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10권
42 하의경(何義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아난다는 해질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계를 가지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난다야, 계를 가지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뉘우치지 않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계를 가지면 곧 뉘우침이 없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뉘우치지 아니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뉘우치지 아니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뉘우치지 아니하면 곧 즐거워하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즐거워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즐거워하는 것은 기뻐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즐거워 하면 곧 기뻐하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기뻐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기뻐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치게 하는데 뜻이 있다. 만일 기뻐하면 곧 몸을 쉬게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쉰다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쉰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몸이 쉬면 곧 즐거움을 느끼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즐거움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즐거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안정하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즐거우면 곧 정(定)에 들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안정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정에 드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알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정에 들면 곧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알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아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아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싫어하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알면 곧 싫어하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싫어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싫어하는 것은 욕심을 없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싫어하면 곧 욕심이 없게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욕심이 없는 것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아난다야, 욕심이 없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는 데 뜻이 있다. 만일 욕심이 없으면 곧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해탈하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이것이 이른바 계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곧 뉘우치지 않게 되고, 뉘우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으로 즐거워하게 되며, 마음으로 즐거워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쉬게 되며, 쉼으로 말미암아 즐겁게 되고,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정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정으로 말미암아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알게 되고,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앎으로 말미암아 싫어하게 되며,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곧 욕심이 없게 되고, 욕심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해탈하게 되며, 해탈함으로 말미암아 곧 해탈한 줄 알게 되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 뒤 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아느니라. 아난다야, 이것을 법과 법은 서로 이익하게 하고, 법과 법은 서로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계를 첫째로 삼나니, 곧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존자 아난다와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3 불사경(不思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난다야, 계를 가지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뉘우치지 않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계를 가지면 곧 뉘우치지 않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뉘우치지 않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뉘우치지 않으면 곧 즐거워하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즐거워하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즐거워하면 곧 기뻐하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기뻐하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쉬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기뻐하면 곧 마음이 쉬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쉬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쉬면 곧 즐거움을 느끼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정(定)에 들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즐기면 곧 정하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정에 드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알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정에 들면 곧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알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아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싫어하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알면 곧 싫어하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싫어하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욕심이 없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싫어하면 곧 욕심이 없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욕심이 없는 것은 아마 나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저절로 그러하여, 욕심이 없으면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해탈하게 되느니라. 아난다야, 이것이 이른바 계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곧 뉘우치지 않게 되고, 뉘우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되며, 즐거워하므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쉬게 되며, 쉼으로 말미암아 즐기게 되고, 즐김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정하게 된다는 것이니라.
아난다야,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마음이 정함으로 말미암아 참뜻을 보고, 참뜻을 앎으로 말미암아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므로 말미암아 욕심이 없게 되며, 욕심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해탈하게 되고, 해탈함으로 말미암아 해탈한 줄 알게 되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뒤 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아느니라. 아난다야, 이것이 이른바 법과 법은 서로 이익되게 하며, 법과 법은 서로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계를 첫째로 삼나니, 곧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존자 아난다와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4 염경(念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비구가 잊음이 많고 바른 지혜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해치느니라. 만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며,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치느니라. 만일 비구가 잊음이 많지 않고 바른 지혜가 있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익히느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며,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5 참괴경(斬愧經) 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랑과 공경을 해치느니라. 사랑과 공경이 없으면 믿음을 해치고, 믿음이 없으면 바른 사유를 해치고, 바른 사유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해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며,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치느니라. 만일 비구가 부끄러움이 있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익히고, 사랑과 공경이 있으면 믿음을 익히며, 믿음이 있으면 바른 사유를 익히고, 바른 사유가 있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익히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며,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6 참괴경(斬愧經) 下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사리불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부끄러움이 없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해친다. 사랑과 공경이 없으면 믿음을 해치고, 믿음이 없으면 바른 사유를 해치며, 바른 사유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해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며,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친다.
여러분, 마치 나무와 같나니, 만일 겉껍질을 해치면 속껍질이 되지 않고, 속껍질이 되지 않으면 줄기와 마디·가지·잎·꽃·열매가 다 되지 못한다. 여러분,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해치고, 사랑과 공경이 없으면 믿음을 해치고, 믿음이 없으면 바른 사유를 해치고, 바른 사유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해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고,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친다.
여러분, 비구「쥯 부끄러움이 있으면 사랑과 공경을, 사랑과 공경이 있으면 믿음을 익히고, 믿음이 있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익히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고,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힌다.
여러분, 마치 나무와 같나니, 만일 겉껍질을 해치지 않으면 속껍질이 되고, 속껍질이 되면 줄기·마디·가지·잎·꽃·열매가 다 성취된다. 여러분,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다. 만일 부끄러움이 있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익히고, 사랑과 공경이 있으면 믿음을 익히며, 믿음이 있으면 바른 사유를 익히고, 바른 사유가 있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익히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며, 만일 해탈이 있으면 곧 열반을 익힌다."
존자 사리불이 이렇게 말하니,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7 계경(戒經) 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비구가 계를 범하면, 곧 뉘우치지 않음과 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고,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치느니라. 비구가 계를 가지면 뉘우치지 않음과 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과 해탈을 익히고, 해탈이 있으면 곧 열반을 익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8 계경(戒經) 下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사리불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계를 범하면 곧 뉘우치지 않음과 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쉼·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고,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친다. 여러분, 마치 나무와 같나니, 그 뿌리를 해치면 줄기·마디·가지·잎·꽃·열매가 모두 되지 않는다. 여러분,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다. 계를 범하면 곧 뉘우치지 않음과 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고, 해탈이 없으면 곧 열반을 해친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계를 가지면 뉘우치지 않음과 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고,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힌다. 여러분, 마치 나무와 같나니, 그 뿌리를 해치지 않으면 줄기·마디·가지·잎·꽃·열매가 모두 성취된다. 여러분, 마땅히 알라. 비구도 또한 그와 같다. 계를 가지면 뉘우치지 않음과 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고,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힌다."
존자 사리불이 이렇게 말하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49 공경경(恭敬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구는 마땅히 공경하고 모든 범행인(梵行人)들을 좋게 보며, 또 공경하고 존중해야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공경하지 아니하고 모든 범행인들을 좋게 보지 않거나, 또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고는, 위의법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위의법(威義法)을 갖추지 못하고는 학법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학법(學法)을 갖추지 못하고는, 계신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계신(戒身)을 갖추지 못하고는, 정신(定身)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정신을 갖추지 못하고는, 혜신(慧身)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혜신을 갖추지 못하고는, 해탈신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해탈신을 갖추지 못하고는, 해탈지견신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해탈지견신을 갖추지 못하고는, 열반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만일 비구가 공경하고 모든 범행인들을 좋게 보며, 또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위의법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위의법을 갖추고서 학법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학법을 갖추고서 계신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계신을 갖추고서 정신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정신을 갖추고 혜신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혜신을 갖추고서 해탈신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해탈신을 갖추고서 해탈지견신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해탈지견신을 갖추고서 열반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0. 공경경(恭敬經) 하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구는 마땅히 공경하고 모든 범행인들을 좋게 보며, 또 공경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만일 비구가 공경하지 않고 모든 범행인을 좋게 보지 않거나, 또 공경하지 않고는, 위의법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위의법을 갖추지 못하고는, 학법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학법을 갖추지 못하고는,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욕심 없음과 해탈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으며, 해탈을 갖추지 못하고는, 열반을 갖추려 하더라도 결코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만일 비구가 공경하고 모든 범행인들을 좋게 보거나, 또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위의법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위의법을 갖추고서 학법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학법을 갖추고서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요, 해탈을 갖추고 열반을 갖추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1. 본제경(本際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최초에는 <유애(有愛)>가 없었지마는 이제 유애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곧 유애에는 연유가 있음을 알 수 있느니라. 유애에는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연유라 하는가. 무명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무명에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연유라 하는가. 오개(五蓋)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5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오개의 연유라 하는가. 3악행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3악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3악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根)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지 못하는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에도 또한 그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사유가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나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을 친근하게 되고, 나쁜 벗을 친근한 뒤에 곧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게 된 뒤에 곧 바르지 않은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않은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근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며, 모든 근을 보호하지 못한 뒤에 곧 3악행을 갖추게 되고, 3악행이 있은 뒤에 곧 5개를 갖추게 되며, 오개가 있은 뒤에 곧 무명을 갖추게 되고, 무명이 있은 뒤에 곧 유애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니, 이렇게 이 유애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명해탈(明解脫)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해탈의 연유라 하는가. 칠각지(七覺支)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칠각지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칠각지의 연유라 하는가. 사념처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사념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사념처의 연유라 하는가. 삼묘행(三妙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삼묘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삼묘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음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연유라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착한 벗을 가지게 되고, 착한 벗을 친근한 뒤에 곧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을 낸 뒤에 곧 바른 사유를 갖추게 되며, 바른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추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근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근을 보호한 뒤에 곧 삼묘행을 가지게 되고, 삼묘행이 있은 뒤에 곧 사념처를 갖추게 되며, 사념처가 있은 뒤에 곧 칠각지를 갖추게 되고, 칠각지가 있은 뒤에 곧 명해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니, 이렇게 명해탈은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2. 식경(食經) 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최초에는 <유애(有愛)>가 없었지마는 이제 유애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곧 유애에는 연유가 있음을 알 수 있느니라. 유애에는 연유가 있다. 유애에는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연유라 하는가. 무명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무명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연유라 하는가. 오개(五蓋)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오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오개의 연유라 하는가. 3악행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3악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3악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나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이 있게 되고, 나쁜 벗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게 된 뒤에 바르지 않은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않은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근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며, 모든 근을 보호하지 못한 뒤에 곧 3악행을 갖추게 되고, 3악행이 있은 뒤에 곧 오개가 있게 되며, 오개가 있은 뒤에 곧 무명을 갖추게 되고, 무명이 있은 뒤에 곧 유애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니, 이렇게 이 유애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큰 바다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연유라 하는가. 큰 하수(河水)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큰 하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하수의 연유라 하는가. 작은 하수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작은 하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하수의 연유라 하는가. 큰 시내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큰 시내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시내의 연유라 하는가. 작은 시내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작은 시내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시내의 연유라 하는가.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연유라 하는가. 비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때로 큰 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물이 차면 곧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바다가 차나니, 이례게 저 큰 바다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느니라.
이와 같이 유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연유라 하는가. 무명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무명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연유라 하는가. 오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오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오개의 연유라 하는가. 3악행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3악행에도 또한 그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3악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나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을 친근하게 되고, 나쁜 법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은 뒤에 곧 바르지 않은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않은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게 되고,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은 뒤에 곧 3악행을 갖추게 되며, 3악행이 있은 뒤에 오개를 갖추게 되고, 오개가 있은 뒤에 무명을 갖추게 되며, 무명이 있은 뒤에 유애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니, 이렇게 이 유애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명해탈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해탈의 연유라 하는가. 칠각지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칠각지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칠각지의 연유라 하는가. 사념처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사념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사념처의 연유라 하는가. 삼묘행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삼묘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삼묘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음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연유라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좋은 벗을 친근하는 연유가 되는가. 착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착한 벗을 친근하게 되고, 착한 벗이 있은 뒤에 곧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이 있은 뒤에 곧 바른 사유의 생각을 가지게 되며, 바른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근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근을 보호한 뒤에 곧 삼묘행을 갖추게 되고, 삼묘행이 있은 뒤에 곧 사념처를 갖추게 되며, 사념처가 있은 뒤에 곧 칠각지를 갖추게 되고, 칠각지가 있은 뒤에 곧 명해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니, 이렇게 명해탈은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큰 바다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연유라 하는가. 큰 하수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큰 하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하수의 연유라 하는가. 작은 하수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작은 하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하수의 연유라 하는가. 큰 시내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큰 시내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시내의 연유라 하는가. 작은 시내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작은 시내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시내의 연유라 하는가.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연유라 하는가. 비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때로 큰 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물과 늪의 물이 차면 곧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곧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곧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곧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곧 큰 바다가 차나니, 이렇게 저 큰 바다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명해탈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해탈의 연유라 하는가. 칠각지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칠각지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칠각지의 연유라 하는가. 사념처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사념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사념처의 연유라 하는가. 삼묘행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삼묘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삼묘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사유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음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연유라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착한 벗을 친근하게 되고, 착한 벗을 친근한 뒤에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을 낸 뒤에 바른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른 사유가 있은 뒤에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은 뒤에 모든 근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근을 보호한 뒤에 삼묘행을 갖추게 되고, 삼묘행이 있은 뒤에 사념처를 갖추게 되며, 사념처가 있은 뒤에 곧 칠각지를 갖추게 되고, 칠각지가 있은 뒤에 곧 명해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니, 이렇게 이 명해탈은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3. 식경(食經) 하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최초에는 유애(有愛)가 없었지마는 이제 유애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곧 유애에는 연유(食)가 있음을 알 수 있느니라. 유애에는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연유라 하는가. 무명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무명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연유라 하는가. 오개(五蓋)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오개(蓋)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오개(五蓋)의 연유라 하는가. 3악행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3악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3악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根)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르지 않은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르지 않은 사유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않은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나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큰 바다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연유라 하는가. 비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때로 큰 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물이 차면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큰 바다가 차나니, 이렇게 저 큰 바다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나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을 친근하게 되고, 나쁜 벗이 있은 뒤에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게 된 뒤에 바르지 않은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않은 사유가 있은 뒤에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있은 뒤에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게 되며, 모든 근을 보호하지 않은 뒤에 곧 3악행을 갖추게 되고, 3악행이 있은 뒤에 오개(五蓋)를 갖추게 되며, 오개(五蓋)가 있은 뒤에 곧 무명을 갖추게 되고, 무명이 있은 뒤에 곧 유애를 갖추게 되나니, 이렇게 이 유애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명해탈(明解脫)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해탈의 연유라 하는가. 칠각지(七覺支)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칠각지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칠각지의 연유라 하는가. 사념처(四念處)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사념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사념처의 연유라 하는가. 삼묘행(三妙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삼묘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삼묘행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생각 바른 지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음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연유라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에도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착한 벗을 친근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사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큰 바다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연유라 하는가. 비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때로 큰 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산골 물과 늪의 물이 차면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곧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큰 바다가 차나니, 이렇게 저 큰 바다는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착한 벗을 친근하게 되고, 착한 벗이 있은 뒤에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이 있은 뒤에 바른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른 사유가 있은 뒤에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은 뒤에 모든 근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근을 보호한 뒤에는 삼묘행을 갖추게 되고, 삼묘행이 있은 뒤에 사념처를 갖추게 되며, 사념처가 있은 뒤에 칠각지를 갖추게 되고, 칠각지가 있은 뒤에 명해탈을 갖추게 되나니, 이렇게 이 명해탈은 차례로 잇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4. 진지경(盡智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수국에 노닐으시면서 캄마싯담마라는 쿠루읍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아는 것이 있고 본 것이 있으면 곧 누(漏)가 다하게 되나니,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을 알고 보면 곧 누가 다하게 된다고 하는가. 고통의 참뜻을 보아 알면 누가 다하게 되고, 고통의 원인을 알고 보며, 고통의 멸함을 보아 알며, 고통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보아 알면, 곧 누가 다하게 되느니라.
<진지(盡智)>에도 연유(習)가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진지의 연유라고 하는가. 해탈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해탈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해탈의 연유라 하는가. 욕심이 없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욕심이 없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욕심이 없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싫어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싫어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싫어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의 연유라 하는가. 정(定)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정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정의 연유라 하는가. 즐김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즐김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즐김의 연유라 하는가. 쉼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쉼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쉼의 연유라 하는가. 기쁨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기쁨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기쁨의 연유라 하는가. 즐거움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즐거움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즐거움의 연유라 하는가. 뉘우치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뉘우치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뉘우치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계를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계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계를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음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연유라 하는가. <법인(法忍)>을 관찰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법인을 관찰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인을 관찰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법을 즐겨 읽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법을 즐겨 읽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을 즐겨 읽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법을 받아 가지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법을 받아 가지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을 받아 가지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법의 뜻을 관찰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법의 뜻을 관찰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의 뜻을 관찰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이계(耳界)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계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이계의 연유라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착한 벗에게 나아가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착한 벗에게 나아가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착한 벗에게 나아가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받들어 섬기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만일 착한 벗을 받들어 섬기면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들은 뒤에는 곧 이익이 되느니라. 만일 이렇게 착한 벗을 받들어 섬기지 않으면 받들어 섬기는 연유를 해치고, 만일 받들어 섬기는 일이 없으면 나아가는 연유를 해치며, 만일 나아가는 연유가 없으면 좋은 법을 듣는 연유를 해치고, 좋은 법을 듣지 않으면 이계의 연유를 해치며, 이계가 없으면 법의 뜻을 관찰하는 연유를 해치고, 법의 뜻을 관찰하는 일이 없으면 법을 받아 가지는 연유를 해치며, 법을 받아 가지는 일이 없으면 법을 즐겨 읽는 연유를 해치고, 법을 즐겨 읽는 일이 없으면 법인을 관찰하는 연유를 해치며, 법인을 관찰하는 일이 없으면 믿음의 연유를 해치고, 믿음이 없으면 바른 사유를 해치며, 바른 사유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해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와 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의 인연을 해치고, 만일 해탈이 없으면 곧 진지의 연유를 해치느니라.
만일 착한 벗을 받들어 섬기면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들은 뒤에는 곧 이익이 되느니라. 이렇게 착한 벗을 받들어 섬기면 받들어 섬기는 연유가 되고, 받들어 섬기는 일이 있으면 나아가는 연유가 되며, 나아가는 일이 있으면 좋은 법을 듣는 연유가 되고, 좋은 법을 듣는 일이 있으면 이계의 연유가 되며, 이계가 있으면 법의 뜻을 관찰하는 연유가 되고, 법의 뜻을 관찰하는 일이 있으면 법을 받아 가지는 연유가 되며, 법을 받아 가지는 일이 있으면 법을 즐겨 읽는 연유가 되고, 법을 즐겨 읽는 일이 있으면 법인을 관찰하는 연유가 되며, 법인을 관찰하는 일이 있으면 믿음의 연유가 되고, 믿음이 있으면 바른 사유의 연유가 되며, 바른 사유가 있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연유가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근의 보호와 계의 보호·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이 없음과 해탈의 연유가 되며, 만일 해탈이 있으면 곧 진지(盡智)의 연유가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5. 열반경(涅槃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거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열반에는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열반의 연유라 하는가. 해탈이 열반의 연유가 되느니라. 해탈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해탈의 연유라 하는가. 욕심이 없는 것이 해탈의 연유가 되느니라. 욕심이 없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욕심이 없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싫어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싫어함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싫어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의 연유라 하는가. 정(定)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정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정의 연유라 하는가. 안락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안락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안락의 연유라 하는가. 그침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그침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그침의 연유라 하는가. 기쁨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기쁨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기쁨의 연유라 하는가. 즐거움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즐거움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즐거움의 연유라 하는가. 뉘우치지 않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뉘우치지 않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뉘우치지 않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계를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계를 보호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계를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연유라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바른 사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연유라 하는가. 믿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믿음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연유라 하는가. 고통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고통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고통의 연유라 하는가. 늙음과 죽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늙음과 죽음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늙음과 죽음의 연유라 하는가. <생(生)>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생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생의 연유라 하는가. <유(有)>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의 연유라 하는가. <수(受)>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수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수의 연유라 하는가. <애(愛)>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애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애의 연유라 하는가. <각(覺)>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각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각의 연유라 하는가. <갱락(更樂)>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갱락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갱락의 연유라 하는가. <육입처(六入處)>가 그 연유가 되느니라. 육입처(六入處)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6처(處)의 연유라 하는가. <명색(名色)>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명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색의 연유라 하는가. <식(識)>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식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식의 연유라 하는가. <행(行)>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행에도 또한 연유가 있다. 연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행의 연유라 하는가. <무명(無明)>이 그 연유가 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연유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유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연유하여 명색이있고, 명색을 연유하여 육입처가 있으며, 육입처를 연유하여 갱락이 있고, 갱락을 연유하여 각이 있으며, 각을 연유하여 애가 있고, 애를 연유하여 수가 있으며, 수를 연유하여 유가 있고, 유를 연유하여 생이 있으며, 생을 연유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고, 늙음과 죽음을 연유하여 고통이 있고, 고통을 연유하여 믿음이 있으며 믿음을 연유하여 바른 사유가 있고, 바른 사유를 연유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연유하여 모든 근을 보호하고, 모든 근을 보호하는 것을 연유하여 계를 보호하며, 계를 보호하는 것을 연유하여 뉘우치지 않음·즐거움·기쁨·쉼·안락·정·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싫어함·욕심 없음과 해탈이 있다는 것이니, 해탈을 연유하여 열반을 얻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6. 미혜경(彌醯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에 노닐으시면서 잔투촌의 망나림굴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메기야는 시자(侍者)가 되었다. 이에 존자 메기야는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잔투촌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다. 밥 빌기를 마치고 금비하 가에 가서, 땅이 편편한 호나림과 금비하의 물은 지극히 아름다워 즐길 만하며,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가 알맞은 것을 보고 기뻐하여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호나림은 땅이 편편하고, 금비하의 물은 지극히 아름다와 즐길 만하며,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는 알맞다. 만일 족성자가 번뇌 끊기를 공부하려면 마땅히 이런 곳에서 해야 할 것이다. 나도 또한 끊을 것이 있고 차라리 이런 고요한 곳에서 끊기를 배우면 어떨까'고. 이에 메기야는 식사를 마친 뒤에, 가사와 바루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잔투촌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나이다. 밥 빌기를 마친 뒤에 금비하 가에 가서, 땅이 편편한 호나림과 금비하의 물이 지극히 아름다워 즐길 만하며,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가 알맞은 것을 보고 기뻐하여 곧 이렇게 생각하였나이다. '이 호나림은 땅이 편편하고, 금비하의 물은 지극히 맑아 즐길 만하여,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는 알맞다. 만일 족성자가 번뇌 끊기를 공부하려면 마땅히 이런 곳에서 해야 할 것이다. 나도 끊을 것이있다. 차라리 이런 고요한 곳에서 끊기를 배우면 어떨까'고.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번뇌 끊기를 배우고자 하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메기야여, 너는 모르느냐. 나는 단신으로서 사람이 없고 시자도 없다. 너는 조금 머물러 있거라. 나를 시봉할 비구가 오면, 너는 그 때 그곳에 가서 공부해도 좋다."
존자 메기야는 두 번 세 번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번뇌 끊기를 배우고자 하나이다."
세존께서도 또한 두 번 세 번 말씀하시었다.
"메기야여, 너는 모르느냐. 나는 단신으로서 사람이 없고 시자도 없다. 너는 조금 머물러 있거라. 나를 시봉할 비구가 오면, 너는 그 때 그곳에 가서 공부해도 좋다."
메기야는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는 하는 일도 없고 할 일도 없으며, 또한 보살필 일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게는 하는 일도 있고 할 일도 있으며, 또한 보살필 일도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번뇌 끊기를 배우려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메기야여, 네가 번뇌 끊기를 구하고자 한다면, 내가 또 무슨 말이 있겠느냐. 그럼 너는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이에 존자 메기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가지고 또 잘 외워 익히었다. 곧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세 번 돌고 떠났다. 그는 저 호나림으로 가서 숲속에 들어가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펴고 가부를 맺고 앉았다. 메기야는 호나림 속에 머물면서 3악(惡)의 좋지 못한 생각을 내었다. 곧 탐욕의 생각·성냄의 생각·해침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 때문에 문득 세존을 생각하였다. 해질녘에 곧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호나림에 가서 고요한 곳에 앉았다가 문득 3악(惡)의 좋지 못한 생각을 내었나이다. 곧 탐욕의 생각·성냄의 생각·해침의 생각이었나이다. 저는 그 때문에 문득 세존을 생각하였나이다."
"메기야여,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였구나.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5습법(習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5인가. 메기야여, 비구는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해야 하느니라. 메기야여,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첫째 습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는 비구는 금계(禁戒)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從解脫)을 지켜 보호하고, 다시 위의와 예절을 잘 껴잡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고, 학계를 받아 가져야 하느니라. 메기야여,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둘째의 습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는 비구가 해야 할 말은 거룩하고 뜻이 있으며,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며, 마음을 덮임이 없게 하여야 하느니라. 곧 계를 말하고 정을 말하며, 혜를 말하고 해탈을 말하며, 해탈지견을 말하고 점점 덜림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하며 족한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는 것을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함을 말하며, 연좌를 말하고 연기로 얻어지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의 사문의 말하는 바는 그리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메기야여,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셋째의 습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는 비구는 항상 정진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專一)하고 견고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하여는 방편을 버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메기야여,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넷째 습법(習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는 비구는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와 같은 지(智)를 얻어서는 거룩한 슬기와 밝게 통달함을 환히 알아, 바로 고통을 없애야 하느니라. 메기야여,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다섯째의 습법이라 하느니라.
그는 이 5습법을 가진 뒤에 다시 4법을 닦는다. 어떤 것이 4인가. 악로(惡露)를 닦아 욕을 끊게 하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게 하며, 드나는 숨길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게 하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我慢)을 끊게 하느니라.
"메기야여,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금계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을 지켜 보호할 것이요, 또 위의와 예절을 잘 껴잡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계를 받아 가져야 하느니라. 메기야여,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해야 할 말은 거룩하고 뜻이 있으며,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고, 마음을 덮임이 없게 할 것이다. 곧 계를 말하고 정을 말하며, 슬기를 말하고 해탈을 말하며, 해탈지견을 말하고 점점 덜림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하며, 족한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는 것을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함을 말하며, 연좌를 말하고 연기로 얻어지는 것을 말하여야 한다. 이러한 것들의 사문의 말하는 바는 그리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메기야여,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정진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하여는 방편을 버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메기야여,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법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智)와 거룩한 슬기와 밝게 통달함을 얻어, 분별하고 환히 알아 바로 고통을 없애야 한다. 메기야여,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악도를 닦아 탐욕을 끊게 하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게 하며, 드나드는 숨길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게 하며,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을 끊게 해야 한다. 메기야여, 만일 비구가 무상하다는 생각을 얻으면 반드시 무아라는 생각을 얻을 것이다. 메기야여, 만일 비구가 무아하다는 생각을 얻으면 곧 현재에 있어서 일체의 아만을 끊고, 식(息)·멸(滅)·진(盡)·무위(無爲)·열반(涅槃)을 얻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존자 메기야와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57. 즉위비구설경(卽爲比丘說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5습법(習法)이 있다. 어떤 것이 5인가. 비구는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여야 한다.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첫째의 습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 비구는 금계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을 지켜 보호하며, 또 위의와 예절을 껴잡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계를 받아 가져야 한다.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둘째의 습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 비구는 해야 할 말이 거룩하고 뜻이 있으며,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며, 마음을 덮임이 없게 하여야 한다. 곧 계를 말하고 정을 말하며, 슬기를 말하고 해탈을 말하며, 해탈지견을 말하고 점점 덜림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하며, 족한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기를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을 말하며, 연좌를 말하고 연기로 얻어지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의 비구의 말하는 바는 그리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셋째의 습법(習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 비구는 항상 정진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하여는 방편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넷째의 습법이라 하느니라. 다음에 비구는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슬기와 밝게 통달함을 환히 알아, 바로 고통을 없애야 한다. 마음의 해탈이 아직 익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을 다섯째의 습법이라 하느니라.
그는 이 5습법(習法)을 가진 뒤에 다시 4법을 닦는다. 어떤 것이 4인가. 악로를 닦아 탐욕을 끊게 하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게 하며, 드나드는 숨길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게 하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을 끊게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금계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을 지켜 보호할 것이요, 다시 위의와 예절을 잘 껴잡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계(學戒)를 받아 가져야 한다.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해야 할 말은 거룩하고 뜻이 있으며,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고, 마음을 덮임이 없게 해야 한다. 곧 계를 말하고 정을 말하며, 혜를 말하고 해탈을 말하며, 해탈지견을 말하고 점점 덜림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하며, 족한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는 것을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함을 말하며, 연좌를 말하고 연기로 얻어지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의 사문의 말하는 바는 그리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정진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하여는 방편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와 거룩한 슬기와 밝게 통달함을 얻어 분별하고 환히 알아 바로 고통을 없애야 한다.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 착한 벗과 함께 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반드시 악로를 닦아 탐욕을 끊게 하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게 하며, 드나드는 숨길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게 하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을 끊게 해야 한다. 만일 비구가 무상하다는 생각을 얻으면 반드시 무아라는 생각을 얻을 것이요, 만일 비구가 무아라는 생각을 얻으면 곧 현재에 있어서 일체의 아만을 끊고 식·멸·진·무위·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