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 제 四十二권
제 四十六 결금품(結禁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공덕이 있으므로 여래는 비구들을 위해 금계(禁戒)를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 공덕이란 이른바, 성중(聖衆)을 받들어 섬겨 화합하고 순종하며, 성중을 안온하게 하고, 나쁜 사람을 항복 받으며, 부끄러워하는 비구들을 괴롭히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은 믿음 뿌리를 세우게 하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을 더욱 더하게 하고, 현세에서 번뇌를 없애고 후세의 온갖 번뇌의 병을 모두 없애며, 바른 법을 세상에 오래 머무르게 하고, 어떤 방편으로 바른 법을 오래 머무르게 할 까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비구의 열 가지 공덕으로서 여래가 비구들을 위해 금계를 연설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부디 방편을 구해 금계를 성취하여 빠뜨림이 없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성현이 사는 곳에 열 가지 일이 있어 三세의 여러 성현들은 항상 그 안에서 사느니라.
열 가지란 무엇인가. 이에 비구는 다섯 가지 일을 이미 버리고 여섯 가지 일을 성취하여 한 가지 일을 항상 보호하고 네 가지 무리를 이끌어 보호하며, 약한 이를 보살피고 평등하게 친근하며, 번뇌 없는 곳으로 바로 나아가고 몸의 행을 고요히 하며,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는 것이니라.
어떻게 비구는 다섯 가지를 버리는가. 이에 비구는 다섯 가지 결박을 끊는다. 이렇게 다섯 가지 일을 버린다. 어떻게 비구는 여섯 가지를 성취하는가. 이에 비구는 여섯 가지 중한 법을 받든다. 이렇게 비구는 여섯 가지 일을 성취한다. 어떻게 비구는 한 가지 일을 늘 보호하는가. 이에 비구는 번뇌와 번뇌 없음과 하염과 하염없음에서 항상 마음을 보호하여 열반 문에 이른다. 이렇게 비구는 항상 한 가지 일을 보호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네 가지 무리를 이끌어 보호하는가. 이에 비구는 네 가지 신통을 성취한다. 이렇게 네 가지 무리를 이끌어 보호한다.
어떻게 비구는 약한 이를 보살피는가. 이에 비구는 생, 사의 모든 행이 이미 없어졌다. 이렇게 비구는 약한 이를 살핀다. 어떻게 비구는 평등하게 친근하는가. 이에 비구는 세 가지 결박이 이미 없어졌다. 이렇게 비구는 평등하게 친근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번뇌 없는 곳으로 바로 나아가는가. 이에 비구는 교만을 버린다. 이렇게 비구는 번뇌 없는 곳으로 바로 나아간다. 어떻게 비구는 몸의 행을 고요히 하는가. 이에 비구는 무명이 이미 없어졌다. 이렇게 비구는 몸의 행을 고요히 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마음이 잘 해탈을 얻는가. 이에 비구는 욕망이 이미 다 없어졌다. 이렇게 비구는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어떻게 비구는 지혜가 해탈하는가. 이에 비구는 괴로움의 진리와 그 원인과 그것의 사라짐과 그 사라지는 길의 진리에 관하여 여실히 안다. 이렇게 비구는 지혜가 해탈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일로서 성현의 사는 곳이다. 옛날 성현도 여기서 살았고 이미 살고 장차 살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일을 버리고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며 한 가지 법을 지키고 네 무리를 이끌어 보호하며 약한 이를 보살피고 평등하게 친근하며 번뇌 없는 곳으로 바로 향하여 몸의 행을 고요히 하며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기를 생각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여래는 열 가지 힘을 성취하고 스스로 집착이 없음을 알아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치면서 위없는 법바퀴를 굴려 중생들을 제도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은 몸이요 이것은 몸의 원인이며 이것은 몸의 사라짐이요 이것은 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느낌이요 생각이며 지어감이요 의식이며, 이것은 의식의 원이요 의식의 다함이며 의식에서 벗어남이다.'고 관찰한다.
이것으로 인해 이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기느니라. 즉 무명을 인연해 지어감이 있고 지어감을 인연해 의식이 있으며 의식을 인연해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해 여섯 가지 감관이 있으며 여섯 가지 감관을 인연해 닿임이 있고 닿임을 인연해 느낌이 있으며 느낌을 인연해 욕망이 있고 욕망을 인연해 받아들임이 있으며 받아들임을 인연해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해 죽음이 있으며 죽음을 인연해 근심, 걱정, 슬픔, 번민이 이루 헤아릴 수 없나니, 이 다섯 가지 쌓임의 몸으로 인하여 이러한 습기의 법이 있느니라.
이것이 멸하면 곧 멸하고 이것이 없으면 곧 없다. 즉 무명이 멸하면 지어감이 멸하고 지어감이 멸하면 의식이 멸하며 의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여섯 가지 감관이 멸하며 여섯 가지 감관이 멸하면 닿임이 멸하고 닿임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며 느낌이 멸하면 욕망이 멸하고 욕망이 멸하면 받아들임이 멸하며 받아들임이 멸하면 존재가 멸하고 존재가 멸하면 죽음이 멸하며 죽음이 멸하면 근심, 걱정, 슬픔, 번민이 모두 없어지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내 법은 매우 넓고 커서 그 끝이나 밑이 없으며 모든 의심을 끊고 바른 법에 안온히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선남자, 선여인은 부지런히 마음을 써서 빠뜨림이 없게 하고 비록 몸이 마르고 무너지더라도 노력하는 행을 버리지 말며 마음을 잡아매어 잊지 않도록 하라. 괴로운 법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라. 한적한 곳을 즐겨 고요히 생각하면서 두타의 행을 버리지 말라. 지금 여래는 현재에서 범행을 잘 닦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스스로 관찰하거든 그 미묘한 법을 깊이 생각하고 또 두 가지 뜻을 살피고 방일한 행이 없이 결과를 성취시켜 단 이슬의 아주 사라진 곳에 이르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비록 남에게서 의복, 음식, 침구, 의약 등의 공양을 받더라도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부모로 하여금 그 보답을 얻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예경하고 공양하게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열 가지 힘을 성취하고 네 가지 두려움이 없게 되어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치느니라.
열 가지 힘이란 무엇인가. 이에 여래는 옳은 것도 여실히 알고 그른 것도 여실히 안다. 또 여래는 어디서나 다른 중생들이 그 인연에 의하여 받는 그 과보를 안다. 또 여래는 여러 가지 경계와 여러 가지 닿임과 여러 가지 감관을 여실히 안다. 또 여래는 여러 가지 해탈과 한량 없는 해탈을 여실히 안다. 또 여래는 다른 중생들의 지혜의 많고 적음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 여래는 다른 중생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여실히 안다. 즉 욕심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욕심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성내는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성내는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어리석은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아느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받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받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어지러운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어지러운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흩어진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흩어진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적은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적은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넓은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넓은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아느니라.
한량없는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한량없는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여실히 안다. 안정된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안정된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안다. 해탈한 마음이 있으면 있는 줄을 알고 해탈한 마음이 없으면 없는 줄을 아느니라.
또 여래는 모든 것의 나아가는 마음이 길을 안다.一생, 二생, 三생, 四생, 十생, 五十생, 백생, 천생, 억백천생, 무량생과 이루어지는 겁, 무너지는 겁을 알며, 한량없이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 동안에 '나는 옛날 저기서 났다. 이름은 이러했고 자는 이러했다. 어떤 음식을 먹었다.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수명은 얼마나 길고 짧았으며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서 난 것'등, 이러한 무수한 전생 일을 스스로 기억하느니라.
또 여래는 중생들의 나고 죽는 곳을 안다. 하늘 눈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여 좋은 몸과 나쁜 몸, 좋은 세계와 나쁜 세계는 그 행과 종자를 따른다는 것을 모두 다 아느니라.
즉 어떤 중생은 몸과 입과 뜻으로 악을 행하고 성현을 비방하며 삿된 소견의 업을 지으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난다. 혹 어떤 중생은 몸과 입과 뜻으로 선을 행하고 성현을 비방하지 않으며 항상 바른 소견을 행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난다. 이것이 이른바 하늘 눈이 청정하여 중생들의 나아가는 행을 관찰한다는 것이니라.
다시 여래는 번뇌가 없어지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생, 사가 이미 끝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안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는 열 가지 힘이 있고 집착이 없으며 네 가지 두려움이 없게 되어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쳐 법바퀴를 굴린다.'는 것이니라.
여래는 어떻게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가. 여래는 다 옳은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말하려 하는데 만일 어떤 중생이 예사로 아는 것이라고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또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와서 부처님을 비방하려고 다 옳은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것이 잘못이기 때문에 여래는 안온을 얻느니라.
또 나는 지금 번뇌가 이미 없어졌다고 말하려 하는데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혹은 하늘 악마가 와서 번뇌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것이 잘못이기 때문에 여래는 안온을 얻느니라.
또 나는 연설하는 법은 성현으로서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을 얻으면 여실히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인데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혹은 하늘 악마가 와서 아직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것이 잘못이기 때문에 여래는 안온을 얻느니라.
또 내가 말하는 안법[內法]이란 나쁜 곳에 떨어뜨리는 것인데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와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니라.
만일 어떤 외도 이학이 '저 사문 고오타마는 어떤 힘이 있고 어떻게 두려움이 없어서 스스로 집착이 없는 가장 높은 이라고 일컫는가.'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이 열 가지 힘을 가지고 가서 대답하라.
또 만일 어떤 외도 이학이 다시 '우리도 열 가지 힘을 성취하였다.'고 말하거든 너희 비구들은 다시 그들에게 물으라. '너는 어떤 열 가지 힘이 있느냐.' 그 때에 그 외도 이학은 능히 대답하지 못하고 드디어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여래를 제하고는 나는 마침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도 네 가지 두려움이 없다고 스스로 일컫는 이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부디 방편을 구해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기를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라의 일을 가까이 하면 열 가지 비법(非法)이 있다.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이에 어떤 이가 나라에 대해 모해할 마음으로 국왕을 죽이려 하여, 그 음모로 말미암아 국왕이 목숨을 마치면 그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 도사가 자주 내왕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소행일 것이다.'고. 이것은 첫째 비법으로서 나라를 친하는 어려움이니라.
또 대신이 반역하다가 왕에게 붙잡혀 모두 죽게 되면 그 백성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 도사가 자주 내왕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소행일 것이다.' 이것은 둘째 비법으로서 나라에 드나드는 어려움이니라.
또 나라에서 재물이나 보배를 잃어버리면 재물을 맡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보물은 내가 늘 지키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여기 들어온 일이 없다. 반드시 저 사문이 가져갔을 것이다.' 이것이 셋째 비법으로서 나라에 드나드는 어려움이니라.
또 국왕의 딸이 나이 한창 젊었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마침 아이를 배면 그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안에는 다른 사람은 내왕한 일이 없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소행일 것이다.' 이것은 넷째의 비법으로서 나라를 친하는 어려움이니라.
또 국왕이 중병을 앓을 때에 다른 사람의 약에 중독이 되면 그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 중독은 다른 사람의 약이 아니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소행일 것이다.' 이것은 다섯째 비법으로서 나라를 친하는 어려움이니라.
또 국왕의 대신들이 서로 다투면 그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대신들이 본래는 서로 화합하였는데 지금은 서로 다툰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소행이 아니다. 반드시 저 사문 도사의 소행일 것이다.' 이것은 여섯째 비법으로서 나라를 친하는 어려움이니라.
또 두 나라가 서로 싸워 이기기를 다투면 그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 도사가 자주 궁중에 와서 있었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소행일 것이다.' 이것은 일곱째 비법으로서 나라를 친하는 어려움이니라.
또 국왕이 본래는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백성들과 재물을 나누었는데 뒤에 갑자기 인색해져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국왕은 본래는 보시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지금은 아끼고 탐내어 보시할 마음이 없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소행일 것이다.' 이것은 여덟째 비법으로서 나라를 친하는 어려움이니라.
또 국왕이 항상 바른 법으로 백성들의 재물을 거두다가 뒤에는 비법으로 백성들의 재보를 거두면 그 백성들은 제각기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국왕은 본래는 법으로 백성들의 재보를 거두었는데 지금은 비법으로 백성들의 재보를 거둔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소행일 것이다.' 이것은 아홉째 비법으로서 나라를 친하는 어려움이니라.
또 그 나라 인민들이 모두 역병을 앓으면 그것은 모두 전생의 인연인데, 그 백성들은 제각기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전에는 병이 없었는데 지금은 모두 병에 걸려 시체가 길에 찼다. 이것은 반드시 저 사문의 주술 때문 일 것이다.' 이것은 열째 비법으로서 나라에 드나드는 어려움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비법으로서 나라에 드나드는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나라를 친할 생각을 내지 말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국왕으로서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오래 보존하지 못하고도 적이 많을 것이다.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만일 국왕으로서 인색하고 탐하여 조그만 일로 곧 화를 내어 의리를 살피지 않으면 그것은 첫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고 나라에는 도적이 많을 것이다. 또 그 왕으로서 재물을 탐착하여 즐겨 보시하지 않으면 그것은 둘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그 왕으로서 남의 충고를 받지 않고 사람에게 포악하여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셋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그 왕으로서 인민들을 억눌러 함부로 가두어 그들이 감옥에서 나올 기약이 없으면 그것은 넷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그 왕의 옳지 않은 대신이 바른 행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섯째 비법으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그 왕이 남의 여자를 탐하고 제 아내를 멀리 보내면 그것은 여섯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국왕으로서 술을 즐겨 해 나라 일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것은 일곱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국왕으로서 노래와 춤과 놀이를 좋아하여 나라 일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것은 여덟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국왕으로서 늘 오랜 병을 가져 건강한 날이 없으면 그것은 아홉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국왕으로서 충성스럽고 효도스런 신하를 믿지 않아 심복이 적고 튼튼한 대신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국왕으로서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이제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만일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선의 근본인 공덕이 늘지 않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만일 비구로서 계율을 가지지 않고 또 공경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없으면 이것은 비구의 첫째 법의 성취로서 마지막에 이를 곳을 얻지 못한다. 또 비구로서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지 않고 진실한 말을 믿지 않으면 이것은 비구의 둘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비구로서 법을 받들어 섬기지 않고 여러 가지 계율을 빠뜨리면 이것은 비구의 셋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비구로서 성중들을 받들어 섬기되 항상 제 뜻을 낮추어 그들의 받아들임을 믿지 않으면 이것은 비구의 넷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비구로서 이양하려는 마음에 탐착하여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은 비구의 다섯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비구로서 많이 배우지 않고 부지런히 읽고 익히고 외우지 않으면 이것은 비구의 여섯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비구로서 착한 벗과 사귀지 않고 항상 나쁜 벗과 사귀면 이것은 비구의 일곱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비구로서 늘 사무를 좋아하고 좌선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은 여덟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또 비구로서 다시 산수(算數)에 집착하여 길을 돌이켜 세속으로 나아가려 하면서 바른 법을 익히지 않으면 이것은 비구의 아홉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또 비구로서 즐겨 범행을 닦지 않고 더러운 것에 탐착하면 이것은 비구의 열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비구로서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반드시 세 갈래 나쁜 길에 떨어지고 좋은 곳에 나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만일 국왕으로서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세상에 오래 머무르게 되느니라.
열 가지란 무엇인가. 이에 국왕으로서,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으며 또 조그만 일로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것은 첫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또 국왕으로서 신하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어 그 말을 거스르지 않으면 이것은 둘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느니라.
또 국왕으로서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해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면 이것은 셋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또 국왕으로서 법으로써 재물을 거두고 그른 법을 쓰지 않으면 이것은 넷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느니라.
또 국왕으로서 남의 여자를 탐하지 않고 항상 자기 아내를 보호하면 이것은 다섯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또 국왕으로서 술을 마시지 않아 마음이 거칠거나 어지럽지 않으면 이것은 여섯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느니라.
또 국왕으로서 실없지 않고 바깥 적을 항복 받으면 이것은 일곱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또 국왕으로서 법을 따라 다스려 교화하고 비뚤어짐이 없으면 이것은 여덟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느니라.
또 국왕으로서 신하들과 화목하여 다툼이 없으면 이것은 아홉째 법의 성취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또 국왕으로서 병이 없고 기력이 강성하면 이것은 열째 법으로서 오래 보존할 수 있느니라.
만일 국왕으로서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오래 보존하되 아무도 어찌할 이가 없으리라.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에 천상에 날 것이니, 열 가지란 무엇인가. 이에 비구로서 계율을 받들어 가지고 계율의 덕을 완전히 갖추어 바른 법을 범하지 않으면 이것은 비구의 첫째 법의 성취로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날 것이다. 또 비구로서 여래에게 공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은 비구의 둘째 법의 성취로서 좋은 곳에 나느니라.
또 비구로서 법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하나도 범함이 없으면 이것은 비구의 셋째 법의 성취로서 좋은 곳에 난다. 또 비구로서 공경스레 성중들을 받들되 게으른 마음이 없으면 이것은 넷째 법의 성취로서 좋은 곳에 나느니라.
또 비구로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아 이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은 비구의 다섯째 법의 성취로서 천상에 날 수 있다. 또 비구로서 제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항상 계법을 따르면 이것은 여섯째 법의 성취로서 좋은 곳에 나느니라.
또 비구로서 사무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좌선하기를 좋아하면 이것은 일곱째 법의 성취로서 천상에 날 수 있다. 또 비구로서 한적한 곳을 즐겨 해 사람 속에 살지 않으면 이것은 여덟째 법의 성취로서 좋은 곳에 나느니라.
또 비구로서 나쁜 벗과는 사귀지 않고 항상 착한 벗과 사귀면 이것은 아홉째 법의 성취로서 좋은 곳에 날 수 있다. 또 비구로서 항상 범행을 닦아 나쁜 법을 떠나고 많이 듣고 이치를 배워 그 차례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로서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에 천상의 좋은 곳에 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비법의 행은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이니 부디 버리기를 생각하고, 열 가지 바른 법의 행을 받들어 닦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의 칼란다카 대숲 동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많은 비구들은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라아자그리하로 걸식하러 들어갔다. 때에 그들은 생각하였다.
'우리가 성에 들어가 걸식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우리는 저 외도 이학들에게 가서 변론하자.'
때에 비구들은 곧 외도 이학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때에 외도 이학들은 멀리서 이 사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저희들끼리 말하였다.
"모두 조용하라. 떠들지 말라. 사문 고오타마 제자들이 여기 온다. 그리고 저 사문들의 법에는 고요한 사람을 칭찬한다. 우리는 우리의 바른 법을 저들에게 알려 난잡하지 말자."
그 때에 비구들은 외도 이학들에게 가서 서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았다.
때에 외도들은 비구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의 사문 고오타마가 제자들을 위해 그 묘한 법을 말하면 너희 비구들은 그 모든 법을 이해하고 스스로 즐거이 노는가. 우리도 제자들을 위해 이 묘한 법을 설명하면서 스스로 즐거이 논다. 우리말과 너희들 말은 무엇이 다르며 어떤 차별이 있는가. 설법과 훈계는 꼭 같아서 다름이 없지 않는가."
때에 비구들은 외도 이학의 말을 듣고 좋다고도 말하지 않고 나쁘다고 말하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때에 비구들은 그들끼리 말하였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세존님께 가서 여쭈어 보자. 만일 세존께서 무슨 말씀이 계시거든 우리는 기억하여 받들어 행하자."
그 때에 비구들은 라아자그리하 성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 와 가사와 바리를 거두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때에 비구들은 그 사실을 모두 세존님께 사뢰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 외도 이학들이 그런 문제로 묻거든 너희들은 이런 말로 대답하라.
즉 '하나의 주장, 하나의 이치, 하나의 연설에서 열의 주장, 열의 이치, 열의 연설이 있다. 이것을 말할 때 여기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만일 너희들이 이런 말로 물으면 그들은 능히 대답하지 못하고 드디어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것은 그들이 가진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나는 여래와 여래 제자로서 내게서 들은 이를 제하고는 어떤 하늘이나 사람, 악마, 하늘 악마, 제석, 범천왕으로서도 능히 이 물음에 대답하는 이를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 하나의 주장, 하나의 이치, 하나의 연설을 알지 못하느니라.
나는 지금 이 이치를 설명하는데 무슨 이유로 말하는 것일까. 즉 일체 중생은 먹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비구로서 평등하게 싫어하고 평등하게 해탈하며 평등하게 관찰하고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하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이것은 똑같은 이치로서 둘이 아니다. 내가 설명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또 나는 무슨 이유로 하나의 주장, 하나의 이치, 하나의 연설에서 열의 주장, 열의 이치, 열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름과 형상이 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느낌, 생각, 기억, 명상이니 이것을 이름이라 한다. 형상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요소와 네 가지 요소로 된 형상이니 이것을 형상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금 둘의 주장, 둘의 이치, 둘의 연설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평등하게 싫어하고 평등하게 해탈하며 평등하게 관찰하고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하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니라.
무슨 이유로 나는 셋의 주장, 셋의 이치, 셋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다. 세 가지 느낌이란 이른바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어떤 것이 즐거운 느낌인가. 이른바 마음속의 즐거운 생각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즐거운 느낌이다. 어떤 것이 괴로운 느낌인가. 이른바 마음속이 어지러워 전일 하지 않고 여러 가지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괴로운 느낌이다. 어떤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인가. 이른바 마음속에 괴로운 생각도 없고 즐거운 생각도 없으며 전일한 생각도 아니요 어지러운 생각도 아니며 법이나 법 아닌 것도 생각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 고요하여 마음의 활동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는 느낌이라 한다. 이것을 세 가지 느낌이라 하느니라.
만일 비구로서 평등하게 싫어하고 평등하게 해탈하며 평등하게 관찰하고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하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셋의 주장, 셋의 이치, 셋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넷의 주장, 넷의 이치, 넷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진리를 말한다. 네 가지 진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괴로움과 그의 모임과 그것의 사라짐과 그것이 사라지는 길의 진리이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진리인가. 이른바 나는 괴로움, 늙는 괴로움, 앓는 괴로움, 죽는 괴로움, 근심과 슬픔과 번민의 괴로움, 원수와 만나는 괴로움, 사랑과 헤어지는 괴로움, 구하여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니 요약해 말하면 다섯 가지 쌓임의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모임의 진리인가. 이른바 탐애의 근본이 욕심과 어울리는 것이니 이것이 모임의 진리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인가. 이른바 탐애가 남음 없이 아주 다하고 다시는 생기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괴로움이 사라지는 진리이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인가. 이른바 성현의 여덟 가지 길인가. 즉 바른 소견, 바른 다스림, 바른 말, 바른 생활, 바른 업,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삼매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 길이니라.
만일 비구로서 평등하게 싫어하고 평등하게 해탈하며 평등하게 관찰하고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하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다.
이것이 넷의 주장, 넷의 이치, 넷의 연설로서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지금 무슨 이유로 다섯의 주장, 다섯의 이치, 다섯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뿌리니라. 다섯 가지 뿌리란 어떤 것인가. 믿음 뿌리, 정진 뿌리, 생각 뿌리, 선정 뿌리, 지혜 뿌리니라.
믿음 뿌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성현의 제자로서 여래의 도법을 믿고 그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 지혜와 행을 갖춘 이, 잘 간 이, 세상 아는 이, 위없는 선비, 도법으로 어거하는 이, 천상과 인간의 스승, 부처, 중우라고 하는 이가 세사에 나온 것을 믿는 것이니 이것이 믿음 뿌리이니라.
정진 뿌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몸과 마음과 뜻이 모두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여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은 더욱 자라게 하여 항상 마음에 잡고 있으면 이것이 정진 뿌리니라. 생각 뿌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생각 뿌리란, 외운 것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속에 두어 모두 가져 잃어버리지 않으며 하염없는 법이나 번뇌 없는 법을 마침내 잊어버리지 않으면 이것이 생각 뿌리이니라.
선정 뿌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선정 뿌리란 마음속에 어지러움이 없고 여러 가지 생각이 없으며 언제나 그 뜻이 전일한 것이니, 이것이 삼매 뿌리니라. 지혜 뿌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괴로움을 알고 그 원인을 알며 그 사라짐을 알고 사라지는 길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뿌리라 하느니라.
비구로서 그 중에서 평등하게 해탈하고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하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나느니라.
내가 말하는 다섯의 주장, 다섯의 이치, 다섯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여섯의 주장, 여섯의 이치, 여섯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여섯 가지 중한 법이니라.
여섯이란 어떤 것인가. 이에 비구는 항상 몸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행하여 혹 고요하고 깨끗한 방안에 있더라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이어서 높은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며 늘 남과 화합한다. 이것이 비구의 첫째 중한 법이니라. 또 입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행하여 마침내 거짓이 없고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면 이것은 둘째 중한 법이니라.
또 뜻으로 사랑을 행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면 이것이 셋째 중한 법이니라. 또 만일 법다운 이양을 얻어 바리에 남은 것이 있으면 여러 범행인들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베풀어준다. 이것이 넷째 중한 법으로서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한 것이니라.
또 계율을 받들어 가지고 빠뜨림이 없어 성인이 귀히 여길 만하면 그것은 다섯째 중한 법으로서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한 것이니라. 또 바른 소견으로 성현들의 벗어나는 길을 얻어 괴로움을 벗어나 뜻이 어지럽지 않고 여러 범행인들과 같이 그 행을 닦으면 이것이 여섯째 법으로서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한 것이니라.
그 때에 비구로서 평등하게 싫어하고, 평등하게 해탈하며 평등하게 그 이치를 분별하면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나느니라.
내가 말하는 여섯의 주장, 여섯의 이치, 여섯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일곱의 주장, 일곱의 이치, 일곱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일곱 가지 의식이 머무르는 것이니라.
일곱이란 어떤 것인가.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생각에 여러 가지 몸이니 이른바 하늘과 사람이다. 또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몸에 한 가지 생각이니 이른바 범가이천으로서 맨 처음 났을 때이니라.
또 어떤 중생은 한 가지 생각에 한 가지 몸이니 그것은 이른바 바로 광음천이다. 또 어떤 중생은 한 가지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이니 그것은 이른바 바로 변정천이니라.
혹 어떤 중생은 한량없는 허공 경계이니 그것은 이른바 공처천이다. 또 어떤 중생은 한량없는 의식 경계이니 그것은 이른바 식처천이다. 또 어떤 중생은 한량없는 아무 것도 없는 경계이니 그것은 이른바 불용처천이다. 또 어떤 중생은 한량없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이니 이른바 유상무상천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의식이 머무르는 일곱 곳이다. 거기서 평등하게 해탈하고 내지, 평등하게 괴로움을 벗어나느니라.
내가 말하는 일곱의 주장, 일곱의 이치, 일곱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여덟의 주장, 여덟의 이치, 여덟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세상의 여덟 가지 법으로서 그것은 세상을 따라 도느니라.
여덟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이익, 쇠함, 헐음, 기림, 일컬음, 나무람, 괴로움, 즐거움이니 이것이 세상의 여덟 가지 법으로서 세상을 따라 도는 것이니라.
너희들 비구는 거기서 평등하게 해탈하고 내지 괴로움을 벗어나느니라.
내가 말하는 여덟의 주장, 여덟의 이치, 여덟의 연설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아홉의 주장, 아홉의 이치, 아홉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중생이 사는 아홉 곳이니라.
아홉이란 어떤 것인가.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몸이니 이른바 하늘과 사람이다. 어떤 중생은 여러 가지 몸에 한 가지 생각이니 이른바 범가이천으로서 맨 처음 났을 때이다. 어떤 중생은 한 가지 생각에 한 가지 몸이니 이른바 광음천이다. 어떤 중생은 한 가지 몸에 여러 가지 생각이니 이른바 변정천이니라.
어떤 중생은 한량없는 허공경계이니 이른바 공처천이다. 어떤 중생은 한량없는 의식경계이니 이른바 식처천이다. 어떤 중생은 한량없이 아무 것도 없는 경계이니 이른바 불용처천이다. 어떤 중생은 한량없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곳이니 이른바 유상무상천이다. 생각이 없는 중생과 거기서 나는 중생들을, 의식이 머무르는 아홉 곳이라 하느니라.
거기서 비구들이 평등하게 해탈하고 내지, 괴로움을 벗어나느니라.
내가 말하는 아홉의 주장, 아홉의 이치, 아홉의 연설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무슨 이유로 열의 주장, 열의 이치, 열의 연설을 말하는가. 이른바 열 가지 생각이다. 즉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비구 중을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며 휴식을 생각하고 아나아파아나를 생각하며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을 열 가지 생각이라 하느니라.
너희들 비구들이 평등하게 해탈하고 내지 괴로움을 벗어나느니라.
비구들이여, 열의 주장, 열의 이치, 열의 연설이란 이와 같이 하나에서 열 가지이니라.
이 말을 들으면 얼굴빛을 자세히 보지도 못하겠거늘 하물며 대답하려 하겠는가.
어떤 비구로서 이 이치를 알면 현세에서 가장 제일 높은 사람이 될 것이다. 만일 비구, 비구니로서 이 이치를 十년 동안 생각하면 반드시 아라한이나 아나함의 두 결과를 성취할 것이다.
비구로서 十년은 고사하고 一년 동안만이라도 이 이치를 생각하면 반드시 두 결과를 성취하여 마침내 중간에서 물러남이 없을 것이다. 비구로서 一년은 고사하고 그 네 가지 무리들로서도 열 달이나 혹은 한 달 동안 이 이치를 생각하면 반드시 두 결과를 성취하여 중산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한 달은 고사하고 만일 네 가지 무리로서 이레 동안만 이 이치를 생각하더라고 반드시 두 결과를 성취하여 마침내 의심이 없을 것이다."
그 때에 아아난다는 부처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치고 있다가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법은 매우 깊어 만일 어디고 그 법이 있으면 곧 여래를 만나는 것인 줄 알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법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행해야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열 가지 법의 진리'이니 그렇게 생각하고 받들어 행해야 하느니라."
그 때에 아아난다와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열 가지 생각을 수행하면 곧 번뇌를 없애어 신통을 얻고 몸으로 증득하여 차츰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흰 뼈라는 생각, 푸르딩딩하다는 생각, 통통 부었다는 생각, 음식이 소화되지 않았다는 생각, 피라는 생각, 씹는다는 생각, 덧있고 덧없다는 생각, 탐해 먹는다는 생각, 죽는다는 생각, 모든 세상은 즐겨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열 가지 생각을 닦으면 번뇌가 없게 되어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니라.
또 비구들이여, 이 열 가지 생각 중에서 '모든 세상은 즐겨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가장 제일이다. 왜 그러냐 하면 '누구나 즐겨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수행하고, 믿음을 가지고 법을 받들면 그 두 사람은 반드시 차례를 뛰어 넘어 진리를 증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나무 밑이나 고요한 곳이나 한데 앉아 있거든 이 열 가지 생각을 깊이 생각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이 때에 어떤 비구는 세존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오늘 비구들을 위하여 열 가지 생각이란 법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능히 닦는 사람은 모든 번뇌를 끊고 번뇌가 없는 행을 성취할 것이다.'고 말씀하셨나이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와 같은 사람은 그런 생각을 능히 닦을 수 없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저는 욕심이 많기 때문에 몸과 뜻이 불꽃같아서 고요히 쉴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깨끗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더럽다는 생각을 깊이 생각하라. 덧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덧없다는 생각을 깊이 생각하라. <나>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가 없다는 생각을 깊이 생각하라. 즐겨 할 만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즐겨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깊이 생각하라. 왜 그러냐 하면 만일 비구가 깨끗하다는 생각을 생각하면 곧 욕심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더럽다는 생각을 생각하면 곧 욕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알아야 한다. 욕심은 더럽기 똥무더기 같고 욕심은 앵무새처럼 말이 많으며 욕심은 은혜를 갚을 줄 모르기 저 독사와 같고 욕심은 허망하기 햇볕에 녹는 눈과 같다. 그러므로 그것을 버리기를 시체를 무덤 사이에 버리듯 하라. 욕심이 스스로 해치기는 독사가 독을 품은 것 같고 욕심이 싫증이 나지 않기는 짠물을 마시는 것 같으며 욕심을 채우기 어렵기는 바다가 강물을 머금는 것 같고 욕심이 두렵기는 야차 마을과 같으며 욕심은 원수와 같으므로 항상 멀리 떠나야 하느니라.
욕심의 맛이 무섭기는 칼에 바른 꿀과 같고 욕심을 사랑할 것이 못 되는 것은 길에 버려진 해골 같으며 욕심이 얼굴에 나타나기는 뒷간에서 꽃이 나는 것 같고 욕심이 참 되지 못한 것은 그림병 안에 더러운 물건을 담아 겉이 번드르르한 것과 같으며 욕심이 튼튼하지 못한 것은 물거품 덩이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야, 마땅히 탐욕을 멀리 떠나고 더럽다는 생각을 깊이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이제 너는 기억하라. 너는 옛날 카아샤파 부처님 밑에서 열 가지 생각을 받들어 행하였다. 지금 거듭 열 가지 생각을 깊이 생각하면 번뇌에서 곧 마음의 해탈을 얻을 것이니라."
그 때에 그 비구는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는 곧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세존님께 사뢰었다.
"그렇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랫동안 어리석고 미혹하였나이다. 지금 여래께서는 친히 열 가지 생각을 말씀하셨나이다. 저는 지금 탐욕을 멀리 떠나려 생각하옵고 지금 스스로 참회 하오며 다시는 범하지 않겠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이 무거운 죄를 살피시고 미치지 못한 것을 용서하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의 참회를 들어준다. 다시는 범하지 말라. 나는 너를 위해 열 가지 생각을 설명하였는데 너는 그것을 즐겨 받들어 가지려 하지 않았느니라."
때에 그 비구는 세존님의 교훈을 듣고는 한적한 곳에서 자기를 이기면서 깊이 생각하였다. 그래서 선남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복을 입고 위없는 범행을 닦는 목적을 따라 그 소원을 이루려 하여 생, 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태를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알았다. 그래서 그 비구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결금과 현성의 사는 곳과 두 가지 힘과 열 가지 생각, 나라 친하기와 걸림 없기와 열 개 바퀴, 생각, 관상(觀想)이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생각이 있다. 그것을 널리 분별하여 수행하면 욕심 세계의 욕망, 형상 세계의 욕망, 무형 세계의 욕망, 교만, 무명을 모두 끊을 것이다. 열 가지 생각이란 이른바 부처 생각, 법 생각, 비구 중 생각, 계율 생각, 보시 생각, 하늘 생각, 지관(止觀) 생각, 아나아파아나 생각, 몸 생각, 죽음 생각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어떤 중생으로서 이 열 가지 생각을 수행하면 욕심 세계의 욕망, 형상 세계의 욕망, 무형 세계의 욕망과 일체 무명과 교만을 모두 끊어 없앤다.'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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