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주제별 정리/수행

수행방법 (6)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노력하라

다르마 러브 2013. 8. 29. 12:07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로서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하면 현세에서 무궁한 즐거움을 누리고 번뇌를 없애려 하면 곧 없앨 수 있다. 일곱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로서 법을 알고, 이치를 알며, 때를 알고, 자기를 알며, 만족할 줄을 알고,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을 알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곱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는 어떻게 법을 아는가. 비구가 법을 안다는 것은 이른바 계경, 기야, 게송, 인연, 비유, 본말, 광연, 방등, 미증유, 광보, 수결, 생경 등을 아는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법을 모르면 十二부 경전을 모르는 것이니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능히 법을 알기 때문에 그는 법을 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을 아느니라.

비구는 어떻게 뜻을 이해하는가. 비구는 여래의 성질을 알고 깊은 이치를 이해하여 의심이 없어야 한다. 만일 비구로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이에 비구로서 깊은 이치를 이해하기 때문에 이치를 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능히 이치를 분별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적당한 때를 아는가. 비구는 적당한 때를 알아, 관(觀)을 닦아야 할 때에는 곧 관을 닦고 지(止)를 닦아야 할 때에는 곧 지를 닦으며 침묵해야 할 때에는 침묵할 줄을 알고 가야 할 때에는 갈 줄을 알며 외워야 할 때에는 외울 줄을 알고 남을 가르쳐야 할 때에는 가르칠 줄을 알며 말해야 할 때에는 말할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비구로서 이것을 몰라 지하고 관하기와 나아가고 그쳐야 할 때를 알지 못하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만일 비구로서 그 때를 알아 적당한 때를 잃지 않으면 그것을 일러 적당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그 적당한 때를 아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자기 몸을 닦는가. 비구로서 자기를 알아 '나는 지금 이런 소견과 들음과 생각과 앎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혜가 있어 걸음걸이와 나아가고 그치기는 항상 바른 법을 따른다'고 알아야 한다. 만일 비구로서 스스로 지혜의 알맞음과 드나들기와 가고 오기를 알아서 행하지 못하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스스로 자기를 닦아 나아가고 그치기의 적당함을 알면 그것이 이른바 비구로서 능히 자기를 안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비구는 만족할 줄을 아는가. 비구는 스스로 잠자고 깨고 앉고 눕고 거닐고 나아가고 그치기의 적당함을 헤아려 능히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비구로서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능히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만족할 줄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러 비구가 만족할 줄을 안다고 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대중 가운데 들어 갈 줄을 아는가. 이에 비구는 대중을 분별하여 '이것은 크샤트리야 무리다. 이것은 바라문 무리다. 이것은 장자 무리다. 이것은 사문 무리다. 나는 이 법으로서 정당히 저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래서 말해야 할 경우와 침묵해야 할 경우를 모두 잘 안다. 만일 비구로서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을 모르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그는 비구로서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을 알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을 아는 이라 한다. 이것이 이른바 대중 가운데 들어갈 줄을 안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비구는 사람들의 성질을 아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어떤 한 사람은 동산으로 가서 비구를 친히 보려 하지마는 또한 사람은 비구를 보러 절에 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동산으로 가서 비구를 친히 보려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그 한 사람은 비구에게 가서 절후의 안부를 묻고 또 한 사람은 절후 안부를 물으러 절에 가지 않는다. 절에 가는 사람이 가장 제일로서 가지 않는 사람보다 훌륭하니라.

비구들이여, 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그 한 사람은 비구에게 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또 한 사람은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들으러 비구에게 가지 않는다.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사람은 듣지 않는 사람보다 훌륭하니라.

비구들이여, 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그 한 사람은 능히 그 법을 관찰하고 받들어 가지며 외우지마는 또 한 사람은 능히 그 법을 받들어 가지고 외우지 못한다. 법을 받들어 가지고 외우는 사람이 더 훌륭하니라.

비구들이여, 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그 한 사람은 법을 듣고는 그 뜻을 이해하고 또 한 사람은 법을 듣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 더 훌륭하니라.

비구들이여, 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그 한 사람은 법을 듣고는 그 법을 성취하고 또 한 사람은 법을 듣지도 않고 법을 성취하지도 못한다. 법을 듣고 법을 성취하는 사람이 더 훌륭하니라.

비구들이여, 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그 한 사람은 법을 들으면 능히 견디어 수행하고 분별하여 바른 법을 보호해 가지고 또 한 사람은 능히 견디어 그 법을 수행하지 못한다. 능히 법을 수행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 중에서 가장 높고 제일이니라.

마치 소 젖에서 타락이 나오고 타락에서 소가 나오며 소에서 제호가 나오면 제호가 제일이어서 어느 것도 따르지 못하는 것처럼 만일 어떤 사람이 잘 수행하면 그는 제일이어서 아무도 따르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사람의 성질을 관찰하는 것으로서 만일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는 비구가 아니다. 비구로서 법을 듣고 그 뜻을 분별하면 그는 최상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사람들의 성질을 관찰하느니라. 만일 비구로서 이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하면 현재에서 즐겁고 함이 없는 것이요 번뇌를 끊고 의심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방편을 구해 일곱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대정장 2/728 하~729 중 ;『한글 증일아함경』2, pp. 145~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