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雜阿含經) 43권
1164. 바라연경(波羅延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아라아나시이국 선인(仙人)이 살던 사슴동산에 계셨다. 때에 많은 비구들은 강당에 모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여러분, 세존께서 파아라아야나팃사메테야파나[波羅延低舍彌德勒]의 물음에 대답하신 대로 한다면
만일 두 끝[邊]을 아는 사람이라면
중간에도 아주 집착이 없으리니
그를 일컬어 대장부라 하리라.
다섯 가지 탐욕을 돌아보지 않아서
거기에는 번뇌의 쇠사슬 없고
얽맴의 근심에서 멀리 뛰어나니라.
여러분, 거기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어떤 것이 끝[邊]인가. 어떤 것이 <두 끝>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며 어떤 것이 <얽맴>인가. 어떻게 생각하고 지혜로써 알고 깨달음으로서 깨달아야, 지혜로써 아는 바와 깨달음으로서 깨닫는 바로서 괴로움의 끝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대답하였다.
"여섯 가지 안 감관이 <한 끝>이요, 여섯 가지 바깥 경계가 그 <둘째 끝>이며, 느낌이 그 <중간>이요, 욕망이 그 <얽맴>이다. 느낌을 익히는 사람은 여기 저기의 인(因)을 얻어 몸이 차츰 자라나 세상에 나게 된다. 여기서 이 <법>을 지혜로서 알고 깨달음으로서 깨달으면, 그 지혜로써 아는 바와 깨달음으로서 깨닫는 바로써, 괴로움의 끝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과거 세상이 그 <한 끝>이요, 미래 세상이 그 <둘째 끝>이며, 현재 세상이 그 <중간>이요, 욕망이 그 <얽맴>이다. 그 욕망을 익히면 여기 저기의 인에 몸이 차츰 닿고 자라나 세상에 나게 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즐거운 느낌이 그 한 끝이요, 괴로움의 느낌이 그 둘째 끝이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그 중간이요, 욕망이 그 얽맴이다. 그 욕망을 익히면 여기 저기서 얻는 바의 제 몸이 차츰 닿고 자라나 세상에 나게 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존재[有]가 그 한 끝이요, 쌓임이 그 둘째 끝이며, 느낌이 그 중간이요 욕망이 그 얽맴이다. (이와 같이 널리 말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몸이 그 <한 끝>이요 몸의 쌓임이 그 <둘째 끝>이며 욕망이 그 얽맴이다. (이와 같이 널리 말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우리들 여러 말은 다 같지 않다. 이른바 아까부터 갖가지로 달리 말하여 틀림없이 알기를 바랄 수 없다. 세존께서는 어떤 말씀이 계신가. 파아라아야나팃사메테야파나가 물은 경에 대해서 우리는 세존께 나아가 자세히 여쭈어 보자. 그래서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는 받들어 가지자."
그 때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아까 여러 비구들은 강당에 모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파아라아야나팃사메테야파나의 물은 경에 있어서의 이른바 두 끝,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대해 어떤 사람은 말하였나이다. 여섯 가지 안의 감관은 그 <한 끝>이요, 여섯 가지 바깥 경계는 그 <둘째 끝>이며, 느낌은 그 <중간>이요 욕망은 그 <얽맴>이라'고. (앞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모두 결정하지 못하였나이다. 그래서 지금 일부러 세존님께 나아와 그 이치를 자세히 여쭙는 것이옵니다. 저희들의 말에 어느 것이 그 이치에 맞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들 말은 다 옳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어떤 다른 경을 말하리라 .나는 파아라아야나팃사메테야파나를 위해 어떤 다른 경을 말하리라. 나는 파아라아야나팃사메테야파나을 위해 어떤 다른 경을 말하였다. 즉 닻임[觸]은 그 한 끝이요, 닿임의 쌓임은 그 둘째 끝이며, 느낌은 그 중간이요, 욕망은 그 얽맴이다. 욕망을 익히면 여기 저기서 얻은 바 몸의 닿임을 인연하여 자라나 세상에 나게 된다. 이 법에 대해서 지혜로써 알고 깨달음으로써 깨달으면, 지혜로써 아는 바와 깨달음으로서 깨달은 바로서 괴로움의 끝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65. 빈두라경(賓頭羅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존자 핀돌라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瞿師羅] 동산에 있었다. 때에 바차(婆差)국왕 우데나[優陀延那]는 존자 핀돌라에게 나아와 서로 문안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존자 핀돌라에게 사뢰었다.
"물을 일이 있습니다. 혹 한가하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존자 핀돌라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대왕은 우선 물으시오. 아는 것이면 대답하리다."
우데나왕은 존자 핀돌라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새로 배우는 젊은 비구로서, 이 법률 안에서 중이 된 지 오래지 않았는데, 매우 안락하게 지내면서 모든 감관은 평화스럽고 얼굴은 청정하며 피부는 깨끗하고 고요하기를 즐겨해 움직임이 적으며, 산 들짐승 같은 그 마음을 다른 곳에 맡겨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닦아 가져 순일하고 청정할 수 있습니까."
존자 핀돌라는 대답하였다.
"부처님 말씀대로 한다면,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께서는 그 알고 보시는 대로 비구들을 위해 말씀하셨소. '너희들은 늙은 여인을 보거든 어머니라 생각하고, 중년 여인을 보거든 누이나 동생으로 생각하고, 어린 처녀를 보거든 딸이라 생각하라'고. 이 인연으로 젊은 비구로서 이 법률 안에서 중이 된 지 오래지 않았지마는,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면서 모든 감관은 평화롭고 얼굴은 청정하며 피부는 깨끗하고 고요하기를 좋아해 움직임이 적으며, 산짐승 같은 그 마음을 다른 데 맡겨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닦아 가져 순일하고 청정하오."
우데나왕은 존자에게 사뢰었다.
"지금 세상의 모든 탐하고 구하는 마음은, 만일 늙은 여인을 보고는 어머니라 생각하고, 중년 여인을 보고는 누이나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어린 처녀를 보고는 딸이라 생각한다면, 그 때에는 사모하는 마음도 따라서 일어나 탐욕이 불붙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불붙을 것입니다. 다시 그보다 더 훌륭한 이유라 없습니까."
존자 핀돌라는 말하였다.
"다시 이유가 있소. 세존님 말씀대로 한다면,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께서는 그 알고 보신대로 비구들을 위해 말씀하셨소. '이 몸은 발에서 머리에 이르기까지 뼈를 줄기로 해 살을 바르고 엷은 가죽으로 덮고 갖가지 더러운 물건이 가죽 안에 가득 차 있다. 두루 관찰하면 털, 손톱, 발톱, 티끌, 때, 침, 껍질, 살, 흰 뼈, 힘줄, 염통, 간장, 허파, 쓸개, 콩팥, 창자, 밥통, 날 창자, 익은 창자, 눈물, 땀, 기름덩이, 골수, 가래, 고름, 피, 골, 똥, 오줌이다'고.
대왕이여, 이 이유로 젊은 비구로서 이 법률 안에서 중이 된 지 오래지 않았어도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며 순일하고 원만하며 청정하오."
우데나왕은 존자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가볍고 빨라, 만일 더럽다고 보면 깨끗하다는 생각도 따라서 일어날 것입니다.
혹 다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젊은 비구로 하여금 이 법률 안에서 중이 된 지 오래지 않았어도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며 순일하고 원만하며 청정하게 합니까."
"대왕이여, 이유가 있소. 세존님 말씀과 같다면,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께서는 그 알고 보신대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소.
'너희들은 감관의 문을 지키고 그 마음을 잘 거두어 잡아야 한다. 혹 눈이 빛깔을 볼 때에도 그 빛깔 모양을 취(取)하지 말고, 좋은 형상을 따라 취해 그것을 굳세게 잡지 말라. 만일 눈을 거두어 잡아 머무르지 않으면 곧 세상에 대한 탐욕과 사랑의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세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눈의 계율을 받들어 가져야 한다.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닿임, 뜻의 법에 있어서도 그렇게 하여야 하고, 뜻의 계율을 받들어 가져야 하느니라'고."
그 때에 마차왕 우데나는 존자 핀돌라에게 말하였다.
"좋고 좋습니다. 좋은 설법입니다. 모든 감관의 계율을 받들어 가진다는 것은, 존자 핀돌라님, 나도 그와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몸을 단속하지 않고, 모든 감관의 계율을 가지지 않고, 그 마음을 한결같이 하지 못한 채로, 궁중에 들어가면 마음은 무서운 탐욕을 내어 불붙고 어리석음이 불붙습니다. 비록 한가한 방에 혼자 있더라도 그 세 가지 독(毒)은 마음을 불태우거늘 하물며 궁중이겠습니까.
또 나는 어떤 때에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모든 감관을 잘 거두어 잡고, 그 생각을 오로지해 궁중에 들어가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일어나 그 마음을 태우지 않습니다. 안 궁중에서도 그 몸을 태우지 않고 그 마음을 태우지 않거늘 하물며 한가하고 혼자인 때이겠습니까. 이로서 보면 이 이유는 젊은 비구로 하여금 이 법률 안에서 중이 된 지 오래지 않았어도 안온하고 즐겁게 지내며 순일하고 원만하며 청정하게 할 것입니다."
때에 마차왕 우데나는 존자 핀돌라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1166. 수족유경(手足喩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이 있기 때문에 잡고 놓음이 있는 것을 알고, 발이 있기 때문에 가고 옴이 있는 것을 알며, 관절이 있기 때문에 굽히고 폄이 있는 것을 알고, 배가 있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름이 있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눈이 있기 때문에 눈의 닿임을 인연해 생기는 안의 감각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손이 없으면 잡고 놓음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발이 없으면 가고 옴을 알지 못할 것이며, 관절이 없으면 굽히고 폄을 알지 못할 것이요, 배가 없으면 배고프고 목마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만일 눈이 없으면 눈의 닿임을 인연해 생기는 안의 감각 즉, 괴롭거나 즐겁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67. 구경(龜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에 강속에 풀이 있는데 거북이 그 속에 살고 있었다. 때에 어떤 굶주린 여우가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멀리서 거북 벌레를 보고 빨리 와서 움켜잡았다. 거북은 그것이 온 것을 보고 곧 여섯 기관(四지와 머리와 꼬리)을 감추었다. 여우는 지켜보면서 머리나 발을 내기를 기다려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오랫동안 지켰으나 거북 벌레는 머리나 발을 영 내지 않았다. 여우가 배가 고파 성을 내면서 떠났다.
비구들이여, 너희들도 오늘 그런 줄을 알아야 한다. 악마 파아피이야스는 항상 너희들의 틈을 엿보면서, 너희들이 눈으로 빛깔을 집착하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며 몸으로 닿임을 깨닫고 뜻으로 법을 생각하기를 바라면서, 여섯 가지 경계에 염착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언제나 눈의 계율을 잡아가져 머물러야 한다. 눈의 계율을 가져 머무르면 악마 파아피이야스는 그 틈을 타지 못해, 너희들은 나오거나 반연하는 데에 자유로울 것이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느니라. 그 여섯 가지 감관을 내거나 반연하거나 그 틈을 타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거북 벌레는 여우를 두려워해
여섯 가지를 껍질 안에 감춘다.
비구는 그 마음을 잘 거두어
모든 감각과 생각을 감추나니
그를 의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엎어 말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68. 황맥경(황麥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보리를 네거리에 두었을 때 여섯 장정이 막대기로 함께 두드리면 잠깐 동안에 티끌처럼 부서지는데, 일곱째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거듭 두드리면,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보리 묶음을 여섯 사람이 함께 두드리고 일곱 사람이 거듭 두드리면 아주 잘게 부서지겠는가."
비구들은 사뢰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섯 가지 닿임 감관에 두드려 맞는다. 어떤 것이 여섯인가. 이른바 눈의 닿임 감관에 항상 두드려 맞고, 귀, 코, 혀, 몸, 뜻의 닿임 감관에 항상 두드려 맞는다. 저 어리석은 사람은 여섯 가지 닿임 감관에 두드려 맞는데, 다시 미래 세상의 존재를 사모해 구하는 것은 일곱째 사람이 거듭 두드려 부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은 나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흔들림[動搖)이요,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흔들림이다. 미래에 있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흔들림이요, 미래에 없을 것이다 하면 그것도 흔들림이다. 형상이 있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흔들림이요, 형상이 없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흔들림이다. 생각이 있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흔들림이요, 생각이 없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흔들림이며, 생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흔들림이다.
흔들리기 때문에 병이요, 흔들리기 때문에 종기며, 흔들리기 때문에 가시요, 흔들리기 때문에 집착이다. 흔들림을 바로 관찰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얻어 많이 닦아 익혀서 머무르고 생각을 잡아매어 바르게 아느니라.
흔들림과 같이 사량(思量)은 허망하여 행(行)이 있다. 그래서 느낌[受]를 <나>라고 하면 그것은 곧 욕망[愛]이요, 내 것이라 하면 그것도 곧 욕망이다. 미래에 있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욕망이요, 미래에 없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욕망이다. 형상이 있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욕망이요, 형상이 없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욕망이다. 생각이 있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욕망이요, 생각이 없을 것이라 하면 그것도 욕망이며,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것이라 하면 그것도 욕망이다.
욕망 때문에 병이 되고, 욕망 때문에 종기가 되며, 욕망 때문에 가시가 된다. 만일 욕망은 괴로움을 낸다는 것을 잘 생각하고 관찰하거든 욕망을 떠난 마음에 많이 머물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되어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지나간 세상에 아수라는 군사를 일으켜 제석천과 싸웠다. 때에 제석천은 三十三천에 알렸다.
'오늘 여러 하늘들과 아수라가 싸운다. 만일 여러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지거든 아수라를 사로잡아 다섯 매듭으로 묶어 하늘 궁전으로 데리고 돌아오자.'
아수라는 그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아수라 군사와 여러 하늘들이 싸운다. 만일 아수라가 이기고 여러 하늘들이 지거든 제석을 사로잡아 다섯 매듭으로 묶어 아수라 궁전으로 돌아 오라.'
그 싸움에서 여러 하늘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때에 三十三천은 베파치티이 아수라왕을 사로잡아 다섯 매듭으로 묶어 하늘 궁전으로 돌아왔다. 베파치티 아수라왕은 다섯 매듭으로 묶인 채 정법전(正法殿) 위에 있으면서 갖가지 하늘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즐기고 있었다. 베파치티이 아수라왕은 생각하였다. '오직 아수라만이 어질고 착하며 총명하고 지혜롭다. 여러 하늘들이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그만 아수라 궁전으로 돌아가리라'고.
이렇게 생각할 때에 그는 곧 다섯 가지 매듭으로 몸이 묶인 것을 스스로 보았고, 여러 하늘의 다섯 가지 쾌락은 저절로 변해 사라졌다. 베파치티이 아수라왕은 다시 생각하였다.
'여러 하늘들은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고 총명하다. 아수라가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만 이 하늘 궁전에 머무르리라'고. 이렇게 생각할 때에 몸이 다섯 가지 묶음에서 풀려진 것을 스스로 보았고, 여러 하늘들의 다섯 가지 쾌락은 저절로 도로 나왔다.
베파치티이 아수라왕은 이러한 미세한 결박이 있다. 그러나 악마 파아피이야스의 결박은 더욱 미세하여 이 마음이 흔들릴 때에는 악마는 곧 그 따라 결박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악마는 곧 그 따라 풀어준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흔들리지 않은 마음이 많이 머물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되도록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69. 금경(琴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로서 눈에 분별되는 빛깔을 인연하여 하고자 하거나 탐하거나 친하거나 사모하거나 혹은 결정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거든 그 여러 가지 마음을 잘 막고 단속하라. 왜 그러냐 하면, 그것들은 다 두려운 길로서 장애와 어려움이 있고, 그것은 나쁜 사람의 의지할 바요 착한 사람의 의지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막고 단속하여야 한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비유하면 농부가 좋은 밭의 모종을 가졌어도 그 밭지기가 게으르고 방일하면 외양간의 소가 나와 그것을 먹는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가 여섯 가지 닿임의 감관에서 방일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만일 좋은 밭에 모종이 있을 때 그 밭지기가 방일하지 않으면 외양간의 소가 사납지 않고, 설령 밭에 들어왔더라도 그것을 다 몰아낸다. 이른바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다섯 가지 욕망의 향락에 대해서 그 마음과 뜻과 의식을 스스로 잘 거두어 단속하고 마음을 다해 멸하게 한다.
만일 좋은 밭에 모종이 있을 때, 그 밭지기가 스스로 방일하지 않아서 외양간의 소가 밭 경계에 들어가더라도 왼손으로는 코를 끌고 오른손으로는 막대기를 들고 온 몸을 두드려 그 밭에서 몰아낸다면, 비구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소가 고통을 받은 뒤에도, 마을에서 집으로 집에서 마을로 가는 도중에 다시 전과 같이 그 밭의 모종을 먹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러냐 하면, 전에 밭에 들어갔다가 매를 맞아 고통을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마음이나 뜻이나 의식으로 여섯 가지 닿임의 감관에 대해 몹시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떠나, 안으로 마음이 편안히 머무르고 제어해 한 마음이 되게 하느니라.
지나간 세상에 어떤 왕은 일찍 없었던 좋은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몹시 사랑하고 즐겨하면서 거기 빠지고 집착해 여러 대신들에게 물었다.
'저것은 무슨 소리인가. 매우 사랑스럽고 즐겨할 만하구나!'
대신들은 아뢰었다.
'저것은 거문고 소리입니다.'
왕은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저 소리를 가져오너라.'
대신들은 명령을 받고 곧 가서 거문고를 가지고 와서 아뢰었다.
'대왕이여, 이것이 거문고이온데 좋은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내게는 거문고가 필요 없다. 아까 듣던 그 사랑스럽고 즐겨할 만한 소리나 가지고 오너라.'
'이런 거문고에는 여러 가지 기구가 있습니다. 즉 자루도 있고 바탕도 있으며, 여(麗)도 있고 줄도 있으며, 가죽도 있어서, 기술이 있는 사람이 이것을 탈 때에 여러 가지 기구의 인연을 얻어서 비로소 보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기구를 얻지 못하고는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아까 들은 소리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요 그것은 이미 사라져서, 가지고 올 수 없습니다.'
그 때에 대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그런 거짓 물건을 어디 쓸 것인가. 세상의 거문고란 다 거짓 물건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을 빠지게 하고 집착하게 하는구나! 너희들은 이것을 가지고 가서 조각조각 부수어 시방(十方)에 버려라.'
대신들은 명령을 받고 백 조각으로 부수어 여러 곳에 버렸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과 느낌과 생각[想]과 뜻[思]과 욕심[欲]의 이 모든 법은 덧없어 함[爲]이 있는 것이요 마음은 인연으로 생기는 줄을 알면서, 곧 '이것은 <나>요 <내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른 때에 다 없어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평등하고 바른 지혜로 참다이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70. 나창경(癩瘡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나병 든 사람이 온 몸에 부스럼이 헐었는데 갈대 속으로 들어가면, 가시나 바른 같은 많은 잎사귀에 다쳐 몇 곱이나 고통이 더한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의 여섯 가지 닿임 감관으로 온갖 고통을 받는 것도 그와 같다. 저 나병 든 사람이 바늘이나 가시 같은 풀 잎사귀에 다쳐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는 그 성질이 모질고 사나워 여섯 가지 닿임 감관에 부딪치면 성을 내어 나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저 나병 든 사람과 같다. 왜냐 하면,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그 마음이 나병 부스럼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율의(律儀)와 율의 아님을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율의며 어떤 것이 율의 아닌 것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는 마음에 드는 빛깔에는 탐욕을 내어 집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에는 성을 낸다. 그래서 차례차례로 많은 감각과 생각을 내어 계속하면서 그 허물과 근심을 보지 못하고, 설령 그 허물과 근심을 보더라도 그것을 없앨 줄을 모른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율의 아님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율의인가.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혹 눈으로 빛깔을 보더라도 마음에 드는 빛깔에 탐욕을 내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에도 성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차례로 많은 감각과 생각을 내지 않고 계속 머물러 빛깔의 허물과 근심을 본다. 그 허물과 근심을 보고는 능히 그것을 버린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이것을 율의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71. 육종중생경(六種衆生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빈집에서 놀다가 여섯 가지 중생을 얻었다고 하자. 처음에는 개를 얻었다. 곧 그 개를 붙들어 한 곳에 매어 두었다. 다음에는 새를 얻었고, 다음에는 독사, 다음에는 여우, 다음에는 쉬슈우마아라[失收摩羅], 다음에는 원숭이를 얻었다. 그는 이런 중생들을 얻어 모두 한 곳에 매어 두었다.
그 개는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고, 새는 항상 허공으로 날으고자 하며, 뱀은 늘 구멍으로 들어가고자 하고, 여우는 무덤 사이로 가려고 하며, 쉬슈우마아라는 언제나 바다로 들어가려 하고, 원숭이는 산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 여섯 가지 중생을 모두 한 곳에 매어 두었지마는, 즐겨하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에, 각각 편안한 곳으로 가기를 희망하여 서로 즐겨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곳에 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각기 그 힘을 다해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지마는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여섯 가지 감관의 갖가지 경계에는 각각 제가 즐기는 경계를 구하고 다른 경계를 원하지 않는다. 눈은 언제나 사랑할 만한 빛깔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은 곧 싫어한다. 코는 항상 마음에 드는 냄새를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냄새는 곧 싫어한다. 혀는 항상 마음에 드는 맛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맛은 곧 싫어한다. 몸은 언제나 마음에 드는 닿임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닿임은 싫어한다. 뜻은 언제나 마음에 드는 법을 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은 곧 싫어하느니라.
이 여섯 감관의 갖가지 향하는 방향과 갖가지 경계는 각각 다른 감관의 경계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여섯 감관도 세력이 있는 자는 능히 자유로이 제 경계에 따르게 할 수 있다. 마치 저 장정이 여섯 가지 중생을 든든한 기둥에 매어 두면, 그것들은 바로 힘을 내어 마음대로 가려고 하지마는 이리저리 달리다가 그만 지쳐 버리고 마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밧줄로 매었기 때문에 마침내 기둥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 비유를 말하는 것은 너희들을 위해 그 이치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여섯 가지 중생이란 여섯 가지 감관에 비유한 것이요, 든든한 기둥이란 몸의 생각하는 곳[身念處]에 비유한 것이다. 만일 몸의 생각하는 곳을 잘 닦아 익히면,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는 빛깔이 있어서, 사랑할 만한 빛깔을 보아도 집착하지 않고, 사랑할 만한 빛깔을 보아도 집착하지 않고, 사랑할 만하지 않은 빛깔도 싫어하지 않는다.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닿임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뜻의 법에 있어서 마음에 드는 법도 구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법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몸의 생각하는 곳을 부지런히 닦아 익혀 항상 거기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72. 독사경(毒蛇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흉악하고 독한 독사 네 마리가 한 상자 안에 담겨 있다. 때에 어떤 장정은 어리석지 않고 총명하며 지혜가 있어서, 즐거움을 구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며, 살기를 구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어떤 사람은 그 장정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이 상자에 든 독사를 가져다 어루만지고 목욕시키며 은혜로이 친근히 하고 먹이를 먹여 기르되, 때를 따라 잡아내고 넣어라. 만일 네 마리 독사 중에 혹 괴로워하는 놈이 있으면 너를 죽이거나 혹은 죽음에 가깝도록 할 것이니 너는 조심해 막아내어야 한다.'
그 때에 그 장정은 두려워해 달아났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갑자기 다섯 사람 원수가 칼을 빼어 들고 쫓아와서 기어코 죽이려 할 것이니 너는 조심해 막아내어야 한다.'
그 때에 그 장정은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사람 칼을 뺀 원수를 두려워해 달아났다. 사람은 다시 말하였다.
'장정이여, 네 안에 여섯 도적이 있어, 따라 다니면서 너를 엿보다가 틈만 얻으면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니 너는 조심해 막아내어야 한다.'
그 때에 그 장정은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사람 칼을 뺀 원수와 안의 여섯 도적을 두려워해, 도로 달려 빈 마을로 들어갔다. 그 마을의 빈집을 보매 위태로이 썩어 허물어졌고, 그 안에 있는 온갖 나쁜 물건을 잡아 보매 모두 연해서 든든한 것이 없었다. 사람은 다시 말하였다.
'장정이여, 이 빈 마을에는 장차 도적 떼가 와서 반드시 너를 해칠 것이다.'
그 때에 그 장정은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사람 칼을 뺀 도적과 안의 여섯 나쁜 도적과 빈 마을의 도적 떼를 두려워해 다시 달아났다. 그 길은 갑자기 큰 강에 다달았는데 물결은 매우 사납고 급하였다. 이쪽 언덕에는 온갖 무서운 것만 보일 뿐이요, 안온하고 즐거우며 청정하고 두려움이 없는 저쪽 언덕을 보았지마는, 저쪽 언덕으로 갈 수 있는 다리나 배가 없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많은 풀과 나무를 모아 묶어서 떼배를 만들고, 손발로 방편을 삼아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리라'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곧 풀과 나무를 주워 언덕을 의지해 묶어서 떼배를 만들고, 손발로 방편을 삼아 흐름을 끊고 가로 건너갔다.
이리하여 그 장정은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사람 칼을 뺀 원수와 안의 여섯 나쁜 도적을 벗어나고 또 빈 마을의 떼도적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강을 건너서는 이쪽 언덕의 온갖 두려움을 떠나 안온하고 즐거운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되었느니라.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유를 말했으니 이제 그 뜻을 설명하리라. 상자란, 추한 네 가지 요소로 된 이 몸뚱이에 비유한 것이다. 네 가지 요소로 된 정혈(精血)의 몸은 더러운 음식으로 기르고 목욕시키며 옷을 입히지마는, 그것은 덧없어, 변하고 무너지며 위태하고 연한 법이니라.
독사란, 네 가지 요소 즉, 땅 세계, 물 세계, 불 세계, 바람 세계에 비유한 것이다. 만일 땅 세계와 싸우면 그 몸을 죽이거나 죽음에 가깝도록 할 것이다. 물, 불, 바람과의 싸움에 있어서도 그와 같느니라.
칼을 뺀 다섯 원수란, 다섯 가지 받아들이는 쌓임[五受陰]에 비유한 것이다. 안의 여섯 도적이란 여섯 가지 사랑과 기쁨에 비유한 것이다. 빈 마을이란, 여섯 가지 감관에 비유한 것이다. 착한 남자들이여, 눈의 감관을 관찰하면 그것은 덧없어 변하고 무너지는 것이요, 눈을 가지고 있는 자도 또한 덧없고 거짓인 법이다. 귀, 코, 혀, 몸, 뜻의 감관도 그와 같느니라.
빈 마을의 떼도적이란, 바깥의 여섯 가지 경계에 비유한 것이다. 눈은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의 해침을 받는다. 귀, 호, 혀, 몸의 닿임도 그러하며, 뜻은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의 해침을 받는다. 사나운 흐름이란, 네 가지 흐름 즉, 욕심 세계의 흐름, 형상 세계와 무형 세계의 흐름, 소견의 흐름, 무명의 흐름에 비유한 것이다.
강이란, 세 가지 욕망 즉, 욕심 세계의 욕망, 형상 세계의 욕망, 무형 세계의 욕망에 비유한 것이다. 두려움이 많은 이쪽 언덕이란, 존재하는 몸에 비유한 것이다. 맑고 시원하며 편안하고 즐거운 저쪽 언덕이란, 남음 없는 열반에 비유한 것이다. 떼배란, 여덟 가지 바른 길에 비유한 것이다. 손발을 방편 삼아 흐름을 끊고 건넌다는 것은 꾸준히 노력하고 용맹을 내어 저쪽 언덕에 이르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바라문이 사는 곳이란,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에게 비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스승은 자비로서 제자들을 안위시킴을 의무로 삼는다. 내가 할 일은 이미 마쳤다. 너희들도 이제 그 할 일을 하여야 한다. 즉, 비고 고요한 곳이나 나무 밑에서 자리를 깨끗이 하고 풀을 깔고 앉거나, 한데나 무덤 사이의 외진 곳에 앉아 부지런히 선정을 닦고, 부디 방일함으로서 뒷날에 후회하게 하지 말라. 이것이 곧 나의 가르치는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73. 고법경(苦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고오시타아라아마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일체의 괴로운 법의 쌓임과 사라짐과 맛과 근심과 떠남을 참다이 알고 본다. 그래서 다섯 가지 욕망을 마치 불구덩이처럼 본다. 그렇게 관찰하고는 다섯 가지 욕망에 대한 탐하는 욕심과 사랑하는 욕심과 생각하는 욕심의 집착이 다시는 그 마음을 덮지 않는다. 그 욕심을 알기 때문에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스스로 그 욕심을 막고 닫는다.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거슬러 막고 닫으면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어느 곳에서도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는 법은 그 마음에서 새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일체의 괴로운 법의 쌓임과 사라짐과 맛과 근심과 떠남을 참다이 알고 보는 것이라 하는가.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이 괴로움의 진리를 참다이 알아서 <이것은 괴로움의 쌓임이요, 이것은 괴로움의 사라짐이며, 이것은 괴로움의 사라지는 길>이라고 참다이 안다. 이것을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일체의 괴로운 법의 쌓임과 사라짐과 맛과 근심과 떠남을 참다이 알고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다섯 가지 욕망을 불구덩이처럼 보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다시는 그 마음을 덮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촌락 끝에 깊은 구덩이가 있고, 그 속에는 왕성한 불이 가득히 차 있으나 연기나 불꽃이 없다. 때에 어떤 사람은 어리석거나 미련하지 않고 총명하고 지혜로와, 즐거움을 즐겨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며,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미워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불구덩이 속에는 왕성한 불이 있다. 만일 내가 저 속에 떨어지면 죽을 것은 의심 없다'고. 그래서 거기서 멀리 하려는 마음을 내고, 멀리 하기를 생각하고 원한다. 이와 같이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다섯 가지 욕망을 불구덩이처럼 보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다시는 그 마음을 덮지 않느니라.
만일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거슬러 막고 거슬러 알면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그 마음에서 새지 않는다.
비유하면 촌락 끝에 나림( 林)이 있어 많은 가시덤불이 있다. 어떤 장정이 할 일이 있어 그 숲속에 들어가면 전후, 좌우, 상하에는 모두 가시뿐이다. 그 때에 그 장정은 바른 생각으로 다니고 바른 생각으로 오가며, 바른 생각으로 눈을 뜨고 바른 생각으로 단정히 보며, 바른 생각으로 몸을 굽힌다. 왜냐 하면, 날카로운 가시로 하여금 몸을 다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도 그와 같다. 혹 촌락이나 도시를 의지해 살면,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리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그 마음을 잘 잡아, 바른 생각으로 편안히 머무르고 바른 생각으로 다니며, 바른 생각으로 눈을 뜨고 바른 생각으로 관찰한다. 왜냐 하면, 날카로운 가시로 하여금 거룩한 법률을 다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것을 날카로운 가시가 거룩한 법률을 다치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마음에 들고 사랑하고 생각할 만한 빛깔이니, 이것을 <날카로운 가시가 거룩한 법률을 다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마음에 들고 사랑하고 생각할 만한 빛깔이 거룩한 법률을 다치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욕망이니, 눈으로 빛깔을 분별하면 사랑하는 생각을 내어 욕락(欲樂)을 자라게 한다. 귀로 소리를 분별하고 코로 냄새를 분별하며, 혀로 맛을 분별하고 몸으로 닿임을 분별하면, 사랑하는 생각을 내어 욕락이 자라게 된다. 이것을 사랑하고 생각할 만한 빛깔이 거룩한 법률을 다치는 것이라 하고, 이것을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가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거슬러 막고 거슬러 알면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착하지 않은 법으로 하여금 그 마음에서 세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혹 때로는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로서도 바른 생각을 잃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내어 탐욕을 키우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키우면, 그 우둔한 근기의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비록 쌓임을 없애려는 생각을 내었더라도 욕심으로 마음을 덮고 만다. 마치 쇠탄자를 불에 달구어 몹시 뜨겁게 한 뒤에 물을 조금 뿌리면 물은 이내 말라 없어지는 것처럼,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의 우둔한 근기로서 생각을 내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로서도 그렇게 머무를 때에는, 혹 왕이나 대신이나 친족이 그에게 가서 봉록(俸祿)으로써 청하기를
'남자로서 무엇하느라고 머리를 깎고 바리를 들고 몸에는 가사를 입고 집집이 걸식하는가. 편안하게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면서 보시를 행해 복을 짓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로서, 국왕이나 대신이나 여러 친족이나 시주가 봉록으로 청한다고 해서 그가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나리라고 생각하는가.'
비구들은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오면,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일체의 괴로운 법의 쌓임과 사라짐, 맛, 근심, 떠남을 참다이 알고 보기 때문이옵니다. 불구덩이를 보고는 다섯 가지 욕망에 비유하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다시는 그 마음을 덮지 못하나이다. 또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거슬러 막고 거슬러 알아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그 마음에서 새지 않나이다. 그런데 국왕이나 대신이나 친족이 봉록으로 청한다고 해서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럴 이치가 없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많이 들은 성인의 제자는 그 마음이 오랫동안 멀리 떠남[遠離]과 욕심 여의기를 향해 나아갔고 흘러들었으며 실려 갔다. 그래서 열반에서 고요하고 버리고, 열반을 즐겨해, 번뇌에서 나와 지극히 고요하고 맑고 시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왕이나 장자나 친족이 청한다고 해서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비유하면 항하(恒何)는 오랫동안 동방으로 나아갔고 흘러들었으며 실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끊어 서방으로 나아가고 흘러들고 실려가게 하려 한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될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항하는 오랫동안 동방으로 흘러들었다. 그런데 서방으로 흐르게 하려 하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 대중들은 한갖 괴로울 뿐이다. 그와 같이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오랫동안 <멀리 떠남>을 향해 나아갔고 흘러들었으며 실려갔다. 물러나게 하려 하여도 그리 될 수 없다. 다만 괴로울 뿐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74. 유수경(流樹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아비사(阿毘 )의 항수(恒水)가에 계셨다. 때에 어떤 비구는 부처님께 나아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 쪽에 물러앉아 여쭈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설법하여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듣고 혼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겠나이다. 그 까닭은, 족성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와 집이 없이 도를 배우고 위를 향해 범행을 닦는 것은, 법을 보고 스스로 증득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아는 데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항수를 관찰하시다가, 항수 가운데 한 큰 나무가 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시고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항수 가운데 흘러가는 큰 나무를 보는가."
비구는 사뢰었다.
"보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큰 나무가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물밑에 잠기지도 않고, 물 기슭에 걸리지도 않고, 소용돌이에 들어가지도 않고, 사람이 가지지도 않고, 사람 아닌 것[非人]이 가지지도 않고, 또 썩지도 않으면, 장차 물을 따라 흘러 순순히 흘러가고 흘러들어 큰 바다에까지 실려 가겠는가."
비구는 사뢰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도 그와 같이,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물밑에 잠기지도 않고, 물 기슭에 걸리지도 않고, 소용돌이에 들어가지도 않고, 사람이 가지지도 않고, 사람 아닌 것이 가지지도 않고, 또 썩지도 않으면, 순순히 나아가고 흘러들어 열반으로 실려 가느니라."
비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쪽 언덕이란 무엇이며, 저쪽이란 무엇이며, 잠김이란 무엇이며, 물 기슭이란 무엇이며, 소용돌이란 무엇이며, 사람이 가짐이란 무엇이며, 사람 아닌 것이 가짐이란 무엇이며, 썩음이란 무엇이옵니까.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널리 설명하여 주소서. 저는 그 법을 듣고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머무르겠나이다. 후생 몸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쪽 언덕이란 안의 여섯 가지 감관이요, 저쪽 언덕이란 바깥의 여섯 가지 경계다. 사람의 가짐이란 속세에 있는 이나 집을 나온 이가, 기뻐하거나 근심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할 때에 그들의 하는 일이 모두 같아서 언제나 서로 따르는 것과 같다. 이것을 <사람의 가짐>이라 한다. 사람 아닌 것의 가짐이란,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 닦기를 원해 '나는 지금 계율을 가지고 고행을 행하며, 모든 범행을 닦아 있는 곳에 나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있는 곳이란 천상이다. 이것을 <사람 아닌 것의 가짐>이라 하느니라
소용돌이란, 마치 어떤 사람이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썩음이란, 계율을 범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해, 썩고 무식한 것이 시들은 피[稗]로 고동 부는 소리와 같아서,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인 체하고, 범행인이 아니면서 범행인이 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것을 <이쪽 언덕에도 대이지 않고, 열반으로 실려 가는 것>이라 하느니라.
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때에 그 비구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유수대수경(流水大樹經)>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후생 몸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아 아라한이 되었다.
때에 소치는 사람 난다[難屠]는 부처님께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막대기를 들고 소를 먹이고 있었다. 그는 비구가 떠난 뒤에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나는 지금 이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잠기지도 않고, 물 기슭에 걸리지도 않고, 사람의 가짐도 아니요 사람 아닌 것의 가짐도 아니며, 소용돌이에 들어가지도 않고 또 썩지도 않을 수 있나이다. 나는 집을 나와 세존의 바른 법률 안에서 범행을 닦을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그 소를 주인에게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소치는 이는 말하였다.
"저 소들은 다 송아지가 있어 스스로 돌아갈 수 잇나이다. 구태여 보낼 것은 없나이다. 다만 내가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것을 허락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소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마는 너는 남의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있으니 그 집주인에게 알려야 한다."
때에 소치는 이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때에 존자 샤아리풋트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 소치는 이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소치는 이 난다는 집을 나오려고 하는데, 세존께서는 왜 집으로 돌려보내시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소치는 이 난다가 집에 돌아가 살면서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린다는 것은 그럴 이치가 없다. 소를 주인에게 돌리면 곧 스스로 돌아와, 이 법률 안에서 중이 되어 도를 배우고, 범행을 깨끗이 닦아 후생 몸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고 아라한이 될 것이다."
때에 소치는 이 난다는 소를 주인에게 돌린 뒤에 부처님께 도로 돌아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소는 주인에게 돌렸나이다. 제가 바른 법률 안에서 중이 되어 도 배우는 것을 허락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이 바른 법률 안에서 중이 되어 구족계를 받고 비구 신분을 얻을 것이다."
그는 집을 나와 생각하였다. '족성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을 나와 집이 없이 도를 배우고 범행을 더욱 닦는 까닭은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아 아라한이 되는 데 있다'고.
1175. 긴수유경(緊獸喩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때에 어떤 비구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좌선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비구로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청정한 소견을 얻는가'고. 이렇게 생각하고는 여러 비구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을 청정하게 하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존자여, 여섯 가지 감관의, 쌓임과 사라짐, 맛, 근심, 떠남을 참되게 바로 알라. 비구여,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소견이 청정해질 것이다.
그 비구는 말을 듣고 마음에 차지 않아 다시 다른 비구들에게 가서 물었다.
"여러 비구들이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을 청정해지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여섯 가지 경계의 쌓임과 사라짐, 맛, 근심, 떠남을 참되게 바로 알라. 비구여,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소견이 청정해질 것이다.
비구는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차지 않아 다시 다른 비구에게 가서 물었다.
"비구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을 청정해지는가."
그 비구는 대답하였다.
"다섯 가지 받아들이는 쌓임을,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죽임과 같으며, 덧없고 괴롭고 비고 <나>가 아니라고 관찰하라. 그렇게 알고 보면 소견이 청정해질 것이다.
그 비구는 비구의 말을 듣고 또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아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고요히 생각하였나이다. '비구가 어떻게 알고 보아야 소견이 청정해지는가'고. 이렇게 생각하고 비구들에게 갔나이다.
(세 군데서 말한 것을 자세히 세존께 여쭈었다.)
저는 그들의 말을 듣고도 마음에 차지 않아 세존께 나아왔나이다. 그래서 그 이치를 세존께 여쭙나이다. 비구는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소견이 청정해지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 킴수카를 본 일이 없는 어떤 사람은 킴수카를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킴수카를 아는가.'
그는 대답하기를
'안다'고 하였다.
다시 물었다.
'그 모양은 어떻던가.'
그는 대답하기를
'그 빛깔은 검어 불에 탄 기둥 같았다. 네가 그것을 볼 때에도 그 검은 빛깔은 불에 탄 기둥 같을 것이다'고 하였다. 때에 그 사람은 킴수카의 검은 빛깔은 불에 탄 기둥 같다는 말을 듣고도 그다지 만족하지 않고, 다시 킴수카를 본 일이 있는 사람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킴수카를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안다.'
다시 물었다.
'그 모양은 어떻던가.'
킴수카를 본 일이 있는 사람은 대답하기를
'그 빛깔은 붉어 꽃이 핀 모양은 살점[肉段]같았다. 네가 볼 때에도 킴수카의 핀 꽃은 실로 살점 같을 것이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그 말을 듣고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킴수카를 본 적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킴수카를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안다.'
다시 물었다.
'그 모양은 어떻던가.'
대답하기를
'축축 늘어진 것이 쉬르사[尸利沙]열매 같았다.'고 하였다.
그는 이 말을 듣고도 마음에 만족하지 않았다. 다시 킴수카를 아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킴수카를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안다.'
'그 모양은 어떻던가.'
그는 대답하기를
'그 잎이 푸르고 번지르하며 길고 넓기가 냐그로오다 나무 같았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킴수카를 물어 들을 때마다 만족하지 않고 다시 여러 곳을 찾아 다녔지마는, 그 킴수카를 본 여러 사람들은 그 때 그 때 제가 본 대로만 대답하였다. 그래서 같지 않았던 것이니라.
그와 같이 비구들이, 만일 혼자 조용한 곳에서 알뜰히 생각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를 때에 그 생각하는 법이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으면, 제가 본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다시 들어라. 나는 비유로 말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써 해득하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변방의 국왕이 성벽을 잘 쌓았는데, 그 문 밑은 견고하고 얽힌 길은 편편하다. 네 성문에는 네 성직이를 두었는데, 그들은 다 총명하여 드나드는 것을 다 알았다. 그 성안 네거리에는 평상을 놓고 성주(城主)는 그 위에 앉아 있다. 만일 동방에서 사자(使者)가 와서 성지기에게, 성주는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곧, 성주는 성안 네 거리의 평상 위에 앉아 있다고 대답한다. 그 사자는 그 말을 듣고 성주에게 나아가 명령을 받고 길을 돌려 돌아간다.
남, 서, 북방에서 멀리 온 사신도 문지기에게, 성주는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대답하기를, 성 안 네거리에 있다고 한다. 사자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성주에게 나아가 그 명령을 받고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비유를 말하였으니 이제 그 뜻을 설명하리라. 이른바 성이란, 사람 몸의 추한 물질에 비유한 것이다. (저 <상자 안의 독사 비유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성을 잘 쌓음이란, 바른 소견을 말한 것이요, 얽힌 길의 편편함이란, 안의 여섯 가지 감관을 말한 것이다. 네 문이란, 네 가지 의식의 머무름[四識住]을 말한 것이요, 네 문지기란, 네 가지 생각하는 곳[四念處]을 말한 것이다. 성주란, 의식의 받아들이는 쌓임[識受陰]을 말한 것이요, 사자란, 바른 관찰을 말한 것이다. 참되게 말함이란, 네 가지 진리를 말한 것이요, 길을 돌려 돌아감이란,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을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나는 이미 마쳤다. 너를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다. (상자 안의 독사 비유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에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알뜰히 생각하고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면서 더욱 범행을 닦아, 후생 몸을 받지 않고 아라한이 되었다.
1176. 누법경(漏法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씨들의 세간에서 노닐으시다가 카필라국으로 오시어 냐그로오다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카필라국의 석씨들은 강당을 새로 지었는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석씨의 젊은이나 여러 사람들로서 아무도 그 안에 머무르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세존께서 석씨의 카필라에 오셔서 세간에 노닐으시고 나그로오다 동산에 계시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이치를 연설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 강당은 처음 되어 아무도 머무르는 이가 없다. 세존과 그 대중을 청해 거기서 공양하여, 공덕과 복의 깊음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든지 안온할 것이요, 그 다음에 우리도 그 따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의논한 뒤에 그들은 모두 성에서 나가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물러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석씨들을 위해 설법하시어 가르쳐 보이시고 기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때에 석씨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 하고 예배한 뒤에,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합장하고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석씨들은 새로 강당을 지었사온데, 머무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이다. 이제 세존님과 여러 대중들을 청해 거기서 공양하여 공덕과 복리를 얻으면, 언제든지 안온할 것이옵고, 그 다음에 저희들이 그대로 쓰겠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청을 받으셨다. 여러 석씨들은 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받으신 줄을 알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각각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로 곧 수레를 준비해 온갖 기구를 운반하여 새 강당을 장엄하고, 평상을 놓고 땅에 풀을 펴고 향과 등불을 준비하여 모든 일은 다 갖추어졌다.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여쭈었다.
"모든 일은 다 준비되었나이다. 성인께서는 때를 알으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이어 새 강당밖에 이르러 발을 씻은 뒤에, 강당에 올라가시어 중간 기둥 밑에서 동으로 향해 앉으셨다. 때에 비구들도 발을 씻은 뒤에 세존을 따라 강당에 들어가 세존의 뒤 서쪽에서 동으로 향해 앉았다. 그리고 여러 석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석씨들을 위해 널리 설법하시어, 가르쳐 보이고 기쁘게 하신 뒤에 석씨들에게 말씀하셨다.
"고오타마시여, 초저녁이 이미 지났으니, 때를 보아 카필라성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여러 석씨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석씨들이 떠난 줄을 알으시고, 마하아모옥갈라아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나는 지금 등이 아프다. 조금 쉬리라."
때에 마하아모옥갈라아나는 잠자코 분부를 받았다. 세존께서는 웃타라아상가를 네 겹으로 접어 옆구리 밑에 깔고, 상가아티이를 접어 머리 밑에 두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누워 무릎을 오그리고 발을 포개고, 밝은 모양에 생각을 두고 언제고 일어날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 때에 마하아모옥갈라아나는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처음이나 중간이나 마지막이 다 좋고, 뜻도 좋고 맛도 좋아, 순일하고 원만하고 청정하여 깨끗한 범행이다. 나는 이제 <번뇌와 번뇌 아닌 법>을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어떤 것이 번뇌법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는 생각에 맞는 빛깔에는 즐겨하는 마음을 내고, 생각에 맞지 않는 빛깔에는 미워하는 마음을 내어, 몸의 생각하는 곳[身念處]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지혜도 없어, 갖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켜서, 남김없이 없애지도 못하고 남김 없이 아주 다하지도 못한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비구들이여, 그렇게 하면 악마 파아피이야스가 그에게 가서 그 빈틈을 엿보다가 그 눈의 빛깔에 대해 곧 그 틈을 탄다.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닿임, 뜻의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이 곧 그 틈을 타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마른풀을 쌓아 두었는데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면 잠깐동안에 타 버리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그 눈의 빛깔에 대해 하늘 악마 파아피이야스가 그 틈을 타면, 그런 비구는 빛깔을 이기지 못하고,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닿임, 뜻의 법에 있어서도 그 법들의 제어를 받아 그 법들을 이기지 못한다. 빛깔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 냄새, 맛, 닿임, 법도 이기지 못하고 또한 뜻도 이기지 못하면, 착하지 않는 법과 온갖 번뇌의 불꽃같은 괴로운 갚음과, 미래 세상의 남, 늙음, 병, 죽음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 나는 세존에게서 직접 이 모든 번뇌법을 받았다. 이것을 <번뇌법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번뇌 없는 법 경[無漏法經]>인가.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눈으로 빛깔을 보아 생각에 맞는 빛깔에도 즐겨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생각에 맞지 않는 빛깔에도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생각을 매어 머무른다. 그래서 한량없는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그것을 참다이 알고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더라도 남김 없이 다 없애 버린다.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그와 같느니라.
그런 부류의 비구들은 악마 파아피이야스가 그에게 가서 그 눈의 빛깔에 대해 그 허물을 엿보지마는 그 허물을 잡지 못해,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닿임, 뜻의 법에 대해 그 허물을 엿보지마는 그 허물을 잡지 못한다.
비유하면 누각의 담을 든든히 하고 창문을 겹겹이 다고 진흙으로 두껍게 바르면, 사방에서 불이 일어나더라도 능히 태울 수 없는 것처럼, 그런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악마 파아피이야스가 그에게 가서 그 허물을 엿보지마는 그 허물을 잡지 못한다. 그러한 비구는 능히 그 빛깔을 이기고 그 빛깔에 지지 않는다. 그 소리와 냄새, 맛, 닿임, 법을 이기고 그 법들에게 지지 않는다. 만일 빛깔을 이기고, 소리, 냄새, 맛, 닿임, 법을 이기면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번뇌의 불꽃같은 괴로운 깊음과 미래 세상의 남, 늙음, 병, 죽음에도 이길 것이다. 나는 세존님에게서 직접 이 법을 받았다. 이것을 <번뇌 없는 법 경>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마하아모옥갈라아나의 설법이 끝난 줄을 아시고, 일어나 단정히 앉아 생각을 모으시고 마하아모옥갈라아나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모옥갈라아나여 사람들을 위해 그 경법을 잘 연설하였다. 많이 이익 되고 많이 제도하여 언제든지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번뇌와 번뇌 없는 법경>을 받들어 가져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라. 왜냐 하면, 이치가 구족하고 법이 구족하고 범행이 구족하기 때문에, 신통을 열어 열반으로 바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심이 있는 착한 남자로서 집에 있거나 집을 나왔거나, 받들어 가져 외우고 또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177. 회하경(灰河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잿강[灰河] 남쪽 언덕은 몹시 뜨겁고 온갖 날카로운 가시가 많으며 깜깜한 어두운 곳이 있는데, 많은 죄인들이 그 강에서 물결을 따라 떠돌고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미련하거나 어리석지 않고 총명하고 지혜로워 즐거움을 좋아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며,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여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무슨 인연으로 남쪽 언덕은 몹시 뜨겁고 날카로운 가시가 많으며, 깜깜한 어두운 곳에 있는 잿강에서 물결을 따라 떠돌고 있다. 나는 손발로 방편을 삼아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리라'고.
그는 가다가 겨우 조그만 빛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부지런히 힘써 이제는 이 조그만 빛을 보았다'고. 그는 다시 손발을 놀려 부지런히 방편을 더해 드디어 평지를 보았다. 거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가 큰 돌산을 보았다. 그것은 끊어졌거나 부서지지도 않고 또 구멍이 뚫리지도 않았다. 그는 곧 그 위에 올라가 다시 맑고 시원한 여덟 갈래의 물 즉, 차고 맛나며, 가볍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며, 마실 때에도 목 메이지 않고 목안에서 걸리지도 않으며 마시고는 몸이 편안한 물을 보았다. 곧 그 속에 들어가 목욕하고 마시매 모든 번열과 괴로움을 떠났다.
그리고는 다시 큰 산 위에 올라가 일곱 가지 꽃을 보았다. 이른바 우타팔라[優鉢羅]꽃, 파드마[鉢曇摩]꽃, 쿠무다[拘牟頭]꽃, 푼다리이카[芬陀利]꽃, 수건제(修 提)꽃, 미리두건제(彌離頭 提)꽃, 아제목다(阿提目多)꽃이다. 꽃향기를 맡고는 다시 돌산에 올라가 四층 누각을 보았다. 곧 그 위에 앉아 다섯 기둥의 장막을 보고는 곧 그 안에 들어가 몸을 거두고 바로 앉았다. 갖가지 베개와 요가 있고 꽃을 흩어 두루 펴어 장엄하고 아름다웠으며, 그 안에서 앉고 누울 때에는 시원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그 몸을 안온하게 하였다. 그는 높은 숲 밑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잿강의 여러 장사(正士)들이여, 그 잿강은 남쪽 언덕이 몹시 뜨겁고 온갖 날카로운 가시가 많으며, 그 곳이 깜깜히 어둡거든 그 강에서 나오라.'
그 소리를 들은 어떤 사람은 소리를 따라 물었다.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느냐. 어디로 나가느냐.'
그 중의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너는 무엇 하러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느냐'고 묻는가. 그 소리를 치는 사람 자신도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도 그 남쪽 언덕은 몹시 뜨겁고 온갖 날카로운 가시가 많으며, 깜깜한 어둠 속에 있는 잿강에서 물결을 따라 떠내려오고 있다. 그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비유를 말하였으니 이제 그 뜻을 설명하리라. 재[灰]란, 곧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다. 셋이란, 탐하는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는 생각이다. 강이란, 세 가지 욕망이니 욕심 세계의 욕망과 형상 세계의 욕망과 무형 세계의 욕망이다. 남쪽 언덕의 몹시 뜨거움이란 안팎의 여섯 가지 감관과 경계다. 온갖 날카로운 가시의 많음이란 다섯 가지 욕심의 향락이다. 깜깜한 곳이란 지혜의 눈을 가리는 무명이다. 많은 사람이란 어리석은 범부다. 물결이란 나고 죽음의 강이다.
그 중에서 미련하거나 어리석지 않은 한 사람이란 보살마하살이다. 손발의 방편으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감이란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이다. 조그만 빛을 조금 봄이란 법인(法忍)을 얻은 것이다. 평지를 얻음이란 계율을 가지는 것이다. 사방을 관찰함이란 네 가지 진리를 보는 것이다. 큰 돌산이란 바른 소견이다. 여덟 갈래 돌이란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다. 일곱 가지 꽃이란 일곱 가지 깨달음 갈래다. 사층 집이란 네 가지 여의족이다. 다섯 기둥의 장막이란 믿음 따위의 다섯 가지 뿌리다. 몸을 바루고 앉음이란 남음이 없는 열반이다. 꽃을 흩어 두루 폄이란 모든 선정의 해탈과 삼매를 바로 받는 것이니라.
마음대로 앉고 누움이란, 여래, 다 옳은 깨달음이다. 사방 바람이 분다는 것은 네 가지 왕성한 마음으로 법을 보아 편하고 즐거이 머무르는 것이다. 소리를 높여 외쳐 부름이란, 법바퀴를 굴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 정사들이여, 어디로 가고 어디서 나올까'란, 샤아리풋트라나 모옥갈라아나 갚은 거룩한 비구들의 말이다. 그 중의 어떤 사람이 '네가 묻는 그 이도 나올 곳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도 이 남쪽 언덕은 몹시 뜨겁고 온갖 날카로운 가시가 많으며 깜깜한 곳에 잇는 잿강에서 물결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란, 온갖 삿된 소견을 가진 여섯 스승 무리들이니, 이른바 푸라아나카아샤파, 마칼리고오사알라, 산자야펠라타푸트라, 아지타케샤?발라, 카쿠다카차아야나, 냐르그란타나아타푸트라와 그 밖의 삿된 소견의 무리들이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스승으로서 여러 성문들을 위해 하여야 할 일을, 나는 이제 다 마쳤다. 너희들도 이제 해야 할 일을 하여야 하느니라. (앞의 <상자 안의 독사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