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7권
29 대구치라경(大拘緻羅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노닐으시면서 죽림 칼란다카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사리불은 해질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마하 코옷티라에게 가서 서로 문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사리불은 마하 코옷티라에게 말하였다.
"내가 물을 일이 있는데 들어 주겠소."
"존자 사리불이여, 물을 일이 있거든 곧 물으시오. 나는 듣고 생각해 보겠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혹 어떤 일이 있어 그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불선을 알고 불선근을 아오. 어떻게 불선을 아는가. 몸의 악행은 불선이요, 입과 뜻의 악행은 불선이라고 아오. 이것이 불선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불선근을 아는가. '탐욕은 불선근이요, 성냄과 어리석음은 불선근'이라고 아오. 이것이 불선근을 안다는 것이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불선과 불선근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존자 사리불은 이 말을 듣고 찬탄해 말하였다.
"좋고, 좋소.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선을 알고 선근을 아오. 어떻게 선을 아는가. 몸의 묘행은 선이요 입과 뜻의 묘행은 선이라고 아오. 이것을 선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선근을 아는가. 이른바 탐욕이 없는 것은 선근이요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 것은 선근이라고 아오. 이것을 선근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선을 알고 선근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음식의 참뜻을 알고 음식의 원인을 알며, 음식의 멸함을 알고 음식이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음식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4식(食)이 있는데, 첫째는 단식의 거칠고 맛나는 것이요, 둘째는 갱락의 음식이며, 셋째는 의사(意思)의 음식이요, 넷째는 식(食) 음식이라고 아오. 이것이 음식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음식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사람으로 말미암아 음식이 있다고 아오. 이것이 음식의 원인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음식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사람이 멸하면 음식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이 음식의 멸함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음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이 음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음식의 참뜻을 알고 음식의 원인을 알며, 음식의 멸함을 알고 음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누의 참뜻을 알고 누의 원인을 알며, 누의 멸함을 알고 누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누(漏)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세 가지가 있소. 탐욕의 누와 생명의 누와 무명의 누요. 이것이 누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누의 원인이 되는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무명으로 말미암아 곧 누가 있다 아오. 이것이 누의 원인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누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무명이 멸하면 누가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이 누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오. 어떻게 누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8지 성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이 누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누의 참뜻을 알고 누의 원인을 알며, 누의 멸함을 알고 누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괴로움의 참뜻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괴로움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남(生)은 괴로움이요, 늙음은 괴로움이며, 앓음은 괴로움이요, 죽음은 괴로움이며, 원수를 만남이 괴로움이요, 사랑을 떠남이 괴로움이며, 구하여 얻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간단히 줄여 5성음(盛陰)은 괴로움이라고 아오. 이것을 괴로움의 진실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괴로움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늙음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곧 괴로움이 있다 아오. 이것을 괴로움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괴로움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늙음과 죽음이 멸하면 괴로움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괴로움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괴로움의 참뜻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늙음과 죽음의 참뜻을 알고 늙음과 죽음의 원인을 알며, 늙음과 죽음의 멸함을 알고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늙음을 아는가. 이른바 저 이는 늙어,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고 젊음은 날로 쇠해 간다. 머리는 희고 다리는 휘어지며, 몸은 무겁고 피는 머리로 오르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늘어나 주름살은 얽은 것 같으며, 모든 기관은 헐고 얼굴빛은 추악하다.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고 아오. 어떻게 죽음을 아는가. 이른바 저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목숨을 마치어 항상됨이 없으므로 한 번 죽으면 흩어져 없어지고, 수(壽)가 다하면 부서져 명근(命根)이 닫히고 만다.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 여기서는 죽음을 말했고, 앞에서는 늙음을 말했다. 이것을 늙음과 죽음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이 늙음과 죽음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늙음과 죽음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남으로 말미암아 곧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아오. 이것이 늙음과 죽음의 원인의 참 모양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늙음과 죽음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남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이 늙음과 죽음의 멸함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이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라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늙음과 죽음의 참뜻을 알고 늙음과 죽음의 원인을 알며, 늙음과 죽음의 멸함을 알고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생의 참뜻을 알고 생의 원인을 알며, 생의 멸함을 알고 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생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그 중생과 저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배게 되어 배고 나게 되어 나고 자라게 되어 자라고, 오음을 일으킨 뒤에는 명근을 얻는다고 아오. 이것을 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생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유(有)>로 말미암아 곧 생이 있다고 아오. 이것을 생의 원인의 진실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생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유>가 멸하면 생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생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8지 성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생의 참뜻을 알고 생의 원인을 알며, 생의 멸함을 알고 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유>의 참뜻을 알고 유의 원인을 알며, 유의 멸함을 알고 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유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3유(有)가 있다. 욕유·색유·무색유라고 아오. 이것을 유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유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수(受)>로 말미암아 곧 유가 있다고 아오. 이것을 유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유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수>가 멸하면 유가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유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유의 참뜻을 알고 유의 원인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수>의 참뜻을 알고 수의 원인을 알며, 수의 멸함을 알고 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수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사수(四受)>가 있다. 욕수·계수·견수·아수라고 아오. 이것을 수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아오. 어떻게 수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애(愛)>로 말미암아 곧 수가 있다고 아오. 이것을 수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수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애가 멸하면 수가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수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8지 성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수의 참뜻을 알고 수의 원인을 알며, 수의 멸함을 알고 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애>의 진실을 알고 애의 원인을 알며, 애의 멸함을 알고 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애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3애(愛)>가 있다. 욕애·색애·무색애 라고 아오. 이것을 애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아오. 어떻게 애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각(覺)으로 말미암아 곧 애가 있다고 아오. 이것을 애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애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각>이 멸하면 애가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애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애의 참뜻을 알고 애의 원인을 알며, 애의 멸함을 알고 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각의 참뜻을 알고 각의 원인을 알며, 각의 멸함을 알고 각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각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3각(覺)>이 있다. 낙각·고각·불고불락각이라고 아오. 이것을 각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각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갱락(更樂)>으로 말미암아 곧 각이 있다고 아오. 이것을 각의 원인의 진실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각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갱락>이 멸하면 각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각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각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8지 성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각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각의 참뜻을 알고 각의 원인을 알며, 각의 멸함을 알고 각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갱락의 참뜻을 알고 갱락의 원인을 알며, 갱락의 멸함을 알고 갱락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갱락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3갱락이 있다. 낙갱락·고갱락·불고불락갱락이라 아오. 이것을 갱락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갱락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6처(處)>로 말미암아 곧 갱락이 있다고 아오. 이것을 갱락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갱락의 멸함을 아는가. 이른바 6처가 멸하면 갱락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갱락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갱락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갱락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갱락의 참뜻을 알고 갱락의 원인을 알며, 갱락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비구는 <6처>의 참뜻을 알고 6처의 원인을 알며, 6처의 멸함을 알고 6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6처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안처>와 이·비·설·신의처라고 아오. 이것을 <6처>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6처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것이라 하오. 어떻게 6처의 멸함의 참 뜻을 아는가. 이른바 <명색>으로 말미암아 곧 6처가 있다고 아오. 이것을 6처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이른바 <명색>이 멸하면 6처가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6처를 멸함의 참 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6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6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6처의 참뜻을 알고 6처의 원인을 알며, 6처의 멸함을 알고 6처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혹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명색>의 참뜻을 알고 명색의 원인을 알며, 명색의 멸함을 알고 명색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명을 아는가. 이른바 색이 아닌 4음(陰)을 명이라 한다고 아오. 어떻게 색을 아는가. 이른바 사대 및 사대로 된 것을 색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명색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명색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식>으로 말미암아 곧 명색이 있다고 아오. 이것을 명색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명색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식>이 멸하면 명색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명색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명색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명색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명색의 참뜻을 알고 명색의 원인을 알며, 명색의 멸함을 알고 명색의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식(識)>의 참뜻을 알고 식의 원인을 알며, 식의 멸함을 알고 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식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6식>이 있다. 안식·이·비·설·신·의식이라고 아오. 이것을 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식의 원인의 참을 아는가. 이른바 <행>으로 말미암아 곧 식이 있다고 아오. 이것을 식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식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행>이 멸하면 식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식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식의 참뜻을 알고 식의 원인을 알며, 식의 멸함을 알고 식의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다시 어떤 일이 있어 이 일을 행하면, 비구는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행(行)>의 참뜻을 알고 행의 원인을 알며, 행의 멸함을 알고 행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행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3행>이 있다. 몸의 행·입의 행·뜻의 행이라 아오. 이것을 행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행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무명>으로 말미암아 곧 행이 있다고 아오. 이것을 행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행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무명>이 멸하면 행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을 행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어떻게 행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을 행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하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행의 참뜻을 알고 행의 원인을 알며, 행의 멸함을 알고 행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존자 사리불은 찬탄한 뒤에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만일 어떤 비구가 무명이 이미 다해 명이 생기면 다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무명이 이미 다해 명(明)이 생기면, 다시 할 일이 없소."
존자 사리불은 이 말을 듣고 찬탄해 말하였다.
"그렇소, 그렇소, 어진 이 마하 코옷티라여."
이렇게 두 존자는 서로 이치를 이야기하고, 저마다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30 상적유경(象跡喩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사리불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비록 한량이 없는 선법이 있더라도 그 모든 법은 다 사성제에 껴잡히어 사성제 가운데로 들어온다. 그래서 사성제를 일체법에서 제일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많은 선법을 다 껴잡기 때문이다. 여러분, 그것은 마치 모든 짐승의 발자국에서 코끼리의 발자국을 제일로 삼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저 코끼리 발자국이 가장 넓고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저 한량이 없는 일체 선법은 다 사성제에 껴잡히어 사성제 가운데로 들어온다. 그래서 사성제를 일체법에서 제일이라 한다. 어떤 것이 4인가. 이른바 고성제·고집·고멸·고멸도성제가 그것이다.
어떤 것이 고성제인가. 이른바 남은 괴로움이요, 늙음은 괴로움이며, 앓음은 괴로움이요, 죽음은 괴로움이다. 원수를 만남이 괴로움이요, 사랑하는 이를 떠남이 괴로움이며, 구하여 얻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간략히 줄여서 오성음(五盛陰)이 다 괴로움이다. 어떤 것이 5성음의 괴로움인가. 이른바 색성음과 각·상·행·식성음이 그것이다. 어떤 것이 색성음인가. 이른바 저 일체 색은 사대와 사대로 지어진 것이다. 어떤 것이 사대인가. 이른바 지계와 수·화·풍계가 그것이다. 어떤 것이 지계인가. 지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지계(內地界)가 있고 외지계(外地界)가 있다. 어떤 것이 내지계인가. 이른바 몸에 있어 몸에 껴잡히어 단단한 성질인, 몸으로 받아 난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머리털·털·손톱·이·굵고 고운 피부·살·근육·염통·콩팥·간·허파·지라·창자·밥통·똥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 안에 있어 몸에 껴잡히어 단단한 성질로 있는 것이다. 이것을 내지계라 한다. 또 외지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때로는 수재(水災)가 있다. 그 때에 외지계는 멸한다. 이 외지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됨이 없는 물건이요 다하는 물건이며, 쇠하는 물건이요 변하는 물건이다.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는가.
그런데,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의 것>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와 상대되는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는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어 때리며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따라 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이라 하는가. 고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생각하오.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행·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界)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따라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행·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며 혹은 무기로 때리면, 그는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의 추한 사대의 바탕이다. 부모를 따라 나서 음식으로 자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고생을 참는다. 이것은 부서질 물건이요 없어져 다할 물건이며, 떠나 흩어질 물건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바른 생각으로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하여 한마음이 된다. 그는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하여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매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부처님의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내 몸을 자르더라도, 그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디마디 내 몸을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하라. 저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닐며, 이렇게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여러분,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의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분, 그 비구는 반드시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여러분, 그것은 마치 처음 온 신부가 시어미를 보거나 신랑을 보고, 자신에게나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여러분,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자신에게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는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를 것이다. 이것은 묘한 식적(息寂)으로써, 이른바 '일체의<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떠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구의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수계(水界)인가. 이른바 수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수계가 있고 외수계가 있다. 어떤 것이 내수계인가. 몸에 있어 몸에 껴잡히어 습한 물의 성질인, 몸으로 받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골·골뿌리·눈물·땀·흐르는 눈물·가래침·고름·피·기름덩이·뼈심·침·가래·오줌,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안에 있으면서 몸에 껴잡히어 습한 물의 성질인, 몸으로 받는 것이다. 이것을 내수계라 한다. 또 외수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때로는 화재(火災)가 있다. 그 때에는 외수계는 멸한다. 이 외수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됨이 없는 물건이요 다하는 물건이며, 쇠하는 물건이요 변하는 물건이다.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는가.
그런데,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의 것>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이 아는 성 제자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와 상대되는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거나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고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행·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행·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며 무기로 치면 그는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이 추한 사대의 바탕이다. 부모로부터 나서 음식으로 자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고생을 참는다. 이것은 부서질 물건이요 없어져 다할 물건이며, 떠나 흩어질 물건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하여 한마음이 된다. 그는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하여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매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비록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네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때문에 너는 네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네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하라. 저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며, 이렇게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여러분,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의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그 비구는 반드시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것은 마치 처음 온 신부가 시어미를 보거나 신랑을 보고,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여러분,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버리는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는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하므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를 것이다. 이것은 묘한 식적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를 버리고 애욕을 떠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구의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화계(火界)인가. 이른바 화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화계(內火界)가 있고 외화계(外火界)가 있다. 어떤 것이 내화계인가. 이른바 몸에 있어 몸에 껴잡히어 뜨거운 불의 성질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몸을 뜨겁게 하며, 번민하고 온장하며, 음식을 소화시키는, 이와 같은 것들로써 몸 안에 있어 몸에 껴잡히어 뜨거운 불의 성질로 있는 것이다. 이것을 내화계라 한다. 또 외화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때로는 외화계가 일어난다. 그것이 일어나면 마을·성곽·삼림·광야를 태운다. 태우다가 혹은 길에 이르고 물에 이르러 받는 것이 없으면 저절로 멸한다. 외화계가 멸한 뒤에는 사람들은 불을 구하여 나무를 비비거나 대(竹)를 끊으며, 혹은 구슬로 불을 낸다. 이 외화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됨이 없는 물건이요 다하는 물건이며, 쇠하는 물건이요 변하는 물건이다.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아 이 몸이겠는가. 그런데,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의 것>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이 아는 성 제자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의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며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 하는가. 고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행·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행·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며 혹은 무기로 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이 추한 사대의 바탕이다. 부모를 좇아 나서 음식으로 자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고생을 참는다. 이것은 부서질 물건이요 없어져 다할 물건이며, 떠나 흩어질 물건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는다'고.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하여 한마음이 된다. 그는 또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하여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매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땅히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하라. 저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며, 이렇게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여러분,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저 비구는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여러분, 그것은 마치 처음 온 신부가 시어미를 보거나 신랑을 보고,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는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를 것이다. 이것은 묘한 식적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를 버리고 애욕을 떠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을 '비구의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한다.
또 어떤 것이 풍계(風界)인가. 풍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풍계(內風界)가 있고 외풍계(外風界)가 있다. 어떤 것이 내풍계인가. 이른바 몸에 있어 몸에 껴잡히어 움직이는 바람의 성질인, 몸으로 받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위로 다니는 바람·밑으로 다니는 바람·뱃속의 바람·끌어당기는 바람·칼 바람·오르는 바람·길이 아닌 바람·뼈마디의 바람·내쉬는 바람·들이쉬는 바람, 이와 같은 것들로써, 몸 안에 있어, 몸에 껴잡히어 움직이는 바람의 성질인, 몸으로 받는 것이다. 이것을 내풍계라 한다. 외풍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때로는 외풍계가 일어난다. 외풍계가 일어날 때에는 집을 뒤집고 나무를 빼며, 산을 무너뜨린다. 산을 뒤집은 뒤에는 곧 그쳐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또 외풍계가 그친 뒤에는 사람들은 바람을 구하여, 부채로 혹은 타알라나뭇잎으로 혹은 옷으로 바람을 구한다. 여러분, 외풍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됨이 없는 물건이요 다하는 물건이며, 쇠하는 물건이요 변하는 물건이다.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는가.
그런데,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의 것>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은 <나>, 이것은 <내 것>, 나는 <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며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 하는가. 고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행·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갱락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고, 각·상·해·식의 항상됨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하여 안정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또 뒷날에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고,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며 혹은 무기로 치면, 그는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이 추한 사대의 바탕이다. 부모를 좇아 나서 음식으로 자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고생을 참는다. 이것은 부서질 물건이요 없어져 다할 물건이며, 떠나 흩어질 물건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한마음이 된다. 그는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하여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매 주먹질과 돌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부처님의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땅히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하라. 저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닐며, 이렇게 2·3·4방·4유·상·하의 일체에 두루 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므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여러분,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저 비구는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것은 마치 처음 온 신부가 시어미를 보거나 신랑을 보고,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는 이익에 있어서 이익이 없고, 덕에 있어서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는 스스로나 남에게 부끄러워하므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응하는 평등한 마음에 머무를 것이다. 이것은 묘한 식적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를 버리고 애욕을 떠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구의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한다.
여러분, 마치 재목과 진흙과 물풀로써 허공에 덮으면 집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과 같이, 힘줄과 뼈와 피부와 살과 피로 허공을 싸면 곧 몸이라는 이름이 생긴다. 만일 안의 안처(眼處)가 무너지고 바깥 빛깔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어 안식이 나지 못하게 된다. 만일 안의 안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빛깔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어 안식이 나게 된다. 안의 안처와 빛깔과 안식이 바깥 빛깔을 알면 이것은 색음(色陰)에 속한다.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이요, 상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이며, 사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이요, 식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이다.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한다. 여러분,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고. 무슨 까닭인가. 여러분, 세존께서는 5성음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과 각·성·행·식성음이 그것이다. 만일 안의 이·비·설·신·의처가 무너지고 바깥의 법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은 없어 의식은 나지 못하게 된다.
여러분, 만일 안의 의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의 법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어 의식이 나게 된다. 안의 의처와 법과 의식이 바깥의 색법을 알면, 이것은 색음에 속한다.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이요, 상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이며, 사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이요, 식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이다.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한다. 여러분,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고. 무슨 까닭인가. 여러분, 세존께서는 5성음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과 각·상·행·식성음이 그것이다. 그는 이 과거·미래·현재의 5성음을 싫어한다. 싫어한 뒤에는 곧 욕이 없어지고, 욕이 없어지자 해탈하며, 해탈하자 해탈을 안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안다. 이것을 '비구의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한다."
존자 사리불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31 분별성제경(分別聖蹄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이것은 정행설법(正行說法)이니, 이른바 사성제다. 널리 껴잡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한다. 과거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에게도 또한 이 정행설법이 있었으니, 이른바 사성제다. 널리 껴잡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했다. 미래의 모든 여래·무소착·등정각에게도 또한 이 정행설법이 있을 것이니, 이른바 사성제다. 널리 껴잡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할 것이다. 이제나, 현재의 여래·무소착·등정각에게도 또한 이 정행설법이 있으니, 이른바 사성제다. 널리 껴잡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한다.
사리불 비구는 총명한 슬기·속한 슬기·민첩한 슬기·예리한 슬기·넓은 슬기·깊은 슬기·도로 나아가는 슬기·환히 아는 슬기·변재의 슬기가 있다. 사리불 비구는 진실한 슬기를 성취했다.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나는 이 사성제를 간략하게 말하면, 그는 남을 위하여 널리 가르치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한다. 그가 이 사성제를 널리 가르치고 두루 보이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할 때에, 한량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사리불 비구는 바른 소견으로써 사람을 인도하고, 목건련 비구는 사람으로 하여금 최상의 진제(眞際)에서 서게 하나니, 이른바 누가 완전히 다하는 것이다. 사리불 비구는 모든 범행을 나게 하는 것이 마치 생모와 같고, 목건련 비구는 모든 범행을 자라게 하는 것이 마치 양모와 같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자는 마땅히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공경하고 예배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그 두 비구는 모든 범행자를 위하여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고요히 앉으셨다. 이에 존자 사리불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세존은 우리들을 위하여 세상에 나오셨다. 이른바 남을 위하여 이 <사성제>를 널리 가르치고 두루 보이시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하신다. 어떤 것이 4인가. 이른바 고성제·고집·고멸·고멸도성제다. 그럼 어떤 것이 고성제인가.이른바 남(生)은 고통이요 늙음은 고통이며, 병은 고통이요 죽음은 고통이며, 원수와 만남이 고통이요 사랑과 여윔이 고통이며, 구하여 얻지 못함이 고통이요 간략하게 줄여서 5성음(盛陰)은 고통이다.
여러분, 남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배게 되어 배고, 나오게 되면 곧 나와서 5음(陰)을 일으킨 뒤에는 명근을 얻는다. 이것을 남이라 이름한다. 남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이 날 때에는 몸은 고통을 받되 온몸의 고통을 받으며, 온몸의 고통이 느낌을 안다. 마음도 고통을 받되 온 마음의 고통을 받으며, 온 몸의 고통의 느낌을 안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되 두루 받으며, 두루 느낌을 깨닫는다. 몸이 뜨거워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느낀다. 마음이 뜨거워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몸과 마음도 뜨거워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몸이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되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마음도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되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몸과 마음이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되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여러분, 남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늙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이른바 저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늙기 때문에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며, 젊음은 날로 쇠한다. 허리는 굽고 다리는 휘어지며, 몸은 무겁고 피는 머리로 올라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늘어나 주름살은 얽은 것 같으며, 모든 근은 낡고 얼굴빛은 추악하다.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 늙음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이 늙을 때에는 몸은 고통을 받되 두루 고통을 받으며, 두루 느낌을 안다. 마음도 고통을 받으며, 두루 느낌을 안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되 두루 고통을 받으며, 두루 느낌을 안다. 몸이 뜨거워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마음도 뜨거워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몸과 마음이 뜨거워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몸이 장렬하고 번뇌하고 우척하되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마음도 장렬하고 번뇌하고 우척하되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몸과 마음이 장렬하고 번뇌하고 두루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낌을 안다. 여러분, 늙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병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병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두통·눈병·귓병·콧병·낯병·입술병·잇병·혓병·잇몸병·목병·헐떡거림·기침병·구토·후비·지랄병·등창·경일·피가래·열병·여윔병·치질·이증 등이다. 만일 이러한 따위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병이 갱락촉에서 생겨 마음을 떠나지 않고 몸 속에 있으면 이것을 병이라 한다. 병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이 앓을 때에는 몸은 고통을 받고 변수(遍受)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마음도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몸이 뜨거워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마음도 뜨거워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몸이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여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여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여러분, 병의 고통을 말함은 이러한 때문인 것이다.
죽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죽음이란 또 무엇인가. 이른바 저 중생의 무리들은 목숨을 마치기 항상됨이 없어 죽으면 흩어져 멸하고, 수가 다하면 부서져 명근이 닫긴다.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 죽음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이 죽을 때에는 몸은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마음도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몸이 뜨거워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마음도 뜨거워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뜨거워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몸이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여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마음도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여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뜨겁고 번뇌하고 근심하여 변수를 받고, 변각을 깨닫는다. 죽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원수를 만나는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원수를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안처와 이·비·설·신·의처가 그것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하나 되고 서로 사귀고 가까이 하게 되고 함께 합해 괴로워한다. 이와 같이 외처와 갱락과 각·상·사의 사랑도 또한 그와 같다. 여러분, 중생에게는 실로 6계가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지계와 수·화·풍·공·식계가 그것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사귀고 가까이 하게 되고 함께 합해 괴로워한다. 이것을 원수를 만남이라 한다. 여러분, 원수를 만나는 고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이 원수를 만날 때에는 몸은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마음도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원수를 만나는 고통을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사랑을 떠나는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 사랑을 떠나는 고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안의 6처가 있으니, 사랑하는 안처와 이·비·설·신·의처가 그것이다. 그들은 서로 달라 흩어져 서로 응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떠나 모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이와 같이 외처와 갱락·각·상·사의 사랑도 또한 그와 같다. 중생에게는 실로 6계(界)가 있으니, 사랑하는 지계와 수·화·풍·공·식계가 그것이다. 그들은 서로 달라 흩어져 서로 응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떠나 모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며, 가까이 하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이것을 사랑의 떠남이라 한다. 사랑의 떠나는 고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이 이별할 때에는 몸은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마음도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고 변수를 받으며, 변각을 깨닫는다. 사랑을 떠나는 고통을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구하여 얻지 못하는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른바 중생은 나는(生) 것으로써 나는 법을 떠나지 못한다. 나로 하여금 나지 않게 하고자 해도 그것은 실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늙는 법·앓는 법·죽는 법·시름하는 법도 또한 그러하며, 그것은 걱정하고 슬퍼하는 법으로써 걱정하고 슬퍼하는 법을 떠나지 못한다. 나로 하여금 걱정하고 슬퍼하지 않게 하고자 해도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은 실로 괴로운 것으로써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 하여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괴로운 것으로써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면, 이것을 돌려 사랑할 만한 것으로 만들자'고.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 중생은 실로 즐거운 것으로써 사랑할 만한 것이라 하여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즐거운 것으로써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이것을 항상 오래 있게 하여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자'고.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은 실로 사상으로써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 하여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사상으로써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면, 이것을 돌려 사랑할 만한 것으로 만들자'고.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은 실로 사상으로써 사랑할 만한 것이라 하여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사상으로써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이것을 항상 오래 있게 하여 변하지 않는 법으로 만들자'고.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구하여 얻지 못하는 고통을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간략하게 줄여 5성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른바 색성음과 각·상·행·식성음이 그것이다. 또 5성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이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것은 고성제였고, 미래와 현재에도 이것은 고성제이다. 참된 진리로써 헛되지 않고 여(如)를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뀜도 아니다. 참된 진리로써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如是諦)에 합한다. 성인의 가진 바요 성인의 안 바며, 성인의 본 바요 성인의 깨달은 바며, 성인의 얻은 바요 성인의 바르게 두루 깨친 바이다. 그러므로 고성제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애집고집성제인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안의 6처가 있으니, 안처와 이·비·설·신·의처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애욕이 있고 때낌이 있으며, 물듬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집(集)이라 한다. 여러분,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내가 이렇게 이 법을 알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환히 알며, 이렇게 자세히 보고 이렇게 깨달은 것을 안다. 이것을 애집고집성제라 한다. 이렇게 안다니 어떻게 아는가. '만일 처자·종들·하인·권속·토지·가옥·점방·이자를 붙이는 재물을 사랑하고, 가지는 직업을 위하여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듬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집이라 한다'고. 그는 이 애집고집성제(愛集苦集聖諦)를 안다. 이와 같이 외처와 갱락·각·상·사의 애정도 또한 이와 같다.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6계가 있으니, 지계와 수·화·풍·공·식계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집이라 한다.
여러분,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내가 이렇게 이 법을 알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환히 알며, 이렇게 자세히 보고 이렇게 깨달은 것을 안다. 이것을 애집고집성제라 한다. 이렇게 안다니 어떻게 아는가. '만일 처자·종들·하인·권속·토지·가옥·점방·재물을 사랑하여 가지는 직업이 있으면,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듬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집이라 한다'고. 그는 이 애집고집성제를 안다. 과거에도 이것은 애집고집성제였고, 미래와 현재에도 이것은 애집고집성제이다. 참된 진리로써 헛되지 않고 여를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뀜도 아니다. 참된 진리로써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에 합한다. 성인의 가진 바요 성인의 안 바며, 성인의 본 바요 성인의 깨달은 바며, 성인의 얻은 바요 성인의 바르게 두루 깨친 바이다. 그러므로 애집고집성제를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어떤 것이 애멸고멸성제(愛滅苦滅盛諦)인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안의 6처가 있으니, 안처와 이·비·설·신·의처가 그것이다.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서 버리고 다 뱉아서 욕(欲)을 아주 없애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 한다.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가 이렇게 이 법을 알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환히 알며, 이렇게 자세히 보고 이렇게 깨달은 것을 안다. 이것을 애멸고멸성제라 한다. 이렇게 안다니 어떻게 아는가. '만일 처자·종들·하인·권속·토지·가옥·점방·이자 붙는 재물을 사랑하지 않아서 가지는 직업이 없고,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 버리고 다 뱉아서 욕을 아주 없애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 한다'고. 그는 이 애멸고멸성제를 안다. 이와 같이 외처와 갱락·각·상·사의 사랑도 또한 그와 같다.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6계가 있으니, 지계와 수·화·풍·공·식계가 그것이다.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서 버리고 다 뱉아서 욕을 아주 없애 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 한다.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내가 이렇게 이 법을 알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환히 알며, 이렇게 자세히 보고 이렇게 깨달은 것을 안다. 이것을 애멸고멸성제라 한다. 이렇게 안다니 어떻게 아는가. '만일 처자·종들·하인·권속·토지·가옥·점방·이자 붙이는 재물을 사랑하지 않아서 가지는 직업이 없으며,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서 버리고 다 뱉아서 욕을 아주 없애 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 한다'고. 그는 이 애멸고멸성제를 안다. 과거에도 이것은 애멸고멸성제였고, 미래와 현재에도 이것은 애멸고멸성제이다. 참된 진리로써 헛되지 않아 여를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뀜도 아니다. 참된 진리로써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에 합한다. 성인의 가진 바요 성인의 안 바며, 성인의 본 바요 성인의 깨달은 바며, 성인의 얻은 바요 성인의 바르게 두루 깨친 바이다. 그러므로, 애멸고멸성제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고멸도성제(苦滅道盛諦)인가. 이른바 바른 소견·바른 뜻·바른 말·바른 행동·바른 생활·바른 방편·바른 생각·바른 정이 그것이다. 또 어떤 것이 바른 소견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을 집,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災患)을 보거나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는 착한 마음의 해탈을 생각하여 관찰할 때, 두루 가리어 가진 법을 결정하며, 두루 보고 관찰하여 환히 안다.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한다.
여러분, 어떤 것이 바른 뜻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을 집,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거나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이 착한 마음의 해탈을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중에서 마음으로 살피고 두루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따라 살피어, 생각할 만한 것이면 생각하고 바랄 만한 것이면 바란다. 이것을 바른 뜻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바른 말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을 집,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고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중에서 입의 사묘행(四妙行)은 제하고 다른 모든 입의 악행은 멀리 떠나고 끊어 없애어, 행하지도 않고 짓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모으지도 않는다.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바른 행동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을 집,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고 혹은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중에서 몸의 3묘행은 제하고 다른 모든 몸의 악행은 멀리 떠나고 끊어 없애어, 행하지도 않고 짓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모으지도 않는다. 이것을 바른 행동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바른 생활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集)을 집, 멸(滅)을 멸, 도(道)를 도라고 생각할 때,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혹은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고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중에서 무리하게 구하지 않고 욕심이 많아 만족할 줄 모르지 않으며, 온갖 기술과 주설의 삿된 직업으로써 생활하지 않고 다만 법으로써 옷을 구하여 법이 아닌 것을 쓰지 않으며, 또한 법으로써 음식과 자리를 구하여 법이 아닌 것은 쓰지 않는다.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바른 방편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을 집,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고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때,그 중에서 만일 정진 방편이 있으면, 한결같이 꾸준히 힘써 구하고 힘차게 나아가 오로지 달라붙어 버리지 않으며, 또한 지쳐 물러나지도 않고 바르게 그 마음을 항복 받는다.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바른 생각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을 집,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고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중에서 만일 따르는 생각은 생각하고 향하지 않는 생각은 등지며, 두루한 생각을 생각하고 되풀이한 마음을 기억하여, 바르게 마음의 응하는 바를 잊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바른 정인가. 이른바 성인의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집을 집,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혹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환을 보고 열반과 그치어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중에서 만일 마음이 머무르고 선이 머무르고 순함이 머물러, 어지럽지 않고 흩어지지 않아 바른 정을 거두어 잡으면, 이것을 바른 정이라 한다.
과거에도 이것은 고멸도성제요, 미래와 현재에도 이것은 고멸도성제다. 참된 진리로써 헛되지 않고 여를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뀜도 아니다. 참된 진리로써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에 합한다. 성인의 가진 바요 성인의 안 바며, 성인의 본 바요 성인의 깨달은 바며, 성인의 얻은 바요 성인의 바르게 두루 깨친 바이다. 그러므로, 고멸도성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에 게송으로써 말하였다.
부처님은 모든 법을 환히 알아
한량이 없는 선한 덕을 보시고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잘 나타내시고 분별하시네.
존자 사리불이 이렇게 말하니,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