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雜阿含經) 제 17권
455. 상경(想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갖가지 경계를 인연하여 갖가지 닿임이 생기고, 갖가지 닿임을 인연하여 갖가지 생각이 생기며, 갖가지 생각을 인연하여 갖가지 욕망이 생기고, 갖가지 욕망을 인연하여 갖가지 각(覺)이 생기며, 갖가지 <각>을 인연하여 갖가지 열(熱)이 생기고, 갖가지 <열>을 인연하여 갖가지 구(救)가 생기느니라.
어떤 것이 갖가지 경계인가. 이른바 十八 계(界)이니 눈의 경계.......내지 법의 경계이니라. 어떻게 갖가지 경계를 인연하여 갖가지 닿임이 생기며......내지, 어떻게 갖가지 <열>을 인연하여 갖가지 <구>가 생기는가. 이른바 눈의 경계를 인연하여 눈의 닿임이 생기고, 눈의 닿임을 인연하여 눈의 경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의 경계를 인연하여 눈의 닿임이 생기느니라. 눈의 닿임을 인연하여 눈의 생각이 생기고, 눈의 생각을 인연하여 눈의 닿임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의 닿임을 인연하여 눈의 생각이 생기느니라. 눈의 생각을 인연하여 눈의 욕망이 생기고, 눈의 욕망을 인연하여 눈의 생각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의 생각을 인연하여 눈의 욕망이 생기느니라. 눈의 욕망을 인연하여 눈의 <각>이 생기고, 눈의 <각>을 인연하여 눈의 욕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의 욕망을 인연하여 눈의 <각>이 생기느니라. 눈의 <각>을 인연하여 눈의 <열>이 생기고, 눈의 <열>을 인연하여 눈의 <각>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의 <각>을 인연하여 눈의 <열>이 생기느니라. 눈의 <열>을 인연하여 눈의 <구>가 생기고, 눈의 <구>를 인연하여 눈의 <열>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의 <열>을 인연하여 눈의 <구>가 생기느니라.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의 경계를 인연하여 뜻의 닿임이 생기고.......내지, 뜻의 <열>을 인연하여 뜻의 <구>가 생기는 것이다.......(또한 이와 같이 널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갖가지 경계를 인연하여 갖가지 닿임이 생기고.....내지, 갖가지 <열>을 인연하여 갖가지 <구>가 생기며, 갖가지 <구>를 인연하여 갖가지 <열>이 생기는 것이 아니요.......내지, 갖가지 닿임을 인연하여 갖가지 경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갖가지 경계를 인연하여 갖가지 닿임이 생기고.........내지, 갖가지 <열>을 인연하여 갖가지 <구>가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안의 여섯 가지 감관과 같이 바깥의 여섯 가지 대경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하였다.'
456. 정수경(正受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광명의 경계[光界], 깨끗한 경계[淨界], 한량이 없는 허공의 입처계(入處界), 한량이 없는 식(識)의 입처계, 소유가 없는 입처계,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의 입처계, 유멸계(有滅界)가 있느니라."
때에 어떤 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광명의 경계, 깨끗한 경계, 한량이 없는 허공의 입처계, 한량이 없는 식의 입처계, 소유가 없는 입처계, 비상비비상의 입처계, 멸계의 이와 같은 모든 경계는 어떠한 인연으로 알 수가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저 광명의 경계는 어두움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깨끗한 경계는 깨끗하지 않은 것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으며, 한량이 없는 허공의 입처계는 물질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한량이 없는 식의 입처계는 안[內]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으며, 소유가 없는 입처계는 소유를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비상비비상의 입처계는 존재의 제 一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으며, 멸계는 존재의 몸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광명의 경계와......내지, 멸계는 어떤 중수(正受)로써 얻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저 광명의 경계, 깨끗한 경계, 한량이 없는 허공의 입처계, 한량이 없는 식의 입처계, 소유가 없는 입처계의 이 모든 경계는 스스로 정수(正受)를 행하는 데서 얻고, 비상비비상의 입처계는 제 一존재의 정수에서 얻으며, 멸계는 존재의 몸이 멸하는 정수에서 얻어지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57. 설경(設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동쪽 동산[東園]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저녁때에 선(禪)에서 깨어나 강당 그늘에서 대중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우단나(優檀拏) 글귀를 설명하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경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말이 생기고 경계가 아닌 것이 아니다. 경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소견이 생기고, 경계가 아닌 것이 아니다. 경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생각[想]이 생기고 경계가 아닌 것이 아니다. 아랫 경계를 인연하면 아랫 말, 아랫 소견, 아랫 생각, 아랫 뜻, 아랫 욕심, 아랫 원, 아랫사람, 아랫일, 아랫 시설, 아랫 세움, 아랫 부분, 아랫 나타냄, 아랫 태어남이 생긴다고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이 중간 경계도 그러하며, 위 경계도 이와 같나니, 윗 경계를 인연하면 그는 윗말, 윗 소견, 위 생각, 윗 뜻, 윗 원, 윗사람, 윗 일, 윗 시설, 윗 세움, 윗 부분, 윗 나타냄, 윗 태어남이 생긴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때에 바가리(婆迦利)비구는 부처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치고 있다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삼약삼불타(三 三佛陀)에 대하여 삼약삼불타가 아니라는 소견을 일으키면 그 소견도 또한 경계를 인연하여 생기는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삼약삼불타에 대하여 삼약삼불타가 아니라는 소견을 일으키면 그것도 또한 경계를 인연하여 생기는 것이요, 경계가 아닌 것이 아니니라. 무슨 까닭인가. 범부의 경계는 무명(無明)의 경계이기 때문이니, 내가 말한 것과 같이 아랫 경계를 인연하여 아랫 말과 아랫 소견이 생기고.....내지, 아랫 태어남이 생기고, 중간 경계도 그러하며, 윗 경계는 윗 말과 윗 소견이 생기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58. 인경(因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인(因)이 있어서 욕심이 생각[想]이 생기나니 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인이 있어서 성내는 생각이 생기나니 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인이 있어서 해치는 생각이 생기나니 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인이 있어서 욕심의 생각이 생기는가. 이른바 욕심의 경계를 인연하는 것이니라. 욕심의 경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욕심의 생각, 욕심의 욕(欲), 욕심의 각(覺) 욕심의 열(熱), 욕심의 구(救)가 생기느니라.
어리석은 범부는 욕심의 <구>를 일으킨 뒤에는 이 중생은 세 곳의 사특함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몸, 입, 마음이니라. 이와 같은 사특한 인연 때문에 현재에서 괴로움에 머물러 괴로움이 있고 걸림이 있으며, 번민이 있고 애탐이 있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나나니, 이것을 인연으로써 욕심의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인연으로써 성내는 생각이 생기며 해치는 생각이 생기는가. 이른바 해치는 경계이니, 해치는 경계를 인연하여 해치는 생각, 해치는 <욕>, 해치는 <각>, 해치는 <열>, 해치는 <구>가 생긴다. 어리석은 범부는 해치는 <구>를 일으킨 뒤에는 이 중생은 세 곳의 사특함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몸, 입, 마음이니라. 세 곳의 사특한 인연울 일으킨 뒤에는 현재에서 괴로움에 머물러, 괴로움이 있고 걸림이 있으며, 번민이 있고 애탐이 있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나나니 이것을 인연으로써 해치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이여, 만일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이와 같이 생(生)에 편안해 함으로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내더라도 그것을 버리기를 구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며 뱉어 버리지 못하면, 그들은 현재에서 괴로움에 머물러, 괴로움이 있고 걸림이 있으며, 번민이 있고 애탐이 있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비유하면 성읍(城邑)이나 부락에서 멀지 않은 넓은 벌판에 큰불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에, 거기에는 그 불을 능히 끌 수 있는 힘이 있는 자가 없으면 마땅히 알라. 그 모든 들판의 중생들은 다 불의 해침을 입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생에 편안해 함으로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내더라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날 것이니라.
모든 비구들이여, 인(因)이 있어서 욕심에서 벗어날 생각이 생기나니 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인이 있어서 욕심에서 벗어날 생각이 생기는가. 이른바 욕심에서 벗어나는 경계이니, 욕심에서 벗어나는 경계를 인연하여 욕심에서 벗어날 생각, 욕심에서 벗어 날 <욕>, 욕심에서 벗어날 <각>, 욕심에서 벗어날 <열>, 욕심에서 벗어날 <구>가 생기느니라. 저 슬기로운 사람은 욕심에서 벗어나기를 구할 때에는 그 중생은 세 곳의 바름이 생기나니 이른바 몸, 입, 마음이니라. 그는 이와 같이 바른 인연이 생긴 뒤에는 현재에서 즐거움에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으며, 번민하지 않고 애타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나나니 이것을 인연으로써 욕심을 벗어날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인연으로 성내지 않는 생각이 생기며 해치지 않는 생각이 생기는가. 이른바 해치지 않는 경계이니라. 해치지 않는 경계를 인연하여 해치지 않는 생각, 해치지 않는 <욕>, 해치지 않는 <각>, 해치지 않는 <열>, 해치지 않는 <구>가 생기느니라. 저 슬기로운 사람은 해치지 않기를 구할 때에는 그 중생은 세 곳의 바름이 생기나니 이른바 몸, 입, 마음이니라. 그는 바른 인연이 생긴 뒤에는 현재에서 즐거움에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으며, 번민하지 않고 애타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나나니, 이것을 인연으로 해치지 않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생에 편안해 하더라도 해치지 않는 생각이 생기면, 그것을 버리지 않고 깨닫지 못하며 뱉어 버리지 않더라도, 현재에서 즐거움이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으며, 번민하지 않고 애타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비유하면 성읍이나 부락 곁에 넓은 벌판이 있어 큰불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에 어떤 사람이 손, 발로 능히 그 불을 끌 수 있으면 마땅히 알라. 그 초목을 의지하는 모든 중생들은 다 해를 입지 않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생에 편안해 하더라도 바른 생각이 생기면, 그것을 버리지 않고 깨닫지 못하며 뱉어 버리지 않더라도, 현재에서 즐거움이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으며, 번민하지 않고 애타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59. 자작경(自作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이 때에 어떤 바라문은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세존과 마주 않아 서로 위로한 뒤에 한 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생은 스스로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그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너는 지금 스스로 내게 와서 말하기를 '스스로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지은 것도 아니다.'고 말하는구나."
바라문은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중생는 스스로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남이 지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내게 대답하라. 바라문이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중생에게는 방편계(方便界)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방편을 쓰기를 알게 하느냐."
"고오타마시여, 중생에게는 방편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방편을 쓰기를 알게 하나이다."
"만일 방편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방편이 있는 것을 알게 한다면 이것은 곧 중생은 스스로 짓는 것이요 이것은 곧 남이 짓는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중생에게는 안주계(安住界), 견고계(堅固界), 출계(出界), 조작계(造作界)가 있어서 그 중생들로 하여금 조작이 있는 것을 알게 하는가."
"중생에게는 안주계, 견고계, 출계, 조작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조작이 있는 것을 알게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그 안주계, 견고계, 출계, 조작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조작이 있는 것을 알게 한다면, 이것은 곧 중생이 스스로 지은 것이요, 이것은 남이 지은 것이니라."
바라문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생은 스스로 지은 것도 있고 남이 지은 것도 있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세간에는 일이 많나이다. 이제 하직을 청하나이다."
"세간에 일이 많거든 마땅히 그 때를 알아하라."
때에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460. 구사라경(瞿師羅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拘 彌]국 고시타(瞿師羅)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고시타 장자는 존자 아아난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존자 아아난다 발에 절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존자에게 사뢰었다.
"말씀하신 갖가지 경계란, 어떤 것을 갖가지 경계라 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고시타 장자에게 말하였다.
"다른 눈의 경계와 다른 빛깔의 경계가 있어서 그것이 기쁜 것이면, 두 인연으로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닿임이 생기며, 또 기쁜 닿임의 인연으로 즐거운 느낌이 생긴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이 말하느니라. 다시 장자여, 다른 눈의 경계와 다른 빛깔의 경계가 있어서 그것이 근심스러운 것이면 두 인연으로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괴로운 닿임이 생기며, 그 괴로운 닿임의 인연으로 괴로운 느낌이 생긴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이 말하느니라. 다시 장자여, 다른 눈의 경계와 다른 빛깔의 경계가 있어서 그것이 버리는 것[捨]이면 두 인연으로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닿임이 생기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닿임의 인으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이 말하느니라."
때에 고시타 장자는 존자 아아난다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발에 절하고 떠나갔다.
461. 삼계경(三界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국 고시타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고시타 장자는 존자 아아난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하고 한 쪽에 앉아 존자 아아난다에게 사뢰었다.
"말씀하시는 바 갖가지 경계란 어떤 것을 갖가지 경계라 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고시타 장자에게 말하였다.
"三 계(界)가 있다. 어떤 것이 三인가. 이른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이니라."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욕계를 환하게 깨달아 알고
색계도 또한 다시 그러하나니
일체의 남음이 있는 것 버리고
남음이 없는 적멸(寂滅)을 얻으시고
이 몸의 화합한 경계에 있어
길이 다하여 남음 없이 깨달으신
저 삼약삼부타께서는
근심 없고 때[垢]를 여윈 글귀를 말하시네.
존자 아아난다가 이 경을 말해 마치자 고시타 장자는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절하고 떠나갔다.
462. 삼계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국 고시타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고시타 장자는 존자 아아난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존자 아아난다에게 사뢰었다.
"말씀하시는 바 갖가지 경계란 어떤 것을 갖가지의 경계라 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고시타 장자에게 말하였다.
"三 계가 있다. 색계, 무색계, 멸계(滅界)로서 이것을 三 계라 한다."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색계의 중생으로서
무색계에 머무르면서
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돌아와 다시 모든 몸을 받느니라.
만일 저 색계를 끊고
무색계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멸계에서 마음이 해탈하면
길이 나고 죽음을 떠나느니라.
존자 아아난다가 이 경을 말해 마치자, 고시타 장자는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절하고 떠나갔다.
463. 삼계경 3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국 고시타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고시타 장자는 존자 아아난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존자 아아난다에게 사뢰었다.
"말씀하시는 바 갖가지 경계란 어떤 것을 갖가지 경계라 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고시타 장자에게 말하였다.
"이른바 세 가지 출계(出界)이니 어떤 것이 셋이라 하는가. 이른바 욕계에서 나와 색계로 가고, 색계에서 나와 무색계로 가며, 일체의 모든 행과 일체의 사상(思想)이 멸한 계로서 이것을 세 출계(出界)란 한다."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욕계에서 나와
색계를 뛰어넘은 줄 알고
일체의 행이 고요하고 멸하고
부지런히 바른 방편을 닦아
일체 애욕을 끊어 버리면
일체의 행이 멸해 다하여
일체의 남음이 있음으로써
존재로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알리.
존자 아아난다가 이 경을 말해 마치자, 고시타 장자는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절하고 떠나갔다.
464. 동법경(同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국의 고시타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상좌(上座)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상좌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나아가 공경하고 인사하고, 인사한 뒤에는 한 쪽에 물러앉아 상좌들에게 물도, 상좌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만일 비구로서 빈곳이나 나무 밑, 고요한 방에서 생각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어떤 법으로서 알뜰히 생각하여야 합니까."
상좌는 대답하였다.
"존자 아아난다여, 빈곳이나 나무 밑, 한가한 방에서 생각하려는 사람은 마땅히 두 법으로써 알뜰히 생각하여야 하나니, 이른바 그침[止]과 관찰[觀]입니다."
존자 아아난다는 다시 상좌에게 물었다.
"그침을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힌 뒤에는 마땅히 무엇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관찰을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힌 뒤에는 마땅히 무엇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상좌는 대답하였다.
"존자 아아난다여, 그침을 닦아 익히면 마지막에는 관찰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관찰을 익힌 뒤에도 또한 그침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그침과 관찰을 함께 닦아 모든 해탈의 경계를 얻는 것입니다."
아아난다는 다시 상좌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모든 해탈의 경계입니까."
상좌는 대답하였다.
"존자 아아난다여, 만일 단계(斷界), 무욕계(無欲界), 멸계(滅界)이면 이것을 모든 해탈의 경계라고 합니다."
존자 아아난다는 다시 상좌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단계이며...... 내지, 멸계입니까."
상좌는 대답하였다.
"존자 아아난다여, 일체의 행을 끊으면 이것을 단계라 하고, 애욕을 끊어 없애면 이것을 무욕계라고 하며, 일체의 행이 멸하면 이것을 멸계라 합니다."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상좌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였다.
다시 五백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공경하고 인사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五백 비구들에게 사뢰었다.
"만일 비구로서 빈곳이나 나무 밑, 한가한 방에서 생각하려 할 때에는 마땅히 어떤 법으로서 알뜰히 생각하여야 합니까."
때에 五백 비구들은 존자 아아난다에게 대답하였다.
"마땅히 二 법으로써 알뜰히 생각하여야 합니다....내지, 멸계입니다."
.......(상좌의 말한 것과 같다)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五맥 비구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였다.
다시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린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로서 빈곳이나 나무 밑, 한가한 방에서 생각하려고 하면 마땅히 어떤 법으로서 알뜰히 생각하여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비구로서 빈곳이나 나무 밑, 한가한 방에서 생각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二 법으로써 알뜰히 생각하여야 하느니라.....내지 멸계이니라."
.......(五백 비구가 말한 것과 같다.)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스승님과 모든 제자들은 다 같은 법, 같은 글귀, 같은 이치, 같은 맛이옵니다. 저는 이제 상좌들에게 나아가 상좌라고 부르는 이에게 이와 같이 물었더니, 또한 이와 같은 이치, 이와 같은 글귀, 이와 같은 맛으로 제게 대답하였사온데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나이다. 제가 다시 五백 비구들에게 가서 또한 이와 같은 이치, 이와 같은 글귀, 이와 같은 맛으로 물었더니, 그 五백 비구들도 또한 이와 같은 이치, 이와 같은 글귀, 이와 같은 맛으로, 이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대답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는 일체 같은 법, 같은 이치, 같은 글귀, 같은 맛인 것을 알아야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그 상좌가 어떤 비구인 줄 아느냐."
아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알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그 상좌는 곧 아라한이니라.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고 무거운 짐을 이미 버리었으며 바른 지혜로 마음이 잘 해탈하였느니라. 그 五백 비구들도 또한 다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존자 아아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5. 착사경(着使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라아훌라[羅 羅]는 세존이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이 내 식신(識身)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 <나>라는 교만, 메이어 집착함, 부림[舍]이 없게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라아훌라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라아훌라여, 만일 비구로서 모든 땅의 경계에 대하여 혹은 과거거나 혹은 미래거나 혹은 현재거나, 혹은 안이거나 혹은 밖이거나, 혹은 굵거나 혹은 가늘거나, 혹은 좋거나 혹은 더럽거나, 혹은 멀거나 혹은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가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나>와 <다른 나>의 합한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알고, 물의 경계, 불의 경계, 바람의 경계, 허공의 경계, 식(識)의 경계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으며, 라아훌라여, 비구로서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야, 내 이 식신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 <나>라는 교만, 매이어 집착함, 부림이 없게 될 것이다.
라아훌라여, 만일 비구로서 이 식신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 <나>라는 교만, 매이어 집착함, 부림이 없으면, 이것을 애욕의 결박의 모든 맺음[結]을 끊고 모든 애욕의 바른 교만을 끊고 밝게 알아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존자 라아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6. 촉인경(觸因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라아훌라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이 식신(識身)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 <나>라는 교만, 메이어 집착함, 부림이 없게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라아훌라에게 말씀하시었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로움의 느낌, 즐거움의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라. 이 세 가지 느낌은 무엇이 인(因)이요 무엇의 모임이며, 무엇의 남[生]이며 무엇이 변한 것인가. 이른바 이 세 가지 느낌은 닿임이 인이요 닿임의 모임이며, 닿임의 남이요 닿임의 변한 것으로서, 이러저러한 닿임이 인이 되어 이러 저러한 느낌이 생기는 것이니라.
만일 이러저러한 닿임이 멸하면 이러저러한 느낌도 또한 멸하여 그치고, 맑고 시원하며 없어지나니, 이와 같이 알고 보면, 내 이 식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 <나>라는 교만, 매이어 집착함, 부림이 없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존자 라아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7. 검자경(劒刺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라아훌라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이 식신과 바깥 경계의 모든 모양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 <나>라는 교만, 메이어 집착함, 부림이 없게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라아훌라에게 말씀하시었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로움의 느낌, 즐거움의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라. 즐거움의 느낌을 관찰하여서는 괴로움이라는 생각을 짓고, 괴로움의 느낌을 관찰하여서는 칼에 찔린다는 생각을 지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관찰하여서는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어야 한다. 만일 그 비구가 즐거움의 느낌을 관찰하여서는 괴로움이라는 생각을 짓고, 괴로움의 느낌을 관찰하여서는 칼에 찔린다는 생각을 지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관찰하여서는 덧없어 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으면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즐거움을 관찰하여 괴로움이라 생각하고
괴로움의 느낌은 칼에 찔림 같이 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에 대하여는
덧없어 멸한다고 생각 닦으면
그는 곧 비구로서 바른 소견을
성취한 사람이라 불려지나니
고요하고 멸하고 편하고 즐거운 길
가장 마지막의 그 끝에 머무르며
모든 번뇌 영원히 아주 여의어
그 많은 악마 군사 무찔러 항복 받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존자 라아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8. 삼수경(三受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라아훌라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이 식신과 바깥 경계의 일체 모양에서 <나>와 <내 것>이라는 소견, <나>라는 교만, 메이어 집착함, 부림이 없게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라아훌라에게 말씀하시었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로움의 느낌, 즐거움의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라. 즐거움의 느낌을 관찰하는 것은 즐거운 느낌의 탐하는 부림[使]를 끊기 위하기 때문에 <내 것>에 대하여 범행을 닦고, 괴로움의 느낌의 성내는 부림을 끊기 위하기 때문에 <내 것>에 대하여 범행을 닦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어리석은 부림을 끊기 위하기 때문에 <내 것>에 대하여 범행을 닦느니라.
만일 비구로서, 즐거운 느낌의 탐하는 부림을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로운 느낌의 성내는 부림을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어리석은 부림을 이미 끊고 이미 알면, 이것을 비구가 애욕의 결박을 끊어 없애고 모든 맺음과 교만을 버리고 밝게 알아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즐거움의 느낌이 느껴질 때에
그 즐거움의 느낌을 알지 못하면
탐욕의 사자(使者)의 부림을 받아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네.
괴로움의 느낌이 느껴질 때에
그 괴로움의 느낌을 알지 못하면
성냄의 사자의 부림을 받아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바르게 깨친 이의 말한 것처럼
자세히 보아 살피지 않으면
마침내 저 언덕에 건너지 못하리라.
비구들아, 부지런히 꾸준히 나아가
그것을 바로 알아 흔들리지 말라.
그러한 일체 느낌의 참다운 모양
슬기로운 사람은 능히 깨달아 아네.
그 모든 느낌들을 깨달아 알면
현세에 있어서 모든 번뇌[漏]가 다하고
밝고 지혜로운 사람 목숨 끝난 뒤에도
중생의 분수 속에 떨어지지 않나니
중생의 그 분수를 이미 끊어 버리면
영원히 <반열반>에 머물러 살리.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존자 라아훌라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9. 심험경(深險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큰 바다의 깊고 험하다는 것은 세간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깊고 험한 것은 성인의 법률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깊고 험한 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큰물이 쌓이고 모인 분수일 뿐이다. 만일 몸을 좇아 모든 느낌이 생기어 뭇 괴로움이 들이닥치면 혹은 번민하고 혹은 죽나니, 이것을 큰 바다의 지극히 깊고 험한 곳이라 하느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이 몸에서 모든 느낌을 내어 고통이 들이닥치면 혹은 번민하고 혹은 죽으며, 근심하고 슬퍼하며, 원망하고 눈물 흘리며, 울고 부르짖으며, 마음이 어지러워 미친증이 일어나, 언제나 잠기고 빠져 있고 그치거나 쉴 곳이 없느니라.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몸에서 모든 느낌을 내어 고통이 들이닥치어 혹은 번민하고 혹은 죽더라도, 근심하고 슬퍼하거나 울고 부르짖거나 마음이 어지러워 미치지 않으며, 나고 죽음에 빠지지 않아서 그치고 쉬는 곳을 얻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몸에 모든 괴로운 느낌을 내어
그것이 핍박하여 죽게까지 될 때에
근심하고 슬퍼하여 쉬고 참지 못하여
울고 부르짖으며 미친증 일어나면
마음에는 스스로 장애가 생겨
온갖 괴로움을 더욱 더 불러 모아
영원히 나고 죽는 바다에 빠져
편안히 쉬는 곳을 알지 못하리.
능히 이 몸의 모든 느낌을 버리어
몸에서 생기는 괴로움과 번민이
다급하게 들이닥쳐 죽게까지 되더라도
눈물 흘려 울거나 부르짖지 않으며
능히 스스로 온갖 괴로움 참으면
마음에는 장애가 생기지 않아
뭇 괴로움 더욱 불러모으지 않고
나고 죽음에 빠져 잠기지 않아
영원히 안온한 곳 얻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0. 전경(箭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로움의 느낌, 즐거움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낸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도 또한 괴로움의 느낌, 즐거움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낸다. 모든 비구들이여, 무릇 성인(聖人)은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依]이십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노니 널리 설명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들은 뒤에는 마땅히 받아 받들어 행할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리석은 무식한 범부들은 몸이 부딪쳐 모든 느낌이 생기어 고통이 들이닥치어 목숨을 빼앗기게 까지 되면, 근심하고 슬퍼하며, 눈물 흘려 울고 원망하며, 부르짖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모든 비구들이여,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몸이 부딪쳐 모든 느낌이 생기어 모든 고통을 더하여 목숨을 빼앗기게까지 되면 근심하고 원망하며, 울고 부르짖으며, 마음에 미친증이 생기느니라. 그 때에 있어서는 두 가지 느낌을 더하고 자라나게 하나니, 혹은 몸의 느낌이요 혹은 마음의 느낌이니라.
비유하면 사람이 몸에 두 개의 독한 화살을 맞으면 지극히 고통 하나니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의 두 가지 느낌을 더하고 자라게 하여 지극히 고통 한다. 무슨 까닭인가. 그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밝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五 욕(欲)에 대하여 즐거운 느낌의 부딪침이 생기어 五 욕의 즐거운 느낌을 받기 때문이니, 五 욕의 즐거움을 받기 때문에 탐욕의 사자(使者)의 부림[使]을 받느니라. 괴로운 느낌에 부딪치기 때문에 곧 성을 내며, 성을 내기 때문에 성냄의 사자의 부림을 받느니라. 이 두 가지 느낌에 대하여 혹은 그 모임, 혹은 멸함, 혹은 맛, 혹은 근심, 혹은 떠남을 참다이 알지 못하나니, 참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기어 어리석음의 사자의 부림을 받느니라.
즐거움의 느낌에 매이어 마침내 떠나지 못하고, 괴로움의 느낌에 매이어 마침내 떠나지 못한다. 어떤 매임인가. 이른바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매이게 되고,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 매이게 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몸이 부딪쳐 괴로운 느낌이 생기어 큰 고통이 들이닥치어 목숨을 빼앗기게까지 되더라도 근심, 슬픔, 원망, 울음, 부르짖음, 마음이 어지러워 미친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 때에 있어서는 이른바 몸의 느낌인 한 가지 느낌만 생기고 마음의 느낌은 생기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사람이 하나의 독한 화살을 받아도 둘째의 독한 화살은 받지 않는 것과 같이, 그 때에 있어서는 이른바 몸의 느낌인 한 가지 느낌을 생기고 마음의 느낌은 생기지 않느니라. 즐거운 느낌의 부딪침이 되어도 탐욕의 즐거움에 물들지 않고, 탐욕의 즐거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그 즐거운 느낌에 있어서 탐욕의 사자에 부리어지지 않으며 그 두 사자에 대한 모임 멸함, 맛, 근심, 떠남을 참다이 아나니, 참다이 알기 때문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인 어리석음에 사자에 부리어지지 않느니라.
그 즐거움의 느낌에서 해탈하여 매이지 않고, 괴로움의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서 해탈하여 매이지 않는다. 무엇에 매이지 않는가. 이른바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매이지 않고, 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 매이지 않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많이 아는 이도 괴로움과 즐거움을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 아니네.
그는 차라리 저 범부들보다
그 실은 더 많이 깨달아 아느니라.
즐거움을 받아도 함부로 놀지 않고
괴로움에 부딪쳐도 근심 더하지 않고
괴로움과 즐거움 둘을 함께 버리어
따르지도 않으며 어기지도 않느니라.
비구들아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바른 지혜를 가져 휩쓸려지지 말라.
이 일체의 느낌의 참 모양을
슬기로운 사람은 밝게 아나니.
모든 느낌의 참 모양 밝게 알기 때문에
현세에 있어서도 모든 번뇌를 다하고
영원히 <반열반>에 머물러 사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1. 허공경(虛空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유하면 공중에 미친 바람이 갑자기 일어 사방에서 불어오면 티끌이 있는 바람, 티끌이 없는 바람, 비스바[毘濕波] 바람, 베람바[ 嵐婆] 바람, 엷은 바람, 두터운 바람......내지, 바람 바퀴에서 바람이 일어난 것과 같이, 몸 안의 느낌의 바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갖가지 느낌의 바람이 일어난다.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즐거운 몸의 느낌, 괴로운 몸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의 느낌, 즐거운 마음의 느낌, 괴로운 마음의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마음의 느낌, 즐거운 음식의 느낌, 괴로운 음식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음식의 느낌, 즐거움이 없는 음식의 느낌, 괴로움이 없는 음식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 없는 음식의 느낌, 즐거운 탐욕의 느낌, 괴로운 탐욕의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탐욕의 느낌, 즐거운 출요(出要)의 느낌, 괴로운 출요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출요의 느낌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비유하면 허공에서
갖가지 미친 바람이 이는 것 같네.
동, 서, 남, 북에서 바람이 불고
四유(維)에서도 또한 그와 같나니
티끌이 있는 바람, 티끌이 없는 바람....
내지, 바람 바퀴에서 일어나는 바람.
그와 같이 이 몸 가운데에서
모든 느낌의 일어남도 또한 그러하나니
혹은 즐겁고 혹은 괴로운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음식이 있고 음식이 없는 느낌
탐착하고 탐착하지 않는 느낌이니라.
비구들아, 부지런히 방편으로써
바른 지혜를 가져 흔들리지 말라.
이 일체의 느낌에 대하여
슬기로운 사람은 밝게 아나니
이 모든 느낌을 밝게 알기 때문에
현세에서는 모든 번뇌가 다하고
죽은 뒤에는 수(數)에 떨어지지 않아서
영원히 <반열반>에 머물러 사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2. 객사경(客舍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유하면 객사(客舍)에 온갖 사람이 머무르는데 혹은 찰체리(刹帝利), 바라문, 장자, 거사, 야인(野人), 사냥꾼, 계(戒)를 가지는 사람, 계를 범한 사람, 속인, 중들이 모두 그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몸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갖가지 느낌이 생긴다.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즐거운 몸의 느낌, 괴로운 몸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의 느낌, 즐거운 마음의 느낌, 괴로운 마음의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마음의 느낌, 즐거운 음식의 느낌, 괴로운 음식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음식의 느낌, 즐거움이 없는 음식의 느낌, 괴로움이 없는 음식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 없는 음식의 느낌, 즐거운 탐욕의 느낌, 괴로운 탐욕의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탐욕의 느낌, 즐거운 출요의 느낌, 괴로운 출요의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출요의 느낌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비유하면 객사 안에는
갖가지 사람이 머무르는 것 같네.
찰제리, 바라문,
장자, 거사들
전타라( 陀羅), 야인
계를 가진 이, 계를 범한 이
속인과 중
이와 같은 갖가지니라.
이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갖가지 모든 느낌이 생겨나나니
혹은 즐겁고 혹은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음식이 있고 느낌, 음식이 없는 느낌
탐착하고 탐착하지 않는 느낌이니라.
비구들아, 부지런히 방편으로써
바른 지혜를 가져 흔들리지 말라.
이 일체의 느낌에 대하여
슬기로운 사람은 밝게 아나니
이 모든 느낌을 밝게 알기 때문에
현세에 있어서 모든 번뇌 다하고
죽은 뒤에는 수(數)에 떨어지지 않나니
영원히 <반열반>에 머물러 사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3. 선경(禪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비구는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선사(禪思) 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세존께서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었다. 또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고.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요한 곳에서 선사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나이다. '세존께서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었다. 또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시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고 하였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모든 지어감은 덧없는 것이어서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 아느니라.
그러므로 느낌은 다 괴롭다 말하나니
바르게 깨친 이의 아시는 것이니라.
비구여, 부지런히 방편으로써
바른 지혜를 가져 흔들리지 말라.
이 일체의 느낌에 대하여
슬기로운 사람은 밝게 아나니
일체의 느낌을 다 알고 나면
현세에 있어서 모든 번뇌 다하고
죽은 뒤에는 수(數)에 떨어지지 않아서
영원히 <반열반>에 머물러 사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4. 지식경(止息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선사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세존께서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었다. 또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고.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선정에서 일어나 세존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선사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나이다. '세존께서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었다. 또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시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고 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일체의 지어감은 덧없고 일체의 지어감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다시 아아난다여, 나는 모든 지어감은 점차로 고요해지고 멸하고, 모든 지어감은 점차로 그치고 쉬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느낌은 어떻게 점차로 고요해지고 멸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나이까."
"초선(初禪)을 바르게 받을 때에 말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제 二선을 바르게 받을 때에 감각과 관찰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제 三선을 바르게 받을 때에 기쁜 마음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제 四선을 바르게 받을 때에 드나드는 숨길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공입처(空入處)를 바르게 받을 때에 빛깔이라는 생각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식입처(識入處)를 바르게 받을 때에 공입처라는 생각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를 바르게 받을 대에 식입처라는 생각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를 바르게 받을 때에 무소유입처라는 생각이 고요해지고 멸하며, 상수멸(想受滅)을 바르게 받을 때에 상수(想受)가 고요해지고 멸하나니, 이것을 점차로 모든 행이 고요해지고 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점차로 모든 지어감이 그치고 쉬나이까."
"초선을 바르게 받을 때에 말이 그치고 쉬며, 제 二선을 바르게 받을 때에 감각과 관찰이 그치고 쉬며, 제 三선을 바르게 받을 때에 기쁜 마음이 그치고 쉬며, 제 四선을 바르게 받을 때에 드나드는 숨길이 그치고 쉬며, 공입처를 바르게 받을 때에 빛깔이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식입처를 바르게 받을 때에 공입처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무소유입처를 바르게 받을 때에 식입처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비상비비상입처를 바르게 받을 때에 무소유입처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며, 상수멸을 바르게 받을 때에 상수라는 생각이 그치고 쉬나니, 이것을 점차로 모든 지어감이 그치고 쉬는 것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것을 점차로 모든 지어감이 그치고 쉬는 것이라 하나이까."
"다시 훌륭한 그침과 쉼, 기특한 그침과 쉼, 위되는 그침과 쉼, 위없는 그침과 쉼이 있나니, 이와 같은 그침과 쉼은 다른 그침과 쉼으로서 이보다 더 위되는 것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훌륭한 그침과 쉼, 기특한 그침과 쉼, 위되는 그침과 쉼, 위없는 그침과 쉼이 있어서, 모든 다른 그침과 쉼으로서 이보다 더 위되는 것이 없는 것이라 하나이까."
"탐욕 하는 마음에서 해탈하기를 원하지 않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에서 해탈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이것을 훌륭한 그침과 쉼, 기특한 그침과 쉼, 위되는 그침과 쉼, 위없는 그침과 쉼이 있어서, 어떤 다른 그침과 쉼으로서도 이보다 더 위되는 것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존자 아아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5. 선지경(先智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파시이[毘婆尸] 여래는 아직 부처를 이루기 전에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선사하고 생각하다가 이와 같이 관찰하고 모든 느낌을 관찰하였다. 즉 '어떤 것을 느낌이라 하며, 어떤 것이 느낌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멸함인가. 어떤 것이 느낌이 모이는 길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멸하는 길인가.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근심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떠남인가.'고 이와 같이 관찰하였다. 그리하여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이 있으며, 닿임의 모임은 곧 느낌의 모임이요, 닿임의 멸함은 곧 느낌의 멸함이다. 만일 느낌을 사랑하고 즐겨 하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고 굳이 머무르면 이것을 느낌이 모이는 길이라 하며, 만일 느낌을 사랑하거나 즐겨 하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거나 굳이 머무르지 않으면 이것을 느낌의 멸하는 길이라 한다. 만일 느낌의 인연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생기면 이것을 느낌의 맛이라 하고, 만일 느낌이 덧없어서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근심이라 하며, 만일 느낌에 대하여 욕탐을 끊고 욕탐을 뛰어넘으면 이것을 느낌을 떠난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비파시이 부처님과 같이 시키이 부처님, 벳사부 부처님, 카쿠산도 부처님, 코나아가마노 부처님, 카아샤파 부처님과 나 석가모니 부처가 아직 부처를 이루기 전에 모든 느낌을 생각하여 관찰한 것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476. 선사경(禪思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비구는 혼자 한 고요한 곳에서 선사하다가 이와 같이 모든 느낌을 관찰하였다. 즉 '어떤 것이 느낌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멸함인가. 어떤 것이 느낌이 모이는 길이며 어떤 것이 느낌이 멸하는 길인가.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떠남인가'고. 때에 그 비구는 선(禪)에서 깨어나 세존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나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요한 곳에서 선사하다가 모든 느낌을 관찰하였나이다. '어떤 것을 느낌이라고 하고 어떤 것이 느낌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멸함인가. 어떤 것이 느낌이 모이는 길이며 어떤 것이 느낌이 멸하는 길인가.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떠남인가'고 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이 있다. 닿임의 모임이 곧 느낌의 모임이요 닿임의 멸함이 곧 느낌의 멸함이다.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고 즐겨 하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고 굳이 머무르면 이것을 느낌의 모이는 길이라 하고,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거나 즐겨 하며 찬탄하지 않고, 물들어 집착하거나 굳이 머무르지 않으면 이것을 느낌의 멸하는 길이라 한다. 만일 느낌의 인연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면 이것을 느낌의 맛이라 하고, 만일 느낌이 덧없어서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근심이라 하며, 만일 느낌에 대하여 욕탐을 끊고 욕탐을 뛰어넘으면 이것을 느낌의 떠남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7. 아난소문경(阿難所問經)
어떤 비구의 물은 경(經)과 같이 <존자 아아난다의 물음 경>도 또한 이와 같다.
478. 비구경(比丘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어떤 것을 느낌이라 하고 어떤 것이 느낌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멸함인가. 어떤 것이 느낌의 모이는 길이며 어떤 것이 느낌의 멸하는 길인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이십니다. 장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노니 널리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이 그것을 들은 뒤에는 마땅히 받들어 행하겠나이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에게 설명하리라."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라. 닿임의 모임은 곧 느낌의 모임이며, 닿임의 멸함은 곧 느낌의 멸함이다.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고 즐겨 하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고 굳이 머무르면 이것을 느낌의 모임의 길이라 하고,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거나 즐겨 하고 찬탄하지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거나 굳이 머무르지 안으면 이것을 느낌의 멸하는 길이라 한다. 만일 느낌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면 이것을 느낌의 맛이라 하고, 만일 느낌이 덧없어서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근심이라 하며, 만일 느낌에 대하여 욕탐을 끊고 욕탐을 뛰어넘으면 이것을 느낌의 떠남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9. 해탈경(解脫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만일 내가 모든 느낌에 대하여 참다이 알지 못하고, 느낌의 모임, 느낌의 멸함, 느낌의 모이는 길, 느낌의 멸하는 길, 느낌의 맛, 느낌의 근심, 느낌의 떠남을 참다이 알지 못하였으면, 나는 모든 하늘, 세간, 악마, 범(梵), 사문, 바라문, 하늘 사람의 무리들 가운데서 해탈하고 나와서 떠나고 모든 뒤바뀜에서 해탈하지 못하였을 것이요, 또한 아누다라삼약삼보리가 아닐 것이다.
나는 모든 느낌에 대하여 느낌의 모임, 느낌의 멸함, 느낌의 모이는 길, 느낌의 멸하는 길, 느낌의 맛, 느낌의 근심, 느낌의 떠남을 참다이 알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하늘, 세간, 악마, 범, 사문, 바라문, 하늘 사람 무리들 가운데서 벗어나고 나왔으며 모든 뒤바뀜을 벗어났고, 아누다라삼약삼보리를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0. 사문바라문경(沙門婆羅門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모든 느낌에 대하여 참다이 알지 못하고, 느낌의 모임, 느낌의 멸함, 느낌의 모이는 길, 느낌의 멸하는 길, 느낌의 맛, 느낌의 근심, 느낌의 떠남을 참다이 알지 못하면,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이 아니며, 사문답지 않고 바라문답지 않으며, 사문의 도리가 아니요 바라문의 도리가 아니니, 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알지 못하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모든 느낌에 대하여 참다이 알고, 느낌의 모임, 느낌의 멸함, 느낌의 모이는 길, 느낌의 멸하는 길, 느낌의 맛, 느낌의 근심, 느낌의 떠남을 참다이 알면, 그는 곧 사문의 사문이요 바라문의 바라문이며, 사문다웁고 바라문다우며, 사문의 도리요 바라문의 도리이니라. 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사문과 사문이 아닌 것>과 같이, <사문의 분수가 아닌 것>도 또한 그와 같다.
481. 일사능가라경(壹奢能伽羅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이챠아낭갈라[壹奢能伽羅]국의 이챠아낭갈라 숲 속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 가운데서 반 달 동안 좌선(坐禪)하고자 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다시는 노닐지 말라. 다만 밥을 빌기와 포살(布薩)만은 제외한다."
곧 좌선을 시작하시었는데 오직 밥을 빌기와 포살만을 제외하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반달을 지내신 뒤에 대중 앞에 방석을 펴고 앉으시어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처음으로 부처가 되었을 때에 생각하던 바 선법(禪法)의 한 부분으로서 이제 반 달 동안 생각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모든 중생들의 느낌이 생기는 것은 다 인연이 있다.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인연인가. 욕(欲)이 그 인연이요, 각(覺)이 그 인연이며, 촉(觸)이 그 인연이다'고.
모든 비구들이여, 욕이 고요하고 멸하지 않고, 각이 고요하고 멸하지 않고, 촉이 고요하고 멸하지 않으면, 그 인연 때문에 중생들에게는 느낌이 생기나니, 고요하고 멸하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느니라. 그 욕은 고요하고 멸하였더라도 각이 고요하고 멸하지 않고 촉이 고요하고 멸하지 않으면, 그 인연으로써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나니, 고요하고 멸하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느니라. 그 욕은 고요하고 멸하고, 각도 고요하고 멸하였더라도, 촉이 고요하고 멸하지 않으면 그 인연으로써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나니, 고요하고 멸하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느니라. 그 용기 고요하고 멸하고, 각이 고요하고 멸하고, 욕이 고요하고 멸하더라도, 그 인연으로써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나니 그 고요하고 멸하는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느니라.
사특한 소견의 인연으로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며, 사특한 소견이 고요하고 멸하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긴다. 사특한 뜻, 사특한 말, 하특한 업, 사특한 명(命), 사특한 방편, 사특한 생각, 사특한 정(定), 사특한 해탈, 사특한 지혜의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며, 사특한 지혜가 고요하고 멸하지 않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느니라. 바른 소견의 인연으로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며, 바른 소견이 고요하고 멸하는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긴다.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명,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정, 바른 해탈, 바른 지혜의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며, 바른 지혜가 고요하고 멸하는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느니라. 만일 그가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며,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고 하면, 그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며, 그것이 고요하고 멸한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나니, 이것을 고요하고 멸하지 않은 인연으로 중생에게는 느낌이 생기고 고요하고 멸한 인연 때문에 느낌이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이와 같은 연(緣)과 연(緣), 연과 연의 모임, 연과 연의 멸함, 연과 연의 모이는 길, 연과 연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지 못하면, 그는 사문의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의 바라문이 아니며, 사문의 사문답지 않고 바라문의 바라문답지 않으며, 사문의 도리가 아니요 바라문의 도리가 아니다. 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이 연과 연, 연과 연의 모임, 연과 연의 멸함, 연과 연의 모이는 길, 연과 연의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면, 마땅히 알라. 그는 사문의 사문이요 바라문의 바라문이며, 사문다웁고 바라문다우며, 사문의 도리와 바라문의 도리로써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스스로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2. 희락경(喜樂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여름 안거(安居) 때에 급고독(結孤獨) 장자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보여 가르치고 기쁘게 하시었다. 갖가지로 설법하시어 보여 가르치고 기쁘게 하시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오직 원하옵노니 세존이시여, 여러 대중들과 함께 三 개월 동안 저에게서 의복, 음식과 병에 따라는 탕약을 받아 주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시었다. 때에 급고독 장자는 부처님께서 잠자코 청을 받으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三 개월이 지난 뒤에 그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 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나 낮았다. 부처님께서는 급고독 장자에게 말씀하시었다.
"착하다! 장자여, 三 개월 동안 의복, 음식과 병에 따르는 탕약을 공양하였다. 너는 위의 길을 장엄하고 깨끗이 다스림으로서 미래 세상에서는 반드시 안락한 과보(果報)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잠자코 그 법을 즐겨 받지 말라. 너는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때때로 기쁨과 즐거움을 멀리 떠나기를 배워서 완전히 몸으로 증득하라."
때에 급고독 장자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기이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급고독 장자를 위해 잘 설하시고 급고독 장자를 격려하여 말씀하셨나이다. '너는 三 개월 동안 두루 갖추어 여러 대중에게 공양하여 위의 길을 깨끗이 다스렸다. 미래 세상에서는 반드시 안락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잠자코 그 법을 즐겨 해 집착하지 말라. 너는 마땅히 때때로 기쁨과 즐거움을 멀리 떠나기를 배워서 완전히 몸으로 증득하라'고.
세존이시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을 멀리 떠나기를 배워 완전히 몸으로 증득하게 하면 그들은 五 법을 멀리 떠나 五 법을 닦아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五 법을 멀리 떠나는가. 이른바 욕심에서 크고 자라는 기쁨을 끊고, 욕심에서 크고 자라는 근심을 끊으며, 욕심에서 크고 자라는 버림[捨]을 끊고, 착하지 않은 데서 크고 자라는 기쁨을 끊고, 착하지 않은 데서 크고 자라는 근심을 끊는 것이니, 이것을 五 법을 멀리 떠나는 것이라 하나이다. 어떻게 五 법을 닦아 만족하는가. 이른바 따라서 기뻐함, 즐겨 하고 기뻐함, 편안히 쉼, 즐겨 함, 한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샤아리풋트라에게 말씀하시었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만일 거룩한 제자로서 기쁨과 즐거움을 멀리 떠나기를 공부하여 완전히 몸으로 증득하면 五 법을 멀리 떠나고 五 법을 닦아 만족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3. 무식락경(無食樂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음식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음식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으며, 음식도 없고 음식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음식을 즐겨 하는 사람과 음식의 즐김이 없는 사람이 있으며, 음식도 없고 음식의 즐김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음식을 버리는 사람이 있고, 음식의 버림이 없는 사람이 있으며, 음식도 없고 음식의 버림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음식에서 해탈한 사람이 있고, 음식의 해탈이 없는 사람이 있으며, 음식도 없고 음식의 해탈도 없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것이 음식의 생각인가. 이른바 五 욕(欲)의 인연으로 생기는 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음식의 생각이 없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욕심을 떠나고 욕심의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서, 감각도 있고 관찰도 있어서, 욕심을 떠나는 데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초선(初禪)에서 완전히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의 생각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음식도 없고 음식의 생각도 없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의 있는 감각과 잇는 관찰이 쉬고 안이 깨끗하고 한 마음으로서, 감각도 없고 관찰도 없어서 정(定)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제 二선을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없고 음식의 생각도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음식의 즐김이 있는 것인가. 이른바 五 욕의 인연으로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느니라. 이것을 음식의 즐김이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음식의 즐김이 없는 것인가. 이른바 있는 감각과 잇는 관찰을 쉬고 안이 깨끗하고 한 마음으로서 감각도 없고 관찰도 없어서 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의 즐김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음식도 없고 음식의 즐김도 없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기쁨과 탐욕을 떠나 버리는 마음에 머무르는 것이니,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안락하게, 저 성인(聖人)의 말씀하신 버림[捨]에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없고 음식의 즐김도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음식의 버림이 있는 것인가. 이른바 五 욕의 인연으로 버림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의 버림이 있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음식의 버림이 없는 것인가. 이른바 저 비구가 탐욕과 기쁨과 버림의 마음을 떠나서 머물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안락하게 저 성인의 말씀하신 버림에 머물러, 제 三선을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의 버림이 없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음식도 없고 음식의 버림도 없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괴로움도 떠나고 즐거움도 쉬어, 근심과 기쁨은 먼저 이미 떠나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서, 버리어 깨끗한 생각과 한 마음으로서 제 四선을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없고 음식의 버림도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음식의 해탈이 있는 것인가. 이른바 물질이 지어감을 함께 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음식도 없고 음식의 해탈도 없는 것인가. 이른바 무색(無色)이 지어감을 함께 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음식도 없고 음식의 해탈도 없는 것인가. 이른바 저 비구가 탐욕에 물들지 않아서 해탈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에 마음이 물들지 않아서 해탈하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없고 음식의 해탈도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4. 발다라경(跋多羅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밧다지[跋陀羅] 비구와 존자 아아난다도 함께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존자 밧다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섰다. 때에 아아난다는 밧다지 비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봄[見]의 제 一이라 합니까. 어떤 것이 들음[聞]의 제 一이며, 어떤 것이 즐거움의 제 一입니까. 어떤 것이 생각[想]의 제 一이며, 어떤 것이 유(有)의 제 一입니까."
존자 밧다지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말하였다.
"범천(梵天)이 있어서 자재(自在)로이 지어내고 변화하기를 뜻대로 하여 세간의 아버지가 됩니다. 만일 그 범천을 보면 이것을 봄의 제 一이라 할 것입니다. 아아난다여, 어떤 중생은 욕심을 떠나는 데서 기쁨과 즐거움을 내어 곳곳에서 윤택(潤澤)하고 곳곳에서 즐거워서 온 몸에 가득 차지 않은 곳이 없나니, 이른바 욕심을 떠나는 데서 기쁨과 즐거움을 냅니다. 그는 삼매(三昧)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면서 두루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지극히 고요한 사람은 욕심을 떠나는 데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고, 지극히 즐거운 사람은 욕심을 떠나는 데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긴다'고.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으면 이것을 들음의 제 一이라 합니다.
다시 아아난다여, 어떤 중생은 이 몸에 있어서 기쁨을 떠나는 즐거움이 윤택하여, 곳곳에서 윤택하고 즐거움이 충만하고 온 몸에 충만하지 않은 곳이 없나니, 이른바 기쁨을 떠나는 즐거움이니, 이것을 즐거움의 제 一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생각의 제 一인가. 아아난다여, 어떤 중생은 일체의 식입처(識入處)를 건너 아무 것도 없는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를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려고 하나니, 만일 그러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것을 생각의 제 一이라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유(有)의 제 一인가. 다시 아아난다여, 어떤 중생은 무소유입처를 건너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를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려고 하나니, 만일 그러한 유(有)를 일으킨다면 이것을 유의 제 一이라 할 것입니다."
존자 아아난다는 존자 밧다지 비구에게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또한 그들과 같거니,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나는 방편으로서 당신에게 물은 것입니다. 당신은 자세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을 위해 설명하리라. 그 관찰하는 바와 같이 차례로 모든 번뇌[漏]를 다하면 이것을 봄의 제 一이라 합니다. 그 묻는 바와 같이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하면 이것을 들음의 제 一이라 합니다. 생기는 바의 즐거움과 같이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하면 이것을 즐거움의 제 一이라 합니다. 그 생각하는 바와 같이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하면 이것을 생각의 제 一이라 합니다. 참다이 관찰하여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하면 이것을 유의 제 一이라 합니다."
때에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설해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485. 우다이경(優陀夷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빔비사알라[頻婆沙羅] 왕은 존자 웃다아이[優陀夷]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한 뒤에 한 쪽에 물러 앉았다. 때에 빔비사알라 왕은 존자 웃다아이에게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어떻게 모든 느낌을 말씀하십니까."
웃다아이는 말하였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십니다.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빔비사알라 왕은 존자 웃다아이에게 말하였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세존께서는 세 가지 느낌 즉, 즐거운 느낌, 괴로움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말씀하신다'고. 바로 두 느낌 즉,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면 그것은 곧 적멸(寂滅)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번 말하였다. 그리하여 웃다아이는 왕을 위해 세 가지 느낌을 세울 수가 없었고, 왕도 또한 두 느낌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 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한 쪽에 물러나 섰다. 때에 존자 웃다아이는 아까 한 말을 널리 세존께 사뢰고
"저도 또한 세 가지 느낌을 세울 수가 없었고 왕도 또한 두 느낌을 세울 수가 없었나이다. 이제 일부러 함께 나아 와 세존께 그 뜻을 여쭙나이다. 꼭 몇 느낌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웃다아이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때로는 한 가지 느낌을 말하고 혹 때로는 두 느낌을 말하며 혹은 三, 四, 五, 六, 十六, 三十六........내지, 백 八 느낌을 말하고, 혹 때로는 한량이 없는 느낌을 말하느니라. 어떤 것이 내가 한 가지 느낌을 말하는 것인가.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내가 한 가지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두 느낌을 말하는 것인가.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 느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느낌인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라. 어떤 것이 네 느낌인가. 이른바 욕계(欲界)에 매는 느낌, 색계(色界)에 매는 느낌, 무색계(無色界)에 매는 느낌과 매지 않는 느낌이니라. 어떻게 다섯 느낌을 말하는가. 이른바 즐거운 근(根), 기쁜 근, 괴로운 근, 근심하는 근, 버리는 근이니, 이것을 다섯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여섯 느낌을 말하는가. 이른바 눈의 부딪침에서 생기는 느낌, 귀, 코, 혀, 몸, 뜻의 부딪침에서 생기는 느낌이니라.
어떻게 十八 느낌을 말하는가. 이른바 六 희행(喜行)을 따라고, 六 우행(憂行)을 따르며, 六 사행(捨行)을 따라는 느낌이니, 이것을 十八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三十 六 느낌인가. 六의 탐착(貪着)의 기쁨을 의지하고, 六의 탐착을 떠나는 기쁨을 의지하며, 六의 탐착의 근심을 의지하고, 六의 탐착을 떠나는 근심을 의지하며, 六의 탐착의 버림을 의지하고, 六의 탐착을 떠나는 버림을 의지하는 것이니, 이것을 三十 六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백 八 느낌을 말하는가. 이른바 三十 六 느낌의 과거의 三十 六, 미래의 三十 六, 현재의 三十 六이니, 이것을 백 八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한량이 없는 느낌을 말하는가. 이 느낌, 저 느낌 등을 말하는 것과 같나니, 비구여, 이와 같은 것을 한량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이것을 한량이 없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웃다아이여, 나는 이와 같이 갖가지로 느낌의 참다운 뜻을 말한다. 세간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논쟁하고 서로 반대하면서, 마침내 그것을 그치고 쉬기 위하여 내 법률의 진실한 뜻을 얻지 못하느니라. 웃다아이여, 만일 내가 말하는 이 갖가지 느낌의 뜻을 참다이 이해하여 안다면 논쟁하거나 서로 반대하는 것을 일으키지 않고, 일어나더라도 아직 일어나기 전에 능히 이 법률로써 그것을 그치고 쉬게 할 것이다.
그런데 웃다아이여, 두 느낌이 있으니, 욕심의 느낌과 욕심을 떠난 느낌이니라. 어떤 것이 욕심의 느낌인가. 五 욕 공덕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이니 이것을 욕심의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이 욕심을 떠난 느낌인가. 이른바 비구가 욕심의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난 느낌인가. 이른바 비구가 욕심의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감각이 있고 관찰이 있어서 욕심을 떠난 데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초선(初禪)을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욕심을 떠난 느낌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중생이 이 초선(初禪)을 의지하는 것은 오직 이 즐거움 뿐이요 다른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다시 이보다 더 훌륭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그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있는 감각, 있는 관찰을 떠나고 안이 깨끗하여 정(定)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서 제 二선을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훌륭한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내지,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까지 계속하여 훌륭한 것을 말한다. 만일 어떤 이가 '오직 이 이치만이 있다........내지, 비상비비상이 지극히 즐겁더라도 다른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또한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다시 이보다 더 훌륭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그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일체의 비상비비상입처를 건너 상수(想受)가 멸하고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히 갖추어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저보다 더 훌륭한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학(異學)의 집난이가 말하기를 '사문 석종(釋種)의 아들은 오직 상수(想受)의 멸한 것을 말하여 지극한 즐거움이라고 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적당하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마땅히 이렇게 말하라. 즉 '이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느낌의 즐거움의 수(數)가 아니다. 세존께서 느낌의 즐거움을 말씀하신 느낌은 웃다아이에게 四 종의 즐거움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고. 어떤 것을 四라고 하는가. 이른바 욕심을 떠난 즐거움, 멀리 떠난 즐거움, 적멸(寂滅)의 즐거움, 보리(菩提)의 즐거움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존자 웃다아이와 빔비사알라 왕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6. 일법경(一法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一 법에 대하여 바르게 싫어하고 떠날 생각을 내어, 바라지 않고 등져 버리면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먹음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다시 二 법이 있으니 정신과 물질이다. 다시 三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느낌이니라. 다시 四 법이 있으니 이른바 四 식(食)이니라. 다시 五 법이 있으니 이른바 五 수음(受陰)이니라. 다시 六 법이 있으니 이른바 六의 안팎 입처(入處)이니라. 다시 七 법이 있으니 이른바 七 식주(識住)이니라. 다시 八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八 법이니라. 다시 九 법이 있으니 이른바 九의 중생거(衆生居)이니라, 다시 十 법이 있으니 이른바 十 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十 법에 대하여 싫어하는 생각을 내어 바라지 않고 등져 버리면 모든 번뇌[漏]를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7. 일법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一 법에 대하여 바르게 싫어하고 떠날 생각을 내어 바라지 않고 등져 버리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보아 괴로움에서 해탈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먹음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다시 二 법이 있으니 정신과 물질이니라. 다시 三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느낌[受]이니라. 다시 四 법이 있으니 이른바 四 식(食)이니라. 다시 五 법이 있으니 이른바 五 수음(受陰)이니라. 다시 六 법이 있으니 이른바 六의 안팎 입처(入處)이니라. 다시 七 법이 있으니 이른바 七 식주(識住)이니라. 다시 八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八 법(法)이니라. 다시 九 법이 있으니 이른바 九 중생거(衆生居)이니라, 다시 十 법이 있으니 이른바 十 업적(業跡)이니라.
이런 十 법에 대하여 바르게 싫어하고 떠날 생각을 내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보아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8. 일법경 3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一 법에 대하여 덧없는 것이라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욕심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관찰하고, 멸하는 것이라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고 관찰하면, 모든 번뇌[漏]를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먹음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니라.
다시 二 법이 있으니 정신과 물질이니라. 다시 三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느낌이니라. 다시 四 법이 있으니 이른바 四 식(食)이니라. 다시 五 법이 있으니 이른바 五 수음(受陰)이니라. 다시 六 법이 있으니 이른바 六의 안팎 입처이니라. 다시 七 법이 있으니 이른바 七 식주(識住)이니라. 다시 八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八 법이니라. 다시 九 법이 있으니 이른바 九 중생거(衆生居)이니라, 다시 十 법이 있으니 이른바 十 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十 법에 대하여 덧없는 것이라고 바르게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욕심을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멸할 것이라고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9. 일법경 4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一 법에 대하여 덧없는 것이라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욕심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관찰하고, 멸하는 것이라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고 관찰하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보아 괴로움에서 해탈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먹이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니라.
다시 二 법이 있으니 정신과 물질이니라. 다시 三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느낌이니라. 다시 四 법이 있으니 이른바 四 식(食)이니라. 다시 五 법이 있으니 이른바 五 수음(受陰)이니라. 다시 六 법이 있으니 이른바 六의 안팎 입처이니라. 다시 七 법이 있으니 이른바 七 식주이니라. 다시 八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八 법이니라. 다시 九 법이 있으니 이른바 九 중생거이니라, 다시 十 법이 있으니 이른바 十 업적이니라.
이 十 업적에 대하여 덧없는 것이라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욕심을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멸할 것이라고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알아 괴로움에서 해탈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