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46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20:23

 

중아함경 제46권

 

176. 행선경(行禪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세상에는 진실로 선(禪)을 하는 네 가지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한다.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한다.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안다. 또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진실히 안다.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하는가.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욕심을 버리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欲界)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는 마음에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초선에서 제 이선(第二禪)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息]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그는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초선을 잃어버리고 정(定)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초선에서 제 二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인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 그 뜻은 곧 정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이미 쉬어져 안으로 고요하고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도 없어지고,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二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 二선에서 제 三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그는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제 二, 선을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二선에서 제 三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인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함으로, <여>에서 물러나 그 뜻은 곧 정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어 구함이 없이 노닌다. 그는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이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捨], 생각[念], 즐거이 머무름[樂住]과 공(空)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 三선에서 제 四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제 三선을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三선에서 제 四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인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함으로, <여>에서 물러나 그 뜻은 곧 정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버림[捨], 생각[念],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 四선에서 한량이 없는 공처(空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서 제 四선을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四선에서 한량이 없는 공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인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함으로, <여>에서 물러나 그 뜻은 곧 정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도 생각하지 않고 한량이 없는 공(空), 이 한량이 없는 공처(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한량이 없는 공처에서 한량이 없는 식처(識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한량이 없는 공처를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공처에서 한량이 없는 식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인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함으로, <여>에서 물러나 곧 잃어버린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고 한량이 없는 식(識), 이 한량이 없는 식처(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한량이 없는 식처에서 무소유처(無所有處=아무 것도 없는 곳)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한량이 없는 식처를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식처에서 한량이 없는 무소유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인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함으로, <여>에서 물러나 그 뜻은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한량이 없는 식처를 지내고, 무소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바른 생각을 닦아 무소유처에서 익히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곳)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무소유처를 일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인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여>에서 물러나 그 뜻은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서 힘이 빠져 결단났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가.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조그만 생각[想]을 생각[思]하여 제 二선의 길을 닦아 익히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二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생각하여 초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제 二선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그는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이미 쉬어져 안으로 고요하고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도 없어지고,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데 제 二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제 三선의 길을 닦아 익히면, 그는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二선에서 제 三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생각하여 초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제 三선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어 구함이 없이 노닌다. 그리고 그는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 생각, 즐거이 머무름과 공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제 四선의 길을 닦아 익히면, 그는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三선에서 제 四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생각하여 초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제 四선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졌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버림,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고 한량이 없는 공처의 길을 닦아 익히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四선에서 한량이 없는 공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생각하여 제 四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한량이 없는 공처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도 생각하지 않고 한량이 없는 공, 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고 한량이 없는 공처의 길을 닦아 익히면, 그는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공처에서 나와 한량이 없는 식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생각하여 한량이 없는 공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한량이 없는 식처로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고 한량이 없는 식처, 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무소유처의 길을 닦아 익히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을 하는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생각하여 한량이 없는 식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무소유처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지나고 무소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비유상비무상처의 길을 닦아 익히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생각하여 무소유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조그만 생각을 생각하여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을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서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는가.

그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무소유처를 지나고 비유상비무상,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行)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무소유처와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本退具)를 행하게 되면, 그는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를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고 <여>에서 물러나지 않아 정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그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지나고 무소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한량이 없는 식처와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를 행하게 되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여>에서 물러나지 않아 그 뜻은 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내고 한량이 없는 식, 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한량이 없는 공처와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를 행하게 되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한량이 없는 공처를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여>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뜻은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도 생각하지 않고, 한량이 없는 공, 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빛깔의 즐거움과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를 행하게 되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한량이 없는 공처를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여>에서 물러나지 않아 그 뜻은 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졌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버림,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 도 않고, 오직 제 三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를 행하게 되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제 四선을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여>에서 물러나지 않아 그 뜻은 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함이 없이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느끼나니,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 생각, 즐거이 머무름과 공이 있는 제 三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제 二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를 행하게 되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제 三선을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여>에서 물러나지 않아 그 뜻은 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은 이미 없어지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없어, 정에서 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二선을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 도 않고, 오직 초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를 행하게 되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제 二선을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여>에서 물러나지 않아 그 뜻은 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이 선을 하는 사람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욕심의 즐거움과 서로 응하는 생각과 본퇴구를 행하게 되면,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가 초선을 잃어버리고 정을 없애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여>에서 물러나지 않아 그 뜻은 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힘이 빠져 결단났으면 곧 힘이 빠져 결단난 줄을 진실히 아느니라.

어떤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는가. 그 선을 하는 사람은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곧 초선에서 제 二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곧 초선에서 제 二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이미 없어지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없어,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二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二선에서 제 三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二선에서 제 三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어 구함이 없이 노닌다. 그리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나니,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 생각, 즐거이 머무름과 공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三선에서 제 四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三선에서 제 四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아 버림,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四선에서 한량이 없는 공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 四선에서 한량이 없는 공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떠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도 생각하지 않고 한량이 없는 공, 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공처에서 한량이 없는 식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공처에서 한량이 없는 식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고 한량이 없는 식, 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한량이 없는 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느니라.

선을 하는 사람은 일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지나고, 무소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그 선을 하는 사람은 곧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어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정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선을 하는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아느니라.

세상에는 진실로 이러한 네 가지 선을 하는 사람이 잇다 함은 이 때문에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77. 설경(設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루수의 검마슬담이라는 구루수 서울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그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내나니, 이름을 네 가지 설경(設徑)이라 한다. 이 네 가지 설경을 분별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나는 이제 분별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때에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설경의 그 뜻을 분별하는 것인가. 어떤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타락의 재로가 되는 욕계의 즐거움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머무르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물러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정(定)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행에 집착하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고, 생각을 세우기를 법다이 하여 한 뜻에 머무르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정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는 재료가 되는 제 이선(第二禪)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 二선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있어,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욕심이 없는 재로가 되는 멸식(滅息)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싫어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누(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어,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이선(第二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타락하는 재료가 되는 초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물러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그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없어,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二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세우기를 법다이 하여 한 뜻에 머무르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정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게 된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머트러운 생각도 세밀한 생각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어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二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는 재료가 되는 제 三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 三선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어,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二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욕심이 없는 재료가 되는 멸식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싫어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누가 다하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어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나니,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捨], 생각[念], 즐거움이 머무름[樂住]과 공(空)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타락하는 재료가 되는 제 二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물러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어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나니,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 생각, 즐거움이 머무름과 공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행에 집착하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고, 생각을 세우기를 법다이 하여 한 뜻에 머무르도록 하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정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어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나니,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 생각, 즐거움이 머무름과 공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이 생각과 이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는 재료가 되는 제 四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 四선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기쁨과 욕심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어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이면서 몸에 즐거움을 깨닫나니,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거룩한 버림, 생각, 즐거움이 머무름과 공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욕심이 없는 재료가 되는 멸식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싫어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누가 다하게 될 것이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즐거움과 괴로움은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아, 버림,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타락의 재료가 되는 제 三선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머무르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물러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정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즐거움과 괴로움은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아, 버림,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행에 집착하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고, 생각을 세우기를 법다이 하여 한 뜻에 머무르도록 하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정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즐거움과 괴로움은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아, 버림,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는 재료가 되는 한량이 없는 공처(空處)와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한량이 없는 공처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즐거움과 괴로움은 없어지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아, 버림,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욕심이 없는 재료가 되는 멸식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싫어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누가 다하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想]도 생각[念]하지 않고, 한량이 없는 공(空), 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생각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타락의 재료가 되는 빛깔의 즐거움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머무르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물러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정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도 생각하지 않고, 한량이 없는 공, 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생각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행에 집착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지 않고, 생각을 세우기를 법다이 하여 한 뜻에 머무르도록 하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정에서 머무르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도 생각하지 않아, 한량이 없는 공, 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생각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는 재료가 되는 한량이 없는 식처(識處)와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한량이 없는 식처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어 약간의 생각도 생각하지 않아, 한량이 없는 공, 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생각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욕심이 없는 재료가 되는 멸식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싫어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 한량이 없는 식, 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타락의 재료가 되는 한량이 없는 공처와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머무르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물러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 한량이 없는 식, 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행에 집착하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고, 뜻을 세우기를 법다이 하여 한 뜻에 머무르도록 하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정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 한량이 없는 식, 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는 재료가 되는 무소유처(無所有處)와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가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소유처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 한량이 없는 식, 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욕심이 없는 재료가 되는 멸식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생각하여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가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를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공처를 지나 무소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타락의 재료가 되는 한량이 없는 식처와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머무르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물러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정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생각하고, 생각을 세우기를 법다이 하여 한 뜻에 머무르도록 하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 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는 재료가 되는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생각하여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지않아 비유상비무상처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비구가 행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목표하는 것은 일체 한량이 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행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고, 욕심이 없는 재료가 되는 싫어함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비구는 마땅히 생각하여야 한다. 곧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싫어하게 한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나는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라고.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생각[想]이 있고 앎이 있어, 이와 같이 알게 되면, 내지 비유상비무처의 행과 다른 제일의 생명을 알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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