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39권
154. 바라바당경(婆羅婆堂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동원 녹자모당(東園鹿子母堂)에 계시었다. 그 때에 바사타(婆私吒)와 바라바(婆羅婆)의 두 범지족(梵志族)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웠다.
여러 범지들은 그들을 보고 지극히 꾸짖고 몹시 괴롭히면서 말하였다.
“범지종(梵志種)은 훌륭한데 다른 종(種)은 못하고, 범지종은 흰데 다른 종은 다 검으며, 범지는 청정한데 범지가 아닌 종은 청정하지 못하고, 범지는 범천의 아들로서 그 입에서 나왔으나, 범지는 범천의 변화로 된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훌륭한 것을 버리고 못한 것을 따르며, 흰 것을 버리고 검은 것을 따른다. 저 까까머리 사문은 검은 것에 묶이었고, 종자를 끊어 자식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하는 짓이 크게 나빠서 지극히 큰 허물을 범하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해질녘에 연좌(宴坐)에서 일어나, 당(堂) 위에서 내려와서, 당(堂) 그늘 한데를 거닐으시면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미묘한 법을 말씀하고 계시었다. 존자 바사타는 멀리서 세존께서 해질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당에서 내려와서, 당 그늘 한데를 거닐으시면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매우 깊고 미묘한 법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존자 바사타는 그것을 본 뒤에 말하였다.
“현자(賢者) 바라바여, 마땅히 알라. 세존께서는 해질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당위에서 내려와서, 당 그늘 한 데를 거닐으시면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매우 깊고 미묘한 법을 말씀하고 계신다. 현자 바라바여, 우리도 함께 부처님께 가자. 혹 가면 부처님에게서 법을 들을 수 있으리라.”
이에 바사타와 바라바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그 뒤를 따라 거닐었다. 세존께서는 돌아보시고 그 두 사람에게 말씀하시었다.
“바사타여, 너희들 두 범지는 범지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운다. 여러 범지들은 그것을 보고 크게 꾸짖지 않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러 범지들은 저희들을 보고 지극히 꾸짖고 나무라며, 몹시 괴롭히나이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바사타여, 여러 범지들은 저희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나이다. 곧 범지종은 훌륭한데 다른 종은 못하고, 범지종은 흰데 다른 종은 다 검으며, 범지는 청정한데 범지가 아닌 종은 청정하지 못하고, 범지는 범천의 아들로서 그 입에서 나왔으나, 범지는 범천의 변화로 된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훌륭한 것을 버리고 못한 것을 따르며, 흰 것을 버리고 검은 것을 따른다. 저 까까머리 사문은 검은 것에 묶이고, 종자를 끊어 자식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의 하는 짓이 크게 나빠서 지극히 큰 허물을 범하였다.‘고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바사타여, 저 여러 범지들의 말은 지극히 나쁘고, 지극히 부당하다.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은 어리석고 미련하여 이치를 잘 깨닫지 못하고 좋은 밭을 분별하지 못하며,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곧 ‘우리 범지는 범천의 아들로서 그의 입에서 나왔으니, 범지는 범천의 변화로 된 것이다.’라고. 왜 그러냐 하면 나의 이 위없는 명행작종(明行作證)은 생(生)의 훌륭함을 말하지 않고, 종성(種姓)을 말하지 않으며, 교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 뜻을 옳다고 하고 내 뜻을 옳지 않다고 함에 있어서는, 자리를 표준하고, 물[水]을 표준하며, 배운 경서(經書)를 표준 한다. 바사타여, 만일 혼인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은 응당 생을 말할 것이요, 종성을 말할 것이며, 교만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 뜻을 옳다고 하고 내 뜻을 옳지 않다고 함에 있어서도 자리를 표준하고 물을 표준하고 배운 경서를 표준 한다.
바사타여, 만일 생을 헤아리고, 성을 헤아리며, 교만을 헤아리는 자 있으면, 그들은 지극히 내 위없는 명행작증에서 멀어질 것이다. 바사타여, 생을 말하고, 성을 말하며, 교만을 말하고, 내 뜻을 옳다고 하고, 내 뜻을 옳지 않다고 함에 있어서, 자리를 표준하고, 물을 표준하며, 배운 경서를 표준 하는 것은, 내 위없는 명행작증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사타여, 이른바 三종(種)이 있어, 모든 사람들이 서로 따지지 않는 잡선(雜禪)이요 불선(不善)의 법인데, 그것은 성인이 칭찬도 하고 칭찬하지 않게도 하는 것이니, 어떤 것이 三인가. 찰제리종[刹利種]과 범지종(梵志種)과 거사종(居士種)이다. 바라타여, 너의 뜻에는 어떠한가. 찰제리는 산목숨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앗으며, 사음(邪婬)을 행하고, 거짓말하며, 내지 삿된 소견을 가진다. 거사도 또한 그러한데, 범지는 그렇지 않는가.“
“세존이시여, 찰제리도 또한 산목숨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앗으며, 사음을 행하고, 거짓말하며, 내지 삿된 소견을 가질 수 있으면, 범지, 거사도 또한 그러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바사타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범지는 살생(殺生)을 떠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앗는 것, 사음을 행하는 것, 거짓말로 내지 삿된 소견을 떠나 바른 소견을 얻는다. 찰제리, 거사는 그렇지 않은가.”
“세존이시여, 범지도 또한 살생을 떠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앗는 것, 사음을 행하는 것, 거짓말과 내지 삿된 소견을 떠나 바른 소견을 얻을 수 있다면, 찰제리, 거사도 또한 그러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바사타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범지는 살생(殺生)을 떠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앗는 것, 사음을 행하는 것, 거짓말과 내지 삿된 소견을 떠나 바른 소견을 얻는다. 찰제리, 거사는 그렇지 않는다.”
“세존이시여, 범지도 또한 살생을 떠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앗는 것, 사음을 행하는 것, 거짓말과 내지 삿된 소견을 떠나 바른 소견을 얻을 수 있다면, 찰제리, 거사도 또한 그러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바사타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한량이 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으면, 이것은 찰제리나 거사의 소행이요 범지는 아닌가. 또 만일 한량이 없는 착한 법이 있으면, 이것은 범지의 소행이요 찰제리나 거사는 아닌가.”
“세존이시여, 만일 한량이 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으면, 이것은 찰제리나 거사도 행할 수 있고, 범지도 또한 그러하며, 만일 한량이 없는 착한 법이 있으면, 그것은 범지도 행할 수 있고, 찰제리나 거사도 또한 그러하나이다.”
“바사타여, 만일 한량이 없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어, 한결같이 찰제리나 거사만이 행하고 범지는 아니하면, 또 만일 한량이 없는 착한 법이 있어, 한결같이 범지만이 행하고 찰제리나 거사는 아니라면, 저 모든 범지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곧 ‘우리들 범지는 범천의 아들로서 그의 입에서 나왔으니, 범지는 범천의 변화로 된 것이다.’라고. 왜 그러냐 하면 바사타여, 범지의 여자가 처음으로 혼인하는 것을 보면, 혼인한 뒤에 아이를 배는 것을 보면, 아이를 밴 뒤에 아이를 낳는 것을 보면, 혹은 사내요 계집애다. 바사타여, 이렇게 모든 범지들도 또한 세상 법과 같이 생산하는 길을 따라 난다. 그런데, 저들은 거짓말로 범천이라 속여 이렇게 말한다. 곧 ‘우리 범지는 범천의 아들로서 그 입에서 나왔으니, 범지는 범천의 변화로 된 것이다.’라고.
바사타여, 만일 족성자(族姓子)로서, 몇 가지 성과 몇 가지 이름과 몇 가지 종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나를 따라 도를 배우거든, 응당 이렇게 말하라. ‘우리 범지들은 범천의 아들로서 그의 입에서 나왔으니, 범지는 범천의 변화로 된 것이다.’라고. 무슨 까닭인가. 바사타여, 그 족성자는 내 바른 법률 가운데 들어와 내 바른 법률을 받고,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되었고, 의심을 끊고 미혹을 막아 망설임이 없으며, 세존의 법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응당 이렇게 말하라. 곧 ‘우리 범지는 범천의 아들로서 그 입에서 나왔으니, 범지는 범천의 변화로 된 것이다.’라고. 바사타여, 저 범천은 곧 여래, 무소착, 등정각이다. 범천은 곧 여래요, 차가움[冷]은 곧 여래며, 번거로움이 없고, 더움이 없으며, 여(如)를 떠나지 않는 것은 곧 여래니라.
바사타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모든 샤아캬족은 구사라(拘娑羅)의 왕, 파사닉(波斯匿)에게 뜻을 낮추어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바사타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모든 샤아캬족이 구사라의 왕 파사닉에게 뜻을 낮추어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공양하며 받들어 섬기면, 이와 같이 구사라의 왕 파사닉도 곧 내게 대해서 뜻을 낮추어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나를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겠는가.”
“모든 샤아캬족이 구사라의 왕 파사닉에게 뜻을 낮추어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공양하며 받들어 섬기면, 이것은 기특할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만일 구사라의 왕 파사닉이 세존에게 뜻을 낮추어,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나를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 이것은 참으로 기특한 일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바사타여, 구사라의 왕 파사닉은 내게 뜻을 낮추어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나를 공양하고 받들어 섬긴다. 그러나, 그는 ‘사문 고오타마의 종족은 지극히 높고 내 종족은 낮으며, 사문 고오타마는 재보(財寶)가 매우 많고 내 재보는 적으며, 사문 고오타마는 형색이 지극히 묘하고 내 형색은 묘하지 못하며, 사문 고오타마는 큰 위신(威神)이 있고 내 위신은 작으며, 사문 고오타마는 좋은 지혜가 있고 나는 나쁜 지혜가 있다.’는 그런 뜻에서가 아니다. 바사타여, 구사라의 왕 파사닉은 다만 법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공양하며 받들어 섬기기 때문에, 내게 뜻을 낮추어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극히 존중하고, 나를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바사타여, 어느 때인가 이 세상은 다 무너진다. 이 세상이 무너질 때에 만일 중생이 있으면, 그는 황욱천(晃昱天)에 난다. 그는 그 하늘에서 묘한 빛깔과 생각을 가지고 일체의 지절(支節)과 모든 근(根)은 구족하며, 기쁨을 누리고 살며, 자신에 광명이 있어 허공에 올라. 깨끗한 빛깔이 오래 머무른다. 바사타여, 어느 때에는 이 대지(大地)에는 물이 가득 차고, 그 큰 물위를 바람이 불어 흔들어 맺히고 얽히어, 정(精)이 되어, 한데 모이어 화합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바사타여, 어느 때에는 이 땅에 물이 가득 차고, 그 큰 물 위를 바람이 불어 흔들어 맺히고 얽히어 정이 되어, 한데 모이어 화합하고, 여기서 땅맛[地味]가 나서, 빛깔과 향기로운 맛이 있다. 어떤 빛깔이던가. 마치 날 타락죽[生酥]과 익은 타락죽[熟酥] 빛깔과 같다. 어떤 맛이던가. 밀환(蜜丸)의 맛과 같다. 바사타여, 어느 때에 이 세상이 다시 이루어질 때에는 만일 중생이 있으면 황욱천에 난다. 거기서 목숨[壽]이 다하고, 업(業)이 다하고, 복이 다하고, 명이 다하면, 세상에 나서 사람이 된다. 그는 여기서 난 뒤에는 묘한 빛깔의 생각을 내고, 일체의 지절과 모든 근이 구족하며, 기쁨을 누리고 살며, 자신에 광명이 있어 허공에 올라, 깨끗한 빛깔이 오래 머무른다.
바사타여, 그 때에는 세상에는 해도 달도 없고, 또한 별도 없으며, 낮도 밤도 없고, 달수도, 보름, 그름도 없으며, 네 철도 없고, 햇수도 없다. 바사타여, 그 때에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으며,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으며, 또 양반도 없고 노비들도 없어, 다 같은 중생일 뿐이다. 그 때에 어떤 한 중생이 청렴하지 못하고 탐욕을 내어 곧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것이 땅맛인가. 나는 차라리 손가락으로 그 땅맛을 집어 맛보리라’고. 그 중생은 곧 손가락으로 땅맛을 집어 맛보았다. 이렇게 하여 그 중생은 이미 땅맛을 알고는 다시 더 먹기를 바랐다. 그 때에 중생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왜 손가락으로 이 땅맛을 맛보느라고 스스로 괴로워하는가. 나는 이제 손으로 이 땅맛을 움켜잡아 먹으리라’고. 그 중생은 곧 손으로 이 땅맛을 움켜잡아 먹었다. 그 중생들 가운데 다시 다른 중생들은 이 중생이 손으로 이 땅맛을 움켜잡아 먹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좋다. 이것은 실로 유쾌하다. 우리도 손으로 이 땅맛을 움켜잡아 먹으리라’고. 때에 그 중생들은 곧 손으로 이 땅맛을 움켜잡아 먹었다. 그 중생들이 손으로 이 땅맛을 움켜잡아 먹기를 되풀이한 뒤에는, 몸은 자꾸 두터워지고, 자꾸 무거워지며, 자꾸 단단해졌다. 그래서 그들이 본래 가졌던 청정한 빛깔은 없어지고, 저절로 어둠이 생겼다.
바사타여, 세간의 법이 자연히 여기에 생겼으니, 만일 어둠이 생기면 반드시 해와 달이 생기고, 해와 달이 생긴 뒤에는 곧 별이 생기며, 별이 생긴 뒤에는 곧 낮고 밤이 이루어지고, 낮과 밤이 이루어진 뒤에는 곧 달수와 보름, 그믐이 있으며, 네 철과 햇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땅맛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세상에서 살았다. 바사타여, 만일 어떤 중생이 땅맛을 너무 많이 먹으면 곧 나쁜 빛깔이 나고 땅맛을 조금 먹으면 곧 묘한 빛깔이 있었다. 이로부터 빛깔에 낫고 못함이 있음을 알게 되고, 빛깔의 낫고 못함으로 인하여 중생과 중생들은 서로 업신여기면서 말하였다. ‘내 빛깔은 훌륭하고 네 빛깔은 못하다’고. 빛깔의 낮고 못함으로 인하여 서로 업신여김과 나쁜 법이 생기자, 땅맛은 곧 없어지고 말았다. 땅맛이 없어지자, 그 중생들은 서로 모이어 못내 슬퍼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곧 ‘어찌할꼬, 땅맛이여. 어찌할꼬, 땅맛이여’라고. 마치 지금 사람이 아름다운 음식을 먹을 때에, 그 본래의 이름[本字]을 말하지도 않고, 비록 받아먹더라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이 말의 뜻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바사타여, 땅맛이 없어진 뒤에 그 중생들에게는 땅살찜이 생겨, 빛깔과 향기로운 맛이 있었다. 어떤 빛깔이던가. 마치 날 타락죽과 익은 타락죽 빛깔과 같았다. 어떤 맛이던가. 밀환(蜜丸) 맛과 같았다. 그들은 이 땅살찜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살았다. 바사타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땅살찜을 많이 먹으면 곧 나쁜 빛깔이 생기고, 이 땅살찜을 적게 먹으면 곧 묘한 빛깔이 있었다. 이로부터 빛깔에 낫고 못함이 있음을 알게 되고, 빛깔의 낫고 못함으로 인하여 중생과 중생들은 서로 업신여기면서 말하였다. ‘내 빛깔은 훌륭하고 네 빛깔은 못하다’고. 빛깔의 낮고 못함으로 인하여 서로 업신여김과 나쁜 법이 생기기 때문에 땅살찜은 곧 없어지고 말았다. 땅살찜이 없어지자, 그 중생들은 서로 모이어, 못내 슬퍼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곧 ‘어찌할꼬, 땅살찜이여. 어찌할꼬, 땅살찜이여’라고. 마치 지금 사람이 남에게 꾸지람을 당할 때에, 본래의 이름도 말하지 않고, 비록 책망을 받으면서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이 말의 뜻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바사타여, 땅살찜이 없어진 뒤에, 그 중생들에게는 바라(婆羅)가 생겨 빛깔과 향기로운 맛이 있었다. 어떤 빛깔이던가. 마치 우담꽃[優曇華]빛과 같았다. 어떤 맛이던가. 진 밀환(蜜丸)과 같았다. 그들은 이 바라를 먹으면서 오랫동안 세상에서 살았다. 바사타여, 만일 중생이 이 바라를 많이 먹으면 곧 나쁜 빛깔이 생기고, 이 바라를 적게 먹으면 곧 묘한 빛깔이 있었다. 이로부터 빛깔에 낫고 못함이 있음을 알게 되고, 빛깔의 낫고 못함으로 인하여 중생과 중생들은 서로 업신여기면서 말하였다. ‘내 빛깔은 훌륭하고 네 빛깔은 못하다’고. 빛깔의 낮고 못함으로 인하여 서로 업신여김과 나쁜 법이 생기기 때문에 바라는 곧 없어지고 말았다. 바라가 없어지자, 그 중생들은 서로 모이어, 못내 슬퍼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곧 ‘어찌할꼬, 바라여. 어찌할꼬, 바라여’라고. 마치 지금 사람이 괴로운 법에 부딪쳤을 때에, 본래 이름도 말하지 않고, 비록 괴로움을 받더라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이 말의 뜻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바사타여, 바라가 없어진 뒤에 그 중생들에게는 자연(自然)의 멥쌀이 생겨, 희고 깨끗하고 껍질이 없으며, 또한 속껍질도 없으며, 길이는 四촌이었다. 아침에 베면 저녁에 나고, 저녁에 베면 아침에 나며, 익으면 짠맛이 있어 선[生] 기운이 없었다. 중생들은 자연의 멥쌀을 먹었는데, 그 중생들이 이 자연의 멥쌀을 먹은 뒤에는 곧 몇 가지의 형상이 생겼다. 혹 어떤 중생은 남자 형상이 되고, 혹 어떤 중생은 여자 형상이 되었다. 만일 그 중생들이 남자와 여자의 형상이 되면, 그들은 서로 보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곧 ‘나쁜 중생이 생겼다.’라고. 바사타여, 나쁜 중생이 생겼다는 것은 곧 부인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 중생들이 남자 형상과 여자 형상이 되면, 그 중생들은 곧 서로 엿보고, 서로 엿본 뒤에는 곧 눈으로 서로 보며, 눈으로 서로 본 뒤에는 곧 서로 친해지고, 서로 친해진 뒤에는 곧 번열(煩熱)이 생기며, 번열이 생긴 뒤에는 곧 서로 애착하고, 서로 애착한 뒤에는 곧 음욕을 행하였다. 만일 음욕을 행하는 것을 본 때에는, 곧 나무나 돌이나, 혹은 몽둥이나 흙덩이로 때리면서 말하였다. 곧 ‘아아, 더럽고 나쁜 중생들은 이런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한다’고. 어떻게 중생들은 서로 이런 말을 하는가. 마치 지금 사람이 신부를 맞이할 때에, 복꽃[襆華]을 뿌리고, 혹은 꽃다발을 드리우고,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나니, 곧 ‘신부여, 안온하시오. 신부여, 안온하시오. 본래는 미워할 것이었지마는 지금은 사랑할 만하다’고.
바사타여, 만일 어떤 중생이 깨끗하지 못한 법을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며, 부끄럽다는 생각을 품으면, 그는 곧 하루나 이틀이나, 엿새나 이레나, 반달이나 한 달이나 내지 一년 동안을 대중을 떠난다. 바사타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깨끗하지 못한 행을 행하고자 할 때에는, 곧 집을 짓고는 이렇게 말한다. 곧 ‘이 속에서 나쁜 짓을 하자. 이 속에서 나쁜 짓을 하자’고. 바사타여, 이것을 세상에 집을 일으키는 법의 첫 인연이라 하며, 옛날의 제 一의 지혜로서, 법답고 법답지 않은 것이 아니며, 법답다 하여 사람들이 귀히 여겼던 것이다.
그 중에서 어떤 게으른 중생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나는 왜 날마다 자연의 멥쌀을 베어야 할까. 차라리 하루 먹을 치를 한목 베자’고. 그는 곧 하루 먹을 쌀을 베었다. 그 때에 어떤 중생은 그 중생에게 말하였다. ‘중생아, 오너라. 우리 함께 쌀을 베러 가자’고. 그는 곧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한목 베어 가졌다. 너나 가질러 가라’고. 그 중생은 이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이것은 실로 잘한 일이다. 이것은 실로 유쾌한 일이다. 나도 또한 내일 먹을 쌀까지 한목 베자’고. 그는 곧 내일 먹을 쌀까지 한목 베어 가지고 왔다. 다시 어떤 중생은 그 중생에게 말하였다. ‘중생아, 오너라. 우리 함께 쌀을 베러 가자’고. 그는 곧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내일 먹을 쌀까지 한목 베어 가졌다. 너나 가지러 가라’고. 그 중생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이것은 실로 잘한 일이다. 이것은 실로 유쾌한 일이다. 나는 이제 이레 먹을 쌀을 한목 베자’고. 그 중생은 곧 이레 먹을 쌀을 한목 베어 가지고 왔다. 이렇게 그 중생이 자연 멥쌀을 베어다가 많이 쌓아 두자, 그 묵은 멥쌀에는 곧 껍질이 생기고, 벤 지 이레만에 다시 속껍질이 생기며, 벤 자리에서 다시 쌀이 나지 않았다.
이에 그 중생들은 곧 모두 서로 모이어, 못내 슬퍼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곧 ‘우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내었으니, 곧 우리는 묵은 쌀을 쌓아 두었던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본래 묘한 빛깔과 생각을 가졌고, 일체의 지절과 모든 근을 구족하였으며, 기쁨으로 밥을 삼고 자신에 광명이 있어 허공에 올라 깨끗한 빛이 오래 머물렀었다. 우리에게 땅맛이 나서, 빛깔과 향기로운 맛이 있었으니, 어떤 빛깔이던가. 마치 날 타락죽과 익은 타락죽 빛깔과 같았다. 어떤 맛이던가. 밀환 맛과 같았다. 우리들은 땅맛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세상에서 살았다. 만일 우리들이 땅맛을 많이 먹으면 곧 나쁜 빛깔이 생기고, 땅맛을 적게 먹으면 곧 묘한 빛깔이 있었다. 이로부터 빛깔에 낫고 못함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빛깔의 낫고 못함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각각 서로 업신여기면서 말하였다. 곧 ‘내 빛깔은 훌륭하고 네 빛깔은 못하다’고. 빛깔의 낮고 못함으로 인하여 서로 업신여김과 나쁜 법을 내었기 때문에 땅맛은 곧 없어지고 말았다. 땅맛이 없어진 뒤에 우리들은 땅살찜이 생겨, 빛깔과 향기로운 맛이 있었다. 어떤 빛깔이던가. 마치 날 타락죽과 익은 타락죽 빛깔과 같았다. 어떤 맛이던가. 밀환 맛과 같았다. 우리는 땅살찜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살았다. 만일 우리가 땅살찜을 많이 먹으면 곧 나쁜 빛깔이 생기고, 땅살찜을 적게 먹으면 곧 묘한 빛깔이 있었다. 이로부터 빛깔에 낫고 못함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빛깔의 낫고 묘함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각각 서로 업신여기면서 말하였다. ‘내 빛깔은 훌륭하고 네 빛깔은 못하다’고. 빛깔의 낮고 못함으로 말미암아 업신여김과 나쁜 법을 내었기 때문에 땅살찜은 곧 없어지고 말았다.
땅살찜이 없어진 뒤에 우리에게는 바라가 생겨 빛깔과 향기로운 맛이 있었다. 어떤 빛깔이던가. 마치 날 타락죽과 익은 타락죽 빛깔과 같았다. 어떤 맛이던가. 밀환 맛과 같았다. 우리는 바라를 먹으면서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살았다. 만일 우리가 바라를 많이 먹으면 곧 나쁜 빛깔이 생기고, 바라를 적게 먹으면 곧 묘한 빛깔이 있었다. 이로부터 빛깔에 낫고 못함이 있음을 알게 되고, 빛깔의 낫고 못함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각각 서로 업신여기면서 말하였다. ‘내 빛깔은 훌륭하고 네 빛깔은 못하다’고. 빛깔의 낮고 못함으로 말미암아 서로 업신여김과 나쁜 법이 생겼기 때문에, 바라는 곧 없어지고 말았다.
바라가 없어진 뒤에 우리에게는 자연의 멥쌀이 생겼다. 희고 깨끗하여 껍질도 없고, 또한 속껍질도 없으며, 길이는 四촌이었다. 아침에 베면 저녁에 나고, 저녁에 베면 아침에 나며, 익으면 짠맛이 있어서 선 기운은 없었다. 우리는 그 자연의 멥쌀을 먹었다. 우리가 그 자연의 멥쌀을 많이 베어 쌓아 두자, 그 묵은 멥쌀은 속껍질이 생기고, 벤 지 이레만에 또한 속껍질이 생겼으며, 벤 자리에서는 다시 쌀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밭의 경계를 만들어 표말을 세울까 하고, 이에 그 중생들은 밭의 경계를 만들어 표말을 세웠다.
그 중에 어떤 중생은 자기도 벼곡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밭에 들어 남의 곡식을 훔치었다. 그 주인은 그것을 보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곧 ‘아아, 더럽고 나쁜 중생이여, 어떻게 이런 짓을 하는가. 너도 벼를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밭에 들어가 남의 벼를 훔치는가. 너는 지금은 가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그러나 그 중생은 다시 와서 두 번 세 번 남의 벼를 훔치었다. 그 주인도 도한 두 번 세 번이나 그것을 보고, 곧 주먹으로 때리고, 대중이 있는 곳으로 끄을고 가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곧 ‘이 중생은 자기도 벼곡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내 밭에 들어와 내 벼를 훔쳤다’고. 그런데, 그 중생도 또한 대중에게 말하였다. 곧 ‘이 중생은 주먹으로 나를 때리고, 대중이 있는 곳으로 끌고 왔다’고. 이에 그 여러 중생들은 모두 한데 모이어, 못내 슬퍼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곧 ‘우리는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내었으니, 이른바 밭을 지킨다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밭을 지키기 때문에 서로 다투어 송사하며, 잃음이 있고 다함이 있으며, 서로 할 말이 있고, 주먹으로 서로 때리는 일이 있다. 우리는 차라리 이 대중 가운데서 형색이 단정하고 지극히 묘하여 가장 제일 되는 한 사람을 천거하여 밭 주인으로 세우자’고. 만일 꾸짖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시켜 꾸짖게 하고, 만일 물리칠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시켜 물리치게 하자. 그리고 우리가 얻은 벼곡식을 법다이 실어다가 그에게 주자고.
이에 대중들은 그 대중 가운데서 형색이 단정하고 묘하여 가장 제일 되는 사람을 천거하여 밭 주인으로 삼고, 만일 꾸짖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시켜 꾸짖게 하고, 만일 물리칠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시켜 물리치게 하고, 그들의 얻은 볏곡을 법다이 실어다가 그 밭 주인에게 주었으니, 이것이 밭 주인이요, 이 밭 주인을 찰제리[刹利]라고 한다. 그는 법다이 중생을 즐겁게 하고 중생을 수호하여 계를 행하게 하나니, 이것이 왕이요, 이 왕을 왕이라 한다. 바사타여, 이것을 세상의 찰제리 종족의 첫 인연이라 하며, 옛날의 제일의 지혜로서, 법다와서 법답지 않음이 아니요, 법다와서 사람들이 높이느니라.
이에 별다른 중생들은 지킴[守]을 병이라 하고, 지킴을 종기라 하며, 지킴을 화살이나 가시로 여겨, 곧 지킴을 버리고 일없는 곳에 풀집을 짓고 선(禪)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없는 곳에서 아침마다, 이른 아침에 촌, 읍이나 왕성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곧 밥을 주고,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곧 ’이 별다른 중생은 지킴을 병이라 하고 지킴을 종기라 하며, 지킴을 화살이나 가시라 하여, 곧 지킴을 버리고, 일없는 곳에 풀집을 짓고 선(禪)을 공부한다‘고. 이 여러 사람들은 해악(害惡)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버리나니 이것이 범지여, 이 범지를 범지라 한다.
이 중생들은 선(禪)을 공부하다가 선을 얻지 못하고, 고행(苦行)을 공부하다가 고행을 얻지 못하며, 원리(遠離)를 공부하다가 원리를 얻지 못하고, 일심(一心)을 공부하다가 일심을 얻지 못하며, 정진(精進)을 공부하다가 정진을 얻지 못하고는 그만 일 없는 곳을 버리고, 촌, 읍이나 왕성으로 돌아와, 네 기둥의 집을 짓고 경서(經書) 공부를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는 보시(布施)하지 않고, 공경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곧 이 별다른 중생들은 이전에는 지킴을 병이라 하고, 지킴을 종기라 하며, 지킴을 화살이나 가시라 하여, 곧 지킴을 버리고, 일없는 곳에 풀집을 짓고 선(禪)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선을 공부하다가 선을 얻지 못하고, 고행을 공부하다가 고행을 얻지 못하며, 원리를 공부하다가 원리를 얻지 못하고, 일심을 공부하다가 일심을 얻지 못하며, 정진을 공부하다가 정진을 얻지 못하고는 그만 일 없는 곳을 버리고, 촌, 읍이나 왕성으로 돌아와, 옛 기둥의 집을 짓고 경서 공부를 시작한다‘고. 이 여러 사람들은 다시 널리 알리기를 공부하고, 다시는 선(禪)을 공부하지 않나니, 이것을 널리 아는 사람이라 한다. 바사타여, 이것을 이 세상에 범지 종족의 첫 인연이라 하며, 옛날의 제일의 지혜로서, 법다와서 법답지 않음이 아니요, 법다와서 사람들이 높이느니라.
이에 그 별다른 중생들은 각각 여러 곳으로 가서 농사를 짓는다. 이 각각 여러 곳으로 가서 농사를 짓고, 이 각각 여러 곳으로 가서 농사를 짓는 사람을 비사(鞞舍)라 한다. 바사타여, 이것을 세상에 비사 종족이 있게 된 첫 인연이라 하며, 옛날의 제일의 지혜로서, 법다와서 법답지 않음이 아니요, 법다와서 사람들이 높이느니라.
바사타여, 이 세상에 이 세 종성(種姓)이 일어난 뒤에 곧 제 四의 사문종(沙門種)이 있음을 안다. 어떤 것이 이 세상에 세 종성이 일어난 뒤에 곧 제 四의 사문이 있음을 아는 것인가. 찰제리족[刹利族]의 족성(族姓)의 아들로서 능히 스스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꾸짖고, 스스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곧 ‘나는 사문이 되어 범행(梵行)을 행하리라’고. 그는 곧 사문이 되어 범행을 행한다. 이와 같이 범지 종족이나 비사 종족의 족성의 아들들도 또한 스스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꾸짖고, 스스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곧 ‘나는 사문이 되어 범행을 하리라’고. 그는 곧 사문이 되어 범행을 행한다. 바사타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이 세 종성이 일어난 뒤에 곧 제 四의 사문종이 있음을 아느니라.
바사타여, 나는 이제 널리 이 세 종성을 말하리라. 어떻게 널리 이 세 종성이 있는가. 찰제리 종족의 종성의 아들로서 몸으로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한결같이 괴로움을 받는다. 이와 같이 범지 종족, 비사 종족의 족성의 아들로서도 몸으로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한결같이 괴로움을 받는다. 바사타여, 찰제리 종족의 종성의 아들로서 몸으로 착한 법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착한 법을 행하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한결같이 즐거움을 받는다. 이와 같이 범지 종족, 비사 종족의 족성의 아들로서도 몸으로 착한 법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착한 법을 행하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한결같이 즐거움을 받는다. 바사타여, 찰제리 종족의 종성의 아들로서 몸으로 두 가지 행과 호행(護行)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두 가지 행과 호행을 행하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다. 이와 같이 범지 종족, 비사 종족의 족성의 아들로서도 몸으로 두 가지 행과 호행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두 가지 행과 호행을 행하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느니라.
바사타여, 찰리 종족의 족성의 아들로서 七각법(覺法)을 닦아 잘 생각하고 잘 관찰하면,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 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진실을 안다. 이와 같이 범지 종족, 비사 종족의 족성의 아들로서도 七각법을 닦아 잘 생각하고 잘 관찰하면,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 욕루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와 무명루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진실을 안다. 바사타여, 이와 같이 이 세 종족을 널리 설명하느니라.”
범천제주(梵天帝主)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찰제리로 二족(足)의 높으신 분은
종족의 성(姓)이 있다고 말하며
밝음[明]과 또 행을 구하여 배우나니
그는 하늘과 사람의 칭찬을 받느니라.
“바사타여, 범천제주는 이 게송을 잘 말하였고, 잘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잘 노래하고 외웠고, 잘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잘 읊고 말하였고, 잘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그는 그렇게 말하였다.”
찰제리로 二족의 높으신 분은
종족의 성이 있다고 말하며
밝음과 또 행을 구하여 배우나니
그는 하늘과 사람의 칭찬을 받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나도 또한 이렇게 말한다.”
찰제리로 二족의 높으신 분은
종족의 성이 있다고 말하며
밝음과 또 행을 구하여 배우나니
그는 하늘과 사람의 칭찬을 받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바사타와 바라바 및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55. 수달다경(須達哆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수달다(須達哆) 거사는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거사의 집에서는 혹 보시를 행하는가.”
수달다 거사는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집에서는 보시를 행하나이다. 좋은 것이 없어서 거친 것밖에 할 수 없나이다. 곧 겨밥과 시래기 국과 새앙나물 한 줌일 뿐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거사여, 거친 음식을 보시하거나 묘한 음식을 보시하거나 다 같이 갚음을 받는다. 만일 거친 보시를 행하되, 믿고서 보시하지 않고, 일부러 보시하지 않으며, 자기 손으로 보시하지 않고, 스스로 가서 보시하지 않으며, 생각하면서 보시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시하지 않으며, 업(業)의 과보(果報)를 관찰하여 보시하지 않으면, 마땅히 이렇게 갚음을 받는다고 관찰하라. 곧 마음으로 좋은 집을 얻으려 하지 않고, 좋은 수레를 얻으려 하지 않으며, 좋은 옷을 얻으려 하지 않고, 좋은 음식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좋은 五욕(欲)의 공덕을 얻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지극하지 않은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이니, 거사여, 갚음을 받는 것이 이러한 줄을 알아야 한다. 거사여, 만일 추한 보시를 행하되, 믿고서 보시하고 일부러 보시하며, 자기 손으로 보시하고 스스로 가서 보시하며, 생각하면서 보시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시하며, 업의 과보를 관찰하여 보시하면, 마땅히 이렇게 갚음을 받는다고 관찰하라. 곧 마음으로 좋은 집을 얻으려 하고, 좋은 수레를 얻으려 하며, 좋은 옷을 얻으려 하고, 좋은 음식을 얻으려 하며, 좋은 五욕의 공덕을 얻으려 한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이니, 갚음을 받는 것이 이러한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거사여, 만일 묘한 보시를 행하되, 믿고서 보시하지 않고, 일부러 보시하지 않으며, 자기 손으로 보시하지 않고, 스스로 가서 보시하지 않으며, 생각하면서 보시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시하지 않으며, 업의 과보를 관찰하고 보시하지 않으면, 마땅히 이렇게 갚음을 받는다고 관찰하라. 곧 마음으로 좋은 집을 얻으려 하지 않고, 좋은 수레를 얻으려 하지 않으며, 좋은 옷을 얻으려 하지 않고, 좋은 음식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좋은 五욕의 공덕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거사여, 갚음을 받는 것이 이러한 줄을 알아야 한다. 거사여, 만일 묘한 보시를 행하되, 믿고서 보시하고, 일부러 보시하며, 자기 손으로 보시하고 스스로 가서 보시하며, 생각하면서 보시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시하며, 업의 과보를 관찰하여 보시하면, 마땅히 이렇게 갚음을 받는다고 관찰하라. 곧 마음으로 좋은 집을 얻으려 하고, 좋은 수레를 얻으려 하며, 좋은 옷을 얻으려 하고, 좋은 음식을 얻으려 하며, 좋은 五욕의 공덕을 얻으려 한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거사여, 갚음을 받는 것이 이러한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거사여, 옛날에 범지로서 큰 장자가 있어, 이름을 수람(隨藍)이라 하였다. 그는 지극히 크고 풍부하고 즐거워, 재산은 한량이 없고, 봉호(封戶)와 식읍(食邑)과 모든 보배가 많았으며, 목축과 산업은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보시를 행하는데 그 모양은 이러하였다. 곧 八만 四천의 금바루에 부순 은을 가득 담아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八만 四천의 은바루에 부순 금을 가득 담아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며, 八만 四천의 금바루에 부순 금을 가득 담아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八만 四천의 은바루에 부순 은을 가득 담아, 이러한 보시를 행하며, 八만 四천의 코끼리를 장엄하고 장식하여 흰 낙자(絡子)로 그 위를 덮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며, 八만 四천의 말[馬]을 장엄하고 장식하여 흰 낙자와 합금(合金) 비나(霏那)로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며, 八만 四천의 소를 의승(衣繩)과 의부(衣覆)로 젖을 짜서 모두 한 섬의 젖을 얻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八만 四천의 여자가 모습이 단정하여 보는 사람은 다 기뻐하고, 여러 가지 보배와 영락(瓔珞)의 장식이 구족하여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였으니, 그 밖의 음식물이야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염부장(閻浮場)에 가득한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면, 이것은 그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어떤 이가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한 수타원(須陀洹)에게 밥을 보시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에게 밥을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한 사타함(斯陀含)에게 밥을 보시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에게 밥을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한 아나함(阿那含)에게 밥을 보시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 백 아나함에게 밥을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한 아라하(阿羅訶)에게 밥을 보시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 백 아나함, 백 아라하에게 밥을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한 벽지불(辟支佛)에게 밥을 보시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 백 아나함, 백 아라하, 백 벽지불에게 밥을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한 여래, 무소착, 등정각에게 밥을 보시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 백 아나함, 백 아라하, 백 벽지불에게 밥을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방사(房舍)를 지어 四방 비구들에게 보시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 백 아나함, 백 아라하, 백 벽지불에게 밥을 보시하고, 방사를 지어 四방 비구들에게 보시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이가 기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중의 三존(尊)에게 귀명(歸命)하고, 또 계를 받으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 백 아나함, 백 아라하, 백 벽지불에게 밥을 보시하고, 방사를 지어 四방 비구들에게 보시하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중의 三존에게 귀명하고, 또 계를 받더라도, 만일 어떤 이가 일체 중생을 위하여, 소젖을 짜는 동안이라도 사랑[慈]하는 마음을 행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다.
거사여, 만일 범지 수람이 이러한 큰 보시를 행하고, 또 염부장에 가득 찬 범부들에게 밥을 보시하며, 백 수타원, 백 사타함, 백 아나함, 백 아라하, 백 벽지불에게 밥을 보시하고, 방사를 지어 四방 비구들에게 보시하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중의 三존에게 귀명하고, 또 계를 받으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소젖을 짜는 동안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행하더라도, 만일 어떤 이가 능히 일체 모든 법은 무상(無常)하고 괴로우며, 공(空)하고 신(神)이 아니라고 관찰하면, 이것은 저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니라.
거사의 뜻에는 어떠하냐. 옛날의 범지로서 큰 장자인 수람이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느니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그이는 곧 이 나인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옛날 범지의 큰 장자로서 이름을 수람이라 하였다. 거사여, 나는 그 때에 스스로 요익(饒益)하고 남을 요익하게 하였으며, 또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였고, 세상을 가엾이 여기었으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여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였다. 그 때에는 법을 연설하였으나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하였고, 희고 깨끗한 법을 통달하지 못하였으며, 범행을 통달하지 못하였고, 범행을 통달하여 마치지 못하였었다. 그 때에는 생, 노, 병, 사와 울음과 근심과 슬픔을 떠나지 못하였었고, 또한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거사여, 나는 이제 세상에 나와,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로서, 불중우라고 호(號)한다. 나는 이제 스스로 요익하고 남을 요익하게 하며, 또한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상을 가엾이 여기며,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여,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 나는 이제 법을 연설하여 통달에 이르게 되었고, 희고 깨끗한 법을 통달하였으며, 범행을 통달하였고 범행을 통달하여 마치었다. 나는 이제 이미 생, 노, 병, 사와 울음과 근심과 슬픔을 떠났고, 나는 이제 이미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수달다 거사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잡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56. 범파라연경(梵波羅延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구사라국(拘娑羅國)의 많은 범지들은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사뢸 말씀이 있사온데 들어 주시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마음대로 물으라.”
때에 여러 범지들은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혹 지금에 어떤 범지로서 옛날의 범지법을 배우고, 옛날의 범지법을 넘은 자가 있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지금의 범지로서 옛날의 범지법을 배우는 자는 없고, 범지들은 오래 전부터 이미 옛날의 범지법을 넘었느니라.”
때에 여러 범지들은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어떻게 지금의 범지로서 옛날의 범지법을 배우는 자가 없고, 모든 범지들이 옛날의 범지법을 넘은 지 얼마나 오래되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대답하시었다.
이른바 옛날의 어떤 이는
스스로 다루고 열심으로 행하여
저 五욕의 공덕을 버리고
청정한 범행을 행하였나니
깨끗한 행과 계(戒)의 행을 행하고
거느려 나아가 부드러운 성질로서
용서하고 이행하여 해칠 마음 없고
욕(辱)됨을 참아 그 뜻을 지키었네.
옛날에는 이런 법 있었지마는
범지들은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
자기가 가진 재물과 곡식
범지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외워 익히는 재물과 곡식
범지들은 이것을 지키어 간직했네.
몇 가지 빛깔의 옷을 가지고
사는 집과 평상과 또 와구(臥具)와
풍성한 성(城)과 모든 나라들
범지에게 배우기 이와 같았다.
이 범지는 남을 해칠 마음이 없고
모든 법을 거느려 지켜 가지고
남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그를 제어할 이 없으며
문을 열고는 법을 빌어 구하여
밥 때가 되는대로 맡기느니라.
범지는 집에서 머물러 있으면
보는 사람 모두 다 보시하고자 하며
四十八년이 꽉 차는 동안을
청정한 범행을 닦아 행하며
명행성(明行成)을 찾아 구하는 것
이것은 옛날의 범지의 행이니라.
그는 남의 재물을 도둑질하지 않고
또한 두려움도 없으며
사랑과 사랑은 서오 응(應)하여
마땅히 서로 함께 화합하지만
거기에는 번뇌가 없기 때문에
원망과 음욕이 서로 응하는 법
다른 어떠한 모든 범지도
능히 이렇게 행하지 못하나니.
만일 어떠한 제일 행이 있으면
범지는 그것을 기어코 구하나니
그는 어떠한 음욕의 법도
생시에도 꿈에도 행하지 않네.
그는 이러한 범행으로 말미암아
나는 범(梵)이라 스스로 일컫나니
그에게 이런 행이 있는 줄 알면
슬기로운 사람은 알아야 하네.
평상은 허술하고 옷은 아주 간단하며
타락 죽과 젖을 먹어 목숨을 살고
남에게 비는 것은 모두 다 법다와
재(齋)를 베풀고 보시를 행하나니
재를 베풀 때에도 따로 구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 빈 것을 충당하네.
재를 베풀고 보시 행할 때에도
그는 소를 죽이는 일이 없고
부모 형제와 다른 친족 것처럼
남의 소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그는 이로서 마음도 즐거우며
먹고 마시어 몸에도 힘이 있고
그것을 타는 자는 안온하고 즐겁나니
이러한 이치가 있는 줄 알아
소를 죽이기 즐기지 않느니라.
부드럽고 연한 몸 지극히 크고
좋은 정신과 몸과 이름 있으며
은근히 스스로 이익을 구하나니
이것을 옛날의 범지의 행이니라.
범지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할 일과 안 할 일을 완전히 알고
그는 앞으로 이 세상에 와서
반드시 이 세상을 벗어나리니
그는 세월이 흐름을 따라
저의 뜻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보고
모든 부녀들을 장엄하게 꾸미고
한밤중에 있어 유희할 때에
길(吉)한 소는 그 앞을 둘러싸고
아름다운 부녀는 지극히 단정하여
사람으로서의 미묘한 욕심
그것은 범지의 떳떳한 원이었다.
수레나 탈것을 두루 갖추고
좋은 길삼에 좋은 살림살이와
살림살 집과 혼인하는 것
이것은 범지의 떳떳한 원이었다.
그들이 이런 결박 지음으로서
우리들은 그들로 좇아왔나니
대왕이여 재하고 보시 행하여
그 재물의 이익 잃지 마소서.
풍성하고 흡족한 재물과 미곡
만일 그 밖에 남는 재물 있으면
대왕이여 여기에 어울리게 하소서
범지와 수레에도 또한 그러하옵네.
코끼리 재와 말 재를 행할 때
말 재 때에는 문을 잠그지 않고
한데 모아 보시와 재를 행하고
그 재물은 범지에게 보시하였네.
그들은 이로부터 이익을 얻고
사랑하고 즐겨하여 재물을 아꼈나니
그들은 그로써 욕심을 일으키어
갈수록 더욱더욱 사랑하였네.
그것은 마치 넓은 못물과
한량이 없는 재물과 같아서
이렇게 사람에게는 소들이 있어
살아가는 생활의 도구 삼았네.
그들이 이런 결박 지음으로서
우리들은 그들로 좇아왔나니
대왕이여 재하고 보시 행하여
그 재물의 이익 잃지 마소서.
풍성하고 흡족한 재물과 미곡
그리고 또 만일 소가 많거든
대왕이여 여기에 어울리게 하소서.
범지와 수레에도 또한 그러하옵네.
한량이 없는 백천 마리 소
재함으로 말미암아 죽어 가나니
머리의 뿔은 어지러움이 없고
소와 돼지는 옛날과 같네.
앞으로 나아가 소뿔을 잡고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소를 죽이고
소와 또 그 아비 부르나니
그 나찰(羅刹) 이름하여 향(香)이라 하네.
칼로서 소를 찔러 죽일 때
소는 ‘법이 아니라.’ 부르짖나니
이 법으로서 재를 행하네.
그 큰 허물은 코앞에 있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은
그것은 원리(遠離)의 쇠퇴한 법이니라.
옛날에는 세 가지 병이 있었네.
그것을 먹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로서 소를 미워하게 되고
병을 일으키기 九十八종이니라.
이와 같이 갈수록 다투게 되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미워하나니
만일 사람들 이러한 것 본다면
그 어느 누구가 미워하지 않으리.
이와 같이 이 세상의 행(行)은
지혜도 없고 또 가장 하천(下賤)하여
제각기 욕심 내고 미워하나니
혹은 아내가 남편을 비방하네.
찰제리와 범지의 여자도 그렇거니
그들의 타고난 성바지에 보호되고
혹은 생(生)의 법을 범하는 일 있으면
모두 자재로운 욕심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범지여, 지금에는 범지로서 옛날의 범지법을 배우는 자는 없고, 범지들은 오래 전부터 이미 범지법을 넘었느니라.”
이에 구사라국의 많은 범지들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이미 알았나이다. 선서시여, 우리는 이미 이해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지금부터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하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우리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오늘부터 몸이 마치도록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도록 이르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구사라국의 많은 범지들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