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51권
194. 발다화리경(跋陀和利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서 큰 비구들과 함께 여름 안거(安居)를 지나게 되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한 자리에서 먹고[一座食],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한 자리에서 먹기를 배워야 한다.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에 존자 밧다알리[跋陀和利]도 또한 대중 가운데 있었다. 이에 존자 밧다알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 먹기를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뉘우쳐지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기를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만일 내가 청을 받았을 때에 너도 또한 나를 따라 오면, 나는 너에게 한 자리에서 먹을 음식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리라. 밧다알리여, 그렇게 하면 너는 유쾌하게 생활할 수 있으리라.”
존자 밧다알리는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그렇게 하시더라도 저는 또한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뉘우쳐지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재삼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한 자리에서 먹고,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한 자리에서 먹기를 배워야 한다.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존자 밧다알리도 또한 재삼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뉘우쳐지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세존께서도 다시 재삼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만일 내가 청을 받았을 때에 너도 또한 나를 따라 오면 나는 너에게 한 자리에서 먹을 음식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리라. 밧다알리여, 만일 그렇게 하면 너는 유쾌하게 생활할 수 있으리라.”
존자 밧다알리는 또한 재삼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시더라도 저는 다시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뉘우쳐지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위하여 한 자리에서 먹는 계(戒)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그 계와 세존의 경계(境界)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다. 그러나 오직 존자 밧다알리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왜 그러냐 하면 그는 구족계(具足戒)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존자 밧다알리는 드디어 숨어서 한 여름 동안 세존을 만나지 않았다. 왜 그러냐 하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때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을 위하여 가사를 짓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시었다. 석 달을 지낸 뒤에 가사를 기우시고, 그 가사를 챙기고, 바루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노니시려 하시었다.
존자 밧다알리는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을 위해 가사를 짓고,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석달을 지낸 뒤에 가사를 기우시고, 그 가사를 챙기고, 바루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행각(行脚)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존자 밧다알리는 그 소식을 듣고 여러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모든 비구들은 멀리서 존자 밧다알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현자(賢者) 밧다알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을 위해 짓는 가사다.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시고 석 달을 지낸 뒤에 가사를 기우시고, 그 가사를 챙기고, 바루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행각 하시려 한다. 밧다알리여, 너는 마땅히 스스로 거기 가서 몸을 잘 지켜 조심하여 뒷날의 번민과 괴로움을 가져오게 하지 말라.”
존자 밧다알리는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참으로 잘못하였나이다. 제가 참으로 잘못하였나이다.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멍텅구리 같고 나쁜 놈 같았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드는데, 오직 저만이 감당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었나이다. 왜 그리하였는가 하오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기 위해서이었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너는 그 때에 많은 비구, 비구니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런데 밧다알리라고 하는 비구는 세존의 제자로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 줄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고, 너는 그 때에 그렇게 생각하였던가.
또 밧다알리여, 너는 그 때에 많은 우바새, 우바이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런데 밧다알리라는 비구는 세존의 제자로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 줄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고, 너는 그 때에 그렇게 생각하였던가.
또 밧다알리여, 너는 그 때에 많은 이교도(異敎徒)의 사문, 바라문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런데 밧다알리라는 어떤 비구는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로서 이름과 덕망이 있으면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 줄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고, 밧다알리여, 너는 그 때에 그렇게 생각하였던가.
밧다알리여, 내가 만일 구해탈(俱解脫)을 어떤 비구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이 진탕에 들어가라.’고 한다면 밧다알리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나는 그 비구에게 명령하였는데 그 비구는 과연 가만히 있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피해 가겠느냐.”
“아닙니다.”
“밧다알리여, 만일 어떤 비구가 비록 구해탈은 아니더라도 혜해탈(慧解脫)이 있고, 비록 해탈은 아니더라도 신증(身證)이 있으며, 비록 신증은 아니더라도 견도(見道)가 있고, 비록 견도는 아니더라도 신해탈(信解脫)이 있으며, 비록 신해탈은 아니더라도 범행(梵行)이 있고, 비록 범행은 아니더라도 신행(信行)이 있는 자인데,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이 진탕에 들어가라.’고 한다면 밧다알리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나는 그 비구에게 명령하였는데 그 비구는 과연 가만히 있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피해 가겠느냐.”
“아닙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너는 그 때의 신행, 범행, 신해탈, 견도, 신증, 혜해탈, 구해탈을 얻었더냐.”
“아닙니다.”
“밧다알리여, 너는 그 때에 빈집과 같지 않았더냐.”
이에 존자 밧다알리는 세존 면전에서 직접 꾸지람을 듣자 마음속에 근심과 슬픔을 품고 머리를 떨어뜨려 잠자코 변명할 말이 없었으나 무엇을 묻고자 하는 듯하였다.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밧다알리를 면전에서 직접 꾸짖기를 마치시고 다시 그를 기뻐하게 하시기 위해 곧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너는 그 때에는 내게 대해서 법을 믿는 생각이 없었고, 법을 사랑하는 생각이 없었으며, 법을 생각하는 생각이 없었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는가. 나는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戒)를 널리 설명하였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너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던 것이다. 왜 그렇게 하였던가. 구족계와 및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기 위해서 이었느니라.”
존자 밧다알리는 여쭈었다.
“실로 그러하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앉아 먹는 계를 널리 설명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저만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나이다. 왜 그렇게 하였는가 하오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기 위해서이었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저는 이 잘못을 안 뒤에는 스스로 뉘우치고,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겠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그와 같이 너는 참으로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멍텅구리 같고 나쁜 놈 같았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비구들을 위해 한 번 앉아 먹는 계를 널리 설명하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너만은 감당 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던 것이다. 왜 그렇게 하였던가. 너는 구족계와 및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기 위해서이었느니라. 밧다알리여, 만일 네가 너에게 있는 허물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으면 밧다알리여, 만일 그렇게 하면 이 거룩한 법률에 있어서 이익이 있고 손해가 없을 것이다. 만일 네가 너에게 있는 허물을 보거든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밧다알리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비구로서 계를 배우지 않으면 그는 일없는 곳이나 숲속이나 나무 밑에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고요히 앉고,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어 현재에서 즐겁게 살며,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더라도 세존의 계를 모함해 비방하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비방하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해 비방한다. 그는 세존의 계를 모함해 비방하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해 비방하며, 또한 스스로의 계를 모함해 비방한 뒤에는 곧 즐거움을 내지 않고, 즐거움을 내지 않은 뒤에는 곧 기쁨을 내지 않으며, 기쁨을 내지 않은 뒤에는 곧 몸을 쉬지 못하고, 몸을 쉬지 못한 뒤에는 곧 편안함을 깨닫지 못하며, 편안함을 깨닫지 못한 뒤에는 곧 마음을 정(定)하지 못한다. 밧다알리여, 어진 제자로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뒤에는 곧 실다움을 보지 못하고, 참다움을 알지 못하느니라.
밧다알리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비구로서 계를 배우면 그는 일없는 곳이나 숲속이나 나무 밑에서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고요히 앉는다.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어 현재에서 즐겁게 산다.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안온하고 쾌락한 뒤에는 세존의 계를 모함해 비방하지 않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해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해 비방하지 않는다. 그는 세존의 계를 모함해 비방하지 않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해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해 비방하지 않은 뒤에는 곧 즐거움을 내고, 즐거움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며, 기쁨을 낸 뒤에는 곧 몸을 쉬고, 몸을 쉰 뒤에는 곧 편함을 깨닫고, 편함을 깨달은 뒤에는 곧 마음이 정(定)한다.
밧다알리여, 어진 제자로서 마음을 정한 뒤에는 곧 실다움을 보고, 참다움을 알며, 실다움을 보고 참다움을 안 뒤에는 곧 욕심을 떠나고, 착하지 않을 법을 떠나 머트러운 생각이 있고, 세밀한 생각이 있어서,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밧다알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에 제 一의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그를 곧 현재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다시 거기서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 마음이 되어 머트러운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어, 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二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밧다알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에 제 二의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것은 그를 곧 현재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다시 거기서 기쁨과 욕심을 떠나 모든 법을 버리고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서 몸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의 말씀하신 모든 것의 버림, 바른 생각, 의식(意識)의 즐거움, 공(空)이 있는 제 三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밧다알리여, 그가 그 때에 제 三의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것은 그를 곧 현재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락하고 쾌락하여 열반에 오르게 한다. 그는 다시 거기서 즐거움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고 기쁨과 근심은 본래 이미 멸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서, 즐거움의 버림, 공덕의 생각, 청정이 있는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밧다알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에 제 四선의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것은 그를 곧 현재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이와 같이 정(定)한 마음의 청정을 얻어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과거를 기억하는 숙명지(宿命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행(行)과 어떠한 모양이며, 한량이 없는 과거의 지낸 일을 다 기억한다. 곧 一생(生), 二생, 백생, 천생과 성겁(成劫), 패겁(敗劫)과 한량이 없는 성, 패겁 동안에 그 중생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던 것과 또 그가 옛날에 지낸 일, 곧 나는 거기서 나서 어떠한 성과 어떠한 이름으로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어떻게 오래 살고 어떻게 오래 머물렀으며, 어떻게 목숨을 마친 것과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서 난 것을 다 기억한다. 또 내가 나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어떠한 성과 어떠한 이름으로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어떻게 오래 살고 어떻게 오래 머물렀으며, 어떻게 목숨을 마쳤는가를 다 기억한다. 밧다알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에 이 제 一의 명달(明達)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는 본래 방일(放逸)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즐겁게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두움이 무너져 환함이 되고, 무명(無明)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니, 이른바 과거를 기억하는 숙명지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라 하느니라.
그는 이와 같이 정(定)한 마음의 청정을 얻어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생사지(生死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눈보다 훌륭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서 이 중생들의 죽는 때, 나는 때,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오가는 것을 본다. 또 이 중생들의 그 짓는 바 업을 따라 그 참 모양을 보나니, 만일 이 중생들이 몸의 나쁜 행과 입과 뜻의 나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고, 사특한 소견으로서 사특한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나며, 또 만일 중생들이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으로 바른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나는 것을 본다. 밧다알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에 제 二의 명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즐겁게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두움이 무너져 환함이 되고,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니, 이른바 생사지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라 하느니라.
그는 또 이와 같이 정한 마음의 청정을 얻어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누진지(漏盡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이 괴로움의 참 모양을 알고, 이 괴로움의 원인을 알며, 이 괴로움의 멸함을 알고, 이 괴로움의 멸하는 길의 참 모양을 안다. 또 이 번뇌의 참 모양을 알고, 이 번뇌의 원인을 알며, 이 번뇌의 멸함을 알고, 이 번뇌를 멸하는 길의 참 모양을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심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와 무명(無明)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 모양을 안다. 밧다알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에 제 三의 명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즐겁게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두움이 무너져 환함이 되고,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니, 이른바 누진지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라 하느니라.”
이에 존자 밧다알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모든 비구들이 다 같이 계를 범하였으나 혹은 힘써 다스리고, 혹은 힘써 다스리지 않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계를 범한다. 그는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면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는다.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고서는 곧 논(論)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면서 분내고, 미워하고 화내며, 발악하여 대중을 골리고, 대중을 업신여기다가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밧다알리여, 그 때에 모든 비구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곧 ‘그러나 이 사람은 자주자주 계를 범하고,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면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는다. 그는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고서는 곧 논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면서 분내고 미워하며, 화내고 발악하여 대중을 골리고, 대중을 업신여기다가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말한다’고. 그래서 그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여러분, 그 사람은 그대로 보아 언제나 그 허물에 있게 하자’고 이렇게 서로 말한다. 밧다알리여, 모든 비구들은 그를 그대로 보아 언제나 그 허물에 있게 하였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계를 범한다. 그는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면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고도 논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지 않고 분내거나 미워하거나 화내거나 발악하지도 않으며, 대중을 골리지도 않고 대중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이렇게 말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밧다알리여,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곧 ‘그러나 이 사람은 자주자주 계를 범하고,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면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는다. 보고들은 것이 남의 의심을 사고도 논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지 않고, 분내거나 미워하거나 화내거나 발악도 하지 않으며, 대중을 골리지도 않고 대중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이렇게 말하지도 않고, 이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그래서 그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여러분, 그 사람은 이대로 보아 빨리 그 허물을 멸하게 하자’고 이렇게 서로 말한다. 밧다알리여, 모든 비구들은 그를 이대로 보아 빨리 그 허물을 멸하게 하였다. 그리고 가볍게 금계(禁戒)를 범한 것도 도한 이와 같느니라.
밧다알리여, 만일 어떤 비구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靖]이 있으면 ‘이제 이 비구는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사람을 힘써 고치려고 한다면 이제 이 사람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반드시 끊을 것이다. 우리들은 차라리 함께 이 사람을 잘 이끌어 보호하자.’고 하여 모든 비구들은 곧 그를 잘 이끌어 보호한다. 밧다알리여, 비유하면 애꾸눈이와 같다. 그 친족들은 그를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그의 이익과 넉넉하기를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해, 서로 잘 이끌어 보호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춥거나 업거나 목마르거나 굶주리게 하지 않고, 병이나 근심을 없게 하며, 먼지를 씌우거나 연기를 매웁게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람이 한 쪽 눈을 마져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족들은 그를 잘 이끌어 보호하는 것이다. 밧다알리여, 이와 같이 또 어떤 비구가 조그만 믿음이 있고, 조그만 사랑이 있으며, 조그만 생각이 있으면 모든 비구들은 곧 ‘이제 이 비구는 조금 믿음이 있고, 조금 사랑이 있으며 조금 생각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사람을 힘써 다스리면 이 사람은 조그만 믿음이 있고, 조그만 사랑이 있으며, 조그만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것으로써 반드시 끊을 것이다. 우리들은 차라리 함께 이 사람을 잘 이끌어 보호하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비구들은 함께 잘 이끌어 보호하는 것이 마치 친족들이 애구눈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이에 존자 밧다알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옛날에는 조금만 계를 시설(施設)하여도 받들어 가지는 비구가 많더니, 오늘은 많은 계를 시설하여도 받들어 가지는 비구가 적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이익을 얻지 못하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이 없고, 만일 비구들이 이익을 얻으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낸다.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면 나는 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끊고자하기 때문에 곧 제자들을 위해 계를 시설한다. 그래서 칭찬과 명예가 넓고 커져서 임금까지 알게 되어 큰복이 있고 많은 지식을 얻는다. 밧다알리여, 만일 대중이 많이 알지 못하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지 않고, 대중이 많이 알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낸다. 대중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면 나는 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끊고자 하기 때문에 곧 제자들을 위해 계를 시설한다. 밧다알리여, 나는 현세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위하여 계를 시설하는 것이 아니요, 나는 후세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위하여 계를 시설하는 것이다. 밧다알리여, 그러므로 나는 제자들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계를 시설하는 것이요, 그들이 내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밧다알리여, 나는 옛날에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청정한 말[馬]의 비유를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말하지 않으니 거기에는 어떤 까닭이 있는지 너는 기억하느냐.”
존자 밧다알리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거기에는 그런 까닭이 있나이다. 무슨 까닭인가 하오면,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해 한 번 앉아 먹는 계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저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으니, 그것은 구족한 계와 및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기 위해서이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거기에 있는 까닭이었나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거기에는 다만 그 까닭만이 아니다. 밧다알리여, 만일 내가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청정한 말의 비유를 말하였다면 너는 반드시 한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요, 잘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요, 생각하여 듣지 않았을 것이다. 밧다알리여, 이것이 거기에 있는 까닭이니라.”
이에 존자 밧다알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청정한 말의 비유를 말씀하시오면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받잡고 마땅히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밧다알리여, 마치 말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청정한 좋은 말을 얻은 것과 같아서, 먼저 그 입짓을 다스리고 그 입짓을 다스린 뒤에는 제야 좋아하건 말건 덤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아직 완전히 훈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밧다알리여, 만일 청정한 좋은 말이 몰이의 훈련을 따름으로써 첫째 훈련이 성취되면 그 말몰이는 다시 입에 재갈먹이기와 다리 옭아매기를 훈련시킨다. 다리를 옭아매고, 입에 재갈먹여 달리기를 훈련시켜, 궁중에 올려 임금이 타는 위없는 행(行)을 감당하게 한다. 가장 훌륭하게 모든 사지와 뼈마디를 훈련시키고, 부리는 훈련이 성취되어도, 제야 좋아하건 말건 덤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자주자주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밧다알리여, 만일 청정한 좋은 말을 그 말몰이가 자주자주 다스려 성취하게 되면 그 때에는 그 말은 부드러워지고, 잘 부드러워져 위없는 부드러움이 되고, 제일 위없는 부드러움이 된다. 그래서 위없는 행을 얻고, 제일의 행을 얻는다. 그래서 그는 곧 왕의 곡식을 먹고 왕의 말이라고 일컫는다. 밧다알리여, 만일 어진 지혜로운 사람이 十무학법(無學法), 무행의 바른 소견과 내지 무행의 바른 지혜를 성취하면 그는 그 때에는 부드러워지고, 잘 부드러워져 위없는 부드러움이 되고, 제 一 위없는 부드러움이 된다. 그래서 위없는 그침을 얻고 제 一의 그침을 얻어, 일체의 굽음을 버리고 일체의 더러움을 버리며 일체의 두려움을 버리고 일체의 어리석음을 제하며, 일체의 아첨을 버리고 일체의 번뇌를 그치며, 일체의 때[垢]를 깨끗이 하여 집착이 없게 된다. 그래서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받들 만하고 제사할 만하여 일체 천상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밧다알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95. 아습패경(阿濕貝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카아시이[迦尸]국에 노닐으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먹는 계[日一食戒]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웠다.
이에 세존께서는 계속해 노닐어 키이타아기리[迦羅賴]에 이르러 키이타아기리의 북쪽 마을 싱사파아[尸攝和]숲에 계시었다. 이 때에 키이타아기리에는 앗사지[阿濕貝]와 푸나바수카[弗那婆修]라는 두 비구가 있었는데 옛날에는 그 지방의 지주(地主)요, 사주(寺主)요, 종주(宗主)였었다. 그들은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고,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앗사지와 푸나바수카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세존께서는 카아시이국에 노닐으시다가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고 말씀하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먹는 계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웠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너희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말라.”
앗사지와 푸나바수카는 이 말을 듣고 대답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는다.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으나 그 여러 비구들은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의 나쁘고 사특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키이타아기리에는 앗사지와 푸나바수카라는 두 비구가 있는데 그들은 옛날에는 그 지방의 지주요 종주요 사주였었나이다. 그들은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고,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였다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을 듣고 곧 앗사지와 푸나바수카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세존께서는 카아시이국에 노닐으시다가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곧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고 말씀하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먹는 계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웠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너희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말하였나이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는 이 말을 듣고 저희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는다.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저희들에게 대답하였나이다.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으나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의 나쁘고 사특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버리고 떠나왔나이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한 비구에게 분부하였다.
“너는 저 앗사지와 푸나바수카 비구가 있는 곳에 가서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세존께서 너희들을 부르신다.’고 말하라.”
그 한 비구는
“예예, 세존이시여.”하고 곧 자리에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는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에게 가서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세존께서 두 분을 부르십니다.”고 말하였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는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여러 비구들은 참으로 너희들에게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세존께서는 카아시이국에 노닐으시다가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곧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은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먹는 계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웠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너희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말하였는가.
그리고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너희들은 그 모든 비구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는다. 아침, 저녁, 점심, 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병이 없어 몸은 가볍고 기력은 편하고 단단하여 안온하고 쾌락하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는가. 그리고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으나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그 모든 비구들은 너희들의 나쁘고 사특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너희들을 버리고 떠나갔는가.”
앗사지와 푸나바수카는 여쭈었다.
“실로 그러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너희들은 ‘만일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며, 만일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움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한다’는 이러한 설법을 아는가.”
“예예, 저희들은 이렇게 세존께서 ‘만일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며, 만일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움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한다’고 설법하신 것을 아나이다.”
세존께서는 앗사지와 푸나바수카 비구들을 꾸짖으시었다.
“너희 미련한 사람들아, 무엇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렇게 설법한 줄을 아느냐. 너희들 미련한 사람들아, 누구에게서 듣고 이렇게 설법한 줄을 아느냐. 너희 미련한 사람들아, 나는 전연 말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완전히 받아 가지는구나. 너희들 미련한 사람들아,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물음을 받았을 때는 응당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고 이렇게 법다이 대답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모든 비구들에게 물어 보리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들도 또한 ‘만일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며, 만일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움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한다’고 이렇게 내가 설법한 줄 아느냐.”
여러 비구들은 여쭈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 설법하였다고 아느냐.”
여러 비구들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움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움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는 수도 있다.’고 이렇게 세존께서 설법하신 줄로 아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렇게 세존께서 설법하신 줄로 아나이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여 말씀하시었다.
“착하고 착하다. 너희들의 말과 같다.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움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움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는 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나도 또한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움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움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한다.’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그 참 모양을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고 해득하지 못하며 얻지 못하고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더라도 나는 응당 즐거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참 모양을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고 해득지 못하고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더라도 나는 응당 즐거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참모양을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고 해득하지 못하며 얻지 못하고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더라도 나는 응당 괴로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참모양을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고 해득하지 못하고,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더라도 나는 응당 괴로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참모양을 알며, 보고 해득하며, 얻고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은 즐거운 감각이 있어서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면, 그 때문에 나는 즐거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한다. 나는 그 참모양을 알며, 보고 해득하며, 얻고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은 즐거운 감각이 있어서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면, 그 때문에 나는 즐거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한다. 나는 그 참모양을 알며, 보고 해득하며, 얻고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은 괴로운 감각이 있어서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면, 그 때문에 나는 괴로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한다. 나는 그 참모양을 알며, 보고 해득하며, 얻고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은 괴로운 감각이 있어서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면, 그 때문에 나는 괴로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일체의 몸의 즐거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의 몸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으며, 나는 일체의 몸의 괴로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의 몸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일체의 마음의 즐거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의 마음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으며, 나는 일체의 마음의 괴로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의 마음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어떠한 몸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즐거움을 닦아서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면, 그러한 몸의 즐거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즐거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면 그러한 몸의 즐거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면 그러한 몸의 괴로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괴로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면, 그러한 몸의 괴로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이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면, 그러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면 그러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더하고, 착한 법은 더욱 감하면,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괴로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하면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그는 닦아야 할 법의 참 모양을 알고 닦지 않아야 할 법의 참모양도 또한 안다. 그는 닦아야 할 법의 참모양을 알고, 닦지 않아야 할 법의 참모양도 또한 안 뒤에는 닦지 않아야 할 법은 곧 닦지 않고, 닦아야 할 법은 곧 닦는다. 닦지 않아야 할 법은 곧 닦지 않고, 닦아야 할 법은 곧 닦은 뒤에는 곧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감하고, 착한 법은 더욱 더한다.
나는 일체 비구가 방일(放逸)하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 비구가 방일 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비구를 방일 하다고 나는 말하는가.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俱解脫)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비구는 구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八해탈을 몸으로 부딪쳐 성취하여 노닐고, 슬기로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또 이미 그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구는 구해탈이 있나니 나는 이 비구를 방일 하다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본래 이미 방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비구가 본래부터 방일이 있었다면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이 비구는 방일 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이 아니요, 혜해탈(慧解脫)이 있다. 어떻게 비구는 혜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八해탈을 몸으로 부딪치지 않고 성취하여 노닐며, 슬기로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이미 안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구는 혜해탈이 있나니 이 비구도 나는 방일 하다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본래 이미 방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람이 본래부터 방일이 있었다면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비구를 방일 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비구를 방일 하다고 말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나는 말하는가.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또한 혜해탈도 아니면서 신증(身證)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비구는 신증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八해탈을 몸으로 부딪쳐 성취하여 노닐면서도 슬기로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또 이미 안 것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구는 몸의 증득이 있나니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나로 하여금 이 비구는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게 하는가. 혹 이 비구는 모든 근(根)을 항복 받고, 선지식(善知識)을 친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르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모양을 안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보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비구는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또한 신증도 아니면서 견도(見到)가 있다. 어떻게 비구는 견도가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오로지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믿고, 들은 법을 따라 곧 슬기로서 관(觀)을 왕성하게 하고, 인(忍)을 왕성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견도가 있나니, 이 비구를 나는 방일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나로 하여금 이 비구는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게 하는가. 혹 이 비구는 모든 마군을 항복 받고 선지식을 친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르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모양을 안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이러한 결과가 있는 것을 보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또한 견도도 아니면서, 신해탈(信解脫)이 있다. 어떻게 비구는 신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오로지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슬기로서 인(忍)하고 관(觀)하지마는, 견도보다는 못하다. 이렇게 비구는 신해탈이 있나니 나는 이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나로 하여금 이 비구는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게 하는가. 혹 이 비구는 모든 근을 항복 받고 선지식을 친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르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모양을 안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이러한 결과가 있는 것을 보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견도도 아니며, 또한 신해탈도 아니면서 행법(行法)이 있다. 어떻게 비구가 행법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오로지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슬기로서 관을 왕성하게 하고, 인을 왕성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행법이 있나니 나는 이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나로 하여금 이 비구는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게 하는가. 혹 이 비구는 모든 근을 항복 받고 선지식을 친하며, 이치를 따라 머물러 二과(果)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재에서 구경지(究竟智)를 얻거나, 만일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이러한 결과가 있는 것을 보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견도도 아니며, 신해탈도 아니요 또한 법행도 아니면서, 신행(信行)이 있다. 어떻게 비구가 신행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오로지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슬기로서 관하고 인하지마는 법행보다 못하다. 이렇게 비구는 신행이 있나니 나는 이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나로 하여금 이 비구는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게 하는가. 혹 이 비구는 모든 근을 항복 받고 선지식을 친하며, 이치를 따라 머물러 二과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재에서 구경지를 얻거나, 만일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아서 이러한 결과 있는 것을 보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그래서 나는 이 모든 비구를 방일하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나는 일체 모든 비구가 구경지(究竟智)를 얻는다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 모든 비구는 처음부터 구경지를 얻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라야 모든 비구는 구경지를 얻나니, 이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이니라. 어떻게 비구가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라야 모든 비구는 구경지를 얻으며, 어떤 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인가. 혹 믿음이 부처님께 나아가고, 나아가서는 곧 받들어 익히며, 받들어 익힌 뒤에는 곧 일심으로 법을 듣고, 일심으로 법을 들은 뒤에는 곧 그 법을 가지며, 법을 가진 뒤에는 곧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는 곧 헤아리며, 헤아린 뒤에는 곧 관찰한다. 어진 제자들은 이미 몸의 참모양을 관찰하고 슬기의 왕성한 관찰을 증득한다. 곧 그는 ‘이 진리를 나는 아직 몸으로 증득하지 못했고, 또한 슬기의 왕성한 관찰도 아니다. 나는 이제 슬기의 왕성한 관찰로 이 진리를 몸으로 증득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점점 배워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 모든 비구들은 구경지를 얻나니, 이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이니라.”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었다.
“앗사지와 푸나바수카여, 四구(句)라는 법이 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말하리니 너희들은 알고자 하는가.”
앗사지와 푸나바수카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누구로 말미암아, 또 무엇으로 말미암아 법을 알겠나이까.”
이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를 지나쳐 버린다. 이 바른 법률은 지극히 크고 영원하다. 혹 어떤 법률의 스승이 음식에 탐착해서 음식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그 제자들은 응당 빨리 방일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나는 음식에 탐착하지 않고 음식을 멀리 떠남에 있어서이겠는가.’ 믿음이 있는 제자들이면 응당 이렇게 말하리라. ‘세존께서는 저희들의 스승이시요, 저희들은 세존의 제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해 설법하시고, 선서시여, 저희들을 위해 설법하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이 길고 긴 밤에 진리를 얻고, 이익과 안온과 기쁨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그 믿음 있는 제자들은 내 경계(境界)에서 하는 일이 많을 것이요, 내 경계에서 이익이 많을 것이며, 내 경계에서 행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내 경계에 들어와 내 경계에서 머무르면 혹 동방에서 놀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을 것이요, 혹 남방, 서방, 북방에서 놀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믿음이 있는 제자로서 내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내 경계에서 이익이 많으며, 내 경계에서 행하는 것이 많고 내 경계에 들어와 내 경계에 머무르면, 나는 그래도 모든 착한 법에 머무른다고 말하지 않겠거늘, 하물며 쇠퇴(衰退)했다고 말하겠는가. 다만 밤, 낮으로 착한 법을 자라게 하여 쇠퇴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믿음이 있는 제자로서 내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내 경계에서 이익이 많으며, 내 경계에서 행하는 것이 많고, 내 경계에 들어와 내 경계에 머무르면, 二와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세에서 구경지를 얻거나 혹 다시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