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2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18:51

중아함경 제2권

 

6. 선인왕경 (善人往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설명하리라. 자세히 듣고 이것을 잘 생각하라."

때에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어떤 것을 일곱이라 하는가. 비구의 행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나>라는 것은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그는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세간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을 것이며, 서로 만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무상(無上)·식(息)·적(迹)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증(證)은 얻지 못한 것이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불난 밀껍질이 조금 타다가 곧 꺼지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마는 또 하분결(下分結)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제1 仙人의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의 행은 이와 같아야 한다. <나>라는 것은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서로 만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무상·식·적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증은 얻지 못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은 쇠를 쇠망치로 치면 튀는 불똥이 공중으로 날아 오르다가, 곧 멸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마는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제2 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의 행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내게는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그는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서로 만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행이 이와 같은 자는 무상·식·적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증은 얻지 못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은 쇠를 쇠망치로 치면 튀는 불똥은 공중으로 날다가 위에서 내려와 땅에 이르기 전에 꺼지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마는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제3 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의 행은 이와 같아야 한다. 내게는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그는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서로 만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행이 이와 같은 자는 무상·식·적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증은 얻지 못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은 쇠를 쇠망치로 치면 튀는 불똥은 공중으로 날다가 땅에 떨어져 멸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마는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생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은 제4 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의 행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내게는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그는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서로 만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행이 이와 같은 자는 무상·식·적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증은 얻지 못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은 쇠를 쇠망치로 치면 튀는 불똥은 공중으로 날다가 조그마한 풀섶 위에 떨어져 연기를 내고, 혹은 타며 탄 뒤에는 이미 멸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남아 있지마는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행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은 제5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의 행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내게는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그는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서로 만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행이 이와 같은 자는 무상·식·적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증을 얻지 못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은 쇠를 쇠망치로 치면 튀는 불똥은 공중으로 날다가 많은 풀섶 위에 떨어져, 혹은 연기를 내고 혹은 타며 다 탄 뒤에는 멸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마는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무행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제6 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비구의 행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내게는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그는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서로 만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행이 이와 같은 자는 무상·식·적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증은 얻지 못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은 쇠를 쇠망치로 치면 튀는 불똥은 공중으로 날다가 많은 풀섶 위에 떨어져, 혹은 연기를 내고 혹은 타며 탄 뒤에는 촌읍·성곽·수풀·광야를 불사르고, 촌읍·성곽·수풀·광야를 불사른 뒤에는 혹은 길에 와서 물에 와서 평지에 와서 멸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이와 같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마는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상류·아카니슈타 <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제7 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이라 하며,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니라.

어떤 것이 무여열반인가. 비구의 행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내게는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도 없고 또한 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받은 존재는 끊어 버리자. 이미 끊었으니 그는 버릴 수 있을 것이요,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서로 만나는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행이 이와 같은 자는 무상·식·적을 얻을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 보는 바로써 이미 증을 얻었다. 내가 말하는 그 비구는 동방으로도 가지 않고, 서방·남방·북방·4유·상·하에도 가지 않고, 곧 현재 세상에서 식·적·멸도를 얻는다. 내가 아까 말한 바의 일곱 선인의 가서 이르는 곳과 무여열반은 이렇기 때문에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7. 세간복경(世間福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코삼비에 노닐으시면서 고시타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마하 춘다는 오후에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시는 곳에 나아가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복을 마련할 수 있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할 수 있느니라, 춘다여. 일곱 가지 세간복이 있으니,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는다. 어떤 것이 일곱인가.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族性)의 남자와 여자가 비구들에게 방사(防舍)와 당각(當閣)을 보시한다. 춘다여, 이것을 제1의 세간복이라 하며,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방사 안에서 쓰는 평상과 여러 가지 털로 된 자리와 또 침구를 베풀어 준다. 춘다여, 이것을 제2의 세간복이라 하며,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와 모든 여자가 방사 안에서 쓰는 모든 새롭고 깨끗한 묘의(妙衣)를 베풀어 준다. 이것을 제3의 세간복이라 하며,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춘다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방사 안에서 항상 비구들에게 아침 죽과 점심을 베풀고, 또 동산지기를 주어 부리게 하며, 혹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거나 추울 때나 눈이 올 때에는 몸소 동산으로 나아가 보시를 더해 공양하며, 모든 비구들이 공양을 마친 뒤에는 바람이나 비나 추위나 눈에 의복이 젖는 것을 걱정하지 않게 하고, 밤낮으로 편안히 선정에 들어 생각하게 한다. 이것을 제7의 세간복이라 하며,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이미 이 일곱 가지 세간복을 얻은 자는, 가거나 오거나 서거나 앉거나 혹은 자거나 깨거나 낮이나 밤이나 그 복은 언제나 생기며 갈수록 더하고갈수록 넓어진다. 비유하면, 강가강의 물이 근원에서 흘러나와 큰 바다로 들어갈 때에 그 중간에서 갈수록 깊고 갈수록 넓어지는 것과 같느니라. 춘다여, 이와 같이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로서 이미 이 일곱 가지 세간복을 얻은 자는 가거나 오거나 서거나 앉거나 혹은 자거나 깨거나 낮이나 밤이나 그 복은 항상 생겨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넓어지느니라."

이에 존자 마하 춘다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을 뛰어난 복을 마련할 수 있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할 수 있느니라, 춘다여. 다시 세간을 뛰어난 일곱 가지 복이 있다.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는다. 어떤 것이 일곱인가.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어느 곳에서 노니신다는 말을 들으면 뛰면서 기뻐한다. 춘다여, 이것을 제1의 세간을 뛰어난 복이라 하며,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저기서 이리로 오시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뛰면서 기뻐한다. 춘다여, 이것을 제2의 세간을 뛰어난 복이라 하며,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거기서 이리로 왔다는 말을 듣고 못내 기뻐하여 뛰놀면서, 청정한 마음으로 몸소 가서 뵈옵고 예경하고 공양한다. 공양을 마치고는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서 3자귀(自歸)의 법을 받고 금계(禁戒)를 받는다. 춘다여, 이것을 제 7의 세간을 뛰어난 복이라하며, 그것은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느니라.

춘다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만일 이 일곱 가지 세간복을 얻고 다시 이 일곱 가지 세간을 뛰어난 복이 있으면 그 복은 셀 수 없는 것이다. 그 복과 그 복의 과(果)와 그 복의 갚음이 있어 그 큰 복의 수는 한정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것이다. 춘다여, 비유하면 염부주로부터 흘러나오는 5하(河)가 있다. 1을 항아라 하고, 2를 야무나라 하며 3을 사라부라 하고, 4를 아치라바티라 하며, 5를 마히라 한다. 그것들이 대해로 흘러 들어갈 때 그 중간의 물을 셀 수가 없다. 그것을 말이나 섬으로 된다면 그저 그 큰 물의 수는 한정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춘다여, 이와 같이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만일 이 일곱 가지 세간복을 얻고, 다시 이 일곱 가지 세간을 뛰어난 복이 있으면 그 복은 셀 수 없는 것이다. 그 복과 그 복의 과와 그 복의 갚음이 있어, 그 복의 수는 그저 셀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써 말씀하셨다.

 

강가의 강물은

청정하고 건너기 쉽다.

바다에는 보배가 많고

모든 물 가운데 왕이네.

 

마치 저 강물과 같이

세상 사람이 공경하여 받들고,

모든 시내의 돌아가는 곳

그것을 끄을어 바다로 가네.

 

이러한 사람은

의복과 음식과

상탑과 요와

모든 좌구 베풀면

 

무량한 복의 갚음 가지고

묘한 곳으로 이르나니,

마치 저 강물이 모든 물 끄을어

큰 바다로 들어가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존자 마하 춘다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8. 칠일경(七日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에 노닐으시면서 암바파알리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에는 즐겨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싫어해야 할 것이며, 여의기를 구하고 마땅히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왜냐하면 때로는 비가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모든 나무와 온갖 곡식과 약나무들은 모두 마르고 꺾이고 부서져 항상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에는 탐착할 것이 아니다. 마땅히 싫어해야 할 것이며,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때로는 두 해가 세상에 날 때가 있다. 두 해가 날 때에는 모든 개울과 시냇물은 다 말라 없어져 항상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에는 마땅히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싫어해야 할 것이요,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세 해가 세상에 날 때가 있다. 세 해가 날 때에는 모든 큰 강물은 다 말라 없어져 항상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에는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땅히 이것은 싫어해야 할 것이며,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때로는 네 해가 세상에 날 때가 있다. 네 해가 날 때는 모든 큰 샘의 근원인 <염부주>에서 흘러나오는 5하(河) 곧 1을 항하라 하고, 2를 야무나라 하며, 3을 사라부라 하고, 4를 아치라바티라 하며, 5를 마히라 한다. 그들의 큰 샘의 근원은 모두 말라 다해 항상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에는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리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또 때로는 다섯 해가 세상에 날 때가 있다. 다섯 해가 날 때에는 대해의 물은 1백 유순으로 감하고 더욱 줄어 7백 유순에까지 이를 것이다. 또 다섯 해가 날 때는 바닷물은 7백 유순으로 남았다가 차츰 줄어 1백 유순에까지 이를 것이다. 다섯 해가 날 때에는 대해의 물은 1타알라나무 높이 만큼 줄었다가 더욱 줄어 7타알라나무 높이에 이를 것이다. 다섯 해가 날 때에는 바닷물은 7타알라나무 높이 만큼 남았다가 차츰 줄어 1타알라나무 높이에 이를 것이다. 다섯 해가 날 때에는 바닷물은 한 사람의 키만큼 줄었다가 더욱 줄어 일곱 사람의 키에 이를 것이다. 다섯 해가 날 때에는 바닷물은 일곱 사람의 키만큼 남았다가 차츰 줄어 한 사람의 키에 이를 것이다. 다섯 해가 날 때에는 바닷물은 줄어, 목에 이르고 어깨에 이르고 허리에 이르고 허벅다리에 이르고 무릎에 이르고 복사뼈에 이르고, 때로는 바닷물은 다 말라 발가락마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그것을 싫어해야 할 것이며,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때로는 여섯 해가 세상에 날 때가 있다. 여섯 해가 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이 다 연기를 일으켜 그것이 합해 한 연기가 된다. 비유하면 도사가 처음에 가마솥에 불을 땔 때 모두 연기가 일어나 그것이 합해 한 연기가 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여섯 해가 날 때에는 일체 대지와 수미산왕은 연기를 일으켜 그것이 합해 한 연기가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그것을 싫어해야 할 것이며,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때로는 일곱 해가 세상에 날 때가 있다. 일곱 해가 세상에 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은 벌겋게 불이 붙어 함께 타 그것이 합해서 한 불꽃이 된다. 이와 같이 일곱 해가 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은 벌겋게 불이 붙어 함께 타 그것이 합해 한 불꽃이 되고 바람이 불꽃을 불어 이에 범천(梵天)에 이른다. 이 때에 황욱천의 모든 하늘로서 처음으로 이 하늘에 난 자는, 세간의 성패를 듣지 못했고 세간의 성패를 보지 못했으며 세간의 성패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큰 불을 보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털이 일어선다. 그래서 불이 여기까지 오지 않을까, 불이 여기까지 오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한다. 그 전부터 난 모든 하늘은 세간의 성패를 들었고 세간의 성패를 보았으며 세간의 성패를 알았기 때문에 이 큰 불을 보고는 모든 하늘들을 위로해 '두려워할 것 없다. 불의 법은 저와 같은 것으로서 끝내 여기에는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곱 해가 날 때에는 수미산왕은 백 유순이나 무너져 흩어져 모두 없어진다. 2백 유순, 3백 유순, 내지 7백 유순이나 무너져 흩어져 모두 없어진다. 일곱 해가 날 때에는 수미산왕과 이 대지는 불에 타고 무너져 소멸해 그 재도 남는 것이 없다. 마치 타락기름을 태우면 끓어 자질어져 다 녹아 연기나 불꽃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일곱 해가 날 때에도 수미산왕과 이 대지는 탄 재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요 빨리 변하고 바뀌는 법이며 의지 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그것을 싫어해야 할 것이며,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수미산왕은 반드시 무너져 다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4제(諦)를 본 자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일체의 대지는 반드시 다 타서 없어지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4제를 본 자만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비구들이여, 옛날에 이름을 선안이라 하는 대사가 있었다. 그는 외도 선인들의 스승이었다. 그는 욕애를 버려 여의고 여의족을 얻었었다. 선안 대사에게는 수많은 제자가 있었다. 선안 대사는 모든 제자를 위하여 범세법을 설명했다.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설명할 때에 모든 제자로서 그 법을 구족히 받들어 행하지 않는 자 있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4왕천에 태어나거나 33천에 태어나며, 혹은 야마천에 태어나거나 도솔천에 태어나며, 화락천에 태어나거나 타화락천에 태어난다. 만일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설명할 때에 모든 제자들로서 그 법을 구족히 받들어 행하는 자 있으면, 그는 4범실(梵室)을 닦아 탐욕을 버려 여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날 수 있다. 그 때 선안 대사는 '나는 마땅히 제자들과 함께 후세에 가서 한 곳에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다시 증상자(增上慈)를 닦아야 한다.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면 황욱천에 가서 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선안 대사는 곧 뒷날에 다시 증상자를 닦고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고 황욱천에 날 수 있었다. 선안 대사와 모든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느니라.

여러 비구들이여,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옛날에 선안 대사는 외도 선인의 스승이었고, 욕애를 버려 여의고 <여의족>을 얻었다. 너희들은 그를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말라. 마땅히 알라. 그는 곧 이 나였다. 나는 그 때에 선안 대사라 이름했고 외도 선인의 스승이었으며, 욕애을 버려 여의고 여의족을 얻었었다. 나는 그 때에 수많은 제자를 두었다. 나는 그 때에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을 연설했었다. 내가 범세법을 연설했을 때에 모든 제자들 중에서 그 법을 구족히 받들어 행하지 못한 자 있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4왕천에 나거나 33천에 났으며, 혹은 야마천에 나거나 도솔천에 났으며, 혹은 화락천에 나거나 타화락천에 났었다. 내가 범세법을 연설했을 때 모든 제자들로서 만일 구족히 법을 받들어 행하는 자 있으면, 그는 4범실을 닦고 탐욕을 버려 여의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때에 '나는 마땅히 제자들과 함께 뒤 세상에 가서 한 곳에 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차라리 다시 증상자를 닦으리라.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면 황욱천에 날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 뒤에 다시 증상자를 닦았다.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고 황욱천에 날 수 있었다. 그 때에 나와 모든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느니라.

나는 그 때에 스스로 이 도를 행하여 자신이 요익되고 또한 남도 요익하게 했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상을 가엾이 여기었으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했었다. 그러나, 그 때의 설법은 구경에 이르지 못했고, 백정을 구경하지 못했으며, 범행을 구경하지 못했고, 범행을 구경하지 못하고 마쳤다. 그래서 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울음과 걱정을 떠나지 못했고, 또한 일체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세상에 나와 여래·무소착·등정각·명행성위·선서·세간해·무상사·도법어·천인사·불·중우라 호한다. 나는 이제 스스로 요익하고 또 남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또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 나는 이제 설법하여 구경에 이를 수 있고 백정을 구경하고 범행을 구경했으며, 범행을 구경해 마쳤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미 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울음과 걱정을 여의었다. 나는 이제 이미 일체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노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9 칠거경(七車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노닐으시다가, 죽림정사에 계시면서 큰 비구들과 더불어 여름 안거를 지내셨다. 존자 만자자도 또한 그 고향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다. 이 때에 고향 시골의 모든 비구들은 여름 안거 3개월을 지낸 뒤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바루를 가지고 고향 시골에서 떠나 왕사성으로 향했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왕사성에 이르러 그 곳 죽림정사에 머물렀다. 이 때에 시골의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한쪽에 물러가 앉았다. 세존께서는 물으셨다.

"비구들이여, 어디서 오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시골의 여러 비구들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시골서 오며 시골서 여름 안거를 지냈나이다."

"그 시골의 여러 비구 중에서 어떤 비구가 여러 비구의 칭찬을 받는가. 즉 스스로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면서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한가히 있으면서 한가히 있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정진하면서 정진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바른 생각이면서 바른 생각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일심이면서 일심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지혜로우면서 지혜로운 것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번뇌가 다했으면서 번뇌가 다한 것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하고 기뻐하면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하고 기뻐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는 비구는 누군가."

"세존이시여, 존자 만자자는 저 시골에서 모든 비구들의 칭찬을 받고 있나이다. 그는 스스로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면서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한가히 있으면서 한가히 있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정진하면서 정진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바른 생각이면서 바른 생각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일심이면서 일심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지혜로우면서 지혜로운 것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번뇌가 다했으면서 번뇌가 다한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하고 기뻐하면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하고 기뻐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나이다."

이 때에 존자 사리불은 대중 가운데 앉아 있었다. 존자 사리불은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은 예와 같이 저 시골의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시고 시골의 여러 비구들은 아주 대단스럽게 현자 만자자를 칭찬한다. 곧 그는 스스로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면서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한가히 있으면서 한가히 있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정진하면서 정진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바른 생각이면서 바른 생각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일심이면서 일심인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지혜로우면서 지혜로운 것을 칭찬해 말하며, 스스로 번뇌가 다했으면서 번뇌가 다한 것을 칭찬해 말하고, 스스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하고 기뻐하면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하고 기뻐하는 것을 칭찬해 말한다.'고. 존자 사리불은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언제 저 현자 만자자와 함께 모여 그 뜻을 조금 물어 볼 수 있을까. 그는 어쩌면 나의 물음을 들어 주리라.'

그 때에 세존은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3개월을 지낸 뒤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바루를 가지고 그 곳을 떠나 사위국으로 향하였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그 곳에 이르러 곧 기수급고독원에 머무르셨다. 존자 사리불은 시골의 여러 비구들과 더불어 왕사성에서 며칠을 머무르다가, 옷을 단속하고 바루를 가지고 사위국으로 향하였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거기에 이르러 기수급고독원에 함께 머물렀다. 때에 존자 만자자도 시골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3개월을 지낸 뒤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바루를 가지고 시골을 떠나 사위국으로 했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그 곳에 이르러, 또한 기수급고독원에 머물렀다. 존자 만자자는 세존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여래 앞에서 <니사단>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았다. 때에 존자 사리불은 다른 비구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어느 사람이 현자 만자자입니까."

비구들은 말하였다.

"존자여, 그렇습니다. 그 존자는 세존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얼굴은 하얗고 코는 높아 앵무새 부리와 같은 것이 곧 그 사람입니다."

때에 존자 사리불은 만자자의 얼굴을 알고 곧 기억했다. 존자 만자자는 그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밥을 빌었다. 먹기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바루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의 경행(經行)하는 곳으로 갔다. 존자 사리불도 또한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밥을 빌었다. 먹기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바루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의 경행하는 곳으로 갔다. 때에 존자 만자자는 안다숲에 이르러 한 나무 밑에다 니사단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았다. 존자 사리불도 또한 안다숲에 이르러 만자자에게서 멀지 않은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았다. 존자 사리불은 저녁 때에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만자자에게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곧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사문 고오타마를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그대는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를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소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어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을 잘 아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와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를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아까 그대에게 '사문 고오타마를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대는 곧 '그렇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대에게 물었습니다.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를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고. 그대는 곧 '아닙니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소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어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와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를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고 물을 때, 그대는 곧 '아닙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으로 사문 고오타마를 따라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현자여, <무여열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는 <무여열반>을 마련합니까."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소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어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와 도 아닌 것을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는 <무여열반>을 연설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아까 그대에게 물었습니다.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는 무여열반을 연설합니까.'고. 현자는 '아닙니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소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어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와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는 무여열반을 연설합니까.'고 물을 때, 현자는 '아닙니다.'고 말했습니다. 현자의 말하는 바는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하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여, 만일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 사문 고오타마가 무여열반을 연설한다면, 그것은 곧 유여(有餘)를 무여(無餘)라고 일컫는 것이요,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소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어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의 자취와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 사문 고오타마가 무여열반을 연설한다면 그것은 유여를 무여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현자여, 만일 이 법을 떠나 세존께서 무여열반을 연설한다면 곧 범부도 또한 반드시 <반열반>하리이다. 왜냐하면, 범부도 또한 이 법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다만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얻고, 마음이 깨끗함으로써 소견의 깨끗함을 얻으며, 소견이 깨끗함으로써 의심을 없앤 깨끗함을 얻고, 의심을 없앤 깨끗함으로써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한 지견의 깨끗함을 얻으며,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는 지견의 깨끗함으로써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의 깨끗함을 얻고,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의 깨끗함으로써 도의 자취를 알고 번뇌를 끊는 지혜의 깨끗함을 얻으며, 도의 자취를 알고 번뇌를 끊는 지혜의 깨끗함으로써 세존, 사문 고오타마는 무여열반을 연설하는 것입니다.

현자여, 다시 들으십시오. 옛날 코살라왕 프라세나짓은 사위국에 있었는데, 사케타에 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방법으로써 하룻걸음으로 사위국에서 사케타에까지 갈 수 있을까'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나는 이제 사위국에서 사케타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벌여 두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에 그는 곧 사위국에서 사케타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벌여 두었습니다. 일곱 수레를 벌여 둔 뒤에 그는 사위국에서 나와 첫째 수레에 이르렀습니다. 첫째 수레를 타고 둘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째 수레를 버렸습니다. 둘째 수레를 타고 셋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둘째 수레를 버리고 셋째 수레를 타고, 넷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셋째 수레를 버렸으며, 넷째 수레를 타고 다섯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넷째 수레를 버리고, 다섯째 수레를 타고 여섯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째 수레를 버렸습니다. 또 여섯째 수레를 타고 일곱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째 수레를 버리고 일곱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걸음으로 사케타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사케타에서 볼 일을 다 보아 마치고 대신들에게 둘러싸이어 왕의 정전에 앉았습니다. 뭇 신하들은 아뢰었습니다.

"어떻게 임금님은 하룻걸음으로 사위국에서 사케타에까지 오셨습니까."

왕은 말했습니다.

"그러하니라"고.

"어떻게 첫째 수레를 타고 하루 동안에 사위국에서 사케타에 오셨습니까."

"아니다."

"둘째 수레를 타고 셋째 수레를 타고 일곱째 수레에 이르러 오셨습니까."

"아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코살라왕 프라세나짓은 뭇 신하가 다시 묻는다면 어떻게 말할 것입니까. 왕은 뭇 신하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사위국에 있으면서 사케타에 볼 일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방법으로써 하룻걸음으로 사위국에서 사케타에까지 갈 수 있을까'라고.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제 사위국에서 사케타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벌여 두리라'고. 나는 그 때 곧 사위국에서 사케타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벌여 두었다. 일곱 수레를 벌여 둔 뒤에 사위국에서 나아가 첫째 수레에 이르렀다. 첫째 수레를 타고 둘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째 수레를 버렸다. 둘째 수레를 타고 셋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둘째 수레를 버리고, 셋째 수레를 타고, 넷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셋째 수레를 버렸다. 넷째 수레를 타고 다섯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넷째 수레를 버리고 다섯째 수레를 타고 여섯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째 수레를 버렸다. 여섯째 수레를 타고 일곱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째 수레를 버리고, 일곱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동안에 사케타까지 왔다."

현자여, 코살라왕 프라세나짓이 뭇 신하들의 물음에 대하여 한 대답은 이와 같았습니다.

그와 같이 현자여,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얻고, 마음이 깨끗함으로써 소견의 깨끗함을 얻으며, 소견이 깨끗함으로써 의심을 없앤 깨끗함을 얻고, 의심을 없앤 깨끗함으로써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는 지견의 깨끗함을 얻으며, 도와 도 아님을 분별하는 지견의 깨끗함으로써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의 깨끗함을 얻고, 도의 자취를 잘 아는 지견의 깨끗함으로써 도의 자취와 번뇌를 끊는 지혜의 깨끗함을 얻으며, 도의 자취와 번뇌를 끊는 지혜의 깨끗함으로써 세존께서는 무여열반을 연설하는 것입니다."

이에 존자 사리불은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현자여, 현자는 무엇이라 이름하며, 모든 범행인은 무엇이라고 현자를 일컫습니까."

"현자여, 내 아버지의 호는 만(滿)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자(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만자자(만자의 아들)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불은 찬탄하며 말했다.

"좋고 좋구나. 현자 만자자여, 그대는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과 지변과 총명은 결정되고,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어 조어를 성취하였으며, 큰 변재에 통하고 감로의 깃대를 얻었으며, 감로계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으십니다. 그러므로, 현자에게 물으면 그 매우 깊은 뜻을 다 능히 대답하기 때문에 현자 만자자는 모든 범행인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합니다. 그들은 현자 만자자를 만날 수 있어 때때로 가서 보고 때때로 예배합니다. 나도 이제 또 큰 이익을 얻고 언제고 가서 뵙고 언제고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감고 현자 만자자를 머리 위에 모심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또한 큰 이익을 얻고 언제고 가서 뵙고 언제고 예배할 것입니다."

존자 만자자는 존자 사리불에게 물었다.

"현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모든 범행인들은 현자를 무엇이라 일컫습니까."

"현자여, 나의 자는 우파티샤요 내 어머니를 샤리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사리불(사리의 아들)이라 합니다."

존자 만자자는 한탄하며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존의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둘째의 높은 이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고, 법의 장수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으며, 굴리는 법바퀴를 다시 굴리는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내가 만일 존자 사리불을 알았다면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다시 당신의 깊이 따지는 바이겠습니까. 좋고 좋다. 존자 사리불 당신은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과 지변과 총명은 결정되고,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어 조어를 성취하였으며, 큰 변재에 통하고 감로의 깃대를 얻었으며, 감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으십니다. 존자의 매우 깊고도 또 깊은 물음으로 말미암아, 사리불이여, 모든 범행인들은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존자 사리불을 만날 수 있어 언제고 가서 뵙고 언제고 예배할 것입니다. 이제 나도 또한 큰 이익을 얻고 언제나 가서 뵈옵고 언제나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들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감고 존자를 머리 위에 모심으로 말미암아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또한 큰 이익을 얻고 언제나 가서 뵈옵고 언제나 예배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현인은 서로 칭찬해 말하고 다시 서로 착함을 칭찬해 마친 뒤, 기뻐하여 받들어 행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갔다.

 

 

10. 누진경(漏盡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국에 노닐으시면서 캄마싯담마라는 도읍에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앎으로써, 봄으로써 모든 번뇌가 다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앎으로써, 봄으로써 모든 번뇌가 다할 수 있는가. 바른 사유와 바르지 않은 사유가 있다. 만일 바르지 않게 사유한다면,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것은 곧 더욱 퍼진다. 아직 나지 않은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가 생기고 이미 생긴 유루와 무명루는 더욱 퍼진다. 만일 바르게 사유하면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더라도 곧 없어진다. 그런데, 범부와 우인은 바른 법을 얻어 듣지 못하고 참 지식을 만나지 못하여,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단련하지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느니라.

바르지 못하게 사유하면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퍼진다. 아직 나지 않은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퍼진다. 바르게 사유하면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그래도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그래도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퍼진다. 아직 나지 않은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퍼진다. 많이 들은 성 제자들은 바른 법을 얻어 듣고 참 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을 모시고 참다운 법을 아느니라.

바르지 않게 사유하는 자는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퍼진다. 아직 나지 않은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퍼진다. 바르게 사유하는 자는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나지 않은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이미 알아,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생각해야 할 법은 곧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은 곧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나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나지 않은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더라도 곧 없어지느니라.

누(漏)와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끊는 일곱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일곱인가. 있는 누는 <소견>을 좇아 끊고, 유루는 보호를 좇아 끊으며, 유루는 떠남을 좇아 끊고, 있는 누는 씀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참음을 좇아 끊고 유루는 없앰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생각을 좇아 끊는다. 어떤 것을 유루는 소견을 좇아 끊는다고 하는가.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른 법을 얻어 듣지 못하고, 참 지식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고,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이러한 생각을 낸다. '내게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내게 과거의 세상이 없었는가. 내게는 무엇으로 인해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내게는 어떠한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내게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내게 미래의 세상이 없을 것인가. 내게는 무엇으로 인해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내게는 어떠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또 스스로 의심한다. '내 몸을 무엇이라 하며 이것은 어떤 것이 이것인가. 이제 이 중생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장차는 어디로 갈 것인가. 원래는 무엇을 인해 있으며 장차는 무엇을 인해 있을 것인가.' 그는 이와 같이 바르지 않게 생각하여, 6견(見) 가운데 있으면서 그 소견이 생김을 따라 '내게 <나>가 있다'는 소견을 내고 이 소견이 생겨 '내게는 <나>가 없다'는 소견을 내며, 이 소견이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를 안다는 소견을 내고, 이 소견이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가 없는 것을 안다는 소견을 내며, 이 소견이 생겨 <나>가 없으므로 말미암아 <나>를 안다는 소견을 내고, 이 소견이 생겨 이것은 이 <나>다 라는 소견을 낸다. 이 <나>는 능히 말하고 능히 알고 능히 행동하며, 능히 행동하게 하고 능히 일어나게 하며, 가는 곳마다 선악의 갚음을 받는다. 그것은 좇아오는 바 일정한 곳이 없고, 꼭 있는 것도 아니요 꼭 있을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이것을 소견의 폐단이라 하는데, 이 소견에 흔들리고 이 소견의 결박을 받는다.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이 때문에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많이 들은 성 제자들은 바른 법을 얻어 듣고 참 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을 모시고 참다운 법을 알아 괴로움의 참 모양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 모양을 안다. 이와 같이 참 모양을 알아 마치면 신견(身見)과 계취견(戒取見)과 의심의 3결(結)이라 한다. 이 3결이 다하면 수다원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정각으로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를 받고,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만일 알고 보지 못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만일 알고 또 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있는 누는 소견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유루는 보호를 좇아 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눈으로 빛깔을 보고, 안근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안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한 것을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도 법을 알아 의근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요, 의근을 보호하지 않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보호로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유루는 떠남으로 좇아 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악한 코끼리를 보거든 곧 마땅히 악한 말·악한 소·악한 개·독한 뱀·나쁜 길·개천·구덩이와 깊숙한 곳과 강과 깊은 샘물과 산과 바위와 악한 지식·악한 벗·악한 이도(異道)와 악한 마을·악한 처소를 떠나야 한다. 만일 모든 범행을 닦는 사람이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을 의심이 있게 하거든, 비구는 마땅히 악한 지식과 악한 벗·악한 이도·악한 마을·악한 처소를 떠나야 한다. 만일 모든 범행을 닦는 자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을 의심이 있게 하거든, 마땅히 다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요, 여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떠남으로 좇아 끊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유루는 씀을 좇아 끊는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가 의복을 입는다면 그것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며, 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모기와 등에와 바람과 비와 춥고 뜨거움 때문이요, 부끄러움 때문이다. 만일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며 살찌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몸을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여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없애기 위해서요, 범행을 행하기 위해서요, 묵은 병을 고치고 새 병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며, 오래 살고 안온하고 병이 없기 위해서다. 만일 처소와 방사와 평상과 요와 침구를 쓴다면 그것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며 치레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피로할 때 쉼을 얻기 위해서요, 고요히 앉기 위해서다. 만일 약을 쓴다면 그것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며 살찌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병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요, 목숨을 거두어 잡기 위해서며, 안온하고 병이 없기 위해서다. 만일 그것들을 쓰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그것을 쓰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씀으로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유루는 참음을 좇아 끊는다 하는가. 비구는 정진하여 악과 불선을 끊고 선한 법을 닦기 때문에 항상 일어나는 생각이 있고, 마음을 통일하여 정근하며, 몸·가죽·살·힘줄·뼈·피·골을 다 마르게 하여 정진을 버리지 않고 구하는 바를 그대로 얻어서야 이에 정진을 버린다. 비구는 다시 마땅히 주림·목마름·추위·더위·모기·등에·파리·벼룩·이를 견디어 참아야 하고, 바람이나 햇볕의 핍박을 받고 욕설과 매질을 당해도 또한 능히 그것을 참으며, 몸에 모든 병이 생겨 몹시 고통스럽고 목숨이 끊어질 듯한 모든 불쾌한 것도 다 능히 견디어 참아야 한다. 만일 그것을 참지 못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그것을 참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참음으로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유루는 없앰을 좇아 끊는다고 하는가. 비구는 욕념을 내어 그것을 끊어 없애고 버리어 떠나지 않고, 성내는 생각과 해치는 생각을 내어 끊어 없애고 버리어 떠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그것을 없애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없앰으로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유루는 사유를 좇아 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첫째의 생각하는 각지(覺支)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의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여 곧 나고 죽음을 뛰어남에 이른다. 법과 정진과 기쁨과 쉼과 정과 또 일곱째의 버리는 각지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의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여 곧 나고 죽음을 뛰어남에 이른다. 만일 사유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생각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사유로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비구로 하여금 유루를 소견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소견으로써 끊고, 유루를 보호로 좇아 끊을 것은 곧 보호로써 끊으며, 유루를 떠남을 좇아 끊을 것은 곧 떠남으로써 끊고, 유루를 씀을 좇아 끊을 것은 유루를 곧 씀으로써 끊으며, 유루를 참음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참음으로써 끊고, 유루를 없앰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없앰으로써 끊으며, 유루를 사유를 좇아 끊을 것은 곧 사유로써 끊게 한다면, 이것을 비구의 일체의 누가 다하고 모든 맺힘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은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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