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 해 제 출처 :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전자불전연구소
1. 머리말
아함경(阿含經)의 성립 및 이름과 특성에 대해서는, 이미 『장아함경(한글대장경 1) 』 해제에서 설명하였기 때문에 생략하고, 여기서는 이 『중아함경(中阿含經) 』의 역자(譯者)와 구성 및 그 내용만을 간단히 적기로 한다.
2. 역자
이 『중아함경 』의 한문 번역은 앞뒤 두 차례가 있었다. 그 첫 번째 번역은 도거륵국(兜?勒國)의 사문(沙門) 담마난제(曇摩難題 : 秦에서는 法喜라 부름)가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의 건원(建元) 20년(384)에 장안(長安) 성내(城內)에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 및 『중아함경(中阿含經) 』을 무려 1백 권을 번역해 내었는데, 『증일아함경 』이 41권, 『중아함경 』이 59권이었다고 한다.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 제 2 권에서는 "난제(難題)가 호본(胡本)을 입으로 외우고 축불념(竺佛念)이 번역하였다"고 하였다. 또 『고승전(高僧傳) 』 제 1 권에서는, "부견의 신하 가운데 무위태수(武威太守) 조정(趙正)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도(道)를 위해 몸을 잊은 사람으로서, 모용충(慕容?)의 반역(叛逆)으로 관중(關中)이 시끄러웠으나, 그는 그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장안 성중에서 의학승(義學僧)을 모으고 난제를 청해 『중아함경 』 『증일아함경 』의 두 아함을 번역하게 하였다. 그 뒤에 요장(姚?)이 일어나 서울까지 침범해 들어와 인심이 험악하게 되자, 난제는 그 곳을 하직하고 서역(西域)으로 돌아갔는데, 그 뒤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중아함경 』의 첫 번째 번역이었다. 그것은 양(梁)나라 때까지 전해져 오다가 그후 없어져 오늘에 전하지 않으니,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는 오늘날 알 길이 없다.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 제 2 권에서는 현재 남아 있는 『중아함경 』에 대해 "담마난제가 번역한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하였고,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 제 3 권에서는 "두 번째 번역은 담마난제의 번역과 아주 다르다"고 한 것을 보면 잃어 전하지 않는 첫 번째 번역은 현재의 두 번째 번역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번역은 계빈국(?賓國) 사람 구담 승가제바(瞿曇僧伽提婆 : 衆天이라고 한역)가 번역한 것이라고 전하는 이 『중아함경 』 60권이 그것이다. 제바의 전기(傳記)에 대해서는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 제13권,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 제 3 권, 『고승전(高僧傳) 』 제 1 권에 나오는데, 대체로 그 내용이 비슷하다. 그는 부견의 건원 연간에 장안에 와서 포교에 전념하였다. 그 당시 장안에는 석도안(釋道安)이 있어 진왕(秦王) 부견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그의 후원에 힘입어 경전의 연구와 번역 사업의 감독을 맞고 있었다. 담마난제가 『증일아함경 』 『중아함경 』을 번역한 것도 그 일부는 이 석도안의 권유에 의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출삼장기집 』 제 3 권에도 "이에 안공(安公)과 함께 『청해경 』을 출간하였다"고 적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용충(慕容?)의 병란(兵亂)을 만나 도안은 건원 21년(385)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모처럼 번역한 그 경을 교정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 뒤에 산동(山東) 지방도 차츰 평온하게 되어, 승가제바는 기주(冀州) 사문 법화(法和)와 함께 낙양(洛陽)으로 들어가 거기서 4, 5년간 머무르면서 경전을 강하고 한어(漢語)를 공부하는 동안, 두 아함경 번역의 충분하지 못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융안(隆安) 원년(397)에 동정후(東亭候) 우바새(優婆塞) 왕원림(王元琳)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경전 번역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제바를 위해 정사(精舍)를 세우고 사방의 학도들을 불러 모은 일도 있었다. 그는 양주(楊洲) 건강현(建康縣) 경계에 있는 그 정사에서 『중아함경 』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융안 원년 11월에서 2년 6월 (397 398)까지 약 7개월에 걸쳐 번역 작업을 마쳤다. 위에 밝힌 여러 책에 나타난 승가제바의 전기와 도자법사(道慈法師)가 지은 『중아함경 』 서문에서는 "계빈국 사문 승가라차(僧伽羅叉 : 衆護라고도 한다)에게 청해 호본(胡本)을 번역 출간하게 하고, 승가제바에게 청해 호(胡)나라 말을 진(晋)나라 말로 옮기고, 예주(豫州) 사문 도자(道慈)는 필수(筆受)하고, 오(吳)나라의 이보(李寶)와 당화(唐化)가 함께 썼다"라고 하였는데 그 때 마침 병란이 일어나 번역한 책을 충분히 교정하고 써서 유포시킬 수 없다가, 융안 5년(401)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이루어졌다.
3. 구성과 내용
먼저 전 아함경의 분류(分類)를 잠깐 살펴보면, 중국의 길장(吉藏)은 "아함(阿含)이란 바로 외국어로서 대 소승에 통한다. 4부(部) 아함 따위는 소승이요, 『열반경(涅槃經) 』에서 방등(方等) 아함이라고 말한 것은 곧 대승이다"라고 말하여 아함을 대 소승에 통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그 의미에 있어서는 타당하겠지만, 아함을 소승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아함을 소승이라 할 경우에도, 결집(結集)한 3장(藏) 전체가 아함이라는 학설도 있으나, 경장(經藏)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함을 소승 경전이라 할 경우 아함을 다섯 가지 혹은 네 가지로 분류하는데, 즉 ① 5아함설(阿含說), ② 5니가여설(尼柯與說), ③ 4아함(阿含) 5부설(部說), ④ 4아함무여설(阿含無餘說), 4아함유여설(阿含有餘說) 등이 있다. 5아함설은 주로 남방에서 전하는 것으로서 북방의 잡장(雜藏)까지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래도 4아함설이 유력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 4아함의 순서에 있어서도 여러 전기에서 제각기 다르게 말하고 있다. 만일 전설(傳說)과 같이 그 전부가 일시에 결집된 것이라 한다면, 어느 것을 첫째로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발달에 전후가 있다고 한다면, 그 순서란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각각 서로 관계가 깊은 것을 제일 먼저 두기로 한다면, 그 전후는 곧 경중을 의미하게 되어, 그것이 어떻게 배열(配列)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적(歷史的) 성전비판(聖典批判)이 최초의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북방의 여러 전기와 그 내용에 의한다면 유가(瑜伽)에서 말한 잡(雜) 중(中) 장(長) 증일(增一) 등의 아함경 순서가 가장 타당하다 할 수 있고, 남방의 파리장(巴利藏)에 있어서는 상응(相應) 증상(增上) 중(中) 장(長) 소집(小集) 등의 부별(部別) 순서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북방에서는 장 중 잡 증일 등의 아함경 순서로 정리되어 왔고, 남방에서는 장 중 상응 증상 소집 등의 부별 순서로 정리되어 거기에 각음(覺音)의 주석(註釋)과 저술로서 완전히 고정(固定)되고 전지(傳持)되어 왔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4부 아함은 원시불교 시대부터 부파불교 시대까지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구전되어 오다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문서화되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각 부파마다 그 내용에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한역된 『중아함경 』의 송본(誦本)에 대해서 법당(法幢)은 『구사론계고(俱舍論稽古) 』 첫머리에 "『중아함경 』 『잡아함경 』은 살바다부(薩婆多部 : 說一切有部)에서 전송(傳誦)된 본(本)이다"고 하였다. 현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잡아함경 』은 계빈국의 정통 설일체유부의 송본(誦本)이고, 『중아함경 』은 그 방계인 건다라(?陀羅) 지방 유부(有部)의 송본으로 추정된다. 이 『중아함경 』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계빈국 사람 구담 승가제바의 번역으로서, 전 60권 80품(品) 222경(經), 514, 825자(字)이다. 그 구성에 대해 승조(僧肇)는 일찍이 '중아함 4분(分) 5송(頌)'이라 하였다. ① 초송(初頌) … 5품 반 … 64경 … 12권 ② 소토성송(小土城頌) … 4품 반 … 52경 … 16권 ③ 염송(念頌) … 1품 반 … 35경 … 9권 ④ 분별송(分別頌) … 2품 반 … 35경 … 11권 ⑤ 후송(後頌) … 3품 반 … 36경 … 12권 이와 같이 5송, 18품, 212경, 16권으로 되어 있다. 이 한역(漢譯) 『중아함경 』에 대비(對比)되는 파리경전은 『중부(中部) 』인데, 여기에는 근본(根本) 중(中) 후(後)의 50부로서, 152경이 수록(收錄)되어 있다. 한역 222경 중 98경이 남전의 중부와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이 『중아함경 』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 98경은 5송의 모든 품에 산재(散在)해 있으나, 분별송 후송은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장아함경 』의 내용이 불타관(佛陀觀)의 발달과 법상조직(法相組織)과 대외논변(對外論辯)이요, 또 『잡아함경 』이 여래(如來)의 법구(法句)를 통해 실천적 분별로서 염(念) 처(處) 계(界) 온(蘊) 등을 나열해 놓은 것이라 한다면, 이 『중아함경 』은 이론적 분별에 실천적 내관(內觀)과 사변(思辯)이 어우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불교의 근본 교설이 이론화된 초보의 경전을 구한다면 이 『중아함경 』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이 경을 '중아함'이라고 이름한 까닭은, '일체중경(一切中經)'이란 뜻과 '부장부단(不長不短) 문구중자(文句中者)'란 뜻이 있어서, 『장아함경 』처럼 긴 경도 아니요, 『잡아함경 』이나 소경처럼 짧지도 않다는, 즉 처중이설(處中而說)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아함경 』 가운데에도 「계경(戒經)」 「염경(念經)」을 비롯한 습상응품(習相應品)의 여러 경 및 「복전경(福田經)」 「아나율경(阿那律經)」 「식지도경(息止道經)」 「세간경(世間經)」 「무상경(無常經)」 「지변경(至邊經)」 「하욕경(何欲經)」 「제법본경(諸法本經)」 「우장자경(牛長者經)」 등과 같은 5백 자 미만의 짧은 경도 있고, 또 「비사경(肆經)」 「석문경(釋問經)」 「전륜왕경(轉輪王經)」 「우담바라경(優曇婆羅經)」 등과 같은 긴 경도 있다. 파리(Pali) 경전에서는 위에서 말한 짧은 경들은 『상응부(相應部)』 증상부(增上部) 등에 흩어져 있고, 위에서 말한 긴 경들은 『장부(長部)』에 들어가 있다. 남전과 북전에 모두 들어 있는 것으로서는 「상경(想經)」이 가장 짧은 경이요, 「장수왕경(長壽王經)」이 가장 긴 경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만일 「장수왕경」이 『장아함경 』에 속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뇌타화라경(賴羅經)」과 「우바리경(優婆離經)」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중아함경 』이 이름과 내용이 서로 맞지 않은 긴 경과 짧은 경이 뒤섞여 있다 해서, '중(中)'자의 의미를 뜻으로 돌려 '중도(中道)'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너무 지나친 억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중아함경 』은 본래 중간쯤 되는 길이의 설교를 모은 것이라는 뜻 외에, 모든 경 전부에 흐르는 공통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중아함경 』 전체의 대의를 쓴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각 소경에 대한 대의를 쓰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222개에 달하는 소경의 대의를 모두 적기엔 면수(面數)가 허락하지 않으니, 부득이 생략한다. 구태여 이 『중아함경 』의 내용을 요약해 말한다면, 주로 4제 12인연 등의 교의로 되어 있으며, 인연 비유와 그 제자들의 언행(言行)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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