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는 어떤 맛이 있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쾌락이 그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빛깔을 보아 눈알음[眼識]을 일으키면, 그것은 매우 사랑스럽고 즐거워 세상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이다. 또 만일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보드라움을 느끼면, 그것은 매우 사랑스럽고 즐거워 세상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탐욕 속에서 괴롭다 즐겁다는 마음을 내면 이것이 이른바 탐욕의 맛이니라.
탐욕에는 어떤 화가 있는가. 어떤 좋은 집 자제는 온갖 기술을 배워 살아가는데 농사 짓기와 글과 품팔이, 셈, 속이기, 조각과 혹은 심부름꾼으로 여기 저기 다니며 혹은 임금을 섬기되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부지런히 애쓰지마는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이렇게 고생하면서 재물을 모은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의 화로서 현세의 고뇌는 모두 이 은혜와 애정과 탐욕 때문이니라.
그런데 그 좋은 제자는 그렇게 고생하고도 재물을 얻지 못하면 곧 헤아릴 수 없이 근심하고 걱정하며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그는 곧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괴로이 공을 들이고 온갖 방법을 써 보았지마는 재물을 얻지 못한다. 차라리 이런 짓을 버리자’고. 이것이 이른바 탐욕을 떠난다는 것이니라.
또 그 좋은 집 자제는 때로는 그런 방법으로서 재물을 얻는다. 그는 그 얻은 재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간직하려 한다. 그래서 왕에게 빼앗기지나 않을까, 도둑에게 도둑 맞지나 않을까, 물에 떠내려가지나 않을까, 혹은 불에 태우지나 않을 까고 늘 걱정하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땅에 파묻으려니 뒤에 잊을까 걱정이요 이자로 주려니 받지 못할까 걱정이며 혹은 집안에 나쁜 자식이 나면 내 재물을 다 써 버릴 것이다’고. 이것이 이른바 ‘탐욕은 큰 걱정이 된다’는 것으로서 다 탐욕의 근본이 되어 이런 재변이 생기는 것이니라.
그 좋은 집 자제는 늘 그런 마음으로 그 재물을 보호하려 하지마는 그는 뒷날에 왕에게 빼앗기고 도둑에게 겁탈 당하며 물에 떠내려보내고 불에 살리기도 한다. 땅에 묻은 것은 찾지 못하고 이자로 준 것은 받지 못하며 집에서 나쁜 자식을 낳아 그 재물을 모두 써 버려 그 만 분의 하나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고 걱정하며 괴로워하고 번민하면서 가슴을 치고 부르짖는다. ‘내게 본래 있던 재물은 지금에는 모두 없어졌다’하고 드디어 멍청하거나 미치광이가 된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은 큰 화가 된다’는 것으로서 그 탐욕이 근본이 되어 함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또 그 탐욕이 근본이 되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서로 친다. 서로 침으로써 혹은 코끼리 군사 앞에서, 말 군사 앞에서, 보병 앞에서, 수레 군사 앞에서 말을 보면 말과 싸우고 코끼리를 보면 코끼리와 싸우며 수레를 보면 수레와 싸우고 보병을 보면 보병과 싸우면서 혹은 칼로 베고 활을 쏘며 창으로 서로 찌른다. 이런 것은 ‘탐욕이 큰 걱정이 된다’는 것으로서 탐욕이 근본이 되어 이런 재변이 생기는 것이니라.
다시 그 탐욕이 근본이 되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혹은 성문에서 혹은 성 위에서 칼로 서로 베고 활로 쏘며 창으로 찌르고 혹은 쇠바퀴로 그 머리를 갈고 쇠를 녹여 서로 퍼붓는다. 이런 고통을 받아 죽는 사람이 한량이 없다.
또한 탐욕이란 덧없는 것으로서 사라지고 생기며 변하고 바뀌면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탐욕이 변하고 바뀌어 덧없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이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탐욕을 버리는가. 만일 수행해서 탐욕을 버리면 그것이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탐욕의 큰 걱정임을 알지 못하고 탐욕의 근본을 버릴 줄을 모르며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威儀)를 여실히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이 아니다. 또한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탐욕이 큰 걱정임을 자세히 알아 헛되지 않고 참답게 탐욕을 버린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것이 이른바 탐욕을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몸의 맛인가. 만일 크샤트리아의 여자, 바라문의 여자, 장자의 여자로서 나이 十四세나 十五세, 十六세쯤 되고 키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살찌지도 않고 야위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아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단정한 여자를 보면 그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고 즐겨 하는 생각을 낸다. 이것이 이른바 몸의 맛이니라.
어떤 것이 몸의 큰 걱정인가. 그는 그 뒤에 그 여자가 八十, 九十 내지 백 세의 나이가 되어 얼굴빛은 변하고 젊음은 이미 가서 이는 빠지고 머리는 희며 몸은 추하고 피부는 늘어져 낯에는 주름이 지고 등은 굽고 숨은 가쁘고 몸뚱이는 낡은 수레와 같으며 몸을 떨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어떤가, 비구들이여, 처음에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을 보았는데 뒤에는 그처럼 변한 것을 본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큰 고통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다시 만일 그 여자가 중한 병에 걸려 병상에 누운 채 대소변을 보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병을 앓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참으로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그 여자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무덤으로 가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가 죽은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내지 이레가 되어 몸이 붓고 문드러져 냄새가 나고 한쪽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그처럼 변했으니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시체를 까마귀, 까치, 솔개, 독수리들이 다투어 와서 쪼아먹거나 혹은 여우, 개, 이리, 호랑이들이 와서 찢어 먹거나 혹은 아주 작은 곤충들이 파먹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몸을 벌레와 새들이 반쯤 먹고 창자와 밥통과 살덩이와 피의 더러운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몸이 피와 살은 모두 없어지고 뼈만이 서로 앙상하게 이어진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몸이 피와 살은 다 없어지고 오직 힘줄이 남아 나뭇단처럼 묶여 있는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해골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혹은 다리 뼈, 장딴지 뼈, 넓적다리 뼈, 허리 뼈, 옆구리 뼈, 갈비 뼈, 어깨 뼈, 팔 뼈, 목 뼈, 머리뼈가 사방에 흩어진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해골이 희거나 혹은 잿빛으로 된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만일 다시 그 여자의 해골이 여러 해를 지내 썩고 문드러지고 낡아 흙빛처럼 된 것을 본다면 어떤가, 비구들이여. 본래는 그처럼 아름답던 몸이 지금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 거기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큰 걱정이 아니겠는가.”
“큰 걱정이나이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이른바 몸의 큰 걱정이니라. 이 몸은 덧없는 것으로서 변하고 바뀌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여, 또 거기에는 늙고 젊음의 구별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몸은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몸에서 벗어나는가. 만일 몸을 버리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이것이 이른바 몸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몸을 보고 몸에 집착하여 그것이 큰 걱정임을 알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며, 또한 여실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이 아니다.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몸을 보고도 몸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의 큰 걱정됨을 확실히 알아 능히 그것을 버릴 줄을 안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것이 이른바 몸을 버린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느낌의 맛인가. 비구들이여,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며,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만일 음식을 먹어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어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고, 음식을 먹어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어 괴로움을 느끼다’고 알며, 음식을 먹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만일 음식을 먹지 못해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해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고, 음식을 먹지 않아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즐거움을 느낀다’고 알며, 만일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안다.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즐거움을 느끼면 그 때에는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없다. 그 때에는 ‘내게는 다만 즐거운 느낌만 있다’고 안다. 만일 괴로움을 느끼면 그 때에는 즐거운 느낌은 없고 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없고 오직 괴로운 느낌만이 있다. 비구들이여,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면 그 때에는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은 없고 오직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이 있다.
느낌이란 덧없는 것으로서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느낌은 덧없이 변하고 바뀌는 줄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이른바 ‘느낌은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이니라.
어떻게 느낌에서 벗어나는가. 만일 능히 느낌을 버리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그것이 이른바 느낌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느낌에 집착하여 그것의 큰 걱정됨을 알지 못하고 또한 버리지도 못하며 그것을 여실히 알지도 못한다. 그들은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이 아니다.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지 못하여,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느낌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이 큰 걱정임을 확실히 알아 능히 그것을 버릴 줄을 안다. 그들은 사문으로서 사문의 위의를 알고 바라문으로서 바라문의 위의를 알며 몸으로 그것을 증득하여 스스로 유희한다. 이것이 느낌을 버린다는 것이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괴로운 느낌과 즐거운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여실히 알지 못하면서 남을 교화하여 그것을 행하게 하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능히 느낌을 버리고 또 그것을 여실히 알아서 남을 권하고 가르쳐 그것을 버리게 하면 그것은 바로 옳은 일이다. 이것이 이른바 느낌을 버린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탐욕에의 집착과 탐욕의 맛과 그것의 큰 걱정됨과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을 말하였고, 또 몸에의 집착과 몸의 맛과 그것의 큰 걱정됨과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느낌에의 집착과 느낌의 맛과 그것의 큰 걱정됨과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을 말하였다. 모든 여래의 행해야 하는 이른바 그 주장을 나는 이제 두루 말해 마쳤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나무 밑이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고요히 생각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라.”
대정장 2/605 상~606 중 ;『한글 증일아함경』1, pp. 22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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