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23권
89. 비구청경(比丘請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아자그리하[王舍城]에 노닐으시다가, 중림 칼란다카 동산에 계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여름 안거(安居)를 맞으시었다. 그 때에 존자 마하아모옥갈라아나[大目犍連]는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일 어떤 비구가 여러 비구들에게 청한다. ‘여러분, 내게 말하고 나를 가르치고 내게 충고하더라도 나를 비난하지는 말라’고. 무슨 까닭인가. 여러분, 어떤 사람은 사나운 말을 성취하고 사나운 말의 법을 성취하여, 사나운 말의 법 때문에 모든 범행자들로 하여금 그와 말하지 않고 그를 가르치지 않으며, 그에게 충고하지 않으면서 그를 비난하기는 한다.
여러분, 어떤 것이 사나운 말의 법으로서, 만일 사나운 말의 법을 성취한 자 있으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와 말하지 않으며, 그를 가르치지도 않으며, 그에게 충고하지도 않으면서 그를 비난은 하는가.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은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한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면, 이것을 사나운 말의 법이라 한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行)에 물들어,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으며, 속이고 아첨하며, 간탐하고 질투하며, 부끄러움이 없으며, 성내고 모질며, 나쁜 마음을 품으며, 성내고 말 많으며, 비구의 충고를 꾸짖고, 비구의 경만을 꾸짖으며, 비구의 들냄을 꾸짖으며, 아주 서로 피하면서 바깥일을 말하며,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熾盛)하여, 악한 동무가 되어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면, 이것을 사나운 말의 법이라 한다. 여러분, 이것이 모든 사나운 말의 법으로서, 만일 사나운 말의 법을 성취한 자 있으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와 말하지 않으며, 그를 가르치지도 않고 충고하지도 않으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이라 한다.
여러분,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생각하여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악한 욕심이 있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 만일 내가 악한 욕심이 있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악한 욕심을 내지 않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에 물들어 말하지 않고 원한을 맺으며, 속이고 아첨하며, 간탐하고 질투하며, 부끄러움이 없으며, 성내고 모질며, 악한 뜻을 품으며, 성내고 말이 많으며, 비구의 충고를 꾸짖고, 비구의 경만을 꾸짖으며, 비구의 들냄을 꾸짖고, 아주 서로 피하면서 바깥일을 말하며,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하여, 악한 벗과 악한 짝이 되며,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 만일 내가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도 못하는 자가 되지 말지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여러분, 혹 어떤 비구가 여러 비구들에게 청하지 않는다. ‘여러분, 내게 말하고 나를 가르치고 내게 충고하더라도 나를 비난하지는 말라’고. 무슨 까닭인가.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은 착한 말을 성취하고 착한 말의 법 때문에 모든 범행자들은 그에게 잘 말하며, 잘 가르치고 잘 충고하여,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여러분, 어떤 것이 착한 말의 법으로서, 만일 착한 말의 법을 성취한 자 있으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에게 잘 말하며, 잘 가르치고 잘 충고하여,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가.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은 악한 욕심이 없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이 악한 욕심이 없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착한 말의 법이라 한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에 물들지 않아,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지 않고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으며, 간탐하거나 질투하지 않으며, 부끄러움이 없지 않으며, 성내고 모질거나 악한 뜻을 품지 않으며, 성내거나 말이 많지 않으며, 비구의 충고를 꾸짖지 않고 비구의 경만을 꾸짖지 않으며, 비구의 들냄을 꾸짖지 않으며, 아주 서로 피하면서 바깥일을 말하지 않으며,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하지 않아, 악한 벗과 악한 짝이 되지 않으며,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도 않으면, 이것을 착한 말의 법이라 한다. 여러분, 이것이 착한 말의 법으로서, 만일 착한 말의 법을 성취한 자 있으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에게 잘 말하며, 잘 가르치고 잘 충고하여,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여러분,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생각하여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악한 욕심이 없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만일 내가 악한 욕심이 없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한다’고.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악한 욕심을 행하지 않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에 물들지 않아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으며,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고 간탐하거나 질투하지 않으며, 부끄러움이 없지 않으며, 분내고 모질거나 악한 뜻을 품지 않으며, 성내거나 말이 많지 않으며, 비구의 충고를 꾸짖지 않고 비구의 경만을 꾸짖지 않으며, 비구의 들냄을 꾸짖지 않고, 아주 서로 피하면서 바깥일을 말하지 않으며,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하지 않아, 악한 짝이 되지 않으며, 은혜도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도 않으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만일 내가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도 않으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한다’고.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지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여러분, 비구가 만일 이렇게 관찰하면 반드시 요익함이 많을 것이다. 곧 ‘나는 악한 욕심이 있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는가. 악한 욕심이 없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가’고.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한 때에, 나는 악한 욕심이 있고 악한 욕심을 생각한다고 알면, 기뻐하지 않고 곧 끊기를 구할 것이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에 나는 악한 욕심이 없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면, 곧 ‘나는 스스로 청정하여 높은 법을 배우기를 구한다’고 기뻐할 것이다. 여러분, 마치 눈이 있는 사람이 거울로 스스로 비추어, 그 얼굴이 깨끗한가 깨끗하지 않은가를 보는 것과 같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거울로 스스로 비추어, 그 얼굴이 깨끗한가 깨끗하지 않은가를 보는 것과 같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얼굴에 때가 있는 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고 곧 씻으려고 한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얼굴에 때가 없는 것을 보면, 곧 ‘내 얼굴은 청정하다’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에, ‘나는 악한 욕심이 있고 악한 욕심을 생각한다’고 알면, 기뻐하지 않고 곧 끊으려고 한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한 때에 ‘나는 악한 욕심이 없고 악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면, ‘나는 스스로 청정하여 높은 법을 배우기를 구한다’하며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더러운 행에 물들었는가. 더러운 행에 물들지 않았는가.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었는가,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지 않았는가.
속이거나 아첨하는가,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는가. 간탐하거나 질투하는가, 간탐하거나 질투하지 않는가. 부끄러움이 없는가, 부끄러움이 없지 않는가. 성내고 모질거나 악한 뜻을 품었는가, 성내고 모질거나 악한 뜻을 품지 않았는가.
성내거나 말이 많은가, 성내거나 말이 많지 않은가. 비구의 충고를 꾸짖는가, 비구의 충고를 꾸짖지 않는가. 배구의 경만을 꾸짖는가, 비구의 경만을 꾸짖지 않는가. 비구의 들냄을 꾸짖는가, 비구의 들냄을 꾸짖지 않는가.
아주 서로 피하는가, 아주 서로 피하지 않는가. 바깥일을 말하는가, 바깥일을 말하지 않는가.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한가,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하지 않은가. 악한 벗과 악한 짝이 되는가, 악한 벗과 악한 짝이 되지 않는가. 은혜도 없고 은혜도 알지 못하는가,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 않는가’고.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한 때에 ‘나는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한다.’고 알면, 기뻐하지 않고 곧 끊으려고 한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한 때에 ‘나는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도 않는다’고 알면, 곧 기뻐하며, ‘나는 스스로 청정하여 높은 법을 배우기를 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 마치 눈이 있는 사람이 거울로 스스로 비추어, 그 얼굴이 깨끗하지 않는가를 보는 것과 같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얼굴에 때가 있는 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고 곧 씻으려고 한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얼굴에 때가 없는 것을 보면, 곧 기뻐서 ‘내 얼굴은 청정하다’고 한다. 여러분, 이와 같이 만일 비구가 관찰한 때에 ‘나는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한다’고 알면, 기뻐하지 않고 곧 끊으려 한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한 때에 ‘나는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도 않는다’고 알면, 곧 기뻐하며 ‘나는 청정하여 높은 법을 배우기를 구한다’고 한다.
기뻐함[悅]으로 말미암아 곧 큰 기쁨[喜]을 얻고, 큰 기쁨으로 말미암아 곧 몸의 휴식을 얻으며, 몸의 휴식으로 말미암아 곧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고,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곧 고요한 마음을 얻는다.
여러분,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고요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곧 실다움을 보고 참다움을 알며, 실다움을 보고 참다움을 앎으로 말미암아 곧 싫어하게 되고,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곧 욕심이 없게 되며, 욕심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곧 해탈을 얻고, 해탈로 말미암아 곧 해탈한 줄을 알게 되어,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 뜻을 안다.”
존자 마하아모옥갈라아나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존자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0. 지법경(知法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코오삼비이[拘舍彌]에 노닐으시면서 구사라(瞿師羅)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춘다[周那]는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고.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고 산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다’고.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고 산다. 모든 범행자들은 그 분이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지 않은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은 마음에 탐욕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지 않은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여러분, 마치 어떤 사람이 부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일컬어 부자라 말하고, 또한 나라의 봉(封)이 없으면서 나라의 봉이 있다고 말하며, 또 목축(牧畜)이 없으면서 목축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만일 쓰고자 할 때에는 곧 금, 은, 진주, 유리, 수정, 호박이 없고, 목축과 미곡이 없으며, 또한 종들도 없다.
모든 친한 벗들이 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진실로 부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일컬어 부자라 말하고, 또한 나라의 봉이 없으면서 나라의 봉이 있다고 말하며, 또 목축이 없으면서 목축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쓰고자 할 때에는 곧 금, 은, 진주, 유리, 수정, 호박이 없고, 목축과 미곡이 없으며, 또한 종들도 없다’고.
이와 같이 여러분,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고.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탐욕을 가지고 산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다’고.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고 산다.
모든 범행인들은 그 분이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지 않은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의 마음은 탐욕을 향하여, 다 남음이 없이 열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지 않은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의 마음은 나쁜 소견의 법을 향하여, 다 남음이 없이 열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혹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고.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지 않고 산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지 않고 산다. 모든 범행인들은 그 분은 진실로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는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은 마음에 탐욕을 가지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는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여러분,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부자이면서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또한 나라의 봉이 있으면서 나라의 봉이 없다고 말하며, 또 목축이 있으면서 목축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만일 쓰려고 할 때에는 곧 금, 은, 진주, 유리, 수정, 호박이 있고, 목축과 미곡이 있으며, 또한 종들도 있다.
모든 친한 벗들이 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진실로 큰 부자이면서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또한 나라의 봉이 있으면서 나라의 봉이 없다고 말하며, 또 목축이 있으면서 목축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쓰려고 할 때에는 곧 금, 은, 진주, 유리, 수정, 호박이 있고, 목축과 미곡이 있으며, 또한 종들이 있다’고. 이와 같이 여러분, 혹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고.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지 않고 산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지 않고 산다. 모든 범행인들은 그 분이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는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의 마음은 탐욕을 향하여 다 남음이 없이 열반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이 없지 않은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분의 마음은 나쁜 소견의 법을 향하여 다 남음이 없이 열반하였기 때문이다.
존자 춘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 여러 비구들은 존자 춘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1. 주나문견경(周那問見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코오삼비이에 노닐으시면서 구사라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춘다[周那]는 해질녘에 연좌(宴座)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시는 데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모든 소견이 나고 또 나나이다. 곧 ‘신(神)이 있다’고 헤아리고, ‘중생이 있다, 사람이 있다, 수(壽)가 있다. 명(命)이 있다, 세간이 있다.’고 헤아리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이런 소견을 멸하게 하여 그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으며, 다른 소견을 계속하지 않게 하여 그것을 받지 않겠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춘다여, 세상에는 모든 소견이 나고 또 난다. 곧 ‘신이 있다’고 헤아리고, ‘중생이 있다, 수(壽)가 있다, 명(命)이 있다, 세간이 있다’고 헤아린다. 춘다여, 만일 모든 법을 멸해 다하면,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이런 소견을 멸하게 하여 그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으며, 다른 소견을 계속하지 않게 하여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니, 춘다여,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워라.
춘다여, 성인의 법,률 안에는 어떤 것이 차츰 더는 것인가. 비구는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 四선(禪)까지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차츰 덜기를 행하자’고. 춘다여, 성인의 법, 률에는 다만 차츰 덜기만 있지 않다. 四증상심(增上心)과 현법락거(現法樂居)가 있어, 행자(行者)는 이것을 좇아 일어났다가 다시 들어온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차츰 덜기를 행하자’고. 춘다여, 거룩한 법, 률에는 다만 이 차츰 덜기만 있지 않다. 비구는 일체의 색상(色想)을 건너 비유상(非有想), 비무상처(非無想處)까지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차츰 덜기를 행하자’고. 춘다여, 거룩한 법, 률에는 다만 이 차츰 덜기만 있지 않다. 四식해탈(息解脫)이 있어, 색(色)을 떠나고 무색(無色)을 얻나니, 비구는 이것을 좇아 일어나 마땅히 남을 위하여 설법하라.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차츰 덜기를 행하자’고. 춘다여, 성인의 법, 률에는 다만 이 차츰 덜기만 있지 않다. 춘다여, 남은 나쁜 욕심과 생각하는 욕심이 있는데, 나는 나쁜 욕심과 생각하는 욕심이 없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해칠 뜻과 분노가 있는데, 나는 해칠 뜻과 분노가 없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범행(梵行)이 아닌 것이 있는데, 나는 생물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은 가지지 않으며 범행이 아닌 것이 없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탐욕과 다툼, 수면, 얽매임, 조롱, 뽐냄이 있고 또 의혹이 있는데, 나는 의혹이 없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분노와 맺음, 아첨, 속임, 부끄러움 없음이 있는데, 나는 부끄러움이 있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거만이 있는데, 나는 거만이 없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많이 듣지는 못하는데, 나는 많이 들은 것이 있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모든 선법(善法)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나는 모든 선법을 보았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법이 아닌 악행을 행하는데, 나는 옳은 법인 묘행(妙行)을 행하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의 나쁜 계(戒)가 있는데, 나는 나쁜 계가 없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남은 믿지 않고 게으르며 생각이 없고 정(定)이 없고 또 나쁜 슬기가 있는데, 나는 나쁜 슬기가 없는가. 마땅히 차츰 덜기를 배우리라 한다.
춘다여, 만일 다만 마음을 내어 모든 선법을 생각하고, 모든 선법을 배우기를 구하기만 하더라도 곧 요익되는 바가 많겠거늘, 하물며 다시 몸과 입으로 선법을 행함이겠는가. 춘다여, 남이 나쁜 욕심과 생각하는 욕심이 있거든 나는 나쁜 욕심과 생각하는 욕심이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해칠 뜻과 분노가 있거든 나는 해칠 뜻과 분노가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남이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범행이 아닌 것이 있거든 나는 범행이 아닌 것이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탐욕과 다툼, 수면, 들뜨고 뽐냄이 있으며 또 의혹이 있거든 나는 의혹이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원한과 아첨, 속임, 부끄러움 없는 것이 있거든 나는 부끄러움이 있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거만이 있거든 나는 거만이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더한 거만이 있거든 나는 더한 거만이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많이 듣지 못하거든 나는 많이 듣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모든 선법을 보지 못하거든 나는 모든 선법을 보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법이 아닌 것과 악행을 행하거든 나는 옳은 법과 묘행을 행하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의 나쁜 계가 있거든 나는 나쁜 계가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춘다여, 남이 믿지 않고 게으르며, 생각이 없고 정(定)이 없으며, 그리고 나쁜 슬기가 있거든 나는 나쁜 슬기가 없도록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춘다여, 마치 악한 도(道)와 바른 도가 대(對)가 되고 마치 악한 나루터와 바른 나루터가 대가 되듯이, 이와 같이 춘다여, 나쁜 욕심은 나쁜 욕심이 아닌 것과 대하고, 해칠 뜻과 분노는 해칠 뜻과 분노가 아닌 것과 대하며,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범행이 아닌 것은 범행과 대하고, 탐욕과 다툼, 수면, 들뜨고 뽐냄과 의혹은 의혹이 아닌 것과 대하며, 원한과 아첨, 숙임과 부끄러움이 없음은 부끄러움과 대하고, 거만은 거만이 아닌 것과 대하며, 더한 거만은 더한 거만이 아닌 것과 대하고,
많이 듣지 못한 것은 많이 들은 것과 대하며, 모든 선법을 보지 못하는 것은 모든 선법을 보는 것과 대하며, 법이 아닌 것과 악행을 행하는 것은 옳은 법과 묘행을 행하는 것과 대하고,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의 나쁜 계는 좋은 계와 대하며, 믿지 않고 게으르며, 생각이 없고 정(定)이 없는 나쁜 슬기는 좋은 슬기와 대하느니라.
춘다여, 혹 어떤 법이 검으면 검은 갚음이 있어 나쁜 곳으로 나아가고, 혹 어떤 법이 희면 흰 갚음이 있어 위로 오르게 된다. 이와 같이 춘다여, 나쁜 욕심은 나쁜 욕심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해칠 뜻과 분노는 해칠 뜻과 분노가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범행이 아닌 것은 범행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탐욕과 다툼, 수면, 들뜨고 뽐냄과 의혹은 의혹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원한과 아첨, 숙임과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부끄러움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거만은 거만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더한 거만은 더한 거만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많이 듣지 못한 것은 많이 들은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모든 선법을 관찰하지 않는 것은 모든 선법을 관찰하는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법이 아닌 것과 악행을 행하는 것은 옳은 법과 묘행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의 나쁜 계는 좋은 계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믿지 않고 게으르며, 생각이 없고 정이 없는 나쁜 슬기는 좋은 슬기로써 위로 오르게 되느니라.
춘다여, 만일 스스로 다루지 아니하고, 남이 다루지 않는 것을 다루려고 한다면 마침내 그리 될 수 없고, 스스로 빠지면서 남이 빠지는 것을 건져내려 한다면 마침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춘다여, 만일 스스로 다루고 남이 다루지 않는 것을 다루려 한다면 반드시 그리 될 것이요, 스스로 빠지지 않고 남이 빠지는 것을 건져내려 한다면 반드시 그리 될 수 있으며, 스스로 반열반하고 남이 반열반하지 않은 것을 반열반시키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이와 같이 춘다여, 나쁜 욕심은 나쁜 욕심이 아닌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해칠 뜻과 분노는 해칠 뜻과 분노가 아닌 것으로서 반열반하게 되며,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범행이 아닌 것은 범행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분노와 다툼, 수면, 조롱, 뽐냄과 의혹은 의혹이 아닌 것으로서 반열반하게 되며, 분노와 맺음, 아첨, 속임과 부끄러움이 없음은 부끄러움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거만은 거만이 아닌 것으로서 반열반하게 되며,
더한 거만은 더한 거만이 아닌 것으로서 반열반하게 되고, 많이 듣지 못한 것은 많이 듣는 것으로서 반열반하게 되며, 모든 선법을 관찰하지 못한 것은 모든 선법을 관찰하는 것으로서 반열반하게 되고, 법이 아닌 것과 악행을 하는 것은 옳은 법과 묘행을 행하는 것으로서 반열반하게 되며,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의 나쁜 계는 좋은 계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믿지 않고 게으르며, 생각이 없고 정이 없는 나쁜 슬기는 좋은 슬기로서 반열반하게 되느니라.
이것은 춘다를 위한 것이니, 나는 이미 너를 위하여 차츰 더는 법을 말하였고, 이미 마음을 내는 법을 말하였으며, 이미 대(對)의 법을 말하였고, 이미 위로 오르는 법을 말하였으며, 이미 반열반의 법을 말하였다. 높은 스승이 제자를 위하는 것처럼, 큰사랑과 슬픔을 일으켜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며, 옳음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기를 나는 이제 이미 다하였으니,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노력하라.
일없는 곳이나 산림, 나무 밑,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가서 좌선(坐禪)하고 사유(思惟)하여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후회하게 하지 말라. 이것은 나의 가르침이요 나의 훈계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존자 춘다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2. 청백연화유경(靑白蓮華唯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떤 법은 몸을 따라서 멸하고 입을 따라서 멸하지 않으며, 어떤 법은 입을 따라서 멸하고 몸을 따라서 멸하지 않으며, 또 어떤 법은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다만 슬기의 소견을 따라 멸한다.
어떤 법이 몸을 따라 멸하고 입을 따라 멸하지 않는가. 비구가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져 몸에 집착하면,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는 그 비구를 꾸짖는다.
‘그대여,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졌는데, 무엇 하러 몸에 집착하는가. 그대여,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버리고 착한 몸의 행을 닦아 익혀라’고. 그는 그 뒤에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버리고, 착한 몸의 행을 닦아, 익힌다. 이것을 법이 몸을 따라 멸하고 입을 따라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법이 입을 따라 멸하고 몸을 따라 멸하지 않는가. 비구가 착하지 않은 입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져 입에 집착하면,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는 그 비구를 꾸짖는다. ‘그대여, 착하지 않은 입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졌는데, 무엇 하러 입에 집착하는가.
그대여, 착하지 않은 법의 행을 버리고, 착한 입의 행을 닦아 익혀라’고. 그는 그 뒤에 착하지 않은 법의 행을 버리고, 착한 입의 행을 닦아 익힌다. 이것을 법이 입을 따라 멸하고 몸을 따라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법이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다만 슬기의 소견을 따라 멸하는가. 탐욕은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다만 슬기의 소견을 따라 멸한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이 없음,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도 따라 멸한다. 이것을 법이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다만 슬기의 소견을 따라 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여래는 혹 관찰할 때가 있어,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이 사람은 이렇게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슬기를 닦지 않는 것을 안다. 만일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슬기를 닦는다면, 탐욕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질투, 속임, 아첨, 부끄러움 없음도 또한 그러하며,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니라.
이 사람은 이와 같이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슬기를 닦는 줄을 안다. 만일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슬기를 닦으면 탐욕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 원한, 분노, 얽매임, 말하지 않는 맺음, 아낌, 속임, 아첨, 부끄러움 없음도 또한 그러하며,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나쁜 욕심과 나쁜 소견을 가지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마치 푸른 연꽃과 붉고, 빨갛고, 흰 연꽃이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랐지마는, 물위에 나와 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여래는 세간에서 나서 세간에서 자랐지마는 세간을 뛰어나, 행이 세간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 무소착, 등정각은 일체 세간을 뛰어났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총채를 잡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존자 아아난다는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무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아 가져야 하리이까.”
이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아난다야, 이 경은 <청백연화유>라 이름하고, 너는 마땅히 이렇게 잘 받아 가져 외워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마땅히 함께 이 <청백연화유>을 받아, 외워 익히고 지켜 가져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청백연화유경은 법다워서 뜻이 있으며, 이것은 범행의 근본으로서 신통을 이루고 깨달음을 이루며, 또한 열반을 이루느니라. 만일 족성자(族姓子)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이 청백연화유경을 받아, 잘 외워 가져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존자 아아난다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3. 수정범지경(水淨梵志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우루벨라[鬱鞞羅]의 나이란자나[尼連] 강가에 노닐으시면서 아자파알라의 니그로오다[尼拘類]나무 밑에 계시어, 처음으로 도를 얻으신 때다.
어떤 수정 범지(水淨梵志)는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부처님 계신 데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수정 범지가 오는 것을 보시고, 수정 범지를 인연으로 하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二十 一의 더러움[穢]에 마음을 더럽힌 자가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二十 一의 더러움인가. 곧 삿된 소견을 가진 마음의 더러움과 법이 아닌 욕심의 더러움, 나쁜 탐욕의 더러움, 삿된 법의 더러움, 잠자는 마음의 더러움, 들뜨는 마음의 더러움, 의혹 하는 마음의 더러움, 분노에 얽매인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질투하는 마음의 더러움, 속이는 마음의 더러움, 아첨하는 마음의 더러움, 스스로 부끄러움[慚]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남에게 부끄러움[愧]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업신여기는 마음의 더러움, 방일한 마음의 더러움이다.
만일 이 二十 一의 더러움에 마음을 더럽힌 자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마치 기름때 묻은 옷을 물들이는 집에 가져다주면, 그 집에서는 잿물로나 가루비누로, 혹은 흙물로 잘 빨아 깨끗하게 하지마는, 그 때묻은 옷은 여전히 더러운 빛이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만일 二十 一의 더러움에 마음을 더럽힌 자가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二十 一의 더러움인가. 곧 삿된 소견을 가진 마음의 더러움과 법이 아닌 욕심의 더러움, 나쁜 탐욕의 더러움, 삿된 법의 더러움, 잠자는 마음의 더러움, 들뜨는 마음의 더러움, 의혹 하는 마음의 더러움, 분노에 얽매인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질투하는 마음의 더러움, 속이는 마음의 더러움, 아첨하는 마음의 더러움,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업신여기는 마음의 더러움, 방일한 마음의 더러움이다. 만일 이 二十 一의 더러움에 마음을 더럽힌 자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만일 二十 一의 더러움에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마음의 二十 一의 더러움인가. 삿된 소견을 가진 마음의 더러움과 법이 아닌 욕심의 더러움, 나쁜 탐욕의 더러움, 삿된 법의 더러움, 잠자는 마음의 더러움, 들뜨는 마음의 더러움, 의혹 하는 마음의 더러움, 분노에 얽매인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질투하는 마음의 더러움, 속이는 마음의 더러움, 아첨하는 마음의 더러움,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업신여기는 마음의 더러움, 방일한 마음의 더러움이다.
만일 이 二十 一의 더러움에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마치 희고 깨끗한 파라나(波羅奈) 옷을 물들이는 집에 가져다주면, 그 집에서는 잿물로나 가루비누로, 혹은 흙물로 잘 빨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 희고 깨끗한 파라나옷은 물들이는 집에서 잿물로나 가루비누로, 혹은 흙물로 잘 빨아 깨끗하게 하지마는, 그러나 이 희고 깨끗한 파라나옷은 본래 이미 깨끗하여 다시 깨끗해진다.
이와 같이 만일 二十 一의 더러움에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마음의 二十 一의 더러움인가. 곧 삿된 소견을 가진 마음의 더러움과 법이 아닌 욕심의 더러움, 나쁜 탐욕의 더러움, 삿된 법의 더러움, 잠자는 마음의 더러움, 들뜨는 마음의 더러움, 의혹 하는 마음의 더러움, 분노에 얽매인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질투하는 마음의 더러움, 속이는 마음의 더러움, 아첨하는 마음의 더러움,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업신여기는 마음의 더러움, 방일한 마음의 더러움이다. 만일 이 二十 一의 더러움에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만일 삿된 소견이 마음의 더러움인 줄 알면, 알고는 곧 끊는다. 이와 같이 법이 아닌 욕심의 더러움과 나쁜 탐욕심의 더러움, 삿된 법의 마음의 더러움, 탐하는 마음의 더러움, 탐하는 마음의 더러움, 삿된 법의 마음의 더러움, 성내는 마음의 더러움, 잠자는 마음의 더러움, 들뜨는 마음의 더러움, 의혹 하는 마음의 더러움, 분노에 얽매인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말하지 않는 원한의 마음의 더러움, 아끼는 마음의 더러움, 질투하는 마음의 더러움, 속이는 마음의 더러움, 아첨하는 마음의 더러움,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의 더러움,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 크게 거만한 마음의 더러움과 업신여기는 마음의 더러움도 또한 그러하며, 만일 방일한 마음의 때인 줄 알면, 알고는 곧 끊는다.
그의 마음은 사랑[愛]과 함께 하여 一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렇게 二, 三, 四방, 四유(維), 상, 하의 일체에 두루 하고, 사랑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슬픔[悲]과 기쁨[喜]도 또한 그러하며, 마음은 버림[捨]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범지여, 이것은 ‘안 마음을 목욕시키고 바깥 몸을 목욕시키는 것이 아니라.’하느니라.”
그 때에 범지는 세존께 사뢰었다.
“고오타마시여, 물이 많은 하수에 가서 목욕하시오.”
세존께서는 물으셨다.
“범지여, 만일 물이 많은 하수에 가서 목욕하면 무슨 소득이 있는가.”
“고오타마시여, 저 물이 많은 하수는 세간의 재(齋)의 조촐한 상(相)이요 구제의 상이요 복의 상입니다. 고오타마시여, 만일 물이 많은 하수에 가서 목욕하면 곧 일체의 악을 깨끗이 없앨 것입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범지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묘호수(妙好首) 범지여
혹 물 많은 하수에 들어가는 것
그것은 어리석고 언제나 장난하는 것
검은 업(業)을 깨끗하게 할 수 없느니
호수여, 무엇 하러 샘으로 가리
물 많은 하수에 무슨 뜻 있는가.
사람이 좋지 않은 업을 짓거니
맑은 물이라 무슨 이익 있는가
깨끗한 사람은 때와 더러움 없고
깨끗한 사람은 항상 계를 말하며
깨끗한 사람의 청백한 업은
언제나 청정한 행을 가진다
만일 너 산목숨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 가지지 않으며
언제나 진실하여 거짓말하지 않고
범지여,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일체 중생은 편안하리라’고
범지여, 무엇 하러 집에 돌아가느냐
집에 샘물은 깨끗함이 없나니
범지여, 너는 배워야 한다
‘깨끗이 씻기는 착한 법으로 한다’고
이렇게 더럽고 나쁜 물 쓰랴
그것은 다만 몸엣 때 없앨 뿐이다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도 또한 그렇게 생각하나이다. ‘깨끗이 씻기는 착한 법으로 하나니 어떻게 더럽고 나쁜 물을 쓰랴’고.”
범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과 법과 승에게 귀의(歸依)하였다. 범지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나이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이미 해득하였나이다. 저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하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하소서. 오늘부터 몸이 맞도록 스스로 돌아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호수(好首) 수정 범지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4. 흑비구경(黑比丘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동원(東園) 녹모당(鹿母堂)에 계시었다. 이 때에 항상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흑비구(黑比丘)라는 녹모(鹿母)의 아들은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흑비구가 오는 것을 보시고, 흑비구를 인연하여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싸움하기를 좋아하여, 싸움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아니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항상 싸움하기를 좋아하여 싸움을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 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느니라.
혹 어떤 사람은 나쁜 욕심을 가지어, 나쁜 욕심을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을 가지어, 나쁜 욕심을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 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 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잡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계(戒)를 범하고 계를 넘으며, 계를 깨고 계를 구멍내며, 계를 더럽혀서, 계를 가지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를 범하고 계를 넘으며, 계를 깨고 계를 구멍내며, 계를 더럽혀서, 계를 가지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 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가지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느니라.
혹 어떤 사람이 분노에 얽매임과 말하지 않는 원한, 아낌, 질투, 아첨, 속임,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음과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어, 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분노에 얽매임과 말하지 않는 원한, 아낌, 질투, 아첨, 속임,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음과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어, 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 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 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경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가지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느니라.
혹 어떤 사람은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지 않고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지 않고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 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 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가지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느니라.
어떤 사람은 모든 법을 관찰하지 않고 모든 법을 관찰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법을 관찰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 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 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가지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연좌(宴坐)하지 않고 연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연좌하지 않고 연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 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 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가지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느니라.
이 사람은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러나, 모든 범행자는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는 이런 한량이 없는 악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한량이 없는 악한 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치 나쁜 말이 마판에 매어 있어 길러지는 것과 같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내게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보살피도록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러나, 사람들은 안온한 곳에 매어 두지도 않고 좋은 음식을 주지도 않으며, 잘 보살피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말은 나쁜 성질이 있으니, 곧 지극히 추하고 더러우며, 온순하지 않으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안온한 곳에 매어 두지 않고 좋은 음식을 주지 않으며, 잘 보살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도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러나,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공경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람은 이런 한량이 없는 악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한량이 없는 악한 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지 않게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싸움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싸움을 그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싸움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싸움을 그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가지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 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그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그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가지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 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계를 범하지 않고 계를 넘지 않으며, 계를 깨지 않고 계를 구멍내지 않으며, 계를 더럽히지 않고 계를 가지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를 범하지 않고 계를 넘지 않으며, 계를 깨지 않고 계를 구멍내지 않으며, 계를 더럽히지 않고 계를 가지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가지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 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분노에 얽매임과 말하지 않는 원한,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없고,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 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분노에 얽매임과 말하지 않는 원한, 아낌, 질투, 아첨, 숙임이 없고,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 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가지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 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고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고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가지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 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혹 어떤 사람은 모든 법을 관찰하고 모든 법을 관찰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법을 관찰하고 모든 법을 관찰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가지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 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연좌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연좌하고 연좌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레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가지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 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이 사람은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러나, 모든 범행자는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긴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람은 이런 한량이 없는 선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한량이 없는 선한 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는 것이다. 마치 좋은 말이 마판에 매어 길러지는 것과 같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내게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보살피도록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러나, 사람들은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좋은 음식을 주며, 잘 그것을 보살핀다. 무슨 까닭인가.
그 말은 착한 성질이 있어, 곧 부드럽고 화(和)하여 지극히 온순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보살피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도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러나,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5. 주법경(住法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물러나는 착한 법은 머무르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머무르는 착한 법은 물러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더하는 착한 법은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것을 물러나는 착한 법은 머무르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만일 금계(禁戒)를 독실히 믿고 널리 듣고 보시하며, 지혜와 변재와 아함(阿含)과 모든 얻는 바가 없으면, 그 사람은 이 법에서 물러나 머무르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물러나는 착한 법은 머무르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머무르는 착한 법은 물러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가 금계를 독실히 믿고 널리 듣고 보시하며, 지혜와 변재와 아함과 또 그 얻는 바가 있으면, 그 사람은 이 법에서 머물러 물러나지도 않는다. 이것을 머무르는 착한 법은 물러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더하는 착한 법은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만일 금계를 독실히 믿고 널리 듣고 보시하며, 지혜와 변재와 아함과 또 그 얻는 바가 있으면, 그 사람은 이 법에서 더해서,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는다. 이것을 더하는 착한 법은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는 것이라 한다.
비구가 이렇게 관찰하면 반드시 요익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곧 ‘나는 탐욕이 많은가, 탐욕이 많지 않은가. 나는 성내는 마음이 많은가, 나는 성내는 마음이 많지 않은가. 나는 수면(睡眠)에 얽맴이 많은가, 수면에 얽맴이 많지 않은가. 나는 뽐냄이 많은가, 뽐냄이 많지 않은가. 나는 의혹이 많은가, 의혹이 많지 않은가.
나는 몸으로 다툼이 많은가. 몸으로 다툼이 많지 않은가. 나는 더러운 마음이 많은가. 더러운 마음이 많지 않은가. 나는 믿음이 많은가. 믿음이 많지 않은가. 나는 정진이 많은가, 게으름이 많은가. 나는 기억이 많은가, 기억이 많지 않은가. 나는 정(定)이 많은가, 정이 많지 않은가.
나는 나쁜 슬기가 많은가, 나쁜 슬기가 많지 않은가’고.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에 ‘나는 탐욕과 성내는 마음, 수면의 얽맴, 뽐냄, 의혹, 몸의 다툼, 더러운 마음, 믿지 않음, 게으름, 기억이 없음과 나쁜 슬기가 많은 줄을 알면, 그 비구는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되느니라.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求)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되느니라.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에 나는 탐욕이 없고 또는 성내는 마음, 수면의 얽맴, 뽐냄, 의혹, 몸의 다툼, 더러운 마음이 없고, 믿음이 있고 정진, 기억과 정(定)이 있으며, 나쁜 슬기가 없는 줄을 알면, 그 비구는 이 착한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수행하고 널리 펴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되느니라.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착한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수행하고 널리 펴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6. 무경(無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샤아리푸트라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여러분, 만일 비구, 비구니로서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들을 수 없고, 이미 들은 법은 곧 잊어버리면, 혹 어떤 법을 본래 수행하여 널리 펴고 외우며, 슬기로써 해득한 것도 그는 다시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여러분, 이것을 비구, 비구니의 법의 쇠퇴(衰退)라 한다. 여러분, 만일 비구, 비구니로서 아직 듣지 못한 법은 곧 듣고, 이미 들은 법은 잊어버리지 않으면, 혹 어떤 법을 본래 수행하여 널리 펴고 외우며, 슬기로서 해득한 것은 항상 기억하고 그리고 다시 안다. 이것을 비구, 비구니의 깨끗한 법의 더욱 더함이라 한다.
여러분,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라. 곧 ‘나는 탐욕이 있는가, 탐욕이 없는가. 나는 성내는 마음이 있는가, 성내는 마음이 없는가. 나는 잠의 얽맴이 있는가, 잠의 얽맴이 없는가. 나는 들뜸이 있는가, 들뜸이 없는가. 나는 의혹이 있는가, 의혹이 없는가.
나는 몸의 다툼이 있는가. 몸의 다툼이 없는가. 나는 더러운 마음이 있는가. 더러운 마음이 없는가. 나는 믿음이 있는가. 믿음이 없는가. 나는 정진이 있는가, 정진이 없는가. 나는 기억이 있는가, 기억이 없는가. 나는 정(定)이 있는가, 정이 없는가. 나는 나쁜 슬기가 있는가, 나쁜 슬기가 없는가’고.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에 ‘나는 탐욕이 있고 성내는 마음, 잠의 얽맴, 들뜸, 의혹, 몸의 다툼과 더러운 마음이 있고, 믿음이 없고 정진과 기억, 정이 없으며, 나쁜 슬기가 있다고 알면, 여러분, 그 비구는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는다.
여러분,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求)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여러분, 이 비구도 또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는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에, 나는 탐욕이 없고, 성내는 마음과 잠의 얽맴, 들뜸, 의혹, 몸의 다툼과 더러운 마음이 없고, 믿음이 있고 정진과 기억, 정이 있고, 나쁜 슬기가 없다고 알면, 그 비구는 이 착한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수행하고 널리 펴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된다.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착한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수행하고 널리 펴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된다.”
존자 샤아리푸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존자 샤아리푸트라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