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 제 十七권
제 二十五 사제품(四諦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진리의 법을 닦아 행하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괴로움의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도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다. 둘째는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다. 셋째는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다. 넷째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이니, 그 이치는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도 다할 수 없고 말로도 다할 수 없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진리인가. 이른바 괴로움의 진리란 나는 괴로움, 늙는 괴로움, 앓는 괴로움, 죽는 괴로움과, 근심, 슬픔, 번민의 괴로움과 미워하는 이와 만나는 괴로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니, 통틀어 말하면 다섯 쌓임의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인가. 이른바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란 애정이 탐욕과 어울려 마음이 항상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인가. 이른바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란 그 애욕이 아주 없어져 남음이 없고 다시는 새로 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사라지는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인가. 괴로움을 벗어나는 진리란, 곧 성현의 여덟 가지 길이니, 이른바 바른 소견, 바른 다스림, 바른 말, 바른 행,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생각, 바른 삼매를 말한다. 이것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진리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진리는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세존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라 한다. 모든 중생으로서 두발 갖이, 세발 갖이, 네발 갖이나, 욕심 세계, 형상 세계, 무형 세계,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세계의 여러 중생 중에서 여래가 최상이신데, 그이가 이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네 가지 진리라고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을 네 가지 진리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언제나 나고 죽음 속에 있어서 다섯 길을 바퀴 돌게 된다. 이제 나는 이 네 가지 진리를 얻었기 때문에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갔으며, 이 진리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나고 죽는 근본을 끊어,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알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이 네 가지 진리의 법을
그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면
나고 죽는 속에서 바퀴 돌면서
끝내는 거기서 해탈 못한다.
만일 이제 이 네 가지 진리를
밝게 깨달아 환히 알면
나고 죽는 뿌리를 끊음으로써
다시는 후생 몸 받지 않으리.
“만일 네 무리로서 이 진리를 깨달아 알지 못하면 곧 다섯 길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방편을 지어 이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법이 있어 사람을 많이 이익 되게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법은 선지식을 친근하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아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법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법이 있어 사람을 많이 이익 되게 한다’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곧 일찍이 없던 네 가지 법이 세상에 나타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 중생들은 집착이 많다. 만일 그것을 위해 집착하지 않는 법을 설명하면, 그들은 그것을 받들어 가져 생각하고 수행하면서 마음이 거기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여래가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일찍이 없던 네 가지 법이 세상에 나타나나니, 이것이 이른바 ‘첫째의 일찍이 없던 법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이니라.
다시 아아난다야, 중생들은 바퀴 돌아 머무르지 않고 항상 다섯 갈래 길에 있다. 만일 그들을 위해 법을 설명하면 그들은 그것을 받들어 가져 마음이 거기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여래가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이 둘째의 일찍이 없던 법이 세상에 나타나느니라.
다시 아아난다야, 이 중생들은 항상 교만을 품어 마음에서 버리지 않는다. 혹 설법을 시키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받들어 가져 마음이 거기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아난다야, 이 중생들이 항상 교만을 품어 잠깐도 버리지 않을 때 만일 그들을 위해 설명하면 그들은 그것을 받들어 가진다. 이것이 이른바 ‘셋째의 일찍이 없던 법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이니라.
다시 아아난다야, 이 중생들은 무명에 덮이어 있다. 만일 그들을 위해 유명(有名)의 법을 설명하면, 그들은 그것을 받들어 가져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아아난다야, 이 유명과 무명의 법을 설명할 때에는 그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져 항상 즐거이 수행한다. 아아난다야,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이 넷째의 일찍이 없던 법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곧 이 일찍이 없던 네 가지 법이 세상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아아난다야, 마땅히 여래에 대해 기뻐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라. 아아난다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아아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짐(擔)을 설명하고 짐을 진 사람을 설명하고 짐의 인연을 설명하고 짐을 버리는 것을 설명하리라. 너의 비구들은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라. 나는 지금 설명하리라.”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짐이라 하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쌓임이다. 다섯 가지 쌓임이란 곧 몸, 느낌, 생각, 지어 감, 의식의 쌓임이니, 이것을 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짐을 진 사람이라 하는가. 이른바 짐 진 사람이란 사람의 몸이 바로 그것이다. 즉 ‘자(字)는 무엇이요.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그리고 어떤 수명을 받았는가.’라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짐을 진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짐의 인연이라 하는가. 짐의 인연이란 애착하는 인연이 그것이니, 그것은 탐욕과 어울려 마음이 거기서 멀리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짐의 인연이라 하느니라. 짐을 버림이란 이른바 그 애욕을 아주 없애어 남음이 없게 하는 것이니,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짐을 버린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이와 같이 짐을 말하고 짐의 인연과 짐을 진 사람과 짐을 버리는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모든 여래의 행할 바를 나는 이제 다 마쳤다. 그러므로 나무 밑이나 빈곳이나 한데서나 항상 좌선하기를 생각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무거운 짐을 버리기 생각하고
다시는 새 짐을 만들지 말라
짐이란 바로 세상의 병이어니
짐을 버리는 것 첫째 즐거움이다.
그리고 또한 애욕의 결박 끊고
법답지 않은 모든 행을 버려라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떠나면
다시는 후생 몸 받지 않으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방편을 구해 짐을 버리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나기[生]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알나기[卵生], 태나기[胎生], 누기나기[濕生], 바꿔나기[化生]이니라.
어떤 것이 알나기인가. 이른바 알나기란, 닭, 새, 까마귀, 까치, 공작, 뱀, 고기, 개미 종류를 가리킴이니 이것은 다 알나기이다. 이것을 알나기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태나기인가. 이른바 사람, 축생 및 두 발 갖이 벌레이니, 이것을 태나기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누기나기인가. 이른바 썩은 고기 속의 벌레, 뒷간 속의 벌레 및 송장 속의 벌레 따위이니, 이런 것을 다 누기나기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바꿔나기인가. 이른바 모든 하늘, 지옥, 사람 혹은 축생이니, 이것을 바꿔나기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네 가지 나기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네 가지 나기를 버리고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존자 샤아리푸트라와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자아자그리하의 카란다 대나무 동산에 있었다. 그때에 샤아리푸트라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이른바 첫째 사람은 번뇌와 서로 따르면서도 마음에 번뇌가 있는 줄을 모르며, 또 어떤 사람은 번뇌와 서로 따르면서 마음에 번뇌가 있는 줄을 여실히 안다. 또 어떤 사람은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모르며, 또 어떤 사람은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으면서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안다.
그 셋째 사람으로서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번뇌가 없는 사람 중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넷째 사람으로서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으면서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아는 사람은 번뇌가 없는 사람 중에서 가장 제일이 된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이런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 때에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샤아리푸트라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번뇌와 서로 따르는 사람으로서 한 사람은 못나고 한 사람은 훌륭하다 하는가. 또 무슨 이유로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서 한 사람은 못나고 한 사람은 훌륭하다 하는가.”
샤아리푸트라는 대답하였다.
“저 번뇌와 서로 따르면서도 마음에 번뇌가 있는 줄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깨끗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그는 곧 깨끗하다고 생각하오. 그가 깨끗하다고 생각할 때에 그는 곧 욕심을 일으키고, 욕심을 일으키고는 곧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을 가진 채, 목숨을 마치오. 그 때에 그는 방편을 구해 욕심을 없애지 못하고,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을 가진 채 목숨을 마치고 마는 것이오.
모옥갈라아나님, 알아야 하오. 마치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서 구리 그릇을 샀는데 먼지와 때가 묻어 매우 더러웠소. 그러나 그 사람은 때때로 닦지도 않고 씻지도 않아서 그 그릇은 갈수록 때가 생겨 더욱 더러워지는 것처럼, 그 첫째 사람도 그와 같아서 번뇌와 서로 따르면서도 마음에 번뇌가 있는 줄을 여실히 모르고 그는 곧 생각하오. ‘나는 깨끗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깨끗하다고 생각하고는 곧 욕심을 내고, 욕심을 내고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가진 채 목숨을 마치면서도 방편을 구해 그 욕심을 없애지 않소.
그 둘째 사람은 번뇌와 서로 따르면서 마음에 번뇌가 있는 줄을 여실히 알아 ‘나는 깨끗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리라’고 생각하오. 그는 깨끗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짐으로써 욕심을 내지 않소. 그래서 방편을 구해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은 거두며 미치지 못한 것은 미치게 하여 곧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고, 또 번뇌가 없이 목숨을 마치오.
마치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서 구리 그릇을 샀는데 먼지와 때가 묻었으면, 그는 때때로 닦고 씻어 깨끗이 하는 것처럼 이 사람도 그와 같아서, 번뇌와 서로 따르면서 마음에 번뇌가 있는 줄을 여실히 아오. 그는 곧 깨끗하다고 생각을 버리고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오. 그는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다시 방편을 구해,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은 거두며 증득하지 못한 것은 증득하오. 그래서 욕심이 없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이 목숨을 마치오. 모옥갈라아나님, 이것이 이른바 ‘번뇌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한 사람은 못나고 한 사람은 훌륭하다’는 것이오.”
모옥갈라아나는 물었다.
“그러면 또 무슨 이유로 두 사람이 다 번뇌를 따르지 않는데 한 사람은 못나고 한 사람은 훌륭하다 하는가.”
샤아리푸트라는 대답하였다.
“그 셋째 사람은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알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방편을 구해 생각하지 않지마는 얻지 못한 것을 얻었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었으며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였다’고. 그래서 그는 욕심이 있고 성냄과 어리석음에 얽매인 채 목숨을 마치오.
마치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서 구리 그릇을 샀는데 티끌과 때가 묻었소. 그러나 그는 때때로 씻지도 않고 닦지도 않는 것처럼, 그 셋째 사람도 그와 같아서 번뇌와 서로 따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모르고 또 ‘나는 방편을 구해 이 온갖 번뇌를 없애리라’고 공부하지도 않소.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가진 채 목숨을 마치는 것이오.
그 넷째 사람은 번뇌와 어울리지 않으면서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아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방편을 구해 얻지 못한 것은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은 거두며 증득하지 못한 것은 증득하리라’고. 그래서 그는 이런 번뇌가 없이 목숨을 마치오.
마치 어떤 사람이 시장에 가서 좋은 구리 그릇을 얻어 매우 깨끗한데, 다시 때때로 닦고 씻으면 그 그릇은 더욱 깨끗하고 고와지는 것처럼, 그 넷째 사람도 그와 같아서 번뇌와 어울리지 않으면서 마음에 번뇌가 없는 줄을 여실히 알지마는 그는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방편을 구해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은 거두며 증득하지 못한 것은 증득하리라’고. 그래서 그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번뇌가 없이 목숨을 마치는 것이오.
모옥갈라아나님, 이것이 이른바 ‘번뇌와 어울리지 않아 마음에 번뇌가 없는 두 사람으로서, 그것을 여실히 아는 사람은 훌륭하고 여실히 모르는 사람은 못났다’는 것이오.”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물었다.
“어찌하여 번뇌라 부르는가.”
샤아리푸트라는 대답하였다.
“모옥갈라아나님, 알아야 하오.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온갖 삿된 소견을 일으키기 때문에 번뇌라 하오. 혹 어떤 사람은 생각하오. ‘여래께서는 내게 이치를 물으신 뒤에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시고, 다른 비구들에게 이치를 물어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시지 않았으면’하고. 그러나 때로는 세존께서 다른 비구에게 말씀하시어 설법하시고 그 비구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으면 그는 ‘여래는 설법하시면서 내게는 말씀하시지 않는다. 내가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고. 이리하여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소.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둘은 다 좋지 않은 것이오.
혹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내가 항상 비구들 앞에 서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고 다른 비구는 비구들 앞에 서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지 못하게 했으면...’ 그러나 때로는 다른 비구가 비구들 앞에 서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고, 자기가 비구들 앞에 서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나는 비구들 앞에 서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지 못했다’고 하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다 좋지 않은 것이오.
모옥갈라아나님, 알아야 하오. 또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내가 비구들 앞에 앉아 물과 밥을 먼저 받고 다른 비구는 비구들 앞에 앉아 물과 밥을 먼저 받지 못하게 했으면...’ 그러나 때로는 다른 비구가 비구들 앞에 앉아 물과 밥을 먼저 받고, 자기가 비구들 앞에 앉아 물과 밥을 먼저 받지 못하게 되면 그는 ‘나는 비구들 앞에 앉아 물과 밥을 먼저 받지 못했다’고 하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좋지 못한 것이오.
또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내가 밥을 먹은 뒤에 시주를 위해 설법하고, 다른 비구는 밥을 먹은 뒤에 시주를 위해 설법하지 못하게 했으면...’ 그러나 때로는 다른 비구가 공양을 든 뒤에 시주를 위해 설법하고 자기가 공양을 든 뒤에 시주를 위해 설법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나는 밥을 먹은 뒤에 시주를 위해 설법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좋지 못한 것이오.
또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내가 동산으로 가서 장자나 바라문을 위해 설법하고 다른 비구는 동산으로 가서 장자나 바라문을 위해 설법하지 못하게 했으면...’ 그러나 때로는 다른 비구가 산으로 가서 장자나 바라문을 위해 설법하고 자기가 동산으로 가서 장자나 바라문을 위해 설법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나를 동산으로 가서 장자나 바라문을 위해 설법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좋지 못한 것이오.
또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지금 계율을 범했다. 여러 비구들로 하여금 내가 계율을 범한 것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면...’ 그러나 때로는 그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 여러 비구들이 그 비구가 계율을 범한 것을 아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좋지 못한 것이오.
또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지금 계율을 범했다. 다른 비구들로 하여금 계율을 범한 것을 내게 말하지 못하게 했으면...’ 그러나 때로는 그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 다른 비구가 그 계율을 범한 것을 그에게 말하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좋지 못한 것이오.
또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지금 계율을 범했다. 청정한 비구가 내게 말하고 청정하지 않은 비구로 하여금 내게 말하지 못하게 했으면...’ 그러나 때로는 청정하지 않은 비구가 그에게 ‘너는 계율을 범했다’고 말하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좋지 못한 것이오.
또 때로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오. ‘나는 계율을 범했다. 만일 어떤 비구가 내게 말하려면 대중 속에서가 아니라 그윽한 곳에서 했으면...’ 그러나 때로는 그 비구가 계율을 범했을 때, 대중 속에서 말하고 그윽한 곳이 아니면 그는 ‘이 비구는 그윽한 곳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내게 말한다’고 생각하오. 이미 착하지 않은데 또 탐욕이 있으니 이 둘은 좋지 못한 것이오.
모옥갈라아나님, 이것이 모든 법의 근본으로서 이런 행을 일으키기 때문에 번뇌라 하는 것이오.
또 모옥갈라아나님, 이시오. 모든 네 무리는 이런 행을 범하는 이를 다 듣고 보고 생각해 아오. 그러므로 그가 ‘나는 아라냐행을 행하고, 한적한 곳에서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바로 입고, 항상 걸식하되 빈, 부를 가리지 않으며, 행동은 사납지 않아 가고 오고 서고 움직임이 조용하고, 말하고 말 안하는 것이 법에 맞다’고 말하고, 또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 이런 여러 범행을 닦는 이들이 항상 와서 내게 공양하였으면...’하고 생각하지마는 네 가지 무리들은 때를 따라 공양하지 않소. 왜 그러냐 하면 그 비구가 악하고 착하지 않은 행을 버리지 못한 것을 그들은 보고 듣고 생각해 알기 때문이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아주 깨끗한 구리 그릇에 더러운 것을 가득 담고는 다른 뚜껑을 그 위에 덮고 그것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물을 것이오.
‘그대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보고 싶다’고.
그 때에 그 사람들은 매우 굶주려 있었소. 그래서 ‘이것은 좋은 음식이다’하고 이내 그 그릇 뚜껑을 열었소. 그러나 그것은 바로 더러운 것임을 다 볼 수 있을 것이오. 이 비구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아라냐행이 있고 때를 따라 걸식하며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입고 몸과 마음을 바루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며, 또 여러 범행을 닦는 이로 하여금 때를 따라 와서 공양하게 하려고 생각하더라도 그 범행을 닦는 이들은 때를 따라 와서 공양하지 않소. 왜 그러냐 하면 그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번뇌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오.
모옥갈라아나님, 알아야 하오. 어떤 비구로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없고 번뇌가 이미 없어진 것을 그들이 듣고 보고 생각하고 알면, 그는 비록 성밖을 다니더라도 오히려 법을 가진 사람으로서 혹은 남의 청을 받고 혹은 장자의 공양을 받을 것이오. 그 비구는 그런 탐욕이 없기 때문이오. 그 때에는 네 무리와 여러 범행을 닦는 이가 모두 와서 공양하오. 왜 그러냐 하면 그 비구는 행이 청정하므로 그들이 그것을 보고 듣고 생각해 알기 때문이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좋은 구리 그릇에 아주 맛나고 향기로운 음식을 담고 다른 물건을 그 위에 덮고, 그것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물을 것이오.
‘그것은 무엇이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싶소.’ 그들은 곧 뚜껑을 열고 그 음식을 보고 모두 같이 먹을 것이오. 이 비구도 그와 같아서, 이 비구를 보고 듣고 생각해 알면 그가 비록 성밖으로 다니면서 장자의 공양을 받더라도 그는 ‘여러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내게 공양하였으면...’하고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여러 범행을 닦는 이들은 다 와서 공양하오. 왜 그러냐 하면 그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범행을 모두 버렸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모옥갈라아나님, 이런 여러 가지 행이기 때문에 그것을 번뇌라 하는 것이오.”
그 때에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오. 샤아리푸트라님,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옛날 이 라아자그리하의 카란다 대나무 동산에 있었소.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라아자그리하에 들어가 걸식하다가 저 수레 만드는 장색의 집에 이르러 그 문 밖에서 잠자코 서 있었소. 그 때에 그 장색은 손에 도끼를 잡고 재목을 다루고 있었소. 그 때에 또 어떤 늙은 장색이 조금 일이 있어서 이 장색 집에 와서 이 장색의 재목을 다루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하였소.
‘이 젊은 장색의 재목 다루는 것이 과연 내 생각과 같을까. 나는 지금 보리라’고. 그 때에 이 늙은 장색의 마음에 맞지 않는 곳을 그 젊은 장색은 모두 베어 내었소. 이 늙은 장색은 매우 기뻐하여 이렇게 말하였소.
‘좋고 좋다. 그대가 재목을 다루는 것은 모두 내 생각과 같다.’
지금 이 자리도 그와 같소. 모든 비구들은 마음이 부드럽지 못해 사문의 행을 버리고, 마음에 거짓을 품어 사문의 법을 따르지 않소. 성품과 행동이 추하고 잡되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두꺼운 얼굴로 욕됨을 참아 비천한 행동을 예사로 하고 용맹이 없으며, 혹은 잊음이 많아 할 일을 기억하고 못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하는 일이 어지럽고, 모든 감관이 고요하지 못하오. 그런데 지금 존자 샤아리푸트라님은 그들의 성행을 관찰하고는 그것을 잘 다스리오.
모든 선남자들은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워 계율을 매우 공경하고, 사문의 거룩한 법을 버리지 않아 허망하거나 거짓이 없으며, 경솔하거나 사납지 않아 마음이 부드럽고, 말은 언제나 웃음을 머금어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며, 마음은 일정하여 시비가 없고 모든 감관은 어지럽지 않소. 그들은 존자 샤아리푸트라의 말을 들으면 스스로 받들어 잊지 않을 것이오.
비유하면 단정하기 그지없는 어떤 남녀가 갓 목욕한 뒤에 좋은 새 옷을 입고 향을 몸에 발랐는데 다시 어떤 사람이 웃팔라 꽃을 그에게 가져다 바치면, 그들은 그것을 머리에 꽂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 모를 것이오. 이것도 그와 같아서, 만일 어떤 선남자로서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워 계율을 공경하고, 사문의 법을 잃지 않아 허망하거나 거짓이 없으며, 행동이 경솔하거나 사납지 않아 마음이 부드럽고, 말은 항상 웃음을 머금어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며, 말은 항상 웃음을 머금어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며, 마음이 항상 일정하여 시비가 없고 모든 감관은 어지럽지 않으면 그들은 존자 샤아리푸트라의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해 어쩔 줄을 모르면서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이오.”
이와 같이 두 선남자는 이렇게 설법하였다. 그 때에 여러 사람들은 제각기 그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네 가지 과일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어떤 과일은 설고도 익은 것 같고 어떤 과일은 익고도 선 것 같으며, 어떤 과일은 익어서 익은 것 같고 어떤 과일은 설어서 선 것 같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이 세상에 네 가지 과일이 있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어떤 사람은 익고도 선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설고도 익은 것 같으며 어떤 사람은 설어서 선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익어서 익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설고도 익은 것 같은가. 어떤 사람은 가고 오기와 걸음걸이가 경솔하거나 사납지 않고 눈으로 보는 것이 늘 법다우며,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걸어갈 때에는 법을 따라서 다만 땅만 보고 좌우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또 계율을 범하고 바른 행을 따르지 않아, 실은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인 체하며, 범행을 행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범행을 행한다고 말하나니, 그는 바른 법을 모두 부셔 버리는 나쁜 종자다. 이것을 일러 ‘설고도 익은 것 같은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익고도 선 것 같은가. 어떤 비구는 성질과 행동이 추하고, 눈길이 단정하지 않고 법을 따르지 않아 좌우를 즐겨 돌아본다. 그런데 그는 또 정진하고 많이 듣고 착한 법을 닦아 행하며, 항상 계율을 지켜 위의를 잃지 않으며 조그만 허물을 보아도 곧 두려워한다. 이것을 일러 ‘익고도 선 것 같은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설어서 선 것 같은가. 어떤 비구는 계율을 가지지 않고 행보의 예절을 알지 못하며, 드나들기와 오가기를 알지 못하고 가사 입기와 바루 가지기를 알지 못하며, 모든 감관이 어지러워 마음은 빛깔, 소리, 냄새, 맛, 보드러움에 집착한다. 그는 또 계율을 범하고 바른 법을 행하지 않아서,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인 체하고 범행을 행하지 않으면서 행하는 체 하나니, 뿌리가 못쓰게 된 사람은 꾸밀 수가 없다. 이것을 일러 ‘설어서 선 것 같은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익어서 익은 것 같은가. 어떤 비구는 계율의 금한 한계를 지키고 드나들기와 다니기에 때를 잃지 않으며 보는 눈길은 위의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또 매우 정진하여 착한 법을 닦아 행하고 위의와 예절을 모두 성취하였으며, 조그만 허물을 보아도 곧 두려워하니, 하물며 큰 허물이겠는가. 이것을 일러 ‘익어서 익은 것 같은 사람’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상에는 네 가지 과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니, 익은 과일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공중에 수람풍(隨嵐風)이 있다. 만일 나는 새로서 까마귀나 까치나 기러기나 따오기 같은 것들이 그 바람을 만나면, 머리와 날개가 제각기 흩어질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도 그와 같다. 그는 계율을 버리고 속인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졌던 세 가지 옷과 바지와 침통의 여섯 가지 물건이 제각기 흩어진 것은 마치 수람풍이 저 새들을 죽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범행을 닦아 행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라. 네 종류의 새가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어떤 새는 소리는 좋은데 모양이 추하고 어떤 새는 모양은 좋은데 소리가 추하며, 어떤 새는 소리도 추하고 모양도 추하며 어떤 새는 모양도 좋고 소리도 좋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네 종류의 새가 있다는 것이니 그런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세상에는 세와 같은 네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그런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어떤 비구는 얼굴이 단정하고, 나들기와 오가기와,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기와 굽히고 펴며 구부리고 우러름에 있어서 위의를 성취하였다. 그러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모든 법을 외우지 못하고 법의 가르침을 받들지 못하며 또한 그것을 읽고 외우지 못한다. 이것을 일러 모양은 좋은데 소리가 좋지 않다는 사람이니라.
어떤 사람이 소리는 좋은데 모양이 추한가. 어떤 비구는 나들기나 오가기나, 굽히고 펴기나 구부리고 우러르기나,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짐에 있어서 위의를 성취하지 못하였으나 항상 널리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는 정진하고 계율을 가지며, 법을 듣고 배운 것을 잘 알며,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모든 법을 많이 들어 깊은 이치를 완전히 알고 범행을 닦아 행한다. 그리고 그는 법을 잘 가지고 잘 외운다. 이것을 일러 소리는 좋은데 모양이 추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소리도 추하고 모양도 추하다. 어떤 사람은 계율을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많이 듣지 않고 들은 것은 곧 잊는다. 그는 이 법을 두루 갖추어 범행을 행해야 하겠건만 그것을 즐겨 받들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소리도 추하고 모양도 추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소리도 좋고 모양도 좋은가. 어떤 비구는 얼굴이 단정하고, 나들고 오갈 때에는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또 정진하여 착한 법을 닦아 행하고 계율을 완전히 갖추었으며, 조그만 허물을 보아도 곧 두려워하거늘 하물며 큰 허물이겠는가. 또 그는 많이 듣고 들은 것은 잊지 않으며,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모든 법과 착한 행을 닦으며 이런 법을 잘 읽고 외운다. 이것을 일러 소리도 좋고 모양도 좋은 사람이라 하느니라.
이것이 이른바 세상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마땅히 깨달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소리도 좋고 모양도 좋기를 배우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종류의 구름이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어떤 구름은 우뢰는 치면서 비는 내리지 않고, 어떤 구름은 비는 내리면서 우뢰는 치지 않으며, 어떤 구름은 우뢰도 치고 비도 내리며, 어떤 구름은 우뢰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 이것을 네 종류의 구름이라 하느니라.
세상에는 그 구름과 같은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의 사람인가. 어떤 비구는 우뢰는 치면서 비는 내리지 않고, 어떤 비구는 비는 내리면서 우뢰는 치지 않으며, 어떤 비구는 비도 내리지 않고 우뢰도 치지 않고, 어떤 비구는 비도 내리고 우뢰도 친다.
어떤 비구가 우뢰는 치면서 비는 내리지 않는가. 어떤 비구는 이른바 계경, 기야, 수결, 게, 본말, 인연, 기설, 생경, 송, 방등, 미증유법, 비유 따위의 법을 높은 소리로 잘 읽고 외워 그 뜻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남을 위해 널리 설법하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우뢰는 치면서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비는 내리면서 우뢰는 치지 않는가. 어떤 비구는 얼굴이 단정하고, 나들기와 오가기와, 나아가고 물러남의 법도를 모두 갖추었고, 온갖 착한 법을 닦되 털끝만큼의 실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많이 듣지도 않고 높은 소리로 외워 익히지도 않으며, 또 계경, 기야, 본말, 수결, 게, 인연, 비유, 생경, 방등, 미증유법을 닦아 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잊지 않고 선지식과 사귀기를 좋아하며, 또 남을 위해 설법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을 일러 ‘비는 내리면서 우뢰는 치지 않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비도 내리지 않고 우뢰도 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얼굴도 단정하지 않고, 나들기와 오가기와 나아가고 물러남의 법도를 모두 갖추지 못하고, 온갖 착한 법도 닦지 않는다. 그러나 또 많이 듣지도 않고, 높은 소리로 외워 익히지도 않으며, 계경과 내지 방등을 닦아 행하지도 않고 또 남을 위해 설법하지도 않는다. 이것을 일러 ‘비도 내리지 않고 우뢰도 치지 않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비도 내리고 우뢰도 치는가, 어떤 사람은 얼굴도 단정하고, 나들기와 오가기와 나아가고 물러남의 법도를 모두 갖추어 알며, 배우기를 좋아하고 배운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또 남을 위해 설법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권해 그것을 받들어 가지게 한다. 이것을 일러 ‘우뢰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상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네 가지 진리와 이익과 아아난다와
무거운 짐과 네 가지 나기와 번뇌와
네 종류의 과일과 수람풍과
네 종류의 새와 우뢰는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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