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장아함경

장아함경9 중집경

다르마 러브 2012. 6. 16. 19:54

제 二분 중집경(衆集經) 제 五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말라에 노닐으시면서 천 二백 五十의 비구들과 함께 파라성에 있는 사두의 암파(菴婆)동산에 이르르셨다.

그 때 세존은 보름날 달 밝을 때 맨땅에 앉으셨고 모든 비구들은 앞뒤를 둘러쌌다. 세존은 밤에 많이 설법해 마치시고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 다 함께 정근하면서 잠자지 않는다. 나는 등병을 앓아 잠깐 쉬고 싶다. 너는 이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그는 대답했다.

“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그 때 세존은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겹으로 접고 오른 쪽 옆구리를 깔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사리불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 파바성에는 니건(尼乾)이 있다. 그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뒤에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항상 서로 잘잘못을 캐고 서로 꾸짖으며 서로 시비한다. ‘나는 이 법을 알지마는 너는 모른다. 너는 사견(邪見)을 가졌지마는 나는 바른 법을 가졌다’고. 이렇게 말이 서로 얽히어 앞뒤가 없다. 모두 자기 말을 참되고 바르다고 일컬어 ‘내 말은 이기고 네 말은 진다. 나는 이제 담론(談論)의 주인이 되겠으니 너희들은 물을 것이 있으면 내게 와서 물으라’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 이 나라 백성으로써 니건을 받드는 자는 다 저 무리들의 다투는 소리를 싫어하고 괴로워한다. 그것은 그 법이 참되고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이 진정하지 못하면 해탈의 길로 나아갈 길이 없다. 비유하면 썩은 탑은 다시 흙을 바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삼마아삼붓다[三耶三佛]의 말씀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다만 우리 석자(釋迦) 무상존(無上尊)의 법만은 가장 참되고 발라 해탈의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새로운 탑은 장엄하게 꾸미기가 쉬운 것과 같다. 이것이 삼마아삼붓다의 말씀이다. 비구들이여,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법과 율(律)을 모아 저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세우고 이익 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한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은 다 음식을 우러러 생존한다.’ 여래의 말씀에 또 한 법이 있다. ‘일체 중생은 행(行)으로 말미암아 있다.’ 이것이 한 법으로서 여래의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함께 이것을 모아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두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一은 명(名)이요 二는 색(色)이다. 또 두 법이 있다. 一은 치(癡)요 二는 애(愛)다. 또 두 법이 있다. 一은 유견(有見)이요 二는 무견(無見)이다. 또 두 법이 있다. 一은 무참이요 二는 무괴(無愧)다. 또 두 법이 있다. 一은 유참이요 二는 유괴(有愧)다. 또 두 법이 있다. 一은 진지(盡智)요 二는 무생지(無生智)다. 두 법, 두 인(因), 두 연(緣)이 있어 욕애(慾愛)를 낸다. 一은 정묘색(淨妙色)이요 二는 부사유(不思惟)다. 또 두 법, 두 인, 두 연이 있어 진에를 낸다. 一은 원증(怨憎)이요, 二는 불사유다. 또 두 법, 두 인, 두 연이 있어 사견(邪見)을 낸다. 一은 종타문(從他聞)이요, 二는 사사유(邪思惟)다. 또 두 법, 두 인, 두 연이 있어 정견(正見)을 낸다. 一은 종타문이요 二는 정사유(正思惟)다. 또 두 법, 두 인, 두 연이 있다. 一은 학해탈(學解脫)이요 二는 무학해탈(無學解脫)이다. 또 두 법, 두 인, 두 연이 있다. 一은 유위계(有爲界)요 二는 무위계(無爲界)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말씀하신 것이다. 마땅히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三정법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三불선근(不善根)이다. 一은 탐욕이요 二는 진에요 三은 우치다. 또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선근이다. 一은 불탐(不貪)이요 二는 불에요 三은 불치(不痴)다. 또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불선행이다. 一은 불선신행(不善身行)이요 二는 불선구행(不善口行)이다. 三은 불선의행(不善意行)이다. 또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불선행이다. 一은 신불선행이요 二는 구불선행이요 三은 의불선행이다. 또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악행이다. 一은 신악행이요 二는 구악행이요 三은 의악행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선행이니 신선행과 구선행과 의선행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불선상(不善想)이니 욕상(欲想)과 진상(瞋想)과 해상(害想)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불선사(不善思)니 욕사(欲思)와 에사와 해사(害思)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선사니 무욕사와 무에사와 무해사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복업(福業)이니 시업과 평등업과 사유업(思惟業)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수(受)니 낙수(樂受)와 고수(苦受)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애(愛)니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유루(有漏)니 욕루(欲漏)와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화(火)니 욕화(欲火)와 에화와 우치화(愚痴火)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구(求)니 욕구(欲求)와 유구(有求)와 범행구(梵行求)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증성(增盛)이니 아증성(我增盛)과 세증성(世增盛)과 법증성(法增盛)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계(界)니 욕계(欲界)와 에계와 해계(害界)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계(界)니 출리계(出離界)와 무에계와 무해계(無害界)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계(界)니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진계(盡界)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취(聚)니 계취(界聚)와 정취(定聚)와 혜취(慧聚)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계(戒)니 증성계(增盛戒)와 증성정(增盛定)과 증성혜(增盛慧)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삼매(三昧)니 공삼매(空三昧)와 무원삼매(無願三昧)와 무상삼매(無相三昧)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상(相)이니 지식상(止息相)과 정근상(精勤相)과 사상(捨相)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명(明)이니 자식숙명지명(自識宿命智面)과 천안지명(天眼智明)과 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변화(變化)니 一은 신족변화(神足變化)요 二는 지타심수의설법(知他心隨意說法)이요 三은 교계(敎誡)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욕생본(欲生本)이니 日은 현욕(現欲)으로 말미암아 인간이나 천상에 나고 二는 화욕(化欲)으로 말미암아 화자재천(化自在天)에 나고 三은 타화욕(他化欲)으로 말미암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락생(樂生)이니 一은 중생이 자연히 성판(成辦)하여 환락심(歡樂心)을 내는 것이 마치 범광음천(梵光音天)이 처음 난 때와 같은 것이요 二는 중생이 생각[念]을 낙(樂)으로 삼아 스스로 착하다고 외치는 것이 광음천(光音天)과 같은 것이며 三은 지식락(止息樂)을 얻는 것이 변정천(邊淨天)과 같은 것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고(苦)니 행고(行苦)와 고고(苦苦)와 변역고(變易苦)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근(根)이니 미지근(未知根)과 지근(知根)과 지이근(知已根)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당(堂)이니 현성당(賢聖堂)과 천당(天堂)과 범당(梵堂)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발(發)이니 견발(見發)과 문발(聞發)과 의발(疑發)이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론(論)이니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논(論)이 있었다.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요 이런 논이 있을 것이다. 현재에 이런 일이 있고 이런 논이 있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취(聚)니 정정취(正定聚)와 사정취(邪定聚)와 부정취(不定聚)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우(憂)니 신우(身憂)와 구우(口憂)와 의우(意憂)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장로(長老)니 연기장로(年耆長老)와 법장로(法長老)와 작장로(作長老)다. 다시 三법이 있다. 이른바 三안(眼)이니 육안(肉眼)과 천안(天眼)과 혜안(慧眼)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가 말씀하신 바른 법이라 한다. 마땅히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고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네 가지 바른 법을 설명하신다. 이른바 입의 넷 악업(惡業)이니 一은 거짓말이요 二는 두말이요 三은 욕설이요 四는 꾸밈말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입의 넷 선행(善行)이니 一은 진실한 말이요 二는 부드러운 말이요 三은 꾸미지 않은 말이요 四는 두말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네가지 성스럽지 않은 말이니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 깨닫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성어(聖語)다. 보면 보았다고 말하고, 들은 것은 들었다고 말하고, 깨달은 것은 깨달았다 말하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으니 이른바 四종 음식이니 단식과 촉식(觸食)과 염식(念食)과 식식(識食)이다. 또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수(受)니 욕수(欲受 )와 아수(我受)와 계수(戒受)와 견수(見受)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박(縛)이니 탐욕신박(貪欲身縛)과 진에신박과 계도신박(戒盜身縛)과 아견신박(我見身縛)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자(刺)니 욕자(欲刺)와 에자와 견자(見刺)와 만자(慢刺)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생(生)이니 난생(卵生)과 태생(胎生)과 습생(濕生)과 화생(化生)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념처(念處)니 이에 비구는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수, 의, 법(受,意,法)의 관(觀)은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의단(意斷)이니 이에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법은 방편으로써 멸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은 방편으로써 깊이 생각하여 그것을 더하고 넓히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신족(神足)이니 이에 비구는 사유욕정멸행(思惟欲定滅行)의 신족을 성취한다. 정진정(精進定), 의정(意定), 사유정(思惟定)도 또한 그러하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선(禪)이다. 이에 비구는 욕악불선(欲惡不善)의 법을 없애고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면서 이생희락(離生喜樂)인 초선(禪)에 들어간다. 유각관(有覺觀)을 멸하고 내신(內信)의 一심으로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면서 정생희락(定生喜樂)인 제 二선에 들어간다. 기쁨을 떠나 평등을 닦아 생각이 나아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알고 모든 성인이 구하는바 억념사락(憶念捨樂)인 제 三선에 들어간다. 고락의 행을 떠나고 먼저 걱정과 기쁨을 멸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생각을 버려 청정하여 제 四선에 들어간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범당(梵堂)이니 一은 사랑이요, 二는 슬퍼함이요, 三은 기쁨이요, 四는 버림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무색정(無色定)이니 이에 비구는 일체의 색상(色想)을 뛰어 넘고, 먼저 진에상을 다해 다른 상(想)을 생각하지 않고, 무량한 공처(空處)를 생각하는 것과 공처를 버리고는 식처(識處)에 들어가는 것과 식처를 버리고 이미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는 것과 불용처를 버리고는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법족(法足)이니 탐하지 않는 법족과 성내지 않는 법족과 바른 생각의 법족과 바른 정(定)의 법족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현성족(賢聖族)이니 이에 비구들은 의복의 족함을 알아 좋은 것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것을 만나도 걱정하지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금기(禁忌)할 바를 알고 출요(出要)의 길을 알아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그 일을 성판(成辦)하여 빠짐도 없고 줄어짐도 없으며 또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일을 성판하게 한다. 이것을 <제 一의 족함을 알아 사는 현성족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아직 항상 뇌란(惱亂)되지 않고, 모든 하늘과 악마, 제석, 사문, 바라문, 하늘 및 세간 사람을 헐거나 꾸짖지 않고, 음식과 와구(臥具)와 병들고 여읠 때의 의약도 다족함을 아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섭법(攝法)이니 혜시(惠施)와 애어(愛語)와 이인(利人)과 등리(等利)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수다원지(支)니 비구들이여 부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과, 법에 있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과, 승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과, 계에 있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수증(受證)이니 견색수증(見色受證)과 신수멸증(身受滅證)과 염숙명증(念宿命證)과 지루진증(知漏盡證)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도(道)니 고지득(苦遲得)과 고속득(苦速得)과 낙지득(樂遲得)과 낙속득(樂速得)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성체(聖諦)니 고성체(苦聖諦)와 고집성체(苦集聖諦)와 고멸성체(苦滅聖諦)와 고출요성체(苦出要聖諦)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사문과(果)니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와 아나함과와 아라한과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처(處)니 실처(實處), 시처(施處), 지처(智處), 지식처(止息處)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지(智)니 법지(法智), 미지지(未知智), 등지(等智), 지타인심지(知他人心智)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변재(辯才)니 법변(法辯), 의변(義辯), 사변(詞辯), 응변(應辯)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식주처(識住處)니 색식주(色識住)는 색을 연(緣)으로 하여 주(住)하여 색과 애(愛)와 함께 더하고 자라나며 수(受)와 상(想)과 행(行) 가운데서도 또한 그와 같이 주한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액(扼)이니 욕액(欲扼), 유액(有扼), 견액(見扼), 무명액(無明扼)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무액(無扼)이니 무욕액(無欲扼), 무유액(無有扼), 무견액(無見扼), 무무명액(無無明扼)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정(淨)이니 계정(戒淨), 심정(心淨), 견정(見淨), 도의정(度疑淨)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지(知)니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줄 알고, 행해야 할 것을 행할 줄 알고, 즐겨 해야 할 것을 즐겨 할 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위의(威儀)니 가야 할 때에 갈 줄 알고, 서야 할 때에 설 줄 알고, 앉아야 할 때에 앉을 줄 알고 누워야 할 때에 누울 줄 아는 것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사유(思惟)니 적은 사유, 넓은 사유, 무량한 사유, 소유(所有)없는 사유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四기론(記論)이니 결정기론(決定記論), 분별기론(分別記論), 힐문기론(詰問記論), 지주기론(止住記論)이다. 다시 四법이 있다. 이른바 부처님의 四불호법(不護法)이니 여래는 신행(身行)이 청정하여 빠지거나 샘이 없어 스스로 방호(防護)하는 것이다. 구행(口行)의 청정, 의행(意行)의 청정, 명행(命行)의 청정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여래의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다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五입(入)이니 눈의 빛깔, 귀의 소리, 코의 냄새, 혀의 맛, 몸의 닿음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수음(受陰)이니 색수음(色受陰)과 수, 상, 행, 식수음(受想行識受陰)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개(盖)니 탐욕개(貪欲盖), 진에개, 수면개(睡眠盖), 도희개(掉戱盖), 의개(疑盖)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하결(下結)이니 신견결(身見結), 계도결(戒盜結), 의결(疑結), 탐욕결(貪欲結), 진에결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상결(上結)이니 색애(色愛), 무색애(無色愛), 무명(無明), 만(慢), 도(掉)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근(根)이니 신근(信根), 정진근(精進根), 염근(念根), 정근(定根), 혜근(慧根)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력(力)이니 신력(信力), 정진력, 염력, 정력, 혜력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멸진지(滅盡支)니 一은 비구는 불여래(佛如來)에 대해서 지진, 등정각(至眞等正覺)의 十호(號)를 구족한 것을 믿는다. 二는 비구는 병이 없어 몸이 항상 안온하다. 三은 순진하고 곧아 아첨이 없다. 능히 이러한 자에게는 여래는 곧 열반에의 길을 보이신다. 四는 스스로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착란(錯亂)하지 않아 옛날의 외우던 것을 기억해 잊지 않는다. 五는 법의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현성(賢聖)의 행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한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발(發)이니 비시발(非時發), 허발(虛發), 비의발(非義發), 허언발(虛言發), 무자발(無慈發)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선발(善發)이니 시발(時發), 실발(實發), 의발(義發), 화언발(和言發), 자심발(慈心發)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증질(憎嫉)이니 주처증질(住處憎嫉), 단월증질(檀越憎嫉), 이양증질(利養憎嫉), 색증질(色憎嫉), 법증질(法憎嫉)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취해탈(趣解脫)이니 一은 몸의 부정상(不淨想) 二는 음식의 부정상 三은 일체행의 무상상(無常想) 五는 죽음의 상이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출요계(出要界)니 一은 비구는 욕심에 대해서 즐겨 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또 친근하지도 않는다. 다만 출요(出要)를 생각하여 멀리 떠나기를 즐기고 친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다루어 부드럽게 하고 출요로 욕심을 떠나며 저 욕심에 의지해 일어나는 바의 모든 번뇌도 또한 다 버리고 멸해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욕출요(欲出要)라 한다. 진에출요, 질투출요(嫉妬出要), 색출요(色出要), 신견출요(身見出要)도 또한 그와 같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희해탈입(喜解脫入)이니 만일 비구가 힘써 부지런해 게으르지 않고 한적한 곳을 즐겨 마음을 오로지 하며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고 다하지 못한 것을 다할 수 있으며 편안하지 못하던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어떤 것을 五라 하는가.

이에 비구는 여래의 설법을 듣고 혹은 범행자(梵行者)의 말을 듣고 혹은 사장(師長)의 설법을 듣고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뜻을 분별하면 마음의 환희를 얻는다. 마음의 환희를 얻고는 법애(法愛)를 얻고 법애를 얻고는 몸과 마음이 안온해진다. 몸과 마음이 안온하고는 곧 선정(禪定)을 얻고 선정을 얻고는 진실한 지견(知見)을 얻는다. 이것을 처음의 해탈입이라 한다. 이에 비구는 법을 듣고 기뻐한 뒤에는 그것을 받아 가져 외우고 또한 즐겨하고 남을 위해 설명하고는 또한 즐겨 하며 생각하여 분별하고는 또한 즐겨 하여 법에 있어서 정(定)을 얻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다시 五법이 있다. 이른바 五인(人)이니 중반열반(中般涅槃), 생반열반(生般涅槃), 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 유행반열반(有行般涅槃), 상류아가니타(上流阿迦尼咤)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의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우리는 마땅히 함께 갖추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 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여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신다. 이른바 내육입(內六入)이니 안입(眼入), 이입(耳入), 비입(鼻入), 설입(舌入), 신입(身入), 의입(意入)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외육입(外六入)이니 색입(色入), 성입(聲入), 향입(香入), 미입(味入), 촉입(觸入), 법입(法入)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식신(識身)이니 안식신(眼識身),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식신(意識身)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촉신(觸身)이니 안촉신(眼觸身), 이, 비, 설, 신, 의촉신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六수신(受身)이니 안수신(眼受身), 이, 비, 설, 신, 의수신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상신(想身)이니 색상(色想), 향상(香想), 미상(味想), 촉상(觸想), 법상(法想)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사신(思身)이니 색사(色思), 성사(聲思), 향사(香思), 미사(味思), 촉사(觸思), 법사(法思)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애신(愛身)이니 색애신(色愛身),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애신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쟁본(諍本)이니 만일 비구가 성내기를 좋아해 버리지 못하고 여래를 공경하지 않고 또한 법을 공경하지 않으며 또한 중을 공경하지 않고 계(戒)에 있어서 샘(漏)이 있고 물들고 더러워 깨끗하지 못하고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다투기를 좋아해 남의 미움을 사고 깨끗한 대중을 어지럽게 하며 하늘과 사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내관(內觀)하라. 만일 성냄과 원한을 가지고 저렇게 대중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거든 마땅히 화합(和合)한 중을 모아 널리 방편을 베풀어 이 다툼의 근본을 뽑아라. 너희들은 또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 하여 스스로 관찰하라. 만일 맺힌 원한이 이미 다했거든 마땅히 다시 방편으로써 그 마음을 막아 다시 일어나게 하지 말라. 모든 비구들이여, 성내고 뒤틀어져 자상하지 못하고 인색하고 질투하며 교활하고 허망하여 스스로 자기 소견에 인해 그릇 받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사견(邪見)에 헤매고 변견(邊見)과 함께 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계(界)니 지계(地界), 화계(火界), 수계(水界), 풍계(風界), 공계(空界), 식계(識界)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찰행(察行)이니 눈은 빛을 살피고 귀는 소리를, 코는 냄새를, 혀는 맛을, 몸은 닿음을, 뜻은 법을 살피는 것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출요계(出要界)니 만일 비구가 나는 사랑하는 마음을 닦고 다시 성을 내리라 한다면 다른 비구들은 말하리라.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를 비방하지 말라. 여래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사랑의 해탈을 닦고자 하면서 다시 성내는 마음을 낸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처님은 성내는 마음을 다 없앤 뒤에 비로소 사랑하는 마음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나는 슬픔의 해탈을 행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낸다. 기쁨의 해탈을 행하여 걱정하고 번민하는 마음을 낸다. 평등의 해탈을 행하여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낸다. 무아(無我)의 행을 행하여 의심하는 마음을 낸다. 무상(無想)의 행을 행하여 뭇 어지러운 생각을 낸다고 한다면 또한 그와 같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무상(無上)이니 견무상(肩無上), 문무상(問無上), 이양무상(利養無上), 계무상(戒無上), 공경무상(恭敬無上), 억념무상(憶念無上)이다. 다시 六법이 있다. 이른바 六사념(思念)이니 부처의 생각, 법의 생각, 승의 생각, 계의 생각, 보시의 생각, 하늘의 생각이다. 이것은 여래가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갖추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여 이익 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일곱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七비법(非法)이니 믿음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으며 뉘우침이 없고 들은 것이 적으며 게으르고 잊음이 많으며 지혜가 없는 것이다. 다시 七법이 있다. 이른바 七정법이니 믿음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으며 뉘우침이 있고 들은 것이 많으며 꾸준히 힘쓰고 모두 기억하며 지혜가 많은 것이다. 다시 七법이 있다. 이른바 七식주(識住)니 어떤 중생이 있어 몇 가지의 몸과 몇 가지 생각을 가지는 것은 하늘과 및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식주(初識住)다. 어떤 중생이 있어 몇 가지의 몸과 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범광음천(梵光音天)이 최초로 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二식주다. 어떤 중생이 있어 한 몸과 몇 가지 생각을 가지는 것은 광음천이 그것이다. 이것이 三식주다. 어떤 중생이 있어 한 몸과 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四식주다. 어떤 중생은 공처(空處)에 주(住)하고 식처(識處)에 주하고 불용처(不用處)에 주한다. 다시 七법이 있다. 이른바 七근법(勤法)이다. 一은 비구가 계행(戒行)을 힘쓰고 二는 탐욕을 없애기에 힘쓰고 三은 사견(邪見)을 부수기에 힘쓰고 四는 많이 듣기를 힘쓰고 五는 정진을 힘쓰고 六은 바른 생각을 힘쓰고 七은 선정을 힘쓰는 것이다.

다시 七법이 있다. 이른바 七상(想)이니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음식이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 죽음의 생각, 무상하다는 생각, 무상은 괴롭다는 생각, 괴로움은 나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七법이 있다. 이른바 七삼매구(三昧具)니 바른 소견,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기억이다. 다시 七법이 있다. 이른바 七각의(覺意)니 염각의(念覺意), 법각의(法覺意), 정진각의(精進覺意), 희각의(喜覺意), 의각의, 정각의(定覺意), 호각의(護覺意)다. 이것이 여래가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갖추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여 이익 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여덟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신다. 이른바 세상의 八법이니 이(利)와 쇠(衰)와 헐뜯음과 기림과 칭찬과 비방과 괴로움과 즐거움이다. 다시 八법이 있다. 이른바 八해탈이니 색(色)이 색을 관찰하는 것은 一해탈이다. 안으로 색상(色想)이 없이 바깥 색을 관찰하는 것은 二해탈이다. 깨끗한 해탈은 三해탈이다. 색상(色想)을 초월하여 성내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해탈에 주하는 것은 四해탈이다. 공처를 넘어 식처(識處)에 주하는 것은 五해탈이다. 식처를 넘어 불용처(不用處)에 주하는 것은 六해탈이다. 불용처를 넘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주하는 것은 七해탈이다. 유상무상처를 넘어 상지멸(想知滅)에 주하는 것은 八해탈이다. 다시 八법이 있다. 이른바 八성도(聖道)니 바른 소견,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기억, 바른 정(定)이다. 다시 八법이 있다. 이른바 八인(人)이니 수다원 향(向), 수다원, 사다함 향, 사다함, 아나함 향, 아나함, 아라한 향, 아라한이다. 이것은 여래가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갖추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여 이익 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홉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신다. 이른바 九중생거(衆生居)니, 어떤 중생이 몇 가지의 몸과 몇 가지의 생각을 가지는 것은 하늘과 및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이 몇 가지의 몸과 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범광음천이 최초에 나는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二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몸과 몇 가지 생각을 가지는 것은 광음천이 그것이다. 이것이 三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이 한 모과 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변정천이 그것이다. 이것이 四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이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 것은 무상천(無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五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은 공처에 주한다. 이것이 六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은 식처에 주한다. 이것이 七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은 불용처에 주한다. 이것이 八중생거다. 다시 어떤 중생은 유상무상에 주한다. 九중생거다. 이것은 여래의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갖추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여 이익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열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신다. 이른바 十무학법(無學法)이니, 무학의 바른 소견,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기억, 바른 방편, 바른 정, 바른 지혜, 바른 해탈이다. 이것은 여래의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갖추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여 이익 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그때 세존은 사리불의 말을 인가(印可)하셨다. 때에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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