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47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20:26

 

중아함경 제47권

 

 

178. 엽사경(獵師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노닐으시면서 죽림 카란다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사냥꾼이 사슴을 기를 때에는 이런 마음은 쓰지 않는다. 곧 사슴을 살찌게 하거나 빛깔을 좋게 하거나 힘을 세게 하거나 즐겁고 오래 살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냥꾼이 사슴을 기를 때에는 다만 가까이하여 먹게 하고, 가까이하여 먹게 한 뒤에는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放逸)하게 하며, 방일하게 한 뒤에는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게 하려고 한다. 사냥꾼이 사슴을 기를 때에는 이렇게 마음을 쓰느니라.

첫째 사슴 떼는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게 된 뒤에는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을 따른다. 이리하여 그 첫째 사슴 떼는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둘째 사슴 떼는 이렇게 생각한다. 곧 ‘저 첫째 사슴 떼는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게 된 뒤에는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을 따른다. 이리하여 저 첫째 사슴 떼는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의 밥을 먹지 않고, 두려움을 떠나서 일 없는 곳(숲)을 의지해 풀이나 먹고 물이나 마실까 보다’고. 둘째 사슴 떼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의 밥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숲을 의지하여 풀을 먹고 물을 마시고 살았다.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풀과 물이 없어져 몸은 극히 여위어지고, 기운은 쇠퇴해져서,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랐다. 그래서 그 둘째 사슴 떼도 또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셋째 사슴 떼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저 첫째, 둘째 사슴 떼는 일체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 하여 먹지 않아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방일하지 않아서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그 셋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방일하지 않아서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셋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꾀가 많고 간사하다. 왜 그러냐 하면 내 밥을 먹는 데도 그것을 잡을 수 없구나. 우리는 이제 긴 둘레 그물을 만들어 곧 저 셋째 사슴 떼들이 의지하여 사는 곳에 쳐서 저들을 잡으리라’고. 그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긴 둘레 그물을 만들어 셋째 사슴 떼들이 의지하여 사는 곳에 쳐서 그들을 잡았다. 그래서 그 셋째 사슴 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저 넷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저 첫째, 둘째, 셋째 사슴 떼들은 모두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제 저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가서 살자. 거기서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방일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저 넷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거기서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방일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저 넷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사납고 뛰어났다. 우리가 그들을 쫓아가더라도 그들을 잡지 못할 것이요, 다른 사슴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놀라서 흩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저 넷째 사슴 떼들에게는 그물 치기를 그만두리라’고. 사냥꾼들과 사냥꾼의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그물 치기를 그만두었다. 그래서 이 넷째 사슴 떼들은 이에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 비유를 말한 것은 그 뜻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그 뜻을 관찰하여 보라. 저 사냥꾼의 밥이란 五욕의 공덕을 말한 것이다. 눈은 빛깔을 알고, 귀는 소리를 알며,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며, 몸은 부딪침을 아나니, 사냥꾼의 밥이란 이 五욕의 공덕을 말한 것이다. 사냥꾼이란 악마의 왕을 말한 것이요, 사냥꾼의 권속이란 악마의 권속을 말한 것이며, 사슴 떼들이란 사문과 바라문을 말한 것이니라.

첫째 사문과 바라문들은 마왕(魔王)의 밥, 곧 세상 시주(施主)들의 음식을 가까이 하여 먹는다. 그들은 가까이 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게 된 뒤에는 곧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을 따른다. 그래서 첫째의 사문과 바라문들은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저 첫째의 사슴 떼들이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 하여 먹고, 가까이 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게 된 뒤에는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 따른다. 그래서 첫째의 사슴 떼들은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저 첫째의 사문과 바라문도 또한 그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둘째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곧 ‘저 첫째 사문과 바라문들은 마왕의 밥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게 된 뒤에는 마왕과 마왕의 권속을 따른다. 그래서 저 첫째 사문과 바라문들은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숲)을 의지해 살면서 과일이나 나무 뿌리를 먹을까’고. 저 둘째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숲을 의지하여 과일과 나무뿌리를 먹고살았다.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과일과 나무뿌리가 없어져 몸은 극히 여위어지고, 기운은 쇠퇴해졌다. 기운이 쇠퇴해지자, 곧 마음의 해탈, 슬기의 해탈이 쇠퇴해지고, 마음의 해탈, 슬기의 해탈이 쇠퇴해진 뒤에는 곧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을 따랐다. 그래서 저 둘째 사문과 바라문도 또한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마치 저 둘째 사슴 떼들이 생각하기를 ‘저 첫째 사슴 떼들은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게 되며, 방일하게 된 뒤에는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을 따른다. 그래서 저 첫째 사슴 떼는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의 밥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을 의지해 풀이나 먹고 물이나 마실까’고. 저 둘째 사슴 떼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의 밥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숲을 의지하여 풀을 먹고 물을 마시고 살았다.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풀과 물이 다해 몸은 극히 여위어지고 기운은 쇠퇴해져,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랐다. 그래서 저 둘째 사슴 떼도 또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과 같나니, 저 둘째 사문과 바라문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저 셋째 사문과 바라문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저 첫째, 둘째 사문과 바라문들은 일체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 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아서 곧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저 셋째 사문과 바라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아서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일체는 있다는 소견과 없다는 소견의 두 가지 소견을 받아 가지고, 이 두 가지 소견을 받아 가지므로 곧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을 따른다. 그래서 저 셋째 사문과 바라문도 또한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셋째 사슴 떼들이 또한 생각하기를 ‘첫째, 둘째 사슴 떼는 일체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 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저 셋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저 셋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꾀가 많고 간사하다. 무슨 까닭인가. 내 밥을 먹는 데도 그것을 잡을 수 없구나. 나는 이제 긴 둘레 그물을 만들어 곧 저 셋째 사슴 떼들이 의지하여 사는 곳에 쳐서 그들을 잡으리라’고. 그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긴 둘레 그물을 만들어 셋째 사슴 떼들이 사는 곳에 쳐서 그들을 잡았다. 그래서 셋째 사슴 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과 같다. 의지한다는 것은 일체가 있다는 소견을 말한 것이요, 머무른다는 것은 일체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저 셋째 사문과 바라문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마치 저 넷째 사슴 떼들이 생각하기를 ‘저 첫째, 둘째, 셋째 사슴 떼들은 일체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제 저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가서 살자. 거기서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방일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저 넷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거기서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의 밥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아서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고 방일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곧 ‘저 넷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사납고 뛰어났다. 우리가 그들을 쫓아가더라도 그들을 잡지 못할 것이요, 다른 사슴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놀라서 흩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저 넷째 사슴 떼들에게는 그물 치기를 그만두리라’고. 사냥꾼들과 사냥꾼의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저 넷째 사슴 떼들에게는 그물 치기를 그만두었다. 그래서 이 넷째 사슴 떼들은 이에 사냥꾼과 사냥꾼의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난 것과 같나니, 저 넷째 사문과 바라문들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이러한 것을 배워 의지하고 머무르는 곳을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으로 하라. 어떤 것이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들은 욕심을 떠나고, 악에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내지 제 四선을 얻게 되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다시 어떤 것이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들은 마음이 사랑[慈]과 함께 하여 一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고, 이와 같이 二, 三, 四방, 四유(維), 상, 하의 일체에 두루 하며,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슬퍼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도 또한 그러하며, 마음은 버림[捨]과 함께 하여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하느니라.

다시 어떤 것이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는 일체의 빛깔이란 생각을 지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다시 어떤 것이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하는가. 이른바 비구는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지나 생각과 앎이 다 없어진 곳에 몸이 부딪쳐 성취하여 노닐며, 슬기로 보고 모든 번뇌가 없으며 앎을 끊나니, 이것을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의지하여 머무르는 곳을 마왕과 마왕의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으로 만드나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79. 오지물주경(五枝物主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오지(五枝)라는 물주(物主)는 보통 날에 사위성을 나가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을 뵈옵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길까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오지 물주는 다시 ‘고요히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뵈옵거나 여러 높은 비구를 뵈옵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는 이제 차라리 한 사알라나무[婆羅樹]로 된 말리카[末利迦]라는 이교도(異敎徒)의 동산으로 가자.’고 생각하였다. 이에 오지 물주는 비도(比道)로 가서 유희하여 즐기고, 틴두카치라숲 부근에 있는 한 사알라나무로 된 말리카 이교도의 동산으로 나아갔다. 그 때에 사알라나무로 된 말리카 이교도의 동산에는 문디카아풋타[文那子]라는 어떤 사문이 있어, 거기서 큰 종주(宗主)가 되어 여러 사람의 스승으로서 존경을 받으면서, 이교도 五백 교도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그 시끄러운 무리 가운데서 높은 소리로 떠들면서 몇 가지 축생론(畜生論)을 연설하였다. 이른바 왕론(王論), 투쟁론(鬪爭論), 음식론(飮食論), 의복론(衣服論), 부인론(婦人論), 동녀론(童女論), 음녀론(淫女論), 세간론(世間論), 사도론(邪道論), 해중론(海中論) 등 이러한 것들을 모아 몇 가지 축생론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교도의 사문 문디카아풋타는 멀리서 오지 물주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조용히 하여 떠들지 말고 제각기 조심하라. 저기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 오지 물주가 온다. 사문 고오타마의 재가(在家) 제자로서 이 사위국에 있는 이로서는 저 오지 물주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무슨 까닭인가.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것을 칭찬한다. 만일 그가 이 대중들의 조용한 것을 본다면 즐거이 올 것이다.”

그 때에 이교도 사문 문디카아풋타는 대중들에게 분부한 뒤에 자기도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에 오지 물주는 이교도 사문 문디카아풋타에게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이교도 사문 문디카아풋타는 말하였다.

“물주여 만일 누가 네 가지 일을 갖추었으면, 나는 그를 착함을 성취하고, 제일 착하며, 위없는 선비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순직한 사문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것이 넷인가. 몸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사특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사특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나쁜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물주여, 만일 누가 이 네 가지를 갖추었으면 나는 그를 착함을 성취하고, 제일 착하며 위없는 선비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순진한 사문이라고 주장한다.”

오지 물주는 이교도 사문 문디카아풋타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하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는 ‘이런 말을 내 스스로 부처님께 나아가 그 뜻을 여쭈어 보리라.’하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교도 사문 문디카아풋타와 서로 이야기한 것을 모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신 뒤에 곧 말씀하시었다.

“물주여, 만일 이교도 사문 문디카아풋타의 말과 같다면, 四지(肢)의 뼈마디가 부드럽고 연한 어린아이가 바로 누워 잠을 자더라도 또한 착함을 성취하고, 제일 착하며, 위없는 선비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순진한 사문일 수 있다. 물주여, 어린아이는 아직 몸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몸으로 나쁜 업을 짓겠는가. 오직 몸을 움직일 뿐이다. 물주여, 어린아이는 아직 입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나쁜 말을 하겠는가. 오직 울뿐이다. 물주여, 어린아이는 아직 생활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사특한 직업이 있겠는가. 오직 끙끙거리는 소리를 낼뿐이다. 물주여, 어린아이는 아직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나쁜 생각이 있겠는가. 오직 어머니의 젖을 생각할 뿐이다. 물주여, 만일 이교도 사문 문디카아풋타의 말과 같다면, 이러한 어린아이도 착함을 성취하고, 제일 착하여 위없는 선비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순직한 사문 일 수 있을 것이다.

물주여, 만일 누가 네 가지 일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착함을 성취하지 않았고, 제일 착하지 않으며, 그리고 위없는 선비가 아니요, 제일의 진리를 얻지 못하였으며, 또한 순진한 사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떤 것이 넷인가. 몸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사특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사특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나쁜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물주여, 만일 누가 이 네 가지 일을 갖추었으면 나는 그를 착함을 성취하지 않았고, 제일 착하지 않으며, 그리고 위없는 선비가 아니요, 제일의 진리를 얻지 못하였으며, 또한 순진한 사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주여, 몸의 업과 입의 업은 나는 이것을 계(戒)라고 주장하고, 그리고 생각은 마음의 가진 바요, 마음과 서로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주여, 나는 말하노니 마땅히 착하지 않은 계를 알아야 하고, 착하지 않은 계는 어디서 생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며, 착하지 않은 계는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지 알아야 하며,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는 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여, 나는 말하리니 마땅히 착한 계를 알아야 하고, 착한 계는 어디서 생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며, 착한 계는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지 알아야 하며,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한 계를 없애는 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여, 나는 말하노니 마땅히 착하지 않은 생각[念]을 알아야 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며, 착하지 않은 생각은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지 알아야 하며,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는 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여, 나는 말하노니 마땅히 착한 생각을 알아야 하고, 착한 생각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며, 착한 생각은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지 알아야 하며,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한 생각을 없애는 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여,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계인가. 착하지 않은 몸의 행과 착하지 않은 입과 뜻의 행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계라 한다. 물주여, 이 착하지 않은 계는 어디서 생기는가. 나는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하노니 그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을 마음이라 하는가. 만일 마음에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있으면, 그 착하지 않은 계는 이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물주여, 착하지 않은 계는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가.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은 몸의 착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몸의 착한 업을 닦으며, 입과 뜻의 착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입과 뜻의 착한 업을 닦나니, 이것이 착하지 않은 계가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물주여,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하지 않은 계를 어떻게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업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느니라.

물주여, 어떤 것이 착한 계인가. 착한 몸의 업과 착한 입과 뜻의 업이니, 이것을 착한 계라 한다. 물주여, 이 착한 계는 어디서 생기는가. 나는 그 생기는 곳을 말하노니 그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을 마음이라 하는가.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으면, 착한 계는 이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물주여, 착한 계는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가. 만일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이 계를 행하여 계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 착한 계는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남음이 없어진다. 물주여,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한 계를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한 계를 없애느니라.

물주여,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생각인가. 탐욕과 성냄과 해치려는 생각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생각이라 한다. 물주여, 착하지 않은 생각은 어디서 생기는가. 나는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하노니 그것은 생각(想=감정)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을 생각이라 하는가. 나는 말하노니 생각은 많은 종류, 한량이 없는 종류, 약간 종류의 행이니, 혹은 탐욕과 혹은 성냄과 혹은 해치려는 생각이다. 물주여, 중생은 탐욕 세계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想]을 내어 욕계와 서로 응한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내어 탐욕 세계와 서로 응한다. 물주여, 중생은 성냄과 해침의 세계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내어 성냄과 해침의 세계와 서로 응한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을 내어 성냄과 해침의 세계와 서로 응하나니, 이 착하지 않은 생각은 이 생각[想]으로 말미암아 생기느니라.

물주여, 착하지 않은 생각은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가. 만일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이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 착하지 않은 생각은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남음이 없어진다. 물주여,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하지 않은 생각은 없어지느니라.

물주여, 어떤 것이 착한 생각인가. 탐욕과 성냄과 해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착한 생각이라 한다. 물주여, 착한 생각은 어디서 생기는가. 나는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하노니 그것은 생각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을 생각이라 하는가. 나는 말하노니, 생각은 많은 종류, 한량이 없는 종류, 약간의 종류의 행이니, 혹은 탐욕과 혹은 성냄과 혹은 해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물주여, 중생은 탐욕 세계의 생각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착한 생각을 내어 탐욕이 없는 세계와 서로 응하나니,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한 생각을 내어 탐욕이 없는 세계와 서로 응한다. 물주여, 중생은 성냄과 해침의 세계의 생각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착한 생각을 내어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와 서로 응한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한 생각을 내어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와 서로 응하나니, 이 착한 생각은 이 생각[想]으로 말미암아 생기느니라.

물주여, 착한 생각은 어디로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어디로 무너져 남음이 없어지는가. 만일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아, 버림[捨], 생각[念], 청정이 있는 제오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 착한 생각은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남음이 없어진다. 물주여,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행하여 착한 생각을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한 생각은 없어지느니라.

물주여, 혹 많이 아는 성현의 제자들은 슬기로서 착하지 않은 계를 관찰하여 참다이 알고, 착하지 않은 계가 생기는 곳을 참다이 알며, 이 착하지 않은 계가 생기는 곳을 참다이 알며, 이 착하지 않은 계가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남음이 없어짐을 참다이 알아 슬기로써 관찰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하지 않은 계가 없어짐을 참다이 아느니라. 혹 슬기로서 착한 계를 관찰하여 참다이 알고, 착한 계가 생기는 곳을 참다이 알며, 이 착한 계가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없어짐을 참다이 알아 슬기로서 관찰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한 계가 없어짐을 참다이 아느니라.

혹 슬기로서 착하지 않은 생각[念]을 관찰하여 참다이 알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는 곳을 참다이 알며, 이 착하지 않은 생각이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남음이 없어짐을 참다이 알아 슬기로서 관찰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하지 않은 생각이 멸하여 남음이 없어짐을 참다이 아느니라. 혹 슬기로서 착한 생각을 관찰하여 참다이 알고, 착한 생각이 생기는 곳을 참다이 알며, 이 착한 생각이 멸하여 남음이 없어지고 무너져 남음이 없어짐을 참다이 알아 슬기로서 관찰하나니,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행하면 착한 생각이 멸하여 없어짐을 참다이 아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바른 소견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뜻이 생기고, 바른 뜻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말이 생기며, 바른 말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행동이 생기고, 바른 행동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생활이 생기며, 바른 생활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방편이 생기고, 바른 방편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생각(念)이 생기며, 바른 생각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정(定)이 생기기 때문이다. 성현의 제자들의 마음이 이렇게 정하면 곧 일체의 간음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해탈하게 되느니라. 물주여,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바로 마음이 해탈하면,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일체의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참다이 아나니, 이것을 길을 본 유학(有學)이 八지(支)를 성취하고,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十지(支)를 성취한 것이라 하느니라.

물주여, 어떤 것을 유학의 자취 있는 사람의 八지의 성취라고 하는가. 이른바 바른 소견을 배우고 내지 바른 정을 배우는 것이다. 물주여, 어떤 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十지의 성취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학(無學)의 바른 소견과 내지 무학의 바른 지혜이니,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한의 十지의 성취라고 한다. 물주여, 만일 누가 十八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착함을 성취하고 제일 착하며, 위없는 선비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순진한 사문이라 주장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오지 물주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80. 구담미경(瞿曇彌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삭키수[釋羇瘦]에 노닐으시면서 카필라바스투[加鞞羅衛]의 니그로오다 나무의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마하아파자아파티이 고오타미[摩訶簸邏闍鉢提瞿曇彌]는 새로 지은 금실 누른 옷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새로 지은 금실 누른 옷은 제가 세존을 위해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고오타미여, 이 옷을 가져다 비구들에게 보시하라. 비구들에게 보시한 뒤에는 곧 내게 공양하고 또한 대중에게도 공양하라.”

대생주(大生主) 고오타미는 재삼 되풀이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새로 지은 금실 누른 옷은 제가 세존을 위해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도 또한 재삼 되풀이해 말씀하시었다.

“고오타미여, 이 옷을 가져다 비구들에게 보시하라. 비구들에게 보시한 뒤에는 곧 내게 공양하고 또한 대중에게 공양하라.”

그 때에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총채를 들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이에 존자 아난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생주 고오타미는 세존에게 은혜가 많습니다. 세존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세존을 젖 먹여 길렀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대생주 고오타미는 진실로 내게 은혜가 많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젖을 먹여 나를 길렀다. 그러나 아난아, 나도 또한 대생주 고오타미에게 큰 이익을 주었다. 무슨 까닭인가. 대생주 고오타미는 나로 인해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스스로 귀의하게 되어, 三존(尊)과 고(苦), 습(習), 멸(滅), 도(道)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믿음, 계, 많은 지식, 보시 슬기를 성취하였으며, 살생(殺生)을 떠나 끊고, 도둑질, 사음, 거짓말과 술을 떠나 끊었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을 인해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스스로 귀의하게 되어, 三존과 고, 습, 멸, 도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믿음, 계, 많은 지식, 보시, 슬기를 성취하였으며, 살생을 떠나 끊고, 도둑질, 사음, 거짓말과 술을 떠나 끊었다면, 이 사람은 저에게 한평생 동안 음식, 의복, 평상, 탕약과 그 밖에 많은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공양한다 하더라도 그 은혜는 갚지 못할 것이다.

다시 아난아, 일곱 가지 대중의 보시가 있고, 열 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가 있으니, 그것은 큰복이 있고 큰 결과가 있으며, 큰 공덕이 있고 크고 넓은 갚음이 있다. 아난아, 어떤 일곱 가지 대중의 보시가 큰복이 있고, 큰 결과가 있으며, 큰 공덕이 있고 크고 넓은 갚음이 있는가. 믿음이 있는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부처님을 비롯해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보시하면, 이것을 제일의 대중의 보시라 하나니, 그것은 큰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과 크고 넓은 갚음을 얻는다. 또 믿음이 있는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아 비구들과 비구니들의 二부중(部衆)에게 보시하되, 비구들 동산에 들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 그러한 비구가 오면 그에게 보시하리라.’하고. 다시 비구니들 방에 들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 그러한 비구니가 오면 그들에게 보시하리라.’하면 이것을 제오(第五)의 대중의 보시라 하나니, 큰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과 크고 넓은 갚음을 얻느니라.

아난아, 미래에 어떤 비구가 있어 유명한 종족으로서, 정진(精進)하지 않으면서 가사를 입는다. 그는 정진하지 않고, 정진하지 않으므로 보시하면 그는 대중을 의지하기 때문에, 대중을 인연하기 때문에, 대중을 높이기 때문에, 대중을 말미암기 때문에 나는 그 때의 그 시주(施主)는 한량이 없어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복을 얻고, 착함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하거늘 하물며 현재 비구가 행할 일을 성취하거나 버릴 일을 성취하고 행할 일과 버릴 일을 함께 성취하며, 소박하고 순직함을 성취하거나 부드럽고 연함을 함께 성취하며, 참음을 성취하거나 즐거움을 성취하거나 즐거움을 성취하고, 참음과 즐거움을 함께 성취하며, 서로 응함을 성취하거나, 기율(紀律) 세움을 성취하고, 서로 응함과 기율 세움을 함께 성취하며, 위엄 있는 거동을 성취하거나, 다녀 노닒을 성취하고, 위업 있는 거동과 다녀 노닒을 함께 성취하고, 믿음, 계, 많은 지식, 보시와 슬기를 함께 성취함이겠는가. 이것을 제칠(第七)의 대중의 보시라 하나니, 큰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과 크고 넓은 갚음을 얻는다. 이것을 일곱 가지 보시가 있어 큰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과 큰 갚음을 얻는 것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열 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가 큰복이 있고, 큰 결과가 있으며, 큰 공덕이 있고, 크고 넓은 갚음이 있는가. 어떤 믿음이 있는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에게 보시하고, 연각(緣覺)에게 보시하며, 아라한에게 보시하며, 아라한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아나함에게 보시하고, 아나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사타함에게 보시하고, 사타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수타원에게 보시하고, 수타원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성인 밖에 있는 모든 욕심을 떠난 선인(仙人)에게 보시하고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며, 정진하지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축생에게 보시한다. 아난아,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복을 얻고, 정진하지 않는 이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복을 얻으며,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복을 얻고, 성인 밖에 있는 모든 욕심을 떠난 이에게 보시하면 억백천 배의 복을 얻으며, 수타원을 향한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이 없고, 수타원을 얻은 이에게도 한량이 없으며, 수타함을 향하는 이에게도 한량이 없고, 사타함을 얻는 이에게도 한량이 없으며, 아나함을 향하는 이에게도 한량이 없고, 아나함을 얻는 이에게도 한량이 없으며, 아라한을 향하는 이에게도 한량이 없고, 아라한을 얻은 이에게도 한량이 없으며, 연각에게도 한량이 없거늘, 하물며 여래, 무소착, 등정각이겠는가. 이 열 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는 큰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과 크고 넓은 갚음을 얻느니라.

다시 아난아, 네 가지 보시와 세 가지 깨끗한 보시가 있다. 어떤 것을 넷이라 하는가.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이 깨끗하지 못하다. 혹 어떤 보시는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이 깨끗하지 못하다.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한다.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다.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한가. 주는 사람은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고. 그러나, 받는 사람은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고. 이것을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보시가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한가. 주는 사람은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고. 그러나, 받는 사람은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고,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고. 이것을 어떤 보시는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한다. 주는 사람도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고. 그리고 받는 사람도 또한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고. 이것을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한가. 주는 사람도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고,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잇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고. 그리고 받는 사람도 또한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고,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말한다. 곧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고. 이것을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정진하는 사람이 정진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해 기쁜 마음 얻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果報)있다 믿으면

이 보시는 주는 이의 깨끗한 데 있느니라.

 

정진하지 않는 이가 정진하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치 않아 기쁜 마음 없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믿지 않으면

이 보시는 받는 이의 깨끗한 데 있느니라.

 

게으른 사람 정진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치 않아 기쁜 마음 없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믿지 않으면

이런 보시는 크고 넓은 갚음 없느니.

 

정진하는 이 정진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하여 기쁜 마음 얻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있다 믿으면

이런 보시 크고 넓은 갚음 있느니.

 

종들과 가난하고 궁한 이에게

제것 갈라 보시하고 또 기뻐하면서

업을 믿고 또한 과보 있다 믿으면

이런 보시 착하여 사람들 칭찬하네.

 

바르게 잘 몸과 입을 보호하고

손을 펴 법으로서 물건을 빌며

욕심을 떠나 사람 욕심 떠난 이에게 보시하면

이 재물 보시는 가장 제일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잡고는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81. 다계경(多界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아난은 혼자 안정한 곳에서 고요히 앉아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속으로 ‘모든 두려움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해질녘이 되어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안정한 곳에서 고요히 앉아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속으로 ‘모든 두려움이 지혜에서는 생기기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모든 두려움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기는 것이다. 아난아, 마치 갈대 무더기나 풀 무더기에서 불이 나서 누각과 집을 태우는 것처럼 아난아, 그와 같이 모든 두려움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도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기는 것이다. 아난아, 과거에 만일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겼다. 모든 사고와 재앙은 걱정과 슬픔이 있었다면, 그것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어리석은 데서 생겼던 것이다. 아난아, 미래에 만일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길 것이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길 것이다. 아난아, 현재에 있는 모든 두려움도 지혜에서 생기지 않고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 그리고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도 그것은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고 모두 어리석은 데서 생긴다. 아난아, 이것을 어리석음에는 두려움이 있고, 지혜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어리석음에는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고, 지혜에는 사고와 재앙과 슬픔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난아, 모든 두려움, 사고, 재앙, 걱정 및 슬픔은 어리석은 데서는 얻을 수 있지마는 지혜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존자 아난은 눈물을 흘려 슬피 울면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어리석어 지혜롭지 않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경계(境界)를 알지 못하고, 곳[處]을 알지 못하고, 인연을 알지 못하며,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지 못하면 아난아, 이러한 비구는 어리석어 지혜롭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그러한 비구는 어리석어 지혜롭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는 지혜로와 어리석지 않나이까.”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경계를 알고, 곳을 알고, 인연을 알며,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면 아난아, 이러한 비구는 지혜로와 어리석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지혜로와 어리석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경계를 아나이까.”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十八계(界)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눈의 경계, 빛깔의 경계, 눈의 식(識)의 경계와 귀의 경계, 소리의 경계, 귀의 식의 경계와 코의 경계, 냄새의 경계, 코의 식의 경계와 혀의 경계, 맛의 경계, 코의 식의 경계와 몸의 경계, 닿음의 경계, 몸의 식의 경계와 뜻의 경계, 법의 경계, 뜻의 식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十八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六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땅의 경계, 물의 경계, 불의 경계, 바람의 경계, 허공의 경계, 의식(意識)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六계를 보아 참다이 알며, 아난아, 六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탐욕의 경계, 성냄의 경계, 해침의 경계, 탐욕이 없는 경계, 성냄이 없는 경계, 해침이 없는 경계이다. 아난아, 이 六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六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즐거움의 경계, 괴로움의 경계, 기쁨의 경계, 근심의 경계, 버림[捨]의 경계, 무명(無明)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六계를 보아 참다이 알며, 아난아, 四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감각의 경계, 감정의 경계, 의지(意止)의 경계, 의식(意識)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四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탐욕의 경계, 빛깔의 경계, 빛깔이 없는 경계이다. 아난아, 이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알며, 아난아,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빛깔의 경계, 빛깔이 없는 경계, 멸(滅)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과거의 경계, 미래의 경계, 현재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알며, 아난아,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묘한 경계, 묘하지 않은 경계, 중간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착한 경계, 착하지 않은 경계, 무기(無記)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알며, 아난아,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유학(有學)의 경계, 무학(無學)의 경계, 유학도 무학도 아닌 경계이다. 아난아, 이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三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샘[漏]이 있는 경계, 샘이 없는 경계이다. 아난아, 이 二계를 보아 참다이 알며, 아난아, 二계를 곧 보아 참다이 아나니, 하염이 있는 경계, 하염이 없는 경계이다. 아난아, 이 二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이상의 六十二계를 보아 참다이 알면, 이러한 비구는 경계를 아는 비구이니라.”

존자 아난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한 비구는 경계를 아는 비구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곳[處]를 아나이까.”

세존께서 대답하시었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十二처(處)를 곧 보아 참다이 아나니, 눈의 곳, 빛깔의 곳, 귀의 곳, 소리의 곳, 코의 곳, 냄새의 곳, 혀의 곳, 맛의 곳, 몸의 곳, 닿음의 곳, 뜻의 곳, 법의 곳이다. 아난아, 이 十二처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아난아, 이러한 비구는 곳을 아는 비구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러한 비구는 곳을 아는 비구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인연을 아나이까.”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인연과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을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이것을 인하여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行)이 있고, 내지 남[生]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으며, 만일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내지 남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한다고 보아 참다이 아나니, 아난아, 이런 비구는 인연을 아는 비구이니라.”

존자 아난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한 비구는 인연을 아는 비구입니다. 어떤 비구는 그럴 리가 있고 그럴 리가 없는 것을 아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그런 것은 그렇다 보아 참다이 알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렇지 안다고 보아 참다이 안다. 아난아, 만일 한 세상에 두 전륜 왕이 있어 아울러 다스린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고, 만일 한 세상에 한 전륜 왕이 혼자 다스린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한 세상에 두 여래가 있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고, 만일 한 세상에 한 여래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일부러 부모를 해치고 아라한을 죽이며, 성현들을 쳐부수고 악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여래의 피를 나게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일부러 부모를 해치고 아라한을 죽이며, 성현들을 쳐부수고 악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여래를 피나게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리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일부러 계(戒)를 범하고 계를 버리며, 도(道)를 그만둔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일부러 계를 범하고 계를 버리며, 도를 그만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이 마음을 버리고, 밖을 향하여 높은 것을 구하고 복밭을 구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이 마음을 버리고, 밖을 향하여 높은 것을 구하고 복밭을 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좇아 ‘여러분, 보아야 할 것을 보고, 알아야 할 것은 알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좇아 ‘여러분, 보아야 할 것은 보고, 알아야 할 것은 알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믿어 좋고 나쁨을 점치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좇아, 좋고 나쁨을 점치는 점장이와 서로 어울려, 괴로움이 있고 번거러움이 있다고 보아, 이것은 진실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좇아, 좋고 나쁨을 점치는 점장이와 서로 어울려 괴로움이 있고 번거러움이 있다고 보아, 이것은 진실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생(生)은 지극히 괴롭고 매우 괴로운 것으로서 사랑할 것도 아니요, 즐길 것도 아니며, 생각할 것도 아니요, 못 잊어할 것도 아니며, 내지 목숨을 끊으려 하면서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밖을 행해 구해서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혹은 한 귀절[句]의 주문(呪文), 두 귀절, 세 귀절, 네 귀절, 많은 귀절, 백천 귀절의 주문을 가지고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여, 거기서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무더기와 괴로움의 괴로움이 다하기를 구한다면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밖을 향해 구해서, 혹 어떤 사문이나 한 귀절의 주문, 두 귀절, 세 귀절, 네 귀절, 많은 귀절, 백천 귀절의 주문을 가지고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여, 거기서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무더기와 괴로움의 괴로움이 다하기를 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八유(有)를 받는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八유를 받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몸의 악한 행과 입과 뜻의 악한 행이 있으면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몸의 악한 행과 입과 뜻의 악한 행이 있고,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있으면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있고,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의 악한 행과 입과 뜻의 악한 행이 즐거움의 갚음을 받는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아난아, 만일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이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즐거움의 갚음을 받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개(蓋)를 끊지 않고서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念處)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계를 끊지 않고, 또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를 세우지 않고서 七각의(覺意)를 닦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개를 끊고, 또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를 세우고서 七각의를 닦으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개를 끊지 않고,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를 세우지 않고, 또 七각의를 닦지 않고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를 세우고, 또 七각의를 닦고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개를 끊지 않고,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를 세우지 못하고, 七각의를 닦지 않고, 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괴로움의 끝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슬기를 약하게 하는 五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四념처를 세우고, 七각의를 닦고, 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서 괴로움의 끝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이러한 비구는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이니라.”

존자 아난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한 비구는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입니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가지리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난아, 이 다계(多界), 법계(法界), 감로계(甘露界), 다고(多鼓), 법고(法鼓), 감로고(甘露鼓)와 법경(法鏡)의 四품(品)을 받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경을 일컬어 다경(多經)이라 이름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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