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29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19:52

중아함경 제29권

 

117. 유연경(柔軟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옛날 집을 나와 도를 배운 뒤로는 마음대로 놀면서, 조용하고 한가하고 즐거워 매우 유연(柔軟)하였다. 내가 부왕(父王) 슛도오다나[悅頭檀] 집에 있을 때에는 나를 위해 여러 가지 궁전, 곧 봄 궁전과 여름 궁전 및 겨울 궁전을 지었으니, 나를 잘 노닐케 하기 위해서였다.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시 푸른 연꽃못, 붉은 연꽃못, 빨간 연꽃못, 흰 연꽃못 등 여러 가지 꽃못을 만들고 그 못 가운데에는 온갖 물꽃, 곧 푸른 연꽃, 붉은 연꽃, 빨간 연꽃, 흰 연꽃을 심어서 언제나 물이 있고 언제나 꽃이 있었으며, 사람을 시켜 수호하여 일체 통행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나를 잘 노닐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못 언덕에는 또 수마나꽃, 바사꽃, 담복꽃, 수건제꽃, 마두건제꽃, 아제모다꽃, 파라두꽃등 온갖 육지꽃을 심었으니, 나를 잘 노닐게 하기 위해서이었다. 그리고 네 사람을 시켜 나를 목욕시키고는 붉은 전단향(栴檀香)을 내 몸에 바르고 새 비단옷을 입혔으니, 위아래나 안팎이나 겉과 속이 다 새 것이었다. 그리고 밤낮으로 언제나 일산을 내게 씌웠으니, 나로 하여금 밤에는 이슬에 젖지 않고 낮에는 볕에 그을지 않게 하기 때문이었다.

 

항상 다른 집에서는 밀기울, 보리밥, 콩국, 새앙채를 제일 음식으로 삼는 것처럼 우리 아버지 슛도오다나 집의 가장 낮은 하인은 쌀밥과 반찬을 제일 음식으로 삼았다.

 

다시 다음에는 혹은 들짐승으로 가장 아름다운 짐승이 있었으니, 곧 티티라, 캅핀잘라, 해미(奚米), 하리니사시라와 같은 들짐승으로, 가장 맛난 짐승은 언제나 나를 위한 요리가 되었었다.

 

내가 옛날의 아버지 슈도오다나 집을 생각하면 여름 四개월 동안은 정전(正殿)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남자는 없고 오직 기생만 있어서, 스스로 즐기면서 당초에 내려오지 않았다.

 

내가 동산으로 나가려고 할 때에는 三十명의 제일 훌륭한 기병(騎兵)을 뽑아 의장(儀仗)이 앞뒤에서 시종하고 인도하게 하였으니, 그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이런 여의족(如意足)이 있었으니, 이것이 가장 유연(柔軟)한 것이었다.

 

나는 또 옛날을 생각하면, 농부가 밭 위에서 쉬는 것을 보고 염부(閻浮)나무 그늘에 가서 가부를 맺고 앉아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선하지 않은 것을 떠나,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 때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스스로 병나는 법이 있어 병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의 병을 보고는 스스로 자기를 관찰하지 못한다 하여, 미워하고 천히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고.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스스로 병나는 법이 있어 병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만일 내가 남의 병을 보고 미워하고 천히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게 또한 이 법이 있기 때문에 나도 또한 옳지 못하다’고.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병들지 않는다고 하여 일어나는 뽐내는 마음은 곧 저절로 없어졌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스스로 늙는 법이 있어 늙음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남의 늙음을 보고 스스로 자기를 관찰하지 못한다 하여, 미워하고 천히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고.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늙는 법이 있어 늙음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만일 내가 남의 늙음을 보고는 미워하고 천히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게 또한 이 법이 있기 때문에 나는 옳지 못하다’고.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오래 산다고 하여 일어나는 뽐내는 마음은 곧 저절로 없어졌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병나지 않는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렁거리어,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는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범부는 젊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렁거리어,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는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오래 산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렁거리어,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느니라.”

이에 세존은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앓는 법과 늙는 법

또 죽는 법

그것은 으례히 있는 법인데

범부는 그것보고 미워하도다

 

만일 내가 미워만 하고

이 법을 건너가지 못하면

내게도 또한 이 법 있기에

나도 또한 옳지 못하네

그가 만일 이렇게 행하면

법을 알아 생(生)을 떠나리

 

병이 없는 젊은 사람은

오래 산다고 뽐내는구나

뽐내는 마음 끊어 버리면

욕심이 없어 편안하게 되리라

 

그가 만일 이렇게 깨달으면

욕심에 대하여 두려움 없고

생각[想]도 또한 없게 되어

깨끗한 범행을 할 수 있으리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8. 용상경(龍象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동원(東園)의 녹자모당(鹿子母堂)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해질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당상에서 내려오시어 말씀하시었다.

 

“우다아이[鳥陀夷]여, 너와 함께 동하(東河)에 가서 목욕하리라.”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우다아이를 데리고 동하로 가시어, 언덕 위에서 옷을 벗고 곧 물에 들어가 목욕하시었다. 목욕을 마친 뒤에 도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으시었다.

 

그 때에 바사익(波斯匿)왕에게는 이름을 염(念)이라고 하는 용상(龍象)이 있어, 일체의 풍류를 잡히고 동하를 건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큰 용의 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고. 존자 우다아이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코끼리가 큰 몸을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큰 용의 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고 이렇게 말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그렇다, 우다아이여, 그렇다, 우다아이여. 코끼리가 큰 몸을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큰 용의 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고. 말, 낙타, 소, 나귀, 뱀, 사람, 나무로 큰 몸을 가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큰 용의 왕이다.

 

이것은 이름은 무엇인가.’고 말한다. 우다아이여, 만일 세간이나 하늘, 마군, 범, 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몸과 입과 뜻으로서 해치지 아니하면, 나는 그를 용이라고 말한다. 우다아이여, 여래는 세간이나 하늘, 마군, 범, 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몸과 입과 뜻으로써 해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나를 용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이에 존자 우다아이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제게 위력을 주소서. 선서시여, 위력을 주소서.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부처님 앞에서 용에 알맞은 노래로서 세존을 찬탄하게 하소서.”

 

“너의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이에 존자 우다아이는 부처님 앞에서 용에 알맞은 노래로써 세존을 찬탄하였다.

 

세존께서는 인간에 나시어

스스로 다루어 바른 정(定)을 얻고

깨끗한 행(行)을 닦아 익히고

마음을 쉬어 스스로 즐겨하네

 

사람의 공경과 소중히 여김 받아

일체의 법을 뛰어 넘었고

또한 하늘의 공경을 받나니

집착이 없는 지극히 참된 사람

 

일체의 맺음[結]을 뛰어 건너서

숲에서 숲을 버려 떠나고

욕심을 버려 무욕(無欲)을 즐기는 것

돌에서 진금(眞金)이 나오는 것 같네

 

널리 듣고 바로 다 깨닫기는

마치 허공에 해가 돋는 듯

일체 용 가운데서 우뚝하기는

여러 산에 묏부리[嶽] 있는 것 같네

 

일컬어 말하여 큰 용이라 하되

그러나 남을 해치지 않으며

일체 용 가운데의 용으로서

진실로 참되어 위없는 용이니라

 

다스하고 번지르해 해침이 없나니

이 두 가지는 이 용의 발이요

고행(苦行)과 또 범행 그것은

용의 소행이라 이르느니라

 

큰 용은 믿음을 손으로 삼고

두 가지 공덕을 어금니로 삼으며

생각[念]은 목이요 지혜는 머리로서

법을 깊이 생각하고 분별하나니

 

모든 법을 받아 가지는 것은 배요

멀리 떠남 즐기는 것은 두 팔이네

숨길의 드나듦에 잘 머물고

속마음은 지선(至善)에 정(定)해져 있네

 

용은 다니기나 그치기 모두 정(定)하고

앉음도 정하고 누움도 또 정하며

용은 일체 때에 언제나 정하나니

이것을 용의 상법(常法)이라 하느니라

 

더러움이 없는 집에서 먹이를 받고

더러움이 있으면 곧 받지 않으며

깨끗하지 못한 먹이 얻으면

그것을 버리기는 사자(師子)같으며

 

만일 얻는 바 공양 있으면

남을 위해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받나니

용은 남의 보시(布施) 받아먹으나

목숨을 보존함에 집착이 없네

 

크고 작은 맺음을 끊어 없애고

일체의 구속을 아주 벗어나

어디를 가서 노닐더라도

마음에는 얽매임과 집착이 없네

 

그것은 마치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도

진흙이 거기에 붙지 못하고

묘한 향기 좋은 빛깔 가진 것 같네

 

이와 같이 최상의 깨달은 사람

세상에 나서 세상에서 살아도

욕심 때문에 물들지 않는 것

꽃이 물에 물들지 않는 것 같네

 

마치 불이 한창 붙은 것 같아

섶을 대지 않으면 곧 꺼지고

섶 없으면 불은 잇닿지 못하나니

이 불은 이 때문에 꺼지느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 비유 말해

그 뜻을 알리고자 하나니

이것은 용의 아는 바이요

용 중의 용의 말하는 바이니라

 

음욕과 성냄을 멀리 떠나고

어리석음을 끊어 무루(無漏)얻은 뒤

용은 그 몸을 버리어 떠나나니

이것을 이 용의 멸(滅)이라 하도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존자 우다아이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9. 설처경(設處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여기 三설처(設處)가 있어 四도 없고 五도 없다. 어떤 비구는 그것을 본 뒤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三인가.

 

비구여, 과거의 세상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과거의 세상이 있었다고 말하고, 미래의 세상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현재의 세상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현재의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三설처라고 하며, 四도 없고 五도 없다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그것을 본 뒤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로 인해 그 뜻을 잘 배워 얻고, 말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뜻을 잘 배워 익히지 못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두 귀와 한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그는 뒤 귀와 한마음으로 법을 들은 뒤에는 一법을 끊고 一법을 닦아 一법을 체험한다. 그는 一법을 끊고 一법을 닦아 一법을 체험한 뒤에는, 곧 바른 정(定)을 얻느니라.

 

제자는 마음에 바른 정을 얻은 뒤에는 곧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다. 성제자는 이렇게 하여 마음이 해탈을 얻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내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아느니라.

 

그 말로 인해 四처(處)가 있으니, 그것으로서 사람을 관찰하여 보라. 곧 ‘이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는가, 함께 말할 수 없는가’고. 만일 그 사람이 일향론(一向論)에 일향으로 대답하지 않고, 분별론(分別論)에 분별로 대답하지 않으며, 힐론(詰論)에 힐(詰)로 대답하지 않고, 지론(止論)에 지(止)로 대답하지 아니하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없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없다.

 

만일 그 사람이 일향론에 일향으로 대답하고, 분별론에 분별로 대답하며, 힐론에 힐로 대답하고, 지론에 지로 대답하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있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있느니라.

 

또 그 말로 인해 다시 四처가 있으니, 그것으로서 사람을 관찰하여 보라. 곧 ‘이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는가, 함께 말할 수 없는가’고. 만일 그 사람이 처비처(處非處)에도 머무르지 않고 소지(所和)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설유(設硫)에도 머무르지 않고, 도적(盜賊)에도 머무르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없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없다. 만일 그 사람이 처비처에도 머무르고, 소지에도 머무르며, 설유에도 머무르고, 도적에도 머무르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있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있느니라.

 

그 말하는 대로 인해 입의 행을 쉬고, 자기의 소견을 버리고 원결(怨結)의 뜻을 버리며, 욕심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며, 어리석음을 버리고 거만을 버리며, 말하지 않음을 버리고 아낌과 미워함을 버리며, 이기기를 구하지 않고 남을 항복 받으려 하지 않으며, 남의 과실을 나타내지 않고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며,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한 뒤에는 가르치고, 가르친 뒤에는 그쳐, 스스로 기뻐하고 그를 기뻐하게 한다. 이렇게 이치를 말하고 이렇게 일을 말하나니, 이것이 거룩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요, 이것이 거룩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서, 마지막에는 누(漏)가 다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느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만일 다투는 논란이 있고

잡된 뜻으로 뽐내는 마음 품고

성인을 비방하고 덕을 헐뜯고

제각기 서로 틈만 엿보며

 

다만 남의 허물만 찾고

뜻은 남을 항복 받으려 하며

다시 서로 이기기를 구하는 것

성인은 이렇게 말하지 않느니라

 

만일 서로 논의(論議)코자 하거든

슬기로운 사람은 마땅히 때를 알라

법도 있고 또한 이치도 있나니

모든 성인의 논(論)은 이러하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다툼도 없고 뽐냄도 없으며

뜻에는 싫증을 내는 일없고

맺음도 없고 또한 누(漏)도 없나니

 

이치를 따라 뒤바뀌지 않고

바르게 알아 그리고 말하며

잘 말하면 그렇게 옳게 여겨

끝내 악(惡)을 말하지 않느니라

 

다툼으로서 논란하지 않고

또한 남의 다툼을 받지도 않으며

다만 아는 것과 말해야 할 것

이것이 그의 논(論)하는 바이니라

 

거룩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며

슬기로운 사람은 모두 그 뜻을 얻어

현재에서도 즐거움 얻고

또한 후세에서도 편안하니라

 

마땅히 알라

총달(聰達)한 사람은

뒤바뀜도

상(常)도 아니면서 말하느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20. 설무상경(設無常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색(色)은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神=나)이 아니니라. 각(覺)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니라. 상(想)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니라. 행(行)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신이 아니니라. 식(識)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니라. 이것을 색은 무상이요, 각, 상, 행, 식도 무상으로서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라.

 

많이 아는 성제자는 이렇게 관찰하여 七도품(道品)을 닦아 익히어 걸림이 없어 바른 헤아림[思]과 바른 생각[念]이 있느니라.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有漏),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한 줄을 알아, 내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아느니라.

 

만일 중생이 아홉 가지 중생 세계에서 곧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의 행여(行餘)의 제 一유(有)에 이르게 되면, 그 중간에서 그는 제일이요 그는 크며, 그는 훌륭하고 그는 최상이며, 그는 높고 그는 묘하여, 곧 세간의 아라한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그 세간의 아라한은 안온과 쾌락을 얻기 때문이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집착이 없는 것은 제일의 즐거움

욕심을 끊고 애욕도 없으며

길이 아만(我慢)을 버리고 떠나

무명의 그물을 찢어 없애네

 

그는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게 되어

마음속에는 더러움 없고

세간에도 또한 물들지 않아

범행으로서 무루(無漏)를 얻느니라

 

五음(陰)을 똑똑히 깨닫고 알아

일곱 가지 선법으로 경계(境界)를 삼았나니

대웅(大雄)은 노니는 어디에서도

일체의 두려움을 떠났느니라

 

七각(覺)의 보배를 이루어 마치고

三종의 학문을 갖추 배우고

아름답게 최상의 벗이라 일컫나니

부처의 최상의 참제자니라

 

十지(支)의 도를 성취했나니

큰 용은 지극히 마음을 정(定)했네

이는 세상에서 제일이니

그는 곧 다시 애욕이 없네

 

세상 모든 일에 움직이지 않아

미래의 유(有)에서 벗어났으며

할 일을 마치고 누(漏)를 멸했네.

 

무학(無學)의 지혜를 떨쳐 일으켜

가장 마지막인 몸을 얻었고

범행을 제일로 갖추었나니

그는 남에게 의뢰함이 없도다.

 

상, 하 四방의 모든 곳에서

그는 기쁨과 즐거움 없고

능히 사자(師子)처럼 부르짖나니

세상에서 위없는 부처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21. 청청경(請請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에 노닐으시면서 죽림 칼란다동산에 계시며, 큰 비구들 五백인과 함께 여름 안거를 맞으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十五일에 종해탈(從解脫)을 말씀하시고 서로 청청(請請)할 때에 비구들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바라문으로서 멸(滅)을 얻어 마치고 위없는 의왕(醫王)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나는 바라문으로서 멸을 얻어 마친 뒤에는 위없는 의왕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에서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에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교화하여 서로 전(傳)하여 가르쳐야 하느니라.”

 

그 때에 존자 샤아리푸트라도 대중 가운데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나는 바라문으로서 멸을 얻어 마치고 위없는 의왕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나는 바라문으로서 멸을 얻어 마친 뒤에는 위없는 의왕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에서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에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교화하여 서로 전하여 가르쳐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법은 모든 훈련되지 못한 자를 훈련되게 하였고, 모든 쉬지 못한 자를 쉬게 하며, 모든 제도되지 못한 자를 제도되게 하고, 모든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하게 하며, 모든 멸을 얻지 못한 자를 멸하게 하고, 도를 얻지 못한 자를 도를 얻게 하며, 범행을 성취하지 못한 자를 범행을 성취하게 하여, 범행을 성취하지 못한 자를 범행을 성취하게 하여, 도를 알고 도를 깨닫고 도를 판단하고 도를 설명하게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자들은 뒷날에 법을 얻어 가르침을 받고 나무람을 받으며, 가르침과 나무람을 받은 뒤에는 세존의 말씀을 따라 곧 행하여, 그 뜻을 얻어 바른 법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오직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꺼려하시지는 않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샤아리푸트라여, 나는 너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꺼려하지 아니한다. 무슨 까닭인가. 샤아리푸트라여, 너는 총명한 슬기, 큰 슬기, 빠른 슬기, 민첩한 슬기, 날카로운 슬기, 넓은 슬기, 깊은 슬기, 뛰어나는 슬기, 환히 아는 슬기가 있다.

 

샤아리푸트라여, 너는 실다운 슬기를 성취하였다. 마치 전륜왕의 태자는 부왕의 가르침을 빠뜨리지 않고 그 전하는 바를 받고는 능히 다시 전하는 것과 같이, 이오 k같이 내가 굴리는 법의 수레바퀴를 너는 다시 능히 굴린다. 샤아리푸트라여, 그러므로 나는 너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꺼려하지 않느니라.”

 

존자 샤아리푸트라는 다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꺼려하시지 않으신다면 세존이시여, 이 五백 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서도 꺼려하시지 않으시나이까.”

 

“샤아리푸트라여, 나는 이 五백 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도 꺼려하지 아니한다. 무슨 까닭인가. 샤아리푸트라여, 이 五백 비구 중에서 오직 한 비구만을 제하고는 다 집착이 없게 되어,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치고, 무거운 짐은 이미 버리었으며, 유결(有結)이 이미 다하여 좋은 이치와 바른 지혜와 바른 해탈을 얻었다.

 

나는 과거에 이미 ‘현재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五백 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도, 꺼려하지 아니하느니라.”

 

존자 샤아리푸트라는 다시 세 번째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꺼려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이 五백 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도 꺼려하시지 아니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五백 비구 중에는 몇 비구나 三명(明)을 얻었고, 몇 비구나 구해탈(俱解脫)을 얻었으며, 몇 비구나 혜해탈(慧解脫)을 얻었나이까.”

 

“샤아리푸트라여, 이 五백 비구 중에서 九十 비구는 三명을 얻었고, 九十 비구는 구해탈을 얻었으며, 그 나머지 비구는 혜해탈을 얻었다. 샤아리푸트라여, 이 무리들은 가지도 없고 잎도 없으며, 또한 마디도 없어 청정하고 진실하여, 바르게 머물러 서게 되었느니라.”

 

그 때에 존자 방기사(傍耆舍)도 또한 대중 가운데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게 위력을 주소서. 원하옵건대 선서시여, 저로 하여금 부처님과 비구들 앞에서 이치에 알맞은 게송을 짓게 하소서.”

“방기사여, 너의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이에 존자 방기사는 부처님과 비구들 앞에서 이치에 알맞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오늘 十五일 청청일(請請日)에

모여 와 앉은 五백의 무리들은

모든 결박을 끊어 없애고

걸림이 없고 유(有)가 다한 신선일래

 

청정한 광명으로 비추어

일체의 유(有)를 벗어났나니

생, 노와 병, 사가 다하고

누(漏)를 멸하고 할 일을 마치었네

 

들뜸과 뉘우침과 의혹의 맺음과

거만과 유루(有漏)는 이미 다하고

애욕의 맺음 가시 빼어 없애어

최상의 의원이라 다시 없도다

 

용맹스럽기 사자와 같아

일체의 두려움과 무서움 없고

나고 죽음 이미 건너고

모든 번뇌는 이미 멸해 다하셨도다

 

마치 저 전륜왕이

뭇 신하들에 둘러싸이어

일체의 땅을 모두 거느려

대해(大海)에까지 미치는 것처럼

 

이렇게 용맹하여 모든 것 항복 받고

다시 위없는 상인(商人)의 주인

제자들은 즐거이 공경하나니

三달(達)로 죽음의 두려움 떠났네

 

일체 모든 부처님의 제자로서

가지와 잎, 마디 길이 없애고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면서

제일 높은 이에게 머리를 조아리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22. 첨파경(瞻波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첨파(瞻波)에 노닐으시면서 강가아[恒何]못 가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달 十五일에 종해탈을 말씀하시려고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으시었다.

 

세존께서는 앉으신 뒤에 곧 정(定)에 들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써 대주의 마음을 관찰하시었다. 대주의 마음을 관찰하신 뒤에 초야(初夜)가 끝나도록 끝내 잠자코 앉아 계시었다. 이에 어떤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초야가 이미 끝났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와 앉은 지 오래 되었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시지 않으시었다. 이에 세존께서는 다시 중야(中夜)에 이르도록 잠자코 앉아 계시었다. 그 한 비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초야는 이미 지나고 중야도 곧 끝나려 하오며, 비구들은 모여 와 앉은 지 오래 되었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는 또한 다시 잠자코 대답하시지 않으시었다. 이에 세존께서는 다시 후야(後夜)에 이르도록 잠자코 앉아 계시었다. 그 한 비구는 세 번째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초야도 이미 지나고 중야도 또 끝났으며, 후야도 다하려 하여 장차 먼동이 터서 해가 뜰 때도 오래지 않았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와 앉은 지도 퍽 오래 되었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대중 가운데 한 비구는 이미 깨끗하지 못하였다.”

그 때에 존자 모옥갈라아나도 또한 대중 가운데 있었다. 이에 존자 마하아모옥갈라아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 때문에 이 대중 가운데 어떠한 비구는 이미 깨끗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차라리 여기상정(如其像定)에 들어가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써 대주의 마음을 관찰해 보리라.’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여기상정에 들어가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써 대중의 마음을 관찰해 보았다.

 

세존께서 어떤 비구 때문에 이 대중 가운데 한 비구는 이미 깨끗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 까닭을 알았다. 이에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곧 정(定)에서 일어나, 그 비구 앞으로 가서 그 팔을 잡고 끌어내어 문밖에 밀어내면서 ‘이 어리석은 자야, 여기 머무르지 말고 멀리 떠나라. 다시는 다른 비구들과 만나지 말라. 지금부터 너는 비구가 아니다.’하고 문을 닫아 빗장을 걸었다. 그리고, 부처님께 돌아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 때문에 세존께서 ‘이 대중 가운데 한 비구는 이미 깨끗하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 그 자를 저는 이미 쫓아내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초야도 이미 지나고 중야도 이미 끝났으며, 후야도 다하려 하여 장차 먼동이 터서 해가 뜰 때도 오래지 않았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와 앉은 지도 퍽 오래되었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모옥갈라아나야, 그 어리석은 자는 세존과 비구들을 희롱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큰 죄를 당할 것이다. 만일 여래가 깨끗하지 못한 무리가 있는 데서 종해탈을 말하면 그는 곧 머리가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그러므로, 모옥갈라아나야,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종해탈을 말하라.

 

여래는 다시는 종해탈을 말하지 않으리라.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이 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가지는 태도와 상가아티이와 모든 입기와 바루 가진 줄을 잘 알고,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자고 깨기와 말하고 잠잠한 줄을 다 바로 알아서, 진정한 범행자로 꾸미고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더라도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요 사문의 욕(辱)이며, 사문의 미움이요 기롱이다.’라고.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곧 그를 물리쳐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모옥갈라아나야, 마치 거사가 좋은 벼논이나 보리밭이 있는데, 가라지라는 풀이 거기 나는 것과 같다. 그 뿌리도 비슷하고, 줄기, 마디, 잎, 꽃도 또한 비슷하지마는 뒤에 열매를 맺었을 때에 거사는 그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보리의 더러움이요 보리의 욕이며, 보리의 미움이요 보리의 기롱이다’라고. 그는 그런 줄 안 뒤에는 곧 뽑아서 밭 밖에다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다른 진정하고 좋은 보리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와 같이 모옥갈라아나야,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가지는 태도와 상가아티이와 모든 옷을 입기와 바루 가진 줄을 잘 알고,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깨기와 말하고 잠잠한 줄을 다 바로 알아서, 진정한 범행자로 꾸미고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더라도 그들은 혹은 알지 못할 것이다.

 

모옥갈라아나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요 사문의 욕이며, 사문의 미움이요, 사문의 기롱이다’라고.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곧 그를 물리쳐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모옥갈라아나야, 마치 거사가 가을 곡식을 디룰 때 곡식 무더기 속에 만일 알찬 곡식이 있으면 디루어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마는 만일 쭉정이나 껍질은 곧 바람을 따라 날아가는 것과 같다.

 

거사는 그것을 본 뒤에는 곧 비를 가지고 가려 쓸어서 맑게 하는 것과 같나니, 무슨 까닭인가. 다른 깨끗하고 좋은 벼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와 같이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가지는 태도와 상가아티이와 모든 옷을 입기와 바루 가진 줄을 잘 알고,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깨기와 말하고 잠잠한 줄을 다 바로 알아서, 진정한 범행자로 꾸미고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더라도 그들은 혹은 알지 못할 것이다.

 

모옥갈라아나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요 사문의 욕이며, 사문의 미움이요, 사문의 기롱이다’라고.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곧 그를 물리쳐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모옥갈라아나야, 마치 거사가 샘물을 끄을기 위하여 홈대를 만들려고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가 여러 나무를 두드려 보는데, 만일 단단하고 속이 찼으면 그 소리는 작고, 만일 속이 비었으면 그 소리는 크다. 거사는 그것을 안 뒤에는 곧 베어서 마디를 다듬고 법대로 홈대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가지는 태도와 상가아티이와 모든 옷을 입기와 바루 가진 줄을 잘 알고,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깨기와 말하고 잠잠한 줄을 다 바로 알아서, 진정한 범행자로 꾸미고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더라도 그들은 혹은 알지 못할 것이다.

 

모옥갈라아나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요 사문의 욕이며, 사문의 미움이요, 사문의 기롱이다’라고.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곧 그를 물리쳐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함께 모여 있거든 마땅히 알라

악과 욕심, 미움, 투기, 성냄과

말하지 않음, 맺음, 원한, 아낌과

질투와 아첨과 속임이 있으면서

 

대중 가운데서는 간사한 말 그치고

그윽한 곳에서는 사문이라 일컬으며

남몰래는 모든 악을 행하여

나쁜 소견으로서 수호(守護)하지 않으며

 

거짓으로 속이고 거짓말하거든

마땅히 그를 이렇게 알아

가서 모이어 사귀지 말고

물리쳐 버리어 함께 하지 말라

 

속이고 간사하고 거짓말 많고

쉬지도 못했으면서 쉬었다 일컬으며

남이 아는 때에만 깨끗한 행 갖추거든

물리쳐 버리어 그를 멀리 떠나라

 

맑고 깨끗한 이와

언제나 마땅히 서로 화합하여라

화합은 진실로 안온을 얻나니

이리하여 괴로움은 끝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23. 사문이십억경(沙門二十億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사문 이십억(二十億)도 또한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다가 사림(闍林)에 있으면서, 중야(中夜)에도 후야(後夜)에도 공부하기에 잠자지 않고, 꾸준히 힘써 바르게 머물러서, 도품(道品)을 닦아 익히었다.

 

이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편안하고 고요히 혼자 있으면서, 고요히 앉아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만일 세존의 제자로서 꾸준히 힘써 법술을 학습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으뜸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마음은 모든 누(漏)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 부모 집은 지극히 풍부하고 즐거워 재물이 많이 있다. 나는 이제 차라리 계를 버리고, 도행(道行)을 그만두고 보시를 행하여, 모든 복업(福業)을 닦으면 어떨까’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서 존자 사문 이십억이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곧 한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저기 가서 사문 이십억을 불러오라.”

 

이에 한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세 번 돌고는 곧 물러갔다. 그는 존자 사문 이십억에게 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존자 사문 이십억은 비구의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사문아, 너는 참으로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면서 고요히 앉아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으로 ‘만일 세존의 제자로서 꾸준히 힘써 바른 법술을 학습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제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네 마음은 모든 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부모 집은 지극히 풍부하고 즐거워 재물이 많이 있다. 나는 이제 차라리 계를 버리고, 도행을 그만두고 보시를 행하여 모든 복업을 닦으면 어떨까.’고 생각하였는가.”

 

그 때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부끄러워하면서 곧 무외(無畏)가 없어졌다. ‘세존께서는 내 마음의 생각한 바를 아시었다’고. 곧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진실로 그러하나이다.”

“사문아, 나는 이제 너에게 물을 것이니, 아는 대로 대답하라. 네 뜻에는 어떠하냐. 너는 집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다. 거문고는 노랫소리를 따르고 노랫소리는 거문고를 잘 따랐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거문고를 탈 때에 줄이 너무 조여도 그 화한 소리가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던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거문고를 탈 때에 줄이 골라 너무 조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으며, 알맞아서 그 중도를 얻으면 화한 소리가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던가.”

 

“그러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사문아, 너무 과히 정진하면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너무 정진하지 않으면 마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이 때를 분별하고 이 상(相)을 관찰하여 방일하게 하지 말라.”

 

그 때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가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는 부처님의 거문고 타는 비유의 가르침을 받고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마음에 방일이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하였다.

 

그는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마음에 방일이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한 뒤에, 족성자(族姓子)의 하는 대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치고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체험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 수 있다고 알았다.

 

존자 사문 이십억은 법을 안 뒤에는 아라한까지 되었다.

그 때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아라한이 된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나는 차라리 세존께서 계시는 곳에 나아가 구경(究竟)의 지혜를 설명(說明)하면 어떨까’고. 이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부처님 계시는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집착이 없게 되어 모든 누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치어 무거운 짐은 이미 버렸으며, 유(有)의 맺음은 이미 풀리어 스스로 좋은 이치를 얻어 해탈한 줄을 바로 알면, 그는 그 때에는 이 六처(處)를 즐거워하나이다.

 

곧 욕심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고 멀리 떠난 것을 즐거워하며, 다툼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고 애욕이 다한 것을 즐거워하며, 집착이 다한 것을 즐거워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즐거워하나이다. 세존이시여,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나이다. ‘이 사람은 믿음을 의지하기 때문에 욕심이 없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그러나, 그렇게 관찰하는 것은 옳지 않나이다.

 

다만 탐욕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하여야 욕심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나이다. 세존이시여,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나이다. ‘이 사람은 이익과 기림을 탐하고, 공양을 구하려 하기 때문에 멀리 떠남을 즐거워한다’고. 그러나, 그렇게 관찰하는 것은 옳지 않나이다.

 

다만 탐욕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하여야 욕심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나이다. 세존이시여,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나이다.

 

‘이 사람은 계를 의지하기 때문에 다툼이 없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그러나, 그렇게 관찰하는 것은 옳지 않나이다. 다만 탐욕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하여야 다툼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고 애욕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며, 집착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즐거워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집착이 없게 되어 모든 누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치어 무거운 짐은 이미 버렸으며, 유(有)의 맺음은 이미 풀리어 스스로 좋은 이치를 얻어 해탈한 줄을 바로 알면, 그는 그 때에는 이 六처를 즐거워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학문이 아직 되지 못하여 마음으로 위없는 안온과 열반을 원하여 구하면, 그는 그 때에 학근(學根)과 학계(學戒)를 성취하고, 그 뒤에는 모든 누가 이미 다하여 누가 없게 되고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면, 그는 그 때에 학근이 없고 학계가 없어짐을 성취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유아(幼兒)와 같나니, 그는 그 때에 작은 근(根)과 작은 계를 성취하였다가 그 뒤에 학근을 완전히 갖추면, 그는 그 때에는 학근과 학계를 성취하나이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학문이 아직 되지 못하여 마음으로 위없는 안온과 열반을 원하여 구하면 그는 그 때에는 학근과 학계를 성취하고, 그 뒤에는 모든 누가 이미 다하여 누가 없게 되고,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면, 그는 그 때에는 학근이 없고 학계가 없어짐을 성취하나이다.

 

그는 혹 눈이 보는 빛깔이 있어 눈과 대(對)하더라도 이 마음의 해탈과 슬기의 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보호하면서,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나이다.

 

혹 귀가 듣는 소리와 코가 맡는 냄새와 혀가 맛보는 맛과 몸이 깨닫는 촉감과 내지 뜻이 아는 법이 있어, 뜻과 대하더라도 이 마음의 해탈과 슬기의 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보호하면서, 흉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돌산이 있는 것과 같나니, 부숴지지 않고 쪼개지지 않으며, 든든하게 서서 속이 비지 않고 서로 붙어 있을 때 혹 동방에서 큰 바람비가 오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움쩍하지 않나이다.

 

또한 동풍만이 아니라, 옮기어 남방에 이르러 혹 남방에서 큰바람 비가 오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움쩍하지 않나이다. 또한 남풍만이 아니라, 옮기어 서방에 이르러 혹 서방에서 큰 바람비가 오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움쩍하지 않나이다.

 

또한 서풍만이 아니라, 옮기어 북방에 이르러 혹 북방에서 큰바람 비가 오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움쩍하지 않나이다. 또한 북풍만이 아니라, 옮기어 모든 방위에 이르나이다.

 

이와 같이 그는 혹 눈이 보는 빛깔이 있어 눈과 대하더라도 이 마음의 해탈과 슬기의 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보호하면서,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나이다.

 

혹 귀가 듣는 소리와 코가 맡는 냄새와 혀가 맛보는 맛과 몸이 깨닫는 촉감과 내지 뜻이 아는 법이 있어, 뜻과 대하더라도 이 마음의 해탈과 슬기의 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보호하면서, 흉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나이다.”

이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즐거움은 욕심이 없는 데 있나니

마음을 멀리 떠남에 두어

다툼이 없음을 기뻐하고

집착이 다하여 기뻐하도다.

 

또한 집착이 다함을 즐겨하고

마음이 옮기어 움직이지 않아

모든 것의 참다움 알게 되매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해탈하네

 

마음이 이미 해탈하매

비구는 모든 근(根)이 쉬게 되고

할 일을 마치고 관찰하지 않으매

다시는 애써 구할 것 없네

 

그것은 마치 돌로 된 산을

바람도 움직이게 못하는 것처럼

빛깔과 소리 냄새와 맛

몸의 촉감도 또한 그러하나니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법도

마음을 움직이게 못하느니라

 

존자 사문 이십억은 부처님 앞에서 구경의 지혜를 설명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때에 세존께서는 존자 사문 이십억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족성자들이여, 마땅히 이렇게 내 앞에 구경의 지혜를 설명하라. 저 사문 이십억처럼 내 앞에 와서 구경의 지혜를 설명하되 스스로 기리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현재에 있어서 가는 곳마다 이치를 설명하라. 그래서 어리석음과 증상만(增上慢)에 얽매인 자처럼 내 앞에 와서 구경의 지혜를 설명하지 말라. 그는 이익을 얻지 못하고 다만 크게 피로할 뿐일 것이다.

 

사문 이십억은 내 앞에 와서 구경의 지혜를 설득하였지마는 스스로 기리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현재에 있어서 가는 곳마다 이치를 설명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24. 팔난경(八難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여덟 가지 어려움과 여덟 가지 적당하지 않은 때가 있다. 어떤 것이 여덟인가.

 

때로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고 호하는 이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여 지식(止息)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흘(滅訖)로 나아가게 하며, 각도(覺道)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것은 선서(善逝)의 말씀하신 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때에 지옥 가운데 나나니,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 一의 어려움과 제 一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하느니라.

 

때로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고 호하는 이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여 지식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흘로 나아가게 하며, 각도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것은 선서의 말씀하신 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때에 축생 가운데 나고 아귀 가운데 나며, 장수천(長壽天) 가운데 나고 변국(邊國)에 있는 오랑캐 가운데 나서, 마음도 없고 은혜도 없으며, 은혜를 갚음도 없고 혹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도 없다.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 五의 어려움과 제 五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하느니라.

 

때로,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고 호하는 이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여 지식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흘로 나아가게 하며, 각도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것은 선서의 말씀하신 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때에 비록 중국에 나지마는 귀머거리와 벙어리로서, 염소가 우는 것 같고, 항상 손짓으로 말하며, 선악의 이치를 알거나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 六의 어려움과 제 六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하느니라.

 

때로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고 호하는 이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여 지식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흘로 나아가게 하며, 각도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것은 선서의 말씀하신 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때에 중국에 나서, 귀머거리도 아니요 벙어리도 아니어서, 염소가 우는 것 같지 않고, 손짓으로 말하지도 않으며, 또 선악의 이치를 알아서 설명한다. 그러나, 삿된 소견과 뒤바뀐 소견이 있어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재(齋)도 없으며, 또한 주설(呪設)도 없다. 선, 악의 업도 없고 선, 악의 갚음도 없으며, 이 세상, 저 세상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 세상에는 참 사람으로서 좋은 곳으로 가거나, 이 세상,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일도 없다’고.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 七의 어려움과 제 七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하느니라.

 

때로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고 호하는 이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여 지식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흘로 나아가게 하며, 각도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것은 선서의 말씀하신 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때에 중국에 나서 귀머거리도 아니요 벙어리도 아니며, 염소가 우는 것 같지도 않고 손짓으로 말하지도 않으며, 또 선, 악의 이치를 잘 알아 설명하면서, 바른 소견과 뒤바뀌지 않은 소견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한 주설도 있다.

 

선, 악의 업도 있고 선, 악의 업의 갚음도 있으며, 이 세상, 저 세상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다. 세상에는 참 사람으로서, 좋은 곳으로 가거나 이 세상,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일도 있다’고.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 八의 어려움과 제 八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하느니라.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一의 어렵지 않음과 一의 적당한 때가 있다. 어떤 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一의 어렵지 않음과 一의 적당한 때가 있다고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고 호하는 이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여 지식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흘로 나아가게 하며, 각도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것은 선서의 말씀하신 바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그 때에 중국에 나서 귀머거리도 아니요 벙어리도 아니며, 염소가 우는 것 같지도 않고 손짓으로 말하지도 않으며, 또 선, 악의 이치를 잘 알아 설명하면서도, 바른 소견과 뒤바뀌지 않은 소견이 있어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한 주설도 있다.

 

선, 악의 업도 있고 선, 악의 업의 갚음도 있으며, 이 세상, 저 세상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다. 세상에는 참 사람으로서 좋은 곳으로 가거나 이 세상,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험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일도 있다’고.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一의 어렵지 않음과 一의 적당한 때라고 하느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만일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가장 미묘한 법 말해야 하네

만일 그 과(果)를 못 얻었으면

반드시 그 때를 만나지 못함이네

 

많이들 범행의 어려움을 말하나니

만일 사람이 후세에 가서

비로소 그 때를 만날 수 있다면

이것은 이 세상의 몹시 어려움이네

 

만일 다시 사람의 몸을 얻고

또 미묘한 법 들으려 하거든

마땅히 정근하여 배워야 하네

자기를 가엾이 여기기 때문일래

 

많은 말에서 좋은 법 들어

그 때를 놓치지 말게 하라

만일 그 때를 놓칠 양이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 걱정하리

 

만일 그 때를 만나지 못하여

좋은 법 설하는 것 듣지 못하면

장수가 재물을 잃은 것 같아

생, 사를 받기 한량없으리

 

만일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바르고 좋은 법 설하는 것 듣고

세존의 가르침 받들어 좇으면

반드시 그 때를 만나게 되리

 

만일 그 때를 만나게 되어

바른 범행을 견디어 내면

위없는 눈이신 세존의

말씀한 바를 성취하리라

 

그는 언제나 스스로 보호해

더 나아가 모든 번뇌 떠나고

일체의 맺음을 끊어 없애고

악마와 그의 권속 항복 받으리

 

그는 이 세상을 건너갔나니

곧 모든 누(漏)를 다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25. 빈궁경(貧窮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빈궁(貧窮)한 것은 큰 고통이 되겠는가.”

비구들은 여쭈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빈궁하면 남의 집 재물을 빌린다. 세상에서 남의 집 재물을 빌리는 것은 큰 고통이 되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려 제 때에 갚지 못하면 날마다 이자가 길어 간다. 세상에서 이자가 길어 가는 것은 큰 고통이 되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 이자가 길어도 갚지 못하면 빚 주인은 꾸짖는다. 세상에서 빚 주인이 꾸짖는 것은 큰 고통이 되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빚장이가 독촉하여도 갚지 못하면, 빚 주인은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한다. 세상에서 빚 주인이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하는 것은 큰 고통이 되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빚 주인이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하더라도 그가 일부러 갚지 않으면, 곧 집주인에게 결박된다. 세상에서 빚 주인에게 결박되는 것은 큰 고통이 되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이것을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빈궁한 것은 큰 고통이요,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리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려 이자가 길어 가는 것은 큰 고통이요,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집주인의 독촉을 받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의 빚 주인이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하는 것은 큰 고통이요,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집주인에게 묶이는 것은 큰 고통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만일 이 거룩한 법 가운데, 선법에 믿음이 없고 금계(禁戒)가 없으며, 널리 들음이 없고 보시가 없으며, 선법에 지혜가 없으면, 그는 비록 금, 은, 유리, 수정, 마니, 백가(白珂), 나벽(螺壁), 산호, 호박, 마노, 대모, 자거, 벽옥, 적석(赤石), 선주(琁珠) 따위가 많이 있더라도, 그는 짐짓 빈궁하여 아무 힘도 형세도 없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不善)의 빈궁이라 하느니라.

 

그는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이 있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의 빚이라 하느니라. 그는 그 몸의 악행을 숨기려고 하여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말하려고 하지 않으며, 남의 꾸지람을 받고자 하지 않아, 순종하여 구(求)하지 않는다. 또 입과 뜻의 악행을 숨기고자 하여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말하려 하지 않으며, 남의 꾸지람을 받고자 하지 않아, 순종하여 구하지 않는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이 길어나는 이자라 하느니라.

 

그가 혹 촌읍이나 촌읍 밖으로 가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보고 곧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이 사람은 이렇게 일하고 이렇게 행하며, 이렇게 악하고 깨끗하지 못하다. 이 사람은 이 촌읍의 창피다.’라고. 그러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나는 그렇게 일하지 않고 그렇게 행하지 않으며, 그렇게 악하지 않고 그렇게 깨끗하지 않지 않으며, 또한 이 촌읍의 창피도 아니다.’라고.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꾸짖음이라 하느니라.

 

그는 일없는 곳에 있거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있거나, 혹은 비고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도,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생각 곧 욕심 내는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는 생각을 생각한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이 자주 가는 독촉이라 하느니라.

 

그는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을 지은 뒤에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 가운데 난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의 결박이라 하느니라. 나는 어떠한 결박도 이처럼 괴롭고 이처럼 무거우며, 이처럼 추하고 이처럼 즐거워할 것이 못 되어, 지옥, 축생, 아귀의 결박 같은 것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 이 세 가지 고통의 결박을 누(漏)가 다한 아라한 비구는 이미 알아 멸해 다하고 그 근본을 뽑아, 다시 와서 나는 일이 없느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세상에서 빈궁은 고통이어서

다른 사람에게서 재물을 빌리고

남의 재물을 빌린 뒤에는

남에게 구박받아 고뇌가 되네

 

빚 주인은 와서 독촉하다가

그 때문에 끝내는 결박하나니

그 결박 매우 무겁고 괴로와라

세상은 욕심을 즐겨하기 때문이네

 

성법(聖法)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

만일에 바른 믿음이 없으면

스스로도, 남에게도 부끄럼 없고

악하여 착하지 않은 짓을 하네

 

몸으로도 착하지 않은 짓을 하고

입이나 뜻도 또한 함께 그러해

그것을 숨기어 말하려 하지 않고

또 바른 충고도 즐거워하지 않네

 

만일 그것을 되풀이해 행하면

뜻과 생각은 곧 고통이 되나니

마을에서나 혹은 고요한 곳에서나

그 때문에 반드시 뉘우침 있네

 

몸과 입으로 모든 행 익히고

또 뜻으로 온갖 것 생각하여

악한 업은 갈수록 많아지나니

되풀이 되풀이해 짓고 또 짓네

 

그는 악한 업으로 슬기가 없어

불선(不善)한 짓을 많이 지은 뒤

나는 곳을 따르다가 마지막에는

반드시 지옥의 결박으로 가나니

그 결박은 가장 심한 괴로움

웅맹(雄猛)한 자만이 떠날 수 있네

 

재물과 이익을 법다이 얻어

빚지지 않으면 안온을 얻고

보시를 행하여 기쁨을 얻나니

이 둘은 다 함께 이익을 가져오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거사는

보시로 말미암아 복이 더욱 더하네

 

이와 같이 거룩한 이 법 가운데서

만일 좋은 정성과 믿음 있으면

그것을 갖추어 부끄럼 되어

거의 간탐(慳貪)이 없게 되리라

 

이미 五개(蓋)를 버리어 떠나고

항상 즐거이 정진을 행하여

모든 선정(禪定)을 이루어 마치고

마음을 오로지해 즐거움을 버리네

 

이미 무식(無食)의 즐거움 얻어

마치 물에 목욕한 깨끗함 같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해탈하여

일체의 유(有)의 맺음 다했느니라

 

병이 없음으로서 열반을 삼으니

이것을 위없는 등(燈)이라 하고

걱정도 티끌도 없는 편안함

이것을 이동(移動)하지 않음이라 말하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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