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타표마라자(陀驃摩羅子)가 그 왕사성에 오래도록 살고 있으면서 대중 스님들의 음식공양을 맡아보는 일을 하였는데, 그는 차례에 따라 청장(淸醬)을 배급하여 순서를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자지(慈地)라는 비구가 세 번씩이나 순서를 벗어나 거친 음식을 받아 식사할 때마다 몹시 괴로워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상하기도 하다. 너무도 괴롭구나. 저 타표마라자 비구는 중생〔有情〕이기 때문에 거친 음식으로 나를 괴롭혀 밥 먹을 때마다 나를 몹시 괴롭히는 것일 게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저에게 요익(饒益)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앙 갚음을 할 수 있을까?'
그 때 자지 비구에게는 그 누이인 밀다라(蜜多羅)라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그녀는 왕사성에 있는 왕원(王園)의 비구니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밀다라 비구니는 자지 비구에게로 가서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는 한 쪽 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자지 비구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밀다라 비구니가 자지 비구에게 말하였다.
아리(阿梨)여, 왜 돌아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습니까?
자지 비구가 말하였다.
타표마라자 비구는 자주 거친 음식으로 나를 괴롭혀 밥 먹을 때마다 나를 몹시 괴롭게 했는데 그대까지도 다시 나를 버리겠는가?
비구니가 말하였다.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자지 비구가 말하였다.
그대는 세존께 가서 '세존이시여, 타표마라자 비구는 법답지 않기로 비교할 데가 없습니다. 저와 같이 범행이 아닌 바라이죄(波羅夷罪)를 범하였습니다'라고 말해 다오. 그러면 나도 '세존이시여, 내 누이의 말과 같습니다' 하고 증언해 줄 것이다.
비구니가 말하였다.
아리여, 내가 어떻게 범행을 행하는 비구를 바라이죄로 모함할 수 있겠습니까?
자지 비구가 말하였다.
만일 그대가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나는 그대와 인연을 끊을 터이니, 다시는 왕래하거나 말하거나 서로 쳐다보지도 말자.
그러자 비구니는 잠깐 동안 잠자코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리여, 내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면 내 마땅히 말대로 따르겠습니다.
자지 비구가 말하였다.
그대는 잠깐 기다려라. 내가 먼저 세존께 갈 터이니 그대는 뒤에 따라 오라.
그리고 자지 비구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밀다라 비구니도 그 뒤를 따라 가서 부처님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불선(不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타표마라자는 저에게 와서 범행(梵行)이 아닌 바라이죄를 지었습니다.
자지 비구도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누이의 말과 같습니다. 저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 타표마라자 비구는 바로 그 대중들 가운데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 타표마라자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말을 들었는가?
타표마라자 비구가 아뢰었다.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타표마라자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타표마라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선서(善逝)께서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타표마라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세존께서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 때에 적절하지 않는 말이다. 너는 지금 기억이 나거든 기억한다고 말하고, 기억이 나지 않거든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라.
타표마라자가 말하였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때 존자 라후라(羅?羅)는 부처님 뒤에 서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불선(不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비구니가 말하기를 '존자 타표마라자는 저에게 와서 저와 함께 범행이 아닌 바라이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자지 비구도 또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누이 말과 같습니다'라고 말한 것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물으리니 나에게 마음대로 대답하라. 만일 밀다라 비구니가 내게 와서 '세존이시여, 불선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라후라는 저와 함께 범행이 아닌 바라이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하고, 또 자지 비구도 나에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누이의 말과 같습니다. 저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후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만약 그것이 기억나면 기억난다고 말하고, 기억이 나지 않으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로구나. 너도 오히려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저 타표마라자 비구는 청정한 비구인데도 그런 말을 할 줄 모르는가?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타표마라자 비구에 대해서는 마땅히 기억해 두고, 밀다라 비구니는 제말로 말할 것이다.(편주:메티야비구니에 대해서 인터넷판에서는 ‘직접말했기 때문에 멸빈’이라고 돼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책을 따랐다.) 그리고 자지 비구는 잘 꾸짖고 충고하고 훈계하면서 '너는 무엇을 보았으며 어디서 보았는가? 너는 그 때 무슨 일로 거기에 가서 그 일을 보게 되었느냐?' 하고 물어 보아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앉으시어 선정에 들어 가셨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타표마라자 비구에게는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라 하고, 밀다라 비구니는 제말로 말하게 하고, 자지 비구에게는 잘 꾸짖고 충고하고 훈계하면서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보았으며 어디서 보았는가? 그대는 그 때 무슨 일로 거기에 가서 그 일을 보게 되었느냐?
이렇게 따져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 타표마라자는 범행을 범하지 않았고 바라이죄도 짓지 않았다. 그러나 타표마라자 비구는 세 번씩이나 나쁜 음식으로 나를 놀라게 하고, 나로 하여금 밥 먹을 때 나를 몹시 괴롭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타표마라자 비구에 대해 애욕․성냄․어리석음 그리고 두려움을 갖게 되어 그런 말로 모함한 것이다. 그러나 타표마라자는 청정하며 아무 죄도 없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에 선정에서 깨어나 대중 앞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그러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저 타표마라자 비구를 잘 기억해 두었고, 밀다라 비구니는 제말로 말하게 하고, 자지 비구에게는 잘 꾸짖고 충고하였습니다.……(내지)…… 그는 말하기를 '타표마라자 비구는 청정하여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음식 때문에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거짓말을 하였구나.
그 때 세존께서는 곧 게송을 설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이라도
알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면
뒷세상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어떤 나쁜 짓이라고 못할 것이 없으리라.
차라리 뜨거운 철환(鐵丸)을 삼키거나
이글거리는 숯불을 먹을지언정
금지하는 계율을 범하면서까지
승려에게 주는 음식은 먹지 않으리.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陀驃經 대정장 2/279 하~280 중; 한글대장경 잡아함경 인터넷판, pp. 1568~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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