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장아함경

장아함경20 아마주경

다르마 러브 2012. 6. 16. 20:11

불설장아함경 제 十三권

 

제 三분 아마주경(阿摩晝經) 제 一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구살라(拘薩羅)국에 노니시면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계셨다.

이차능가라(伊車能伽羅)의 바라문 촌에 이르러 곧 그 이차 숲 속에서 묵으셨다. 때에 비가라사라(沸伽羅娑羅)라는 바라문이 있어 욱가라(郁伽羅)촌에 있었다. 그 마음은 풍성하고 살기 좋아 백성들의 인구는 많았다. 비사익(波斯匿)왕은 비가라사라에게 그 마을을 봉(封)해 주어 범분(梵分)으로 만들었다. 이 바라문은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는 진정(眞正)하여 남의 멸시나 비방을 받지 않았다. 三부(部)의 구전(舊典)을 읽어 외워 환희 알고 갖가지 경서도 다 분별했다. 또 대인(大人)의 상법(相法)과 제사의 의례(儀禮)를 잘 알았다. 五백의 제자를 두어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제 一의 마납(摩納) 제자를 아마주(阿摩晝)라 이름했다. 그도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는 진정하여 남의 멸시나 비방을 받지 않았다. 三부의 구전을 읽어 외워 환히 알고 갖가지 경서를 다 잘 분별했다. 또 대인의 상법과 제사의 의례도 잘 알았다. 또 五백의 마납 제자를 두어 가르치기를 게으르지 않는 것이 그 스승과 다름이 없었다.

때에 비가라사라 바라문은 들었다. 사문 고오타마는 집을 나와 도(道)를 이루고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이차능가라라는 구살라의 바라문 촌에 이르러 이차 숲 속에 계시면서 큰 명성이 있어 천하에 퍼져 여래, 지진, 등정각의 十호를 구족하고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과 악마와 또 악마의 하늘과 사문 바라문 가운데 있어서 자신이 스스로 증을 얻고 남을 위해 설법한다. 그 법은 상, 중, 하가 다 착하여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은 청정하다. ‘그러한 참 사람을 가서 친히 뵈와야 할 것이니 나도 이제 가서 저 사문 고오타마를 볼 수 있을는지 과연 三十二상(相)이 있는가 그 명성이 사방에 퍼지는 것이 실지에 부합 한가. 그러면 또 어떠한 인연으로 그 부처님의 상(相)을 뵈올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내 제자 아마주는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는 진정하여 남의 멸시나 비방을 받지 않는다. 三부의 구전을 읽어 외워 환희 알고 갖가지 경서를 능히 분별한다. 또 대인의 상법과 제사의 의례를 잘 안다. 오직 이 사람을 시키면 부처님을 보고 그 상의 있고 없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때에 그 바라문은 곧 제자 아마주에게 명령해 말했다.

“너는 가서 저 사문 고오타마가 과연 三十二상이 있는가 혹은 허망한가 가서 보라.”

때에 아마주는 그 스승에게 물었다.

“저는 무슨 증험으로 그 고오타마의 상을 보고 그 허실(虛實)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제 너에게 말한다. 만일 三十二의 대인상(大人相)을 구족한 사람이라면 그는 반드시 二처(處)로 나아가는 것이 의심 없는 것이다. 만일 그가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四천하(天下)의 왕으로서 법으로써 다스려 민물(民物)을 통령(統領)하고 七보를 구족할 것이다. 一은 금륜보(金輪寶) 二백상보(白象寶) 三은 감마보(紺馬寶) 四는 신주보(神珠寶) 五는 옥녀보(玉女寶) 六은 거사보(居士寶) 七은 전병보(典兵寶)다. 그 왕에게는 一천명의 아들이 있어 모두 용맹스럽고 지혜가 많아 원적(怨敵)을 항복 받아 무기가 쓰이지 않고 천하는 태평하여 국내의 백성들이 두려워함이 없게 된다. 만일 그가 세간을 좋아하지 않고 집을 나가 도(道)를 구한다면 마땅히 여래, 지진, 등정각을 이루어 十호를 구족할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서 고오타마의 허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때에 아마주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자 곧 보배 수레를 장엄하게 꾸며 五백의 마납 제자를 거느리고 이른 아침에 마을을 떠나 이차 숲으로 갔다. 동산에 이르자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세존께 나아갔다. 부처님이 앉으면 그는 서고 부처님이 서면 그는 앉았다. 그러는 동안에 둘은 서로 이야기했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일찍 나이 많고 덕이 높은 모든 큰 바라문들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였던가.”

마납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앉으면 자네는 서고 내가 서면 자네는 앉는다. 그러는 동안에 서로 이야기한다. 자네 스승의 이야기하는 법은 언제나 이러했던가.”

마납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우리 바라문은 법을 이야기할 때에는 앉으면 같이 앉고 서면 같이 서며 누우면 같이 눕습니다. 지금 모든 사문들은 머리를 깎고 홀아비고 비루하고 하열하여 어두운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저는 저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앉고 서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때에 세존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마납아, 자네는 아직 다루어지지 않았구나.”

때에 마납은 세존이 <그대>라고 부르는 말을 듣고, 또 <아직 조복(調伏)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곧 화를 내어 ‘이 석종자(釋種子)는 악의를 가지고 예의를 가질 줄 모른다’고 부처님을 비방해 말했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석종자가 그대에게 무슨 잘못한 일이 있었는가.”

미납은 여쭈었다.

“옛날 저는 어느 때 스승을 위해 무슨 조그만 볼일이 있어 석종의 가비라국에 있었습니다. 때에 많은 석종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 강당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제가 오는 것을 보고 업신여기고 희롱하면서 예법을 지키지 않고 공경하게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저 모든 석자들은 본국에 있어서는 자유로이 유희한다. 마치 날아다니는 새가 제 숲에 있어서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처럼, 모든 석자들도 본국에 있어서 유희하기를 자재로이 하는 것이 또한 그와 같다.”

마납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상에는 四성(姓)이 있으니 그것은 찰제리, 바라문, 거사(居士), 수타라(首陀羅)로서 저 三성은 항상 바라문을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니, 저 모든 석자는 도리가 그러하지 못할 것인데도 저 석자들은 좀스럽고 비루하고 하열하면서 우리 바라문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 때 세존은 잠자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마납은 가지가지 헐고 비방하여 좀스럽다고까지 말한다. 이제 나는 차라리 그 근본 인연을 설명하여 항복 받아야 할까’하고 부처님은 이내 마납에게 물으셨다.

“자네의 성은 무엇인가.”

마납은 대답했다.

“제 성은 성왕(聲王)입니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성이 그렇다면 그것은 석자의 종[奴]의 종자다.”

때에 마납의 五백 제자는 모두 큰 소리로 부처님께 말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마납은 석가의 종의 종자라고. 무슨 까닭인가. 이 큰 마납은 참된 족성(族姓)의 아들로서 용모는 단정하고 변재는 걸림이 없으며 널리 알고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오타마와 더불어 서로 주고받으면서 담론(談論)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세존은 五백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너의 스승이 너희들의 말한 바와 같지 않다면 나는 마땅히 너희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만일 너희들의 스승이 위에서 말한 너희들의 말과 같다면 너희들은 잠자코 있으라. 나는 마땅히 너희들의 스승과 이야기할 것이다.”

때에 五백 마납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우리들은 다 잠자코 있어 스승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듣겠습니다.”

때에 五백 마납은 다 잠자코 있었다. 그 때 부처님은 아마주에게 말씀하셨다.

“아주 먼 옛날에 성마(聲魔)라는 왕이 있었다. 그 왕에게는 네 왕자가 있었다. 一은 면광(面光)이요, 二는 상식(象食)이요, 三은 노지(路指)요, 四는 장엄(莊嚴)이라 이름했다. 그 네 왕자는 조그만 허물이 있어 왕에게서 그 나라를 쫓겨났다. 그들은 히말라야 남방으로 가서 직수림(直樹林)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 왕자들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모두 그들을 보고 싶어했다. 그들은 모여 서로 의논한 뒤 성마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대왕이여, 부디 아르소서, 우리는 四왕자들과 갈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가보고 싶습니다.’ 왕은 곧 ‘가 보고 싶거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때에 그 어머니와 권속들은 왕의 허락을 얻어 곧 히말라야의 남방 직수림으로 향해 왕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때에 여러 어머니들은 말했다. ‘내 딸을 당신의 아들에게 주고 당신의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곧 서로 짝을 지어 드디어 부부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사내를 낳아 용모가 단정합니다.’

때에 성마왕은 그 四왕자의 어머니가 그 딸을 주어 부부가 되어 아들을 낳아 용모가 단정하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진정한 석자(釋子)요 진정한 석동자(釋童子)로서 능히 스스로 존립(存立)할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라 이름한다.’ [석(釋)은 진(秦)에 능(能)이라 한다. 직수림에 있었기 때문에 <석>이라 이름했다. 석은 진나라 말로서 직(直)이라 한다.] 성마왕은 곧 석종(釋種)의 조상이다. 왕은 청의(靑衣)를 두었는데 이름을 방면(方面)이라 하고 용모가 단정했다. 어떤 바라문과 교통하여 곧 아기를 배어 한 마납을 낳았다. 아기는 땅에 떨어지자 곧 말할 줄을 알았다. 이내 부모에게 말하기를 ‘마땅히 나를 목욕시켜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없애라. 나는 자라나면 마땅히 스스로 은혜를 갚으리라’고 했다. 그가 처음 나서 능히 말을 하기 때문에 성왕(聲王)<소리의 왕>이라 이름했다. 이제 처음 나서 능히 말하는 자 있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기 때문에 가외(可畏)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저도 또한 이와 같이 처음 나자 곧 능히 말을 하기 때문에 성왕이라고 이름했다. 그로부터 바라문 종족은 드디어 성왕으로써 성을 삼았다.”

부처님은 또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는 나이 많고 덕이 높은 큰 바라문에게 이런 종성(種姓)의 인연을 들은 일이 있는가.”

때에 마납은 잠자코 대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다시 물으셨다. 그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부처님은 세 번 물으신 뒤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 번이나 물었다. 너는 마땅히 빨리 대답해야 한다. 만일 네가 대답하지 못하면 밀적역사(密迹力士)가 손에 금강저[金杵]를 잡고 내 좌우에 있다가 곧 네 머리를 부수어 七분으로 낼 것이다.”

때에 밀적역사는 손에 금강 방망이를 잡고 마납의 머리 위의 허공에 섰다. 만일 마납이 때맞추어 대답하지 못하면 곧 금강 방망이를 내리쳐 마납의 머리를 부수려고 했다. 때에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위를 우러러 보라.”

마납은 위를 쳐다보았다. 밀적역사가 손에 금강 방망이를 쥐고 허공에 서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털이 거꾸로 섰다. 곧 일어나 자리를 옮겨앉아 세존께 가까이 가서 세존에게 의지해 구원과 보호를 받으려 했다.

“세존이시여, 물으십시오. 저는 이제 대답하겠습니다.”

부처님은 곧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찍 나이 많고 덕이 높은 큰 바라문에게 이러한 종성의 인연을 들은 적이 있는가.”

마납은 대답했다.

“저는 믿습니다. 일찍 진실로 그런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때에 五백의 마납 제자들은 각각 모두 소리를 높여 ‘이 아마주는 실로 이 석가의 종의 종자다. 사문 고오타마의 말은 진실한 것이다. 우리는 철이 없어 업신여기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었다’고 서로 말했다. 그 때 세존은 곧 이렇게 생각했다. ‘이 五백 마납은 뒷날 반드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저를 일컬어 종이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방편으로써 그 종의 이름을 없애 주어야 하리라.’ 그래서 곧 五백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모든 사람들아, 삼가 그를 종의 자식이라고 일컫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그의 선조는 바라문으로서 큰 선인(仙人)이요 큰 위력이 있었다. 그래서 성마왕을 쳐서 여자를 요구했다. 왕은 두려워해 곧 여자를 주었던 것이다.”

그는 이 부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종이라는 이름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때 세존은 아마주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마납아, 만일 찰제리의 여자로서 七대로 내려오면서 그 부모가 진정하여 남의 업신여김과 비난을 받지 않는데 만일 그를 어떤 바라문에게 주어 아내로 만들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면 마납아, 그는 용모도 단정하다. 그는 찰제리 종족에 들어가 앉아서 물을 받고 찰제리의 법을 외울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 아버지의 재산을 탈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가 마납아, 만일 바라문의 여자로서 七대를 내려오면서 그 부모는 진정하여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난을 받지 않는데 <찰제리>가 그녀를 아내로 삼아 한 아들을 낳았다. 그는 용모가 단정하다. 그는 바라문의 무리 가운데 들어가 앉고 서서 물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바라문의 법을 외울 수 있고 아버지의 유산을 탈 수 있으며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가, 마납아, 만일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을 배척하고 찰제리 종족에 들어갔다면 그는 같이 앉고 서서 물을 받으며 찰제리의 법을 외울 수 있겠는가.”

그는 답했다.

“없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타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만일 찰제리 종족으로 찰제리를 배척하고 바라문에 들어갔다면 그는 같이 앉고 서서 물을 받으며 바라문의 법을 외우고 아버지의 유산을 타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납아, 여자 중에서는 찰제리 여자가 훌륭하고 남자 중에서는 찰제리 남자가 훌륭하다. 그것은 바라문이 아니다.”

범천은 스스로 게송으로써 말했다.

 

찰제리는 생(生) 가운데 뛰어났네.

종성도 또한 순수하고 참되며

지혜와 행이 두루 함께 구족하여

하늘과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니라.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범천이 이 게송을 노래하는 것은 참으로 착한 말이오. 착하지 않은 말이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이제 나 여래, 지진, 등정각도 또한 이 뜻을 말한다.”

 

찰제리는 생 가운데 뛰어났네.

종성도 또한 순수하고 참되며

지혜와 행이 두루 함께 구족하여

하늘과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니라.

 

마납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어떤 것이 이 위없는 지혜와 행의 구족입니까.”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자세히 듣고 잘 이것을 생각하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그는 대답했다.

“예, 원하고 즐겨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마납아,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면 그는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다. 그는 일체의 모든 하늘, 세상 사람, 사문, 바라문, 하늘 악마, 범왕 중에 있으면서 홀로 깨달아 스스로 증명했다. 남을 위해 법을 설명할 때에는 윗말도 좋고 가운데 말도 좋고 아래 말도 또한 좋으며 의미를 구족하여 청정한 행을 행하게 할 것이다. 혹 거사(居士)나 거사의 아들이나 및 그 밖의 종성들도 이 바른 법을 듣는 사람은 곧 믿음과 즐거운 마음을 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제 집에 있으면 처자에 얽매어 청정하게 순전히 범행을 닦을 수 없다. 이제 차라리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을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으리라.’ 그는 뒷날 집과 재산을 버리고 친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았다. 다른 출가인과 더불어 장식을 버리고 모든 계행을 구족했다.

곧 중생을 해치지 않고 칼과 몽둥이를 버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며 일체를 어여삐 생각한다. 이것을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이라 한다. 도둑질하는 마음을 버리어 주지 않는 것은 취하지 않으며 그 마음은 청정하여 가만히 훔치려는 생각조차 없다. 이것을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음욕을 버리고 범행을 깨끗이 닦기를 은근히 하고 정진하며 욕심 때문에 물들지 않고 정진하게 머무른다. 이것을 간음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거짓말을 버리고 지성으로써 속이지 않으며 남을 놀리지 않는다. 이것을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두말을 버린다. 비록 이 말을 들었더라도 저에게 전하지 않고 비록 저 말을 들었더라도 여기에 전하지 않으며 갈라지는 이가 없으면 잘 화합하여 서로 친하고 공경하게 한다. 무릇 말하는 바가 화하고 순하며 또 때를 안다. 이것을 두말[兩舌]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악구(惡口)를 버린다. 말하는 바가 추하고 악하여 남을 괴롭히어 성내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말을 버린다. 그 말은 부드럽고 연하여 원망하거나 해치지 않고 남에게 이익 됨이 많으며 모든 사람이 공경하고 사랑하여 그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 이것을 악구 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꾸밈말[綺語]를 버리어 때를 알아 말한다. 성실하여 법다우며 율(律)을 따라 두툼을 없앤다. 인연이 있으면 말하고 말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이것을 꾸밈말을 버리는 것이라 한다.

술 마시는 것을 버리어 방탕한 곳을 떠난다. 향과 꽃과 영락을 차지 않는다. 노래와 춤과 광대 노름을 보거나 듣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앉지 않고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금은과 七보를 가지거나 쓰지 않고 아내와 첩을 두지 않는다. 남녀의 종, 코끼리, 말, 수레, 소, 닭, 개, 돼지, 염소, 전택(田宅), 동산 따위를 쌓아 두지 않는다. 말질이나 저울질로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주먹으로 서로 끄을거나 치지 않는다. 사람을 모략하지 않고 거짓으로 속이지 않는다. 이러한 악을 버리어 모든 다툼이나 모든 착하지 못한 일을 없앤다. 행하면 곧 때를 알아 행하고 때아닌 때에는 행하지 않는다. 배에 알맞게 먹고 쌓아 두는 것이 없으며 몸에 맞추어 옷을 입을 뿐이다. 법의와 바루는 항상 몸에 따르나니 마치 나는 새에 날갯죽지가 따르는 것과 같아 비구의 여벌이 없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信施)를 받아 다시 쌓기를 구하거나 또 의복 음식에 만족할 줄을 모르지마는 우리 법에 들어오는 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信施)를 먹고 스스로 자기의 생업(生業)을 경영하고 나무들을 심어 귀신의 집을 만들지마는 우리 법에 들어오는 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다시 방편으로서 모든 이양(利養), 상아(象牙), 잡보(雜寶), 높고 넓고 큰 평상, 온갖 비단 이부자리, 침구 따위를 구하지마는 우리 법에 들어오는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은 남의 신시를 받고 다시 방편으로써 소유(蘇油)를 몸에 문질러 스스로 장엄하고 향수에 목욕하고 향료를 바르며 향기름으로 머리를 빗질하고 좋은 화만을 붙이며 눈을 짙푸른 빛으로 물들이고 얼굴을 닦아 장엄하며 고리를 달고 끈을 매며 지팡이를 꾸미어 거울에 비춰 본다. 온갖 빛깔의 가죽신과 하얀 웃옷과 칼과 몽둥이로 호위하고 보배 일산과 보배 부채와 장엄한 보배 수레를 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은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오로지 장난을 일삼는다. 바둑, 장기, 八도(道), 十도, 백도 내지 일체도의 온갖 잡기도 즐거이 논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오는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다만 도에 방해되는 실없는 말로 왕자(王者)의 전투와 군마(軍馬)의 일이며 모든 대신들이 말이나 수레로 동산을 드나드는 일 따위를 이야기한다. 또 눕고 일어나는 것 걸음걸이 여자의 일과 의복 음식 친구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또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무수한 방편으로써 삿된 직업을 가지고 아첨하는 아름다운 말씨와 서로 헐뜯어 이익으로서 이익을 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다만 서로 다투기만 한다. 혹은 동산에서 혹은 욕지(浴池)에서 혹은 당상(堂上)에서 서로 시비를 건다. ‘나는 경률(經律)을 알아도 너는 모른다. 나는 바른 길로 나아가지마는 너는 삿된 길로 향한다. 앞엣 것을 뒤에 붙이고 뒤엣 것을 앞에 붙인다. 나는 능히 네게 참지마는 너는 능히 참지 못한다. 하는 말은 진정(眞正)이 아니다. 만일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내게 와서 물으라. 나는 다 대답하리라’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은 남의 신시를 먹고 다시 방편으로써 심부름꾼 되기를 구한다. 혹은 왕과 왕의 대신 바라문과 거사를 위하여 심부름꾼이 되어 여기서 저기 가고 저기서 여기 온다. 이 소식을 가져다 저기 주고 저 소식은 가져다 여기 준다. 혹은 자기가 하기도 하고 혹은 남을 시켜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다만 천장과 싸우는 일을 익혀서 혹은 도장(刀杖)과 활 쏘는 일을 익힌다. 혹은 닭, 개, 돼지, 염소, 코끼리, 말소, 낙타의 모든 짐승을 싸움 붙이고 혹은 남녀를 싸우게 하며 또 고둥 소리 북소리 노래 소리 춤 소리 깃대를 타고 넘는 등 온갖 재주를 부린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하면서 남녀의 길흉과 호추(好醜)를 상보고 또 짐승을 상보아 이익을 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고 도에 방해되는 일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한다. 귀신을 부르거나 혹은 부리며 혹은 갖가지의 싫어하는 기도를 시킨다. 무수한 방법으로서 사람을 위협하고 공격하여 능히 모으기도 하고 흩기도 하며 능히 괴롭히기도 하고 즐겁게 하기도 한다. 또 능히 태(胎)를 편안하게 하여 옷을 내고 또 능히 사람을 저주하여 나귀를 만들기도 하며 또 능히 사람을 장님이나 귀머거리나 벙어리를 만들기도 하며 모든 기술을 부리고 손을 깍지끼고 해와 달을 향하여 모든 고행을 하여 이익을 구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은 남의 신시를 먹고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가는데 남을 위하여 병에 주문을 외운다. 혹은 악술(惡術)을 외우고 혹은 선한 주문을 외우며 혹은 의방(醫方)과 침 뜸과 약석(藥石)으로써 온갖 병을 고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은 남의 신시를 먹고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여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혹은 물과 불의 주문을 외우고 혹은 귀신의 주문을 외우며 혹은 찰제리 주문을 외우고 혹은 새[鳥]주문이나 팔 다리의 주문을 외우며 혹은 집을 편안하게 하는 부적과 주문 혹은 불에 데이거나 쥐에 물린 것을 풀기 위한 주문을 외운다. 혹은 죽고 사는 것을 판단하는 글을 외우고 혹은 꿈을 풀이하는 글을 외운다. 혹은 손금과 관상을 보고 혹은 천문 글을 외우며 혹은 일체 소리의 글을 외운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은 남의 신시를 먹으면서 도에 방해되는 법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천시(天時)를 상보아 비가 온다, 안 온다, 곡식이 귀하다, 천하다, 병이 많다, 적다, 세상이 두렵다, 태평하다를 말한다. 혹은 지진, 혜성(彗星), 일식, 월식을 말하고 혹은 성식(星蝕)을 말하며 혹은 불식(不飾)을 말한다. 이러한 좋은 상서와 나쁜 징조들을 말한다.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마납아, 다른 사문 바라문들은 남의 신시를 먹으면서 도에 방해되는 일을 행하고 삿된 직업으로 생활해 간다. 혹은 이 나라는 저 보다 낫고 저 나라는 이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혹은 저 나라는 이보다 낫고 이 나라는 저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또 길흉을 점쳐서는 그의 성쇠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 들어온 자는 그런 일이 없다.

다만 성계(聖戒)를 닦아 염착(染着)하는 마음이 없이 안으로 희락을 가진다. 눈은 비록 색(色)을 대하나 상(相)을 취하지 않는다. 눈은 색에 얽매임이 없고 견고하고 적연(寂然)하여 탐착하는 바가 없다. 또 걱정이나 근심이 없어 모든 악에 누설시키지 않고 계품(戒品)을 굳게 가지어 안근(眼根)을 잘 보호하나니 귀, 코, 혀, 몸, 뜻도 또한 그와 같이하여 六촉(觸)을 제어하고 보호하고 항복 받아 안온을 얻게 하나니 마치 평지에 四마(馬)의 수레를 멍에하고 좋은 마부가 채찍을 잡고 억제하여 수레바퀴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 六근(根)의 말을 몰고 안온하여 실수가 없다. 그는 이와 같은 성계(聖戒)를 가져 깨끗한 모든 근(根)을 얻은 것이다. 음식은 족한 줄 알고 또한 맛을 탐하지 않으며 몸을 길러 괴로움과 근심을 없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거만하지 않고 그 몸을 그르게 하여 옛 괴로움은 없애고 새 괴로움은 나지 못하게 하며 힘은 있고 일은 없이 그 몸을 안락하게 한다. 마치 사람이 부스럼에 약을 발라 곧 부스럼을 낫게 하고 모양을 내어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는 이와 같이 음식은 몸을 지탱하면 족하고 교만과 방자를 부리지 않는다. 또 수레에 기름을 쳐 잘 돌아가게 하고 그래서 운전하여 갈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음식은 몸을 지탱하면 족하고 도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납아, 비구는 이와 같이 성계(聖戒)를 성취하여 깨끗한 모든 근(根)을 얻었다. 음식은 족한 줄 알고 저녁과 새벽에 부지런히 닦아 도를 깨닫고 또 낮에는 다니거나 앉았거나 항상 일심으로 생각하여 모든 음개(陰蓋)를 없애느니라. 그는 초저녁에도 혹은 다니거나 혹은 앉아 일심으로 모든 음개를 없애며 한밤중에 이르러서는 오른 겨드랑이로 비스듬히 눕는다. 그 때에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묶어 밝음에 두어 조금도 어지러움이 없다. 그래서 새벽이 되면 곧 일어나 생각한다. 혹은 다니거나 혹은 앉거나 항상 일심으로 생각하여 온갖 음개를 없앤다. 비구는 이러한 성계(聖戒)를 구족하여 깨끗한 모든 근(根)을 얻는다. 음식의 족함을 안다. 초저녁이나 새벽에 부지런히 닦고 깨달아 항상 생각하여 일심이 되어 어지러움이 없다. 비구여, 어떤 것이 생각이 어지러움이 없는 것인가. 이러한 비구는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또 외신신관(外身身觀), 내외신신관(內外身辛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으며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린다. 수, 의, 법(受意法)의 관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비구의 생각이 어지러움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일심이라 하는가. 이러한 비구는 혹은 걸어다니거나 드나들거나 좌우를 돌아보거나 몸을 굽혔다 펴거나 위를 쳐다보고 밑을 내려다보거나 옷을 입거나 바루를 가지고 음식을 받거나 대소변이나 잠자거나 깨거나 앉거나 서거나 말하거나 잠자코 있거나 일체의 때에 있어서 항상 생각하여 위의(威儀)를 잃지 않는다. 이것을 일심이라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대중과 함께 갈 때에 혹은 앞에서 가고 혹은 가운데나 뒤에 있어서 항상 안온함을 얻어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서 걸어다닐 때나 드나들 때나 말하거나 잠자코 있을 때나 항상 일심으로 생각하여 근심과 두려움이 없다.

비구는 이와 같은 성계(聖戒)를 가져 깨끗한 모든 근(根)을 얻는다. 음식은 지족(止足)을 알고 저녁이나 새벽이나 정근하고 깨달아서 항상 생각하기를 일심으로 하여 착란(錯亂)이 없느니라. 고요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무덤 사이에 있기를 즐겨 하고 혹은 산굴에 혹은 한데 및 거름 무데기 사이에 있으면서 때가 되면 걸식하고 돌아와서는 손발을 씻는다. 가사와 바루를 정돈해 두고 가부좌로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루어 생각을 묶어 앞에 둔다. 간탐하는 마음을 없애어 함께 하지 않고 성내는 마음을 없애서 원결(怨結)이 없다. 마음은 청정에 머물러 항상 자비를 품고 수면을 제거하여 생각을 매여 밝음에 있어 생각에 어지러움이 없고 도희심(掉戱心)을 끊어 없애어 함께 하지 않는다. 안으로 적멸(寂滅)을 행하고 도희심을 없애며 의혹을 끊어 없애고 의심의 그물을 넘어 그 마음이 전일하여 착한 법에 있다. 비유하면 아이 종이 양반의 성을 받고 안온하고 해탈하여 종의 고역을 벗어나 그 마음이 환희 하여 다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남의 돈을 빌어 장사하여 큰 이익을 얻고 돌아와 본 주인의 재물을 돌려주고도 남는 재산이 쓰기에 넉넉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원래 남의 돈을 빚내어 뜻대로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제 이익을 얻고 돌아와 본 주인에게 돈을 돌려주고도 남은 재산이 쓰기에 족하다.’하고 다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 큰 환희심을 내는 것과 같다.

또 사람이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병이 나아 음식이 소화도 잘되고 원기도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병을 앓다가 이제 병이 나았다. 음식 소화도 잘되고 원기도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하고 다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감옥에 갇히었다가 무사히 옥에서 나왔을 때에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아까는 구속되었다가 이제는 이미 해탈했다.’고 하고 다시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이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많은 재보를 가지고 큰 광야을 지날 때 도둑을 만나는 일이 없이 안온히 지났다. 그는 생각하기를 ‘나는 재보를 가지고 이 험난한 곳을 지났다.’고 하고 다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마음이 안락한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가 五개(盖)로써 스스로 덮어 항상 걱정과 두려움을 품는 것도 또한 이와 같나니 그는 빚진 사람, 오랫동안 앓는 사람, 감옥에 있는 사람, 큰 광야를 가는 사람과 같다. 그는 스스로 자기가 아직 모든 음개의 마음을 떠나지 못해 덮임과 어둠에 지혜의 눈이 밝지 못함을 보고 그는 곧 정근하여 탐욕과 악함의 불선의 법을 버린다. 그리하여 각관(覺觀)을 함께 하고 이생희락(離生喜樂)의 초선(初禪)에 들어감을 얻는다. 그 희락이 몸에 젖어서 두루하고 가득 넘쳐 충만하지 않음이 없다. 마치 사람이 목욕 그릇에 뭇 약을 담아 물로써 그것을 부울 때 안팎이 함께 윤택하여 두루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마납아, 이것을 ‘최초의 현신(現身)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렇게 정진으로 말미암아 생각에 착란(錯亂)이 없어 고요한 것을 즐겨해 한가히 사는데서 얻은 바이기 때문이다.

또 그는 각관(覺觀)을 버리고 곧 믿음을 낸다. 전념과 일심으로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어 정생희락(定生喜樂)으로 제 二선(禪)에 들어간다. 그는 이미 일심의 희락에 몸을 담구어 두루하고 가득해 충만하지 않는 일이 없다. 마치 산꼭대기의 맑은 샘물은 물이 가운데서 나와 밖에서 나오지 않으며 곧 이 못 가운데서 청정한 물을 내어 도로 스스로 부으며 두루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이와 같아 제 二선에 들어가 정생희락이 충만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을 ‘제 二의 현신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한다.

또 그는 기쁨을 버리고 머물러 보호하여 생각이 착란하지 않으며 몸에 쾌락 받는 것은 성인(聖人)의 말씀과 같다. 그래서 호념(護念)의 즐거움을 일으켜 제 三선에 들어간다. 그의 몸은 기쁨은 없고 즐거움으로서 젖어 두루하고 가득해 충만하지 않음이 없다. 비유하면 우발라꽃, 발두마꽃, 구두마꽃, 분타리꽃이 처음으로 진흙에서 나와 아직 물밖에 나오지 못할 적에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 물 속에 잠기어 두루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이와 같아 제 三선에 들어가 기쁨을 떠나 즐거움에 머물러 몸을 적셔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을 ‘제 三의 현신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한다.

또 그는 희락을 버리고 걱정을 없애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생각을 보호해 청정하여 제 四선에 들어간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갖추고 가득하여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마치 사람이 목욕하고 청결하여 새로운 흰 천으로 그 몸을 덮어 온 몸이 청정한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제 四선에 들어가면 그 마음의 청정한 것이 몸에 충만하여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또 제 四선에 들어가면 마음에 더하고 덜함이 없고 또 기울거나 움직이지도 않으며 사랑도 미움도 없는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마치 비밀한 방 안팎을 바르고 굳게 문을 닫아 풍진(風塵)이 없고 그 안에는 등불을 흔드는 자도 없고 그 등불의 불꽃이 타오르더라도 고요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제 四선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더함도 덜함도 없고 또 기울거나 움직임도 없으며 사랑도 미움도 없는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이것을 ‘제 四의 현신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정근하여 게으르지 않아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고요한 것을 즐겨해 한가히 사는 데서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定)한 마음을 얻어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부드럽고 길들어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스스로 그 몸 속에 변화하는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다른 몸을 화작(化作)하여 지절(支節)이 구족하고 모든 근(根)이 빠짐이 없다. 그는 이렇게 관(觀)한다. ‘이 색신(色身)은 四대(大)로서 저 몸을 이루었다. 이 몸과 저 몸은 다르다. 그러나 이 몸을 쫓아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저 몸을 화성(化成)하매 모든 근은 구족하고 지절은 빠짐이 없다’고.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칼집에서 칼을 뺄 때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칼집과 칼은 다르다. 그러나 칼은 칼집에서 나왔다’고. 또 사람이 있어 삼실을 꼬아 노끈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삼과 노끈은 다르다. 그러나 노끈은 삼에서 나왔다’고. 또 어떤 사람이 상자에서 뱀을 잡아내는 것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자와 뱀은 다르다. 그러나 뱀은 상자에서 나왔다’고. 또 어떤 사람이 상자에서 옷을 내는 것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자와 옷은 다르다. 그러나 상자에서 옷이 나왔다’고.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은 최초의 얻은 바 승법(乘法)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정진으로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고요한 것을 즐겨 한가히 사는 데서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다루어져 움직임이 없는 땅에 산다.

이미 四대의 색신 속에서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화신(化身)을 화작(化作)하매 일체의 모든 근과 지절이 구족하다. 그는 이렇게 관한다. ‘이 몸은 四대가 모여 된 것이요, 저 몸은 변화를 쫓아 있다. 이 몸과 저 몸은 다르다. 이 마음은 이 몸 가운데 있어 이 몸에 머물다가 화신(化身)에 까지 간다.’ 비유하면 유리와 마니(摩尼)는 매우 밝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청, 황, 적의 실로 꿰면 눈이 있는 사람은 손바닥 위에 놓고 보아 구슬과 실은 다르지마는 실은 구슬에 의지하여 이 구슬에서 저 구슬에까지 간 것을 알 것이다. 마납아, 비구는 마음을 관하여 그것은 이 몸에 의지해 머무르며 저 화신에 까지 이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을 안다. 이것은 비구의 제 二의 승법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정근으로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홀로를 즐겨해 한가히 사는 데서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심(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다루어져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신통지증(神通智證)을 닦아 익혀 능히 갖가지로 변화한다. 한 몸을 변화해 무수한 몸이 되고 무수한 몸을 합해 한 몸이 되기도 한다. 몸은 날아다녀 석벽도 걸림이 없어 공중에 나는 새와 같고 물을 디디기 땅과 같이 한다. 몸에서는 연기와 불꽃을 내어 마치 큰 불 더미 같다. 손으로는 해와 달을 만지고 선 채로 범천에까지 이른다. 비유하면 옹기장이가 진흙을 잘 버물려 마음대로 어떤 그릇이나 만들어 이익 되는 바가 많은 것과 같다. 또 능숙한 목수가 나무를 잘 다루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 이익 되는 바가 많은 것과 같다. 또 아사(牙師)가 코끼리의 이빨을 다루는 것과 같고 또 금사(金師)가 진금(眞金)을 다루어 뜻대로 만들어 이익 되는 바가 많은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정심이 청정하여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르면서 뜻대로 변화하여 내지 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지고 서서 범천에까지 이른다. 이것은 비구의 제 三의 승법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드럽고 다루어져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천이지(天耳智)를 증(證)한다. 그의 하늘 귀의 깨끗함은 사람의 귀에 지나 하늘 소리와 사람 소리의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마치 성내에 높고 넓고 환히 드러난 큰 강당이 있을 대 귀 밝은 사람이 그 집안에 있어 그 안에 있는 소리를 힘들이지 않고 모두 듣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아 마음이 정(定)하기 때문에 하늘 귀가 청정하여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마납아, 이것은 비구의 제 四의 승법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기 때문에 부드럽고 다루어져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닦아 익혀 타심지(他心智)를 증한다. 그는 남의 마음을 안다. 욕심의 있고 없음과 때의 있고 없음과 어리석음의 있고 없음과 마음의 넓고 좁음과 마음의 크고 작음과 마음의 정하고 어지러움과 마음이 막이고 풀림과 윗마음과 아랫마음과 위없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모두 안다. 마치 사람이 있어 맑은 물에 스스로 비추어 좋고 나쁨을 틀림없이 아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이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능히 남의 마음을 안다. 마납아, 이것은 비구의 제 五의 승법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음으로써 부드럽고 다루어져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일심으로 숙명지증(宿命智證)을 닦아 익혀서 곧 능히 숙명의 무수한 갖가지 일들을 기억해 알아서 능히 일생을 기억해 무수한 생에 이르기까지 겁수(劫數)의 성패와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과 성명, 종족, 음식의 호오(好惡), 수명의 장단, 받은 바의 고락 형상과 모양을 모두 기억해 안다. 비유하면 사람이 있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것과 거기서 혹은 다니고 혹은 서며 혹은 말하고 혹은 잠자코 있는 것과 또 그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것과 이렇게 전전하다가 다시 본토에 돌아와서 심력(心力)을 허비하지 안고 기억해 알기를 돌아다닌 모든 나라에서 기억해 알 때에 여기저기로 간 것 다니고 서고 말하고 잠잠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능히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음으로써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그래서 숙명지로써 능히 숙명의 무수한 겁의 일을 기억한다. 이것은 비구의 제 一승(勝)을 얻은 것이다. 무명(無明)이 길이 멸해 대명(大明)의 법이 나고 어두움이 소멸하여 광요(光耀)의 법이 난다. 이것은 비구의 숙명지의 밝음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정근으로 말미암아 생각에 착란이 없고 홀로를 즐겨해 한가히 사는 데서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음으로써 부드럽고 다루어져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그는 또 일심으로 생사(生死)를 보는 지혜를 닦아 익혀 그의 깨끗한 하늘 눈은 모든 중생의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고 저기로부터 여기서 나는 것을 본다. 형색의 좋고 추함과 선과 악의 모든 과보와 존귀하고 비천한 것과 짓는 업을 따라 보응(報應)의 인연을 모두 안다. ‘이 사람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으로 악을 말하고 뜻으로 악을 생각하며 현성을 비방하고 삿되고 거꾸로 된 소견을 믿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三악도(惡道)에 떨어진다. 이 사람은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으로 선을 말하고 뜻으로 선을 생각하며 현성을 비방하지 않고 소견이 바르고 믿음으로 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난다.’고 이렇게 깨끗한 하늘 눈으로써 모든 중생이 업연(業緣)을 따라 五도(道)로 오가는 것을 본다. 비유하면 성내에 넓고 높은 다락을 지어 놓고 눈 밝은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 모든 행인을 바라보고 그들이 동서남북으로 가는 것과 그 거동의 하는 짓을 모두 보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 정심의 청정함으로서 움직임이 없는 땅에 머무른다. 생사를 보는 지혜를 중하여 깨끗한 하늘 눈으로써 모든 중생이 그 지은 바의 선악의 업을 따라 생(生)을 받아 五도(道)를 오가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다 안다. 이것은 비구의 제 二의 명(明)을 얻은 것이다. 무명을 끊고 혜명(慧明)을 내며 어둠을 버리고 지혜의 광명을 낸다. 이것은 중생의 생사를 보는 지혜의 밝음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정근하여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홀로를 즐겨해 한가히 사는 데서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심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음으로서 부드럽고 다루어져 움직이지 않는 땅에 머무른다.

일심으로 무루지증(無漏智證)을 닦아 익혀 그는 여실히 고성제(苦聖諦)를 알고 여실히 유루집(有漏集)을 알며 여실히 유루진(有漏盡)을 알고 여실히 누진(漏盡)으로 나아가는 길을 안다. 그는 욕루(欲漏), 유루(有漏), 무명루(無明漏)를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이 마음이 해탈을 얻어 해탈의 지혜를 얻었다.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뒷세상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 비유하면 맑은 물 속에 나무와 돌과 고기와 자라 따위의 수성(水性)의 무리들이 동서로 돌아다닐 때에 눈이 있는 사람은 환하게 이것을 보고 이것은 나무와 돌이요, 이것은 고기와 자라라고 분별하는 것과 같다. 마납아, 비구도 이와 같아 정심이 청정함으로서 움직임이 없는 땅에 이르러 무루지증을 얻고 내지 뒷 목숨을 받지 않는다. 이것은 비구의 제 三의 명(明)을 얻은 것이다. 무명을 끊어 없애어 혜명을 내고 어둠을 버리어 큰 지혜의 광명을 낸다. 이것을 무루지명(智命)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정근하여 생각이 착란하지 않고 홀로를 즐겨해 한가히 사는 데서 얻었기 때문이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明行)의 구족이라 한다.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이러한 명행을 옳다고 하느냐. 그르다고 하느냐.”

부처님은 다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의 구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四방편(方便)을 행한다. 어떤 것을 四라 하는가. 마납아, 어떤 사람이 위없는 구족을 얻지 못해 도끼를 들고 광주리를 지고 산에 들어가 약을 구해 나무뿌리를 먹는다. 이것을 마납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제 一의 방편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가 마납아, 이 제 一의 방편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행하는가.”

그는 대답했다.

“행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스스로 비미(卑微)하여 참과 거짓을 모른다. 그러면서 곧 석자(釋子)를 비방하고 나무란다. 그래서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다시 마납아 어떤 사람은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손에 물병을 들고 지팡이를 가지고 산림 속으로 들어가 절로 떨어진 과실을 먹는다. 이것을 마납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제 二의 방편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떠냐, 마납아 너와 너의 스승은 이 법을 행하는가.”

그는 대답했다.

“행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스스로 비미하여 참과 거짓을 모르면서 곧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긴다. 그래서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다시 마납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먼저의 캔 약과 및 떨어진 과실을 버리고 도로 마을로 돌아가 인간에 의지해 붙어 초막 암자를 세우고 초목의 잎을 먹는다. 마납아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제 三의 방편을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떠냐 마납아, 너나 너의 스승은 이 법을 행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행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스스로 비미하여 참과 거짓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긴다. 그래서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을 제 三의 방편이라 한다. 다시 마납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하고서 약초도 먹지 않고 떨어진 과실도 먹지 않으며 풀잎도 먹지 않고 마을이나 성시에다 큰집을 짓고 있으면 동서남북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이 힘을 따라 공급한다. 이것을 위없는 명행구족을 얻지 못해 제 四의 방편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어떠냐 마납아, 너나 너의 스승은 이 법을 행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행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스스로 비미하여 참과 거짓을 모르면서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긴다. 그래서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우는 것이다. 어떠냐 마납아, 옛날의 모든 바라문과 및 모든 선인(仙人)들은 모든 기술이 많아 본래 외우고 익힌 것을 찬탄하고 칭설(稱說)하는 것이 지금의 바라문이 외우고 칭설 해야 할 바와 같다.

一은 아타마(阿陀摩) 二는 바마(婆摩) 三은 바마제바(婆摩堤婆) 四는 비파밀다(鼻婆密多) 五는 이두뢰실(伊兜瀨悉) 六은 야바제가(耶婆堤伽) 七은 바바바실타 八은 가섭(迦葉) 九는 아루나(阿樓那) 十은 고오타마 十一은 수이바(首夷婆) 十二는 손타라(損陀羅)인데 이러한 모든 큰 선인(仙人) 바라문은 모두 해자[塹]을 타고 당각(堂閣)을 세우기를 너의 스승이나 제자들이 지금 거처하는 바와 같은가.“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 모든 대선(大仙)들은 자못 성곽(城郭)을 일으키어 사택을 둘러싸고 그 가운데 가서 살고 있기를 너의 스승이나 무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과 같은가.”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 모든 대선들은 혹은 높은 평상과 겹뇨와 골자리가 부드러운 곳에 살고 있기를 너의 스승이나 무리들의 지금 거처하는 것과 같은가.”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 모든 대선들은 혹은 금, 은, 영락과 채색의 화만과 미녀(美女)로써 스스로 즐기기를 너의 스승이나 무리들과 같은가. 저 모든 대선들은 혹은 보배 수레를 타고 창을 가지고 앞장서며 흰 일산으로 스스로 들고 손에 보배 총채를 잡고 잡색의 보배 신을 신고 또 순전히 흰옷을 입기를 너의 스승이나 무리들의 지금 입은 것과 같은가.”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납아, 너는 스스로 비미하여 참과 거짓을 모른다. 그러면서 곧 석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긴다. 그래서 스스로 죄의 뿌리를 심어 지옥의 근본을 키운다. 어떠냐 마납아, 저 모든 대선의 옛날의 바라문들은 본래 풍송하는 것을 찬탄하고 칭설하는 것이 지금의 바라문들이 칭설하고 풍송해야 할 것과 같다. 아타마들이 만일 그의 말한 바를 전해 다른 사람을 가르쳐 범천에 나기를 바란다 하면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파사닉왕이 사람과 의논하고 혹은 모든 왕과 혹은 대신과 바라문과 거사와 의논하는 것을 다른 세인(細人)이 듣고 사위성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 곧 말하기를 ‘파사닉왕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떠냐 마납아 왕은 이 사람과 함께 말한 일이 있느냐.”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납아, 이 사람이 왕의 말을 외워 남에게 말한다고 해서 왕이나 대신 노릇을 할 수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마납아, 너희들이 오늘 옛날의 대선 바라문의 외운 말을 전해 남에게 가르쳐 범천에 가서 나게 하고자 해도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떠냐 마납아 너희들은 남의 공양을 받고 능히 법은 따라 행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남의 공양을 받으면 마땅히 법다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납아, 너의 스승 비가타 바라문은 왕이 봉(封)해 주는 마음을 받고도 파사익왕과 함께 이야기할 때에는 왕에게 요긴하지 않고 무익한 말을 했다. 바른 일로써 서로 충고하고 깨우쳐 주지 않았다. 너는 이제 스스로 너와 및 너의 스승의 잘못을 보았다. 그러나 그 일은 우선 두고 다만 네가 여기 온 인연을 생각할 것이다.”

마납은 곧 눈을 들어 여래의 상(相)을 보면서 모든 상호(相好)를 찾아보았다. 다른 상호는 다 볼 수 있었으나 오직 二상만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곧 마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 때에 세존은 잠자코 생각하셨다. ‘이제 이 마납은 二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을 낸다’고. 곧 넓고 긴 혀의 상을 내어 귀를 핥고 얼굴을 덮었다. 때에 저 마납은 다시 一상을 의심했다. 세존은 다시 ‘이제 이 마납은 아직 一상을 의심한다.’하시고 곧 신력으로서 저 마납으로 하여금 혼자만 음마장(陰馬藏)을 보게 하였다. 그 때에 마납은 상을 전부 다 보고는 여래에 대해서 다시 의심이 없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돌고 물러갔다.

때에 비가라 바라문은 문밖에 서서 멀리서 그 제자가 오는 것을 보았다. 그를 맞아 말하기를

“너는 고오타마를 보니 진실로 상을 갖추었던가. 또 공덕과 신력이 듣던 바와 같던가.”고 물었다.

그는 곧 스승에게 아뢰었다.

“고오타마 사문은 三十二상을 다 구족해 있었습니다. 공덕과 신력도 듣는 바와 같았습니다.”

스승은 또 물었다.

“너는 고오타마와 조금이라도 이야기해 보았는가.”

그는 대답했다.

“실로 고오타마와 여러 말을 했습니다.”

스승은 또 물었다.

“너는 고오타마와 무슨 일을 이야기하였는가.”

때에 마납은 부처님과 이야기한 것을 낱낱이 그 스승에게 아뢰었다.

스승은 말했다.

“나의 총명한 제자가 이렇게 하였으니 우리는 장차 지옥에 들어가기 멀지 않았구나. 왜냐 하면 너는 모든 탐욕이 좋다고 말하여 고오타마를 헐뜯어서 그로 하여금 나를 좋아하지 않고 더 멀어지게 하였다. 너는 총명한 제자이면서 이렇게 하였으니 머지 않아 나를 지옥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이에 그 스승은 분노에 맺힌 마음으로 곧 마납을 차서 수레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스승은 자기가 수레를 탔다. 때에 저 마납은 수레에서 떨어질 때에 그만 백라(白癩)를 일으켰다. 때에 비가라사라 바라문은 하늘을 우러러 해를 보았다. 그리고 잠자코 스스로 생각했다. ‘지금 사문 고오타마를 보기에는 적당한 때가 아니다. 모름지기 내일을 기다려 가서 보자’고. 이튿날 아침에 보배 수레를 엄숙하게 타고 五백의 제자를 데리고 전후에 둘러싸여 이차(伊車) 숲 속에 나아가 수레에서 내려 걸어갔다. 세존의 계신 곳에 이르러 안부를 물은 뒤 한 쪽에 앉았다. 거기서 여래의 몸을 우러러보고 두루 모든 상을 보았으나 오직 二상을 보지 못했다. 때에 바라문은 二상을 의심했다. 부처님은 그 생각을 아르시고 곧 넓고 긴 혀의 상을 내어 귀를 핥고 얼굴을 덮었다. 바라문은 또 一상을 의심했다. 부처님은 그 생각을 아르시고 곧 신력으로서 음마장(陰馬藏)을 보이셨다. 때에 바라문은 여래의 三十二상을 갖추 보고 마음이 곧 열리어 다시 의심이 없었다. 그래서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제가 길을 가다가 길에서 부처님을 만날 때 잠깐 그쳐 수레를 멈추거든 마땅히 아소서. 저는 이미 세존을 경례했다고. 촌(村)의 봉(封)을 받았는데 만일 제가 수레에서 내리면 반드시 이 봉(封)을 잃고 나쁜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제가 수레에서 내리면서 칼을 끄르고 일산을 벗기고 또 깃대와 물병과 신발을 치우거든 마땅히 아소서. 저는 이미 여래를 예경했다고. 왜냐하면 저는 남의 봉(封)을 받기 때문에 五위의(威儀)가 있습니다. 만일 제가 예배한다면 곧 봉한 것을 잃고 나쁜 이름이 퍼질 것입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제가 여러 사람 중에서 부처님을 보고 일어서고 만일 오른 팔을 한 쪽으로 드러내고 스스로 성명을 대거든 곧 저는 이미 여래를 예경했다고 아소서. 왜냐하면 저는 남의 봉을 받았는데 만일 예배한다면 곧 봉읍(封邑)을 잃고 나쁜 이름이 퍼질 것입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에게 귀의합니다. 제가 정법 중에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저는 지금부터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원컨대 세존과 및 모든 대중은 마땅히 제 청을 들어주소서.”

그 때에 세존은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셨다. 그 때에 바라문은 부처님이 잠자코 계시는 것을 보고 허가하신 줄을 알았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처님께 예하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돌아가서 음식을 장만해 공양 준비가 다 되었다. 다시 돌아와 공양 때가 되었다고 여쭈었다. 그 때에 세존은 가사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모든 대중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그 집에 가서 자리에 앉으셨다. 때에 바라문은 손수 갖가지 맛난 음식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이바지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바루를 거두고 물을 돌리기를 마쳤다. 때에 바라문은 오른손으로 제자 아마주의 손을 잡고 세존 앞에 나아가 여쭈었다.

“오직 원하옵노니 여래시여, 이의 허물의 뉘우침을 허락하소서. 오직 원하옵노니 여래시여, 이의 허물의 뉘우침을 허락하소서.”

이렇게 세 번 말하고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마치 잘 다루어진 코끼리나 말이 잠깐 미끄러져 넘어졌다 가도 다시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과 같이 이 사람도 비록 실수가 있었더라도 원컨대 그 허물의 뉘우침을 허락해 주소서.”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너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현세에서 안온하게 하고 너의 제자의 백라병을 낫도록 해 주리라.”

부처님은 말씀이 끝나자마자 그 제자의 백라병은 곧 나았다. 때에 바라문은 작은 자리를 가져다 부처님 앞에 앉았다. 세존은 곧 바라문을 위하여 설법하시고 보여 가르치시어 이롭고 기쁘게 하셨다. 그것은 시론(施論), 계론(戒論), 생천론(生天論)이었다. ‘욕(欲)을 더러운 때라 하고 상루(上漏)를 환(患)이라 하고 출요(出要)를 최상’이라 하시면서 청정을 펴 말씀하셨다. 그 때에 세존은 바라문의 마음이 이미 다루어져 청정하여 때가 없어 도(道)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줄을 아시었다. 모든 부처님의 떳떳한 법과 같이 고성제(苦聖諦), 고집성제(苦集聖諦), 고멸성제(苦滅聖諦), 고출요제(苦出要諦)를 말씀하셨다. 때에 바라문은 곧 그 자리에서 진구(塵垢)를 멀리 여의어 법눈의 깨끗함을 얻었다. 그것은 마치 정결한 흰 천이 물감을 쉽게 받는 것과 같았다. 비가라사라도 또한 그와 같아 법을 보고 법을 얻어 도과(道果)에 결정되었다. 다른 도를 믿지 않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이제 재삼 불, 법 및 비구 중에게 귀의하나이다.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 되는 것을 허가해 주소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간음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과 및 모든 대중은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七일 동안의 청을 들어주소서.”

그 때 세존은 잠자코 그것을 허락하셨다. 때에 바라문은 곧 七일 동안에 걸쳐 부처님과 대중에게 여러 가지로 공양하였다. 그 때에 세존은 七일을 지낸 뒤에 세상에 나와 노닐으셨다. 부처님이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비가라사라 바라문은 병들어 목숨을 마쳤다. 때에 모든 비구는 이 바라문은 七일 동안 부처님께 공양해 마치고 곧 목숨을 마쳤다는 말을 들었다. 각각 생각하기를 ‘그는 목숨을 마치고 어느 세계에 태어났을까’하였다. 그 때에 여러 비구들은 세존께 나아가 부처님께 예하고 한 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바라문은 七일 동안 부처님께 공양해 마친 뒤 몸이 무너져 목숨이 끝났는데 마땅히 어느 곳에 가서 났겠습니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족성자(族姓子)는 모든 착함이 다 모여 법이 구족하여 법을 어기지 않고 행하여 五하결(下結)을 끊었다. 그는 곧 반열반(般涅槃)에 들어 이 세상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모든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 하여 받들어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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