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주제별 정리/전법교육

모든 법다운 행의 근본을 갖추는 가르침

다르마 러브 2013. 8. 27. 10:45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소견이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있다>는 소견과 <없다>는 소견이다. 모든 사문, 바라문들로서 이 두 가지 소견의 본말을 알지 못하면, 그는 곧 욕심이 있고 성냄, 어리석음, 애욕, 집착이 있게 될 것이니 그는 곧 무지한 사람이다. 만일 그에게 화내는 마음이 있어 법다운 행과 서로 맞지 않으면, 그는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과 번민을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이 고달파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그것을 여실히 알면 그는 곧 어리석고 화내는 마음이 없고 항상 법다운 행과 서로 맞아 남, 늙음, 병, 죽음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괴로움의 근본을 이와 같이 설명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묘한 법이 있으니 그것을 <평등한 법>이라 한다. 평등한 법을 행하지 않는 이는 곧 다섯 가지 그른 소견에 떨어질 것이다.

나는 지금 네 가지 집착을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네 가지 집착인가. 이른바 탐욕에의 집착, 소견에의 집착, 계율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이니 이것을 네 가지 집착이라 한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탐욕에의 집착’이란 이름을 안다. 그러나 그는 탐욕에의 집착이란 이름은 알지마는 그것만으로는 맞지 않다. 비록 그는 모든 집착의 이름을 안다 하지마는 먼저 탐욕에의 집착이란 이름만 알고 소견에의 집착, 계율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이란 이름은 모르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다른 세 가지 집착의 이름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그 모든 집착을 다 분별하지마는, 그는 다만 탐욕에의 집착과 소견에의 집착을 분별하고 계율에의 집착과 <나>에의 집착은 분별하지 못한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다른 두 가지 집착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모든 집착을 다 분별한다 하지마는 그래도 갖추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네 가지 집착이다.

어떤 뜻이 있고 또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집착은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 묘한 법을 분별해야 하느니라.

만일 이 모든 집착을 함께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평등이라고 부를 수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법의 이치는 깨닫기 어렵고 알기 어렵나니 그런 법답지 않은 이치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알아야 한다. 여래는 능히 모든 집착을 다 분별하고 모든 집착을 분별하므로 말미암아 곧 법과 알맞게 된다. 즉 탐욕에의 집착, 소견에의 집착, 계율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을 다 분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집착을 분별하고 법과 서로 알맞아 조금도 어긋남이 없느니라.

이 네 가지 집착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가. 이 네 가지 집착은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애욕으로 말미암아 자라난다. 만일 이 집착을 항복 받으면 곧 다른 모든 집착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집착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요,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열반에 들어, 나고 죽음은 이미 끝나고 범행은 이미 이루었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알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 묘한 법을 여실히 알면 모든 법다운 행의 근본을 완전히 갖출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법은 극히 미묘하기 때문이요, 모든 부처님의 말씀으로서 모든 행에 있어서 빠짐이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첫째 사문, 둘째 사문, 셋째 사문, 넷째 사문이 있어, 그 어떤 사문도 이것보다 훌륭한 것이 없느니라.”

부처님은 이와 같이 사자처럼 외치셨다.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대정장 2/644 상-중 ;『한글 증일아함경』1, pp. 364~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