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 제 十二권
제 二十一 삼보품(三寶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의 귀의하는 덕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부처님께 귀의하는 첫째 덕과 법에 귀의하는 둘째 덕과 중에게 귀의하는 셋째 덕이다.
어떤 것이 부처님께 귀의하는 덕인가. 이른바 모든 중생으로서 두 발 갖이[二足], 네발 갖이, 많은 발 갖이와 형상 세계, 무형 세계와 생각 있는 세계, 생각 없는 세계에서 니유선천[尼維先天]에 이르기까지 그 중에서 여래는 가장 높고 제일이어서 따를 이가 없다.
그것은 마치 소[牛]에서 우유를 얻고 우유에서 타락을 얻고 타락에서 소(酥)를 얻고 소에서 제호(醍醐)를 얻지마는 그 중에서 제호가 가장 귀하고 제일이어서 아무 것도 그것을 따를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중생으로서 두발 갖이, 세발 갖이, 많은 발 갖이와 형상 세계, 무형 세계와 생각 있는 세계, 생각 없는 세계에서 니유선천에 이르기까지 그 중에서 여래가 가장 높고 제일이어서 따를 이가 없어, 모든 중생들은 다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받들어 섬기는 첫째가는 덕으로서 그 첫째가는 덕을 갖추면 곧 천상이나 인간의 복을 받는다.
어떤 것이 법에 귀의하는 것인가. 이른바 모든 법으로서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무욕(無欲)과 무염(無染)과 멸진(滅盡)과 열반이 있지마는 그 중에서 열반이 가장 높고 제일이어서 미칠 것이 없다.
그것은 마치 소에서 우유를 얻고 우유에서 타락을 얻고 타락에서 소를 얻고 소에서 제호를 얻지마는 그 중에서 제호가 가장 귀하고 제일이어서 아무 것도 그것을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이른바 모든 법으로서 유루, 무루와 유위, 무위와 무욕과 무염과 멸진과 열반이 있지마는 그 중에서 열반이 가장 높고 제일이어서 모든 중생들은 법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받들어 섬기는 첫째가는 덕으로서 그 첫째가는 덕을 갖추면 곧 천상이나 인간의 복을 받는다. 이것이 첫째가는 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거룩한 대중에게 귀의하는 것인가. 이른바 거룩한 대중이란 형상이 있는 많은 사람이요 큰 모임이다. 그 대중에서 여래의 제자 중들이 가장 높고 제일이어서 그들에게 미칠 이가 없다.
그것은 마치 소에서 우유를 얻고 우유에서 타락을 얻고 타락에서 소를 얻고 소에서 제호를 얻지마는 그 중에서 제호가 가장 귀하고 제일이어서 아무 것도 그것을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이른바 거룩한 대중이란 형상이 있는 많은 사람이요 큰 모임이다. 그 중에서 여래의 제자 중들이 가장 높고 제일이어서 그들에게 미칠 이가 없다. 이것이 이른바 받들어 섬기는 첫째가는 덕으로서 그 첫째가는 덕을 갖추면, 곧 천상이나 인간의 복을 받는다. 이것을 첫째가는 덕이라 하느니라.”
첫째로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
그것은 가장 높아 위가 없으며
다음으로 그 법을 받들어 섬기면
탐욕이 없어지고 집착이 없고
거룩한 무리를 공경히 받들면
그것은 가장 좋은 복밭이니라.
그런 사람은 첫째가는 지혜 있어
그 누구보다 복을 먼저 받나니
만일 그가 천상이나 인간에 나면
그들 속에서 바른 길잡이 되리라.
그리고 가장 묘한 자리를 얻어
저절로 저 단 이슬 먹게 되나니
몸에는 일곱 가지 보배 옷 입고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느니라.
가장 완전히 계율 갖추어
모든 감관은 이지러짐이 없고
그리고 지혜의 바다를 얻어
열반 세계로 차츰 나아가나니.
이 세 가지 귀의를 갖춘 사람
나아가는 그 길도 어렵지 않네.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복의 업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보시가 복의 업이요, 평등이 복의 업이며, 생각이 복의 업이다.
어떻게 보시가 복의 업이 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을 내어 사문, 바라문이나 매우 빈궁한 이나 고독한 이나 갈 곳 없는 이에게 보시하되 밥을 요구하는 이에게는 밥을 주고 장을 요구하는 이에게는 장을 주며,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 향, 꽃과 잘 곳 등 그의 요구를 따라 아낌없이 주면 이것이 이른바 ‘보시가 복의 업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평등이 복의 업이 되는가. 혹 어떤 사람은 살생하거나 도둑질하지 않고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나쁜 생각을 내어 남의 물건을 가만히 훔치지 않고 남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아끼는 마음이 없으며, 말씨가 부드러워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스스로 범행을 닦아 제 아내에 만족하여 다른 여자를 보지 않으며, 항상 진실하여 속이지 않기를 생각해 거짓말하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의 존경을 따라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며 언제나 난잡한 것을 피할 줄 알아 술을 마시지 않는다.
또 사랑하는 마음을 일방(一方)에 두루 채우고 二방, 三방, 四방, 八방, 상, 하에도 두루 채워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도 없이 일체를 두루 덮어 안온을 얻게 한다. 다시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보호하려는 마음을 一방에 두루 채우고 二방, 三방, 四방, 八방, 상, 하에도 모두 채워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도 없이 일체에 두루 채운다. 이것이 이른바 ‘평등이 복의 업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생각이 복의 업이 되는가.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아 욕심과 관찰이 없어지고 아주 고요해 번뇌에서 벗어난다. 다음에는 법각의(法覺意), 의각의, 정각의(定覺意), 호각의(護覺意)를 닦아 욕심과 관찰이 없어지고 아주 고요해 번뇌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이 복의 업이 된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런 세 가지 복의 업이 있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시와 평등과 사랑하는 마음과
보호하는 마음과 또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의 세 가지 업이 있어
지혜로운 사람의 친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 갚음 받고
천상에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런 세 가지 업으로 말미암아
천상에 태어날 것 의심 없어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세 가지를 행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인연이 있어야 아기를 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어머니가 욕심이 있어서 부모가 한 곳에 모여 함께 자더라도 바깥에서 식(識)이 오지 않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식이 와서 들어가려 하더라도 부모가 한 데 모이지 않으면 아기를 베지 못한다.
또 어머니가 욕심이 없이 부모가 한 곳에 모였을 때에 아버지의 욕심이 아무리 왕성하더라도 어머니가 그리 간절하지 않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부모가 한 곳에 모였을 때에 어머니의 욕심이 아무리 왕성하더라도 아버지가 그리 간절하지 않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부모가 한 곳에 모였더라도 아버지에게 풍병이 있고 어머니에게 냉병(冷病)이 있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부모가 한 곳에 모였더라도 어머니에게 풍병이 있고 아버지에게 냉병이 있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때로는 부모가 한 곳에 모였더라도 아버지에게 물 기운이 너무 많으면 어머니에게는 그런 병이 없더라도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때로는 부모가 한 곳에 모였더라도 아버지 상(相)에는 자식이 있지만 어머니 상에 자식이 없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때로는 부모가 한 곳에 모였더라도 어머니 상에는 자식이 있지만 아버지 상에 자식이 없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때로는 부모상에 모두 자식이 없으면 아기를 배지 못하느니라.
또 때로는 식신(識神)이 태에 오더라도 아버지가 어디 가고 없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때로는 부모가 한 곳에 모일 만한데 어머니가 멀리 가고 없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때로는 부모가 한 곳에 모일 만한데 아버지가 중한 병에 걸렸으면 식신이 오더라도 아기를 배지 못한다. 때로는 부모가 한 곳에 모일 만하고 식신이 오더라도 어머니가 중한 병을 앓으면 아기를 배지 못한다. 또 때로는 부모가 한 곳에 모일 만하고 식신이 오더라도 부모가 모두 병을 앓으면 아기를 배지 못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부모가 한 곳에 모이고 부모에게 병이 없으면 식신이 오고 또 부모에게 모두 자식을 둘 상이 있으면 그는 곧 아기를 밴다. 이것이 이른바 ‘세 가지 인연이 모이면 아기를 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해 이 세 가지 인연을 끊으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으로서 사랑하는 생각을 일으키고 독실한 믿음으로 부모, 형제, 친척, 아내, 벗을 받들어 섬기려 하거든 마땅히 세 곳에 편안히 머물러 흔들리지 말라. 어떤 것이 셋인가.
첫째는 여래에게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흔들리지 말라. 그 여래는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 지혜와 행을 갖춘 이, 잘 간 이, 세상 아는 이, 위없는 선비, 도법으로 의거하는 이, 천상과 인간의 스승, 부처 세존이라고 부르느니라.
둘째는 바른 법에 마음을 내는 것이다. 여래의 법은 잘 말해진 걸림이 없는 것으로서 지극히 미묘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큰 과보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배워서 알아야 하느니라.
셋째는 이 거룩한 무리에게 마음을 내는 것이다. 여래의 거룩한 무리는 모두 서로 화합하여 어지러움이 없고 법과 법을 성취하고 계율을 성취하고 삼매와 지혜와 해탈과 해탈하였다는 소견을 성취한다. 이른바 거룩한 무리란 사쌍 팔배(四雙八輩)와 十二성현이다. 그 여래의 거룩한 무리는 공경할 만하고 높일 만하여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 된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를 배우면 큰 과보를 얻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코오카알리카 비구는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저 샤아리푸트라와 모옥갈라아나는 소행이 아주 나빠 온갖 악행을 다 짓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런 말 말라. 너는 여래의 처소에서는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저 샤아리푸트라와 모옥갈라아나 비구는 소행이 순수하고 착해 아무런 악도 없느니라.”
코오카알리카 비구는 두 번 세 번 사뢰었다.
“여래 말씀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나이다. 그러하오나 샤아리푸트라와 모옥갈라아나는 소행이 아주 나빠 선의 근본이 조금도 없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미련한 사람아, 너는 여래 말을 믿지 않느냐. 너는 방금 ‘샤아리푸트라와 모옥갈라아나 비구는 소행이 아주 나쁘다’고 말하였다. 너는 그런 악행을 지었다. 오래지 않아서 그 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 때에 그 비구는 그 자리에서 몸에 나쁜 부스럼이 생겨 겨자 만하던 것이 차츰 커서 콩 만하고 아말리카 열매 만하다가 호두 만하고 드디어는 합장한 것 만하게 되어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연화 지옥(蓮華地獄)에 떨어졌다.
그 때에 존자 마하아 모옥갈라아나는 코오카알리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가 잠시 뒤에 물러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코오카알리카 비구는 어디에 태어났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는 죽어서 연화 지옥에 났느니라.”
“저는 지금 그 지옥에 가서 그를 교화하려 하나이다.”
“모옥갈라아나야, 너는 거기 갈 필요가 없느니라.”
모옥갈라아나는 거듭 사뢰었다.
“저는 그 지옥에 가서 그를 교화하려 하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존자 마하아 모옥갈라아나는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듯한 동안에 슈라아바스티이에서 사라져 연화 지옥으로 갔다. 그 때에 코오카알리카 비구는 온 몸이 불에 타고 있었고 또 백 마리 소가 그 혀를 내어 젓고 있었다. 존자 마하아 모옥갈라아나는 허공에서 가부하고 앉아 손가락을 퉁기면서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 비구는 곧 우러러보면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모옥갈라아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름은 모옥갈라아나요, 성은 코올리이타[拘利陀]이다.”
그 비구는 모옥갈라아나를 보자 곧 나쁜 말로
“나는 지금 이 나쁜 곳에 덜어져 있는데 아직도 네 앞에서 떠나지 못하였는가.”고 하였다. 이렇게 말하자, 천 마리 소는 그 혀를 내저었다. 모옥갈라아나는 그것을 보고는 근심이 배나 더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슈라아바스티이로 돌아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그 동안의 사실을 자세히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 너에게 말하였다. ‘가기 가서 그 나쁜 사람을 볼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대개 사람이 세상에 나면
도끼가 그 입안에 있다
그것으로서 제 몸을 해치나니
그것은 나쁜 말 때문이니라.
저의 숨길과 내 이 숨길
그것은 모두 착하건마는
이미 나쁜 행 지었기 때문에
그는 나쁜 세상에 떨어졌다.
끝이 있거나 끝이 없거나
그곳은 가장 나쁜 곳이요
여래에 대해 나쁜 짓하면
그것은 가장 중한 죄니라.
성인을 비방한 나쁜 사람은
一만 三천과 또 六十一의
재[灰] 지옥에 떨어지나니
몸과 입으로 지은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법을 닦아 그 행을 성취하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몸의 착한 행과 입과 뜻의 착한 행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로서 세 가지 법을 성취하면 능히 현재에서 즐거움을 얻고, 용맹스레 정진하여 번뇌를 없애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비구로서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음식에 절제할 줄을 알며 거닐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비구는 모든 감관을 고요하게 하는가. 혹 비구가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 눈이 청정하게 되면, 그로서 해탈을 구해 언제나 눈을 보호하게 된다.
또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보드라움을 느끼며 뜻으로 법을 분별하더라도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 뜻이 청정하게 되면, 그로써 해탈을 구하여 언제나 뜻을 보호하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모든 감관을 고요하게 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음식을 절제할 줄 아는가. 비구는 음식의 좇아 온 곳을 생각하여 맛나고 깨끗한 것을 구하지 않고 다만 몸의 네 가지 요소를 부지하고 보전하기를 생각하되 ‘나는 지금 본래 있던 병을 고치고 다른 병이 새로 나지 않게 하며 몸에 기운이 생기게 하여 도를 닦아 범행을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고 하느니라.
그것은 마치 남자나 여자가 몸에 부스럼이 생기면 고약을 바르는 것은 곧 고치기 위해서인 것처럼 비구가 음식에 절제할 줄 아는 것도 그와 같아서 비구는 그 음식의 좇아 온 곳을 생각하여 맛나고 깨끗한 것을 구하지 않고 다만 몸의 네 가지 요소를 부지하고 보전하기를 생각하되 ‘나는 지금 본래 있던 병을 고치고 다른 새 병은 나지 않게 하며 몸에 기운이 생기게 하여 도를 닦아 범행을 끊이지 않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또 그것은 마치 무거운 짐을 싣는 수레가 그 바퀴 통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짐을 싣고 목적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인 것처럼, 비구가 음식에 절제할 줄 아는 것도 그와 같아서 비구는 그 음식의 좇아 온 곳을 생각하여 맛나고 깨끗한 것을 구하지 않고 다만 몸의 네 가지 요소를 부지하고 보전하기를 생각하되 ‘나는 지금 본래 있던 병을 고치고 다른 병이 새로 나지 않게 하며 몸에 기운이 생기게 하여 도를 닦아 범행을 끊이지 않게 하리라’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음식에 절제할 줄을 아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거닐기를 버리지 않는가. 비구는 초저녁이나 새벽이나 언제나 거닐기를 생각하여 때를 잃지 않고 항상 도품(道品) 가운데 생각을 매어 둔다. 낮에는 다니거나 앉았거나 묘한 법을 생각하여 번뇌를 없애고 초저녁에도 다니거나 앉았거나 묘한 법을 생각하여 번뇌를 없애며 밤중에는 오른쪽으로 누워 생각을 매어 밝은 곳에 두고 새벽에는 일어나 다니거나 앉았거나 깊은 법을 생각하여 번뇌를 없앤다. 이와 같이 비구는 거닐기를 버리지 않느니라.
만일 비구로서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음식에 절제할 줄을 알며 거닐기를 버리지 않고 항상 도품 가운데 생각을 매어 두면 그 비구는 곧 두 가지 결과를 성취하고 현재에서 아나함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능숙한 말몰이[御者]가 평탄한 길에서 네 마리 말 수레를 몰면 아무 장애가 없어 틀림없이 목적한 곳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그 비구도 그와 같아서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음식에 절제할 줄을 알면 거닐기를 버리지 않고 항상 도품 가운데 생각을 매어 두면 그 비구는 곧 두 가지 결과를 성취하고 현재에서 번뇌가 다해 아나함이 될 것이다.”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큰 병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풍(風)이 큰 병이요 담(痰)이 큰 병이며 냉(冷)이 큰 병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큰 병이니라.
그 세 가지 큰 병에는 세 가지 좋은 약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만일 풍병이면 소나 소로써 지은 밥이 좋은 약이 된다. 만일 담병이면 꿀이나 꿀로서 지은 밥이 좋은 약이 된다. 만일 냉병이면 기름이나 기름으로 지은 밥이 좋은 약이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 가지 큰 병에 세 가지 좋은 약이 있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또 세 가지 큰 병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니, 이것이 세 가지 큰 병이니라.
이 세 가지 큰 병에도 또 세 가지 좋은 약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만일 탐욕이 일어났을 때에는 더럽다는 도(道)를 생각하여 다스리고 성내는 큰 병은 사랑하는 마음의 도를 생각하여 다스리며, 어리석은 큰 병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라 생각하고 지혜로 다스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 가지 병에 세 가지 약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세 가지 약을 써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나쁜 행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몸의 나쁜 행과 입과 뜻의 나쁜 행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세 가지 나쁜 행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방편을 구해 세 가지 착한 행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몸의 나쁜 행을 가진 이는 몸의 착한 행을 닦아야 하고 입과 뜻의 나쁜 행을 가진 이는 입과 뜻의 착한 행을 닦아야 하느니라.”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몸의 나쁜 행을 잘 단속하고
몸의 착한 행을 닦아 익혀라
몸의 나쁜 행을 버리기 생각하고
몸의 착한 행을 배워야 한다.
입의 나쁜 행을 잘 단속하고
입의 착한 행을 닦아 익혀라
입의 나쁜 행을 버리기 생각하고
입의 착한 행을 배워야 한다.
뜻의 나쁜 행을 잘 단속하고
뜻의 착한 행을 닦아 익혀라
뜻의 나쁜 행을 버리기 생각하고
뜻의 착한 행을 배워야 한다.
그 몸의 행이 만일 착하면 입의 행도 또한 그럴 것이요
그 뜻의 행이 만일 착하면
모든 것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 입과 뜻을 단속해 청정하면
그 몸도 나쁜 행 짓지 않나니
이 세 가지 행이 깨끗해지면
함 없는 신선 곳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세 가지 나쁜 행을 버리고 세 가지 착한 행을 닦아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많은 비구들은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려 하다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성에 들어가 걸식하기는 아직 때가 이르다. 이제 우리는 외도 범지들에게나 가 보자.’
그들은 곧 외도 범지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았다. 때에 범지들은 물었다.
“고오타마 도사(道士)는 늘 탐욕과 몸과 느낌과 생각에 대해서 말한다는데, 그런 여러 가지 주장은 우리들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사문의 주장은 곧 우리들의 주장이요 우리들의 주장은 곧 사문의 주장이다. 설법도 우리 설법과 같고 가르침도 우리 가르침과 같다.”
비구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는 좋다고도 말하지 않고 나쁘다고도 말하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는 이 뜻을 세존께 여쭈어 보자.’
그들은 걸식을 마치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범지들이 물은 일을 전부 세존께 아뢰었다.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 범지들이 그렇게 묻거든 너희들은 이런 이치로 그들에게 대답하라. 즉 ‘탐욕에는 어떤 맛이 있고 어떤 화(禍)가 있는가. 마땅히 탐욕을 떠나라. 몸에는 어떤 맛이 있고 어떤 화가 있는가. 마땅히 몸을 버려라. 느낌에는 어떤 맛이 있고 어떤 화가 있는가. 마땅히 느낌을 떠나라’고. 만일 너희들이 이런 말로 그들의 물음을 대답한다면 그들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리라. 비록 무슨 말이 있더라도 그들은 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의혹만 더해 한쪽으로 치우친 소견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은 경계(대상)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와 내 가르침을 받은 여래의 제자를 제하고는 저 마군과 하늘 마군, 제석천, 범천, 四천왕, 사문, 바라문,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로서 이 깊은 이치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탐욕에는 어떤 맛이 있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쾌락이 그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빛깔을 보아 눈알음[眼識]을 일으키면, 그것은 매우 사랑스럽고 즐거워 세상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이다. 또 만일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보드라움을 느끼면, 그것은 매우 사랑스럽고 즐거워 세상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탐욕 속에서 괴롭다 즐겁다는 마음을 내면 이것이 이른바 탐욕의 맛이니라.
탐욕에는 어떤 화가 있는가. 어떤 좋은 집 자제는 온갖 기술을 배워 살아가는데 농사 짓기와 글과 품팔이, 셈, 속이기, 조각과 혹은 심부름꾼으로 여기 저기 다니며 혹은 임금을 섬기되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부지런히 애쓰지마는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이렇게 고생하면서 재물을 모은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의 화로서 현세의 고뇌는 모두 이 은혜와 애정과 탐욕 때문이니라.
그런데 그 좋은 제자는 그렇게 고생하고도 재물을 얻지 못하면 곧 헤아릴 수 없이 근심하고 걱정하며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그는 곧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괴로이 공을 들이고 온갖 방법을 써 보았지마는 재물을 얻지 못한다. 차라리 이런 짓을 버리자’고. 이것이 이른바 탐욕을 떠난다는 것이니라.
또 그 좋은 집 자제는 때로는 그런 방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 그는 그 얻은 재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간직하려 한다. 그래서 왕에게 빼앗기지나 않을까, 도둑에게 도둑 맞지나 않을까, 물에 떠내려가지나 않을까, 혹은 불에 태우지나 않을 까고 늘 걱정하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땅에 파묻으려니 뒤에 잊을까 걱정이요 이자로 주려니 받지 못할까 걱정이며 혹은 집안에 나쁜 자식이 나면 내 재물을 다 써 버릴 것이다’고. 이것이 이른바 ‘탐욕은 큰 걱정이 된다’는 것으로서 다 탐욕의 근본이 되어 이런 재변이 생기는 것이니라.
그 좋은 집 자제는 늘 그런 마음으로 그 재물을 보호하려 하지마는 그는 뒷날에 왕에게 빼앗기고 도둑에게 겁탈 당하며 물에 떠내려보내고 불에 살리기도 한다. 땅에 묻은 것은 찾지 못하고 이자로 준 것은 받지 못하며 집에서 나쁜 자식을 낳아 그 재물을 모두 써 버려 그 만 분의 하나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고 걱정하며 괴로워하고 번민하면서 가슴을 치고 부르짖는다. ‘내게 본래 있던 재물은 지금에는 모두 없어졌다’하고 드디어 멍청하거나 미치광이가 된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은 큰 화가 된다’는 것으로서 그 탐욕이 근본이 되어 함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또 그 탐욕이 근본이 되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서로 친다. 서로 침으로써 혹은 코끼리 군사 앞에서, 말 군사 앞에서, 보병 앞에서, 수레 군사 앞에서 말을 보면 말과 싸우고 코끼리를 보면 코끼리와 싸우며 수레를 보면 수레와 싸우고 보병을 보면 보병과 싸우면서 혹은 칼로 베고 활을 쏘며 창으로 서로 찌른다. 이런 것은 ‘탐욕이 큰 걱정이 된다’는 것으로서 탐욕이 근본이 되어 이런 재변이 생기는 것이니라.
다시 그 탐욕이 근본이 되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혹은 성문에서 혹은 성 위에서 칼로 서로 베고 활로 쏘며 창으로 찌르고 혹은 쇠바퀴로 그 머리를 갈고 쇠를 녹여 서로 퍼붓는다. 이런 고통을 받아 죽는 사람이 한량이 없다.
또한 탐욕이란 덧없는 것으로서 사라지고 생기며 변하고 바뀌면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탐욕이 변하고 바뀌어 덧없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이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탐욕을 버리는가. 만일 수행해서 탐욕을 버리면 그것이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탐욕의 큰 걱정임을 알지 못하고 탐욕의 근본을 버릴 줄을 모르며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威儀)를 여실히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이 아니다. 또한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탐욕이 큰 걱정임을 자세히 알아 헛되지 않고 참답게 탐욕을 버린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을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몸의 맛인가. 만일 크샤트리아의 여자, 바라문의 여자, 장자의 여자로서 나이 十四세나 十五세, 十六세쯤 되고 키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살찌지도 않고 야위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아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단정한 여자를 보면 그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고 즐겨 하는 생각을 낸다. 이것이 이른바 몸의 맛이니라.
어떤 것이 몸의 큰 걱정인가. 그는 그 뒤에 그 여자가 八十, 九十 내지 백 세의 나이가 되어 얼굴빛은 변하고 젊음은 이미 가서 이는 빠지고 머리는 희며 몸은 추하고 피부는 늘어져 낯에는 주름이 지고 등은 굽고 숨은 가쁘고 몸뚱이는 낡은 수레와 같으며 몸을 떨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어떤가, 비구들이여, 처음에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을 보았는데 뒤에는 그처럼 변한 것을 본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큰 고통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다시 만일 그 여자가 중한 병에 걸려 병상에 누운 채 대소변을 보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병을 앓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참으로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그 여자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무덤으로 가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가 죽은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내지 이레가 되어 몸이 붓고 문드러져 냄새가 나고 한쪽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그처럼 변했으니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시체를 까마귀, 까치, 솔개, 독수리들이 다투어 와서 쪼아먹거나 혹은 여우, 개, 이리, 호랑이들이 와서 찢어 먹거나 혹은 아주 작은 곤충들이 파먹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몸을 벌레와 새들이 반쯤 먹고 창자와 밥통과 살덩이와 피의 더러운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몸이 피와 살은 모두 없어지고 뼈만이 서로 앙상하게 이어진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몸이 피와 살은 다 없어지고 오직 힘줄이 남아 나뭇단처럼 묶여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해골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혹은 다리 뼈, 장딴지 뼈, 넓적다리 뼈, 허리 뼈, 옆구리 뼈, 갈비 뼈, 어깨 뼈, 팔 뼈, 목 뼈, 머리뼈가 사방에 흩어진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해골이 희거나 혹은 잿빛으로 된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해골이 여러 해를 지내 썩고 문드러지고 낡아 흙빛처럼 된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이 몸은 덧없는 것으로서 변하고 바뀌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여, 또 거기에는 늙고 젊음의 구별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몸은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몸에서 벗어나는가. 만일 몸을 버리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이것이 이른바 몸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몸을 보고 몸에 집착하여 그것이 큰 걱정임을 알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며, 또한 여실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이 아니다.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몸을 보고도 몸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의 큰 걱정됨을 확실히 알아 능히 그것을 버릴 줄을 안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것이 이른바 몸을 버린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인가. 비구들이여,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며,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만일 음식을 먹어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어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고, 음식을 먹어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어 괴로움을 느끼다’고 알며, 음식을 먹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만일 음식을 먹지 못해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해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고, 음식을 먹지 않아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며, 만일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즐거움을 느끼면 그 때에는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없다. 그 때에는 ‘내게는 다만 즐거운 느낌만 있다’고 안다. 만일 괴로움을 느끼면 그 때에는 즐거운 느낌은 없고 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없고 오직 괴로운 느낌만이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면 그 때에는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은 없고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이 있다.
느낌이란 덧없는 것으로서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느낌은 덧없이 변하고 바뀌는 줄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이른바 ‘느낌은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느낌에서 벗어나는가. 만일 능히 느낌을 버리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그것이 이른바 느낌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느낌에 집착하여 그것의 큰 걱정됨을 알지 못하고 또한 버리지도 못하며 그것을 여실히 알지도 못한다. 그들은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이 아니다.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여,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느낌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이 큰 걱정임을 확실히 알아 능히 그것을 버릴 줄을 안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것이 느낌을 버린다는 것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여실히 알지 못하면서 남을 교화하여 그것을 행하게 하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능히 느낌을 버리고 또 그것을 여실히 알아서 남을 권하고 가르쳐 그것을 버리게 하면 그것은 바로 옳은 일이다. 이것이 이른바 느낌을 버린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탐욕에의 집착과 탐욕의 맛과 그것의 큰 걱정됨과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을 말하였고, 또 몸에의 집착과 몸의 맛과 그것의 큰 걱정됨과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느낌에의 집착과 느낌의 맛과 그것의 큰 걱정됨과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을 말하였다. 모든 여래의 행해야 하는 이른바 그 주장을 나는 이제 두루 말해 마쳤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나무 밑이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고요히 생각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든든하지 못한 것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몸이 든든하지 못하며 목숨이 든든하지 못하며 재물이 든든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 가지 든든하지 못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든든하지 못한 세 가지 중에서 방편을 구해 세 가지 든든한 것을 성취하여야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든든하지 못한 몸에서 든든한 것을 찾고 든든하지 못한 목숨에서 든든한 것을 찾으며 든든하지 못한 재물에서 든든한 것을 찾는 것이다.
어떻게 든든하지 못한 몸에서 든든한 것을 찾는가. 겸손하고 공경하고 예배하여 때를 따라 묻는 것이다. 이것이 든든하지 못한 몸에서 든든한 것을 찾는 것이다.
어떻게 든든하지 못한 목숨에서 든든한 것을 찾는가. 선남자, 선녀인이 목숨이 다하도록 살생하지 않는 것이니 즉 칼이나 몽둥이로 치지 않으며 항상 부끄러워할 줄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 일체 중생을 두루 생각하는 것이다.
또 목숨을 마칠 때까지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니 즉 항상 보시를 생각하여 인색한 마음이 없는 것이다. 또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음행 하지 않는 것이니 즉 남의 여자와 관계하지 않는 것이다. 또 목숨을 마칠 때까지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니 즉 진실한 마음으로 세상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또 목숨을 마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니 즉 생각이 어지럽지 않아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든든하지 않은 목숨에서 든든한 것을 찾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든든하지 못한 재물에서 든든한 것을 찾는가. 만일 선남자, 선녀인이 항상 보시하기를 생각해 사문, 바라문이나 여러 가난한 이에게 베풀되, 밥을 요구하는 이에게는 밥을 주고 장을 요구하는 이에게는 장을 주며,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 집, 성(城)등 필요한 것을 모두 주면 이것이 든든하지 못한 재물에서 든든한 것을 찾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 가지 든든하지 못한 것에서 세 가지 든든한 것을 찾는다는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몸은 든든하지 못한 것이요
목숨도 든든하지 못한 것이며
재물은 없어지는 것인 줄 알아
거기서 든든한 것 찾아야 하네.
사람의 몸은 매우 얻기 어렵고
목숨도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재물은 원래 없어지는 것이어니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기 생각하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첫째의 덕과 복의 업과
세 원인과 세 편안과 코오카알리카
세 가지 밤과 병과 악행과
괴로움 없앰과 든든하지 못한 것이다.)
제 二十二 삼공양품(三供養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이 공양하여야 할 세 사람이 있다. 어떤 세 사람인가. 첫째는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이니, 세상 사람이 공양하여야 할 분이요, 둘째는 여래의 제자로서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니 세상 사람이 공양하여야 할 분이요, 셋째는 전륜성왕이니 세상 사람이 공양하여야 할 분이다.
무슨 이유로 여래를 세상 사람이 공양하여야 하는가. 대개 여래는 항복하지 않는 이를 항복 받고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며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하게 하고 열반하지 못한 이를 열반하게 하며 구호할 이 없는 이를 구호하고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 주며, 병자를 구호하신다. 그는 가장 제일 높은 이로써 마군, 하늘 마군, 하늘, 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 복밭이므로 공경할 만하고 높일 만한 이시다. 사람의 길잡이가 되어 바른 길을 알게 하고 길을 모르는 이에게는 길을 가르쳐 인도하신다. 이런 이유로 세상 사람은 여래를 공양하여야 하느니라.
무슨 이유로 여래 제자로서 번뇌가 없어진 아라한을 세상 사람이 공양하여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번뇌가 없어진 아라한은 나고 죽는 근원을 건너 다시는 몸을 받지 않고 위없는 법을 얻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아주 없어졌으므로 아라한을 세상 사람은 공양하여야 하느니라.
다시 무슨 이유로 전륜성왕을 세상 사람이 공양하여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전륜성왕은 법으로 다스리고 교화하여 끝내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살생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도둑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도둑질하지 않고 스스로 음탕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음탕하지도 않으며 스스로도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거짓말하지도 않으며 스스로도 이간하는 말로써 남을 싸우게 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질투하거나 성내거나 어리석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그런 법을 익히게 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바른 소견을 가지고 남을 시켜서도 삿된 소견을 가지게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전륜성왕을 세상 사람은 공양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착한 뿌리가 있어 끝이 없고 차츰 열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느니라. 어떤 세 가지인가. 이른바 여래에게 공덕을 심는 것이니 이 착한 뿌리는 끝이 없느니라. 다음에는 바른 법에 공덕을 심는 것이니 이 착한 뿌리도 끝이 없느니라. 또 거룩한 대중에게 공덕을 심는 것이니 이 착한 뿌리도 끝이 없느니라.
아아난다야, 이 세 가지 뿌리는 끝이 없고 열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아아난다야. 방편을 구해 이 끝이 없는 복을 얻어야 한다. 아아난다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아아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즐거운 느낌이란 애욕의 번뇌요, 괴로운 느낌이란 성냄의 번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란 어리석음의 번뇌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해 이 번뇌를 없애도록 공부하여야 한다. 왜 그러냐 하면 마땅히 스스로 힘써 법을 수행하므로 써 비길 데 없는 법을 얻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알라. 내가 죽은 뒤에 어떤 비구는 스스로 힘쓰기를 생각하고 그 법을 수행하여 비길 데 없는 법을 얻을 것이니 그는 곧 제일 성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어떻게 스스로 힘써 법을 수행하고 법을 수행하고는 비길 데 없는 법을 얻게 되는가. 비구는 안으로 몸을 관찰하고 밖으로 몸을 관찰하며 안팎으로 몸을 관찰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안으로 느낌을 관찰하고 밖으로 느낌을 관찰하여 안팎으로 느낌을 관찰한다. 또 안으로 뜻을 관찰하고 밖으로 뜻을 관찰하여 안팎으로 뜻을 관찰한다. 또 안으로 법을 관찰하고 밖으로 법을 관찰하며 안팎으로 법을 관찰하여 스스로 유의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땅히 스스로 힘써 그 법을 닦아 행하여 비길 데 없는 법을 얻어야 한다. 비구들이 이 법을 행하면 성문 가운데 제일 제자가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일이 있는데 덮어두면 아름답고 드러나면 아름답지 못하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여자이니 덮어두면 묘하고 드러내면 묘하지 못하다. 둘째는 바라문의 주술(呪術)이니 덮어두면 묘하고 드러내면 묘하지 못하다. 셋째는 삿된 소견의 업이니 덮어두면 묘하고 드러내면 묘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덮어두면 묘하고 드러내면 묘하지 못하다’는 것이니라.
다시 세 가지 일이 있는데 드러나면 묘하고 덮이면 묘하지 않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해와 달이니 드러나면 묘하고 덮이면 묘하지 않다. 둘째는 여래의 법이니 드러나면 묘하고 덮이면 묘하지 않다. 셋째는 여래의 말이니 드러나면 묘하고 덮이면 묘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 가지 일이 있어 드러나면 묘하고 덮이면 묘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자와 주술과
삿된 소견의 착하지 않은 행
세상의 이 세 가지 법은
덮어두면 가장 묘한 것이다.
널리 비추는 저 해와 달과
그리고 여래의 바른 법과 말
세상의 이 세 가지 법은
드러나면 가장 묘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래의 법을 밝게 드러내어 덮이지 않게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함이 있는 법의 함이 있는 모양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생기는 것을 알고 변할 것을 알며 없어질 것을 아는 것이다.
어떻게 생기는 것을 아는가. 이른바 나서 자라고 다섯 가지 쌓임의 형체를 이루며 모든 감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생기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없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죽음이니 목숨은 흘러 머무르지 않고 덧없는 것이어서 모든 감관은 무너지고 친척들과 이별하며 목숨 뿌리가 끊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변하는 것인가. 이는 빠지고 머리는 희어지며 기운은 다하고 나이 많아 몸이 무너지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함이 있는 법의 함이 있는 모양이다. 마땅히 이 세 가지 함이 있는 모양을 잘 분별해 알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믿어 할 수 없는 세 가지 모양과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며 행하지 않을 것을 닦아 익힌다.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의 세 가지 행을 생각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재물과 남의 여자에 대해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나쁜 말을 기억해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어 ‘저들의 모든 원을 나는 다 허락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하느니라.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은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입의 네 가지 허물을 짓는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거짓말, 비단말, 나쁜 말과 사람들을 싸우게 하는 말을 좋아한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입으로 네 가지 허물을 짓느니라.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짓을 행하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몸으로 나쁜 짓을 행해 언제나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생각한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짓을 행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이 세 가지 행이 있고 이 세 가지 일을 익히느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지혜로운 이에게는 세 가지 일이 있으니, 항상 생각해 닦아 행해야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할 것은 곧 생각하고 말할 것은 곧 말하며 행해야 할 착한 일은 곧 닦아 행한다.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할 것은 곧 생각하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세 가지 행을 생각한다. 어떤 것이 셋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질투하거나 성내거나 어리석지 않고 항상 바른 소견으로 남의 재물을 보아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할 것은 곧 생각하느니라.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은 말해야 할 것은 말하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입의 네 가지 행을 성취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거짓말하지 않으며 남의 거짓말하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의 그 입을 보호하는 것이다. 또 지혜로운 사람은 비단말, 나쁜 말과 남을 싸우게 하는 말을 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입의 네 가지 행을 성취하느니라.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은 몸의 세 가지 행을 성취하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몸의 행을 조심해 범하는 일이 없다. 즉 스스로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살생하지 않으며 남의 살생하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도둑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도둑질하지 않으며 남의 도둑질하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 음탕하지 않아서 남의 여자를 보아도 욕심을 내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음행을 행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늙은 여자를 보면 자기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중년 여자를 보면 누이처럼 생각하며 젊은 여자를 보면 누이동생처럼 생각하여, 마음에 차별이 없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몸의 세 가지 행을 성취한다. 이것이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의 소행이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함이 있는 모양이 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사람의 세 가지 행은 항상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소행은 잠깐도 폐하지 말지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세 가지 법이 있다. 그것을 깨달아 알 수 없고 보거나 들을 수 없으며 나고 죽음을 여러 번 지내면서도 일찍 본 일이 없고, 나나 너희들도 일찍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성현의 계율이다. 그것은 깨달아 알 수 없고 보거나 듣지 못하였으며, 나고 죽음을 여러 번 지내면서도 일찍 본 일이 없고 나나 너희들도 일찍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또 성현의 삼매와 성현의 지혜도 깨달아 알 수 없고 보거나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만일 지금 나나 너희들이 성현의 계율과 삼매와 지혜를 모두 다 깨달아 알고 또 성취한다면 다시는 몸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나고 죽는 근본을 끊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항상 이 세 가지 법을 생각하고 닦아 행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법이 있다. 그것은 매우 사랑할 만하여 세상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젊음이니, 그것은 배우 사랑할 만하여 세상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다. 다음에는 건강이니, 그것은 매우 사랑할 만하여 세상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다. 다음에는 목숨이니 그것은 매우 사랑할 만하여 세상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매우 사랑할 만하여 세상 사람들이 탐내는 세 가지 법이니라.
비구들이여, 비록 그 세 가지 법은 매우 사랑할 만하여 세상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지마는 여기 다시 세 가지 법이 있다, 그것은 사랑할 것이 못되어 세상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비록 젊었더라도 반드시 늙을 것이니, 그것은 사랑할 것이 못되어 세상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다음에는 비록 건강하더라도 반드시 앓을 때가 있을 것이니 그것은 사랑할 것이 못되어 세상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다음에는 비록 목숨이 있더라도 반드시 죽을 것이니, 그것은 사랑할 것이 못되어 세상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비록 젊었더라도 장차 늙지 않기를 구해 열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또 건강하더라도 방편으로써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목숨이 있더라도 방편으로써 목숨이 끝나지 않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봄날에 큰 우박이 쏟아지는 것처럼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그 때에는 지옥에 들어가는 여자는 남자보다 많을 것이니 그 이유를 말하리라.
비구들이여, 세 가지 일로써 중생들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세 가지 나쁜 곳에 들어간다. 세 가지 일이란 곧 탐욕과 잠자기와 들뜨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마음을 얽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세 가지 나쁜 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자는 한 종일 세 가지 법을 익히면서 스스로 즐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른 아침에는 질투하는 마음으로써 스스로 얽매고 한낮이 되면 잠으로서 스스로 얽매며 저물어서는 탐욕으로써 스스로 얽맨다. 이런 인연으로 그 여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세 가지 나쁜 곳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법에서 떠나기를 항상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질투와 잠자기와 또 들뜸과
그리고 탐욕은 나쁜 법이니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 들여
마침내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질투와 또 잠자기
그리고 들뜸도 버려야 하고
또한 탐욕도 버려야 하나니
그러한 나쁜 짓을 행하지 말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항상 질투에서 떠나기를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을 없애어 언제나 보시를 행하고 잠자기에 집착하지 말며, 탐욕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법이 있다. 그것을 익히고 사랑하면 만족할 줄 모르고 또 쉬는 곳으로 가지 못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탐욕이다. 만일 사람이 탐욕에 빠지면 조금도 만족할 줄 모른다. 또 술 마시기에 빠지면 조금도 만족할 줄 모른다. 또 잠자기에 빠지면 조금도 만족할 줄 모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만일 어떤 사람이 세 가지 법에 빠지면 만족할 줄 모르고 또 지극히 고요한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항상 그 세 가지 법을 버려 그것을 친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공양과 세 가지 착한 뿌리와
세 가지 느낌과 세 가지 덮고 드러냄과
모양과 법과 세 가지 깨닫지 못함과
공경과 봄과 만족할 줄 모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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