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 제 十四권
제 二十四 고당품(高幢品) 1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제석천왕은 三十三천에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큰 전쟁에 나갔을 때 만일 두려운 마음이 생기거든 이내 높고 넓은 당기[幢]를 돌아 보라. 이 당기를 돌아보면 곧 두려움이 없게 될 것이다. 만일 내 당기를 생각할 수 없거든 저 파자아파티 천왕의 당기를 생각하라. 그 당기를 생각하면 모든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만일 내 당기와 파자아파티의 당기를 생각할 수 없거든 그 때에는 저 바루나 천왕의 당기를 생각하라. 그 당기를 생각하면 모든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고 하였다.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말한다.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로서 어떤 두려움이 있어 온 몸의 털이 일어서거든, 그 때에는 나를 생각하라. 즉, ‘이분은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 지혜와 행을 갖춘 이, 잘 간 이, 세상 아는 이, 위없는 선비, 도법으로 어거하는 이, 천상과 인간의 스승, 부처, 중우라고 부르는 이로써 세상에 나오셨다’고. 비록 두려움이 있어 몸의 털이 일어섰더라도 그것은 곧 사라질 것이다.
만일 나를 생각할 수 없거든 그 때에는 법을 생각하라. 즉 ‘여래의 법은 매우 미묘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배우는 바라’고. 그 법을 생각하면 온갖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만일 나를 생각하거나 법을 생각할 수 없거든 그 때에는 성중(聖衆)을 생각하라. 즉 ‘여래의 성중들은 매우 화하고 순하며, 법과 법을 성취하고 계율을 성취하고, 삼매와 지혜와 해탈과 해탈하였다는 지견을 성취하였다. 이른바 四쌍, 八배이니 이것이 여래의 성중들로서 공경하고 섬길 만한 세상의 복밭이다. 이것을 여래의 성중들이라 한다’고. 이 성중을 생각하면 온갖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비구들이여, 알라. 제석천왕은 아직도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 그런데도 三十三천이 그 주인을 생각하면 곧 두려움이 없어지거늘, 하물며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 여래를 생각하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어떤 비구라고 여래를 생각하면 그 두려움은 곧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부처님과 법과 성중의 세 분을 생각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밧지[拔祗國]에는 비사(毘沙)라는 귀신이 있었다. 그는 매우 흉악하여 그 나라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수없이 죽였다. 날마다 하루에 한 사람 혹은 둘, 셋, 넷, 다섯,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그 나라에는 나찰 따위의 온갖 귀신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 때에 밧지의 백성들은 한 곳에 모여 의논하였다.
‘우리는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자.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그 때에 그 사나운 귀신 비사는 백성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곳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너희들은 끝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들이 날마다 한 사람씩 잡아 가지고 와서 내게 제사하면 나는 결코 너희들을 못 견디게 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밧지의 백성들은 날마다 한 사람씩 잡아 가지고 가서 그 사나운 귀신에게 제사 지냈다. 그 귀신은 그 사람을 잡아먹고는 그 해골을 다른 산에다 던져 버렸다. 그래서 그 산골에는 뼈가 가득 찼다.
그 때에 선각(先覺)이라는 장자가 거기 살고 있었다. 그는 재물과 보배가 많아 천억이나 쌓아 두었고 나귀와 노새와 낙타는 이루 다 셀 수 없었으며, 금, 은, 보배와 자거, 마노, 진주, 호박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장자에게는 나우라라는 외동아들이 있었다. 그는 못내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잠깐도 그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에 사람들은 그 약속을 따라 ‘다음 번에는 나우라 아기를 귀신에게 제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우라 부모는 아기를 목욕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는 그 귀신이 있는 무덤 사이로 데리고 갔다. 거기 가서는 수없이 울고 부르짖으면서 말하였다.
“여러 신(神)들과 땅신은 다 증명하소서. 우리에게는 이 외동아들이 있나이다. 원컨대 여러 신명(神明)들은 이것을 증명하소서. 스물 여덟 귀신의 왕들은 이것을 보호하여 이 액(厄)을 면하게 하소서. 네 천왕님께 귀의하나이다. 이 아이를 보호해 이 액을 면하게 하소서. 제석천왕, 범천왕에게 귀의하나이다. 원컨대 이 아이의 목숨을 구제하여 하소서. 여러 귀신과 세상을 보호하는 이께 귀의하나이다. 이 액을 면하게 하소서. 여러 여래 제자로서 번뇌가 없어진 아라한과,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벽지불께 귀의하나이다. 이 액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이제 여래님께 귀의하나이다. 여래께서는 항복하지 않는 이를 항복 받고 건너지 못한 자를 건네주시며, 얻지 못한 자를 얻게 하고 벗어나지 못한 자를 벗어나게 하시며, 열반하지 못한 자를 열반하게 하고 구호할 이 없는 자를 구호하시며,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 주시고 병자에게 큰 의사가 되시나이다. 또 하늘, 용, 귀신이나 일체 사람, 마군, 하늘 마군 중에서 가장 높고 뛰어나, 아무도 따를 이가 없으며,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사람을 위해 좋은 복밭이 되어 여래보다 나은 이는 없나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굽어살피소서. 원컨대 여래께서는 이 지극한 마음을 비춰 보소서.”
이 때에 나우라 부모는 곧 그 아이를 귀신에게 바치고 거기서 떠났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깨끗한 하늘 눈과 하늘 귀로 그 말을 환히 들으셨다. 나우라 보모는 한없이 울었다. 세존께서는 신통 힘으로 악귀가 사는 그 산으로 가셨다. 때에 그 악귀들은 설산 북쪽에 있는 악귀 굴에 모여 있었다. 세존께서는 그 악귀 굴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가부하고 앉으셨다. 이 때에 나우라 아기는 그 악귀 굴로 나아가다가 멀리서 악귀 굴에 계시는 여래를 보았다.
그 몸의 광명은 불꽃처럼 빛나는데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얼굴은 단정하여 세상에서 뛰어났었다. 모든 감관은 고요하고 온갖 공덕을 얻었으며 모든 마군을 항복 받았으니, 이러한 온갖 덕은 이루 셀 수 없었다. 또 서른 두 가지 거룩한 모양과 여든 가지 특별한 모양으로 그 몸이 장엄한 것은 마치 저 수미산이 여러 산 가운데서 빼어난 것 같으며, 얼굴은 해와 달과 같고 또한 금산과 같아서 그 광명은 멀리 비치었다.
그는 이것을 보고 곧 기쁜 마음이 생겨 여래에게로 가면서 생각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저 악귀 비사가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이제 저를 보고 기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설사 저것이 악귀더라도 나를 마음대로 먹으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우라야, 네 생각과 같다. 나는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로서, 너를 구제하고 저 악귀를 항복 받으려고 일부러 왔다.”
나우라는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세존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때에 세존께서는 그를 위해 미묘한 법을 설명하셨다. 즉 그 논(論)이란 보시론과 계율론과 천상에 나는 데 대한 논이었으며, 탐욕과 번뇌는 더러운 행이므로 집을 떠나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나우라 아기의 마음이 기뻐지고 뜻이 부드러워진 것을 보시고 여러 부처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법, 즉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사라짐과 괴로움의 사라지는 길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그는 그 자리에서 법의 눈이 청정하게 되어, 법을 보아 법을 얻고, 온갖 법을 성취하여 받들었다. 그래서 아무 의심이 없이 여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부처님과 법과 성중에 귀의하여 다섯 가지 계율을 받았다.
그 때에 악귀 비사는 제 굴로 돌아오다가, 세존께서 단정히 앉아 고요히 생각하면서 움쩍도 하지 않으심을 보고 곧 성을 내어, 여래를 향해 우뢰를 울리고 벼락을 치며 혹은 칼을 비처럼 쏟았다. 그러나 그 칼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곧 웃팔라 연꽃으로 변하였다. 그 귀신은 더욱 성을 내어 산과 강물과 석벽을 비처럼 쏟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갖가지 음식을 변화하였다.
이 때에 그 악귀는 큰 코끼리로 화해 여래를 향해 외쳤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큰 사자로 화했다. 귀신은 갑절이나 큰 사자가 되어 여래에게 닥쳤다. 세존은 큰 불 더미로 화했다. 귀신은 더욱 성을 내어 머리 일곱 개를 가진 큰 용으로 화했다. 세존께서는 곧 큰 금시조(金翅鳥)로 화하셨다.
그 때에 귀신은 생각하였다.
‘내가 가지 신력(神力)은 이제 다 나타내었다. 그러나 저 사문은 털끝도 까딱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가서 깊은 이치를 물어 보리라.’
이 때에 그 귀신은 세존께 물었다.
“나는 이제 깊은 이치를 물으리라. 만일 대답하지 못하면 나는 네 두 다리를 잡아 저 바다 남쪽에 던져 버리리라.”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악귀야, 알아야 한다.
나는 스스로 관찰하건대 하늘이나 사람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로서 능이 내 두 다리를 잡아 바다 남쪽에 던질 자는 없다. 물을 일이나 있으면 곧 물어 보라.”
악귀는 물었다.
“사문이여, 어떤 것이 과거의 행이며, 어떤 것이 현재의 행이며, 어떤 것이 그 행의 사라짐인가.”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악귀야, 알라. 눈은 과거의 행이다. 과거에 지은 인연의 감각으로 그 행이 된 것이다. 귀, 코, 혀, 몸, 뜻은 과거의 행이다. 과거에 지은 인연의 감각으로 그 행이 된 것이다. 악귀야, 이것이 이른바 과거의 행이다.”
비사는 물었다.
“어떤 것이 현재의 행인가.”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 몸으로 짓는 몸의 세 가지, 입의 네 가지, 뜻의 세 가지가 그것이다. 악귀야, 이것이 이른바 현재의 행이다.”
때에 악귀는 물었다.
“어떤 것이 행의 사라짐인가.”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악귀야, 알라. 과거의 행이 모두 사라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새로 짓지도 않아서 그 행이 영원히 생기지 않고 아주 사라져 남음이 없으면, 그것을 행의 사라짐이라 한다.”
그 때에 그 악귀는 세존께 사뢰었다.
“나는 지금 매우 주렸습니다. 왜 내 밥을 빼앗습니까. 그 아이는 내가 먹을 것입니다. 사문님, 그 아이를 내게 돌려주십시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 내가 도를 이루기 전에는 보살이 되었다. 어떤 비둘기 한 마리가 내게 몸을 던져 구원을 청하였다. 나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 비둘기를 죽음에서 구해 주었거늘, 하물며 여래가 된 오늘에 어찌 이 아이를 주어 네 밥이 되게 하겠느냐. 너는 지금 악귀로써 어떤 신력을 부리더라도 나는 결코 이 아이를 너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어떠냐, 너는 일찍 가섭 부처님 때에 사문이 되어 범행을 닦아 가졌다가 뒤에 계율을 범하여 지금 그 악귀로 태어났느니라.”
그 때에 악귀는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과거에 지은 온갖 악행을 되살려 기억하게 되었다. 그래서 악귀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말하였다.
“저는 미련하여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여래께 그런 마음을 내었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 참회를 받아 주소서.”
이와 같이 세 번 네 번 되풀이하였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의 허물을 용서한다. 다시는 범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악귀 비사를 위해 미묘한 법을 설명하시어 기뻐하게 하셨다. 때에 그 악귀는 수천 냥 금을 손에 받들고 세존께 드리면서 말하였다.
“저는 이 산골을 초제승(招提僧)들에게 보시하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이 수천냥 금과 함께 받아 주소서.”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 산골만 받드시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동산을 주어 시원함을 보시하고
건널 물에는 다리를 놓고
강이나 바다에는 큰 배 만들고
살기 편리한 온갖 것 시설하여
밤이나 낮이나 게으르지 않으면
그가 얻는 복 헤아릴 수 없나니
법의 이치와 계율을 성취하여
마침내 저 천상에 태어나리라.
그 귀신은 세존께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혹 다시 분부하실 일이 없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그 귀신 형상을 버린 뒤에, 세 가지 법옷을 입고 사문이 되어, 밧지성에 들어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외쳐라. ‘여러분 들으라. 여래께서 세상에 나와 항복하지 않는 이를 항복 받고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주며, 해탈하지 못한 이는 해탈을 알게 하고 구호할 이 없는 자를 구호하며, 장님에게는 눈이 되십니다. 그래서 모든 하늘, 사람, 용, 귀신, 마군, 하늘 마군,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 중에서 가장 높아 같을 이가 없으며, 공경하고 높일 만하여 사람들의 좋은 복밭이 되신다. 그는 오늘 나우라 아기를 구원하고 아울러 악귀 비사를 항복 받으셨다. 너희들은 거기 가서 그 교화를 받아야 한다’고 하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때에 악귀비사는 사문으로 화해 세 가지 법옷을 입고 마을로 들어가 이렇게 외쳤다.
“오늘 세존께서는 나우라 아기를 구원하시고 악귀 비사를 항복 받으셨다. 너희들은 거기 가서 그 교화를 받으라.”
그 때에 그 밧지 나라의 많은 백성들 중에서, 장자 선각은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八만 四천 사람을 데리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밧지 사람들도 혹은 세존 발에 예배하고 혹은 손을 들고는 모두 한쪽에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해 미묘한 법을 설명하셨다. 이른바 논(論)이란,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나는 데 대한 논이었고, 탐욕은 더러운 것이요, 번뇌는 큰 걱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八만 四천 대중들이 마음으로 기뻐하는 줄을 아시고 그들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사라짐과 괴로움의 사라지는 길을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마치 희고 깨끗한 천이 쉽게 빛깔에 물들여지는 것처럼 그 八만 四천 대중들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어, 법을 얻어 법을 얻고 온갖 법을 분별하되 조금도 의심이 없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과 법과 성중에게 귀의하여 다섯 가지 계율을 받았다.
그 때에 나우라의 아버지 장자는 세존께 사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 초청을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셨다. 그 장자는 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받으시는 것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을 장만하고 이른 아침에 사람을 보내 사뢰었다.
“때가 되었나이다.”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밧지성으로 들어가 장자 집으로 가서 자리에 앉으셨다. 장자는 세존께서 좌정하신 것을 보고 손수 진지하여 갖가지 음식을 돌렸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자, 그는 깨끗한 물을 돌리고 자리를 가져다 세존 앞에 앉아 사뢰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네 가지 무리에게 필요하시면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 등을 모두 내 집에서 가져다 쓰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장자야, 네 말과 같이 그렇게 하리라”
세존께서는 곧 장자를 위해 미묘한 법을 말씀하시고, 설법을 마치신 뒤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세존께서는 팔을 굽혔다 펴는 동안에 밧지에게 사라져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절로 돌아오셨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네 가지 무리로서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 등이 필요하거든 저 나우라 아버지 장자 집에서 가져다 쓰라.”
세존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 우바새 중에서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 첫째 제자는 바로 나우라 아버지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시(釋翅)의 냐그로오다 동산에서 큰 五백의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때에 석씨의 양반 수천 인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이제는 왕이 되어 이 나라를 다스리면 우리 종성은 썩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륜성왕의 위(位)가 당신에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이 천하에서 전륜성왕이 되어 네 천하를 통치하고 一천 아들을 둘 것이오, 또 우리 종성의 이름이 멀리 퍼질 것입니다. 즉 ‘전륜성왕이 석씨 종족에서 났다’고.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림으로써 왕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왕의 몸이니 곧 법의 왕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물으리라. 어떤가 여러분, 전륜성왕은 일곱 가지 보배를 두루 갖추고 용맹스런 一천 아들을 둔다고 말하는가. 나는 지금 삼천대천세계 나라 중에서 가장 높아 따를 이가 없으며, ‘깨달음으로 가는 일곱 가지 길[七覺意]의 보배를 성취하였고 수없는 성문의 아들이 따르고 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만일 왕의 자리 가지면
얻은 뒤에는 다시 잃게 되지만
이 법의 자리는 가장 훌륭하나니
끝도 없고 또 처음도 없다.
훌륭하기에 뺏을 수 없어
이 훌륭함은 가장 훌륭하니
그러므로 부처의 한량없는 행
자취 없거니 누가 자취 따르랴.
“그러므로 고오타마들이여, 마땅히 방편을 구해 바른 법의 왕이 되어 다스려라. 석씨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여러 석씨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어떤 비구는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혹 어떤 몸은 영원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나이까.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여 옮기지 않나이까.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여 옮기지 않나이까. 혹 어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영원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나이까.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여 옮기지 않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어떤 몸도 영원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이 없고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없다. 또한 어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도 영원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이 없고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없다.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몸으로서 영원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한다면, 범행을 닦는 사람은 분별하지 않을 것이요,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으로서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면, 범행을 닦는 사람은 분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몸은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범행을 닦는 사람은 그것을 분별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없애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오랫동안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없애는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흙을 조금 집어 손톱 위에 얹어 놓고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비구야. 이 손톱 위의 흙을 보는가.”
비구는 사뢰었다.
“예, 보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요만큼이라도 몸이 이 세상에 항상 존재한다면 범행을 닦는 사람은 그것을 분별하여 괴로움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만큼이라도 몸이 항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곧 범행을 닦아 괴로움의 근본을 없애는 것이다.
이제 그 까닭을 말하리라. 비구들이여, 나는 옛날 왕이 되어 네 천하를 통치할 때에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일곱 가지 보배 즉, 바퀴, 코끼리, 말, 진주, 미녀, 거사, 대장을 완전히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알라. 나는 그 때에 전륜성왕이 되어 네 천하를 다스릴 때에 八만 四천의 신령스런 코끼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보호(菩呼)였었다. 다시 八만 四천의 우보(羽寶)의 수레가 있었는데 혹은 사자 가죽으로 덮고 혹은 이리나 개가죽으로 덮었는데 모두 당기와 높은 일산을 씌웠었다. 다시 八만 四천의 높고 넓은 누각이 있었는데 마치 제석천의 궁전 같았고 다시 八만 四천의 강당이 있었는데 그것은 법강당(法講堂)과 같았다.
다시 八만 四천의 미녀가 있었는데 얼굴은 천녀와 같았고. 다시 八만 四천의 높고 넓은 자리가 있었는데 모두 금, 은의 일곱 가지 보배로 사이사이 꾸몄으며, 다시 八만 四천의 의복이 있었는데 모두 문채로 수놓고 부드러웠으며 다시 八만 四천의 음식은 여러 가지 맛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알라. 나는 그 때에 보호라는 큰 코끼리를 탔다. 빛깔을 희고 좋았으며 입에는 여섯 개 어금니가 있고 금, 은으로 장식하였으며, 능히 날아다녔고 또한 몸을 숨기기도 하였으며, 혹은 크게도 되고 혹은 작게도 되었었다.
또 나는 그 때 모왕(毛王)이라는 신령스런 말을 탔다. 꼬리털은 붉고 걸을 때에도 몸을 흔들지 않았으며, 금으로 장식하였고 능히 날아다녔으며, 또한 몸을 숨기기도 하였고, 혹은 크게도 되고 혹은 작게 되기도 하였다.
또 나는 그 때에 八만 四천의 높고 넓은 누각이 있었고 그 중의 한 누각에서 살았는데 그 이름은 수니마였으며 순금으로 되었었다. 또 나는 그 때에 한 강당 안에서 살았는데 강당 이름은 법설(法設)이었으며, 순금으로 되었었다. 또 나는 그 때에 우보로 만든 수레를 탔다. 수레 이름은 최승(最勝)이었고 순금으로 되었었다.
또 나는 그 때에 한 미녀를 거느렸는데 좌우에서 모시기에 자매처럼 하였었다. 또 나는 그 때에 八만 四천의 자리가 있었고 그 중의 한 자리를 썼는데 금, 은, 영락의 장식은 이루 셀 수 없었다. 또 나는 그 때에 아름다운 옷을 입었는데 마치 하늘 옷과 같았으며, 먹는 음식 맛은 단 이슬과 같았었다.
내가 전륜성왕이 되었던 그 때에 八만 四천의 신령스런 코끼리들이 아침마다 올 때에 문 밖에서 죽는 놈이 이루 셀 수 없었다. 그 때에 나는 생각하였다. ‘이 八만 四천의 신령스런 코끼리들이 올 때에 문 밖에서 죽는 놈이 이루 셀 수 없다. 나는 지금 마음속으로 그것을 둘로 나누어, 四만 二천이 아침마다 와서 축하하게 하고 싶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 때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과거에 어떤 복을 짓고, 어떤 덕을 쌓았기에 지금 이런 위력을 얻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고. 다시 생각하였다. ‘세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런 복을 얻었다. 세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은혜로 베푸는 것과 사랑하고 어진 것과 자기를 지키는 것이다’고.
비구들이여, 생각하라. 나는 그 때에 모든 행이 아주 사라져 남음이 없었고 마음대로 놀면서 만족할 줄을 몰랐다. 이른바 만족이란 성현의 계율에 대한 만족이었다. 어떤가 비구들이여, 이 몸은 항상 된가. 항상 되지 않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항상 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 되지 않다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너는 과연 ‘이것은 내것이요, 나는 저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항상 된가, 항상 되지 않은가.”
“항상 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 되지 않다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너는 과연 ‘이것은 내것이요. 나는 저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몸으로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것이거나 혹은 크거나 작거나, 좋거나 추하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것은 내것이 아니요, 나는 저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이의 깨달은 바이다. 또 모든 느낌으로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것이거나 혹은 멀거나 가깝거나 그것은 내것이 아니요, 나는 저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이의 깨달은 바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만일 성문으로서 눈을 싫어하고 빛깔을 싫어하고 눈알음을 싫어하며, 눈을 의지해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도 싫어하거나 또는 귀를 싫어하고 소리를 싫어하고 귀알음을 싫어하며 귀알음을 의지해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도 싫어하거나, 코, 혀, 몸, 뜻, 법을 싫어하고 그것들을 의지해 생기는 괴로움과 즐거움도 싫어하면 그는 곧 해탈할 것이요, 해탈하고는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알 것이다.”
그 때에 비구들은 세존의 이러한 설법을 듣고는 한적한 곳에서 고요히 생각하면서 수행하였다. 이른바 좋은 집 자제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옷을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배우는 이유, 즉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 도량 나무 밑에서 처음으로 부처가 되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문득 생각하셨다. ‘나는 이제 이 매우 깊은 법을 얻었다. 이것은 알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우며 지극히 미묘해 지혜로운 사람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누구를 위해 이 법을 설명할까. 내 법을 알 사람은 누구일까’고.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아알라라카아라아마는 근기가 이미 익었으니 먼저 제도할 만한 사람이다. 또 그는 내 법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렇게 생각할 때에 어떤 하늘이 허공에서 사뢰었다.
“아알라라카아라아마는 이레 전에 죽었나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내 법을 듣지 못하고 그만 죽었구나. 만일 내 법을 들었다면 그는 곧 해탈하였을 것이다’고.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그러면 나는 이제 먼저 누구를 위해 설법해 해탈을 얻게 할까. 웃다카라아마푸트라를 먼저 제도하자. 그를 위해 설법하자. 그는 내 법을 들으면 해탈을 얻을 것이다’고. 이렇게 생각하실 때에 다시 어떤 하늘이 허공에서 말하였다. ‘그는 어제 밤중에 죽었나이다’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생각하셨다. ‘웃다카라아마푸트라는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내 법을 듣지 못하고 그만 죽었구나. 만일 내 법을 들었다면 그는 곧 해탈하였을 것이다’고.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누가 먼저 이 법을 듣고 해탈할 것인가’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곰곰이 생각하셨다. ‘나는 저 다섯 비구의 힘을 많이 입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내 뒤를 늘 따랐었다. 그들은 지금 살아 있는가’고. 세존께서는 곧 하늘 눈으로 그 다섯 비구가 있는 곳을 관찰해 보셨다. 그들은 바아라아나시이의 선인이 살던 사슴 동산에 있었다. ‘나는 이제 가서 저들을 위해 먼저 설법하리라. 그들은 내 법을 들으면 반드시 해탈할 것이다’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렛동안 보리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눈 한 번 깜짝이지 않으셨다.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지금까지 이 자리에 앉아
나고 죽음의 괴로움을 겪다가
기어코 지혜의 도끼를 잡아
나고 죽는 그 뿌리 아주 잘랐다.
하늘의 왕은 여기 이르러
온갖 마군과 원수의 무리들을
방편으로서 항복 받고는
해탈의 갓을 쓰게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이 나무 밑의
금강 평상에 고요히 앉아
일체를 아는 지혜를 얻어
마침내 걸림 없는 지혜에 이르렀다.
나는 지금까지 이 나무 밑에 앉아
나고 죽음의 괴로움을 보고는
그 근본을 이미 끊었었거니
늙음과 병도 영원히 없어졌네.
세존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바아라아나시이로 가려 하셨다.
그 때에 범지 우파카는 멀리서 세존의 광명이 해와 달보다 더 밝은 것을 보고 세존께 사뢰었다.
“고오타마 스승께서는 지금까지 살아 계셨나이까. 누구를 의지해 집을 떠나 도를 배웠으며, 항상 즐거이 어떤 법을 연설하시나이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시려 하나이까.”
세존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그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아라한 되어
세상에서 뛰어나 견줄 이 없다
천상과 또 이 인간에서
가장 높은 이 나는 되었다.
또 내게는 스승도 없고
나와 더불어 같을 이 없거니
홀로 높으매 견줄 이 없고
싸늘하거니 따뜻한 기운 없다.
나는 지금 법바퀴 굴리기 위해
저 카아시이로 가려 하나니
거기서 이 단 이슬 약으로써
눈멀고 어두운 이 깨우치려네.
저 바아라아나시이 나라
카아시이 국왕이 가진 그 나라
다섯 비구가 사는 곳에서
미묘한 법을 말하려 하네.
그리하여 그들이 도를 빨리 이루고
온갖 번뇌 사라진 신통을 얻어
나쁜 법의 근본을 없애게 하려 하네.
그러므로 나는 가장 훌륭하니라.
그 범지는 찬탄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합장한 뒤에, 손가락을 퉁기고 빙그레 웃으면서 발길을 돌려 떠났다.
세존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로 가셨다. 때에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세존님 오시는 것을 보고 서로 의논하였다.
“저 사문 고오타마가 멀리서 온다. 생각은 어지럽고 마음은 온전하지 못하다. 우리는 말도 말고 일어나 맞지도 말고 또 앉기를 청하지도 말자.”
그 다섯 비구들은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이는 존경할 사람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 대하지 말고
잘 왔다고 인사도 하지 말고
자리에 앉기를 청하지도 말자.
다섯 비구들은 이 게송을 마치고 모두 잠자코 있었다.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차차 가까이 가셨다. 때에 다섯 비구들은 저도 모르게 일어나 맞이하면서 혹은 자리를 펴고 혹은 물을 가지고 왔다. 세존께서는 곧 자리에 앉아 생각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끝내 제 본성을 온전히 가지지 못하였구나’고. 다섯 비구들은 세존을 ‘그대’라고 불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위없는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를 가볍게 보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이미 위없는 아라한, 다 옳은 깨달음을 이루어 단 이슬의 착한 법을 얻었다. 생각을 오로지 하여 내 설법을 들으라.”
다섯 비구들은 사뢰었다.
“고오타마는 본래 고행할 때에도 상인(上人)의 법을 얻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지금 그 어지러운 마음으로 어떻게 도를 얻었다고 말하는가.”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들아. 너희들은 전에 내 거짓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아니오, 고오타마님.”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는 이미 단 이슬 법을 얻었다. 너희들은 다 마음을 온전히 하여 내 설법을 들으라.”
때에 세존께서는 곧 생각하셨다. ‘나는 저 다섯 사람을 항복 받을 수 있다’고.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알라. 네 가지 진리가 있다. 어떤 것이 넷 인가.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사라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이니라.
괴로움의 진리란, 이른바 남[生]의 괴로움, 늙음, 병, 죽음의 괴로움과 근심, 슬픔, 번민, 걱정의 괴로움으로서 이루 셀 수 없으며, 미운 이와 만나는 괴로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 구해서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니 통틀어 말하자면 다섯 쌓임의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진리라 하느니라.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란, 이른바 느끼고 사랑하는 것을 쉼없이 자꾸 모아, 항상 탐내고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라 한다.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란, 이른바 그 애욕을 남김 없이 모두 없애어 다시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라 하느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란, 이른바 바른 소견, 바른 다스림, 바른 말, 바른 입,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선정 등 성현의 여덟 가지 길이다. 이것을 네 가지 진리라 하느니라.
그런데 다섯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진리에서 괴로움의 진리란 전에 듣지 못한 법으로 거기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며 밝음, 깨달음, 광명, 슬기가 생기는 것이니 이것은 전에 듣지 못한 법이다. 그리고 이 괴로움의 진리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마침내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이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진리라 하느니라.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란, 전에 듣지 못한 법으로서, 거기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며 밝음, 깨달음, 광명, 슬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마침내 변하지 않는 것으로써 세존이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라 하느니라.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란, 전에 듣지 못한 법으로서 거기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며 밝음, 깨달음, 광명, 슬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마침내 변하지 않는 것으로써 세존이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라 하느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란, 전에 듣지 못한 법으로서 거기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며, 밝음, 깨달음, 광명, 슬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마침내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이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알아야 한다. 이 네 가지 진리를 세 번 굴려[三轉] 열 두 행[十二行]이 되는 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면 위없는 아라한, 다 옳은 깨달음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나로 말하면 이 네 가지 진리를 세 번 굴려 열 두 행이 되는 것을 여실히 알았기 때문에 위없는 아라한, 다 옳은 깨달음을 이루었느니라.”
이렇게 설법하실 때에 아즈냐아타 카운디냐는 모든 번뇌가 없어져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세존께서는 아즈냐아타 카운디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법에 이르러 법을 얻었느니라.”
카운디냐는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나는 이제 법을 얻어 법에 이르렀나이다.”
그 때에 지신(地神)은 이 말을 듣고 외쳤다.
“지금 여래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에 계시면서 법바퀴를 굴리신다. 어떤 하늘이나 사람이나 마군, 하늘 마군,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도 굴리지 못한 것을, 오늘 여래께서는 이 법바퀴를 굴리어, 아즈냐아타 카운디냐는 이미 단 이슬 법을 얻었다.”
그 때에 네 천왕들은 그 지신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시 전해서 알렸다.
“아즈냐아타 카운디냐는 이미 단 이슬 법을 얻었다.”
또 三十三천은 네 천왕에게서 듣고, 야마천은 三十三천에게서 듣고, 이리하여 도솔천과 범천까지도 그 소리를 들었다. 즉‘여래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에 계시면서, 법바퀴를 굴리신다. 어떤 하늘이나 사람이나 마군, 하늘 마군,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들도 굴리지 못한 것을, 오늘 여래께서는 이 법바퀴를 굴리셨다’고. 그 때에 비로소 아즈냐아타 카운디냐(처음으로 잘 알았다는 뜻)라 이름하였다.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중에서 두 사람이 여기 머물러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세 사람은 나가서 걸식하고 세 사람이 얻은 밥은 여섯 사람이 나누어 먹자. 세 사람이 여기 머물러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두 사람이 나가 걸식하고 두 사람이 얻은 밥은 여섯 사람이 나누어 먹자.”
세존께서 이렇게 가르치시자 그 다섯 비구들은 생, 멸이 없는 열반을 얻고, 남, 늙음, 병, 죽음이 없게 되어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그래서 이 삼천 대천 세계에는 비로소 다섯 아라한이 있게 되었고 부처님은 여섯 째이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 걸식할 때에는 부디 혼자 다니지 말라. 그러나 중생들 중에는 근기가 무르익어 제도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 우루벨라 촌락으로 가서 거기서 설법하리라.”
세존께서는 곧 우루벨라 촌락으로 가셨다. 그 때에 나이란자나 강가에는 카아샤파가 살고 있었다. 그는 천문, 지리를 모두 통달하였고 산술과 나뭇잎까지 모두 환희 알았는데, 五백 제자를 거느리고 날마다 교화하고 있었다. 카아샤파가 있는 데서 멀지 않는 곳에 돌집이 있고 그 돌집 속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카아샤파에게 가서 말씀하셨다.
“나는 저 돌집에서 하룻밤을 묵고자 하는데 허락하겠는가.”
카아샤파는 대답하였다.
“나는 어려워하지 않소. 다만 거기는 독룡이 있는데 혹 해칠까 걱정일 뿐이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카아샤파야, 어려워 할 것 없다. 용은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 그저 하룻밤 묵기를 허락하라.”
“묵고 싶으면 묵으시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돌집으로 가서 자리를 펴고 가부하고 앉아,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계셨다. 때에 독룡은 세존을 보고 곧 독한 불을 토하였다. 세존께서는 자비 삼매에 들었다가 자비 삼매에서 깨어나 다시 불꽃 삼매에 드시었다. 때에 용의 불길과 부처님의 광명은 한데 어울렸다.
그 때에 카아샤파는 밤에 일어나 별을 바라보다가 돌 집 안에서 일어나는 큰 불빛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그 사문 고오타마는 얼굴이 매우 단정하였는데 이제 용한테 죽는구나. 참으로 가엾다. 나는 아까 거기는 독룡이 있어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카아샤파는 다시 五백 제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물병과 높은 사다리를 가지고 가서 저 불을 끄고, 저 사문을 그 어려움에서 구원하라.”
카아샤파는 五백 제자를 데리고 그 불을 잡으려 돌집으로 갔다. 혹은 물을 쏟고 혹은 사다리를 놓았지마는 그 불을 곧 끌 수 없었다. 그것은 다 여래의 위신력 때문이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자비 삼매에 들어 다시는 용을 성내지 못하게 하였다. 용은 두려운 마음이 생겨 동, 서로 달리면서 돌집을 나오려 하였으나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악룡은 여래 바지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오른 손으로 독룡 몸을 어루만지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용이 세상에 나오기는 어렵다.
용과 용이 한 곳에 모이었거니
용이여 해칠 마음 일으키지 말라
용이 세상에 나오기는 어렵다.
항하(恒河)의 모래 같은 과거
모든 부처님 반열반하셨지만
너는 마침내 만나지 못했나니
그것은 분노의 불 때문이니라.
여래에 대해 착한 마음 가지고
그 성내는 독을 빨리 버려라.
성내는 그 독을 버리고 나면
곧 천상에 태어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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