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해제(중아함경 책 1권 판)

다르마 러브 2012. 6. 16. 19:24

출처 : 한글대장경 중아함경1권

1. 머리말

아함경(阿含經)의 성립과 그 이름의 뜻 및 특질에 대해서는, 이미 출간(出刊)된 장아함경(한글대장경 1) 해제에서 해설하였기 때문에 생략하고, 여기서는 이 중아함경(中阿含經)의 역자(譯者)와 조직 및 그 내용만을 간단히 적기로 한다.

2. 역자(譯者)에 대하여

이 중아함경의 한문 번역은 앞뒤 두 차례가 있다. 그 첫 번째 번역은 도거륵국(兜?勒國)의 사문(沙門) 담마난제(曇摩難題, 秦에서는 法喜라 부름)가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의 건원(建元) 20년에서 요장(姚?) 6년까지 장안(長安) 성내(城內)에서, 증일아함(增一阿含) 및 중아함(中阿含)을 무려 1백 권을 번역해 내었는데, 증일아함이 41권, 중아함이 59권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난제(難題)는 호본(胡本)을 입으로 외우고 축불념(竺佛念)이 번역하였다.”고 그 책 3권에 적혀 있다.

다시 고승전(高僧傳) 1권에는, “부견의 신하에 무위태수(武威太守) 조정(趙正)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도(道)를 위해 몸을 잊은 사람으로서, 모용충(慕容?)의 반역(叛逆)으로 관중(關中)이 시끄러웠으나, 그는 그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장안 성중에서 의학승(義學僧)을 모으고, 난제를 청해 중아함?증일아함의 두 아함을 번역하게 하였다. 그 뒤에 요장(姚?)이 일어나 서울까지 침범해 들어와 인심이 험악하게 되자, 난제는 그 곳을 하직하고 서역(西域)으로 돌아갔으나, 그 뒤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중아함의 첫 번째 번역이었으나, 그것은 일찍 없어져 오늘에 전하지 않으니,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는 오늘날 알 길이 없다.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3권에는 현재 있는 중아함에 대해서 “담마난제의 번역한 것과는 아주 틀린다.”고 하였고,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3권에 “두 번째 번역은 담마난제의 번역과는 아주 다르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첫 번째 번역은 현재의 두 번째 번역과는 거의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번역은 계빈국(?賓國) 사람 구담(瞿曇) 승가제바(僧伽提婆, 중천(衆天)이라고도 함.)가 번역한 것이라고 전하는 이 중아함경 60권이다. 제바의 전기(傳記)에 대해서는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 13권,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3권, <고승전(高僧傳)> 1권에 나오는데, 대체로 비슷한 것이다. 그는 부견의 건원 년간에 장안에 와서 포교에 종사하였다. 그 당시 장안에는 석도안(釋道安)이 있어 진왕(秦王) 부견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그 찬조를 얻어 경전의 연구와 번역 사업의 감독을 하고 있었다. 담마난제가 증일?중의 두 아함을 번역한 것도 그 일부는 이 석도안의 권유에 의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출삼장기집> 3권에 “이에 안공(安公)과 함께 청해경을 출판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모용충(慕容?)의 병란(兵亂)을 만나 도안은 건원 21년(서기 358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모처럼 번역한 그 경을 교정할 여지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 뒤에 산동(山東)도 차츰 평온하게 되어, 승가제바는 기주(冀州) 사문 법화(法和)와 함께 낙양(洛陽)으로 들어가, 거기서 4, 5년간 머무르면서, 경전을 강하기도 하고 한어(漢語)를 공부하는 동안, 두 아함 번역의 충분하지 못한 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융안(隆安) 원년에 그가 경사(京師)에 놀 때에, 동정후(東亭候) 우바새(優婆塞) 왕원림(王元琳)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경전 번역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제바를 위해 정사(精舍)를 세우고 사방의 학도들을 불러모은 일도 있었다. 그는 양주(楊洲) 건강현(建康縣) 경계에 있는 그 정사에서 중아함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융안 원년 11월에서 2년 6월까지(서기 397-398년) 약 7개월 동안 걸쳐 번역해 마쳤던 것이다.

위에 적은 여러 책에 나타난 승가제바의 전기와 도자법사(道慈法師)가 지은 중아함 서문에는 “계빈국 사문 승가라차(僧伽羅叉--衆護라고도 부름.)에게 청해 호본(胡本)을 번역하게 하고, 승가제바에게 청해 호어(胡語)를 진어(晉語)로 옮기고, 예주(豫州) 사문 도자(道慈)는 필수(筆受)하고, 오(吳)나라의 이보(李寶)와 당화(唐化)는 함께 썼다.”라고 적었는데, 그 때도 마침 병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번역한 책을 충분히 교정하고 써서 퍼뜨릴 수 없었다가, 융안 5년(서기 401년)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아함의 전기에 대해서는, 그 연대?권수?기타에 관해서 문제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번역한 이가 승가제바라고 현저하게 나타난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이 경 번역에 있어서 승가라차는 범본(梵本)을 잡고, 승가제바는 진언(晉言)으로 번역했다. 즉 전자는 집본(執本) 또는 역주(譯註)요, 후자는 역어(譯語) 또는 전어(傳語)라 불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역자(譯者)라고 불릴 사람은 당연히 ‘승가라차’가 되어야 할 터인데, 무슨 까닭인지 역자, 즉 역주가 승가제바로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 그것은 승가라차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그와 반대로 승가제바에 관해서는 그 전기도 상당히 자세하였기 때문에, 중아함의 번역에 있어서 그만이 번역의 공로자로 전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착오는 역경 사상(譯經史上) 적지 않은 예가 있는 듯하다.

3. 조직과 내용

먼저 전 아함경의 분류(分類)를 잠깐 살펴보면, 중국의 길장(吉藏)은 “아함(阿含)이란 바로 외국의 이름으로서 대 · 소승(大小乘)에 통한다. 사부(四部) 아함 따위는 소승이요, 열반경(涅槃經)에 방등(方等) 아함이라고 말한 것은 곧 대승이다.”라고 말하여 아함을 대 · 소승에 통한다고 한 것은, 그 뜻에 있어서는 당연하다 하겠지마는, 실제에 있어서는 아함을 소승이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아함을 소승이라 하여, 결집(結集)한 삼장(三藏) 전체라는 학설도 있으나, 경장(經藏)으로 결정지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함을 소승 경전으로 하는 데에도 오(五)와 사(四)의 두 가지 구분이 있다. 즉

①오아함설(五阿含說), ②오니가여설(五尼柯與說), ③사아함오부설(四阿含五部說), ④사아함무여설(四阿含無餘說), 사아함유여설(四阿含有餘說) 등이다. 그러나 오아함설은 주로 남방에서 전하는 것으로서 북방의 잡장(雜藏)을 포함하고 있지마는, 그래도 사아함설이 유력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 모든 아함의 순서에 있어서도 모든 전기는 제각기 다르게 말하고 있다. 만일 전설(傳說)과 같이 그 전부가 일시에 결집된 것이라 한다면, 어느 것을 첫째로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발달에 전후가 있다고 한다면, 그 순서란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실정으로 각각 서로 관계가 깊은 것을 제일 먼저 두기로 한다면, 그 전후는 곧 경중을 의미하게 되어, 그것이 어떻게 배열(配列)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적(歷史的) 성전 비판(聖典批判)이 최초의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다만 북방의 모든 전기와 그 내용에 의한다면 유가(瑜伽)에서 말한 잡(雜) · 중(中) · 장(長) · 증일(增一)의 순서가 가장 타당하다 할 수 있고, 남방의 파리장(巴利藏)에 있어서는 상응(相應) · 증상(增上) · 중(中) · 장(長) · 소집(小集)의 순서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장 · 중 · 상응 · 증상 · 소집의 순서로 정리되어 왔는데, 거기에 각음(覺音)의 큰 주석(註釋)과 저술로서 완전히 고정(固定)되고 전지(傳持)되어 왔던 것이다.

이 중아함경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계빈 사람 구담 승가제바의 번역으로서, 전 60권, 18품, 222경, 514, 825자(字)다. 그 조직에 대해서 승조(僧肇)는 일찍 “중아함 사분(四分) 오송(五頌)”이라 말하였으니,

(1) 초송(初頌) … 오품 반 … 64경 … 12권
(2) 소토성송(小土城頌) … 사품 반 … 52경 …16권
(3) 염송(念頌) … 1품 반 … 35경 … 9권
(4) 분별송(分別頌) … 2품 반 … 35경 … 11권
(5) 후송(後頌) … 3품 반 … 36경 … 12권
이와 같이 오송, 18품, 222경, 60권으로 되어 있다.

이 한역(漢譯) 중아함경에 대비(對比)할 수 있는 파리경전은 ‘중부(中部)’인데, 여기에는 근본(根本) · 중(中) · 후(後)의 50부로서, 152경이 수록(收錄)되어 있다.

이 222경 중, 중아함과 중부와의 양자가 완전히 일치하는 98경은 이 중아함의 특색이라 할 수 있고, 이 98경은 오송의 모든 품에 산재(散在)해 있으나, 분별송 · 후송에 있어서는 거의 일치해 있다. 그리고 이미 출판한 장아함경의 내용이 불타관(佛陀觀)의 발달과 법상 조직(法相組織)과 대외논변(對外論辯)이요, 또 앞으로 출판할 잡아함경이 여래(如來)의 법구(法句)에 맡겨 실천적 분별로서, 염(念) · 처(處) · 계(界) · 온(蘊) 등을 벌여 놓은 것이라 한다면, 이 중아함에 있어서는 그것이 이론적 분별이요, 객과 내관(內觀)으로 사변(思辯)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불교의 근본 사실이 이론화된 초보의 경전을 구한다면, 이 중아함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이 경을 ‘중아함’이라고 이름한 까닭은, ‘일체중경(一切中經)’이란 뜻과 ‘부장부단(不長不短) · 문구중자(文句中者)’란 뜻이 있어서, 장아함경처럼 긴 경도 아니요, 잡아함경이나 소경처럼 짧지도 않다는, 즉 처중이설(處中而說)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아함 중에도 ‘계(戒)’ · ‘염(念)’을 비롯해 ‘습상응(習相應)’의 여러 경 및 ‘복전(福田)’ · ‘아나율(阿那律)’ · ‘식지도(息止道)’ ·  ‘세간(世間)’  · ‘무상(無常)’ · ‘지변(至邊)’ · ‘하욕(何欲)’ · ‘제법본(諸法本)’ · ‘우장자(牛長者)’ 등과 같은 5백자 미만의 짧은 경도 있고, 또 ‘비사(?肆)’ · ‘석문(釋問)’ · ‘전륜왕(轉輪王)’ · ‘우담바라(優曇婆羅)’ 등과 같은 긴 경도 있다.

그리고 파리 경전에는 위에서 말한 짧은 경들은 상응부(相應部) · 증상부(增上部) 등에 흩어져 있고, 위에서 말한 긴 경들은 장부(長部)에 들어 있으며, 남전과 북전이 일치한 것으로서는 ‘상경(想經)’이 가장 짧은 경이요, 장수왕경(長壽王經)이 가장 긴 경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만일 장수왕경이 장아함에 속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뇌타화라경(賴?和羅經)과 우바리경(優婆利經)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중아함이 명실(名實)이 서로 맞지 않은 긴 경, 짧은 경이 뒤섞여 있다해서, 그것을 ‘뜻’으로 들려 ‘중도(中道)’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지마는, 그것은 너무 지나친 억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중아함은 본래 중간쯤 되는 길이의 설교를 모은 것이라는 뜻 이외에는, 모든 경의 전부에 흐르는 공통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전 경의 대의를 쓴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각 경에 대한 대의를 쓰는 것이 마땅하겠지마는, 이 번역한 경의 면수(面數)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부득이 생략한다.

구태여 이 중아함의 내용을 말한다면, 주로 사제(四諦) · 십이인연(十二因緣) 등의 교의로 되었으며, 인연?비유와 그 제자들의 언행(言行)을 기록한 것이라 할 것이다.


'초기경전 > 중아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아함경 제4권  (0) 2012.06.26
중아함경 제3권  (0) 2012.06.26
중아함경 제2권  (0) 2012.06.26
중아함경 제1권  (0) 2012.06.26
중아함경 해제(전자불전연구소 판)  (0) 2012.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