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25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19:45

중아함경 제25권

 

99. 고음경(苦陰經) 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비구들은 점심 뒤에, 조그마한 일로 강당에 모여 앉았다. 이 때에 많은 이학(異學)들도 오후에 천천히 걸어,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사문 고오타마는 욕심을 알아 끊는 것을 마련하고, 색(色)을 알아 끊는 것을 마련하며, 각(覺)을 알아 끊는 것을 마련한다. 우리도 또한 욕심을 알아 끊는 것을 마련하고, 색을 알아 끊는 것을 마련하며, 각을 알아 끊는 것을 마련한다. 사문 고오타마와 우리들의 두 아는 것과 두 끊는 것은, 어느 것이 나으며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이에 비구들은 저 많은 이학들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않고 그르다고도 앓고, 잠자코 일어나 가면서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말은, 우리들은 세존에게서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곧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른바 많은 이학들과 서로 의논할 만한 것을 모두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곧 저 많은 이학들에게 이렇게 물으라. ‘여러분, 어떤 것을 욕심의 맛이라 하고, 어떤 것을 욕심의 환(患)이라 하며, 어떤 것을 욕심의 출요(出要)라 하는가. 어떤 것을 색의 맛이라 하고, 어떤 것을 환이라 하며, 어떤 것을 색의 출요라 하는가. 어떤 것을 각의 맛이라 하고, 어떤 것을 각의 환이라 하며, 어떤 것을 각의 출요라 하는가’고. 모든 비구들이여, 만일 너희들이 이렇게 물으면 저들은 그 말을 듣고 곧 서로 힐난하고, 다른 일로 말하며, 더욱 성이 나서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코 물러갈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 세상이나, 하늘, 마군, 범(梵), 사문, 바라문 등 일체의 다른 무리들로서, 능히 이 뜻을 알아 해설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고, 여래나 여래의 제자한테서만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어떤 것을 욕심의 맛이라 하는가. 곧 五욕(欲)의 공덕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나니, 이 욕심의 맛은 지극하여, 다시 이것에 지나는 것이 없고, 또 환(患)되는 바도 매우 많은 것이다.

 

어떤 것을 욕심의 환(患)이라 하는가. 족성자(族姓子)들은 그 기술을 따라 각자 생활해 가는데, 혹은 ‘밭농사를 짓고, 혹은 살아갈 방도를 세우며, 혹은 글을 배우고 혹은 산술을 밝히며, 혹은 공수(工數)를 알고 혹은 도장을 교묘히 새기며, 혹은 글을 짓고 혹은 붓을 만들며, 혹은 경서(經書)를 깨닫고 혹은 용맹스런 장군이 되며, 혹은 왕을 받들어 섬긴다.

 

그들은 추울 때에는 추워하고 더울 때에는 더워하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피로하며, 모기와 등에에게 뜯기면서 이러한 직업으로 재물 구하기를 도모한다. 저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재물을 얻지 못하면 곧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시름하고 슬퍼하며 번민하여,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헛되이 노력하고 헛되이 괴로워하면서 구했지마는 아무 결과가 없다’고.

저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재물을 얻으면 그는 곧 사랑하고 아껴 지켜 보호하고, 비밀이 감추어 둔다. 무슨 까닭인가.

 

‘내 이 재물은 왕에게 빼앗기거나 도적을 맞거나, 불에 태우거나 썩어 없어지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자. 재물을 내어 써 보아도 이익이 없고, 혹 여러 사업을 해 보아도 성취되지 않는다’고. 그들은 이렇게 지켜 보호하고 비밀이 감추어 두었다가, 만일 왕이 빼앗고 도적이 겁탈하며, 불에 타고 썩어 없어지며, 시름하고 슬퍼하며 번민하여,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만일 오랫동안 사랑할 만한 것을 가지면, 그는 곧 잃어버린다’고.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陰)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과 다투고, 아들은 어머니와 다투며, 부자, 형제, 자매, 친족들이 계속 번지어 서로 다투느니라.

 

저들은 이미 이렇게 서로 다툰 뒤에는, 어머니는 아들의 허물을 말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허물을 말하며, 부자, 형제, 자매, 친족들끼리도 서로 허물을 말하나니, 하물며 다시 남이겠느냐.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왕과 왕이 서로 다투고, 범지와 범지가 서로 다투며, 거사와 거사가 서로 다투고, 백성과 백성이 서로 다투며,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툰다. 그들은 다투어 서로 미워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무기로써 갈수록 서로 해(害)를 더하나니, 혹은 작대기로 치고 칼로 찍는다.

 

그들은 서로 싸울 때,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싸움터에 들어가며, 혹은 코끼리로써 싸우고, 혹은 말, 혹은 수레, 혹은 보병으로, 혹은 남녀로써 싸운다. 그들은 싸울 때에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싸움터에 가서 다른 나라를 빼앗고, 성을 치고 진터를 부수면서 서로 격투하며, 북을 치고 태평소[角]를 불며, 큰 소리로 부르고, 혹은 몽둥이로 치고, 혹은 창으로, 혹은 날카로운 바퀴로, 혹은 활을 쏘고 혹은 돌을 어지러이 날리며, 혹은 쇠뇌로, 혹은 벌겋게 단 구리쇠 탄자를 퍼붓는다.

 

그들은 싸울 때에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촌으로 들어가고 읍으로 들어가며, 나라로 들어가고 성으로 들어가며, 담을 뚫고 창고를 열어 재물을 겁탈하고 왕의 길을 끊으며, 혹은 남의 거리에 가서 촌을 부시고 읍을 해치며, 나라를 멸하고 성을 부수며,

 

그 중에는 혹은 왕의 신하에게 잡히어 온갖 고문을 당할 때, 손을 베고 발을 끊고 혹은 손과 발을 자르며, 귀를 끊고 코를 베고 혹은 귀와 코를 자르며, 혹은 난도질을 당하며, 수염을 뽑히고 머리털을 뽑히고 혹은 수염과 머리털을 뽑히며, 혹은 우리에 갇히고 옷에 불을 싸서 태우며, 혹은 모래로 덮으며, 혹은 풀에 싸서 불에 태우며, 혹은 쇠나귀의 뱃속에 넣고, 혹은 쇠돼지의 입안에 넣고, 혹은 쇠호랑이 입안에 넣어 태우며,

 

혹은 구리쇠솥 안에 두고, 혹은 쇠솥 안에 넣어 지지며, 혹은 동강동강 끊으며, 혹은 쇠가장귀로 찌르고 혹은 쇠갈구리로 달며, 혹은 쇠평상에 눕히고 끓는 기름을 부으며, 혹은 쇠호박에 앉히고 쇠절구로 찧으며, 혹은 뱀으로 물리며, 혹은 채찍으로 치고, 혹은 작대기로 치고, 혹은 몽둥이로 두들기며, 혹은 산채로 높은 가지에 꿰고 혹은 그 목을 벤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뒷날에 병이 들어 자리에 들고, 혹은 땅에 앉아 누우며, 괴로움이 몸에 닥쳐 지극히 중한 고통을 받으면서 조금도 즐거워하지 못한다.

 

그가 만일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이 있으면, 그는 죽음에 다달아 앞이 캄캄해지나니, 마치 해가 지려 할 때에 큰 산등성이 그림자가 땅을 덮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가 만일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이 있으면 앞이 캄캄해진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본래 지은 악행이 앞에서 나를 덮는다. 나는 일찍 복된 업을 짓지 않고 악행을 많이 지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흉악함과 사나움을 지어, 오직 죄를 행하고 복을 짓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아, 두려워할 바가 없고 의지할 곳이 없으며, 돌아갈 곳이 없어 태어날 곳을 따라간다면, 나도 반드시 그 곳에 날 것이다’고. 그래서 뉘우침이 있고, 뉘우치는 것은 착하지 못하므로 죽어서 복이 없이 목숨을 마칠까 한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몸과 입과 뜻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을 후세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욕심의 환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욕심의 출요(出要)라 하는가. 만일 욕심을 끊어 없애고 욕심을 버려 떠나며, 욕심을 멸하여 욕심이 다하고 욕심을 건너 뛰어나면, 이것을 욕심의 출요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욕심의 맛과 욕심의 환과 욕심의 출요를 참다이 알지 못하면, 그는 마침내 스스로 그 욕심을 끊을 수 없겠거늘,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욕심을 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욕심의 맛과 욕심의 환과 욕심의 출요를 참다이 알면, 그는 이미 스스로 없앴으니, 또한 능히 다른 이의 욕심도 끊을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색(色)의 맛이라 하는가. 만일 크샤트리야[刹帝利]의 여자나 바라문, 거사, 공사(工師)의 여자로 나이 十四, 五세가 되면, 그는 그 때에는 아름다운 얼굴이 가장 묘하다. 만일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인으로 하고,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연으로 하여, 즐거움을 내고 기쁨을 내면 이것은 지극한 색의 맛으로서, 다시 이것에 지나는 것이 없어, 환되는 바가 매우 많느니라.

 

어떤 것을 색의 환(患)이라 하는가. 만일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뒷날 몹시 쇠하고 늙어,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며, 등은 꼬부라지고 다리는 뒤틀리어 지팡이를 의지하여 다니며, 젊음은 날로 쇠하여 수명은 곧 다하려 하며, 몸은 떨고 모든 기관은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얼굴이 있었지마는 그것이 없어지므로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러하나이다.”

“만일 그 아름다운 여자가 병이 있어 자리에 들고, 혹은 땅에 앉거나 누우며, 괴로움이 몸에 닥쳐 지극히 중한 고통을 받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본래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마는 그것이 멸하므로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러하나이다.”

“만일 그 아름다운 여자가 죽어, 혹 一, 二일 내지 六, 七일이 되어, 까마귀나 소리개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살리고 땅에 묻히며, 모두 썩어 문들어지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마는 그것이 멸하므로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러하나이다.”

“만일 그 아름다운 여자의 묘지에 버려진 해골이 푸른빛으로 썩어 문들어지고, 남은 반의 뼈사슬이 땅에 있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마는 그것이 멸하므로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러하나이다.”

“만일 그 아름다운 여자가 묘지에 버려져 가죽과 살과 피를 떠나, 오직 힘줄만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마는 그것이 멸하므로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러하나이다.”

“만일 그 아름다운 여자의 묘지에 버려진 뼈마디가 풀리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발뼈, 장단지뼈,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어깨뼈, 목뼈, 머리뼈들이 각각 다른 곳에 있는 곳을 본다면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마는 그것이 멸하므로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러하나이다.”

“만일 그 아름다운 여자의 묘지에 버려진 뼈가 희기는 마치 소라와 같고 푸르기는 마치 집비둘기빛 같으며, 붉기는 피를 칠한 것 같고, 썩어 문들어지고 부서져 가루가 된 것을 본다면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마는 그것이 멸하므로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이것을 색의 환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을 색의 출요(出要)라 하는가. 만일 색을 끊어 없애고 색을 버려 떠나서는 색을 멸하여 색이 다하고 색을 건너 뛰어나면 이것을 색의 출요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색의 맛과 색의 환과 색의 출요의 참 모양을 알지 못하면 그는 마침내 그 색을 끊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색을 끊게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색의 맛과 색의 환과 색의 출요의 참모양을 알면 그는 이미 스스로 없앴으니, 또한 능히 다른 이의 색을 끊게 할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각(覺)의 맛이라 하는가. 비구는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내지 제 四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그 때에는 스스로 해치기를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남을 해치기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일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각의 즐거움의 맛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즐거움을 성취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각의 맛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각의 환이라 하는가. 각이란 항상 됨이 없는 법이요 괴로움의 법이며 멸의 법이니, 이것을 각의 환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각의 출요라 하는가. 만일 각을 끊어 없애고 각을 버려 떠나며, 각을 멸하여 각이 다하고 각을 건너 뛰어나면, 이것을 각의 출요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각의 맛과 각의 환과 각의 출요의 참모양을 알지 못하면 그는 마침내 스스로 그 각을 끊을 수 없겠거늘,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각을 끊게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각의 맛과 각의 환과 각의 출요의 참모양을 알면 그는 이미 스스로 없앴으니, 또한 능히 다른 이의 각을 끊게 할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00. 고음경(苦陰經) 하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삭기수[釋羈瘦]에 노닐으시면서 카필라바스투[加維羅衛] 니그로오다아[尼拘類]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마하아나아마[釋摩訶男]는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부처님 계시는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을 이렇게 아나이다. ‘내 마음속의 세 가지 더러움, 곧 탐하는 마음의 더러움과 성내는 마음의 더러움과 어리석은 마음의 더러움을 멸하게 한다’고.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을 이렇게 아나이다. 그런데, 제 마음속에는 다시 탐하는 법, 성내는 법, 어리석은 법이 생기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하나이다. ‘내게는 어떤 법이 멸하지 않아서 내 마음속에 다시 탐하는 법, 성내는 법, 어리석은 법이 생기게 하는가’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마하아나아마야, 너에게는 한 법이 없어지지 않았다. 곧 너는 집에 있으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지 않는다. 만일 네가 이 한 법을 없애면 너는 반드시 집에 있지 않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울 것이다. 너는 한 법을 없애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집에 있으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지 않는다.”

 

이에 마하아나아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제 마음이 깨끗하여 의심을 없애고 도를 얻게 하소서.”

 

세존은 말씀하시었다.

“마하아나아마야, 五욕(欲)의 공덕이 있어, 사랑할 만하고 생각할 만하며, 기뻐할 마하고 욕심과 서로 응하여 사람을 즐겁게 한다. 어떤 것이 五인가. 곧 눈은 빛깔을 알고, 귀는 소리를 알며,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며, 몸은 촉감을 아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왕이나 왕의 권속으로 하여금 안락과 환희를 얻게 하느니라. 이 욕심의 맛은 지극하여 다시 이것에 지나는 것이 없고 또 환되는 바는 매우 많으니라.

 

마하아나아마야, 어떤 것을 욕심의 환이라 하는가. 족성자(族姓子)들은 그 기술을 따라 각각 생활해 가는데, 밭농사를 짓거나 살아갈 방도를 세우며, 혹은 글을 배우거나 산술을 밝히며, 공수(工數)를 알거나 도장을 교묘히 새기며, 혹은 글을 짓고 붓을 만들며, 혹은 경서(經書)를 깨닫고 용맹스런 장군이 되며, 혹은 왕을 받들어 섬긴다.

 

그들은 추울 때에는 추워하고, 더울 때에는 더워하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피로하며, 모기와 등에에게 뜯기면서, 이러한 작업으로 재물 구하기를 도모한다. 마하아나아마야, 이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재물을 얻지 못하면 곧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슬퍼하고 번민하여,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헛되이 노력하고 헛되이 괴로워하면서 구했지마는 아무 결과가 없다’고.

 

저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재물을 얻으면 그는 곧 사랑하고 아껴 지켜 보호하고, 비밀이 감추어 둔다. 무슨 까닭인가.

 

‘내 이 재물은 왕에게 빼앗기거나 도적을 맞거나, 불에 태우거나 썩어 없어지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자.

 

재물을 내어 써 보아도 이익이 없고, 혹 여러 사업을 해 보아도 성취되지 않는다’고. 그들은 이렇게 지켜 보호하고 비밀이 감추어 두었다가, 만일 왕이 빼앗고 도적이 겁탈하며, 불에 타고 썩어 없어지며, 시름하고 슬퍼하며 번민하여,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만일 오랫동안 사랑할 만한 것을 가지면, 그는 곧 잃어버린다’고.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陰)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마하아나아마야,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과 다투고, 아들은 어머니와 다투며, 부자, 형제, 자매, 친족들이 계속 번지어 서로 다투느니라.

 

저들은 이미 이렇게 서로 다툰 뒤에는, 어머니는 아들의 허물을 말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허물을 말하며, 부자, 형제, 자매, 친족들끼리도 서로 허물을 말하나니, 하물며 다시 남이겠느냐.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마하아나아마야,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왕과 왕이 서로 다투고, 범지와 범지가 서로 다투며, 거사와 거사가 서로 다투고, 백성과 백성이 서로 다투며,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툰다. 그들은 다투어 서로 미워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무기로써 갈수록 서로 해(害)를 더하나니, 혹은 작대기로 치고 칼로 찍는다.

 

그들은 서로 싸울 때,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마하아나아마야,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싸움터에 들어가며, 혹은 코끼리로써 싸우고, 혹은 말, 혹은 수레, 혹은 보병으로, 혹은 남녀로써 싸운다. 그들은 싸울 때에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마하아나아마야, 다시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싸움터에 가서 다른 나라를 빼앗고, 성을 치고 진터를 부수면서 서로 격투하며, 북을 치고 태평소[角]를 불며, 큰 소리로 부르고, 혹은 몽둥이로 치고, 혹은 창으로, 혹은 날카로운 바퀴로, 혹은 활을 쏘고 혹은 돌을 어지러이 날리며, 혹은 쇠뇌로, 혹은 벌겋게 단 구리쇠 탄자를 퍼붓는다.

 

그들은 싸울 때에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마하아나아마야, 다시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촌으로 들어가고 읍으로 들어가며, 나라로 들어가고 성으로 들어가며, 담을 뚫고 창고를 열어 재물을 겁탈하고 왕의 길을 끊으며, 혹은 남의 거리에 가서 촌을 부시고 읍을 해치며, 나라를 멸하고 성을 부수며, 그 중에는 혹은 왕의 신하에게 잡히어 온갖 고문을 당할 때,

 

손을 베고 발을 끊고 혹은 손과 발을 자르며, 귀를 끊고 코를 베고 혹은 귀와 코를 자르며, 혹은 난도질을 당하며, 수염을 뽑히고 머리털을 뽑히고 혹은 수염과 머리털을 뽑히며, 혹은 우리에 갇히고 옷에 불을 싸서 태우며, 혹은 모래로 덮으며, 혹은 풀에 싸서 불에 태우며, 혹은 쇠나귀의 뱃속에 넣고, 혹은 쇠돼지의 입안에 넣고, 혹은 쇠호랑이 입안에 넣어 태우며, 혹은 구리쇠솥 안에 두고, 혹은 쇠솥 안에 넣어 지지며, 혹은 동강동강 끊으며, 혹은 쇠가장귀로 찌르고 혹은 쇠갈구리로 달며, 혹은 쇠평상에 눕히고 끓는 기름을 부으며, 혹은 쇠호박에 앉히고 쇠절구로 찧으며, 혹은 뱀으로 물리며, 혹은 채찍으로 치고, 혹은 작대기로 치고, 혹은 몽둥이로 두들기며, 혹은 산채로 높은 가지에 꿰고 혹은 그 목을 벤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마하아나아마야, 다시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뒷날에 병이 들어 자리에 들고, 혹은 땅에 앉아 누우며, 괴로움이 몸에 닥쳐 지극히 중한 고통을 받으면서 조금도 즐거워하지 못한다.

 

그가 만일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이 있으면, 그는 죽음에 다달아 앞이 캄캄해지나니, 마치 해가 지려 할 때에 큰 산등성이 그림자가 땅을 덮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가 만일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이 있으면 앞이 캄캄해진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본래 지은 악행이 앞에서 나를 덮는다. 나는 일찍 복된 업을 짓지 않고 악행을 많이 지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흉악함과 사나움을 지어, 오직 죄를 행하고 복을 짓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아, 두려워할 바가 없고 의지할 곳이 없으며, 돌아갈 곳이 없어 태어날 곳을 따라간다면, 나도 반드시 그 곳에 날 것이다’고. 그래서 뉘우침이 있고, 뉘우치는 것은 착하지 못하므로 죽어서 복이 없이 목숨을 마칠까 한다. 이것을 현재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라.

 

마하아나아마야,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몸과 입과 뜻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을 후세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욕심의 환이라 하느니라.

 

마하아나아마야,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욕심이란 전혀 즐거움이 없고 한량이 없는 괴로움의 환이 있다’고.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들로서, 참뜻을 보지 못하면 그는 욕심에 덮이어 버림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安息)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저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타락(墮落)한다. 나는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이 없는 괴로움과 환이 있는 줄을 알고, 나는 그 참 모양을 안 뒤에는 욕심에 덮이지 않고, 또한 악에 얽매이지 않아 곧 버림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을 얻었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지 않느니라.

마하아나아마야, 어느 때 나는 라아자그리하에서 노닐면서 비다라산의 선인(仙人)들이 사는 칠엽옥(七葉屋)에 있었다. 나는 해질녘에 연좌(宴座)에서 일어나 광산(廣山)으로 가서, 거기서 많은 니간타[尼犍]들이 앉지 않는 행을 닦으면서 항상 서서 앉지 않고,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보고 나는 가서 물었다.

 

‘모든 니간타들아, 너희들은 무슨 까닭으로 앉지 않는 행을 닦으면서 항상 서서 앉지 않고 이러한 고통을 받느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오타마시여, 우리에게는 스승님 니간타가 계신데, 이름을 친자(親子)라 합니다. 그는 우리들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니간타들아, 너희들이 만일 전생에 착하지 않은 업이 있으면 이 고행(苦行)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없어질 것이다. 만일 지금 몸의 묘행(妙行)을 지키고 입과 뜻의 묘행을 지키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업을 짓지 않을 것이라고.’

 

마하아나아마야, 나는 다시 물었다.

‘모든 니간타들아, 너희들은 그 스승을 믿어 의심이 없는가.’

그들은 다시 내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우리들은 우리 스승님 밑에 의혹이 없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니간타들아, 만일 그렇다면 너희들의 스승 니간타는 본래 여러 번 악하고 착하지 않은 업을 짓고, 그는 본래 니간타가 되어 죽었다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집을 나와 니간타가 되어, 앉지 않는 행을 닦으면서 항상 서서 앉지도 않고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이 너희들과 또 다른 제자 같으냐.’

 

그들은 다시 내게 말했다.

‘고오타마시여,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입니다. 빔비사아라[頻鞞沙羅]왕의 즐거움에 대하면 사문 고오타마는 따르지 못합니다.’

 

나는 다시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리석어 말의 이치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너희들은 착하지 못해 깨닫지 못하고 또 때를 알지 못한다. 곧 너희들은 이렇게 말한다. 빔비사아라왕의 즐거움에 대하면 사문 고오타마는 따르지 못한다고. 니간타들아, 너희들은 원래 이렇게 물었어야 했을 것이다.

 

누구의 즐거움이 나은가. 빔비사아라왕인가, 사문 고오타마인가고. 나간타들아, 만일 내가 이렇게 내 즐거움이 더하고 빔비사아라왕은 못하다고 한다면, 니간타들아, 너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곧 빔비사아라왕의 즐거움에 대하면 사문 고오타마는 따르지 못한다’고.

그 모든 니간타들은 곧 이렇게 말했다.

 

‘고오타마시여, 우리들은 지금 사문 고오타마님께 묻습니다. 누구의 즐거움이 나읍니까. 빔비사아라왕이니까, 사문 고오타마입니까.’

나는 또 말했다.

 

‘니간타들아,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묻는다. 아는 대로 대답하라. 모든 니간타들아,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빔비사아라왕은 자기 뜻대로 잠자코 말이 없을 수 있으며, 그래서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환희와 쾌락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니간타들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

‘六, 五, 四, 四, 二일이나,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환희와 쾌락을 얻겠는가.’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

‘니간타들아, 나는 내 뜻대로 잠자코 말이 없을 수 있으며, 그래서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환희와 쾌락을 얻겠는가.’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二, 三, 四, 五, 六일이나,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환희와 쾌락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나는 다시 물었다.

‘모든 니간타들아,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누구의 즐거움이 나은가. 빔비사아라왕인가, 이 나인가.’

 

니간타들은 대답하였다.

‘고오타마시여, 우리들이 사문 고오타마님의 말을 받아 이해하는 대로 한다면, 고오타마님의 즐거움이 낫고 빔비사아라왕은 그보다 못합니다.’

 

마하아나아마야, 이러므로 말미암아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이 없는 괴로움과 환이 있는 줄을 안다. 만일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로서 참 이치를 보지 못하면, 그는 욕심에 덮이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얽매어, 버림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마하아나아마야, 이와 같이 저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들은 욕심 때문에 타락하는 것이다.

 

나는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이 없는 괴로움과 환이 있는 줄을 알며, 나는 그 참모양을 안 뒤에는 욕심에 덮이지 않고, 또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얽매이지 않아, 곧 버림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을 얻는다. 마하아나아마야, 이러므로 나는 욕심 때문에 타락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마하아나아마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01. 증상심경(增上心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비구가 증상심(增上心)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자주 五상(相)을 생각해야 한다. 자주 五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언제나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定)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을 五라 하는가.

 

비구는 상(相)이 선(善)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하여, 만일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는 이 상(相)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한 상이 선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지 않게 한다.

 

그는 이 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상이 선과 서로 맞은 것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定)을 얻을 것이다.

 

마치 목수와 목숨의 제자가 먹줄을 가지고 나무에 튕긴 뒤에는, 곧 날카로운 도끼로 깎고 다루어 곧게 만드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상이 선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지 않게 한다.

 

그는 이 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상이 선과 서로 맞은 것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가 증상심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자주 이 제 一의 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선하지 않은 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니라.

 

비구는 상(相)이 선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하여, 만일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는 관찰하기를 ‘이 생각은 악하여 재환(災患)이 있으며, 이 생각은 착하지 않고 이 생각은 악이며, 이 생각은 지혜 있는 사람의 미워하는 바다.

 

이 생각이 만일 차고 갖추어지면, 곧 신통을 얻지 못할 것이요, 도를 깨치지 못할 것이며,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니,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게 하기 때문이다.’고 관찰한다.

 

그가 이렇게 악을 관찰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 정을 얻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나이 젊고 단정하여 사랑스러운데, 목욕하여 몸을 씻고 맑고 깨끗한 옷을 입고, 몸에 향을 바르고 수염과 머리를 고루어 지극히 정결하게 한 것을, 혹은 죽은 뱀이나 죽은 개나 죽은 사람의 송장의 남은 반이 푸르딩딩하게 부풀어 문들어져, 더러운 물이 흐르는 것을 그의 목에 걸치면, 그는 미워하고 더럽게 여겨 기뻐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생각은 악하여 재환이 있으며, 이 생각은 선하지 않고 악하며, 이 생각은 지혜 있는 사람의 미워하는 바다. 이 생각이 만일 차고 갖추어지면, 곧 신통을 얻지 못할 것이요, 도를 깨치지 못할 것이며,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니,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게 하기 때문이다.’고 관찰한다.

 

그가 이렇게 악을 관찰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가 증상심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자주 이 제 二상의 상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니라.

 

비구는 상이 선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할 때에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이 생각은 악이요 환이라고 관찰할 때에 다시 착하지 않은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 비구는 이 생각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쉬고 그치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니, 마치 눈이 있는 사람이 색(色)이 광명에 있지마는 보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는 눈을 감거나 몸이 피해 간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이 광명에 있더라도 그 사람은 색상(色想)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비구도 마땅히 이 생각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가 증상심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자주 이 제 三의 상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다.

 

비구는 상이 선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할 때에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생각은 악이요 환이라 관찰할 대에도 또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며, 생각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다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 비구는 마땅히 차츰 그 생각을 감해 자기를 생각한다고 생각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는 마땅히 차츰 그 생각을 감해 자기를 생각한다고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길을 갈 때에 너무 빨리 가다가,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이렇게 발리 갈까. 나는 이제 천천히 가자’고. 그는 곧 천천히 가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천천히 가는가. 차라리 서자’고. 그는 곧 섰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섰는가. 차라리 앉자’고. 그는 곧 앉았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앉았는가. 차라리 눕자’고. 그는 곧 눕는다.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은 차츰 몸의 추(麤)한 행동을 그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이와 같나니, 그는 ‘마땅히 그 생각을 차츰 감해 가기를 생각한다.’고 생각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는 ‘마땅히 차츰 이 생각을 감해 가기를 생각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는다.

 

만일 비구가 증상심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자주 이 제 四의 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니라.

 

비구는 상이 선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할 때에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생각은 악이요 환인 것을 관찰 할 때에도 또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며, 생각을 생각하지 않은 대에도 또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마땅히 차츰 생각을 감해 가기를 생각한다고 할 때에도 또한 착하지 않은 생각이 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비구는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이 난다’고. 그 비구는 곧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윗잇몸 천정에 대고 마음으로서 마음을 닦아 받아 가지고 항복 받아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가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아 받아 가지고 항복 받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나니, 마치 두 역사(力士)가 한 약한 사람을 붙잡아 받아 가지고 항복 받는 것과 같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도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윗잇몸 천정에 대고 마음으로서 마음을 닦아 받아 가지고 항복 받아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나지 않게 하나니, 그가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아 받아 가지고 항복 받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은 한결같아서 정을 얻는다.

 

만일 비구가 증상심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자주 이 제 五의 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을 것이니라.

 

만일 비구가 상이 선과 서로 맞는가를 생각할 때에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고, 생각이 악이요 환인 것을 생각할 때에도 또한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으며, 생각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또한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고, 만일 차츰 생각을 감해 자기를 생각할 때에도 또한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으며, 마음으로서 마음을 닦아 받아 가지고 항복 받을 때에도 또한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으면, 곧 자재(自在)를 얻어, 생각하고 싶으면 곧 생각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게 되면, 이것을 비구의 ‘모든 생각을 마음대로 하고, 모든 생각을 자재로이 하는 자취’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02. 염경(念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옛날 아직 위없는 바르고 지극한 깨달음을 깨치지 못하였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차라리 모든 생각[念]을 갈라 二분[分]으로 만들어, 욕심의 생각, 성냄의 생각, 해침의 생각을 一분으로 만들고, 욕심이 없는 생각, 성냄이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을 다시 一분으로 만들자’고. 나는 그 뒤에 곧 모든 생각을 갈라 二분으로 만들어, 욕심의 생각, 성냄의 생각, 해침의 생각을 一분으로 만들고, 욕심이 없는 생각, 성냄의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을 다시 一분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 행하여,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마음에 방일(放逸)이 없이 부지런히 힘써 수행할 때에 욕심의 생각이 났다.

 

나는 곧 욕심의 생각이 나서 스스로 해치고 남을 해쳐 둘을 함께 해치고, 슬기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얻지 못하는 줄을 깨달았다. 스스로 해치고 남을 해쳐 둘을 함께 해치고, 슬기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얻지 못하는 줄을 깨닫고는, 곧 빨리 그것을 없애었다.

 

다시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났다. 나는 곧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나서 스스로 해치고 남을 해쳐 둘을 함께 해치고 슬기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얻지 못하는 줄을 깨달았다. 스스로 해치고 남을 해쳐 둘을 함께 해치고, 슬기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얻지 못하는 줄을 깨닫고는, 곧 빨리 그것을 없애었다.

 

나는 욕심이 생각이 나더라도 그것을 받지 않고 끊어 없애어 버리며,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나더라도 그것을 받지 않고 끊어 없애어 버린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한량이 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마치 봄이 자난 뒤에는 밭에 종자를 뿌리기 때문에 소를 목지(牧地)에 놓으면, 그것이 넓지 않으므로 소치는 아이는 소를 들에 놓는다.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면 소치는 아이는 곧 작대기를 가지고 가서 막는 것과 같나니, 무슨 까닭인가. 소치는 아이는 그 때문에 반드시 나무람을 받고 매를 맞으며, 결박을 당하고 잘못이 있는 줄을 안다.

 

그러므로, 소치는 아이는 작대기를 가지고 가서 그것을 막는 것이다. 나도 또한 이와 같이 욕심의 생각이 나더라도 그것을 받지 않고 끊어 없애어 버리며,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나더라도 그것을 받지 않고 끊어 없애어 버린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한량이 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비구는 뜻[思]하는 바를 따라, 생각[念]하는 바를 따라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만일 비구가 욕심의 생각을 많이 생각하면, 곧 욕심이 없는 생각을 버리고, 욕심의 생각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만일 비구가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을 많이 생각하면, 곧 성냄이 없고 해침이 없는 생각을 버리고,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하느니라.

 

이렇게 비구가 욕심의 생각을 떠나지 않고 성냄의 생각을 떠나지 않고 해침의 생각을 떠나지 않으면, 곧 생, 노, 병, 사의 시름, 걱정, 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한 일체의 괴로움을 떠나지 못하느니라.

 

나는 이와 같이 행하여,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마음에 방일이 없이 부지런히 힘써 수행하여 욕심이 없는 생각이 났다. 나는 곧 욕심이 없는 생각이 나서 스스로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또한 함께 해치지 않고, 슬기를 닦고, 번거롭고 괴롭지 않아, 열반을 얻은 줄을 깨달았다.

 

스스로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또한 함께 해치지 않고, 슬기를 닦고, 번거롭고 괴롭지 않아, 열반을 얻은 줄을 깨닫고는, 곧 빨리 닦아 익히어 널리 폈다. 다시 성냄이 없는 생각과 해침이 없는 생각이 났다.

 

나는 곧 성냄이 없는 생각과 해침이 없는 생각이 나서 스스로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또한 함께 해치지 않고, 슬기를 닦고, 번거롭고 괴로움이 없어, 열반을 얻은 줄을 깨달았다. 스스로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또한 함께 해치지 않고, 슬기를 닦고, 번거롭고 괴로움이 없어, 열반을 얻은 줄을 깨닫고는, 곧 빨리 닦아 익히어 널리 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생각과 뜻[思]이 많은 생각을 내고, 성냄이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 듯이 많은 생각을 내었다.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뜻이 많은 생각은 몸이 정(定)하고 기쁨을 잊어, 곧 마음을 상하게 한다.

 

나는 차라리 안 마음을 다스려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어,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하자’고. 나는 뒤에, 곧 안 마음을 다스려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뜻이 한결같아서 정을 얻어,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였다.

 

나는 욕심이 없는 생각을 낸 뒤에, 다시 생각[念]을 내어 법을 향하고 법을 따르며, 성냄이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을 낸 뒤에, 다시 생각[念]을 내어 법을 향하고 법을 따른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한량이 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가을을 지난 뒤에는 일체 곡식을 거두어 마쳤으므로 소치는 아이가 소를 난들에 놓을 때와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소는 소 떼 가운데 있다’고. 무슨 까닭인가. 소치는 아이는 그로 말미암아 나무람을 받고 매를 맞으며, 결박을 당하고 잘못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소는 소 떼 가운데 있다’고. 나도 또한 이와 같이 욕심이 없고 생각이 난 뒤에는 다시 생각을 내어 법을 행하고 법을 따르며, 성냄이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이 난 뒤에는, 다시 생각을 내어 법을 향하고 법을 따른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그로 말미암아 한량이 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비구는 뜻하는 바를 따라, 생각을 따라,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만일 비구가 욕심이 없는 생각을 많이 내면, 곧 욕심의 생각을 버리고, 욕심이 없는 생각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만일 비구가 성냄이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을 많이 생각하면, 곧 성냄의 생각, 해침의 생각을 버리고, 성냄이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그는 감각과 관찰이 이미 쉬고, 안이 고요하여 한마음으로서, 감각도 없고 관찰도 없어, 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 二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기쁨의 욕심을 떠나 버리고 구함이 없는 데서 노닐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나니, 곧 성인(聖人)의 말씀한 바 성인의 버림[捨], 생각[念], 낙주(樂住), 정(定)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며, 기쁨과 걱정은 본래 이미 멸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생각[念]과 버림[捨]과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와 같이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고 누(漏)가 다한 신통의 지혜로 향해 나아가 스스로 증득한다. 그래서 곧 이 괴로움의 참뜻을 알고 이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이 괴로움의 멸을 알고 이 괴로움을 멸하는 길의 참 모양을 안다.

 

또한 이 누(漏)의 참뜻을 알고 이 누의 원인을 알며, 이 누의 멸을 알고 이 누를 멸하는 길의 참 모양을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 뒤에는 곧 욕심의 누(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누와 무명(無明)의 누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안다. 이 비구는 욕심을 떠나고 성냄의 생각을 떠나서, 해침의 생각을 떠나, 곧 생, 노, 병, 사와 시름, 걱정, 울음을 해탈하게 되고 일체의 괴로움을 떠나느니라.

 

마치 어떤 일없는 곳에 큰 샘물이 있는데, 거기 사슴 떼가 있어 그 가운데서 놀면서 산다 하자.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사슴 떼를 위하여 편리와 요익을 구하지 않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않아, 편편하고 바른 길을 막고 한 나쁜 길을 열러 큰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사람을 시켜 감시하게 하면, 이렇게 하여 사슴 떼는 모두 죽고 만다.

 

다시 어떤 사람은 와서 그 사슴 떼를 위하여 편리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여, 편편하고 바른 길을 열고 나쁜 길은 막고, 감시하는 사람을 물리치면, 이렇게 하여 사슴 떼는 모두 편안히 구제를 받는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이 비유를 들어 그 뜻을 알게 하려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뜻을 아나니, 이 비유에는 뜻이 있다. 큰 샘물은 곧 五욕(欲)의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이다. 어떤 것을 五라 하는가. 눈은 빛깔을 알고 귀는 소리를 알며,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며, 몸은 촉감을 아나니, 마땅히 알라. 큰 샘물이란 이 五욕이요, 사슴 떼란 이 사문과 바라문들이니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을 위하여 편리와 요익을 구하지 않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악마의 왕 파순(波旬)이요, 편편하고 바른 길을 막고 나쁜 길을 연다는 것은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니, 곧 욕심의 생각, 성냄의 생각, 해침의 생각이다.

 

마땅히 알라. 나쁜 길이란 이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니라. 다시 나쁜 길이 있다. 곧 八사도(邪道)이니, 삿된 소견과 내지 삿된 정(定)의 八이니라. 큰 구덩이를 만든다는 것은 무명(無明)이요, 사람을 시킨다는 것은 악마의 왕 파순의 권속이니라.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을 위하여 편리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는 것은 이 여래, 무소착, 등정각이요, 나쁜 길은 막고 편편하고 바른 길을 연다는 것은 세 가지 착한 생각이니, 곧 욕심이 없는 생각, 성냄이 없는 생각, 해침이 없는 생각이다. 마땅히 알라. 길이란 이 세 가지 착한 생각이니라. 다시 길이 있다. 곧 八정도(定道)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定)의 八이니라.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편편하고 바른 길을 열고, 나쁜 길은 막고 구덩이를 메우고 지키는 사람을 물리치며, 높은 스승이 제자를 위하는 것처럼 큰사랑과 슬픔을 일으켜 가엾이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여, 편리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일은 나는 이제 다해 마쳤다.

 

너희들도 마땅히 스스로 노력하라.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이나, 비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연좌(宴坐)하여 깊이 생각하되 방일하지 말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여 후회하게 하지 말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요, 이것이 나의 훈계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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