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주제별 정리/부처님의 생애

출가이후 성도 및 교단형성 1.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출가하는 과정부터 오비구에게 설법까지

다르마 러브 2013. 8. 27. 08:41

나도 본래 위없는 정각을 깨닫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라는 것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 까닭 없이 병드는 법을 구한다. 나라는 것은 실로 늙는 법이요 죽는 법이며 근심 걱정하는 법이고 더러운 법인데 까닭 없이 늙는 법 죽는 법 근심 걱정하는 법 더러운 법을 구한다. 나는 지금 차라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나는 그 때 나이 젊은 동자(童子)로서 맑고 깨끗한 새까만 머리에 한창 나이인 29세였다. 그 때 한없이 즐겁게 유희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나는 그 때 부모님이 울부짖고 여러 친척들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면서 몸을 청정하게 보호하였고, 입과 뜻을 청정하게 보호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계의 몸을 성취한 뒤에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자 하여, 다시 아라라가라마(阿羅羅伽羅摩 : 仙人名)를 찾아가서 그에게 물었다.

'아라라여, 저는 당신에게서 범행(梵行)을 법답게 행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라라가 대답하였다.

'현자(賢者)여, 나는 상관없다. 행하고 싶거든 곧 행하라.'

'아라라여, 당신은 어떻게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아라라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일체의 식처(識處)를 지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런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믿음이 있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정진이 있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지혜가 있다. 그런데 아라라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는 이 법을 증득하기 위하여 곧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다. 나는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증득하게 되었다. 그 법을 증득한 뒤에 나는 다시 아라라가라마에게로 가서 물었다.

'아라라여, 당신은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이른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까?'

아라라가라마는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이른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아라라가라마는 다시 내게 말했다.

'현자여, 내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그대도 또한 그러하며, 그대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러하다. 현자여, 그대는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이 대중을 통솔하자.'

이렇게 아라라가라마는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를 동등하게 대접하고 최상으로 공경하였으며, 최상으로 공양하고 최상의 기쁨을 표하였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 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그래서 나는 곧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 뒤에, 울다라라마자(鬱陀羅羅摩子 : 仙人名)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에게 물었다.

'울다라여, 저는 당신의 법 안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울다라라마자가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상관없다. 그대가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

'울다라여, 그대 아버지 라마(羅摩)께서는 어떤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현자여, 나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현자여,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도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믿음이 있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런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런 정진이 있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런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런 지혜가 있다. 라마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라고 어찌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법을 증득하기 위해 곧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다. 나는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증득하게 되었다. 그 법을 증득한 뒤에 나는 다시 울다라라마자에게로 가서 물었다.

'울다라여, 당신의 아버지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이른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습니까?'

울다라라마자가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도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이른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다.'

울다라가 다시 내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그대도 또한 그러하며, 그대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우리 아버지도 또한 그러했다. 현자여, 그대는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이 대중을 통솔하자.'

울다라라마자는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를 스승처럼 대접하고 최상으로 공경하였으며, 최상으로 공양하고 최상의 기쁨을 표하였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리라.'

그래서 곧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 뒤에, 상정산(象頂山) 남쪽에 있는 울비라(鬱 羅)의 사나(斯那)라는 범지 마을로 갔다. 그 땅은 아주 좋아서 즐길 만하며 산림은 울창하고 니련선하(尼連禪河)의 맑은 물도 언덕까지 찰랑찰랑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했다.

'이 땅은 아주 좋아서 즐길 만하다. 산림은 울창하고 니련선하의 맑은 물도 언덕까지 찰랑찰랑 흐르고 있구나. 만일 큰 종족의 아들이 공부하고자 한다면 이런 곳이 좋을 것이다. 내가 공부하기에도 아주 적절하다. 나는 이제 차라리 여기서 공부하리라.'

그리고는 곧 풀을 가지고 보리수가 있는 데로 가서 그 밑에 깔고, 니사단(尼師檀)을 풀 위에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나는 번뇌를 다할 때까지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과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번뇌를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곧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곧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다. 그리고 내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결정된 도품법(道品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느니라.

나는 처음으로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깨달은 뒤에 곧 '나는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나는 이제 차라리 저 아라라가라마에게 먼저 설법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 어떤 하늘이 허공에게 내게 말하였다.

'큰 선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아라라가라마가 이미 목숨을 마친 지 벌써 7일째입니다.'

나도 또한 내 스스로 아라라가라마가 이미 목숨을 마친지 7일째 되는 날인 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또 생각하였다.

'아라라가라마, 그 사람은 아주 가버렸으니 이 법을 듣지 못하겠구나.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그는 빨리 법을 알아 법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내가 처음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깨달은 뒤에 '나는 마땅히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차라리 울다라라마자에게 먼저 설법하리라.'

그 때 하늘은 다시 허공에서 내게 말했다.

'큰 선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울다라라마자가 목숨을 마친 지 벌써 14일째입니다.'

나도 또한 내 스스로 울다라라마자가 목숨을 마친지 14일째인 줄 알았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울다라라마자는 아주 가버렸으니 이 법을 듣지 못하겠구나.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그는 빨리 법을 알아 법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위없는 정진각을 깨달은 뒤에 '나는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옛날의 저 다섯 비구는 나를 위해 수고하고 내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내가 고행할 때 그 다섯 비구는 나를 받들어 섬겼다. 나는 이제 저 다섯 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 주리라.'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옛날의 그 다섯 비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래서 나는 사람의 눈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써 그 다섯 비구들이 바라나국(波羅國)의 선인이 사는 녹야원(鹿野園)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 보리수 밑에서 옷을 챙겨 발우를 가지고 바라나국의 도읍 가시(加尸)로 갔다. 그 때 이교도 우타(優陀)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내게 말하였다.

'현자 구담이여, 모든 감관[根]은 청정하고 형상은 극히 묘하며, 얼굴의 광명은 빛나고 있습니다. 현자 구담이여,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며, 누구에게서 도를 배웠고, 누구의 법을 믿습니까?'

나는 그 때 우타에게 곧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니라.

일체의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애욕 벗어나 스스로 깨쳤거니

다시 또 그 누구를 스승이라 하겠는가.

같은 사람도 없고 나은 사람도 없다.

위없는 깨달음을 스스로 깨쳤나니

나는 여래요 또 천상 인간의 스승으로

그 힘을 성취한 것 두루 아노라.

우타가 다시 내게 물었다.

'현자 구담이시여, 스스로 훌륭하다고 하셨습니까?'

나는 다시 게송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훌륭한 사람은 이러하나니

이른바 모든 번뇌 이미 다하고

나는 모든 악법 파괴했으니

우타여, 그러므로 나는 훌륭하니라.

우타가 다시 네게 물었다.

'현자 구담이시여,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나는 또 게송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바라나(波羅)로 가서

묘한 감로(甘露)의 북 두드리고

세상에서 아직 굴리지 못한

위 없는 법의 바퀴 굴리려 하네.

우타가 내게 말하였다.

'현자 구담이시여, 혹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렇게 말한 뒤에 그는 곧 삿된 길을 지나 돌아왔다. 나는 선인이 사는 곳인 녹야원으로 갔다. 그 때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제각기 서로 행동지침을 약속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사문 구담이 온다. 그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이 많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쌀밥 보리가루 소(?) 꿀을 먹고 삼씨기름을 몸에 바른다. 지금 그가 다시 오고 있으나 너희들은 아예 일어나 맞이하지도 말고, 또한 예도 올리지 말며, 미리 자리를 준비하여 앉기를 청하지도 말라. 그리고 그가 오거든 (그대가 앉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자.'

그 때 나는 다섯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내게 있는 지극히 훌륭한 위덕(威德)에 어쩔 수 없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와 발우를 받는 사람도 있고, 자리를 펴는 사람도 있으며, 물을 가져와 발을 씻어주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어찌 이처럼 마음이 굳지 못한가. 저희끼리 행동지침을 만들어 약속하더니 저희끼리 어기고 있구나.'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안 뒤에 그들이 편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다섯 비구들은 내 성(姓)과 자(字)를 부르고 나를 경(卿)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나는 여래 무소착 정진각이다. 너희들은 내 본래의 성과 자를 부르지 말고, 또한 나를 경이라고 부르지도 말라. 왜냐 하면 나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고, 나는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결정된 도품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느니라.'

그들은 내게 말하였다.

'경(卿) 구담이여, 그대는 이전에 그러한 행과 그러한 도의 자취와 그러한 고행을 하고서도 오히려 사람의 법을 벗어난 지극히 거룩한 앎과 소견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물며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이 많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쌀밥 보릿가루 소 꿀을 먹으며 삼씨기름을 몸에 바르는 오늘에 있어서이겠는가?'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너희들은 이전에 내가 이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根]이 청정하고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다섯 비구가 내게 대답하였다.

'이전에는 경의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하고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대 구담이여, 지금은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하고, 형색도 매우 아름다우며, 얼굴에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다.'

나는 그 때 곧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야, 마땅히 알라. 도를 닦는 모든 사람이 배워서는 안 될 두 가지 치우친 행이 있으니, 하나는 욕심과 향락의 하천한 업인 범인의 행에 집착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현의 법이 아닌 것으로서 도리에 맞지 않는 것에 스스로 번거로워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다섯 비구들아, 이 두 가지 치우친 행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취하면 밝음을 이루고, 지혜를 이루며, 선정[定]을 성취하여 자재함을 얻고, 지혜로 나아가며,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중도란 이른바 8정도(正道)이니, 바른 소견[正見]에서부터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의 이 여덟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섯 비구를 가르쳤는데, 두 사람을 교화할 때면 세 사람이 밥을 빌고, 세 사람이 밥을 가지고 오면 여섯 사람이 먹기에 넉넉하였다. 세 사람을 교화할 때면 두 사람이 밥을 빌고, 두 사람이 밥을 가지고 오면 여섯 사람이 먹기에 넉넉하였다. 나는 이렇게 저들을 가르치고 이렇게 저들을 교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늙음 죽음 근심 걱정 더러움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틀림없는 도품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하였느니라.'

세존이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좋아할 만하고, 즐길 만하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고, 욕심과 잘 어울리는 5욕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빛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으로 감촉을 느끼는 것이다. 다섯 비구야, 어리석은 범부는 많이 듣지 못하고,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한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쳐 물들고 탐하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앙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하여 그것을 취하여 쓴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진 악마의 손에 떨어지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려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섯 비구야, 마치 들사슴이 올가미에 걸린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그 사슴은 사냥꾼을 따르고 스스로 사냥꾼의 뜻대로 움직이며, 사냥꾼의 손에 떨어지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사냥꾼이 와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어리석은 범부는 많이 듣지 못하고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한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쳐 물들고 그것을 탐하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앙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하여 그것을 받아 쓴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진 악마의 손에 떨어지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려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섯 비구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한 벗을 만나고, 거룩한 법을 알며, 또 거룩한 법을 모신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탐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교만스럽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그 재앙을 보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아 그것을 취해 쓰지 않는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악마의 손에 떨어지지 않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아 곧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난다.

다섯 비구야, 마치 들사슴이 올가미를 벗어나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그 사슴은 사냥꾼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사냥꾼의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사냥꾼의 손에 떨어지지도 않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리지도 않아, 사냥꾼이 와도 곧 벗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한 벗을 만나고, 거룩한 법을 알며, 또 거룩한 법을 모신다. 그는 5욕의 공덕에 부딪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탐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교만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그 재앙을 보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았으므로 그것을 취해 쓰지 않는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악마의 손에 떨어지지도 않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지도 않으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도 않아 곧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게 되느니라.

다섯 비구야,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5개(蓋)와 마음의 더러움 내지 슬기의 병을 끊고,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떠나 제 4 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와 같이 선정[定]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 더러움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여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게 되고,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을 닦아 익혀 몸으로 증득한다. 그래서 그는 이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苦集]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 이 번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번뇌의 발생을 알며, 이 번뇌의 소멸을 알고, 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심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그는 그 때에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왜냐 하면 그는 스스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다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다섯 비구야, 마치 일이 없고 사람이 없는 곳에 있는 저 들사슴은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엎드리고 자재롭게 눕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그 들사슴은 사냥꾼의 경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엎드리고 자재롭게 눕느니라.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비구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어, 심해탈(心解脫)하고 혜해탈(慧解脫)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그는 그 때에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왜냐 하면 그는 스스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다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느니라. 다섯 비구야 이것을 남음이 없는 해탈이라 하고, 이것을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이라 하며, 이것을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이라 하느니라.'"

대정장 1/776 중~778 하; 한글대장경 중아함경 인터넷판, pp. 1591~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