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1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18:48

중아함경 제1권

 

 

1. 선법경(善法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위국에 노닐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어떤 비구가 7법을 성취하면, 곧 현성(賢聖)의 도에 환희를 얻어서 바로 번뇌가 다 없어지리라. 그 일곱 가지란 이른바 비구가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때를 알고, 절제를 알며, 자기를 알고, 무리를 알며,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법을 안다고 하는가 하면, 정경(正經)·가영(歌詠)·기설(記說)·게타(偈陀),인연(因緣)·찬록(撰錄)·본기(本記)·차설(此說)·생처(生處)·광해(廣解)·미증유법(未曾有法) 및 설의(說義)를 아는 것을 말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법을 모른다면, 그는 정경·가영·기설·게타·인연·찬록·본기·차설·생처·광해·미증유법 및 설의를 모르는 것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법을 잘 안다면, 그는 정경·가영·기설·게타·인연·찬록·본기·차설·생처·광해·미증유법 및 설의를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뜻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이러이러한 말의 뜻이, 이것은 저런 뜻이요 이것은 이런 뜻이라고 아는 것을 말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뜻을 모른다면, 그는 이러이러한 말의 뜻이, 이것은 저런 뜻이요 이것은 이런 뜻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뜻을 잘 안다면 이른바 그는 이러이러한 말의 뜻이, 이것은 저런 뜻이요 이것은 이런 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때를 아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지금은 하상(下相)을 닦고 지금은 고상(高相)을 닦아야 하며 지금은 사상(捨相)을 닦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지금은 하상을 닦고 지금은 고상을 닦아야 하며 지금은 사상을 닦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때를 잘 안다면, 그는 지금은 하상을 닦고 지금은 고상을 닦아야 하며 지금은 사상을 닦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시간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시간을 알아, 마시거나 먹으며 다니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누우며 말하거나 잠잠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시간을 모른다면, 그는 마시거나 먹으며 다니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누우며 말하거나 잠잠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수행할 줄 모른다. 만일 어떤 비구가 시간을 잘 안다면 이른바 그는 마시거나 먹으며 다니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누우며 말하거나 잠잠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닦을 줄 안다.

어떤 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스스로 자기의 그 믿음과 계율과 지식과 보시와 지혜와 변재와 아함 및 그의 소득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를 모른다면, 이른바 그는 스스로 자기의 그 믿음과 계율과 지식과 보시와 지혜와 변재와 아함 및 그 소득을 모르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비구가 자기를 모르는 것이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를 잘 안다면, 이른바 그는 스스로 자기의 그 믿음과 계율과 지식과 보시와 지혜와 변재와 아함 및 그 소득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잘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이른바 비구가, 이것은 크샤트리야 무리이며 이것은 범지 무리이고 이것은 거사 무리이요 이것은 사문들이니, 나는 저 무리들이 어떻게 다니고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앉으며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잠잠해야 할 것을 안다. 이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리들을 모른다면, 이른바 그는 이것은 크샤트리야 무리이요 이것은 범지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 무리이며 이것은 사문들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어떻게 다니고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앉으며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잠잠해야 할 것을 모른다. 이러한 것을 비구가 무리를 모르는 것이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리들을 잘 안다면 이것은 크샤트리야중이다, 이것은 범지중이다, 이것은 거사중이요, 이것은 사문중이니, 나는 저 무리들이 어떻게 다니고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앉으며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잠잠해야 할 것을 안다. 이것을 비구가 대중을 잘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비구에 2종의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곧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도 또 2종이 있다.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 있고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에도 또 2종이 있다. 비구에게 경례하는 사람이 있고 비구에게 경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비구에게 경례하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비구에게 경례하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비구에게 경례하는 사람에도 또 2종이 있다. 경을 묻는 사람이 있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경을 묻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경을 묻는 사람에도 또 2종이 있다.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 있고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 하느니라.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에도 또 2종이 있다. 듣고서 법을 가지는 사람이 있고 듣고도 법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듣고서 법을 가지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듣고도 법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 한다. 듣고서 법을 가지는 사람에도 2종이 있다. 법을 들어 뜻을 관하는 사람이 있고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들어 뜻을 관하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 한다. 법을 들어 뜻을 관하는 사람에도 또 2종이 있다.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다가서며 법에 맞추어 따르고 법과 같이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있고, 법도 모르고 뜻도 모르며 법에 향하지 않고 법에 다가서지 않으며 법에 맞추어 따르지 않고 법과 같이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다가서며 법에 맞추어 따르고 법과 같이 행하는 사람이면 훌륭하지마는, 법을 모르고 뜻을 모르며 법에 향하지 않고 법에 다가서지 않으며 법에 맞추어 따르지 않고 법과 같이 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 하느니라.

이른바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다가서며, 법에 맞추어 따르고 법과 같이 행하는 사람에도 또 2종이 있다. 스스로 요익하고 또 남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도 요익하지 않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 않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지 않으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지 않으며,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스스로도 요익하고 남도 요익케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며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사람이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첫째가 되며 큼이 되고 위가 되며 가장이 되고 훌륭함이 되며 높음이 되고 묘함이 된다. 비유하면 소로 인해 젖이 있고 젖으로 인해 타락이 있으며 타락으로 인해 생수가 있고 생수로 인해 숙수가 있으며 숙수로 인해 수정이 있어서, 수정은 그 가운데서 아주 첫째가 되며 큼이 되고 위가 되며 가장이 되고 훌륭함이 되며 높음이 되고 묘함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람이 스스로 요익하고 또 남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며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면, 이 두 사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위에서 분별한 것과 같이, 위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이것은 첫째가 되며 큼이 되고 위가 되며 가장이 되고 훌륭함이 되며 높음이 되고 묘함이 된다. 이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주도수경(晝度樹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잎이 시들어 누래지면, 이 때 33천 대중들은 오래지 않아 그 나뭇잎은 반드시 떨어지리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뭇잎이 떨어지면 이 때에도 33천 대중들은 그 나뭇잎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다시 나리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무 잎이 나면 이 때에도 33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망울을 내리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무는 망울을 내면 이 때에도 33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오래지 않아 새부리 같은 봉오리를 내리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무가 새부리 같은 봉오리를 내면 이 때에도 33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피어나 바루처럼 되리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무가 이미 피어나 바루처럼 되면, 이 때에도 33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모두 활짝 필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만일 파릿찻타카 나무가 모두 활짝 피면, 그 광명이 비치는 곳, 그 빛이 번지는 곳, 그 향기가 풍기는 곳은 1백 유순(由旬)을 두루 한다. 이 때에 33천 대중들은 여름 4개월 동안 5욕의 공덕을 구족하여 스스로 오락을 한다. 이것을 33천 대중들이 파릿찻타카 나무 밑에 모여 하늘의 오락을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 뜻과 같이 거룩한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는 집을 떠나기를 생각한다. 이 때의 거룩한 제자들은 잎누름이라 부른다. 마치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뭇잎이 시들어 누렇게 되는 것과 같다. 다시 성 제자들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운다. 이 때의 성 제자들은 잎떨임이라 부른다. 마치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다시 성 제자들은 탐욕을 떠나며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 때의 성 제자들은 잎도로남이라 부른다. 마치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뭇잎이 다시 나는 것과 같다. 다시 성 제자들은 <각>과 <관>이 이미 쉬고 안으로 한마음이 고요하여 감각도 없고 관찰도 없어 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2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 때의 성 제자들은 망울남이라 부른다. 마치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나무가 망울을 내는 것과 같느니라.

다시 성 제자들은 기쁨의 탐욕에서 떠나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도 몸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저 성인의 말한 바의 거룩한 버림과 바른 생각과 공(空)에 머무르기를 즐거워하는 제3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 때의 성 제자들은 새부리남이라 부른다. 마치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나무가 새부리 같은 봉오리를 내는 것과 같다. 다시 성 제자들은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고 기쁨과 걱정은 본래 이미 멸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즐거움의 버림과 공덕의 생각과 맑고 깨끗함이 있는 제4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 때의 성 제자들은 바루남이라 부른다. 마치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무가 바루와 같은 것과 같다. 다시 성 제자들은 모든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며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안다. 이 때의 성 제자들은 모두핌이라 부른다. 마치 33천에 있는 파릿찻타카 나무가 모두 핀 것과 같다.

그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되면 33천 대중들은 선법정전(善法正殿)에 모여 있으면서 칭찬하고 감탄한다. '저 아무개의 높은 제자는 어느 촌읍에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웠다. 모든 번뇌는 이미 다하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법 가운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치며,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해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았다'고.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모임이라 하나니, 마치 33천 대중들이 파릿찻타카 나무 밑에 함께 모이는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성유경(城喩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왕의 변성에는 7사(事)가 구족하고 4식(食)이 풍요하여, 무엇이나 얻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므로, 왕성은 다만 안으로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외적 때문에 부서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왕성은 7사를 구족했는가 하면, 왕의 변성에는 망보는 다락을 만들어 세우고 땅을 굳게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怨敵)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1사의 구족이라 한다. 다시 왕의 변성은 성 밖으로 못을 둘러 파기를 매우 깊고 넓게 하여 방비할 만하며,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2사 구족이라 한다. 다시 왕의 변성은 성을 둘러 길을 내기를 평평하고 넓게 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3사의 구족이라 하느니라.

다시 왕의 변성은 4종의 군사의 힘, 곧 코끼리군사·말군사·수레군사·걷는 군사를 모아,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4사 구족이라 한다. 다시 왕의 변성에는 병기, 곧 활과 창을 미리 갖추어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5사 구족이라 한다. 다시 왕의 변성에는 문을 지키는 대장이 서 있다. 그는 밝은 계략과 지혜로운 변재가 있고,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기특한 꾀가 있어, 착한 사람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는 것을 금해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6사 구족이라 한다. 다시 왕의 변성은 높은 담 쌓기를 아주 튼튼하게 하고,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박아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7사 구족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왕의 변성은 4식이 풍요하여 무엇이나 얻기에 어렵지 않은가 하면 이른바 왕의 변성은 물과 풀과 섶나무의 재료가 미리 준비되어 있어,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1식(識)이 풍요하여 얻기에 어렵지 않다 하는 것이다. 다시 왕의 변성은 많은 벼를 거두고 또 보리를 저축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2식이 풍요하여 얻기에 어렵지 않다 하는 것이다. 다시 왕의 변성에는 점두와 콩과 팥을 저장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3식이 풍요하여 얻기에 어렵지 않다 하는 것이다. 다시 왕의 변성에는 타락 기름과 꿀과 감자와 생선과 소금과 고기를 저장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했다. 이것을 왕성의 4식이 풍요하여 얻기에 어렵지 않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왕성에 7사가 구족하고 4식이 풍요하여 얻기에 어렵지 않으며, 다만 안으로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외적 때문에 부서지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만일 성 제자로서도 또한 7선법(善法)을 얻고 4증상심(曾上心)에 이르러 얻기에 어렵지 않으며, 그 때문에 성 제자들은 마왕의 틈탈 바가 되지 않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 때문에 물들지 않고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 어떻게 하여 성 제자들은 7선법을 얻는가. 이른바 성 제자는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고 믿음의 뿌리가 이미 서서, 끝내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 혹은 하늘이나 악마나 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성 제자들의 첫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는 항상 마음으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써, 그것은 모든 악의 갚음을 받고 생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을 안다. 이것을 성 제자들의 둘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는 항상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써, 그것은 모든 악의 갚음을 받고 생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을 안다. 이것을 성 제자들의 셋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는 항상 정진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고 모든 선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히 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는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성 제자들의 넷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다시 성인의 제자는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그것을 지켜 가져 잊지 않으며 쌓고 모으며 널리 듣는다. 이른바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또한 좋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 이르러, 뜻이 생각하고 관(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치나니, 이것을 성 제자들의 다섯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는 항상 생각을 행해 바른 생각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힌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하여 잊지 않는다. 이것을 성 제자들의 여섯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들은 지혜를 닦아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슬기가 밝게 통달함으로써 분별하고 밝게 알아 그로써 바르게 괴로움을 없앤다. 이것을 성 제자들의 일곱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성 제자들이 4증상심에 이르기에 어렵지 않는가. 이른바 성 제자는 탐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을 성 제자들이 제1의 증상심에 이르기에 어렵지 않다는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는 각과 관은 이미 쉬고 마음 속은 고요하고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이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을 성 제자들이 제2의 증상심에 이르기에 어렵지 않다는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는 기쁨의 탐욕에서 떠나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함이 없는 데서 노닐며, 이것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도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자의 말한 바, 버림과 바른 생각과 공에 머무르기를 즐거워하는 제3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을 성 제자들이 제3의 증상심에 이르기에 어렵지 않다는 것이라 한다. 다시 성 제자는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고, 기쁨과 걱정의 뿌리가 이미 없어져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사념이 맑고 깨끗함이 있는 제4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을 성 제자들이 제4의 증상심에 이르기에 어렵지 않다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성 제자는 7선법을 얻고 4증삼심에 이르기에 어렵지 않아, 마왕이 틈을 타지 못하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느니라.

왕의 변성에는 망보는 다락집을 만들어 세우고 땅을 견고하게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는 견고한 믿음을 얻어 깊이 여래에 달라붙고 믿음의 뿌리가 이미 서서 끝내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혹은 하늘·악마·범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성 제자가 믿음의 망보는 다락집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는 성밖에 못을 파기를 아주 깊고 넓게 하여 따로 보수하지 않더라도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는 항상 마음으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써, 그것은 모든 악의 갚음을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을 안다. 이것을 성 제자가 부끄러움의 해자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착한 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이 두루 길을 내어 트이고 편편하고 넓게 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는 항상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써, 그것은 모든 악의 갚음을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그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을 안다. 이것을 성 제자가 부끄러움의 편편한 길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는 4종의 군사의힘 곧 코끼리군사·말군사·수레군사·걷는 군사를 모아,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도 항상 정진을 행하여 악과 불선을 끊고 모든 선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히 하여 모든 선을 위해서는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성 제자가 정진의 군사의 힘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는 군기, 곧 활과 창을 미리 갖추어,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는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지켜 가져 잊지 않으며 지식을 쌓아 모은다. 이른바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또한 좋아,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 이르러 뜻이 생각하고 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치나니, 이것을 성 제자가 많이 듣는 군기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하느니라.

왕의 변성에는 문을 지키는 대장이 서 있다. 그는 밝은 책략과 지혜로운 변재가 있고 용맹스럽고 굳세며 기특한 꾀가 있어, 착한 사람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는 것을 금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도 항상 생각을 거듭하여 바른 생각을 성취하여, 오래 전부터 일찍 익힌 바와 오래 전부터 일찍 들은 바를 항상 기억해 잊지 않는다. 이것을 성 제자가 생각의 문을 지키는 대장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는 높은 담을 쌓아 극히 견고히 하고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박아,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도 지혜를 닦아 행해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슬기가 밝게 통달함으로써 분별하고 밝게 알아 그로써 바르게 괴로움을 다한다. 이것을 성 제자가 지혜의 담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다고 하느니라.

왕의 변성에는 물과 풀과 섶나무의 재료의 예비가 있어,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도 탐욕을 떠나고 악과 불선을 여의어, 감각도 있고 관찰도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이 모자람이 없고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는 많은 벼를 거두고 또 보리를 저장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도 감각과 관찰이 이미 그치고, 안으로 한 마음이 고요하여 감각도 없고 관찰도 없어,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2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은 모자람이 없고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루나니라.

왕의 변성에는 많은 점두와 콩과 팥을 쌓아,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도 기쁨의 탐욕에서 떠나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함이 없이 노닐면서,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자가 말한 바 모든 것의 버림과 바른 생각과 의식의 즐거움과 <공>이 있는 제3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은 모자람이 없고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는 타락기름과 꿀과 감자와 엿을 저축하고 생선과 소금과 고기말림과 일체의 고기가 충족하여, 안은 안온하고 바깥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성 제자는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고, 기쁨과 걱정의 뿌리가 이미 없어져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즐거움의 버림과 공덕의 생각과 맑고 깨끗함이 있는 제4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은 모자람이 없고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루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수유경(水喩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물사람<水人>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때에 여러 비구들은 그 분부를 받고 듣고 있었다.

"어떤 것을 일곱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항상 물 속에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러 있고,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며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고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사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다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물사람의 비유를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때에 여러 비구들은 그 분부대로 듣고 있었다.

"어떤 것을 일곱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항상 누워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왔다가는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또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 저쪽 언덕에 이르며, 또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바라문이라고 한다. 이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을, 내가 간략히 말한 것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고 위에서 베푼 것과 같다. 너희들은 어떤 뜻을 알고 어떻게 분별하며 무슨 인연이 있는가."

때에 여러 비구들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 되시며 법은 세존으로 말미암아 나오나이다. 원하옵건대 그것을 말씀해 주소서. 저희들이 들은 뒤에는 널리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리라."

모든 비구들은 이 분부를 받으며 듣고 있었다.

"어떤 것을 사람이 항상 물에 누웠다고 하는가. 그것은 어떤 사람은 착하지 않은 법에 덮인 바 되고 더러움에 물들어 악의 갚음을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항상 누웠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져 물 속에 누운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첫째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것을 사람이 물에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持戒)·보시(布施)·다문(多聞)·지혜(智慧)의 선법(善法)을 닦아 익힌다. 그는 뒷날에 믿음을 잃어 견고하지 못했고 지계·보시·다문·지혜를 잃어 견고하지 못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물에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왔으나 다시 빠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제2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것을 사람이 이미 나와 머무른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다문·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굳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다문·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물에서 이미 나와 머무른다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와 머무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제3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본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다문·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다문·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참 모양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 모양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結)이 곧 다한다. 3결이란 이른바 신견(身見)과 계금취견(戒禁取見)과 의심이다. 3결이 이미 다하면 수다원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정각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기껏해야 7유(有)를 받아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을 오간 뒤에는 곧 괴로움을 끊어 다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 살펴본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제4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넌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다문·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다문·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참 모양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 모양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은 곧 다한다. 3결이란 이른바, 신견과 계금취견과 의심이다. 3결이 이미 다한다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천상과 인간에 한 번 오가게 된다. 한 번 오가게 된 뒤에는 곧 괴로움을 끊어 다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간다고 한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제5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다문·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다문·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참 모양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 모양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5하분결(下分結)이 다한다. 5하분결이란 이른바 탐욕·성냄·신견·계금취견·의심이 그것이다. 5하분결이 이미 다하면 그는 천상에 나서 곧 <반열반>하여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는 것처럼, 내가 저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제 6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어떤 것을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범지라고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어 지계·보시·다문·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다. 그는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보시·다문·지혜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 가운데 머무르면서 괴로움의 참 모양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 모양을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탐욕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리하여 생명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범지라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 속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무르고 머무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르는 사람이라 하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을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제7의 물에 비유한 사람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내가 아까 말한 바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의 물사람을 말하리라고 한 것은 이 때문에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목적유경(木積喩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살라에 노닐으시면서 세간에 계시어 큰 비구 무리를 데리고 걸어가시었다. 그 때에 세존은 도중에서 갑자기 한 곳에 큰 나무더미가 있고, 거기에 불이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보셨다. 세존은 그것을 보신 뒤에 곧 길 곁으로 내려가 다른 나무로 가시어, 니사단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으셨다. 세존은 앉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저기에 큰 나무더미가 있고 거기에 불이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보는가."

때에 모든 비구들은 대답했다.

"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은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큰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거기에 앉으며 혹은 거기에 눕는 것과, 나이 한창 젊은 크샤트리야의 여자와 바라문·거사·공사의 여자들이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써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것을 끌어안거나 같이 앉으며 혹은 같이 눕는 것과, 어느 것을 즐겁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큰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고 혹은 거기에 앉으며 거기에 눕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나이 한창 젊은 크샤트리야의 여자나, 바라문·거사·공사의 여자들이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써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것을 끌어안거나 같이 앉으며 혹은 같이 눕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들 배우는 사문으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너희들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는 차라리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고 혹은 거기에 앉으며 혹은 거기에 누워라. 그는 이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죽더라도 이것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극히 나쁜 곳 곧 지옥에 가서 나지 않으리라.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해 정진하지 않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컫는 자가, 만일 나이 한창 젊은 크샤트리야의 여자나, 바라문·거사·공사의 여자가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써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것을 끌어안거나 같이 앉으며 혹은 같이 눕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 오랜 시간에 불선과 불의로써 악법의 갚음을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이쪽 뜻도 살피고 저쪽 뜻도 살피어 두 뜻을 다 살피어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집을 나와 배우는 것은 헛 것이 아니요 빈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결과가 있고 갚음이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다. 모든 좋은 곳에 태어나 오랜 수를 얻고, 사람이 보시하는 의복·음식·상뇨·탕약을 받는 것은 그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고 큰 광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고. 마땅히 이렇게 배우라."

세존은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力士)가 단단한 새끼와 털노끈으로써 그 장딴지를 잔뜩 졸라매어, 가죽을 끊고 가죽을 끊은 뒤에는 살을 끊고 살을 끊은 뒤에는 힘줄을 끊고 힘줄을 끊은 뒤에는 뼈를 끊고 뼈를 끊은 뒤에는 뼈심에까지 이르러 그치는 것과 혹은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를 받고, 신체·지절·수족을 안마시키는 것과 어느것을 즐겁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역사가 단단한 새끼와 털노끈을 가지고 그 장딴지를 잔뜩 졸라매어, 가죽을 끊고 가죽을 끊은 뒤에는 살을 끊고 살을 끊은 뒤에는 힘줄을 끊고 힘줄을 끊은 뒤에는 뼈를 끊고 뼈를 끊은 뒤에는 뼈심에까지 이르러 그친다면,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만일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를 받고 또 신체·지절·수족을 안마시킨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들 배우는 사문으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너희들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는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단단한 새끼와 털노끈으로써 그 장딴지를 잔뜩 졸라매어, 가죽을 끊고 가죽을 끊은 뒤에는 살을 끊고 살을 끊은 뒤에는 힘줄을 끊고 힘줄을 끊은 뒤에는 뼈를 끊고 뼈를 끊은 뒤에는 뼈심에까지 이르러 그치게 하라. 그는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혹은 죽는다 하더라도 그러나, 이로써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하여 정진하지 않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어,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그 보시를 받고, 또 신체·지절·수족을 안마시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하여 오랜 시간에 불선과 불의로써 악법의 갚음을 받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이쪽 뜻도 관찰하고 저쪽 뜻도 관찰하고 두 뜻을 관찰하여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집을 나와 배우는 것은 헛 것이 아니요 빈 것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갚음이 있으며 극히 안락한 것이 있다. 모든 좋은 곳에 태어나 오랜 수를 얻고, 남의 보시인 의복·음식·상뇨·탕약을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광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고.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는 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가 잘 드는 예리한 칼로써 그 비장(脾臟)을 끊는 것과 혹은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예배·공경·마중을 받는 것과 어느 것을 즐겁다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역사가 잘 드는 예리한 칼로써 그 비장을 끊는다면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만일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예배·공경·마중을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들은 배우는 사문으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는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잘 드는 예리한 칼로써 그 비장을 끊게 하라. 이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죽는다하더라도 그러나, 그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해 정진하지 않고 악하고 불선한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니면서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어,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예배·공경·마중을 받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해 오랜 시간에 불선과 불의로써 악법의 갚음을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이쪽 뜻도 관찰하고 저쪽 뜻도 관찰하고 두 뜻을 관찰하여 이런 염원을 가져야 한다. '내가 집을 나와 배우는 것은 헛 것이 아니요 빈 것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갚음이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다. 모든 좋은 곳에 태어나서 또 오랜 수를 얻는다. 남의 보시인 의복·음식·상뇨·탕약을 받는 것은 모두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광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고.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는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단 구리쇠판으로써 그 몸을 두루 감는 것과 또는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하는 의복을 받는 것과 어느것을 즐겁다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달은 구리쇠판으로써 그 몸을 두루 감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만일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하는 의복을 받는 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들 배우는 사문으로 하여금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 위 없는 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자는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시뻘겋게 달은 구리 쇠판으로써 그 몸을 두루 감게 하라. 그는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혹은 죽는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는 이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해 정진하지 않고 악과 불선의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어,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하는 의복을 받으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해 오랫동안 불선과 불의로써 악법의 갚음을 받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이쪽 뜻도 관찰하고 저쪽 뜻도 관찰하며 두 뜻을 다 관찰하여 마땅히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가 집을 나와 배우는 것은 헛 것이 아니요 빈 것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갚음이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다. 모든 좋은 곳에 나서 오랜 수를 얻고, 남의 시물(施物)인 의복·음식·상뇨·탕약을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고 큰 광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고.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한다."

세존께서는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의 뜻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단 큰 구리쇠가마에 사람을 붙들어 그 속에 거꾸로 박는 것과 혹은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하는 방사를 진흙으로 바르고 흰 흙으로 박고, 창호를 굳게 봉하고 화롯불의 따뜻한 것을 받는 것과 어느 것을 즐겁다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단 큰 구리쇠가마에 사람을 붙들어 그 속에 거꾸로 박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받은 방사를 진흙으로 바르고 흰 흙으로 박고 창호를 굳게 봉하고 화롯불의 따뜻함을 받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해 말하는 것은, 너희들 배우는 사문을 위해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너희들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는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시뻘겋게 단 큰 구리쇠가마에 사람을 붙들어 그 속에 거꾸로 박게 하라. 그는 이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죽는다 하더라도 그러나 이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해 정진하지 않고 악한 불선의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어, 크샤트리야·바라문·거사·공사로부터 보시받은 방사를 진흙으로 바르고 흰 흙으로 박고 창호를 굳게 봉하고 화롯불의 따뜻함을 받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해 오랫동안의 불선과 불의로써 악법의 갚음을 받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악한 곳으로 나아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이쪽 뜻도 관찰하고 저쪽 뜻도 관찰하고 두 뜻을 다 관찰하여, 이런 염원을 가져야 한다. '내가 집을 나와 배우는 것은 헛 것이 아니요 빈 것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갚음이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다. 모든 좋은 곳에 태어나 오랜 수를 얻고 남이 보시한 의복·음식·상뇨·탕약을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고 큰 광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라고.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셨을 때 60의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의심이 풀렸지마는 다른 60의 비구는 계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세존의 가르침은 매우 깊고 어려웠으며 도를 배우기도 또한 매우 깊고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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