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45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20:22

 

중아함경 제45권

 

 

172. 심경(心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비구는 혼자 안정(安靖)한 곳에 고요히 앉아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으로 ‘무엇이 이 세상을 끌고 가는가. 무엇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가. 무엇이 자재(自在)를 일으키는가.’고 생각했다.

그 때에 그 비구는 해질녘에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혼자 안정한 곳에 앉아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으로 ‘누가 이 세상을 끌고 가는가. 누가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가. 누가 자재를 일으키는가.’고 생각하였나이다.”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시어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여. 이른바 좋은 도(道)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辯才)가 있으며, 좋은 생각[思惟]이 있는 것이다. 비구여, ‘누가 세상을 끌고 가는가. 누가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가. 누가 자재를 일으키는가.’ 너는 이렇게 물었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비구여, <마음>이 세상을 끌고 가고, <마음>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며, <마음>이 자재를 일으킨다. 비구여, 그것이 세상을 끌고 가고, 그것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며, 그것이 자재를 일으킨다. 비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이 자재하는 것이 아니다. 비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의 자재를 따르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를 따르는 것이니라.”

비구는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때에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비구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많이 아는 비구는 많이 아는 비구를 말씀하시니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많이 아는 비구라 하며, 어떻게 많이 아는 비구를 시설(施設)하나이까.”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시어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여. 이른바 좋은 도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가 있으며,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비구여, ‘많이 아는 비구는 많이 아는 비구를 말씀하시니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많이 아는 비구라 하며, 어떻게 많이 아는 비구를 시설하나이까.’고 너는 이렇게 물었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비구여, 내가 말하는 것은 매우 많다. 이른바 정경(正經), 가영(歌詠), 기설(記設), 게타(偈他), 인연(因緣), 찬록(撰錄), 본기(本起), 차설(此設), 생처(生處), 광해(廣解), 미증유법(未曾有法) 및 설의(說義)니라. 비구여, 만일 어떤 큰 종족의 아들로서 내가 말하는 사구게(四句偈)에 대해서 그 뜻을 알고 그 진리를 알아서 법으로 나아가고 법을 향하며, 범행(梵行)으로 나아간다면, 비구여, 많이 아는 비구를 말하는 데 있어서 여기에 지날 것이 없다. 비구여, 이런 것을 많이 아는 비구라 하며, 나는 이렇게 많이 아는 비루를 시설하는 것이다.”

비구는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때에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비구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는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말씀하시니 어떤 것을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 하며, 어떻게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시설하나이까.”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시어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여. 이른바 좋은 도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가 있으며,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비구여, ‘세존이시여,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는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말씀하시니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 하며, 어떻게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 하며, 어떻게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시설하나이까.’고 이렇게 물었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비구여, 만일 비구가 이 괴로움이란 말을 듣고 다시 슬기로서 괴로움의 참다움을 바로 본다면,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듣고, 다시 슬기로서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바로 본다면 비구여, 이런 것을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 하며, 나는 이렇게 많이 알고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시설하느니라.”

비구는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때에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비구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는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를 말씀하시니, 어떤 것을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라 하며, 어떻게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를 시설하나이까.”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시어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비구여. 이른바 좋은 도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가 있으며,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비구여,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라 하며, 어떻게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를 시설하나이까.’고 너는 이렇게 물었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비구여, 만일 비구가 자기를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자기와 남을 함께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고, 비구는 다만 자기를 요익(饒益)하게 하고, 남을 요익하게 하며, 또한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기를 생각하고, 세상을 불쌍히 여기어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여 도리와 요익을 구한다면 비구여, 이런 것을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라 하며, 나는 이렇게 총명하고 큰 슬기가 있는 비구를 시설하느니라.”

비구는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때에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지고 잘 외워 익힌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돌아갔다.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마음에 방일(放逸)이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하였다. 그는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마음에 방일이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한 뒤에는 큰 종족의 아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는 목적인 오직 <위없는 범행>을 이루어 마쳤다. 그래서 변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험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존자는 법을 알아 이에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73. 부우미자경[浮彌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노닐으시면서 죽림 가란다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부우미자[浮彌]도 또한 왕사성의 일이 없는 선실(禪室)에 있었다.

이 때에 존자 부우미자는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왕사성으로 들어가 밥을 빌려고 하다가 존자 부우미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왕사성으로 들어가 밥을 비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는 이제 왕자 니베사나[耆婆先那] 동자(童子) 집으로 가자’고.

이에 존자 부우미자는 곧 왕자 니베사나 동자 집으로 갔다. 왕자 니베사나 동자는 멀리서 존자 부우미자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고, 합장하고 존자 부우미자를 행해 이렇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존자 부우미자시여, 오랜만이십니다, 이 평상에 앉으십시오.”

존자 부우미자는 곧 자리에 앉았다. 왕자 니베사나 동자는 존자 부우미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존자 부우미자시여, 사뢰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존자 부우미자는 대답하였다.

“왕동자(王童子)여, 묻고 싶으면 물어라. 나는 듣고 생각해 보리라.”

왕동자는 곧 존자 부우미자에게 물었다.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내게 와서 ‘왕동자여, 어떤 사람은 원(願)을 세우고 바른 범행을 행하여 반드시 결과를 얻고, 혹은 원이 없으며, 혹은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혹은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바른 범행을 행하여도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존자 부우미자의 스승님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며,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존자 부우미자는 말하였다.

“왕동자여, 나는 세존에게서 직접 듣지 못하였고, 또 모든 범행자(梵行者)에게서도 직접 듣지 못하였다. 왕동자여, 세존께서는 아마 ‘혹 어떤 사람은 원을 세우고 바른 범행을 행하여 반드시 결과를 얻고, 혹은 원이 없으며, 혹은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혹은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바른 범행을 행하여도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는다.’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왕동자는 사뢰었다.

“만일 존자 부우미자의 스승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이것은 세상, 하늘, 악마, 범(梵), 사문, 바라문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거기서 가장 제일이십니다. 존자 부우미자시여, 여기서 공양을 받으소서.”

존자 부우미자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았다. 왕동자는 존자 부우미자가 잠자코 청을 받은 것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손 물을 돌리고, 극히 깨끗하고 맛나며 풍성한 여러 가지 음식을 손수 별러 한껏 먹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그릇을 거두고, 다시 손 물을 돌린 뒤에 조그만 평상을 가지고 와서 따로 앉아 설법을 들었다. 존자 부우미자는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였다. 한량이 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여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왕동자와 함께 서로 의논한 것을 모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들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부우미자여, 왜 왕동자를 위하여 네 가지 비유를 말하지 않았느냐.”

존자 부우미자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네 가지 비유라 하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부우미자여,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특한 소견이 있고, 사특한 소견의 정(定)이 있다. 그는 원을 세우고 행하지마는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기도 하면서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사특한 것으로서 결과를 구하는 것이니 이른바 도(道)가 없기 때문이다.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쇠젖을 얻으려고 쇠뿔을 짜면 그는 결코 젖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이,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쇠젖을 얻으려는 사람이 쇠뿔을 짜면 결코 젖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으로써 젖을 구하였으니 곧 쇠불을 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사특한 소견과 사특한 소견의 정(定)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그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사특한 범행을 을 행하면 결코 그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없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쇠젖을 얻으려고 소를 배불리 잘 먹여 쇠젖을 짜면 그는 반드시 젖는 것과 같이,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쇠젖을 얻으려는 사람이 소를 배불리 잘 먹여 쇠젖을 짜면, 그는 반드시 젖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젖을 구하였으니 곧 쇠젖을 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특한 소견이 있고 사특한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결과를 구하는 것이니 곧 도가 없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타락죽을 얻으려고 그릇에 물을 담아 대새끼로 이것을 짜는 것과 같나니, 그는 결코 타락죽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타락죽을 구하였으니 곧 물을 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사특한 소견과 사특한 소견의 정이 있어 그 원을 세워 행하되,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타락죽을 얻으려고 그릇에 타락을 담아 대새끼로 그것을 짜면, 그는 반드시 타락죽을 얻을 것과 같이,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도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타락죽을 얻으려고 그릇에 타락을 담아 대새끼로 그것을 짜면, 그는 반드시 타락죽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타락을 구하였으니 곧 타락죽을 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특한 소견과 사특한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그는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없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기름을 얻으려고 짜는 기구[苲具]에 모래를 담아 냉수에 담그고 그것을 가져다 누르면 결코 기름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이,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기름을 얻으려는 사람이 짜는 기구에 모래를 담아 냉수에 담그고 그것을 가져다 누르면 결코 기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기름을 구하였으니 곧 모래를 눌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사특한 소견과 사특한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기름을 얻으려고 짜는 기구에 삼씨를 담아 더운물에 담그고 그것을 가져다 누르면 그는 반드시 기름을 얻는 것과 같이,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기름을 얻으려는 사람이 짜는 기구에 삼씨를 담아 더운물에 담그고 그것을 가져다 누르면 그는 반드시 기름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기름을 구하였으니 곧 삼씨를 눌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사특한 소견과 사특한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행하되,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결과를 구하였기 때문이니 곧 도가 없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을 얻으려고 젖은 나무로 불섶을 삼고 젖은 비비개로 비비면 결코 불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이,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불을 얻으려는 사람이 젖은 나무로 불섶을 삼고 젖은 비비개로 비비면 결코 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불을 구하였으니 곧 젖은 나무를 비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사특한 소견과 사특한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사특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을 얻으려고 마른나무로 불섶을 삼고 마른 비비개로 비비면 그는 반드시 불을 얻는 것과 같이,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불을 얻으려는 사람이 마른나무로 불섶을 삼고 마른 비비개로 비비면, 그는 반드시 불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불을 구하였으니 곧 마른나무를 비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우미자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정이 있어 그가 원을 세워 행하되,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니, 원이 없고,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며,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바르게 결과를 구하였으니 곧 도가 있었기 때문이니라.

부우미자여, 만일 네가 왕동자를 위해 이 네 가지 비유를 말하면 왕동자는 이것을 듣고 반드시 매우 기뻐하고, 한평생 너에게 의복, 음식, 침구, 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공양할 것이니라.”

존자 부우미자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나는 일찍 이 네 가지 비유를 들은 일이 없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이까. 이제 처음으로 세존에게서 듣자왔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부우미자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74. 수법경(受法經) 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세상에는 진실로 네 가지 받는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겁다.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가. 혹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아름답게 꾸민 한 여자와 서로 즐기면서 ‘저 사문과 바라문은 애욕에서 미래에 어떠한 두려움이 있고 어떠한 재환(災患)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기를 주장하는가.’고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아름답게 꾸민 여자 몸에서 즐거운 촉감을 느끼면서 그 여자와 서로 즐기며 유희한다. 그는 이 법을 빠짐없이 받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 그제서야 그들은 ‘저 사문과 바라문은 애욕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이 재환을 보았으므로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기를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애욕으로 말미암아, 애욕을 다투고, 애욕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지극한 괴로움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마치 여름 한낮이 몹시 더워 어떤 갈등(葛藤) 열매가 햇볕에 쪼여 어떤 사라나무 밑에 떨어지면 그 사라나무 신은 그 때문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 나무 신에게는 변방에 있는 종자촌(種子村)이나 신촌(神村)의 온갖 곡식과 약나무에 친척이나 친구되는 나무 신들이 있어, 그 종자에서 미래에 두려움이 있고 재환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곧 그 나무 신에게 가서 위로하기를 ‘나무 신이여, 두려워하지 마라. 나무 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이 종자가 혹은 사슴에게 먹히고, 공작에게 먹히며, 혹은 바람에 불려 가고, 마을 불에 타며, 혹은 들 불에 타고, 부서지면 종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나무 신이여, 너는 안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 불려 가지도 않고, 마을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 불에 타지도 않고, 또 부서지지도 않아, 종자가 되면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고, 구멍나지도 않으며, 쪼개지지도 않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하지도 않아, 큰비를 만나 젖게 되면 곧 빨리 날 것이다.’라고 했다. 그 나무 신은 ‘저 변방의 종자촌이나 신촌의 온갖 곡식과 약나무에 친척이나 친구되는 나무 신들은 종자에서 미래에 두려움이 있고 재환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내게 와서 나무 신이여, 두려워하지 마라. 나무 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이 종자가 혹은 사슴에게 먹히고, 공작에게 먹히며, 혹은 바람에 불려 가고, 마을 불에 타며, 혹은 들 불에 타고, 부서지면 종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나무 신이여, 너는 안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 불려 가지도 않고, 마을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 불에 타지도 않고, 또 부서지지도 않아, 종자가 되면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고, 구멍나지도 않으며, 쪼개지지도 않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하지도 않아, 큰비를 만나 젖으면 곧 빨리 날 것이다라고 무엇 때문에 위로하는가’고.

그래서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는 부드럽고 연하며, 마디가 되어 몸에 부딪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는 부드럽고 연하며, 마디가 되어 몸의 촉감을 느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래서 나무는 큰 가지와 마디와 잎사귀를 만듦으로 인하여 그것들은 그 나무를 둘러싸고 그 위를 덮는다. 그 위를 덮은 뒤에야 그 나무 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변방에 있는 종자촌이나 신촌의 온갖 곡식과 약나무에 친척이나 친구되는 나무 신들은 종자에서 이 미래에 두려움과 이 재환을 보았기 때문에 내게 와서 나를 위로하기를 나무 신이여, 두려워하지 마라. 나무 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이 종자가 혹은 사슴에게 먹히고, 공작에게 먹히며, 혹은 바람에 불려 가고, 마을 불에 타며, 혹은 들 불에 타고, 부서지면 종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나무 신이여, 너는 안온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 불려 가지도 않고, 마을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 불에 타지도 않고, 또 부서지지도 않아서 종자가 된다.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고, 구멍나지도 않으며, 쪼개지지도 않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하지도 않아, 큰비를 만나 젖으면 곧 빨리 난다고 하였다. 나는 종자를 말미암고 종자를 반연하였으므로 이 몹시 괴롭고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다’고.

이와 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아름답게 장식한 여자와 서로 즐기면서 ‘저 사문과 바라문은 애욕에서 미래에 어떠한 두려움이 있고 어떠한 재환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욕심을 끊고 욕심을 끊기를 주장하는가.’고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이 아름답게 장식한 여자 몸에서 즐거운 촉감을 느끼면서 그 여자와 서로 즐기며 유희한다. 그는 이 법을 빠짐없이 받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 그제서야 그들은 ‘저 사문과 바라문은 애욕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이 재환을 보았으므로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기를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애욕으로 말미암아, 애욕을 다투고, 애욕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지극한 괴로움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받는 법이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 것인가. 혹 어떤 사람은 자연의 무겁고 탁한 탐욕, 무겁고 탁한 성냄, 무겁고 탁한 어리석음이 있다. 그는 자주 욕심을 따라 괴로움을 받고, 걱정하고 슬퍼하며, 자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 괴로움을 받고, 걱정하고 슬퍼한다. 그는 그 괴로움과 걱정 때문에 한평생 범행을 닦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까지 한다. 그는 이 법을 받아 완전히 이루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난다. 이것을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움의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 것인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옷이 없이 맨몸으로, 혹은 손으로 옷을 삼고, 혹은 나뭇잎으로 옷을 삼으며, 혹은 구슬로 옷을 삼는다. 혹은 병으로 물을 뜨지 않고, 혹은 뒤웅박으로 물을 뜨지 않는다. 칼이나 막대기로 빼앗은 음식은 먹지 않고, 속여서 얻은 음식은 먹지 않는다. 스스로 가지도 않고, 편지를 보내지도 않는다. 오는 것을 존경하지도 않고, 착한 것을 존경하지도 않으며, 가만히 있는 것을 존경하지도 않는다. 만일 둘이서 먹으면 그 가운데서 먹지 않고, 아이 밴 여자가 있는 집 음식은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 음식은 먹지 않고, 똥파리가 날아오는 집 음식은 먹지 않는다. 생선을 먹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나쁜 물은 먹지 않으며, 혹은 물을 아주 마시지 않으면서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을 먹고 한 입으로 만족하고, 혹은 二, 三, 四 내지 일곱 입을 먹고 일곱 입으로 만족하며, 혹은 한 번 얻어먹고 한 번 얻은 것으로 만족하며, 혹은 二, 三, 四 내지 일곱 번 얻고 일곱 번 얻은 것으로 만족하며, 혹은 하루에 한 끼를 먹고 한 끼를 먹는 것으로 만족하며, 혹은 二, 三, 四, 五, 六, 七일이나 반달, 한 달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로 만족하며, 혹은 연줄기를 먹고, 혹은 피를 먹으며, 혹은 메기장을 먹고, 혹은 보리 기울을 먹으며, 혹은 두두라(頭頭羅) 밥을 먹고, 혹은 머트러운 밥을 먹는다. 혹은 일없는 곳에 가서 일이 없이 혹은 나무뿌리를 먹고, 혹은 열매를 먹으며,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는다.

혹은 꿰맨 옷[連合衣]를 입고, 혹은 털옷을 입으며, 혹은 두사옷[頭舍衣]를 입고, 혹은 털두사옷을 입으며, 혹은 통가죽옷을 입고, 혹은 뚫어진 가죽옷을 입으며, 혹은 통 뚫어진 가죽옷을 입는다.

혹은 머리를 허트리고 머리를 땋으며, 혹은 머리를 허트리고 땋으며, 머리를 깎고 수염을 깎고 수염과 머리를 깎으며, 혹은 머리를 뽑고, 혹은 수염을 뽑으며, 혹은 수염과 머리를 뽑는다.

혹은 섰기만 하고, 혹은 앉기만 하며, 혹은 앉은걸음을 배운다. 혹은 가시덤불에 누워 가시덤불로 평상을 삼고, 풀에 누워 풀로 평상을 삼는다.

혹은 물을 섬기어 밤낮 손으로 물을 쏟고, 혹은 불을 섬기어 끊이지 않고 불을 태우며, 혹은 해와 달을 섬기어 높고 큰 신(神)이라 하여 그를 향하여 합장한다.

이러한 무리들은 한량이 없는 괴로움을 받고 번거럽고 갑갑한 행을 배운다. 그들은 이 법을 받아 완전히 이루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 이것을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로움을 받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자연히 무겁고 탁한 탐욕, 무겁고 탁한 성냄, 무겁고 탁한 어리석음이 없다. 그는 자구 욕심을 따르지 않아 괴로움과 걱정과 슬픔을 받지 않으며, 자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따르지 않아 괴로움과 걱정과 슬픔을 받지 않는다. 그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한평생 범행을 닦아 그 마음이 즐겁고 기쁘다. 그는 이 법을 받아 완전히 이룬 뒤에 다섯 가지 하분결(下分結)이 다하고, 저기에 화생(化生)하여 반열반(般涅槃)에 들어가서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나니, 세상에는 진실로 이 네 가지 받는 법이 있다고 함은 이 때문에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75. 수법경(受法經) 하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루수(拘樓瘦)의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구루(拘樓)의 서울에 노닐으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하고자 하고, 이렇게 희망하며,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원하며, 이렇게 뜻한다.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하게 하고, 기쁘고 사랑스럽고 옳은 법을 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고자 하고, 이렇게 희망하며,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원하며, 이렇게 뜻하지마는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법은 매우 깊어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우며, 통달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내 법은 매우 깊어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우며, 통달하기도 어렵지마는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하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나게 한다. 이것은 어리석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니라.

세상에는 진실로 네 가지 받는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움의 갚음을 받는다.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가. 혹 어떤 사람은 스스로 즐거워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살생(殺生)하고, 살생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또 그는 스스로 즐거워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도둑질, 사음, 거짓말 내지 사특한 소견을 가지고, 사특한 소견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지마는 불선(不善)은 불선을 좇아 생기어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을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가. 어떤 사람은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근심하면서 살생을 끊고 살생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또 그는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근심하면서 도둑질, 사음, 거짓말 내지 사특한 소견을 끊고, 사특한 소견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괴롭고 마음도 괴롭지마는 선(善)은 선을 좇아 생기어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갚음을 받는가. 혹 어떤 사람은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근심하면서 살생하고, 살생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또 그는 도둑질, 사음, 거짓말 내지 사특한 소견을 가지고, 사특한 소견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괴롭고 마음도 괴로우면서 불선을 좇아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을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가. 혹 어떤 사람은 스스로 즐거워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살생을 끊고, 살생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또 그는 스스로 즐거워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도둑질, 사음, 거짓말 내지 사특한 소견을 끊고, 사특한 소견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우면서 선(善)은 선을 좇아 생기어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그 받는 법이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이 있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이내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마치 아마니약(阿摩尼藥)이 약간의 좋은 빛깔과 향기와 맛이 있어도 거기에 독(毒)을 섞으면 어떤 병자가 그것을 먹을 때에는 좋은 빛깔과 향기와 맛이 입에도 맞고 또 목도 상하게 하지 않지마는, 먹고 난 뒤에 배에 들어가서는 약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그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이 있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이내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움의 갚음을 받는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이 받는 법이 현재에는 괴로움을 받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이 있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이내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 받는 법이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이내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마치 대소변에 다시 독(毒)을 섞으면, 어떤 병자가 그것을 먹을 때에도 나쁜 빛깔과 냄새가 있고 맛이 없어 입에도 맞지 않고, 또 목도 상하게 하며, 먹고 난 뒤에 배에 들어가서도 약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 받는 법이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이내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이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이 있는 줄을 진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이내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그들은 익히고 행해야 할 법도 진실히 알지 못하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진실히 알지 못한다. 익히고 행해야 할 법도 진실히 알지 못하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진실히 알지 못하므로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은 익히지 않는다.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익히고,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은 익히지 않으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그래서 저 슬기로운 사람은 이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는 즐겁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안다.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곧 그것을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이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그래서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괴로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안다.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즐거우며 옳은 법은 생기고,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한다. 마치 대소변에 몇 가지 약을 섞으면, 어떤 병자가 그것을 먹을 때에 먹을 때에는 나쁜 빛깔과 냄새가 있고 맛이 없어 입에도 맞지 않고, 목도 상하게 하지마는, 먹고 난 뒤에 배에 들어가서는 곧 약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그래서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는 괴롭지마는 미래에는 즐거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안다.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행해 끊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생기고,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갚음을 받는다. 그래서 저 슬기로운 사람은 이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안다.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자꾸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이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그래서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도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안다.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행해 끊지 않으므로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생기고,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한다. 마치 타락젖 꿀에 몇 가지 약을 넣으면, 어떤 병자가 그것을 먹을 대, 먹을 때에도 좋은 빛깔과 향기와 맛이 있어 입에도 맞고 목을 상하게도 하지 않으며, 먹고 난 뒤에 배에 들어가서도 곧 약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 어떤 받는 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갚음을 받는다. 그래서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어떤 받는 법이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갚음을 받는 줄을 진실히 안다. 그것을 진실히 알므로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행해 끊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그들은 익히고 행해야 할 법도 진실히 알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진실히 안다. 익히고 행해야 할 법도 진실히 알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진실히 알므로 곧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익히지 않는다.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은 익히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익히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한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나니, 세상에는 진실로 이 네 가지 받는 법이 있다 함은 이 때문에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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