함과 분별과 연기를 모두 알지 못하며, 여섯 감관을 참다이 깨달아 알지 못하며, 이러저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참다운 지혜가 없어 어리석고 컴컴하며,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우면 이것을 무명이라 하느니라.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다면 어떤 것을 지어감이라 하는가. 지어감에는 三종이 있으니 몸의 지어감, 입의 지어감, 뜻의 지어감이니라. 지어감을 인연하여 의식이 있다면 어떤 것을 의식이라 하는가. 이른바 여섯 식신(識身)이니 눈의 식신, 귀의 식신, 코의 식신, 혀의 식신, 몸의 식신, 뜻의 식신이니라. 의식을 인연하여 정신과 물질이 있다면 어떤 것을 정신이라 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형상 없는 쌓임이니, 즉 느낌의 쌓임,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니라. 어떤 것을 물질로서 이 물질과 안에서 말한 정신이니 이것을 정신과 물질이라 하느니라. 정신과 물질을 인연하여 여섯 감관이 있다면, 어떤 것을 여섯 감관이라 하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안의 감관이니 눈의 감관, 퀴, 코, 혀, 몸, 뜻의 감관이니라.
여섯 감관을 인연하여 닿임이 있다면 어떤 것을 닿임이라 하는가. 이른바 六 촉신(觸身)이니 눈의 촉신, 귀의 촉신, 코의 촉신, 혀의 촉신, 몸의 촉신, 뜻의 촉신이니라. 닿임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다면 어떤 것을 느낌이라 하는가. 이른바 三 수(受)이니 괴로움의 느낌, 즐거움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라. 느낌을 인연하여 욕망이 있다면 어떤 것을 욕망이라 하는가. 이른바 三 애(愛)이니 욕심의 욕망, 빛깔의 욕망, 빛깔이 없는 욕망이니라. 욕망을 인연하여 잡음이 있다면 어떤 것을 잡음이라 하는가. 四 취(取)이니 욕심의 잡음, 소견의 잡음, 계(戒)의 잡음, 나[我]의 잡음이니라. 잡음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다면 어떤 것을 존재라 하는가. 세 가지 존재이니 욕심의 존재, 빛깔의 존재, 빛깔이 없는 존재이니라.
존재를 인연하여 남이 있다면 어떤 것을 남이라 하는가. 만일 이러저러한 중생이 이러저러한 몸의 종류로 한 번 생기면 뛰어넘고 화합하고 태어나서 쌓임을 알고 계(界)를 얻고, 입처(入處)를 얻고 명근(命根)을 얻나니 이것을 남이라 하느니라. 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면 어떤 것을 늙음이라 하는가. 맘일 털이 희고 정수리는 드러나며, 가죽은 늘어지고 기관은 무르익으며, 사지는 약하고 등은 굽으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길은 짧고 숨을 헐덕이고 앞으로 쏠리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은 검누르고 저승꽃이 피며, 정신은 희미하고 행동하기도 어려워서 쇠약해 빠지면 이것을 늙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이러저러한 중생이 이러저러한 종류로 사라지고 옮기되,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며 더운 기운이 떠나고 목숨이 멸하여 쌓임을 버릴 때가 이르면 이것을 죽음이라 하나니, 이 죽음과 앞에서 말한 늙음을 늙음과 죽음이라 한다. 이것을 연기의 뜻의 말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99. 연기법경(緣起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수의 조우 부락에 계시었다. 때에 어떤 비구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은 세존께서 만든 것이옵니까.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거나 세상에 나오지 않거나 법계(法界)에 항상 머물러 있다. 저 여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닫고 다 옳게 깨달음을 이룬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해 연설하고 드러내어 보이시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며,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지어감이 멸하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00. 타경(他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수의 조우 부락에 계시었다. 때에 어떤 바라문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을 뵈옵고 서로 치하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고오타마시여, 스스로 짓고 스스로 깨닫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것을 <무기(無記)>라고 말한다. 스스로 짓고 스스로 깨닫는다는 것은 곧 <무기>이니라."
"어떻습니까. 고오타마시여, 그러면 남이 짓고 남이 깨닫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남이 짓고 남이 깨닫는다는 것도 곧 <무기>니라."
바라문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내가 '스스로 짓고 스스로 깨닫는가.'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시고, '남이 짓고 남이 깨닫는가.'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스스로 짓고 스스로 깨닫는다고 하면 곧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남이 짓고 남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단견(斷見)>에 떨어지는 것이다. 뜻의 말과 법의 말은 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에 처(處)하여 설법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며, 무명이 멸하면 지어감이 멸하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이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바라문은 그 말씀을 찬탄하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301. 가전연경(迦 延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알리[那梨] 부락 같은 숲 속의 대빈사(待賓舍)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산다카챠아나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이란 어떤 것이 바른 소견입니까. 세존이시여, 어떻게 바른 소견을 벌여 놓으시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산다카챠아나에게 말씀하시었다.
"세간에는 두 가지 의지[依]가 있으니 혹은 유(有)요 혹은 무(無)다. <잡음[取]> 때문에 부딪쳐지고, <잡음>에 부딪쳐지기 때문에 <잡음>이 없으면 마음이 경계에 매이더라도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게 하여, 내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두고 괴로움이 멸하면 멸하는 대로 두어, 그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나니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며 이것을 여래가 벌여 놓는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세간의 모임을 참다이 바르게 알고 보면, 혹은 세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요, 세간의 멸함을 참다이 알고 보면, 혹은 세간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며,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지어감이 멸하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다카챠아나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302. 아지라경(阿支羅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그리드라쿠우타 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시고 그리드라쿠우타산에서 나와 라아자그리하로 들어가 밥을 비시었다.
때에 아칠라 카아샤파(阿支羅加葉]는 여느 볼일이 있어 라아자그리하를 나와 그리드라쿠우타산으로 향하다가 멀리서 세존을 보았다. 세존을 보고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물을 일이 있사온데 혹 한가하시면 대답해 주시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카아샤파에게 말씀하시었다.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나는 지금 성(城)에 들어가 밥을 빌려 한다. 밥을 빌고 돌아오면 그 때에는 너를 위해 말하리라."
두 번째도 이와 같이 말씀하시었다. 그는 세 번째로 다시 물었다.
"고오타마시여, 어찌하여 나를 위해 말미를 두십니까. 고오타마시여, 무엇이 다를 것이 있나이까. 나는 지금 물을 일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해설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카아샤파에게 말씀하시었다.
"네 마음대로 물으라."
아칠라 카아샤파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고오타마시여, 괴로움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카아샤파에게 말씀하시었다.
"괴로움을 자기가 지었다고 하면 그것은 무기(無記)이니라."
"어떻습니까. 고오타마시여, 괴로움은 남이 지은 것입니까."
"괴로움을 남이 지은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이니라."
"괴로움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괴로움을 자기와 남이 지었다고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이니라."
카아샤파는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괴로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라면 인(因)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카아샤파에게 말씀하시었다.
"괴로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어서,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이니라."
카아샤파는 다시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이라고 하면, 고오타마시여, '괴로움은 자기가 지은 것인가'고 물어도 무기라고 대답하시고, '남이 지은 것인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인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며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인가.'고 물어도 무기라고 대답하시니 그러면 이제 이 괴로움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카아샤파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괴로움은 있는 것이다."
카아샤파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장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이 괴로움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저로 하여금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을 보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카아샤파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느낌이 곧 자기의 느낌이라면 괴로움은 자기가 짓는 것이라고 나는 마땅히 말하리라. 만일 남의 느낌이라면 남이 받는 자이므로 그것은 곧 남이 짓는 것이다. 만일 느낌이 자기의 느낌이요 남의 느낌으로서 다시 괴로움을 준다면 이러한 것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이니 나는 말하지 않는 것이요, 만일 자기와 남을 인하지 않고 인이 없이 괴로움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또한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극단을 떠나 그 중도를 말하여 여래는 설법하나니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지어감이 있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며, 무명이 멸하면 지어감이 멸하고....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아칠라 카아샤파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때에 아칠라 카아샤파는 법을 보아 법을 얻고, 법을 알아, 법에 들어가 모든 의심을 건너감을 의지하지 않고 알고, 남을 의지하지 않고 제도(濟度)되어, 바른 법률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나는 이제 제도되었나이다. 나는 오늘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중에 귀의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우파아사카가 되겠나이다. 나를 증명하여 알아 주소서."
아칠라 카아샤파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때에 아칠라 카아샤파는 세존께 하직하고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송아지를 보호하는 암소한테 떠받쳐 죽었는데 목숨을 마칠 때에는 모든 근(根)이 청정하고 얼굴빛은 밝고 깨끗하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성(城)에 들어가 밥을 빌고 계시었다. 많은 비구들도 도한 라아자그리하성에 들어가 밥을 빌다가 '아칠라 카아샤파는 세존에게서 법을 듣고 하직하고 돌아간 지 오래지 않아 소한테 떠받쳐 죽었는데 목숨을 마칠 때에는 모든 근이 청정하고 얼굴빛은 밝고 깨끗하였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모든 비구들은 밥 빌기를 마치고 성을 도로 나와 가사와 바리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에 나아갔다.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많은 비구들은 오늘 이른 아침에 성에 들어가 밥을 빌다가 '아칠라 카아샤파는 부처님에게서 법률을 듣고 하직하고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송아지를 보호하는 소한테 떠받쳐 죽었는데 목숨을 마칠 때에는 모든 근이 청정하고 얼굴빛은 밝고 깨끗하였다'고 들었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는 어떤 세계로 가서 어느 곳에 태어나며 무엇을 얻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그는 이미 법을 보고 법을 알고 법에 머물러 법을 받지 않고 이미 <반열반>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가서 그 몸을 공양하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아칠라 카아샤파를 위하여 제일의 기별(記別)을 주시었다.
303. 점모류경( 牟留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그리드라쿠우타 산 중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시고 라아자그리하로 들어가 밥을 비시었다. 길가에 팀바루카[ 牟留] 외도(外道)의 집 나간 이가 조그만 볼일이 있어 기쟈쿠우타 산에 와서 노닐고 있는 것을 보시었다. 그는 멀리서 세존을 보고 그 곳에 나아가 서로 반가워하고 위로하였다. 서로 반가워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물을 일이 있사온데 혹 한가하시면 해설하여 주시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팀바루카 외도의 집 나간 이에게 말씀하시었다.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성에 들어가 밥을 빈 뒤에 돌아와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두 번째 말씀도 또한 이와 같았다. 그는 세 번째로 다시 청하였다.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장차 내게 말미를 주려고 하십니다. 나는 묻고자 하는데 나를 위해 해설하려고 하시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는 팀바루카 외도의 집 나간 이에게 말씀하시었다.
"네 마음대로 물으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팀바루카 외도의 집 나간 이는 곧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팀바루카 외도의 집 나간 이에게 말씀하시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가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무기이니라."
"사문 고오타마시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남이 짓는 것입니까."
"괴로움과 즐거움은 남이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무기이니라."
"고오타마시여,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와 남이 짓는 것입니까."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와 남이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무기이니라."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요 인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
"괴로움과 즐거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요 인이 없이 지어진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무기이니라."
널리 말씀하신 것은 위의 점모류 경과 같고, 내지, 세존께서는 팀바루카 외도를 위하여 제일의 기별(記別)을 주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