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4권
18 사자경(師子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 노닐으시면서, 르카타못 가에 있는 높은 정각에 계시었다. 그 때에 바이샬리에 있는 많은 릿차비 사람들은 청당(廳堂)에 모여 있으면서, 몇 번이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법과 비구 스님들을 찬탄하였다. 그 때에 니간타의 제자 사자 대신도 또한 그 대중 가운데 있었다. 이때에 사자 대신은 부처님을 가서 뵈옵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려고 하였다. 사자 대신은 곧 먼저 모든 니간타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니간타에게 사뢰었다.
"여러 어른들이여, 나는 가서 사문 고오타마를 보고자 합니다."
그 때에 니간타는 사자를 꾸짖어 말했다.
"너는 사문 고오타마를 보고자 하지 말라. 왜냐하면, 사문 고오타마는 불가작(不可作)을 종본(宗本)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가작의 법을 연설한다. 사자야, 만일 불가작을 종본으로 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은 곧 좋고 이롭지 못하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는 것도 또한 좋고 이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바이샬리에 있는 많은 릿차비 사람들은 몇 번이나 청당에 모여, 못내 부처님을 찬탄하고 법과 비구 스님들을 찬탄했다. 그 때에 니간타의 제자 사자 대신도 여러 차례 그 대중 가운데 있었다. 그는 그 때마다 부처님을 가서 뵈옵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 싶었다. 그는 아예 니간타에게 하직하지 않고 바로 부처님께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렇게 여쭈었다.
"저는 들었나이다.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불가작(不可作)>을 종본(宗本)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가작의 법을 연설한다고 하였나이다. 고오타마시여, 만일 그와 같이 불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가작의 법을 연설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사문 고오타마를 비방하는 것이옵니까, 진실을 말한 것이옵니까, 그는 옳은 법을 말한 것이옵니까, 법다운 법을 말한 것이옵니까, 혹은 법다운 법에 대해서 허물이 없고 힐난할 것이 없는 것이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사자여, 만일 그와 같이, 사문 고오타마는 불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가작의 법을 연설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사문 고오타마를 비방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진실을 말했고, 옳은 법을 말했으며, 법다운 법을 말했고, 법다운 법에 대해서 허물이 없고 힐난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사자여,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불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가작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다시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가작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다시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단멸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단멸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다시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가오(可惡)를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가증오(可憎惡)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다시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법률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법률의 법을 설명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다시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고행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고행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다시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불입어태(不入於胎)를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입어태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다시 일이 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 사문 고오타마는 안온(安穩)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안온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비방할 수 없다.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불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가작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가 없는가. 사자여, 나는 몸의 악행은 지어서는 안 되고 입과 뜻의 악행도 또한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와 같은 한량없는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과 괴로움의 갚음이 되며 나고 죽고 병들고 죽은 인(因)이 된다. 사자여, 나는 이 법은 다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불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불가작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자여, 또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가작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나는 묘행(妙行)은 지어야 하고, 입과 뜻의 묘행도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와 같은 한량 없는 선한 법은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갚음을 받게 하며, 좋은 곳에 나게 하고 그리고 긴 수명을 얻게 한다. 사자여, 나는 이 법은 다 마땅히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가작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가작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사자여, 또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단멸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단멸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나는 몸의 악한 행은 마땅히 단멸해야 하고, 입과 뜻의 악한 행도 또한 마땅히 단멸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와 같은 한량없는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과 괴로움의 갚음이 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이 된다. 사자여, 나는 이 법은 다 마땅히 단멸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을 말미암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는 단멸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단멸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니라.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가오를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가증오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는 없는가. 나는 몸의 악한 행은 미워해야 하고, 입과 뜻의 악한 행도 또한 미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와 같은 한량없는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과 괴로움의 갚음이 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이 된다. 사자여, 나는 이 법은 마땅히 다 미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을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가오를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가증오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니라.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기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는 법률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법률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나는 몸의 탐욕과 음욕을 끊기 위하여 법률을 말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기 위하여 법률을 말한다. 사자여, 이와 같은 한량없는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과 괴로움의 갚음이 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이 된다. 사자여, 나는 그것을 끊기 위하여 법률을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을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법률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법률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니라.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고행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고행의 법을 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알몸으로 옷이 없다. 혹은 손으로 옷을 삼고 나뭇잎으로 옷을 삼으며 구슬로 옷을 삼는다. 혹은 병으로 물을 뜨지 않으며, 괴(槐)로써 물을 뜨지 않는다. 칼이나 몽둥이로 노략질한 밥은 먹지 않고 속이는 밥은 먹지 않는다. 스스로 가서 공양을 받지 않고 지정된 공양은 받지 않으며, '오너라 존자여, 착하다 존자여, 머물러라 존자여'하고 주는 공양은 받지 않는다. 만일 2인의 밥이 있으면 그 중간에는 먹지 않고, 아기 밴 집의 밥은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의 밥은 먹지 않는다. 만일 집에 똥파리가 있어 날아오면 곧 먹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 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나쁜 물은 마시지 않는다. 아주 마실 것이 없으면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만 먹고 한 입으로 족하다 하며, 혹은 두입·셋·넷 내지 일곱 입을 먹고 일곱 입으로 족하다 한다. 혹은 하루에 한 끼를 먹고 한 끼로써 족하다 하며 2·3·4·5·6·7일 내지 반달, 한 달에 한 끼를 먹고 한 끼로써 족하다 한다.
나물이나 띠뿌리를 먹고 돌피를 먹으며, 혹은 메기장을 먹고 두꺼운 보리껍질을 먹으며, 혹은 닷둘라밥을 먹고 추악한 밥을 먹으며, 일없는 곳에 가서 일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나무뿌리를 먹고 열매를 먹으며,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는다.
잇대은 옷을 가지고 털옷을 가지며, 혹은 둣사옷을 가지고 털둣사옷을 가지며, 혹은 완전한 가죽옷을 가지고 뚫어진 가죽옷을 가지거나, 전부 뚫어진 가죽옷을 가진다.
혹은 흐트러진 머리털을 가지거나 땋은 머리털을 가지며, 흐트러지고 땋은 머리털을 가진다. 혹은 머리를 깎기도 하고 수염을 깎기도 하며, 혹은 머리와 수염을 다 깎기도 한다. 머리털을 뽑기도 하고 수염을 뽑기도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다 뽑기도 한다.
혹은 머물러 서서 앉기를 끊고, 주저앉은 걸음을 닦는다. 가시밭에 누워 가시밭으로 평상을 삼기도 하고, 과일밭에 누워 과일밭으로 평상을 삼기도 한다. 물을 섬겨 밤낮으로 손으로써 물을 뜨기도 하고, 불을 섬겨 옛날부터 불을 태우기도 하며, 해와 달을 섬기어 존우대덕도 합장하고 그것을 향한다. 이와 같은 따위는 한량이 없는 고통을 받고 번열의 행을 배우는 것이다.
사자여, 이런 고행이 있다. 나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자여, 그러나 이런 고행은 하천한 업으로서, 고통에 이르고 곤함에 이르며 범인의 행하는 바로써, 성인의 도가 아니다. 사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저 고행의 법을 알아 번뇌를 끊어 다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침내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면 나도 또한 고행을 말하리라. 사자여, 여래·무소착·등정각은 저 고행의 법을 알아 번뇌를 끊어 다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고행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을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고행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고행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니라.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태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태에 들어가지 않는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미래에 태어날 것을 알아 그것을 끊어 다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침내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면, 나는 그에게 태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말하리라. 사자여, 여래·무소착·등정각은 미래에 태어날 것을 알아, 그것을 끊어 다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침내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태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태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태에 들어가지 않는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니라.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안온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안온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족성자의 하는 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집이 없이 도를 배우면, 오직 위없는 범행을 닦아 마친다. 나는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을 안다. 나도 이미 안온하고, 또한 다른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도 편안하게 한다. 나는 이미 그를 편안하게 하여, 곧 나는 법의 중생을 법에서 해탈하게 하고, 늙는 법·병드는 법·죽는 법·걱정하고 슬퍼하는 더러운 법의 중생을 걱정하고 슬퍼하는 더러운 법에서 해탈하게 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안온을 종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안온의 법을 연설한다 하더라도 실다운 법에 있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니라."
사자 대신은 세존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저는 이미 알았나이다. 선서시여, 저는 이미 이해하였나이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눈이 밝은 사람이 엎어진 것을 일으켜 주고, 덮인 것을 헤치며, 헤매는 자에게 길을 보이고, 어둠 속에 밝음을 주는 것과 같나이다. 그래서 만일 눈이 있는 자면 문득 빛을 볼 것이옵니다. 사문 고오타마도 또한 그와 같아서 나를 위하여 한량이 없는 방편으로 법을 설명하고 그 모든 도를 따라 뜻을 나타내시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에게 귀의하나이다.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저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하소서. 오늘부터 이 몸이 마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이르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좋지 못한 말(馬)을 길러 그 이익 얻기를 바라, 한갖 스스로 피로하기만 하고 이익을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나도 또한 그와 같았나이다. 저 어리석은 니간타는 환하게 잘 알지 못하고 스스로 알지 못하며, 좋은 밭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살피지 못했나이다.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그를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면서 그 이익 얻기를 바랐나이다. 그러나, 한갖 괴롭기만 하고 이익은 없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에게 귀의하나이다.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저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하소서. 저는 오늘부터 몸을 마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이르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본래부터 무지하여 저 어리석은 니간타를 믿고 존경해 왔나이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그것을 끊겠나이다. 왜냐하오면 그는 저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 번째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에게 귀의하나이다.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저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하소서. 저는 오늘부터 몸을 마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이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사자 대신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9 니건경(尼乾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삭케수국에 노닐으시면서, 천읍성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니간타들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받는 바는 다 본래 지은 것으로 인한다. 만일 그 묵은 업이 고행으로 인해 멸하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곧 모든 업은 다한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하게 되면 곧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그에게 가서 물었다. '니간타여, 너희들은 진실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하는가. 사람의 받는 바는 다 본래 지은 것으로 인한다. 만일 그 묵은 업이 고행으로 인해 멸하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모든 업은 다한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하는가.' 그는 내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나는 다시 그 니간타에게, '너희들은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나는 본래부터 있다고 하는가, 없다고 하는가.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짓는다고 하는가. 혹은 짓지 않는다고 하는가. 내가 스스로 괴로와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끝이 있다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에서 모든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히어 증득한다고 생각하는가.'고 물었다. 그는 내게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다시 그 니간타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스스로 깨끗한 지혜도 없으면서, 나는 본래부터 있다고 하고 나는 본래부터 없다고 하며,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짓는다 하고 혹은 본래부터 짓지 않는다 하며, 내가 스스로 괴로와하는 바는 끝이 있는 것이라 하고 끝이 없는 것이라 하며, 만일 끝이 있다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에서 모든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히어 증득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받는 바는 다 본래 지은 것으로 인한다. 만일 그 묵은 업이 고행으로 인해 멸하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모든 업이 다한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한다. 니간타여, 너희들이 만일 깨끗한 지혜가 있어, 나는 본래부터 있다고 하고 나는 본래부터 없다고 하며,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짓는다 하고, 혹은 악을 짓지 않는다 하며, 내가 스스로 괴로워하는 바는 끝이 있는 것이라 하고 끝이 없는 것이라 하며, 만일 끝이 있으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에서 모든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히어 증득하게 되면 니간타여, 너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사람의 받는 바는 다 본래 지은 것으로 인한다. 만일 묵은 업이 고행으로 인해 멸하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모든 업이 다한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니간타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몸에 독한 화살을 맞은 것과 같다. 독한 회살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곧 심한 고통을 느낀다. 그 친척들은 가엾이 생각하고 민망히 여기어, 그를 편안하고 이익되며 안온하게 하여 주고자 하여, 그들은 곧 화살을 뽑는 의사를 부른다. 의사는 와서 곧 잘 드는 칼로써 수술을 시작한다. 수술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심한 고통을 느낀다. 이미 수술을 마치고 화살을 찾으면 화살을 찾을 때에 다시 심한 고통을 느낀다. 화살을 발견한 뒤에 곧 그것을 뽑아 내면 뽑아 냄으로 말미암아 다시 심한 고통을 느낀다. 화살을 뽑아 낸 뒤에도 작은 상처를 싸매면 상처를 싸맬 때에 다시 심한 고통을 느낀다. 그는 화살을 뽑아 낸 뒤에는 힘을 얻고 걱정이 없으며, 모든 기관을 헐지 않고 회복하여 옛날과 같이 된다.
니간타여, 그 사람은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곧 '나는 전날 독한 화살을 받았다. 독한 화살을 받았기 때문에 곧 지극한 고통을 느꼈다. 나의 친척들은 나를 보고 가엾이 생각하고 민망히 여기어, 나를 이익되며 안온하게 해 주려고 하기 때문에 곧 화살을 뽑는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와서 곧 잘 드는 칼로써 나를 위해 수술을 해주었다. 수술을 행할 때에 다시 심한 고통을 느꼈다. 이미 수술을 마친 뒤에는 화살을 찾았다. 화살을 찾을 때 다시 심한 고통을 느꼈다. 화살을 찾은 뒤에는 곧 뽑아 내었다. 뽑아 낼 때에 다시 심한 고통을 느꼈다. 화살을 뽑아 낸 뒤에는 작은 상처를 싸매었다. 싸맬 때에 다시 심한 고통을 느꼈다. 나는 화살을 뽑아 낸 뒤에는 힘을 얻고 걱정이 없으며, 아무 기관도 헐지 않고, 회복하여 옛날과 같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니간타여, 만일 너희들이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나는 본래부터 있다 하고 나는 본래부터 없다고 하며,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짓는다 하고 혹은 악을 짓지 않는다 하며, 내가 스스로 괴로워하는 바는 끝이 있는 것이라 하고 혹은 끝이 없는 것이라 하며, 만일 끝이 있으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에서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히어 증득하게 되면, 너희들은 '사람의 받는 바는 다 본래 지은 것으로 인한다. 만일 그 묵은 업이 고행으로 인해 멸하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곧 모든 업이 다한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에 니간타들은 내게 '고오타마시여, 그렇습니다.'고 대답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나는 니간타들에게 '만일 니간타들이 상(上)이 되는 것을 끊는 상이 되는 고행을 가지면, 그 때에 모든 니간타들은 상이 되는 고통을 느끼는가'고 물었다. 그들은 내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만일 중(中)이 되는 것을 끊는 중이 되는 고행을 가지면, 그 때에 니간타들은 중이 되는 고통을 느끼는가.'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만일 하가 되는 것을 끊는 고행을 가지면 그 때에 니간타들은 하가 되는 고통을 느끼는가.'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이른바 나간타들이 상이 되는 것을 끊는 고행을 가지면, 그 때에 모든 니간타들은 곧 상이 되는 고통을 느끼고, 중이 되는 것을 끊는 중이 되는 고행을 가지면, 그 때에 니간타들은 곧 중이 되는 고통을 느끼며, 하가 되는 것을 끊는 하가 되는 고행을 가지면, 그 때에 니간타들은 곧 하가 되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니라.
만일 니간타들로 하여금 상이 되는 것을 끊는 상이 되는 고행을 가지게 하면, 그 때에 모든 니간타들은 상이 되는 고통을 그치고, 중이 되는 것을 끊는 중이 되는 고행을 가지게 하면, 그 때에 니간타들은 중이 되는 고통을 그치며, 하가 되는 것을 끊는 하가 되는 고행을 가지게 하면, 그 때에 니간타들은 하가 되는 고통을 그친다. 만일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지 않고서 심한 고통과 매우 무거운 고통을 그치면 마땅히 알라. 모든 니간타들은 곧 현세에 있어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다만 니간타들은 어리석음에 덮이고 어리석음에 묶이어, 이른바 사람의 받는 바는 다 본래 지은 것으로 인한다. 만일 그 묵은 업이 고행을 인해 멸하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곧 모든 업이 다한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에 니간타들은 내게 대답하기를 '고오타마시여, 그렇습니다.'고 대답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나는 모든 니간타들에게 '니간타들아, 만일 즐거움의 갚음을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혹은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괴로움의 갚음으로 만들 수 있는가.'고 물었다. 그들은 내게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하고 대답했다. '모든 니간타들아, 만일 괴로움의 갚음을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즐거움의 갚음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오타미시여.' '니간타들아, 만일 현세에서 갚음을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뒷 세상의 갚음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오타마이시여.' '니간타들아, 만일 후세에 갚음을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현세의 갚음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 '니간타들아, 만일 익지 않은 갚음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익은 갚음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 '니간타들아, 만일 익은 갚음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 '니간타들아 이것이 이른바 즐거움의 갚음의 업이 있어, 그 업은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괴로움의 갚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니간타들아, 이것이 이른바 괴로움의 갚음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은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즐거움의 갚음으로 만들 수 없다. 니간타들아, 현세의 갚음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은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후생의 갚음으로 만들 수 없다. 니간타들아, 후생의 갚음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은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현세의 갚음으로 만들 수 없다. 니간타들아 익지 않은 업이 있으면, 그 업은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익은 갚음으로 만들 수 없다. 니간타들아, 익은 갚음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은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간타들아, 허망한 방편으로 속절없이 끊으려 하여도 얻을 것이 없느니라.'
그 니간타들은 곧 내게 알리었다. '고오타마시여, 우리에게는 높은 스승이 있어 이름을 니간타 나아타풋타라 하나이다. 그는, 너희들이 만일 본래 악한 업을 지었으면 그 업은 다 이 고행으로 말미암아 멸해 다 할 수 있다. 만일 지금에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않는다고 말하였나이다.'
나는 또 니간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그 스승 니간타 나아타풋타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가.'그들은 내게 대답했다. '고오타마시여, 우리는 그 스승 니간타 나아타풋타를 믿어 의심이 없나이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5종의 법과 현세의 두 가지 갚음이 있다. 5종의 법이란 믿음·즐겨 들음·생각함·봄·잘 관함이다. 니간타들아, 사람이 스스로 허망한 말을 하면 이것을 믿어야 하고 즐겨해야 하며, 들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며, 보고 잘 관찰해야 하겠는가.' 그들은 내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이 허망한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하고 즐겨해야 하며, 들어야하고 생각해야 하며, 잘 관찰해야 하겠는가. 이른바 사람이 스스로 허망한 말을 하면서 믿음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들음이 있고 생각함이 있으며, 잘 관찰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만일 니간타들이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법다운 가운데 있어서 다섯 가지 힐책을 받고 미움을 받을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이제 이 중생이 받는 바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본래 지은 것에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니간타들은 본래 악한 업을 지었었다. 무슨 까닭인가. 악한 업을 원인하기 때문에 니간타들은 지금에 있어서 지극히 무거운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니간타의 첫째의 미워할 만한 것이다. 다시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모임에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본래 나쁘게 모였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나쁜 모임으로 인하여 니간타들은 지금에 와서 극히 무거운 괴로움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니간타의 둘째의 미워할 만한 것이다. 다시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목숨을 위하는 데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본래 나쁘게 목숨을 위했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목숨 위함으로 인해서 니간타들은 지금에 와서 심히 무거운 괴로움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니간타의 셋째의 미워할 만한 것이다. 다시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소견에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본래 나쁜 소견을 가졌었다. 무슨 소견인가. 그 나쁜 소견을 인하여 니간타들은 지금에 와서 심히 무거운 괴로움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니간타들의 넷째의 미워할 만한 것이다. 다시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존우의 지음에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간타들은 본래 나쁜 존우였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나쁜 존우(尊佑)로 인하여 모든 니간타들은 지금에 있어서 지극히 무거운 괴로움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니간타들의 다섯째의 미워할 만한 것이다. 만일 니간타들이 본래 지은 악한 업과 나쁜 모임과 나쁘게 목숨을 위한 것과 나쁜 소견과 나쁜 존우로 인하여 나쁜 존우의 지은 바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니간타들은 지금에 와서 심히 무거운 괴로움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저 일로 인하여 니간타들은 미워할 만한 것이 된다는 것이니라.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희들을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바라문이나 혹은 하늘·악마·범천 및 다른 세간으로서는 다 그것을 항복 받지 못하고, 그것을 더럽히지 못하며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희들을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바라문이나 혹은 하늘·악마·범천 및 다른 세간 때문에 항복되고 더럽히며, 제어되지 않는다.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선하지 않은 업은 버리고 선한 업을 닦으며, 입과 뜻의 선하지 않은 업은 버리고 선한 업을 닦으면, 그는 미래의 괴로움에 있어서 문득 자기는 미래의 괴로움이 없을 것을 알고 법다이 즐거움을 얻어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괴로움의 인(因)인 행욕을 끊고자 하고, 혹은 괴로움의 인인 행사욕(行捨欲)을 끊고자 한다. 그가 만일 괴로움의 인인 행욕을 끊고자 하면 곧 그 행복을 닦고 이미 끊었으면 괴로움은 문득 다해진다. 그가 만일 괴로움의 인인 행사욕을 끊고자 하면 곧 그 행사욕을 닦고, 이미 끊었으면 괴로움은 문득 다해진다.
만일 그 비구가 곧 하는 바를 따르고 행하는 바를 따르면, 선하지 않은 법이 생기고 선한 법이 멸한다. 만일 스스로 괴로움을 끊으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은 생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자고 생각한다면 그는 곧 스스로 괴로움을 끊는다. 스스로 괴로움을 끊어 마치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은 생긴다. 그래서 다시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비구여, 본래 하는 바는 그 뜻이 이미 성취 되었는데, 만일 다시 괴로움을 끊는다면 그런 이치는 없는 것이다. 비구여, 그것은 마치 화살 만드는 사람이 검으로써 화살을 바루는 것과 같다. 그 화살이 곧다면 다시 검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본래 목적한 바는 그 일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는 바를 따르고 행하는 바를 따라 선하지 않은 법이 생기고 선한 법이 멸한다. 만일 스스로 괴로움을 끊으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이 생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자.' 그래서 곧 스스로 괴로움을 끊는다. 스스로 괴로움을 끊어 마치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은 생겨, 다시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원래 목적한 바 그 뜻이 이미 성취되었는데, 만일 다시 괴로움을 끊는다면 그런 이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비구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여자를 사랑하여 애착하는 것과 같다. 그는 그 여자를 공경스리 맞이하는데, 그 여자는 다시 다른 사람과 말을 걸어, 서로 친절하게 인사하며 서로 오가고 같이 잔다면, 그 사람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에 고뇌가 생겨 못내 걱정하고 슬퍼하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오면 그 사람은 여자를 사랑하고 애착하여 지극히 공경스레 대하는데, 그 여자는 다시 딴 남자와 말을 걸어, 서로 친절하게 인사하며 서로 오가고 같이 잔다면 그 사람은 어찌 몸과 마음에 고뇌와 걱정과 슬픔을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구여, 만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속절없이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그 여자를 공경스레 대우하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다시 딴 사람과 말을 걸어 서로 친절하게 인사하며 오가고 같이 잔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걱정함으로 말미암아 저 여자를 위한 사랑하는 생각과 애착을 끊을 수 있을까.'고 생각하게 한다면, 그는 뒷날에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걱정함으로 말미암아 곧 그 여자를 위한 사랑하는 생각과 애착을 끊는다. 그 애착을 끊은 뒤에도 만일 그 여자로 하여금 일부러 다른 사람과 말하게 하고 서로 친절히 인사하게 하며 서로 오가고 같이 자게 한다면, 그 사람은 그 때에도 몸과 마음에 과연 다시 고뇌를 내어 못내 걱정하고 슬퍼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오면, 그 사람은 그 여자에 대해서 다시는 사랑하는 생각과 애착하는 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여자로 하여금 일부러 다른 사람과 말하게 하고 서로 친절히 인사하게 하며, 서로 오가고 같이 자게 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에 고뇌를 내어 못내 걱정하고 슬퍼하게 하더라도 그리 될 수는 없나이다."
"그와 같이 비구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하는 바를 따르고 행하는 바를 따라, 선하지 않은 법은 생기고 선한 법은 멸한다. 만일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으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은 생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자'고. 그래서 그는 곧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는다. 스스로 괴로움을 끊어 마치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은 생겨 다시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원래 목적한 바가 이미 성취되어 다시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는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원인이 있어 그 괴로움을 끊는다면 나는 곧 이미 끊었다. 그런데, 나는 욕(欲)에 있어 아직 예와 같아 끊지 못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욕을 끊기를 구하자'고. 그래서 그는 욕을 끊기를 구한다. 그는 탐욕을 끊기 위하여 혼자 있으면서 멀리 떠나 일없는 곳에 산다.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이나, 바위나 돌집이나 한데 땅이나, 짚가리로 가고 숲속으로 가거나 혹은 무덤 사이로 간다. 그는 이미 일없는 곳에 있어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니사단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아 바른 몸과 바른 소원을 가지고, 비뚤어진 생각으로 향하지 않으며 탐욕을 끊어 없애어 마음에 다툼이 없다. 남의 재물과 모든 생활의 기구를 보고도 탐욕을 일으켜 내 소득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욕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버린다. 이와 같이 그는 성냄과 혼침과 들뜸을 없애고, 의심을 끊고 의혹을 버리어 모든 선한 법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그는 의혹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버린다. 그는 이미 5개(蓋)의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연약함을 끊고, 탐욕을 떠나고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내지 제4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와 같은 정심(定心)이 맑고 깨끗하여, 더러움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게 되고, 부드럽고 연하고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누진지통을 향해 나아가 그것을 증득한다. 그는 곧 이 괴로움의 도리를 알고 이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이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이 괴로움을 멸하는 길의 참 모양을 안다. 또한 이 번뇌의 도리를 알고 이 누의 멸함을 알며, 이 누를 멸하는 길의 참 모양을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안 뒤에는 곧 탐욕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와 무명루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해탈해 마치면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했고 범행은 섰고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 모양을 안다. 여래는 이와 같이 바른 마음으로 해탈하여, 다섯 가지 칭예를 얻고, 법다와서 다툼이 없으며, 사랑할 만하고 존경할 만하니라.
어떤 것이 다섯인가. 저 중생들의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본래 지은 것을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 묘한 업이 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에 있어서 거룩하여 번뇌가 없는 즐거움과 고요하고 안온하여 즐거운 감각을 얻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첫째의 칭예다. 다시 중생의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모임으로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 묘한 모임이 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에 있어서 거룩하여 번뇌가 없는 즐거움과고요하고 그치고 쉬어 즐거운 감각을 얻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둘째 칭예다. 다시 중생의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목숨을 위하는 데에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 묘하게 목숨을 위하였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에 있어서 고요하고 그치고 쉬어 즐거운 감각을 얻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셋째의 칭예다. 다시 중생의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소견으로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 묘한 소견이 있다. 그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여래는 지금에 있어서 거룩하여, 번뇌가 없는 즐거움과 고요하고 그치고 쉬어 즐거운 감각을 얻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넷째의 칭예다. 다시 중생의 받는 업은 다 존우의 지음으로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 묘한 존우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에 있어서 거룩하여, 번뇌가 없는 즐거움과 고요하고 그치고 쉬어 즐거운 감각을 얻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다섯째의 칭예니라.
이것을 여래의 본래의 묘한 업·묘한 모임·묘한 목숨을 위함·묘한 소견·묘한 존우라 하고 묘한 존우의 지은 바라 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에 있어서 거룩하여, 번뇌가 없는 즐거움과 고요하고 안온하여 즐거운 감각을 얻는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에 있어서 다섯 가지 칭예를 얻느니라.
다섯 가지 인연이 있어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음욕에 묶이면 음욕에 묶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이와 같이 성냄과 수면과 들뜸도 또한 그러하며, 의혹에 묶이면 의혹에 묶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을 다섯 가지 인연으로써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을 내는 것이라 한다. 다섯 가지 인연이 있어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멸한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만일 음욕에 묶이면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기지마는, 음욕의 묶임을 없애어 마치면 걱정과 괴로움은 곧 멸한다. 음욕에 묶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 구경을 얻으면 번거러움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인의 아는 바요, 성인의 보는 바다. 이와 같이 성냄과 수면과 들뜸도 그러하며, 의혹에 묶이면 의혹에 묶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기지마는, 의혹의 묶임을 없애 버리면 걱정과 괴로움은 이내 사라진다. 의혹에 묶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 구경을 얻으면 번거로움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인의 아는 바요, 성인의 보는 바다. 이것을 다섯 가지 인연으로써 마음의 걱정과 괴로움을 멸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또 현재에 있어서 구경을 얻으면 번거로움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인의 아는 바요, 성인의 보는 바다. 어떤 것이 다시 현재에 있어서 구경을 얻으면 번거로움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아서, 그것은 성인의 아는 바요, 성인의 보는 바라 하는가. 이른바 여덟 가지 성도가 그것이다. 바른 소견 내지 바른 정(定)이니, 이것을 여덟이라 한다. 이것이 이른바 다시 현재에 있어서 구경을 얻어 번거로움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아서, 그것은 성인의 아는 바요, 성인의 보는 바라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0.파라뢰경(波羅牢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코올리예수국에 노닐으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북촌에 이르러, 북촌의 북쪽에 있는 심사파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파탈리야 가미니는 '사문 고오타마라는 석종의 아들은 석종을 버리고 집을 나가 도를 배우고, 코올리예수에 노닐으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북쪽에 이르러, 북촌의 북쪽에 있는 심사파동산에 계시는데, 그 사문 고오타마는 큰 명예가 있어 시방(十方)에 두루 들린다. 그리고 그는 여래·무소착·등정각·명행성위·선서·세간해·무상사·도법어·천인사·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이 세상·하늘·악마·범천·사문·바라문 등, 인간 세상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만일 설법하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아,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하고 구족하여 범행을 드날린다. 만일 여래·무소착·등정각을 뵈옵고 존중하여 예배하고 공양하여 섬기면 빠르게 좋은 이익을 얻는다.'고 들었다.
그는 '나도 가서 사문 고오타마를 뵈옵자'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북쪽에서 나와 북으로 가서 심사파동산에 이르러 세존을 뵈옵고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고자 했다. 파탈리야 가미니가 멀리서 숲속에 계시는 세존을 보매 단정하고 아름다워 마치 별 가운데 달과 같고, 빛나고 밝고 환하여 금산과 같았다. 상호가 원만하고 위신이 의젓하며, 모든 근(根)은 고요하여 가리움이 없고, 마음 다루기를 성취하여 조용한 마음은 고요하고 잠잠하였다. 파탈리야 가미니는 멀리서 부처님을 바라 본 뒤에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서로 친절히 인사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저는 들었나이다.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환은 환(幻)으로 아신다'고. 사문 고오타마시여, 만일 이와 같이 '사문 고오타마는 환은 환으로 아신다.'고 말씀한다면 그는 사문 고오타마를 비방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진실을 말한 것입니까. 그는 옳은 법을 말한 것입니까. 그는 법다운 법을 말한 것이옵니까. 법다운 법에 있어서 허물이 없고 힐난할 것이 없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가미니여, 만일 그와 같이 사문 고오타마는 <환>은 <환>으로 안다고 말한다면, 그는 사문 고오타마를 비방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진실을 말했고, 옳은 법을 말했으며, 법다운 법을 말했다. 그는 법에 있어서 허물도 없고, 또한 힐난할 것도 없다. 무슨 까닭인가, 가미니여. 나는 그 환을 알지마는 나는 스스로 환자(幻者)는 아니다."
"저 사문·바라문들의 말한 바가 진실이라 하시지마는 저는 그의 '사문 고오타마는 환은 환으로 안다.'고 말하는 것을 믿지 않나이다."
"가미니여, 만일 환을 알면 곧 그는 환자인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나이다, 선서이시여."
"가미니여, 너는 스스로 잘못하여 나를 비방하지 말라. 만일 나를 비방하면 곧 스스로 상할 것이다. 거기에는 다툼이 있고 범함이 있어, 그것은 성현들의 미워하는 것으로써 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실로 너의 말한 바와 같지 않다. 가미니여, 너는 코올리예수에 군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느냐."
"있다고 들었나이다."
"가미니여, 네 뜻은 어떠하냐. 코올리예수는 이 군인을 써서 무엇을 하는가."
"고오타마시여, 사자를 통해 도적을 죽이나이다. 이 일을 위하여 코올리예수는 군사를 기르는 것이옵니다."
"가미니여, 너희 뜻에는 어떠하냐. 코올리예수의 군인은 계(戒)가 있는가 계가 없는가."
"고오타마시여, 만일 세상에 계덕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코올리예수의 군인에 지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코올리예수의 군인은 지극히 금계를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 행하나이다."
"가미니여, 네가 이렇게 보고 이렇게 안다면 나는 너에게 묻지 않으려니와, 다른 사람이 너 가미니에게 물어 코올리예수의 군인은 극히 금계를 범하고 단지 악한 범행하는 것만을 안다면 이 일로 말미암아 파탈리야 가미니는 극히 금계를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 행한다고 이렇게 말할 때에 그것을 진실이라 하겠는가."
"아닙니다, 고오타마시여. 왜냐하오면 코올리예수의 군인은 소견도 다르고 욕심도 다르며 소원도 또한 다르나이다. 코올리예수의 군인들은 극히 금계를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을 행하지마는,나는 지극히 계를 가지고 악한 법을 행하지 않나이다."
"가미니여, 너는 코올리예수의 군인은 극히 금계를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을 행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일로써 그들은 금계를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을 행하는 것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래는 어찌하여 환을 알면서 스스로 환자(幻者)가 아닌가.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는 환을 알고 환의 사람을 알며, 환의 갚음을 알고 환을 끊을 줄 안다. 가미니여, 나는 또 생물을 죽이는 것을 알고 생물을 죽이는 사람을 알며, 생물을 죽이는 갚음을 알고 생물을 죽이는 것을 끊을 줄 안다. 가미니여, 나는 또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알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사람을 알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갚음을 알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끊을 줄 안다. 가미니여, 나는 또 거짓말을 알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알며, 거짓말의 갚음을 알고 거짓말을 끊을 줄 안다. 가미니여, 나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다. 만일, '사문 고오타마는 환을 안다. 그는 곧 환자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직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의 마음·그의 욕망·그의 소원·그의 지식·그의 생각·그의 관찰을 아는 것은 마치 팔을 굽혔다 펴는 그 동안과 같다. 그는 목숨이 끝나면 지옥 가운데 날 것이다."
파탈리야 가미니는 이 말을 듣자, 두려워 떨면서 털끝이 으쓱해졌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로 부처님 발에 예배한 뒤에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세존께 여쭈었다.
"허물을 뉘우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죄를 고백하나이다, 선서시여.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정신이 돈 것 같고 나쁜 놈 같나이다. 왜냐하오면 저는 망령되게 사문 고오타마는 환자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고오타마시여, 저의 허물을 뉘우치고 죄를 알고 드러내는 것을 받아 주소서. 저는 허물을 뉘우친 뒤에는 꼭 지켜 다시는 짓지 않겠나이다."
"그렇다, 가미니여. 너는 실로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정신이 돈 것 같고 나쁜 놈 같다.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너는 여래·무소착·등정각에게 대해서 망령되게 환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능히 허물을 뉘우치고, 죄를 알고는 드러내며, 꼭 지켜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가미니여, 만일 허물을 뉘우치고, 죄를 알고는 드러내며, 꼭 지켜 다시 짓지 않는다면 곧 성인의 법을 길이 길러 손실이 없을 것이다."
이에 파탈리야 가미니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하나이다. '만일 생물을 죽이면 그는 곧 현재에 갚음을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고통이 생긴다. 만일 주지 않는 것을 취하고 거짓말을 하면 그는 곧 현재에 갚음을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고통이 생긴다'고. 사문 고오타마시여, 당신 뜻에는 어떠하나이까."
"가미니여,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가미니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촌읍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어,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며, 오직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는 것이 왕과 같다고 하자. 혹 사람이 '이 사람은 본래 어떤 일을 하였기에 이제 머리에 화만을 쓰고 여러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며 오직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기가 왕과 같은가.'고 물을 때에 혹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왕을 위하여 원수를 죽였다. 왕은 기뻐하여 곧 그에게 상을 주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머리에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고,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기가 왕과 같다.'고 대답한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없는가."
"보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그리고 듣기도 하였나이다."
"가미니여, 또 왕이 죄인을 잡는 것을 보면 두 손을 뒤로 묶고 북을 치고 포고를 외치면서 남쪽 성문을 나가, 높은 나무 밑에 앉히고 그 머리를 베어 나무에 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무슨 죄로 왕의 죽임을 받는가.'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은 왕가의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사형을 행하게 한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없는가."
"보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미 들었고 또 들을 것입니다."
"가미니여, 만일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만일 생물을 죽이면 그는 곧 현재에 갚음을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인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거짓말이옵니다, 고오타마시여."
"만일 그가 거짓을 말했다면 너는 그것을 믿겠는가."
"믿지 않겠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세존께서는 찬탄해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가미니여."
그리고 다시 가미니에게 물으시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고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는 것이 왕과 같다 하자.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본래 무슨 일을 하였기에 이제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고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는 것이 왕과 같은가.'고 물을 때에 혹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주지 않는 것을 취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머리에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고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는 것이 왕과 같다.'고 대답한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보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미 들었고 또 들을 것입니다."
"가미니여, 또 왕이 죄인을 잡은 것을 보면 두 손을 뒤로 묶고 북을 치고 포고를 외치면서 남쪽 성문을 나가, 높은 나무 밑에 앉히고 그 목을 베어 나무에 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무슨 죄로 왕에게 죽임을 당하는가.'고 물을 때에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은 왕의 나라에서 주지 않는 것을 취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사형을 행하게 하였다.'고 대답한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보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미 들었고 또 들을 것입니다."
"가미니여, 혹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만일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면 그는 현재에 있어서 갚음을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고통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인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거짓말입니다, 고오타마시여."
"만일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너는 그것을 믿겠는가."
"믿지 않겠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세존께서는 찬탄해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가미니여."
다시 가미니에게 물으셨다.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약 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고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는 것이 왕과 같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본래 무슨 일을 하였기에 이제 머리에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며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는 것이 왕과 같은가.'고 물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기생을 데리고 잘 희롱하며 재미있게 웃는다. 그는 거짓말로 왕을 기쁘게 한다. 왕은 기뻐한 끝에 곧 그에게 상을 주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머리에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그리고 재주를 부리며 노래하고 춤추어 스스로 즐기고 기생들만 데리고 즐겨하는 것이 왕과 같다.'고 대답한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보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미 들었고 또 들을 것입니다."
"가미니여, 또 왕이 죄인을 잡는 것을 보면, 몽둥이로 쳐죽이고 나무 함에 담아 덮개 없는 수레에 싣고 북쪽 성문으로 나가, 깊은 구덩이 속에 버린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무슨 죄로 왕에게 죽임을 당하는가.'고 물을 때에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은 왕의 앞에서 거짓으로 증거댔다. 그는 거짓말로 왕을 속였다. 그래서 왕은 잡아서 이렇게 벌하게 했다.'고 대답한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보았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미 들었고 또 들을 것입니다."
"가미니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만일 거짓말을 하면 그는 곧 현재에 갚음을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고.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인가, 거짓을 말한 것인가."
"거짓말입니다, 고오타마시여."
"만일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너는 그것을 믿겠는가."
"믿지 않겠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세존께서는 찬탄해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가미니여."
이에 파탈리야 가미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입은 옷 한 자락을 벗어 메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참으로 특이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말씀하신 바는 극히 묘하여 잘 비유하시고 잘 증명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저는 북촌 가운데 높은 집을 짓고 평상과 자리를 펴고 물그릇을 두고 큰 등불을 켰나이다. 만일 정진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와서 높은 집에서 자면, 저는 제 힘을 따라 그의 필요한 것을 대 주었나이다. 네 논사(論士)가 있었나이다. 그들은 소견이 각각 다르고, 또한 서로 어긋났어도 제 높은 집으로 모였나이다.
그 중의 한 논사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나이다. '보시도 없고 재도 없으며 주설도 없다. 선과 악의 업도 없고, 선악업의 갚음도 없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없고, 아비도 어미도 없다. 세상에는 참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것도 없다'고.
둘째 논사는 바른 소견이 있어 첫째 논사의 보는 바와 아는 바와는 반대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나이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한 주설도 있다. 선악의 업도 있고 선악업의 갚음도 있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있고,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다. 세상에는 참 사람이 있어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며 성취하여 노니는 것도 있다'고.
셋째 논사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나이다.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게 하고, 스스로도 끊고 남도 끊게하며, 스스로도 삼고 남도 삼게 한다거나, 시름하고 번열내며, 걱정하고 슬퍼하며, 가슴을 치고 괴로와하며, 소리내어 운다거나, 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사음하고 거짓말하며 술을 마시거나,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거리에 가서 겁탈한다.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한다. 이렇게 하는 자라도 악을 짓는다고 하지 않는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그는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고 베고 토막내며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조각을 만들고 한 가름·한 무더기를 만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한 업도 없고 또 악업의 갚음도 없다. 항하의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삼고 가며, 항하의 북쪽 언덕에서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설을 외우고 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도 없고 복도 없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와 복의 갚음도 없다. 물건을 보시하고, 마음을 다루어 지키어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익하게 하며, 은혜롭게 주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하게 하고 또 고루 이익하게 하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의 종자도 없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의 갚음도 없다'고.
넷째 논사는 바른 소견이 있어, 셋째 논사의 아는 바와 보는 바와는 반대로 그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나이다.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게 하며, 스스로도 끊고 남도 끊게 하며, 스스로도 삼고 남도 삶게 한다거나, 시름하고 번열내며 걱정하고 슬퍼한다거나,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소리 내어 운다거나, 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사음하고 거짓말하며 술을 마시거나,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거리에 가서 겁탈하거나,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진실로 악을 짓는 자라 한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그는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으며 베고 토막내며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조각을 만들고, 한 가름·한 무더기를 만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한 업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업의 갚음이 있다. 항하의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삼고 가며, 항하의 북쪽 언덕에서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설을 외우고 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도 있고 복도 있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와 복의 갚음이 있다. 물건을 보시하고, 마음을 다루어 지키어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익하게 하며, 은혜롭게 주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하게 하고 또 고루 이익하게 하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의 갚음도 있다'고. 고오타마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문득 의혹을 내었나이다. '이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허망을 말하는가'고."
세존께서는 가미니에게 말씀하시었다.
"가미니여, 너는 의혹을 내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의혹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곧 망설임이 있다. 가미니여, 너는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없으면서 뒤 세상이 있다고 하고 뒤 세상이 없다고 한다. 가미니여, 너는 또 깨끗한 지혜가 없으면서 지은 바를 악이라 하고 지은 바를 선이라 한다. 가미니여, 법의 정(定)이 있으니, 이름을 <원리(遠籬)>라 한다. 너는 이 결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너는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위로 오를 수 있다."
이에 파탈리야 가미니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입은 옷 한 자락을 벗어 메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어떤 법의 정을 <원리>라 이름하며, 저로 하여금 그것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게 하고 한마음을 얻게 하며, 이와 같이 저를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자꾸 위로 오를 수 있게 하나이까."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숨을 놓고 방에 들어가 선정에 앉았다가, 밤을 지내고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났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었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얻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그는 곧 스스로 '나는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한다'고 본다. 그는 스스로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곧 몸을 쉬며, 몸을 쉰 뒤에는 곧 몸이 즐거움을 깨달으며, 몸이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는 곧 한마음을 얻게 되느니라.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 곧 그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없고 재도 없으며 주문도 없다. 선악의 업도 없고, 선악업의 갚음도 없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세상에 참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것도 없다. 만일 그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한 바가 진실하다면,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은 것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흐림이 없어 즐거워하리라. 나는 이제 위없는 사람의 법을 얻어 자꾸 위로 올라 안락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원리>는 법의 정이다. 그는 사문의 말한 것을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속 마음의 쉼을 얻는다. 가미니여, 이것이 이른바 '법의 정을 이름하여 <원리>라 한다.'는 것이다. 너는 이 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너는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자꾸 위로 오르게 될 것이다.
다시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숨을 놓고 방에 들어가 선정에 앉았다가, 밤을 지내고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났고 생물을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었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얻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그는 곧 스스로 나는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한다고 본다. 그는 스스로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몸을 쉰다. 몸을 쉰 뒤에는 몸이 즐거움을 깨닫고, 몸이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는 한마음을 얻게 되느니라.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는 곧 그 마음은 슬픔과 함께 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슬픔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 주술도 있다. 선악의 업도 있고 선악업의 갚음도 있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있고,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다. 세상에는 참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것도 있다. 만일 저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한 바가 진실이라면,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음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흐림이 없어 즐거워하리라. 나는 위없는 사람의 법을 얻어 자꾸 위로 올라 안락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원리>는 법의 정이다. 그는 사문의 범지(梵志)의 말한 것을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속 마음의 쉼을 얻는다. 가미니여, 이것이 이른바 '법의 정을 이름하여 <원리>라 한다.'는 것이다. 너는 이 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자꾸 위로 오르게 될 것이다.
다시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숨을 놓고 방에 들어가 선정에 앉았다가, 밤을 지나고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났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었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끊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그는 곧 스스로 '나는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한다'고 본다. 그는 스스로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몸을 쉰다. 몸을 쉰 뒤에는 몸이 즐거움을 깨닫고, 몸의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는 한마음을 얻게 되느니라.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는 곧 그 마음은 기쁨과 함께 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기쁨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게 하며, 스스로도 끊고 남도 끊게 하며, 스스로도 삼고 남도 삶게 한다거나, 시름하고 번열내며 걱정하고 슬퍼한다거나,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소리를 내어 운다거나, 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사음하고 거짓말하며 술을 마시거나,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거리에 가서 겁탈한다거나,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한다. 이와 같이 하는 사람도 실로 악을 짓는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그가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고 베고 토막내며,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점을 만들고, 한 가름·한 무더기를 만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한 업이 없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업의 갚음도 없다. 항하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삼고 가며, 항하 북쪽 언덕에서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문을 외우고 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도 없고 복도 없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와 복의 갚음도 없다. 물건을 보시하고, 마음을 다루어 지키어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익하게 하며, 은혜롭게 주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하게 하고 또 고루 이익하게 하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이 없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의 갚음도 없다'고.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한 바가 진실하다 하더라도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은 것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흐림이 없어 즐거워하리라. 나는 이제 위없는 사람의 도를 얻어 자꾸 위로 올라가 안락하게 살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이른바 <원리>는 법의 정이다.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한 것을 옳지도 않다 그르지도 않다고 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그 속 마음은 쉼을 얻는다. 가미니여, 이것이 이른바 '법의 정을 이름하여 <원리>라 한다.'는 것이다. 너는 이 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너는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자꾸 위로 오르게 될 것이다.
다시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숨을 놓고 방에 들어가 선정에 앉았다가, 밤을 지나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떠났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얻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그는 스스로 '나는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한다'고 본다. 그는 스스로 10악업도를 끊고 10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몸을 쉰다. 몸을 쉰 뒤에는 몸이 즐거움을 깨닫고, 몸이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는 한마음을 얻게 되느니라.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는 곧 그 마음은 버림과 함께 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버림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게 하며, 스스로도 끊고 남도 끊고 하며, 스스로도 삼고 남도 삶게 한다거나, 시름하고 번열내며 걱정하고 슬퍼한다거나,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소리를 내어 운다거나, 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사음하고 거짓말하며 술을 마신다.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거리에 가서 겁탈한다거나,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한다. 이렇게 하는 자는 악을 짓는다고 한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그는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으며 베고 토막내고,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점을 만들고, 한 가름·한 무더기를 만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한 업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악업의 갚음도 있다. 항하의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삼고 가고, 항하의 북쪽 언덕에서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문을 외우고 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와 복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와 복의 갚음도 있다. 물건을 주고, 마음을 다루며 지키어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익하게 하며, 은혜롭게 주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하게 하고 또 고루 이익하게 하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복의 갚음도 있다'고.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한 바가 진실하다 하더라도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은 것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흐림이 없어 즐거우리라. 나는 위없는 사람의 법을 얻어 자꾸 위로 올라 안락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원리는 법의 정이다. 그는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한 것을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속 마음의 쉼을 얻는다. 가미니여, 이것이 이른바 '법의 정을 이름하여 <원리>라 한다.'는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자꾸 위로 오르게 될 것이다."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 파탈리야 가미니는 티끌을 멀리 하고 때를 여의고, 모든 법에 대한 깨끗한 눈이 생겼다. 이에 가미니는 법을 보고 법을 얻고 희고 깨끗한 법을 깨달았다. 의심을 끊고 미혹을 버리어 다시는 다른 높임이 없었으며, 다시는 남을 따르지 않고 망설임이 없으며 이미 과증(果證)에 머물러, 세존의 법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파탈리야 가미니는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에게 귀의하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하소서. 오늘부터 몸을 마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이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파탈리야 가미니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