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옛날 아직 불도를 성취하기 전에 나무 밑에 앉아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욕심 세계 가운데 누가 가장 세력이 있고 귀한가. 나는 그것을 항복 받으리라. 그렇게 하면 욕심 세계 안의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항복할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때에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악마 파아피야스가 있다고 들었다. 나는 저와 싸우리라.' 그 파아피야스를 항복 받음으로써 모든 교만하고 호저한 하늘들은 모두 항복하였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 때에 그 자리에서 웃었다. 그래서 그 악마 파아피야스의 경계를 모두 진동시켰더니 허공에서 게송을 읊는 소리를 들었다."
참되고 깨끗한 왕의 법을 버리고
집을 떠나 와 단 이슬 배웠거니
만일 넓은 원을 잘 바로 세우면
세 갈래 나쁜 세계 모두 비우지.
나는 지금 모든 내 군사를 모아
저 사문 얼굴 보나니
만일 내 계책을 쓰지 않으면
다리를 잡아 바다 밖에 던지리라.
"그 때에 악마 파이피야스는 성이 불꽃처럼 일어나 곧 사자(師子) 대장에게 명령하였다.
'빨리 네 무리의 군사를 모아라. 저 사문을 치러 가리라. 그리고 어떤 세력이 있기에 나와 싸울 수 있는지 관찰해 보라.'
나는 그 때에 생각하였다. '보통 사람이 싸우려 하여도 잠자코 있을 수 없겠거늘 하물며 욕심 세계의 호귀한 사람이겠는가. 반드시 저와 싸워야 하겠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 때에 인자(仁慈)의 갑옷을 입고 삼매의 활과 지혜의 화살을 손에 들고 그들을 기다렸다.
그 때에 악마 대장이 거느린 군사의 수는 十八억이었고 그들의 얼굴은 각각 달라 원숭이와 사자들의 모양으로 내게 왔다. 그 야차 무리들은 한 몸에 몇 개의 머리를 가졌고 혹은 수 十개 몸에 한 머리를 가졌으며 두 어깨에 목은 셋이요 가슴에 바로 입이 붙어 있었다. 혹은 외손이요 혹은 두 손이며 혹은 네 손이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입에는 죽은 뱀을 물었으며 혹은 머리에 불이 붙고 입으로 불빛을 내며 두 손으로 입을 벌리고 앞으로 나와 잡아먹으려 하기도 하였다. 혹은 배를 가르고 서로 마주 보며 손에는 칼을 잡고 창을 둘러메었다. 혹은 절구를 들었고 혹은 산을 메었으며, 돌을 지고 큰 나무를 둘러메기도 하였고 혹은 두 다리가 위에 있고 머리가 밑에 있기도 하였다. 혹은 코끼리, 사자, 호랑이, 이리, 독충을 타기도 하였고 혹은 걷기도 하고 공중을 나르기도 하였다.
그 때에 악마는 이러한 무리들을 거느리고 내가 앉아 있는 보배 나무를 둘러쌌다. 때에 악마 파아피야스는 내 왼쪽에서 내게 말하였다.
'사문이여, 빨리 일어나라.'
비구들이여, 나는 그 때에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였다.
악마는 내게 말하였다.
'사문이여, 내가 두렵지 않는가.'
나는 말하였다.
'나는 지금 마음을 바로 가져 두려움이 없노라.'
'사문이여, 너는 과연 나의 네 무리 군사를 보는가. 그런데 너는 혼자 몸으로서 무기도 군사도 없지 않은가. 까까머리에 드러난 몸에는 세 가지 옷이 있을 뿐이구나.'
'나는 두려움이 없다.'
그 때에 나는 파아피야스를 향해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자비의 갑옷과 삼매의 활
손에는 지혜의 화살 잡았고
복된 업으로 군사를 삼았거니
이제 나는 네 군사 쳐부수리라.
때에 악마 파아피야스는 다시 네게 말하였다.
'나는 사문에게 많은 이익을 주리라. 만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너를 잡아 그 몸을 가루로 만들 것이다. 지금 사문은 얼굴이 단정하고 나이는 한창 청춘이며 크샤트리야의 전륜왕의 종족으로 태어났다. 빨리 여기서 일어나 다섯 가지 향락을 누려라. 나는 장차 너를 전륜성왕이 되게 하리라.'
나는 대답하였다.
'네가 말하는 것은 덧없고 변하는 것으로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버려야 할 것으로서 내가 탐내는 바가 아니다.'
'사문은 지금 무엇을 구하며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근심과 두려움이 없는 곳, 즉 안온하고 담박한 열반성(涅槃城)으로서, 생사에 떠돌고 고뇌에 잠겨 있는 이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이다.'
'사문이여, 만일 지금 빨리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앉았으면 나는 네 다리를 잡아 바다 밖에 던지리라.'
'나는 천상, 인간을 관찰하건대 악마나 하늘 악마나 사람이나 혹은 사람 아닌 것이나 너의 네 무리로서는 내 털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사문은 지금 나와 싸우고자 하는가.'
'너의 원수는 누군가.'
'교만이란 것, 즉 증상만이니 자만, 사만, 만중만, 증상만이니라.'
'너는 무슨 이치로 그 여러 가지 교만을 없애는가.'
나는 대답하였다.
'파아피야스야, 알라. 자인삼매(慈仁三昧), 비삼매(悲三昧), 희삼매(喜三昧), 호삼매(護三昧), 공삼매(空三昧), 무원삼매(無願三昧), 무상삼매(無相三昧)가 있다. 자인삼매로 말미암아 비삼매를 얻고 비삼매로 말미암아 희삼매를 얻으며 희삼매로 말미암아 호삼매를 얻고 공삼매로 말미암아 무원삼매를 얻으며 무원삼매로 말미암아 무상삼매를 얻는다. 이 세 가지 삼매의 힘으로 너와 싸울 것이다. 행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하고 괴로움이 다하면 결박이 다하며 결박이 다하면 열반에 이르느니라.'
그는 말하였다.
'사문이여, 혹 법으로써 법을 멸할 수 있는가.'
나는 대답하였다.
'법으로써 법을 멸할 수 있느니라.'
'어떻게 법으로써 법을 멸할 수 있는가.'
'바른 소견으로 삿된 소견을 멸하고 삿된 소견으로 바른 소견을 멸하며 바른 다스림으로 삿된 다스림을 멸하고 삿된 다스림으로 바른 다스림을 멸하며 바른 말로 삿된 말을 멸하고 삿된 말로 바른 말을 멸하며 바른 업으로 삿된 업을 멸하고 삿된 업으로 바른 업을 멸하며 바른 생활로 삿된 생활을 멸하고 삿된 생활로 바른 생활을 멸하며 바른 방편으로 삿된 방편을 멸하고 삿된 방편으로 바른 방편을 멸하며 바른 생각으로 삿된 생각을 멸하고 삿된 생각으로 바른 생각을 멸하며 바른 선정으로 삿된 선정을 멸하고 삿된 선정으로 바른 선정을 멸하는 것이다.'
그는 말하였다.
'지금 사문은 그런 말을 하지마는 그것은 하기 어려운 것이다. 너는 지금 빨리 일어나 내가 너를 잡아 바다 밖에 던지는 일이 없게 하라.'
때에 나는 다시 말하였다.
'너는 옛날 한 번 보시하는 복을 지어 지금 욕심 세계의 마왕이 되었지마는 내가 옛날 지은 공덕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너는 지금 막 매우 어렵다고 말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내가 옛날 지은 복은 네가 지금 증명하였다. 네가 지금 스스로 무수한 복을 지었다고 말하는 것은 누가 증명하는가.'
비구들이여, 나는 그 때에 오른 손을 펴서 손가락으로 땅을 어루만지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은 공덕은 이 땅이 알아 증명하느니라.'
내가 이렇게 말할 때에 지신이 땅에서 솟아올라 합장하고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아 증명하나이다.'
지신이 이렇게 말하자 악마 파아피야스는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이내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느니라.
대정장 2/760 중~761 상 ;『한글 증일아함경』2, pp. 25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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