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주제별 정리/수행

수행에 대한 금언 (13) 방일하지 않는 행을 말하기도 하고 말하지 않기도 한다

다르마 러브 2013. 8. 29. 13:51

나는 모든 비구들에게 '방일하지 않는 행[不放逸行]'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비구들에게 방일하지 않는 행을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부류의 비구들에게 방일하지 않는 행을 말하지 않는가?

만일 비구가 아라한이 되어 모든 번뇌를 다하고,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자기의 이익을 이미 얻고, 모든 존재의 결박[有結]을 다하여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였다면, 그런 부류의 비구들에게 나는 방일하지 않는 행을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런 비구들은 이미 방일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다시는 방일한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저 모든 존자들이 방일하지 않는 과보를 얻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방일하지 않는 행을 말하지 않느니라.

어떤 부류의 비구들에게 방일하지 않는 행을 말하는가? 만일 배우는 지위에 있는 비구라면 그들은 모두 마음이 아직 위없는 안온함을 얻지 못해 열반을 향해 머무르는 자들이다. 그런 부류의 비구들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방일하지 않는 행을 말한다. 왜냐 하면 그런 비구들은 모든 근(根)을 배워 익히고, 성장을 돕는 여러 방법들을 마음으로 좋아하고, 착한 벗을 가까이 하면 오래지 않아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되고 번뇌가 없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알 것이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안식(眼識)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물들어 집착할 만한 빛깔이라도, 그 비구는 그것을 본 뒤에 기뻐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으며, 물들지 않고 매이고 집착하여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뻐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으며, 물들지 않고 집착하여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훌륭하게 정진하여 몸과 마음이 그치고 쉬며 마음이 편안하고 지극히 머물러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언제나 고요한 한마음이 되어 한량이 없는 법의 기쁨을 누리고, 첫째 가는 삼매 즉 정수(正受)를 얻어, 마침내 물러나 눈과 빛깔을 따르지는 않는다. 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의식(意識)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我不爲一切比丘說不放逸行。亦非不爲一切比丘說不放逸行。不向何等像類比丘說不放逸行。若比丘得阿羅漢。盡諸有漏。離諸重擔。逮得己利。盡諸有結。心正解脫。如是像類比丘。我不爲說不放逸行。所以者何。彼諸比丘已作不放逸故。不復堪能作放逸事。我今見彼諸尊者得不放逸果。是故不爲彼說不放逸行。爲何等像類比丘說不放逸行。若諸比丘在學地者。未得心意增上安隱。向涅槃住。如是像類比丘。我爲其說不放逸行。所以者何。以彼比丘習學諸根。心樂隨順資生之具。親近善友。不久當得盡諸有漏。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作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所以者何。彼眼識所可愛樂.染着之色。彼比丘見已。不喜.不讚歎.不染.不繫着住。以不喜.不讚歎.不染.不着住故。專精勝進。身心止息。心安極住不忘。常定一心。無量法喜。但逮得第一三昧正受。終不退滅隨於眼色。於耳.鼻.舌.身.意識法亦復如是。(不放逸經 대정장 2/33 중~34 상; 한글대장경 잡아함경 인터넷판 pp. 291~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