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雜阿含經) 제 21권
559. 가마경(迦摩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라리불투로국(波羅利弗妬路國)에 계시었고, 존자 아아난다와 존자 카아마아부우[迦摩]는 파라리불투로국 계림 정사(鷄林精舍)에 있었다. 그 때에 존자 카아마아부우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나아가, 서로 문안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아, 존자 아아난다에게 말하였다.
"이상합니다. 존자 아아난다님, 눈이 있고 빛이 있으며, 귀가 있고 소리가 있으며, 코가 있고 냄새가 있으며, 혀가 있고 맛이 있으며, 몸이 있고 촉감이 있으며, 뜻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비구는 이런 법이 있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어떻습니까. 존자 아아난다님, 그 비구는 생각[想]이 있어서 깨닫지 못합니까. 생각이 없기 때문에 깨닫지 못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카아마아부우 비구에게 말하였다.
"생각이 있는 사람도 깨닫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각이 없는 사람이겠는가."
"존자 아아난다님, 어떤 것을 생각이 있어도 있는 법을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카아마아부우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비구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어 욕악을 떠나는 데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초선(初禪)을 구족해 머무르는데, 이와 같이 생각 제 二, 제 三, 제 四선(禪)의 공입처(空入處), 식입처(識入處),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를 구족해 머무르는데, 이와 같이 생각이 있는 비구는 법이 있어도 깨닫지 못한다."
"어떤 것을 생각이 없어서, 법이 있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까."
"그러한 비구는 일체 생각을 기억하지 않고, 무상심삼매(無想心三昧)를 몸으로 증득(證得)하여 구족해 머무르는데, 이것을 비구가 생각이 없어서, 법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존자 카아마아부우 비구는 다시 물었다.
"만일 비구가 무상심삼매에서 들뜨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고, 해탈하여 머무르고 머물러 해탈한다면, 세존께서는 그것을 무엇의 결과요 무엇의 공덕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카아마아부우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비구가 무상심삼매에서 들뜨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고, 해탈하여 머무르고 머물러 해탈한다면, 세존께서는 그것을 지혜의 결과요 지혜의 공덕이라고 말씀하신다."
때에 두 정사(正士)는 서로 이야기하기를 마치고 함께 기뻐하면서,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0. 탁량경(度量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이[俱 彌]국 고시타아라마[瞿師羅] 동산에 계시었는데, 그 때에 존자 아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로서, 내 앞에서 스스로 기설(記設) 하면, 나는 '착하다'고 위로하고 인사하고, 혹은 네 가지 도(道)를 요구할 것이다. 어떤 것이 넷인가.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앉아서 이러한 주심(住心), 즉 선주심(善住心), 국주심(局住心), 조복심지관(調伏心止觀), 일심등수(一心等受)의 분별을 행하여, 법을 헤아리고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모든 번뇌를 끊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로서 내 앞에서 스스로 기설 하면 나는 곧 이와 같이 '착하다'고 위로하고 '혹은 이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비구나 비구니로서 바르게 앉아 생각하여 법을 가지고 헤아리고, 주심 즉, 선주, 국주, 조복지관, 일심등수를 행하여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무르면 모든 번뇌를 떠나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로서 내 앞에서 스스로 기설 하면, 나는 이와 같이 '착하다'고 위로하고 '혹은 이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두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비구나 비구니가 들뜨는 마음에 쥐이더라도 그것을 항복 받는 마음으로 앉고, 바르게 주심, 즉, 선주, 국주, 조복지관, 일심등수로 되도록 앉아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무르면 곧 모든 번뇌를 끊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로서 내 앞에서 기설 하면, 나는 곧 '착하다'고 위로하고 '혹은 이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세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비구나 비구니가 지(止)와 관(觀)을 화합해 함께 행하고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무르면 곧 모든 번뇌를 끊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로서 내 앞에서 기설 하면 나는 곧 '착하다'고 위로하고 가르치고, '혹은 이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네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한다."
때에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아난다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61.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이국 고시타아라마 동산에 계시었고, 존자 아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때에 어떤 바라문은 존자 아아난다에게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앉아 존자 아아난다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 밑에서 범행(梵行)을 닦습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끊기 위해서이다."
"존자는 무엇을 끊으려 합니까."
"탐애(貪愛)를 끊으려 한다."
"존자 아아난다님, 무엇을 의지해 탐애를 끊을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욕(欲)>을 의지해 탐애를 끊는다."
"존자 아아난다님, 그러면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끝이 있고, 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존자 아아난다님, 어떤 것이 끝이 있고,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대답하라. 바라문이여, 네 생각에 어떠하냐. 너는 지금 <욕(欲)>이 있어서 이 정사(精舍)에 온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아아난다님."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이미 이 정사에 왔으니 그 <욕>은 쉬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존자 아아난다님, 나는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이 정사에 왔으니까........"
"이미 이 정사에 왔으면 그 노력과 준비와 계획은 쉬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존자 아아난다는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와 같이 바라문이여, 여래, 응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것은 네 가지 여의족(如意足)을 말씀하시어, 일승(一乘)의 도(道)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괴로움과 번민을 없애고 근심과 슬픔을 끊는데 있다. 무엇이 넷인가. 욕정(欲定)을 단행(斷行)해 성취하는 여의족과 정진정(精進定), 심정(心定), 사유정(思惟定)을 단행해 성취하는 여의족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제자는 욕정을 단행해 성취하는 여의족을 닦아, 욕심을 떠남에 의하여, 욕심이 없음에 의하여, 생사를 뛰어남에 의해, 멸(滅)에 의해, 사(捨)로 향하여 내지 탐애를 끊게 되고, 탐애가 이미 없어지면 그 욕(欲)도 또한 쉰다. 정진정, 심정, 사유정을 단행해 성취하기를 닦아, 욕심을 떠남에 의해, 욕심이 없음을 의해, 생사를 뛰어남에 의해, 멸을 의해, 사(捨)로 향하여 내지, 탐애가 되고, 탐애가 이미 다하면 사유(思惟)가 곧 쉰다. 바라문이여, 생각에 어떠한가. 이것이 끝이 아닌가."
바라문은 말하였다.
"존자 아아난다님, 그것은 곧 끝이요, 끝이 아님이 아닙니다."
그 때에 바라문은 존자 아아난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2. 구사라경(瞿師羅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삼비이국 고시타아라마 동산에 계시었는데, 존자 아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때에 고시타아라마[瞿師羅] 장자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존자 아아난다에게 사뢰었다.
"어떤 이를 세상의 설법하는 사람이라 하며, 어떤 것을 세상에서 잘 향(向)하는 것이라 하고, 어떤 것을 세상에서 잘 도착한 것이라 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고시타아라마 장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대답하라. 장자여,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어떤 이가 설법하여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다면, 세상의 설법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장자는 대답하였다.
"존자 아아난다님, 만일 어떤 이가 설법하여, 능히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다면, 그는 세상의 설법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세상에서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 데로 향한다면, 그것을 세상에서 잘 향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만일 세상에서 이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항복 받았다면, 그것을 잘 도착한 것이라 하겠는가. 아니라 하겠는가."
"존자 아아난다님, 만일 탐욕을 항복 받아 이미 끊어 남음이 없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이미 끊어 남음이 없으면, 그것을 잘 도착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장자여, 나는 시험 삼아 너에게 물었더니 너는 곧 진실로 내게 대답하였구나. 그 이치는 그러하다. 받아 가져야 하느니라."
고시타아라마 장자는 존자 아아난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3. 니건경(尼 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이샤알리이[毘舍離]국 잔나비 못 곁에 있는 중각 강당(重閣講堂)에 계시었는데, 존자 아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그 때에 니르그란타[尼 ]의 제자 무외리차(無畏離車)와 아기비(阿耆毘)의 제자 총명동자리차(聰明童子離車)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았다. 때에 무외리차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말하였다.
"우리 스승 니르그란타 풋타[尼 子]는 불타는 법을 끄고 청정하고 뛰어나, 제자들을 위해 이러한 도(道)와 숙명의 업을 말하기를 '고행(苦行)을 행함으로서 그것을 다 없애고, 몸 업을 짓지 않음으로서 다리[橋梁]을 끊어 미래 세상에서는 모든 번뇌가 다해 없고 모든 업이 아주 다하며, 업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이 아주 다하고 온갖 고통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고통을 완전히 벗어난다'고 하십니다. 존자 아아난다님, 이 뜻이 어떠합니까."
존자 아아난다는 리차에게 말하였다.
"여래 응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바는 세 가지 불탐[熾然]을 떠나 청정하게 뛰어남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즉 일승(一乘)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근심과 슬픔을 떠나고 고통과 번민을 넘어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는 데 있다. 무엇이 셋인가.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깨끗한 계에 머물러 파라제목차를 받고 위의를 구족하며, 모든 죄를 믿어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진다. 이렇게 받아 가지면 깨끗한 계를 구족하고 묵은 업이 점점 없어져 현세에서 불탐을 떠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 바른 법을 얻게 되어, 통달하고 밝게 보고 관찰하여 지혜로써 스스로 깨닫는다. 리차 장자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 응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바는, 불탐을 떠나 청정하게 뛰어남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즉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고통과 번민을 없애고 근심과 슬픔을 넘어 진여법을 얻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다시 리차여, 이와 같이 깨끗한 계를 구족하고 욕악과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사선(第四禪)을 구족하여 머무른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 응정등각께서는 불탐을 떠나기를 말씀하시어.... 여실법을 얻게 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삼매 정수(三昧正受)가 있어, 이 괴로움의 진리를 여실히 알고 괴로움이 모이는 진리, 괴로움이 멸하는 진리, 괴로움이 멸하는 길의 진리를 여실히 알아 구족한다. 이와 같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업을 다시 짓지 않으면, 묵은 업이 점점 끊어지고 현재에서 바른 법을 얻어 모든 불탐을 떠나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 통달하고 밝게 보아 스스로 깨닫는 지혜가 생긴다. 리차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 응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바는 세 가지 불탐을 떠나 청정하게 뛰어남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즉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고통과 번민을 떠나고 근심과 슬픔을 없애어 여실법을 얻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니라."
그 때에 니르그란타의 제자 리차 무외는 잠자코 있었다. 때에 아기비 제자 리차 총명은 리차 무외에게 거듭 말하였다.
"이상하다! 무외여, 왜 잠자코 있는가. 여래, 응등정각께서 말씀하신, 알고 보신 바와 좋은 설법을 듣고 왜 기뻐하지 않는가."
리차 무외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 이치를 생각하느라고 잠자코 있다. 누가 세존이신 사문 고오타마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지 않겠는가. 세존이신 사문 고오타마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지 않겠는가. 만일 누가 고오타마의 설법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긴 밤 동안에 옳지 않고 이익이 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때에 니르그란타 제자 리차 무외와 아기비 제자 총명은 부처님 설법과 존자 아아난다의 말을 거듭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4. 비구니경(比丘尼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었는데, 존자 아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때에 어떤 비구니는 존자 아아난다에게 연모(戀慕)하는 마음을 일으켜 사람을 보내어 존자 아아난다에게 사뢰었다.
"저는 병이 들어 앓고 있습니다. 존자는 가엾게 여겨보아 주소서."
존자 아아난다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그 비구니에게 갔다. 그 비구니는 멀리서 존자 아아난다가 오는 것을 보고, 몸을 드러낸 채 상위에 누워 있었다. 존자 아아난다는 멀리서 그 비구니의 몸을 보자 곧 모든 근(根)을 거두고 몸을 돌려 서 있었다. 그 비구니는 존자 아아난다가 모든 근을 거두고 몸을 돌려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만 무안해서, 일어나 옷을 입고 자리를 펴고, 존자 아아난다를 나가 맞아들여 앉기를 청하고,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서 있었다.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그를 위해 설법하였다.
"누이여, 이 따위 몸이란 더러운 음식으로 자라났고 교만으로 자라났고 탐애로 자라났고 음욕으로 자라난 것이다. 누이여, 더러운 음식을 의지한 것은 더러운 음식을 끊어야 하고, 교만을 의지한 것은 교만을 끊어야 하며, 탐애를 의지한 것은 애욕을 끊어야 한다. 누이여, '더러운 음식을 의지하였으니 더러운 음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음식에 있어서 분수를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먹되,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 하는 생각이 없으며, 어루만지는 생각이 없고 장엄하는 생각이 없이, 몸을 보존하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주리고 목마른 병을 고치기 위해, 범행(梵行)을 거두어 닦기 위해서이니, 그리하여 모든 묵은 감정은 없애고 모든 새 감정은 생기지 않게 하여, 숭상하고 익히고, 자라게 하며, 혹은 노력하거나 희망하거나 접촉하는 데 있어서도 이와 같이 살아가야 하느니라.
마치 상인(商人)이 타락 기름을 그 수레에 칠할 때에,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 하는 생각이 없으며, 어루만지는 생각이 없고 장엄하는 생각이 없이, 다만 운반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또 창병을 앓는 사람이 타락 기름을 바를 때에,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 하는 생각이 없으며, 어루만지는 생각이 없고 장엄하는 생각이 없이, 다만 창병을 고치기 위해서인 것처럼,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분수를 헤아려 먹되, 집착하는 생각이 없고 교만 하는 생각이 없으며, 어루만지는 생각이 없고 장엄하는 생각이 없이, 다만 살아가기 위해, 주리고 목마름을 고치기 위해, 범행을 거두어 닦기 위해서이니, 모든 묵은 감정을 떠나고 모든 새 감정을 일으키지 않아, 안온하게 살아가나니, 누이여, 이것이 이른바 음식을 의지해 음식을 끊는다는 것이니라.
교만을 의지해 교만을 끊는다는 것은 어떻게 교만을 의지해 교만을 끊는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아무 존자와 아무 존자 제자는 모든 번뇌를 다하여 번뇌가 없이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증득한 줄을 알아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뒷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안다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저 성스러운 제자는 모든 번뇌를 다해...... 뒷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안다는데, 나는 왜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해 뒷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가'고. 그 때에 그는 곧 모든 번뇌를 끊고....... 뒷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게 된다. 누이여, 이것이 이른바 교만을 의지해 교만을 끊는다는 것이니라.
누이여, 어떻게 탐애를 의지해 탐애를 끊는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아무 존자와 아무 존자 제자는 모든 번뇌를 다하고..... 뒷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안다는데, 나는 왜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하고....... 뒷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가'고. 그 때에 그는 모든 번뇌를 끊고......... 뒷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게 된다. 누이여, 이것이 이른바 탐애를 의지해 탐애를 끊는 것이다. 누이여, 행하는 바가 없으면 음욕과 화합하는 다리[橋]를 끊느니라."
존자 아아난다가 이렇게 설법하자, 그 비구니는 티끌과 때를 멀리 떠나 법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 비구니는 법을 보아 법을 얻고 법을 깨달아 법에 들어가 의심을 건너, 남을 의지하지 않고도 바른 법률에서 두려운 마음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존자 아아난다의 발에 예배하고 사뢰었다.
"나는 이제 고백하고 허물을 뉘우칩니다. 어리석고 착하지 못해 어쩌다 이러한 씻지 못할 따위의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존자 아아난다님 앞에서, 스스로 허물을 보고 스스로 허물을 알아,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가엾이 여기소서."
존자 아아난다는 비구니에게 말하였다.
"누이여, 이제 진실로 스스로 죄를 보고 스스로 죄를 알았다. 어리석고 착하지 못해 너는 스스로 알면서 짝 할 수 없는 죄를 지었으나, 너는 이제 스스로 알고 보아 허물을 뉘우친다. 미래 세상에서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것이다. 나는 이제 가엾이 여겨 너의 뉘우침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너의 착한 법이 더욱 자라나 물러나거나 멸하지 않게 하리라. 왜 그러냐 하면, 만일 스스로 죄를 보고 스스로 죄를 알아 능히 뉘우치는 사람은 미래 세상에서 구족계를 얻고, 착한 법이 차츰 자라 마침내 물러나거나 멸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존자 아아난다는 이렇게 그 비구니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5. 바두경(婆頭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교지(橋池)에 계시면서 세상에 노닐으시다가, 존자 아아난다와 함께 바두취락국(婆頭聚樂國) 북쪽에 있는 심사파아숲[身恕林]으로 가시었다. 그 때에 바두촌의 여러 소년들은 존자 아아난다가 교지에서 세상에 놀다가, 바두촌 북쪽에 있는 심사파아숲에 머무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서로 불러 모아 존자 아아난다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때에 존자 아아난다는 여러 소년들에게 말하였다.
"제종(帝種)이신 여래, 응등정각께서는 네 가지 청정(淸淨)을 말씀하셨으니, 계(戒) 청정, 마음 청정, 소견 청정, 해탈 청정이다. 어떤 것이 계 청정인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계 파라제목차(戒波羅提木叉)에 머물러 계가 차츰 자라고 위의를 구족하여, 조그마한 죄라도 두려워할 줄 안다. 그리고 하계(學戒)를 받아 가지어, 계 몸[戒身]이 차(滿]지 못한 사람은 만족하게 하고, 이미 찬 사람이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진과 방편으로서 뛰어나려하고, 꾸준히 힘쓰고 용맹을 내어 몸과 마음의 모든 법을 언제나 능히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계가 깨끗하면 고통 종자를 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마음이 깨끗하여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욕악과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사선(第四禪)을 구족해 머무른다. 그리고 정 몸[定身]이 차지 못한 사람은 차게 하고, 이미 찬 사람이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진케 하며.... 항상 받아들인다. 이것이 곧 마음이 깨끗하면 고통 종자를 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소견이 깨끗하여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스승의 설법을 들어, 이러이러하다고 설법하면 곧 이러이러하다고 들어가 여실히 바르게 관찰하고, 이러이러한 기쁨을 얻고 따라 기뻐하여 부처님을 따르게 된다. 다시 성스러운 제자는 스승의 설법을 듣지 못했더라도,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다른 범행자(梵行者)를 따라, 존중할 만한 범행자의 이러이러하다는 설법을 들으면, 곧 이러이러하다고 들어가 여실히 관찰하고, 이러이러하다고 관찰하고는 그 법에서 기쁨을 얻고 따라 기뻐해 바른 법을 믿는다. 다시 성스러운 제자는 스승 설법도 듣지 못하고 또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 설법도 듣지 못했으면, 이전에 들어 받아 가졌던 것을 다라, 다시 외워 익힌다. 이전에 들어 받아 가졌던 것을 이러이러하다고 거듭 외우고는 이러이러하다고 그 법에 들어가게 되고..... 바른 법을 믿는다. 다시 성스러운 제자는 스승의 설법도 듣지 못하고,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 설법도 듣지 못하고,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 설법도 듣지 못하고, 또 이전에 들어 받아 가진 것을 다시 외워 익힐 수가 없으면, 이전에 들었던 법을 남을 위해 널리 말하고, 이전에 들었던 법은 이러이러하다고 남을 위해 널리 말하고는, 이러이러하다고 그 법에 들어가 바른 지혜로 관찰하여.. 바른 법을 믿는다.
다시 성스러운 제자는 스승 설법도 듣지 못하고, 지혜가 밝고 존중할 만한 범행자의 말도 듣지 못하고, 이전에 받아 가졌던 것을 다시 외워 익힐 수도 없으며, 이전에 들었던 법을 남을 위해 널리 설명할 수도 없으면, 이전에 들었던 법을 혼자 고요한 곳에서 생각하고 관찰하고,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하고 관찰하고는 이러이러하다고 바른 법에 들어가고..... 바른 법을 믿는다. 이와 같이 남에게서 들어 안으로 바르게 생각한다. 이것이 이른바 일어나지 않은 바른 소견은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바른 소견은 더욱 넓힌다는 것이요, 또 이것이 이른바 차지 못한 계 몸은 차게 하고, 이미 찬 것은 그대로 거두어 받아들이며, 정진과 방편으로...... 항상 거두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소견이 깨끗하여 고통 종자를 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해탈이 청정하여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탐하는 마음에 욕심이 없어 해탈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에 욕심이 없어 해탈한다. 이와 같이 해탈이 차지 못한 사람이면 차게 하고, 이미 찬 사람이면 그대로 거두어 받아들이며, 정진과..... 항상 거두어 받아들인다. 이것이 이른바 해탈이 깨끗하면 고통 종자를 끊는다는 것이니라."
존자 아아난다는 이렇게 설법하자 바두취락 여러 소년들은 존자 아아난다의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6. 나가달다경(那伽達多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菴羅)부락 암라숲에서 많은 상좌(上座)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때에 칫타[質多羅]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칫타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잠자코 있었다. 때에 칫타 장자는 머리를 조아려 상좌 비구들 발에 예배하고, 나아가닷타[那伽達多] 방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나아가닷타 비구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나아가닷타 비구는 칫타 장자에게 묻기를
"말하는 바와 같이
가지는 푸른데 흰 것으로 덮고
한 바퀴 살로 굴러가는 수레여
번뇌 떠나는 것 관찰해 오면
흐름을 끊어 다시는 결박 앉네.
장자여, 이 게송은 어떤 뜻이 있는가."
칫타 장자는 말하였다.
"존자 나아가닷타님,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습니까."
"그러하니라."
칫타 장자는
"존자여, 잠깐 조용히 계십시오. 나는 그 뜻을 생각해 보겠나이다."
하고, 잠깐동안 잠자코 생각한 뒤에, 존자 나아가닷타에게 말하였다.
"푸르다는 것은 계(戒)를 말함이요, 흰 덮개는 해탈을 말한 것이며, 한 바퀴 살이란 몸 생각[身念]이요, 구른다는 것은 굴러 나가는 것이며, 수레란 지관(止觀)입니다. 번뇌를 떠난다는 것은 세 가지 번뇌로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말한 것이니, 저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고 멸하고 알아, 그것을 끊기를 타알라나무 머리를 끊는 것 같이 하여, 다시는 나지 않아, 미래 세상에서도 멸해서 일어나지 않는 법입니다. 관찰이란 보는 것을 말함이요, 옴이란 사람이며, 흐름을 끊는다는 것은 애욕으로 나고 죽음에 흐르는 것이니, 저 아라한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고 이미 알아, 그 뿌리 끊기를 타알라나무 머리를 끊는 것 같이 하여, 다시는 나지 않아 미래 세상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결박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 가지 결박으로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결박이니, 저 아라한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고 끊고 알아, 그 뿌리 끊기를 타알라나무 머리를 끊는 것 같이하여 다시는 나지 않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자 나아가닷타여, 세존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가지는 푸른데 흰 것으로 덮고
한 바퀴 살로 굴러가는 수레여,
번뇌 떠나는 것 관찰해 오면
흐름을 끊어 다시는 결박 않네.
이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게송으로서 나는 이제 분별하였습니다."
존자 나아가닷타는 칫타 장자에게 물었다.
"그 뜻을 너는 이전에 들었던가."
"아닙니다. 듣지 못했습니다."
"장자여, 너는 좋은 이익을 얻었구나. 이 매우 깊은 부처님 법에서 성현의 슬기눈[慧眼]에 들어가게 되었구나."
때에 칫타 장자는 존자 나아가닷타의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7. 나가달다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숲 정사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때에 칫타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칫타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잠자코 있었다. 칫타 장자는 다시, 존자 나아가닷타 비구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나 앉았다. 존자 나아가닷타 비구는 칫타 장자에게 말하였다.
"무량심삼매(無量心三昧), 무상심삼매(無相心三昧), 무소유삼매(無所有三昧), 공심삼매(空心三昧)가 있는데. 어떤가, 장자여, 이 법은 여러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가.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가."
칫타 장자는 존자 나아가닷타에게 물었다.
"이 여러 가지 삼매는 세존의 말씀이십니까. 존자 자신의 말씀입니까."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다."
"존자 나아가닷타님, 내게 잠깐 그 뜻을 생각하게 하시오. 그리고 대답하겠습니다."
하고, 잠깐 생각한 뒤에 존자 나아가닷타에게 말하였다.
"어떤 법이 여러 가지 뜻이 있어서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맛이 있고, 어떤 법은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맛이 있습니다."
"어떤 법이 여러 가지 뜻이 있어서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맛이 있는가."
장자는 대답하였다.
"무량삼매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사랑[愛]하는 마음이 원망도 없고 미움도 없고 성냄도 없어, 너그럽고 넓고 무거운 마음으로 한량없이 닦아 익히고 두루 인연해 일방(一方)에 충만합니다. 이와 같이 二방, 三방, 四방, 상하의 일체 세간에 충만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원망도 없고 미움도 없고 성냄도 없어, 너그럽고 넓고 무거운 마음으로 한량없이 닦아 익히어 모든 곳에 충만하고, 일체 세간에 두루 인연해 머무르면, 이것을 무량심삼매라 합니다. 어떤 것이 무상심삼매인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일체 모양을 생각하지 않아서 무상심삼매를 몸으로 증득(證得)하면, 이것을 무상심삼매라 합니다. 어떤 것이 무소유심삼매인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일체 한량이 없는 식입처(識入處)를 건너, 소유(所有)가 없이 소유 없는 마음에 머무르면, 이것을 무소유심삼매라 합니다. 어떤 것이 공삼매인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세상이 공(空)한 것을 세상은 공하다고 여실히 관찰하고,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보면, 이것을 공심삼매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어떤 법은 여러 가지 뜻이 있어서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법이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맛이 있는가."
"존자여, 이른바 탐욕은 한량이 있는데, 만일 다툼이 없으면, 이것은 가장 한량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탐욕은 상(相)이 있고 성냄과 어리석음도 상이 있는데, 만일 다툼이 없으면, 이것은 상이 없는 것입니다. 탐욕은 곧 소유(所有)요 성냄과 어리석음도 소유인데, 만일 다툼이 없으면, 곧 소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다툼이 없으면 탐욕에 공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에 공하여 공은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고, 공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이른바 어떤 법은 뜻은 하나인데 여러 가지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존자 나아가닷타는 물었다.
"어떤가. 장자여, 너는 그 이치를 이전에 들었던가."
"존자여, 듣지 못했습니다."
"장자여, 너는 큰 이익을 얻었구나. 매우 깊은 부처님 법에서, 현재에 성현의 슬기눈에 들어가게 되었구나."
때에 칫타 장자는 존자 나아가닷타의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8. 가마경(伽摩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숲에서, 여러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때에 칫타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나아가 예배한 뒤에, 다시 카아마아부우[伽摩]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사뢰었다.
"이른바 행(行)이란 무엇입니까."
카아마아부우 비구는 말하였다.
"행이란 곧 세 가지 행이니, 몸행, 입행, 뜻행이다."
"어떤 것이 몸행, 입행, 뜻행입니까."
"나는 숨, 드는 숨을 몸행이라 하고, 각(覺)과 관(觀)이 있는 것을 입행이라 하며, 생각[想思]을 뜻행이라 한다."
"어찌하여 나는 숨, 드는 숨을 몸행이라 하고, 각과 관이 있는 것을 입행이라 하며, 생각을 뜻행이라 합니까."
"장자여, 나는 숨, 드는 숨은 곧 몸행으로서 몸을 의지하고 몸에 붙이었고 몸을 의지해 활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숨, 드는 숨을 몸행이라 한다. 각과 관이 있기 때문에 곧 입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각과 관이 잇는 것을 곧 입행이라 한다. 생각은 곧 뜻행이니, 마음을 의지하고 마음에 붙이었고 마음을 의지해 활동한다. 그러므로 생각은 곧 듯행이니라."
"존자여, 각과 관이 이미 입의 말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각과 관을 입행이라 하고, 생각은 곧 마음의 수법(數法)으로서 마음을 의지하고 마음에 붙이어 서로 활동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뜻행이라 합니다. 존자여, 그러면 몇 가지 법이 있습니까. 즉
만일 사람이 그 몸을 버릴 때에
그 몸은 송장으로 땅에 누웠고
다시 그것을 무덤에다 버리면
마음 없어 마치 나무, 돌과 같거니."
존자는 장자에게 대답하였다.
목숨[壽]과 더운 기운 또 알음알이[識]는
몸을 버릴 때 함께 버리어지네.
그 몸은 저 무덤에 버려 버리면
마음 없어 마치 나무, 돌과 같노라.
장자는 다시 물었다.
"존자여, 죽음과 멸진정수(滅盡正受)에 드는 것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목숨[壽]과 더운 기운을 버리면 모든 근(根)은 다 허물어져 몸과 목숨[命]은 갈라진다.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 멸진정(滅盡定]이란 몸, 입, 뜻의 행만 멸하는 것으로서, 수명을 버리지 않고 더운 기운도 떠나지 않으며 모든 근도 허물어지지 않아 몸과 목숨이 서로 붙어 있다. 이것이 곧 죽음과 멸진정수에 드는 것과의 다른 모양이니라."
"존자여, 어떻게 멸진정수에 듭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 든다 하지마는 '나는 멸진정수에 든다. 나는 장차 멸진정수에 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먼저 어떤 점점 쉬는 방편을 써서, 그 먼저 방편대로 향해 정수에 드는 것이다."
"멸진정수에 들 때에는 어떤 법이 먼저 멸합니까. 몸행입니까. 입행입니까. 뜻행입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 드는 사람은 먼저 입행을 멸하고, 다음에 몸행, 다음에 뜻행이니라."
장자는 다시 물었다.
"존자여, 어떻게 멸진정수에서 나옵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서 나오려는 사람도 '나는 지금 정수에서 나간다. 나는 장차 정수에서 나갈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먼저 마음으로 방편을 정해 그 먼저 마음대로 일어난다."
"존자여, 멸진정수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어떤 법에서 먼저 일어납니까. 몸행입니까. 입행입니까. 뜻행입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뜻행에서 먼저 일어나고, 다음에 몸행, 다음에 입행이니라."
장자는 다시 물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 들면, 무엇에로 따라 나아가고 흘러들며 실려갑니까."
"장자여, 멸진정수에 들면 떠남[離]으로 따라 나아가고 흘러들고 실려 가며, 벗어남[出]으로 따라 나아가고 흘러들고 실려 가며, 열반으로 따라 나아가고 흘러들며 실려 가느니라."
장자는 다시 물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 머무를 때에는 몇 가지 닿임[觸]이 있습니까."
"장자여, 움직이지 않는 닿임, 모양이 없는 닿임, 소유(所有)가 없는 닿임이니라."
장자는 다시 물었다.
"존자여, 멸진정수에 들려고 할 때에는 몇 가지 법을 써야 합니까."
"장자여, 그것을 먼저 물었어야 할 것인데 왜 이제 묻는가. 그러나 너를 위해 말하리라. 비구여, 멀진정수에 들려고 하는 사람은 두 가지 법을 써야 한다. 곧 지(止]과 관(觀)이니라."
때에 칫타 장자는 존자 카아마아부우 말을 듣고,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9. 이서달다경(梨犀達多經) 1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숲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때에 칫타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앉았다. 여러 상좌 비구들은 칫타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잠자코 있었다. 때에 칫타 장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합장하고, 여러 상좌들에게 청하였다.
"여러분, 하찮으나 저의 집에서 공양을 받으시오."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었다. 그 장자는 여러 상좌들이 잠자코 그 청을 받은 줄 알고, 발에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는 자기 집에 돌아가 갖가지 음식을 마련하고 자리를 깔고, 이른 아침에 사람을 보내어 때를 알리었다. 때에 여러 상좌들은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장자 집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장자는 머리를 조아려 상좌들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앉아 사뢰었다.
"이른바 여러 가지 경계[界]란 어떤 것입니까."
때에 상좌 비구들은 잠자코 있었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였다. 그 때에 존자 이시이닷타[梨犀達多]는 대중 아랫자리에 있다가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사뢰었다.
"여러분, 내가 장자의 저 물음에 대답하려 합니다."
상좌들은 좋다고 대답하였다. 장자 칫타는 곧 물었다.
"존자여, 이른바 여러 가지 경계란 어떤 것입니까."
이시이닷타는 대답하였다.
"장자여, 눈 경계[眼界]가 다르고 색 경계[色界]가 다르고 눈 식의 경계[眼識界]가 다르며, 귀 경계가 다르고 소리 경계가 다르고 귀 식의 경계가 다르며, 코 경계가 다르고 냄새 경계가 다르고 코 식의 경계가 다르며, 혀 경계가 다르고 맛 경계가 다르고 혀 식의 경계가 다르며, 몸 경계가 다르고 부딪침의 경계가 다르고 몸 식의 경계가 다르며, 뜻 경계가 다르고 법 경계가 다르고 뜻 식의 경계가 다릅니다. 이와 같이 장자여, 이것을 여러 가지 경계라 합니다."
그 때에 칫타 장자는 갖가지 깨끗하고 맛난 음식을 내려와 공양하였다. 여러 중들은 먹은 뒤에 손 씻고 양치하고 바리를 씻었다. 칫타 장자는 낮은 평상을 펴고 상좌들 앞에 앉아 법을 들었다. 그 때에 상좌들은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여러 상좌들은 도중에서 이시이닷다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이시이닷타 비구여, 너는 진실로 민첩하게 일을 잘 알고 말하였다. 다른 때에도 너는 항상 그렇게 대답하여야 한다."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이시이닷타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70. 이서달다경 2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숲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때에 칫타 장자는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사뢰었다.
"세상 여러 소견들은 혹은 <나>가 있다고 말하고 혹은 중생을 말하며 혹은 수명을 말하고 혹은 세간의 길흉(吉凶)을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존자님들이여, 이 여러 가지 다른 소견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고, 무엇이 원인이며, 어디서 생긴 것이요, 무엇이 변한 것입니까."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다 잠자코 있었다. 때에 아랫자리에 있던 이시이닷타라는 비구는 상좌들에게 사뢰었다.
"내가 저 장로 물음에 대답하고자 합니다."
"잘 대답할 수 있으면 대답하라."
때에 장자는 곧 이시이닷다에게 물었다.
"무릇 세상 소견들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고, 무엇이 원인이며, 어디서 생긴 것이요, 무엇이 변한 것입니까."
존자 이시이닷타는 대답하였다.
"장자여, 무릇 세상 소견들은 혹은 <나>가 있다고 말하고 혹은 중생을 말하며 혹은 수명을 말하고 혹은 세상 길흉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소견들은 모두 신견(身見)을 근본으로 하고, 신견이 원인이며, 신견에서 생긴 것이요, 신견이 변한 것이다."
"존자여, 어떤 것이 신견입니까."
"장자여,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물질은 곧 <나>다. 물질은 <나>와 다르다. 물질 안에 <나>가 있다. <나> 안에 물질이 있다'고 보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곧 <나>다. 의식은 <나>와 다르다. <나> 안에 의식이 있다. 의식 안에 <나>가 있다'고 본다. 장자여, 이것을 신견이라 한다."
"존자님, 어떻게 하면 그 신견이 없게 됩니까."
"장자여, 이른바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은 곧 <나>다'고 보지 않고, '물질은 <나>와 다르다'고도 보지 않으며, '<나> 안에 물질이 있다'거나 '물질 안에 나가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곧 <나>다'고도 보지 않고, '의식은 <나>와 다르다'고도 보지 않으며 '나 안에 의식이 있다'거나 '의식 안에 <나>가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이것을 신견이 없게 된 것이라 한다."
"존자님, 당신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서 났습니까."
"장자여, 나는 장자 뒷집에서 났다."
칫타 장자는 존자 이시이닷타에게 말하였다.
"나와 존자 우리 둘의 아버지는 본래부터 좋은 친구였습니까."
"그랬었다. 장자여."
"존자여, 만일 이 암라숲에 계실 수 있으면, 나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의복, 음식과 병에 따른 약을 공양하겠습니다."
존자 이시이닷타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았다. 때에 이시이닷타는 칫타 장자 청을 받았으나 그 공양이 장애가 되어 오랫동안 세존 계신 곳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칫타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하였다. 칫타 장자는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71. 마하가경(摩訶迦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숲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때에 칫타 장자는 여러 상좌들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사뢰었다.
"여러분, 원컨대 우리 목장(牧場)에서 내 공양을 받으시오."
때에 여러 상좌들은 잠자코 그 청을 받았다. 칫타 장자는 여러 상좌들이 잠자코 그 청을 받은 줄 알고, 자기 집에 돌아가 밤을 세워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고, 이른 아침에 자리를 펴고 사람을 보내어, 여러 상좌들에게 때를 알렸다. 여러 상좌들은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목장에 있는 칫타 장자 집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칫타 장자는 손수 여러 가지 음식을 공양하였다. 공양을 마친 뒤에 바리를 씻고 손을 씻고 양치질을 마쳤다. 장자는 낮은 평상을 깔고 상좌들 앞에 앉아 법을 들었다. 때에 여러 상좌들은 칫타 장자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는데, 칫타 장자도 뒤를 따라 갔다. 여러 상좌들은 타락 꿀을 너무 먹고 배가 불러, 첫 여름 더운 때라, 길을 가기에 고통이 심하였다.
그 때에 마하카[摩訶迦]라는 하좌(下座) 비구는 여러 상좌들에게 사뢰었다.
"오늘은 매우 덥습니다. 나는 구름과 비와 실바람을 일으키려 하옵는데 좋습니까."
여러 상좌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네가 할 수 있으면 좋다."
때에 마하카는 곧 삼매에 들어 그 정수(正受)애로 하지 곧 구름이 일고 보슬비가 내리며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四 방에서 불어왔다. 정사(精舍) 문에 이르자 존자 마하카는 여러 상좌들에게 말하였다.
"하는 짓을 이제 그치리까."
"이제 그만 두라."
때에 존자 마하카는 곧 신통을 그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때에 칫타 장자는 생각하였다. '제일 하좌 비구도 이런 큰 신통력이 있는데, 하물며 중좌나 상좌이겠는가'고. 곧 여러 상좌들 발에 예배하고 마하카 비구를 따라 그가 있는 방으로 가서, 존자 마하카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사뢰었다.
"존자여, 나는 사람 법에서 뛰어 나는 존자의 신통 부리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존자 마하카는 말하였다.
"장자는 보지 마라. 무섭느니라."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였으나 세 번 다 허락하지 않았다. 장자는 그대로 거듭 청하였다.
"장자의 신통 변화를 보기를 원합니다."
존자 마하카는 말하였다.
"너는 잠깐 밖에 나가 마른나무를 가져다 쌓은 뒤에 담요 한 장을 그 위에 덮어라."
칫타 장자는 곧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가, 섶을 모아 더미를 만들어 놓고 와서, 존자 마하카에게 사뢰었다.
"섶을 쌓아 더미를 만들고 담요로 그 위를 덮었습니다."
때에 존자 마하카는 곧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자물쇠 구멍으로 불꽃을 내보내어, 불빛이 섶을 태워 섶더미가 다 탔으나 오직 흰 담요만은 타지 않았다. 그리고 장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제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존자님, 진실로 신기한 일입니다."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다 방일(放逸)하지 않은 것이 근본이 되고, 방일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며, 방일하지 않은 데서 생긴 것이요, 방일하지 않은 것이 변한 것이며,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아누다라삼약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여, 이것이나 그 밖의 다른 공덕도, 다 방일하지 않은 것이 근본이 되고, 방일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며 방일하지 않은 데서 생기고 방일하지 않은 것이 변한 것이며,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아누다라삼약삼보리와 다른 도품법(道品法)을 얻는 것이다."
칫타 장자는 존자 마하카에게 사뢰었다.
"원컨대 언제나 이 숲 속에 계십시오. 나는 목숨이 다하도록 의복, 음식과 병에 따른 약을 공양하겠습니다."
존자 마하카는 가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청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칫타 장자는 설법을 듣고는 따라 기뻐하면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존자 마하카는 공양의 이익으로 하여금 죄가 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난 뒤로, 드디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572. 계경(繫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숲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그 때에 많은 상좌 비구들은 식당에 모여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여러분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른바 눈이 빛깔에 매었는가. 빛깔이 눈에 매었는가. 이와 같이 귀의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부딪침, 뜻과 법에 있어서, 뜻이 법에 매었는가. 법이 뜻에 매었는가.'
때에 칫타 장자는 볼 일이 있어 정사를 지나다가, 여러 상좌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곧 나아가 여러 상좌들 발에 예배한 뒤에 물었다.
"존자님들은 식당에 모여 무슨 법을 이야기하고 계십니까."
상좌들은 대답하였다.
"장자여, 우리는 오늘 식당에 모여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눈이 빛깔에 매었는가. 빛깔이 눈에 매었는가. 이와 같이 귀의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부딪침, 뜻과 법에 있어서, 뜻이 법에 매었는가. 법이 뜻에 매었는가'고 하였다."
"여러 존자님들은 이 이치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장자 뜻에는 어떠한가."
장자는 대답하였다.
"내 생각에는 이른바 눈이 빛깔에 매인 것도 아니요 빛깔이 눈에 매인 것도 아니며.... 뜻이 법에 매인 것도 아니요, 법이 뜻에 매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 욕탐(欲貪)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에 매이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검은 소와 흰 소 두 마리를 한 굴레에 끼워 놓은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검은 소가 흰 소에 매었는가. 흰 소가 검은 소에 매었는가'고 하면, 그것을 바른 물음이라고 하겠습니까."
"장자여, 그것은 바른 물음이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검은 소가 흰 소를 맨 것도 아니요, 흰 소가 검은 소를 맨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굴레가 그들을 매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존자님들이여, 눈이 빛깔에 매인 것도 아니요, 빛깔이 눈에 매인 것도 아니며.... 뜻이 법에 매인 것도 아니요, 법이 뜻에 매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 욕탐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을 맨 것입니다."
때에 칫타 장자는 여러 상좌들 말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73. 아기비가경(阿耆毘迦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숲에 계시었다. 때에 아지바카[阿耆毘迦]라는 외도(外道)가 있었는데, 칫타 장자는 선인과 친구였었다. 그는 칫타 장자에게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서 있었다. 칫타 장자는 아지바카 외도에게 물었다.
"당신은 집을 나온 지 얼마나 되었는가."
"장자여, 나는 집을 나온 지 二十여 년이 되었다."
"당신은 집을 나온 지 二十 년이 지났으면, 남보다 어떤 뛰어난 법에서 완전한 지견을 얻어 안락하게 지내는가."
"장자여, 나는 집을 나온 지 二十 년이 지났지마는, 남보다 어떤 뛰어난 법에서 완전한 지견을 얻어 안락하게 지내지 못한다. 오직 벗은 몸으로, 털을 뽑고 밥을 빌고 세상에 다니면서 흙 속에 누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법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나쁜 지혜로서 생사를 뛰어 나는 길이 아니요, 등각(等覺)이라 할 수 없으며, 찬탄할 것이 아니요, 의지할 것이 못된다. 부질없이 집을 나왔다. 이름하여 二十 년을 지내면서, 벗은 몸으로 털을 뽑고 밥을 빌고, 세상에 다니면서 흙 속에 누어 있는 것이다."
"너는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가 된 지 얼마나 되는가."
"나는 세존 제자가 된 지 二十 년이 넘었다."
"칫타 장자여, 너는 사문 고오타마 제자가 된 지 二十 년이 넘었으면, 남보다 뛰어난 법에서, 훌륭하고 완전한 지견을 얻었는가."
"당신은 이제 알아야 한다. 칫타 장자는 결코, 다시는 어머니 태(胎)로 말미암아 생(生)을 받지 않을 것이요, 또 무덤을 보태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혈기(血氣)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하분결(河分結)에 있어서, 한 가지 번뇌도 끊지 못한 것이 없고, 만일 한 가지 번뇌라도 끊지 못한 것이 있다면, 장차 다시 돌아와 이 생(生)에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에 아지바카는 슬피 눈물을 흘리고 옷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칫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할까."
"만일 당신이 우리 바른 법률안에서 집을 나오면, 나는 당신께 가사와 바리 따위 필요한 도구를 공급하리라."
아지바카는 잠깐 생각한 뒤에 칫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너를 따르리니 내게 할 일을 가르치라."
때에 칫타 장자는 아지바카를 데리고 여러 상좌들에게 나아가, 상좌들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앉아 사뢰었다.
"상좌님들이여, 이 아지바카는 내 선인과 친한 사이었습니다. 이제 집을 나와 비구가 되려고 합니다. 원컨대 상좌님들은 저를 출가시켜 제도하소서. 가사나 바리 따위의 모든 도구는 내가 공급하겠습니다."
여러 상좌들은 곧 출가시켜, 수염과 머리를 깎이고 가사를 입히었다. 그는 출가하자 그 까닭을 생각하였다. '선남자(善男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나온 것은 부지런히 도를 배우고 범행을 깨끗이 닦아 아라한이 되는 데 있다'고.
574. 니건경(尼 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숲에서 여러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때에 니간타 나아타풋타[尼 若提子]는 五백 권속들과 함께 암라숲으로 와서, 칫타 장자를 꾀어 제자로 삼으려 하였다. 칫타 장자는 니간타 나아타풋타가 五백 권속들과 함께 암라숲으로 와서, 자기를 꾀어 제자로 삼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곧 그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를 마치고 제각기 한 쪽에 앉았다.
"너는 사문 고오타마를 믿어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는 삼매(三昧)를 얻었는가."
칫타 장자는 말하였다.
"나는 믿음으로써 온 것이 아니다."
"너는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순박하고 곧아서, 순박하고 곧은 데서 난 사람이다.장자여, 만일 각(覺)과 관(觀)을 쉴 수 있다면 노끈으로 바람을 잡아맬 수도 있을 것이요, 만일 각과 관을 쉴 수 있다면 한 줌 흙으로 강가[恒河]물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누웠거나 언제나 지견(知見)을 낸다.
"믿음이 앞에 있는가. 지혜가 앞에 있는가. 믿음과 지혜는 어느 것이 먼저며, 어느 것이 훌륭한가."
"믿음이 앞에 있고, 그 뒤에 지혜가 있어야 하며, 믿음과 지혜를 서로 비교하면 지혜가 훌륭하다."
"나는 이미 각과 관이 쉬게 되기를 구해, 안으로 깨끗한 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는 삼매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제이선(第二禪)을 완전히 갖추어 머무른다. 그래서 나는 낮에도 이 삼매에 머무르고, 밤에도 이 삼매에 머무르며, 밤이 새도록 언제나 이 삼매에 머무른다. 이미 이러한 지혜가 있는데,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는 아첨하고 거짓되고 곧지 않아서, 곧지 않은 데서 생긴 사람이다."
"너는 아까는 나를,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순박하고 곧아서, 순박하고 곧은 데서 생긴 사람이라고 말하더니, 지금은 어째서 '아첨하고 거짓되고 곧지 않아서 곧지 않은 데서 생긴 사람이다'고 말하는가. 만일 너의 먼저 말이 진실이라면 뒤의 말은 거짓이요, 뒤의 말이 진실이라면 먼저 말은 거짓일 것이다. 너는 아까 '나는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누었거나 언제나 지견을 낸다'고 말하였는데, 앞뒤의 조그마한 일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람을 뛰어 나는 법에서 알고 보고 안락하게 머무르는 일을 알겠는가."
"니간다 나아타풋타여, 한 가지 물음, 한 가지 말, 한 가지 주장....... 열 가지 물음, 열 가지 말, 열 가지 주장이 있는데, 너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한 가지 물음, 한 가지 말, 한 가지 주장..... 열 가지 물음, 열 가지 말, 열 가지 주장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꾀우려 이 암라숲에 와서 나를 속이려 하는가."
이에 니간타 나아타풋타는 숨이 막혀 머리를 저으려 팔짱 끼고 나가,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575. 병상경(病相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암라 부락 암라숲에서 많은 상좌 비구들과 함께 계시었다. 그 때에 칫타 장자는 병이 들어 여러 친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많은 하늘은 장자에게 내려와 말하였다.
"장자여, 네가 만일 원(願)하기만 한다면 장차 전륜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칫타 장자는 여러 하늘들에게 말하였다.
"비록 전륜 왕이 되더라도 그것도 또한 덧없는 것이요, 고통이요, 공(空)이요, <나>가 없는 것이다."
때에 장자 친족들은 장자에게 말하였다.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
칫타 장자는 친족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왜 나를 보고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고 하는가."
"너는 이제 '덧없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너를 보고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고 말한 것이다."
"여러 하늘 사람들이 내게 와서 '네가 만일 원만 한다면 장차 전륜 왕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원을 따라 과보(果報)를 얻을 것이다'고 말하기에, 나는 곧 '그 전륜 왕도 또한 덧없는 것이요, 고통이요, <나>가 없는 것이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전륜 왕에게는 무엇이 있기에 그 하늘들은 너에게 원해서 구하라고 시켰는가."
"전륜 왕은 바른 법으로 다스려 교화한다. 그러므로 하늘들은 이러한 복과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내게 원해서 그것을 구하라고 말한 것이다."
"너는 잘 생각하라.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친족들이여, 나는 이제 잘 생각하였다. 나는 다시는 어머니 태에 들어 생(生)을 받지 않을 것이요, 무덤을 보태지 않을 것이며, 핏기운을 받지 않을 것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하분결(下分結)에서 <나>가 있음을 보지 않을 것이요, 한 가지 번뇌도 끊지 못한 것이 없을 것이며, 만일 번뇌를 끊지 못하면 이 세상에 도로 태어날 것이다."
이에 장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부(跏趺)를 맺고 앉아, 바른 생각으로 여럿 앞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의복, 음식을 쌓고 또 쌓아
온갖 어려움 두루 건지고
훌륭한 복밭에 보시 행하면
이러한 다섯 가지 힘을 심는 것
이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속인으로서 세상 집에 살면서
나는 이런 이익 모두 다 얻고
온갖 어려움 이미 벗어났거니
세상에서 다 알고 친함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멀리 떠났네.
즐거운 지혜 얻기 좀 어렵기에
바르고 평등하게 깨달은 이 따르고
계(戒)를 가진 이에게 공양 올리며
갖가지 깨끗한 행 잘 닦았나니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나
성문(聲聞) 제자나 또 무니(牟尼)들
이러한 뛰어난 지견(知見) 가진 이
그 분들의 모든 훌륭한 이들에게
언제나 사부(士夫)의 보시 행하면
마침내 큰 결과 얻어 거두리.
갖가지 많은 보시 자꾸 행하고
모든 좋은 복밭에 보시 행하면
이 세상에서 목숨 마치고
저 천상에 화(化)해 난 뒤에
다섯 가지 향락을 두루 갖추고
마음은 한량없이 즐거우리니
이러한 묘한 과보 거두어 얻음
아끼는 마음 없기 때문이거니
어디고 태어나는 그 곳곳마다
일찍 즐겁지 않은 곳 없었네.
칫타 장자는 이 게송을 말하고는 이내 목숨을 마쳐 불번열천(不煩熱天)에 났다. 그 때에 칫타 장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여기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다. 저 염부제로 가서 여러 상좌 비구들께 예배하여야 한다'고.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듯하는 동안에 하늘 신통 힘으로써, 암라숲으로 내려가 몸에서 하늘빛을 놓아 암라숲을 두루 비추었다. 때에 어떤 비구는 밤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한데를 거닐다가, 훌륭한 광명이 숲을 두루 비추는 것을 보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누구의 하늘빛인가.
저 허공에 머물러 있나니
마치 저 순금 산(純金山)이나
염부단(閻浮檀)의 깨끗한 빛 같네.
칫타 천자(天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저 천상, 인간의 완인
고오타마께서 아들이라 일컬었고
이 암라숲 속에 있던
칫타 장자 그 사람이네.
깨끗한 계를 갖춤으로써
생각을 잡아매어 스스로 고요하여
해탈한 몸을 완전히 갖추고
지혜의 몸도 또한 그러하니라.
나는 법을 알기에 여기 왔거니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하네.
장차 저기서 열반하리
이 법은 법으로서 그러하니라.
칫타 천자는 게송을 마치자 곧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