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26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19:47

중아함경 제26권

 

103. 사자후경(獅子吼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큐루우수에 노닐으시면서 도읍인 캄마싯담마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가운데 제 一의 사문, 제 二, 제 三, 제 四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는 다시 사문, 바라문이 없다.

 

이도(異道)는 일체가 공(空)해서 사문, 바라문이 없다. 너희들은 대중 가운데 있을 때에는 어디서나 이렇게 사자처럼 외쳐라.

 

비구들이여, 혹 어떤 이학(異學)이 와서 너희들에게 묻기를 ‘너희들은 어떤 행이 있고 어떤 힘이 있으며 어떤 지혜가 있어서, 너희들로 하여금 여기는 제 一의 사문, 제 二, 제 三, 제 四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는 다시 다른 사문, 바라문이 없어, 이도(異道)는 일체가 공해서 사문, 바라문이 없다고 말하게 하는가.

 

너희들은 어떻게 대중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이렇게 사자처럼 외치는가’고 하거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그 이학들에게 ‘우리 세존께서는 앎이 있고 소견이 있다.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는 四법을 말씀하시는데, 이 四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이렇게 말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四인가. 우리는 스승님을 믿고, 법을 믿고, 계덕(戒德)의 우족을 믿고, 도(道)를 같이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긴다. 우리 세존께서는 앎이 있고 소견이 있다.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는 이 四법을 말씀하시고, 이 四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하신다. 곧 ‘여기 제 一의 사문, 제 二, 제 三, 제 四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는 다시 사문, 바라문이 없다. 이도는 일체가 공해서 사문, 바라문이 없다고. 우리는 대중 가운데 있을 때에는 어디서나 이렇게 사자처럼 외는 것이다.’고 대답하라.

 

비구들이여, 이학들은 혹 다시 이렇게 말하리라. ‘우리도 또한 스승님을 믿으니, 곧 우리 스승님이요, 법을 믿으니 곧 우리 법이며, 계덕의 구족은 곧 우리 계요, 도를 같이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니, 곧 우리 도를 같이하는 출가자(出家者)와 재가자(在家者)들이다.

 

사문 고오타마와 우리들과의 이 두 가지 말에 어느 것이 낫고 어떤 뜻이 있으며, 어떤 차이가 있는가.’고 묻거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그 이학자들에게 ‘구경(究竟)을 하나라고 하는가. 구경을 많다고 하는가.’고 물으리라. 비구들이여, 그 이학들은 ‘한 구경이 있고 많은 구경은 없다’고 대답하리라.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욕심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 욕심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고 물으라. 비구들이여, 만일 이학들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욕심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거든,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여러분, 성냄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 성냄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고 물어 보라.

 

 

비구들이여, 만일 이학들이 ‘성냄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성냄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거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으라.

 

‘여러분, 어리석음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 어리석음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고. 비구들이여, 만일 이학들이 ‘어리석음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어리석음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거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으라.

 

‘여러분,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고 비구들이여, 만일 이학들이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거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슬기가 없고 슬기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 슬기가 있고 슬기를 말하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고 물으라.

 

비구들이여, 만일 이학들이 ‘슬기가 있고 슬기를 말하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슬기가 없고 슬기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거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으라.

 

‘여러분,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는가.’고. 비구들이여, 만일 이학들이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거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그 이학들을 위하여 이렇게 말하라.

 

‘여러분, 이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의 구경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욕심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성냄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성냄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리석음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어리석음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슬기가 있고 슬기를 말하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슬기가 없고 슬기를 말하지 않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한량이 없는 소견을 의지하면 그는 대체로 <있다>는 소견과 <없다>는 소견의 두 소견을 의지한다. <있다>는 소견을 의지하면 그는 곧 있다는 소견에만 고집하여 있다는 소견을 믿고, 있다는 소견에 머물러 없다는 소견을 미워하고 비난한다.

 

만일 <없다>는 소견을 의지하면 그는 곧 없다는 소견을 고집하여 없다는 소견을 믿고, 없다는 소견에 머물러 있다는 소견을 미워하고 비난한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인(因)을 모르고 습(習)을 모르며, 멸(滅)을 모르고 다함을 모르며, 맛을 모르고 환(患)을 모르며, 출요(出要)의 참 모양을 알지 못하면, 그는 일체사에 욕심이 있고 성냄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있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으며, 슬기가 없고 슬기를 말하지 않으며,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다. 그는 곧 생, 노, 병, 사를 떠나지 못하고 또한 시름과 슬픔, 울음, 걱정, 괴로움, 번민을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의 끝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두 소견에 대해서 <인>을 알고 <습>을 알며, <멸>을 알고 <다함>을 알며, 맛을 알고 환을 알며, 출요의 참 모양을 알면, 그는 일체사에 욕심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으며,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슬기가 있고 슬기를 말하며,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다. 그는 곧 생, 노, 병, 사를 떠나게 되고 또한 시름과 슬픔, 울음, 걱정, 괴로움, 번민을 벗어나게 되고, 괴로움의 끝을 얻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집착을 끊기를 힘쓴다. 그러나 일체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는다. 욕심에의 집착을 끊는 것을 힘쓰고 계(戒)에의 집착, 소견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은 버리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三처(處)의 참모양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을 끊기를 힘쓰지마는 그러나, 일체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집착을 끊기를 힘쓰지마는 그러나, 일체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는다. 욕심에의 집착과 계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고, 소견에의 집착과 <나>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二처의 참모양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을 끊기를 힘쓰지마는 그러나, 일체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집착을 끊기를 힘쓰지마는 그러나, 일체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는다. 욕심에의 집착, 계에의 집착, 소견에의 집착을 끊는 것을 힘쓰고, <나>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一처의 참모양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을 끊기를 힘쓰지마는 그러나, 일체의 집착을 끊는 것은 힘쓰지 않느니라.

 

이러한 법률(法律)에 있어서는 혹 스승을 믿더라도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니요 제 一이 아니다. 법을 믿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요 제 一이 아니다. 혹 계덕을 구족하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요 제 一이 아니다. 도를 같이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요 제 一이 아니니라.

 

만일 어떤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면 그는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부른다. 그는 집착을 끊기를 힘쓰고 현재에서 일체의 집착을 끊기를 힘쓰고, 욕심에의 집착, 계에의 집착, 소견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을 끊기를 힘쓴다. 이 四집착은 무엇을 인(因)하고 무엇을 습(習)하며, 무엇을 좇아 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이 네 가지 집착은 무명(無明)을 인으로 하고 무명을 습으로 하며, 무명을 좇아 나고 무명을 근본으로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명이 이미 다하고 명(明)이 이미 생기면 그는 곧 그로부터는 다시 욕심에의 집착과 계에의 집착, 소견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집착을 가지지 않는 뒤에는 곧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은 뒤에는 곧 인연을 끊어 반드시 열반을 얻는다. 그리하여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 참뜻을 아느니라.

 

이러한 법률에 있어서는 만일 스승을 믿으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 一이다. 만일 법을 믿으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 一이다. 만일 계덕을 구족하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 一이다.

 

만일 도를 같이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 一이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행이 있고 이런 힘이 있으며, 이런 지혜가 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로 하여금 여기 제 一의 사문, 제 二, 제 三, 제 四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는 다시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 이 도는 일체가 공해서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고 이렇게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대중 가운데서 어디서나 이렇게 사자처럼 외치는 것이다.’라고 하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04. 우담바라경(優曇婆邏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에 노닐으시면서 죽림 칼라다카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거사가 있으니, 이름을 실의(實意)라고 하였다. 그는 이른 아침에 라아자그리하에서 나와, 부처님께 나아가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자 하다가 이에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혹 연좌(宴坐)하고 계실는지 모른다. 부처님에게나 비구들에게로 가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는 차라리 우담바라(優曇婆羅)숲에 있는 이학(異學)들의 동산으로 가자.’ 이에 실의 거사는 곧 우담바라 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갔다.

 

그 때에 우담바라 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에는 한 이학이 있는데, 이름을 무에(無恚)라 하였다. 그는 그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아 이학들의 스승이 되었고, 대중들의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을 항복 받아 五백명 이학들은 그를 떠받들어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는 대중 가운데서 어지러이 높고 큰 음성으로 조론(鳥論), 어론(語論), 왕론(王論), 적론(賊論), 투쟁론(鬪爭論), 음식론(飮食論), 의피론(衣被論), 부녀론(婦女論), 동녀론(童女論), 음녀론(婬女論), 세속론(世俗論), 비도론(非道論), 해론(海論), 국론(國論) 등의 여러 가지를 설며아고, 이러한 여러 가지 조론(鳥論)을 설명한 뒤에 대중들은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때에 이학 무에는 멀리서 실의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그 대중들에게 분부하여 조용하게 하였다.

 

“너희들은 떠들지 말라. 잠자코 있기를 즐기고 잠자코 있으면서 제각기 몸을 단속하라. 왜냐하면 실의 거사가 온다. 그는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다. 만일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로서 이름과 덕이 높고 훌륭하여 우두머리로 존중할 만하고, 거사로서 라아자그리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제 一로 칠 것이다. 그는 말하지 않기를 즐거워하고 잠자코 있으면서 스스로 단속한다. 만일 그가 이 대중이 잠자코 있는 줄을 알면 그는 즐겨할 것이다.”

 

이에 이학 무에는 대중을 잠자코 있게 하고 자기도 잠자코 있었다. 때에 실의 거사는 이학 무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문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실의 거사는 말하였다.

 

“무에여,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는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惡)이 없으며, 또한 사람도 없는 데서 경위를 따라 연좌(宴坐)하고 계신다. 이것이 부처님 세존께서는 그와 같이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경위를 따라 연좌하여 계시는 것이다.

 

그는 멀리 떠난 곳에 계시어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 하신다. 부처님 세존께서 하루 납 하룻밤도 함께 모여 계시는 것은, 오늘 너나 너의 권속들이 하는 것과는 조금도 같지 않다.”

이에 이학 무에는 말하였다.

 

“거사여, 그만 그쳐라. 네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사문 고오타마는 빈 껍질 슬기의 해탈로서 족히 말할 것도 없다. 혹 서로 맞는가 하면 서로 맞지 않으며, 혹은 따르는가 하면 따르지 않는다.

 

저 사문 고오타마는 한쪽으로 가서 한쪽에 이르고, 한쪽을 즐겨하여 한쪽에 이르며, 한쪽에 머물러 한쪽에 이른다. 마치 애꾸눈 소가 변지(邊地)에서 먹을 때 한쪽으로 가서 한쪽에 이르고, 한쪽을 즐겨하여 한 쪽에 이르며, 한 쪽에 머물러 한 쪽에 이르는 것과 같이 저 사문 고오타마도 또한 그와 같다.

 

거사여, 만일 저 사문 고오타마가 이 대중들에게 온다면 나는 한 말로 그를 쳐부수어 마치 빈 병을 눌 리 듯하리라. 그리고 그를 위하여 애꾸눈 소의 비유를 말하리라.”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사문 고오타마가 혹 이 대중 가운데 오더라도, 만일 반드시 오더라도 너희들은 공경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합장하지 말고 앉기를 청하지도 말며, 미리 한 자리를 두고 그가 여기에 오거든 이렇게 말하라. ‘고오타마여, 자리가 있다. 앉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연좌하고 계시면서 사람의 귀보다 훨씬 나은 깨끗한 <하늘귀>로써 실의 거사가 이학 무에와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시고 해질녘에 곧 연좌에서 일어나 우담바라 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가시었다.

 

이학 무에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행해 찬탄하여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고오타마시여. 오랫동안 여기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원컨대 이 자리에 앉으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제 약속을 어긴다’고. 세존께서는 그런 줄 아시고도 혼연히 자리에 앉으시었다. 이학 무에는 곧 세존과 세로 문안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무에여, 아끼는 실의 거사와 무슨 일을 의논하였으며, 무슨 일로 이리 모여 앉았는가.”

 

이학 무에는 대답하였다.

“고오타마시여,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사문 고오타마님은 어떤 법이 있어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가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안온을 얻으며, 그 몸과 목숨이 맞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 남을 위하여 설명하는가’고. 고오타마시여, 아까 실의 거사와 이런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말미암아 여기 모여 앉았습니다.”

 

실의 거사는 이 말을 듣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이학 무에는 이상하게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부처님 면전(面前)에서 세존을 속이는구나’고. 세존께서는 그것을 알으시고 곧 말씀하시었다.

 

“무에여, 내 법은 매우 깊고 기이하고 특별하여, 깨닫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보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렵다. 곧 내 제자를 가르치면 제자는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몸과 목숨이 맞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한 남을 위하여 설명하느니라.

 

무에여, 만일 너의 스승이 옳다고 하는 바를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 행을 미워하거든 너는 그것을 내게 물으라. 나는 잘 대답하여 네 마음을 시원하게 하리라.”

이에 어지러운 이학 무리들은 같은 음성으로 함께 크게 외쳤다.

 

“사문 고오타마님은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시며,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복이 있고, 큰 위신(威神)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능히 자기의 종(宗)을 버리고 남의 종으로서, 남의 물음을 따라 대답한다.”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한 뒤에 물었다.

“고오타마시여,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해야 할 행은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없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무에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옷이 없는 알몸으로 혹은 손으로 옷을 삼거나 나뭇잎으로 옷을 삼으며 구슬로 옷을 삼는다. 병으로 물을 뜨지 않고 바가지로 물을 뜨지 않는다.

 

무기로 뺏은 음식을 먹지 않고 속여서 얻은 음식을 먹지 않으며, 청하지 않는 데는 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지 않는다. 와서 높이기를 구하지 않고 높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높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일 두 사람이 먹으면 그 가운데서 먹지 않고, 아기 밴 집의 음식을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만일 집에 똥파리가 날아오면 곧 먹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나쁜 물을 마시지 않으며, 혹 도무지 아실 것이 없으면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입을 먹고는 한입으로 만족하고 혹은 二, 三, 四 내지 일곱 입을 먹고는 일곱 입으로 만족하며, 혹은 二, 三, 四 내지 일곱 번 얻어먹고는 일곱 법 얻은 것으로 만족한다. 혹은 하루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하고, 혹은 二, 三, 四, 五, 六, 七일이나 반달, 한 달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한다.

 

띠뿌리를 먹거나 피[稗]를 먹으며, 혹은 기장을 먹고 잡보리를 먹으며, 두두라식(頭頭邏食]을 먹고 거치른 밥을 먹는다. 혹은 일없는 곳에 가서 일이 없음으로써 나무나 풀뿌리를 먹고 혹은 열매를 먹으며, 저절로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누더기를 입고 털옷을 입으며 두사옷[頭舍衣]를 입고 털두사옷을 입으며, 성한 가죽옷을 입거나 헤어진 가죽옷을 입으며, 혹은 완전히 헤어진 가죽옷을 입는다.

머리를 흐트리고 머리를 땋으며, 흐트리고 닿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깎고 수염을 깎으며 수염과 머리를 깎는다. 혹은 머리를 뽑고 수염을 뽑으며 머리와 수염을 뽑는다.

 

곳곳이 서서 앉지 아니하고 혹은 앉은걸음을 익히며, 혹은 사기에 누워 가시로 평상을 삼고 혹은 과실에 누워 과실로 평상을 삼는다.

 

물을 섬기어 밤낮으로 손으로 긷고, 혹은 불을 섬기어 그 날부터 계속해 태우며, 혹은 해와 달을 천신으로 삼아 옛것을 향하여 합장한다. 이러한 따위로서 한량이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번거롭고 답답한 행을 배운다. 무에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해득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이렇게 하여 구족했다 하겠는가, 구족하지 못했다 하겠는가.”

 

“고오타마시여, 그렇습니다. 해득할 수 없고, 미워할 만 행은 이로써 구족하였고, 구족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해득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은,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 것이라 말한다.”

 

“고오타마시여, 어떻게 하여 나를 위해 이 해득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은,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 것이라고 말씀하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淸苦行者)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하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 보고, 햇기운을 빨아먹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 보고 햇기운을 빨아먹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인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이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는 귀히 여기고 남은 천히 여긴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는 귀히 여기고 남은 천히 여기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으로 다니면서 스스로 일컬어 ‘내 행은 청고(淸苦)하며, 내 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으로 다니면서 스스로 일컬어 ‘내 행은 청고하며, 내 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샘을 내어 말하기를 ‘무엇 하러 저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한다.’고 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샘을 내어 말하기를 ‘무엇 하러 저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한다’고 한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이나 바라문을 맞대고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먹되 뿌리종자, 나무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의 五종을 먹는다. 마치 사나운 비가 五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들을 못 견디게 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이나 바라문을 맞대고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먹되 뿌리종자, 나무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의 五종을 먹는다. 마치 사나운 비가 五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 견디게 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너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 무서움, 비밀한 행동, 의심, 이름을 잊음, 탐욕, 방일(放逸)이 있다.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 무서움, 비밀한 행동, 이름을 잊음, 탐욕, 방일이 있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見取), 난위(難爲)를 내어 뜻에 절제(節制)가 없으면,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과 법을 통할 만한데 통하지 못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 변견, 사견, 견취, 난위를 내어 뜻에 절제가 없어,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과 법을 통할 만한데 통하지 못하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 말하지 않음, 맺음,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있고,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남에의 부끄러움이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 말하지 않음, 맺음,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있고,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남에의 부끄러움이 없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고 나쁜 계를 구족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고 나쁜 계를 구족하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고 나쁜 슬기가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고 나쁜 슬기가 있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은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나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은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씀하셨나이다.”

 

“무에여, 나는 다시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이라도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말하리라.”

 

“어떻게 고오타마시여, 나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이라도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않고 햇기운을 빨아먹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않고 햇기운을 먹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곧 얽매이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는 귀히 여기지 않고 남은 천히 여기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귀히 여기지 않고 남을 천히 여기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으로 다니면서 스스로 일컬어 ‘내 행은 청고하고, 내 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으로 다니면서 스스로 일컬어 ‘내 행은 청고하며, 내 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샘을 내어 말하기를 ‘무엇 하러 저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샘을 내어 말하기를 ‘무엇 하러 저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이나 바라문을 맞대고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먹되 뿌리종자, 나무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의 五종을 먹는다. 마치 사나운 비가 五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들을 못 견디게 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이나 바라문을 맞대고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먹되 뿌리종자, 나무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의 五종을 먹는다.

 

마치 사나운 비가 五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 견디게 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너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비밀히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비밀히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 변견, 사견, 견취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없어, 모든 사문, 바라문, 범지가 법에 통할 만하면 통한다고 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 변견, 사견, 견취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있어,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과 법을 통할 만하여 통한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 말하지 않음, 맺음,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없고,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남에의 부끄러움이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 말하지 않음, 맺음,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없고,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남에의 부끄러움이 있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는 고행한다.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으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이라도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나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구족한 행이라도 한량이 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나이다.”

 

이학 무에는 물었다.

“고오타마시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도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겠나이까.”

 

“무에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될 수 없고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 二종(種)이 있으니, 그것은 껍질만을 얻고 마디만을 얻느니라.”

“고오타마시여, 어떻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겉껍질만을 얻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무에여, 여기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四행(行)을 행한다.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그는 이 四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도 잘난 체 하지 않아서 마음은 사랑[慈]과 함께 하여 一방(方)에 두루 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二, 三, 四유(維), 상, 하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니다. 이와 같이 슬픔[悲]과 기쁨[喜]도 도한 그러하다.

 

마음은 버림[捨]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노닌다. 무에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이렇게 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껍질을 얻겠는가.”

 

‘고오타마시여, 이렇게 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껍질을 얻겠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어떻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마디를 얻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무에여, 여기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四행을 행하나니,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그는 이 四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도 잘난 체 하지 않는다. 그는 행이 있고 상모(相貌)가 있어 한량이 없는 과거의 경력을 기억한다.

 

곧 혹은 一생(生), 二생, 백생, 천생과 성겁(成劫), 패겁(敗劫)과 한량이 없는 성패겁 동안의 그 중생의 이름은 무엇이여, 그가 옛날에 나는 일찍 거기서 나서 어떠한 성(姓)과 어떠한 이름으로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음식을 먹었으며, 어떻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어떻게 오래 살았으며, 어떻게 오래 머물렀고, 어떻게 목숨을 마쳤으며, 여기서 죽어 저기 태어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 태어난 것을 안다.

 

‘나는 나서 여기 있는데, 어떠한 성과 어떠한 이름으로서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먹었으며, 어떻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어떻게 오래 살았으며, 어떻게 오래 머물렀고 어떻게 목숨을 마쳤다.’고 기억하나니, 무에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이렇게 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마디를 얻겠는가.”

 

‘고오타마시여, 이렇게 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마디를 얻겠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어떻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무에여, 여기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四행을 행하나니,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 하지 않는다.

 

그는 이 四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도 잘난 체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눈을 뛰어나는 하늘 눈을 얻어 이 중생들의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왕래하는 것을 보고, 이 중생들은 그 지은 업을 따른다는 참 모양을 본다.

 

곧 ‘만일 이 중생이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소견으로서 삿된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고, 만일 이 중생이 몸의 묘행과 입과 뜻의 묘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으로서 바른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난다’고. 무에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이렇게 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겠는가.”

 

‘고오타마시여, 이렇게 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되겠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어떻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증험을 얻음으로써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는 사문 고오타마에 의하여 범행을 행하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무에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으로 말미암아 증험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에 의하여 범행을 행하는 것이다. 무에여, 그보다도 다시 다른 최상, 최묘, 최승(最勝)이 있어서 그들을 위하여 증험을 얻게 하기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에 의하여 범행을 행하느니라.”

 

이에 어지러운 이학 무리들은 높고 큰 소리를 내어 외쳤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증험을 얻게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는 고오타마에 의해 범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이학 무에는, 스스로 자기편 대중들에게 명령하여 잠자코 있게 한 뒤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어떠한 다시 다른 최상, 최묘, 최승이 있어서 그들을 위하여 증험을 얻게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는 사문 고오타마에 의해 범행을 행하나이까.”

 

이에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무에여, 만일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나와 그가 五개(蓋)의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쇠약함을 버리고,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내지 제 四선(禪)얻게 되어 성취하여 노닐면, 그는 이미 이렇게 정(定)한 마음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번거로움이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여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고, 누(漏)가 다한 지혜의 신통으로 나아가 그것을 증득한다.

 

그는 그래서 이 괴로움의 참뜻을 알고 이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이 괴로움의 멸을 알고 이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이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이 괴로움을 멸하는 길의 참뜻을 안다.

 

또한 이 누(漏)를 알고 이 누의 원인을 알며, 이 누의 멸을 알고 이 누를 멸하는 길의 참뜻을 안다. 그는 이렇게 보아 욕심의 누(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有)의 누와 무명(無明)의 누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안다.

 

무에여, 이것을 다시 다른 최상, 최묘, 최승이 있어, 그들을 위하여 도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내 제자는 나에 의해 범행을 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에 실의 거사는 말하였다.

“무에여, 세존께서 여기 계신다. 너는 이제 한 말로 쳐부수어 빈 병을 눌리는 것처럼 하고, 애꾸눈 소가 변지에서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하라.”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이학 무에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진실로 그렇게 말하였는가.”

“진실로 그러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무에여, 너는 일찍이 장로 구학(舊學)에게서 곧 ‘과거의 여래, 무소착, 등정각은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높은 바위에 있으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宴坐)하시고,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높은 바위에 있으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신다.

 

그는 멀리 떠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즐거이 연좌하시어 안온하고 쾌락 하시며, 그가 하루 낮, 하룻밤이라도 함께 모여 있는 것은, 오늘의 너와 너의 권속과는 당초에 같지 않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가.”

 

“고오타마시여, 나는 일찍이 장로 구학에게서 ‘과거의 여래, 무소착, 등정각은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높은 바위에 있으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宴坐)하시고,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높은 바위에 있으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신다.

 

그는 멀리 떠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즐거이 연좌하시어 안온하고 쾌락 하시며, 그가 하루 낮, 하룻밤이라도 함께 모여 있는 것은, 오늘의 나와 내 권속들과는 당초에 같지 않다.’고 하는 말을 들었나이다.”

 

“무에여,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곧 ‘저 세존과 같이 일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높은 바위에 있으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자. 그는 멀리 떠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즐거이 연좌하여 안온하고 쾌락 하다. 저 사문 고오타마의 정각(正覺)의 도를 배우자’고.”

 

“고오타마시여, 내가 만일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그러한 말을 하겠나이까. 곧 ‘한 말로 쳐부수어 빈 병을 놀리는 것처럼 하고 애꾸눈 소가 변지에서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하겠나이까.”

 

“무에여, 내게는 이제 법이 있어 선(善)과 서로 잘 알맞는다. 그것은 여러 가지 해탈하는 글귀로서 능히 도를 깨닫나니, 여래는 이럼으로써 스스로 <두려움이 없음>이라고 일컫는다.

 

모든 비구들이 내 제자가 된 뒤로는 아첨이 없고 속이지 않으며, 질박하고 정직하여 거짓이 없어, 내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는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고오타마는 스승이 되기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스승은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그를 위하여 설법을 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고오타마는 제자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제자는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고오타마는 공양을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공양은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고오타마는 칭찬과 명예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칭찬과 명예는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고오타마에게는 법이 있어 선(善)과 서로 잘 알맞는다. 그것은 여러 가지 해탈하는 글귀로서 능히 도를 깨달으면 저 사문 고오타마는 나를 빼앗고 나를 멸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법을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니라.”

 

이에 대중들은 잠자코 있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마왕(魔王)에게 내리 눌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실의 거사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이 대중들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라.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마왕에게 내리 눌렸기 때문이니, 곧 저 이학의 대중들로 하여금 한 이학도 ‘나는 사문 고오타마의 수행한 범행을 시험하자.’고 생각하는 자가 없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세존께서는 그런 줄 알으신 뒤에, 실의 거사를 위하여 설법하시어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셨다. 한량이 없는 방편으로써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실의 거사의 팔을 잡고 신족(神足)으로서 날아 허공을 타고 가시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실의 거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05. 원경(願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비구는 멀리 떠나 혼자서 고요한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연좌(宴坐)하여 생각에 잠겼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나를 위로하여 나와 말씀하시고, 나를 위해 설법하시었다. 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선(禪)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觀行)을 성취하자.’ 이에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고 해질녘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그 비구가 오는 것을 보시고 그 비구로 인연하여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마땅히 ‘세존께서는 나를 위로하여 나와 말씀하시고, 나를 위해 설법하시었다. 나는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내게는 친족이 있다. 그들은 나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나는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내게 의복, 음식, 침구, 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베푸는 자는 그는 ‘이 보시로 말미암아 큰 공덕이 있고 큰 광명이 있으며, 큰 갚음이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모기와 등에, 벼룩과 이, 바람과 햇볕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또한 능히 참으며, 몸에 병이 들어 몹시 괴로워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이 모든 즐겁지 않은 일도 다 능히 참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즐겁지 않은 일을 견디고, 만일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두려움을 견디고 만일 두려움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내게 만일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 곧 욕심의 생각, 성냄의 생각, 해침의 생각이 생기더라도 이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 때문에 마음이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내지 제 四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三결(結)이 이미 다하여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정각(正覺)으로 나아가 끝에는 일곱 번 남을 천상, 인간에서 받아 일곱 번을 왕래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얻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三결이 이미 다하여 음욕, 성냄,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천상, 인간을 왕래하게 되고, 한 번 왕래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얻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五하분결(下分結)이 이미 다하여, 그 사이에서 나서 곧 반열반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쉬어 해탈하고 빛깔을 떠나 빛깔이 없게 되고, 여기상정(如其像定)을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슬기로 관찰하여 누(漏)를 끊고, 누를 알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나는 여의(如意)의 발과 하늘 귀의 지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 숙명을 아는 지혜, 생사를 아는 지혜가 있고, 모든 누(漏)가 다하여 누가 없게 되며,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기 위하여, 구족계를 받고 선을 폐하지 않아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이에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지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 비구는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고요한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고 수행하기를 부지런히 힘써 마음에 방일이 없었다.

 

고요한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고 수행하기를 부지런히 힘써 마음에 방일이 없었기 때문에 족성자(族姓子)가 한 것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웠다.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치고는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았다. 그 존자는 법을 안 뒤에는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06. 상경(想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땅에 대해서 땅이라는 생각[想]이 있어 ‘땅은 곧 신(神)이요 땅은 신의 소유며, 신은 땅의 소유다.’라고 계교(計較)하고, 그는 ‘땅은 곧 신이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곧 땅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물, 불, 바람, 신(神), 하늘, 생주(生主), 범천(梵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며, 그는 깨끗함에 대해서 깨끗하다는 생각이 있어 ‘깨끗함은 곧 신이요 깨끗함은 신의 소유며, 신은 깨끗함의 소유다.’라고 계교하고, 그는 ‘깨끗함은 곧 신이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곧 깨끗함을 알지 못한다.

 

무량공처(無量空處), 무량식처(無量識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一과 별(別)의 약간(若干)에 대해서 보고 듣고 분별하고 알아서, 뜻의 생각(念)하는 바와 뜻의 헤아리[思]는 바를 관찰하게 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다.

 

그는 일체(一切)에 대해서 일체라는 생각이 있어, ‘일체는 곧 신(神)이요 일체는 신의 소유며, 신은 일체의 소유다.’라고 계교하고, 그는 ‘일체는 곧 신이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곧 일체를 알지 못한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땅에 대해서 곧 땅을 알아 ‘땅은 신이 아니요 땅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땅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계교하고, 그는 ‘땅은 곧 신이 아니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곧 땅을 안다.

 

이렇게 하여 물, 불, 바람, 신, 하늘, 생주, 범천, 무번천, 무열천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며, 그는 깨끗함에 대해서도 곧 깨끗함을 알아, ‘깨끗함은 신이 아니요 깨끗함은 신의 소유도 아니며, 신은 깨끗함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계교하고, 그는 ‘깨끗함은 곧 신이 아니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그는 곧 깨끗함을 안다.

 

무량공처, 무량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와 一과 별의 약간에 대해서 보고 듣고 분별하고 알아서, 뜻의 생각하는 바와 뜻의 헤아리는 바를 관찰하게 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다. 그는 일체에 대해서 곧 일체를 알아 ‘일체는 신이 아니요 일체는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일체가 아니다.’라고 계교하고, 그는 ‘일체는 곧 신이 아니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곧 일체를 안다.

 

나는 땅에 대해서 곧 땅을 알아 ‘땅은 신이 아니요 땅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땅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계교하고, 나는 ‘땅은 곧 신이 아니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나는 곧 땅을 안다.

 

이렇게 하여 물, 불, 바람, 신, 하늘, 생주, 범천, 무번천, 무열천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며, 나는 깨끗함에 대해서도 곧 깨끗함을 알아, ‘깨끗함은 신이 아니요 깨끗함은 신의 소유도 아니며, 신은 깨끗함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계교하고, 나는 ‘깨끗함은 곧 신이 아니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나는 곧 깨끗함을 안다.

 

무량공처, 무량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와 一과 별의 약간에 대해서도 보고 듣고 분별하고 알아, 뜻의 생각하는 바와 뜻의 헤아리는 바를 관찰하게 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다. 나는 일체에 대해서 곧 일체를 알아 ‘일체는 신이 아니요 일체는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일체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계교하고, 나는 ‘일체는 곧 신이 아니다.’라고 계교한 뒤에는 나는 곧 일체를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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