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모든 사문의 현재에 닦는 것은 현재에 그 과보를 얻습니까?
: “나는 일찍 사문, 바라문에게 가서 이런 뜻을 물은 일이 있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어느 때 부란 가섭에게 가서 ‘사람이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생업을 경영하여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 사문, 바라문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과보를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저 부란 가섭은 내게 대답했습니다. ‘왕은 스스로 짓거나 혹은 남을 시켜 짓게 하되 찍고 해치고 지지고 베고 하여 중생을 괴롭히고 걱정하고 울게 하거나 살생, 도둑질, 음탕, 거짓말, 담을 넘어 겁탈하기, 불놓아 태우기 따위로 道를 끊어 악을 짓는다 하자. 대왕이여, 이와 같은 일을 행하더라도 그것은 악을 짓는 것이 아니다. 대왕이여, 만일 날랜 칼을 가지고 일체의 중생을 산적질하여 고기 더미로 만들어 세간에 가득하게 한다고 하자. 이것도 또한 악이 아니다. 또한 그 죄의 갚음도 없다. 恒河의 남쪽 언덕에서 중생을 칼로 죽여도 또한 그 악의 갚음은 없고 항하의 북쪽 언덕에서 큰 보시의 희를 열어 일체의 무리들에게 베풀어 사람을 이익 하게 하기를 고루 이익 하게 하더라도 또한 복의 갚음이 없다’고”
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는 마치 어떤 사람이 오이를 묻는데 오얏[李]이라 대답하고 오얏을 묻는데 오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도 또한 그와 같아서 나는 ‘현재에 과보를 얻느냐’고 묻는데 그는 ‘죄와 복의 갚음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나는 찰제리 왕, 머리에 물을 붓는 종족이다. 집을 나온 사람을 죽이거나 얽어 쫓아 버릴 수 없다’고. 때에 나는 분노에 맺힌 마음을 품었다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버리고 거기서 떠났습니다.
또 부처님께 사뢰었다.
“나는 또 어느 때 말가리구사리에게 가서 ‘이제 사람들은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 아닌가.’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베풀음도 없고 주는 것도 없으며 제사의 법도 없다. 또 선악의 갚음도 없다. 금생도 없고 또 후생도 없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으며 하늘도 없고 조화도 없으며 중생도 없다. 세상에는 사문, 바라문의 평등한 行者도 없고 또한 금세 후세에 자신으로 증명을 짓고 남에게 두루 나타내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 이 허망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오이를 묻는데 오얏이라 대답하고 오얏을 묻는데 오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나는 ‘현재에 갚음을 얻느냐. 아니냐.’를 묻는데 그는 이제 없다는 것으로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곧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찰제리왕, 머리에 물을 붓는 종족이다. 집을 나온 사람을 죽이고 얽묶어 쫓아 버릴 수 없다.’ 때에 나는 분노에 맺힌 마음을 품었다가 이렇게 생각하고 곧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는 또 어느 때 아기다시사흠바라에게 가서 ‘大德이시여,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四大를 받은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地大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대는 물로 돌아가며 화대는 불로 돌아가고 풍대는 바람으로 돌아간다. 모두 무너지고 부숴져 모든 기관은 空으로 돌아간다. 만일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상여에 몸을 담아 화장장에 갖다 두고 불로써 그 뼈를 사르면 그것은 비둘기 빛처럼 되고 혹은 변해 재와 흙이 된다. 어리석은 이나 지혜 있는 이나 목숨을 마치면 모두 무너지고 부숴져 단멸법이 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오얏을 묻는데 오이로, 오이를 묻는데 오얏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나는 ‘현재에 과보를 얻느냐. 아니냐.’를 묻는데 그는 내게 단멸법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곧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찰제리왕, 머리에 물을 붓는 종족이다. 집을 나온 사람을 죽이거나 얽묶어 쫓아 버릴 수 없다’고. 때에 나는 분노에 맺힌 마음을 품었다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또 저는 옛날 어느 때 바부타가전연에게 가서 ‘대덕이여,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힘이 없고 정신이 없는 사람은 힘도 없고 방편도 없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이 染着하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이 청정하다. 일체 중생으로 목숨이 있는 무리는 모두 힘이 없어 自在를 얻지 못한다. 원수도 있을 수 없고 定은 數 가운데 정해져 있다. 이 六生 중에 있어서 모든 고락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얏을 묻는데 오이라고 대답하고 오이를 묻는데 오얏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내가 ‘현재에 갚음을 얻느냐, 아니냐.’를 묻는데 그는 無力으로써 내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 찰제리왕, 머리에 물을 붓는 종족이다. 집을 나온 사람을 죽이거나 얽묶어 쫓아 버릴 수 없다.’ 때에 나는 분노에 맺힌 마음을 품었다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나는 곧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또 나는 옛날 어느 때 산야비라리자에게 가서 ‘대덕이여,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도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의 과보가 있느냐’고 물었으니 이렇게 대답한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지도 않다.’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에게 과보가 없느냐. 고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진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고.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에게는 과보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가.’고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진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세존이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오얏을 묻는데 오이라고 대답하고 오이를 묻는데 오얏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나는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 아닌가.’를 묻는데 그는 異論으로 나에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곧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제 찰제리왕, 머리에 물을 붓는 종족이다. 집을 나온 사람은 죽이거나 얽묶어 쫓아 버릴 수 없다.’ 때에 나는 분노에 맺힌 마음을 품었다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나는 곧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또 나는 옛날 어느 때 니건자에게 가서 ‘대덕이여, 마치 사람들이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도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는 재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나는 일체 智와 일체 見을 가진 사람으로 모든 것을 알아 남김이 없다. 혹 다니거나 혹 머물거나 혹 앉거나 혹 눕거나 언제나 깨달아 남김이 없어 지혜는 항상 앞에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오얏을 묻는데 오이라고 대답하고 오이를 묻는데 오얏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도 또한 이와 같아 나는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를 묻는데 그는 내게 일체의 지혜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곧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찰제리왕, 머리에 물을 붓는 종족이다. 집을 나온 사람을 죽이거나 얽묶어 쫓아 버릴 수 없다’고. 나는 분노에 맺힌 마음을 품었다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한글 장아함경』 pp. 389~393.
② 부처님의 의견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나는 이제 여기 와서 이런 뜻을 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사문도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습니까.“
부처님은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왕에게 도루 물으리라. 마음대로 대답하라. 어떤가 대왕이여, 왕의 집의 종이나 안팎의 하인들은 다 보름날 달이 찼을 때 왕이 머리 감고 목욕하고 높은 전(殿)에 올라가 모든 채녀들과 서로 오락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아 행(行)의 과보가 이에 까지 이르르는가. 이 아사세왕은 보름날 달이 찼을 때 머리 감고 목욕한 뒤 높은 전에 올라 모든 채녀와 더불어 五욕(欲)을 즐긴다. 누가 능히 알겠는가. 이 행의 갚음이라고.’ 그는 뒷날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아 평등법을 행한다. 어떤가 대왕이여, 대왕은 멀리서 이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다시 이런 생각을 일으켜 말하겠는가. ‘저 사람은 내 종이 아닌가’라고.”
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가 오는 것을 보면 저는 마땅히 일어나 맞이하여 앉기를 청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것이 어찌 사문이 현재에 얻는 갚음이 아니겠는가.”
왕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사문이 현재에 받는 갚음입니다.”
“다시 대왕이여, 만일 왕의 경계 안에 붙치어 사는 나그네로서 왕의 창고에서 주는 것을 먹고 왕이 보름날 달이 찼을 때 머리감고 목욕한 뒤 높은 전에 올라가 모든 채녀와 더불어 五욕을 즐기는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아, 저 행의 갚음이 이에 이러한 것인가. 누가 능히 이것이 저 행의 갚음인 줄 알 것인가’라고. 그는 뒷날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아 평등의 법을 행한다. 어떤가 대왕이여, 대왕은 만일 멀리서 그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다시 이런 생각을 내어 말하겠는가. ‘저 사람은 내 교민(僑民)으로서 내 창고에서 주는 것을 먹던 자’라고 말하겠는가.”
왕은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만일 그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면 마땅히 일어나 맞이하여 예경하고 인사한 뒤 앉기를 청할 것입니다.”
“어떤가 대왕이여, 이것이 사문의 현재 얻는 과보가 아닌가.”
왕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현재에 얻는 사문의 과보입니다.”
“다시 대왕이여, 여래, 지진, 등정각이 이 세상에 나타나면 내 법에 들어오는 자는 내지 三명(明)으로써 모든 어두움을 멸하고 큰 지혜의 광명을 낼 것이니 이른바 누진지증(漏盡智證)이 그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정근하고 전념하여 잊지 않으며 홀로를 즐기고 한정하여 방일하지 않음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어떤가 대왕이여, 이것이 사문이 현재에 얻는 과보가 아닌가.”
왕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실로 그것은 사문의 현재의 과보입니다.”
그 때에 아사세왕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의 허물의 뉘우침을 받아 주소서. 저는 미치고 어리석고 어둡고 무식합니다. 저의 아버지 병사왕은 법으로서 다스리고 교화하여 치우치거나 굽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五욕에 미혹하여 사실은 부왕(父王)을 해쳤습니다.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어 저의 허물의 뉘우침을 받아 주소서.”
沙門果經 대정장 1/108 상~109 중;『한글 장아함경』 pp. 393~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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