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雜阿含經) 11권
273. 수성유경(手聲喩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실 때에 어떤 비구는 혼자서 고요히 생각하였다. '어떤 것을 <나>라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까. 어떤 것이 <나>인가. <나>는 어디서 머무르는가'고. 그는 선정에서 깨어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어떤 것을 <나>라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까. 어떤 법이 <나>인가. <나>는 어디 머무르는가'고 생각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 두 법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어떤 것이 둘인가. 눈과 빛깔이 둘이요,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부딪침, 뜻과 법이 둘이니, 이것을 두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혹 어떤 이는 말하리라. '사문 고오타마가 말하는 두 법은 둘이 아니다. 나는 이제 그것을 버리고 다시 두 법을 세우리라'고. 그러나 그는 다만 말이 없을 뿐이다. 자꾸 물으면 알지 못하고 그 의혹만 더할 뿐이니 그것은 대경(對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識]이 생긴다. 비구여, 그 눈이란 곧 살[肉] 형상이니, 그것은 안[內]이요, 그것은 인연이며, 그것은 단단한 것이요,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을 눈의 살 형상의 안의 지계(地界)라 한다. 비구여, 혹은 눈의 살 형상이, 혹은 안이요 혹은 인연으로 젖고 윤나는 것, 이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을 눈의 살 형상의 안의 수계(水界)라 한다. 비구여, 혹은 그 눈의 살 형상이, 혹은 안이요 혹은 인연으로 밝고 따뜻한 것, 이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을 눈의 살 형상의 안의 화계(火界)라 한다. 혹은 그 눈의 살 형상이, 혹은 안이요 혹은 인연으로 가벼이 나부끼면서 흔들리는 것, 이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을 눈의 살 형상의 안의 풍계(風界)라 하느니라.
비구여, 비유하면 두 손이 화합해 서로 마주쳐 소리를 내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니, 부딪침이 함께 하면 느낌, 생각, <사(思)>가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법은 <나>가 아니요, 항상이 아니니, 이것은 덧없는 <나>요, 항상이 아니요 안온이 아니며, 변하고 바뀌는 <나>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비구여, 그것은 이른바 나고 늙고 죽고 마치며 남[生]을 받는 법이기 때문이니라.
비구여, 모든 지어감[行]은 꼭두각시와 같고 불꽃과 같으며 잠깐 동안에 다 썩어져 진실로 오고 진실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여, <공(空)>인 모든 행에 대해서 마땅히 알고 마땅히 기뻐하고 마땅히 생각하라. <공>인 모든 행은 항상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는 법이 아니다. <공>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느니라.
비유하면, 눈이 밝은 사부(士夫)가 손에 밝은 등불을 잡고 빈방에 들어가서 그 빈방을 관찰하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비구여, 일체의 <공>인 행과 <공>인 마음을 관찰하여 기뻐하면 <공>인 법과 행은 항상 머물러 변하고 바뀌는 법이 아닐 것이니, <나>와 <내 것>이 <공>하였기 때문이다. 눈과 같이, 귀, 코, 혀, 몸, 뜻과 법이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니 부딪침이 함께 하면 느낌, 생각, <사>가 생긴다. 이 모든 법은 <나>가 없고 항상이 없으며...... 내지 <나>와 <내 것>이 <공>하였느니라.
비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눈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 되지 않은 것인가."
"항상 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 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과연 거기서 <나>와 <다른 나>와, 그 둘의 합한 것을 보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눈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싫어하기 때문에 바라지 않으며,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고 또 해탈한 줄을 안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나니,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합수성비경(合手聲譬經)>의 가르침을 듣고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함부로 놀지 않는데 머물렀다. ..... 내지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고 아라한이 되었다.
274. 기사경(棄捨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의 소유(所有)가 아닌 것은 다 버려야 한다. 그 법을 다 버린 뒤에는 긴 밤 동안에 안락하리라.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 제타숲[祗桓]에 있는 모든 초목의 가지와 잎사귀를 어떤 사람이 가지고 가면 너희들은 그것을 걱정하여 '이 모든 물건은 다 내 소유인데 저 사람은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가지고 가는가'고 말하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너희 모든 비구들도 또한 그와 같다. 너희들의 소유가 아닌 물건은 마땅히 다 버려야 한다. 그 법을 다 버린 뒤에는 긴 밤 동안에 안락하리라. 어떤 것을 너희들의 소유가 아니라고 하는가. 이른바 눈이니 눈은 너희들의 소유가 아니다. 마땅히 다 버려야 한다. 그 법을 다 버리고 나면 긴 밤동안에 안락하리라.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어떠냐 비구들이여, 눈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 되지 않은 것인가."
"항상 되지 않나이다."
"만일 항상 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과연 거기서 <나>와 <다른 나>와 그 둘의 합한 것을 보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여섯 감관에 대해서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한다. 관찰 한 뒤에는 모든 세간에 대해서 도무지 취(取)할 것이 없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75. 난타경(難陀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그 어떤 사람은 '힘센 사람은 오직 난다카[難陀] 뿐이다'고 말하리라. 이것은 바른 말이다. 그 어떤 사람은 말하리라. '가장 단정(端正)한 사람은 오직 난다카 뿐이다' '애욕(愛欲)이 무거운 사람은 오직 난다카 뿐이다'고. 이것은 바른 말이니라.
모든 비구들이여, 그 위에도 이제 난다카는 감관문[根門]을 굳게 닫고 음식에 양(量)을 알며, 초저녁에도 새벽에도 꾸준히 힘써 닦아 익히고 바른 지혜를 이루어 마쳐, 목숨이 다할 때까지 능히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원만하고 청정하여, 범행이 깨끗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난다카 비구는 감관문을 굳게 닫았기 때문에 혹 눈으로 빛깔을 보더라도 그 빛깔 모양을 취(取)하지 않고, 그 좋은 형상을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혹 모든 눈뿌리[眼根]가 율의(律儀)답지 않고, 무명(無明)의 어둠과 장애와 세간을 탐하고 사랑하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더하더라도 그 마음에서 새[漏]를 막고 보호하여 모든 율의를 내나니, 이것을 난다카 비구가 감관문을 굳게 닫은 것이라 하느니라.
음식에 양을 안다는 것은, 난다카 비구는 음식에 매달려 수량을 스스로 높이지 않고 함부로 먹지 않으며, 빛깔에 집착하지 않고 장엄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몸을 지탱할 뿐으로서 그 얻는 바에 맡겨 굶주리고 목마름을 그치게 할뿐이니, 범행을 닦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괴롭다는 느낌은 쉬고 멸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괴롭다는 느낌은 일어나지 않게 하며, 숭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하므로 기력(氣力)이 편하고 즐겁나니, 듣는 것이 없이 혼자 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레를 탈 때와 같이 번지리한 기름을 발라 스스로 뽐내거나.... 내지 장엄하지 않나니 다만 활동하기 위해서이요, 또 부스럼에 약을 바르는 것과 같나니 그 맛을 탐하지 않고 고통을 쉬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와 같이 착한 남자 난다카는 양을 알아서 먹고.... 내지 듣는 것이 없이 혼자 사나니, 이것을 난다카의 양을 알아먹는 것이라 하느니라.
저 착한 남자 난다카가 초저녁에도 새벽에도 꾸준히 힘써 업을 닦는다는 것은 저 난다카는 낮에는 거닐고 좌선(坐禪)하여 장애[陰障]를 덜어 버려 그 몸을 깨끗이 하고, 초저녁에도 거닐고 좌선하여 장애를 덜어 버려 그 몸을 깨끗이 하며, 밤중에는 방밖에서 발을 씻고 방안에 들어가 오른쪽으로 누워, 무릎을 굽히고 발을 포개고, 생각을 명상(明想)에 잡아매어 깨어 일어날 생각을 가진다. 새벽에는 천천히 깨고 천천히 일어나 거닐고 좌선하나니 이것을 '착한 남자 난다카의 초저녁에도 새벽에도 꾸준히 힘써 닦아 익히는 것'이라 하느니라.
저 착한 남자 난다카의 훌륭한 생각과 바른 지혜란 이 착한 남자 난다카는 동방을 관찰할 때에 한 마음과 바른 생각으로 편안히 머물러 관찰하나니, 남, 서, 북방을 관찰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이 한 마음과 바른 생각으로 머물러 관찰하느니라. 이렇게 관찰하면 세간의 탐욕과 사랑의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지 않는다. 저 착한 남자 난다카는 모든 느낌의 일어남을 깨닫고, 모든 느낌의 머무름을 깨닫고, 모든 느낌의 멸함을 깨달아 바른 생각으로 머물러 그것을 산란하지 않게 한다. 모든 <생각[想]>의 일어남을 깨닫고, 모든 생각의 머무름을 깨닫고, 모든 생각의 멸함을 깨닫고는 바른 생각으로 머물러 산란하지 않나니, 이것을 착한 남자 난다카의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성취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 착한 남자 난다카와 같이 감관문을 굳게 닫고, 착한 남자 난다카와 같이 음식에 양을 알며, 착한 남자 난다카와 같이 초저녁에도 새벽에도 꾸준히 힘써 업을 닦고, 착한 남자 난다카와 같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성취하라. 내가 난다카의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이 너희들도 또한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하여야 하느니라."
감관문을 잘 굳게 닫고
바른 생각으로 마음 잡아 머물며
음식에는 적당한 그 양을 알고
모든 마음 모양을 깨달아 아나니
저 착한 남자 난다카는
세존께서 못내 칭찬하시는 바이어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76. 난타설법경(難陀說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이러한 무리들의 큰 성문니(聲聞尼)들은 슈라아바스티이 왕의 동산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순타(純陀) 비구니, 민타(民陀) 비구니, 마라바(摩羅婆) 비구니, 파라차라(波羅遮邏) 비구니, 타라비가(陀羅毘迦) 비구니, 차마(差摩) 비구니, 난마(難摩) 비구니, 고난사구담미(告難舍瞿曇彌) 비구니, 우발라색(優鉢羅色) 비구니, 마하파사파제 비구니였으니 이들과 또 다른 비구니들은 왕의 동산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에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는 五백 비구니에게 앞뒤로 둘러싸이어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를 위해 설법하시어 가르쳐 보이시고 기쁘게 하시었다. 갖가지로 설법하시어 가르쳐 보이시고 기쁘게 하신 뒤에 그를 돌려보내려고 그에게 말씀하시었다.
"형편대로 하시오."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마하파사파제 비구니가 떠난 것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미 늙었다. 모든 비구니들을 위해 설법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다. 너희 모든 비구 중들이여, 오늘 여러 나이 많고 덕이 있는 상좌(上座)들은 여러 비구니들을 가르쳐야 한다."
때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차례로 비구니를 가르치게 되어 그 차례가 난다카에게 왔다. 그 때에 난다카는 응당 차례가 돌아왔으나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 때에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는 五백 비구니에게 앞뒤로 둘러싸이어 세존이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내지 법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마하파사파제 비구니가 떠난 것을 아시고 존자 아아난다에게 물으시었다.
"누구의 차례가 되어 여러 비구니들을 가르치게 되었느냐."
존자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상좌(上座)들이 차례로 비구니들을 가르치는데, 그 차례가 난다카에게 왔지마는 난다카는 가르치려고 하지 않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난다카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마땅히 여러 비구니들을 가르치고 여러 비구니들을 위해 설법하여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도 스스로 모든 비구니를 가르쳤으니 너도 또한 응당 그렇게 하여야 한다. 나도 모든 비구니를 위해 설법하였으니 너도 또한 그렇게 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난다카는 잠자코 분부를 받았다. 때에 난다카는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슈라아바스티이 성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다. 밥 먹기를 마치고 정사(精舍)로 돌아와 가사와 바리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에 방에 들어가 좌선(坐禪)하였다. 선정에서 깨어나 상가아리[僧伽梨]를 입고 한 비구를 데리고 왕의 동산으로 갔다. 모든 비구니들은 멀리서 존자 난다카가 오는 것을 보고 빨리 평사 자리를 펴고 자리에 앉기를 청하였다. 존자 난다카가 앉자 모든 비구니들은 머리를 조아려 경계하고 한 족에 물러나 앉았다. 존자 난다카는 모든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모든 누이들이여, 너희들은 내게 물으라.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너희들이 알거든 알았다고 말하고, 만일 알지 못하겠거든 알지 못한다고 말하여야 한다. 만일 내가 말하는 이치를 알았으면 마땅히 잘 받아 가져야 하고, 만일 알지 못하였거든 너희들은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모든 비구니들은 존자 난다카에게 사뢰었다.
"우리들은 오늘 존자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우리들에게 묻게 하면서 우리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즉 '너희들이 만일 알지 못하겠거든 이제 마땅히 다 물어야 한다. 이미 안 사람은 알았다고 말하고, 알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라. 내가 만일 말하는 이치를 이미 안 사람은 마땅히 받들어 가져야 하고 알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다시 물어야 한다'고. 우리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매우 기쁩니다. 아직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오늘 여쭈어야 하겠습니다."
그 때에 존자 난다카는 모든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어떤가. 누이들이여, 눈의 감각 기관[內入處]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나와 그 둘의 합한 것이다'고 관찰하는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귀, 코, 혀, 몸, 뜻의 감각 기관에 대해서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그 둘의 합한 것이다'고 관찰하는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존자 난다카여, 우리들은 이미 일찍이 법에 대해서 참다이 알고 보았습니다. 즉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관찰하고, 우리들은 이미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는 <나>가 없다'고 이렇게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모든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누이들이여, 마땅히 그와 같이 이해하여야 한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는 <나>가 없다고 관찰하여야 한다. 모든 비구니들이여, 빛깔의 <바깥 대경[外入處]>은 곧 <나>요 <다른 나>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소리, 냄새, 맛, 부딪침, 법의 바깥 대경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존자 난다카여, 우리들은 이미 이 여섯 가지 바깥 대경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여섯 가지 바깥 대경에는 참다이 <나>가 없다고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모든 비구니들을 찬탄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너희들은 이 이치에 대해서 마땅히 그와 같이 여섯 가지 바깥 대경에는 <나>가 없다고 관찰하여야 한다.
만일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면 눈의 <의식>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귀, 코, 혀, 몸, 뜻과 법이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면 그 뜻의 의식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이미 일찍 이 여섯 가지 의식[識身]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여섯 가지 의식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누이들이여, 너희들은 그 이치에 대해서 마땅히 그와 같이 여섯 가지 의식에는 <나>가 없다고 관찰하여야 한다.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부딪침[觸]>이 생긴다. 그 부딪침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귀, 코, 혀, 몸,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부딪침이 생긴다. 그 부딪침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이미 일찍 이 여섯 가지 부딪침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이와 같이 여섯 가지 부딪침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이해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모든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마땅히 여섯 가지 부딪침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여야 한다.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부딪침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요,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느낌이다. 그 부딪침을 인연한 느낌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귀, 코, 혀, 몸과,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요,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느낌이다. 부딪침을 인연한 느낌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일찍 이 여섯 가지 느낌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여섯 가지 느낌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이해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너희들은 이 이치에 대해서 마땅히 그와 같이 이 여섯 가지 느낌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여야 한다.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부딪침이 생기고,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생각[想]>이다. 그 생각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귀, 코, 혀, 몸과,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부딪침이 생기고,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생각이다. 그 생각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일찍 이 여섯 가지 생각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여섯 가지 생각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이해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 이치에 대해서 그와 같이 이 여섯 가지 생각 몸에는 참다이 <나>가 없다고 관찰하여야 한다.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요,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행[思]이다. 그 행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귀, 코, 혀, 몸과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요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행이다. 그 행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일찍 이 여섯 가지 행에 대해서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여섯 가지 행은 <나>가 없다고 참다이 이해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니들이여, 너희들은 이 이치에 대해서 마땅히 그와 같이 이 여섯 가지 행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여야 한다.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요,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욕망[愛]>이다. 그 욕망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귀, 코, 혀, 몸과,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긴다.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은 부딪침이요 부딪침을 인연한 것은 욕망이다. 그 욕망은 곧 <나>요, 나와 다르며, 그 둘의 합한 것인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일찍 이 여섯 가지 욕망[愛身]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여섯 가지 욕망에는 참다이 <나>가 없다고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 이치에 대해서 마땅히 그와 같이 이 여섯 가지 욕망에는 <나>가 없다고 참다이 관찰하여야 한다. 누이들이여, 비유하면 기름을 인하고 심지를 인하여 등불은 타게 된다. 그러나 그 기름은 덧없고 심지도 덧없으며, 불도 또한 덧없고 그릇도 또한 덧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기름도 없고 심지도 없으며, 불도 없고 그릇도 없더라도, 그것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등불 빛은 언제나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바른 말이라 하겠는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기름과 심지와 그릇을 인연하여 등불은 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름과 심지와 그릇은 덧없는 것입니다. 만일 기름도 없고 심지도 없으며 그릇도 없다면, 그것은 의지한 등불 빛도 또한 그 따라 멸하고 쉬고 마쳐서 청량(淸凉)하고 진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누이들이여,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은 덧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인연하여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은 항상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안온하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겠는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일찍 그러그러한 법을 인연하여 그러그러한 법이 생기고, 그러그러한 인연의 법이 멸하면 그러그러한 생긴 법도 또한 그 따라 멸하고 쉬고 마쳐서 청량하고 진실하게 된다고 참다이 관찰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이 이치에 대해서 마땅히 그와 같이 그러그러한 법을 인연하여 그러그러한 법이 생기고, 그러그러한 인연의 법이 멸하면 그러그러한 생긴 법도 또한 그 따라 멸하고 쉬고 마쳐서 적정(寂靜)하고 청량하고 진실하게 된다고 관찰하여야 한다. 모든 누이들이여, 비유하면 큰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잎사귀와 같나니, 뿌리도 또한 덧없고, 줄기, 가지, 잎사귀도 다 덧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잎사귀는 없고 오직 그 그림자만 있어서 항상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안온하다고 말한다면 바른 말이라 하겠는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만일 그 큰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잎사귀와 같이, 그 뿌리도 또한 덧없고 줄기, 가지, 잎사귀도 또한 덧없으며, 뿌리도 없고 줄기도 없으며, 가지도 없고 잎사귀도 없으면, 그것을 의지한 나무 그림자는 다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누이들이여, 만일 바깥의 여섯 가지 대경의 덧없음을 인연하고, 만일 바깥의 여섯 가지 대경의 인연으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은 항상 머물러,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안온하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겠는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일찍 그 이치에 대해서, 그러그러한 법을 인연하여 그러그러한 법이 생기고, 그러그러한 법의 인연이 멸하면 그러그러한 생긴 법도 또한 그 따라 멸하고 쉬고 마쳐서, 적정하고 청량하고 진실하게 된다고 관찰하였습니다."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이 이치에 대해서 마땅히 그러그러한 법을 인연하여 그러그러한 법이 생기고, 그러그러한 법의 인연이 멸하면 그러그러한 생긴 법도 또한 그 따라 멸하고 쉬고 마쳐서, 적멸(寂滅)하고 청량하고 진실하게 된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모든 누이들이여, 내가 비유를 말하는 것을 들으라. 대개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인하여 이해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익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손에 날카로운 칼을 잡고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길 때에, 그 빈틈을 타서 벗겨서 속살도 다치지 않고 바깥 껍질도 다치지 않고 뼈마디와 근육을 다 헤친 뒤에, 그 가죽을 도로 그 위에 씌운 것과 같나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소는 가죽과 살이 완전하여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바른 말이라 하겠는가."
"아닙니다. 존자 난다카여. 무슨 까닭인가. 그 익숙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는 손에 날카로운 칼을 잡고 틈을 타서 벗겨서, 가죽과 살을 다치지 않고 뼈마디와 근육을 다 끊어, 그 가죽을 도로 그 위에 씌웠을 뿐이요, 가죽과 살은 이미 떨어졌고 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이들이여, 내가 비유를 말하였는 바, 이제 그 뜻을 설명하리라. 소란 사람 몸의 추한 물질에 비유한 것이니 <협독사경( 毒蛇經)>에서 널리 설명한 것과 같다. 살이란 안의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말한 것이요, 바깥 껍질이란 바깥의 여섯 가지 대경을 말한 것이다. 소를 잡는 다는 것은 배워서 본 자취를 말한 것이요, 가죽과 살 사이의 근육이란 탐욕과 기쁨의 어울린 것을 말한 것이다. 날카로운 칼이란 날카로운 지혜를 말한 것이니,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지혜의 날카로운 칼로써 일체의 맺음, 묶음, 부림, 번뇌, 상번뇌(上煩惱), 동임을 끊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누이들이여,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즉 '즐겨 할 만한 법에 대해서 마땅히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탐욕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요, 성낼 만한 법에 대해서 마땅히 성내지 않아야 할 것이니 성냄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이며, 어리석을 만한 법에 대해서 마땅히 어리석지 않아야 할 것이니 어리석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이다.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는 나고 멸함을 관찰하여야 하고, 여섯 가지 감관과 대경에 대해서는 모이고 멸함을 관찰하여야 하며, 네 가지 생각하는 곳에 대해서는 잘 마음을 잡아매어야 하느니라.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에 머무르고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닦은 뒤에는 그 욕심의 번뇌에 대해서 마음이 인연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해탈하게 될 것이요, 그 존재의 번뇌에 대해서 마음이 인연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해탈하게 될 것이요, 그 무명(無明)의 번뇌에 대해서 마음이 인연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해탈하게 될 것이다'고. 모든 누이들이여,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그 때에 존자 난다카는 여러 비구니들을 위해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때에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는 五백 비구니 권속들에게 둘러싸이어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서서..... 내지,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마하파사파제 비구니가 떠난 것을 알으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유하면 달 밝은 보름날 밤에는 아무도 그 달이 차고 차지 않은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달은 완전히 원만한 것과 같나니 그와 같이 착한 남자 난다카는 모든 비구니들을 위해서 설법하여, 그와 같이 바르게 가르쳐 완전히 해탈하게 하였다. 만일 그들이 목숨이 끝날 때에는 그 나아가는 길을 말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것이 곧 괴로움의 끝이니라."
이것을 세존께서 五백 비구니들을 위하여 첫 번째의 과보(果報)의 기별(記別)을 주신 것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77. 율의불률의경(律儀不律儀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율의(律儀) 아닌 것과 율의(律儀)가 있으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율의 아닌 것인가. 눈 뿌리[眼根]가 율의 아닌 것에 껴 잡히어 눈의 의식이 그 색깔에 집착하는 것이다. 색깔을 인연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의 느낌을 내고, 괴로움의 느낌 때문에 그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며, 그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참다운 지견(知見)을 얻지 못하고, 참다운 지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의혹을 떠나지 못하며, 의혹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말미암아 잘못을 저질러 언제나 괴로움에 머무르게 된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을 율의 아닌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율의인가. 눈 뿌리가 율의에 소속되어 눈이 색깔을 분별하여도 마음은 거기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으면 항상 즐거움의 느낌에 머무르고, 마음이 즐거움에 머무르면 언제나 그 마음이 하나가 되며, 그 마음이 하나가 되면 참다이 알고 보고, 참다이 알고 보면 모든 의혹을 떠나며, 모든 의혹을 떠나면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항상 안락하게 머무른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을 율의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78. 퇴불퇴경(退不退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물러나게 하는 법과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이 있으니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니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물러나게 하는 법인가. 눈이 색깔을 분별하여 욕심을 내면 그 비구는 기뻐하고 찬탄하면서 잡음[取]하고 매이어 집착하여 그 법을 따라 굴러 돌아다닌다.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이 말한 모든 착한 법에서 물러나나니, 이것을 물러나게 하는 법이라 한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어떤 것을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이라 하는가. 눈의 의식과 물질의 인연으로 욕심의 번뇌를 내지 않으면 그 비구는 기뻐하지도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잡아 취하고 매이어 집착하지도 않으면, 그는 그 법을 따라 굴러 돌아다니지 않는다.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모든 착한 법에서 물러나지 않나니 세존은 이것을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이라 한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 길든 기관[勝入處]인가. 눈의 의식과 색깔의 인연으로 욕망의 맺음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으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그 감관을 이긴 것이니 그 감관을 이기면 나는 그것을 칭찬한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만일 그 비구가 여섯 가지 감관을 이기면 탐욕의 맺음이 끊어지고 성냄과 어리석음의 맺음이 끊어진다. 비유하면 왕이 적을 무찌르고 원수를 이기면 그를 승왕(勝王)이라 하는 것과 같이, 모든 맺음을 끊어 없애면 그를 승바라문(勝婆羅門)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79. 조복경(調伏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여섯 감각을 항복 받지 않고 굳게 닫지 않으며, 지켜 보호하지 않고 잡아 가지지 않으며, 닦아 익히지 않으면, 미래 세상에서 반드시 괴로움의 갚음을 받을 것이다. 어떤 것을 여섯 감관이라 하는가. 눈 뿌리[眼根]를 항복 받지 않고 굳게 닫지 않으며, 지켜 보호하지 않고 닦아 익히지 않으면 미래 세상에서 반드시 괴로움의 갚음을 받을 것이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눈 뿌리로 색깔을 보면, 그 모양을 잡아 받고 그 좋은 현상을 잡아 받으며, 그 눈 뿌리의 가는 대로 맡겨서, 율의(律儀) 아닌 것을 잡아 받아 세상의 탐욕과 사랑의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머물러 그 마음을 새[漏]게 한다. 그들은 그로서 율의를 잡아 가지지 못해 눈 뿌리를 막아 보호하지 못하나니,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이와 같이 여섯 감관을 항복 받지 않고 굳게 닫지 않으며, 지켜 보호하지 못하고 잡아 가지지 않으며, 닦아 익히지 않으면 미래 세상에서 반드시 괴로움의 갚음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여섯 가지 감관을 잘 항복 받고 잘 굳게 닫으며, 잘 지켜 보호하고 잡아 가지며, 잘 닦아 익히면 미래 세상에서 반드시 즐거움의 갚음을 받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눈으로 색깔을 보아도 빛깔 모양을 취하지 않고 좋은 형상을 취하지 않으며, 눈 뿌리의 가는 대로 맡기되 언제나 율의에 머물러, 세간의 탐욕과 사랑의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지 않는다. 그래서 능히 율의를 내고 눈 뿌리를 잘 보호하나니,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이와 같이 잘 여섯 감관을 항복 받고 잘 굳게 닫으며, 잘 지켜 보호하고 잘 잡아 가지며, 잘 닦아 익히면 미래 세상에서 반드시 즐거움의 갚음을 받을 것이다."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에서
율의 아닌 것에 머무르면
이들 모든 비구는
긴 밤 동안에 큰 고통받으리.
이 모든 율의에서
언제나 부지런히 닦아 익히고
바른 믿음으로 마음이 한 되어
모든 누(漏)가 마음에서 새어 나지 않게 하라.
눈으로써 저 빛깔을 보면
마음에 맞고 맞지 않는 것 있네.
마음에 맞아도 욕심을 내지 말고
마음에 안 맞는다고 미워하지도 말라.
귀로써 저 모든 소리 들으면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을 것 있네.
생각할 만한 것도 즐겨 해 집착 말고
생각할 것 못된다 미워하지도 말라.
코로써 저 냄새 맡아 보는 것
혹은 향기롭거나 더럽네.
향기로움과 더러움에 마음을 고로 하여
욕심 내지 말고 언짢아도 하지 말라.
먹는 바 여러 가지 음식에서도
또한 맛난 것 있고 나쁜 것 있네.
아름다운 맛에도 탐욕을 내지 말고
나쁜 맛이라 또한 가리지 말라.
즐거운 감촉이 몸에 부딪치어도
거기에 빠져서 헤매지 말고
괴로운 감촉이 부딪치어도
너무 밉다 생각을 내지도 말라.
평등하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어
멸하지 않는 것을 멸하게 하라.
내 마음으로서 관찰하는 바
이것이나 저것의 온갖 모양을
참답지 않게 거짓으로 분별하면
욕탐은 갈수록 더욱 더하리.
저 모든 나쁜 것 깨달아 알고
욕심을 멀리 떠나 편히 머물라.
이 여섯 감관을 잘 거두어 잡아
六경(境)이 부딪쳐도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악마의 원수 무찔러 항복 받고
나고 죽는 저 언덕에 건너가리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0. 빈두성경(頻頭城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코오살라국에 계시면서 세상에 노닐으시다가 빈데야[頻頭]성 북쪽에 있는 심사파아 동산에 오시었다. 그 때에 빈데야성중에 있는 바라문 장자들은 모두 함께 성을 나와 심사파아 동산으로 가서 세존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빈데야성의 바라문 장자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들에게
'어떤 종류의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지 않아야 될까.'고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눈으로 색깔을 보아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욕심을 떠나지 못하며, 사랑을 떠나지 못하고 애탐을 떠나지 못하며, 생각을 떠나지 못하여 안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행하는 바가 법답지 못하며, 성글고 까다로운 행을 행하고,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면, 이러한 종류의 비구는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고 대답하라. 이렇게 말하고 나면 그는 다시
'무슨 까닭으로 그런 종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지 않아야 하는가.'고 물을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우리는 눈으로 색깔을 보면 욕심을 떠나지 못하고 사랑을 떠나지 못하며, 애탐을 떠나지 못하고 생각을 떠나지 못하여 안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귀, 코, 혀, 몸, 뜻,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그 사문이나 바라문도 눈으로 색깔을 보아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욕심을 떠나지 못하며, 사랑을 떠나지 못하고 애탐을 떠나지 못하며, 생각을 떠나지 못하여 안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법답지 않은 행과 성글고 까다로운 행을 행하며, 귀, 코, 혀, 몸, 뜻,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서 그 차별을 찾아보아도 차별되는 행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고 대답하라. 만일 그는 다시
'어떤 종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여야 하는가.'고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만일 그가 눈으로 색깔을 보아도 탐욕을 떠나고 욕심을 떠나며, 사랑을 떠나고 애탐을 떠나며, 생각을 떠나서 안 마음이 고요하고 법답지 않은 행을 행하지 않으며, 평등한 행을 행하고 성글고 까다로운 행을 행하지 않으며, 귀, 코, 혀, 몸, 뜻,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면, 그러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여야 할 것이다'고 대답하라. 만일 그가 다시
'무슨 까닭으로 그러한 종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여야 하는가.'고 묻거든 너희들은
'우리는 눈으로 색깔을 보면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욕심을 떠나지 못하며, 사랑을 떠나지 못하고 애탐을 떠나지 못하며, 생각을 떠나지 못하여 안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법답지 않은 행을 행하며, 성글고 까다로운 행을 행하고 귀, 코, 혀, 몸, 뜻,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그런데 그러한 종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탐욕을 떠나고 욕심을 떠나며, 애탐을 떠나고 생각을 떠나서, 안 마음이 고요하고 법다운 행을 행하며, 성글고 까다로운 행을 행하지 않고, 귀, 코, 혀, 몸, 뜻,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우리는 거기서 차별을 찾아 그 차별을 본다. 그러므로 그런 종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여야 한다'고 대답하라. 이와 같이 말하면 그는 다시 묻기를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어떤 문(門)에 어떤 형상이 있으며 어떤 모양인가. 너희들은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탐욕의 방향[貪向]을 떠나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의 방향[ 向]을 떠나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의 방향[癡向]을 떠나 어리석음을 항복 받았는 지를 아는가.'고 할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우리는 그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매 이러한 종류가 있었다. 즉 비고 한가한 곳이나 숲 속이나 나무 밑에서 낮은 평상에 풀을 깔고 있으면서, 머릴 떠나는 행을 닦고 모든 여자를 떠나, 혼자서 선정(禪定)을 같이 닦는 이와 가까이하기를 즐겨 하고, 혹 거기서 눈으로 색깔을 보아도 즐겨 집착하는 일이 없고,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부딪침을 즐겨 집착하는 일이 없었다. 만일 그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러한 행과 이러한 형상과 이러한 모양이 있으면, 그는 우리로 하여금, 이 사문이나 바라문은 탐향을 떠나 탐욕을 항복 받고, 에향을 떠나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의 방향을 떠나 어리석음을 항복 받은 줄을 알게 한다.'
고 대답하라."
때에 모든 사문과 바라문 장자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놀라우십니다! 세존이시여, 스스로 기리지 않고 남을 헐지도 않으면서 바르게 그 이치를 설명하셨나이다. 모든 감관에 대해서 더러움과 깨끗함을 분별하여 연기(緣起)를 널리 말씀하시는 것은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의 말씀답나이다. 비유하면 장정이 빠진 사람을 능히 건지고, 닫힌 것을 능히 열어 주며,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보이고, 어두운 곳에서 등불을 켜는 것과 같나이다. 세존께서도 또한 그와 같아서 스스로 기리지 않고 남을 헐지도 않으면서 바르게 그 이치를 설명하셨나이다...... 내지,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의 말씀답나이다."
그 때에 빈데야성의 바라문 장자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81. 영발목건련경(榮髮目 蓮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머리 땋은 마우드갈랴아야나[榮髮目 連]의 집나간 이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서로 인사한 뒤에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머리 땋은 마우드갈랴아야나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어디서 오느냐."
머리 땋은 마우드갈랴아야나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는 저 많은 갖가지 이도(異道)들의 사문과 바라문과 챠라카[遮羅迦]의 집 나간 이들을 따라 강당에 모였다가 아직 법을 듣지 못하고, 그 동산에서 오나이다."
"너는 어떤 복력(福力)을 위해 그 많은 갖가지 이도들의 사문과 바라문과 챠라카의 집 나간 이들을 따라 그 설법을 들으려고 하였는가."
"나는 이기기를 다투어 이론(理論)하는 그 복리(福利)를 듣고, 그들이 서로 반대하여 이론 하는 복리를 들으려고 꾀하였기 때문입니다."
"긴 밤 동안을 영원히, 갖가지 이도들의 사문과 바라문과 챠라카의 집나간 이들, 이기기를 다투어 이론하고, 서로 반대하여 이론 하는 복리는 서로를 파괴할 뿐이니라."
"고오타마께서는 여러 제자들을 위해 어떤 법을 말씀하여 복리를 얻게 하시고, 그들은 다시 남을 위해 말할 때, 여래를 비방하지 않고 보태지도 않고 덜지도 않은 진실을 말하고 법을 말하며 법을 따르는 법을 말하여, 다른 사람이 와서 능히 비교하고 힐난하고 꾸짖는 일이 없게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밝음과 해탈과 과보의 복리를 사람들을 위하여 굴려 설명하면, 여래를 비방하지도 않고 그 이치에 어긋나지도 않으며, 법을 따르는 법의 말이 되어, 누가 와서 능히 비교하고 힐난하며 꾸짖는 일이 없느니라."
"고오타마시여, 모든 제자들로서 어떤 법을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어야 밝음과 해탈의 복리를 만족할 수 있나이까."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가 있어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밝음과 해탈의 복리를 만족하게 할 것이다."
"어떤 법을 닦아 익히면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만족하게 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이 있어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느니라."
"다시 어떤 법을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만족하게 할 수 있나이까."
"세 가지 묘행(妙行)을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에 만족하게 할 수 있느니라."
"다시 어떤 법을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세 가지 묘행을 만족하게 할 수 있나이까."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율의(律儀)를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세 가지 묘행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느니라."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율의를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세 가지 묘행을 만족하게 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혹 눈이 뜻에 맞아 사랑하고 생각할 만하며, 능히 욕심과 즐거움을 자라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인연하고 집착하게 하는 물질을 보더라도, 그 비구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지도 않고 찬탄하지도 않으며, 인연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머무르지도 않는다.
혹 눈이 뜻에 맞지 않고 사랑하고 생각할 만하지 않으며, 괴로움의 각(覺)을 따르는 물질을 보더라도,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며, 꺼리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는다. 그 좋은 물질에 대해서 눈으로 보는 것을 일으키고도 길이 인연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좋지 않은 물질을 눈으로 보는 것을 일으키고도 길이 인연하거나 집착하지 않아서, 안 마음이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고 해탈을 잘 닦아 마음이 게으르지 않으며, 귀, 코, 혀, 몸, 뜻의 의식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이와 같이 여섯 가지 감관을 닦아 익히고 자꾸 닦아 익히면 세 가지 묘행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느니라.
어떻게 세 가지 묘행을 닦아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만족하게 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비고 한가한 곳이나 숲 속이나 나무 밑에서 이와 같이 배우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즉 '이 몸의 나쁜 행은 현세나 후세에서 반드시 나쁜 갚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만일 몸의 나쁜 행을 행하면 반드시 스스로 싫어하고 뉘우침을 낼 것이요, 다른 사람도 또한 꺼려하고 박대할 것이며, 스승님도 또한 꾸짖을 것이요 모든 범행자들도 또한 법으로서 나를 꺼릴 것이다. 그리고 나쁜 이름이 흘러 퍼지어 사방에 두루할 것이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마땅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고. 그래서 그는 몸의 나쁜 행에서 현세와 후세의 이와 같은 과보를 안다. 그러므로 몸의 나쁜 행을 버리고 몸의 묘한 행을 닦나니, 입과 뜻의 나쁜 행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세 가지 묘행을 닦아 익히고 나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의 청정과 만족을 얻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닦아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 만족을 얻는가. 마우드갈랴아야나 비구가 이와 같이 몸 그대로의 몸의 관찰에 머무른다. 그는 몸 그대로의 몸의 관찰에 머무를 때에는 생각을 거두고 편히 머물러 잊지 않나니, 그 때에는 방편으로서 생각의 깨달음 갈래[念覺分]를 닦아 익히고, 방편으로써 생각의 깨달음 갈래를 닦아 익힌 뒤에는 생각의 깨달음 갈래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그는 생각[念]으로서 법을 가리어 깨닫고 생각하며 헤아리나니, 그 때에는 방편으로써 <법 가림의 깨달음 갈래[擇法覺分]>를 닦아 익히고 방편으로서 그것을 닦아 익힌 뒤에는 그것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그 법을 가리어 깨닫고 생각하며 헤아리나니, 방편으로써 <정진의 깨달음 갈래[精進覺分]>를 닦아 익힌다. 방편으로 그것을 닦아 익힌 뒤에는 그것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한 뒤에는 기쁜 마음이 생기나니, 그 때에는 방편으로써 기쁨의 깨달음 갈래[歡喜覺分]를 닦아 익히고 그것을 닦아 익힌 뒤에는 그것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마음이 기뻐한 뒤에는 몸과 마음이 편히 쉬나니, 그 때에는 <쉼의 깨달음 갈래>를 닦아 익히고 그것을 닦아 익힌 뒤에는 그것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쉰 때에는 삼마아디[三摩提]를 얻나니, 그 때에는 <선정의 깨달음 갈래[定覺分]>를 닦아 익히고 그것을 닦아 익힌 뒤에는 그것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이른바 그 마음을 하나로 하여 탐욕과 근심이 멸하여 쉬고 안으로 몸에 버림[捨]을 행하나니, 방편으로써 <버림의 깨달음 갈래[捨覺分]>를 닦아 익히고 방편으로써 그것을 닦아 익힌 뒤에는 그것의 청정과 만족을 얻을 것이다. 느낌, 심(心), 법(法)의 생각하는 곳도 또한 그와 같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생각하는 곳을 닦아 익히면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만족하게 하느니라.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닦아 익히면 밝음과 해탈을 만족하게 하는가. 마우드갈랴아야나여, 만일 비구가 생각의 깨달음 갈래를 닦아, 머릴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멸하고 버림을 의지하여, 나아가면서 생각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밝음과 해탈의 청정과 만족을 얻을 것이요...... 내지, 버림의 깨달음 갈래 닦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를 닦아 익히면 밝음과 해탈이 청정하고 만족해지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마우드갈랴아야나여, 법과 법이 서로 만족하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될 것이니라."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에 머리 땋은 마우드갈랴아야나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垢]를 여의어 법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에 들어가 모든 의혹을 건너되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법률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이제 혹 바른 법률안에서 집을 나와 완전한 비구의 신분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너는 이제 바른 법률안에서 집을 나와 이미 비구의 신분을 갖추어 얻었느니라."
그는 비구의 신분을 얻고 집을 나온 뒤에는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放逸)하지 않은 데서 머무르고...... 내지, 아라한이 되었다.
282. 제근수경(諸根修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카쟝갈라 무킬루[迦微伽羅 牟眞隣陀] 숲 속에 계시었다. 때에 웃타라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파아라아사리야의 제자였었다. 그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공경하고 인사드린 뒤에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때에 세존께서는 웃타라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 스승 파아라아사리야는 너희들을 위해 모든 감관[根]을 닦으라고 말하는가."
웃타라는 대답하였다.
"이미 말하였나이다. 고오타마시여."
"너의 스승 파아라아사리야는 어떻게 모든 감관을 닦으라고 말하던가."
"우리 스승 파아라아사리야는 '눈으로 빛깔을 보지 않고 귀로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모든 감관을 닦는 것이다'고 말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웃타라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너의 스승 파아라아사리야의 말과 같다면 장님이 곧 감관을 닦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냐 하면, 오직 장님만이 눈으로 빛깔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세존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을 부쳐 드리고 있었다. 존자 아아난다는 웃타라에게 말하였다.
"파아라아사리야의 말과 같다면 귀머거리가 곧 감관을 닦는 것이 아닌가. 무슨 까닭인가. 오직 귀머거리만이 귀로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그것은 현성(賢聖)의 법률에서 위없는 모든 근을 닦는 것과 다르리라."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오직 원하옵노니 세존이시여, 현성의 법률에서 위없는 근을 닦는 것을 말씀하여 주소서. 비구들은 그것을 듣고는 마땅히 받아 받들어 행할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어 마음에 드는 빛깔을 보거든, 여래의 싫어하고 떠나는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닦으려 하고,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어 마음에 들지 않거든, 여래의 싫어하거나 떠나지 않는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닦아라.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어 마음에 들어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든, 여래의 싫어하고 떠남과, 싫어하거나 떠나지 않는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닦으려고 하고,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마음에 들거든, 여래의 싫어하거나 떠나지 않음과, 싫어하고 떠나는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닦으려고 하라.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어,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다.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더라도 오직 여래의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가리어, 그 따라 버리는 마음에 머물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닦으려 하라.
이와 같이 아아난다여, 만일 이 五구(句)에 있어서 마음을 잘 항복 받고 잘 굳게 닫고 잘 지켜 보호하고 잘 거두어 가지고 잘 닦아 익히면, 이것이 곧 눈과 빛깔에 대해서 위없이 감관을 닦는 것이니,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한다. 아아난다여, 이것을 현성의 법률에서 위없이 감관을 닦는 것이라 하느니라."
존자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현성의 법률에서 현성은 감관을 닦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면, 그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이와 같이 참다이 안다. 즉, '나는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곧 고요하고 멸한 것이요, 그것은 곧 훌륭하고 묘한 것이다'고. 이것은 이른바 함께 버리는 것이니, 그것을 버릴 수 있으면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역사(力士)가 손가락을 퉁기는 동안에 멸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나니,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어느새 다 멸하여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 버리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귀와 소리를 인연하여 귀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면,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이와 같이 참다이 안다. 즉 '내 귀의 의식은 소리를 들으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곧 고요하고 멸한 것이요, 그것은 곧 훌륭하고 묘한 것이다'고. 이것은 이른바 버림[捨]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큰 역사가 손가락을 퉁겨 나는 소리가 곧 멸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귀와 소리를 인연하여 귀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생기자 다 멸하고 만다. 그것을 곧 버림이라 하나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코와 냄새를 인연하여 코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면,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이와 같이 참다이 안다. 즉 '코와 냄새를 인연하여 코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곧 고요하고 멸한 것이요 훌륭하고 묘한 것이다'고. 이것은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연꽃이 물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코와 냄새로 인연하여 코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생기자 다 멸하고 만다.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혀와 맛을 인연하여 혀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면 저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이와 같이 참다이 안다. 즉 '혀와 맛을 인연하여 혀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여, 고요하고 멸한 것이요 훌륭하고 묘한 것이다'고. 이것은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역사가 혀끝의 침방울을 다 뱉어 없애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혀와 맛을 인연하여 혀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고 만다.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몸과 부딪침을 인연하여 몸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고 만다.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이와 같이 참다이 아나니 즉 '몸과 부딪침을 인연하여 몸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여, 고요하고 멸한 것이요, 훌륭하고 묘한 것이다'고.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쇠탄자를 달구어 매우 뜨겁게 하여 조그만 물방울을 뿌리면 곧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몸과 부딪침을 인연하여 몸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고 만다.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고 만다.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이와 같이 참다이 안다. 즉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고 마나니 이것은 곧 고요하고 멸한 것이요, 이것은 곧 훌륭하고 묘한 것이다'고.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역사가 타알라[多羅] 나무 대강이를 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마는, 그것은 생기자 다 멸하고 만다. 이것은 이른바 버림이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버린 뒤에는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떠나게 된다. 아아난다여, 이것을 현성의 법률이라 하고 거룩한 제자의 모든 근을 닦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성인의 법률을 깨닫고 보는 자취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면, 저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며 미워한다. 귀, 코, 혀, 몸과,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면,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좋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좋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면, 저 거룩한 제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며 미워하나니, 아아난다여, 이것을 현성의 법률을 깨닫고 보는 자취라 한다. 아아난다여, 이것을 현성의 법률안에서 위없이 모든 것을 닦는 것이라 한다.
나는 이미 현성의 모든 감관을 닦는 것을 말하였고 깨닫고 보는 자취를 이미 말하였다. 아아난다여, 나는 모든 성문(聲聞)들의 할 일을 위하여 나의 할 일을 다하였다. 너희들도 마땅히 할 일을 다하여야 하느니라."
널리 설명한 것은 <협독사경( 毒蛇經)>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아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