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중아함경

중아함경 제52권

다르마 러브 2012. 6. 26. 20:36

 

중아함경 제52권

 

 

196. 주나경(周那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밧시[跋耆]국에 노닐으시면서 사아마[舍彌]촌에 계시었다. 그 때에 사미(沙彌) 춘다[周那]는 저 파아바아[波和]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다.

그 파아바아에는 친자(親子)라는 니간타[尼犍]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목숨을 마쳤다. 목숨을 마친 지 오래지 않아 니간타 친자의 모든 제자들은 각각 서로 헐뜯어 화합하지 않고, 각각 서로 헐뜯어 화합하지 않는 일만 말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결박하며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다. 곧 나는 이 법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너는 어떤 법을 알아서 내가 아는 것 만하냐. 나는 단정한데 너는 단정하지 않다. 나는 법에 맞는데 너는 맞지 않다. 너는 앞에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앞에 말한다. 나는 네게 이겼고 너는 내게 졌다. 내가 네게 일을 물으면 너는 대답하지 못하니 나는 이미 너를 항복 받았다. 너는 다시 내게 물으라. 만일 네가 움직이면 나는 다시 너를 묶으리라. 이렇게 서로 교만만 부려 그저 이기기만 구하지마는 아무도 그들을 꾸짖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니간타 친자에게는 속인(俗人)들 제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다 이 니간타 친자들의 제자들을 싫어하고 걱정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의 하는 말은 다 나쁜 법률로서 그것은 번뇌를 뛰어나는 길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또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로 헐뜯어 머무를 곳이 없고, 의지할 데가 없으며, 그들의 스승도 또한 여래, 무소착, 등정각이 아니었다.

이에 사미 춘다는 여름 안거를 마치고 三개월을 지낸 뒤 기운 옷을 챙기고, 바루를 가지고 사아마촌 북쪽에 있는 싱사파아동산으로 갔다. 사미 춘다는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존자 아난은 물었다.

“현자(賢者) 춘다여, 어디서 오는 길이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사미 춘다는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시여, 나는 파아바아에서 오는 길이며, 파아바아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파아바아에는 친자라는 한 니간타가 있었는데 그는 거기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가 목숨을 마친 지 오래지 않아 니간타 친자의 모든 제자들은 각각 서로 헐뜯어 화합하지 않고, 각각 서로 헐뜯어 화합하지 않는 일만 말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결박하며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습니다. 곧 나는 이 법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너는 어떤 법을 알아서 내가 아는 것 만하냐. 나는 단정한데 너는 단정하지 않다. 나는 법에 맞는데 너는 맞지 않다. 너는 앞에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앞에 말한다. 나는 네게 이겼고 너는 내게 졌다. 내가 네게 일을 물으면 너는 대답하지 못하니 나는 이미 너를 항복 받았다. 너는 다시 내게 물으라. 만일 네가 움직이면 나는 다시 너를 묶으리라. 이렇게 서로 교만만 부려 그저 이기기만 구하지마는 아무도 그들을 꾸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니간타 친자에게는 속인들 제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다 이 니간타 친자들의 제자들을 싫어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오면, 그들의 하는 말은 다 나쁜 법률로서 그것은 번뇌를 뛰어나는 길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또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헐뜯어 머무를 곳이 없고, 의지할 데가 없으며, 그들의 스승도 또한 여래, 무소착, 등정각이 아닙니다.”

존자 아난은 이 말을 듣고 곧 말하였다.

“현자 춘다여,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부처님을 가서 뵈옵고 부처님께 여쭐 수 있으리라. 현자 춘다여, 이제 우리는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께 이 일을 갖추어 말씀드리자. 혹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에게서 다른 법을 들을지도 모르겠구나.”

이에 존자 아난은 사미 춘다와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존자 아난은 물러나 한 쪽에 앉고, 사미 춘다도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존자 아난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사미 춘다가 저에게 와서 제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나이다. 저는 그에게 ‘현자 춘다여, 너는 어디서 오는 길이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느냐.’고 물었나이다. 춘다는 ‘존자 아난이시여, 나는 파아바아에서 오는 길이며, 파아바아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파아바아에는 친자라는 한 니간타가 있었는데 그는 거기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가 목숨을 마친 지 오래지 않아 니간타 친자의 모든 제자들은 각각 서로 헐뜯어 화합하지 않고, 각각 서로 헐뜯어 화합하지 않는 일만 말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결박하며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습니다. 곧 나는 이 법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너는 어떤 법을 알아서 내가 아는 것 만하냐. 나는 단정한데 너는 단정하지 않다. 나는 법에 맞는데 너는 맞지 않다. 너는 앞에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앞에 말한다. 나는 네게 이겼고 너는 내게 졌다. 내가 네게 일을 물으면 너는 대답하지 못하니 나는 이미 너를 항복 받았다. 너는 다시 내게 물으라. 만일 네가 움직이면 나는 다시 너를 묶으리라. 이렇게 서로 교만만 부려 그저 이기기만 구하지마는 아무도 그들을 꾸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니간타 친자에게는 속인들 제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다 이 니간타 친자들의 제자들을 싫어하고 걱정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오면, 그들의 하는 말은 나쁜 법률로서 그것은 번뇌를 뛰어나는 길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또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헐뜯어 머무를 곳이 없고, 의지할 데가 없으며, 그들의 스승도 또한 여래, 무소착, 등정각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자 놀랍고 두려워 온 몸의 털이 일어섰사오며, 세존께서 돌아가신 뒤에 어떤 비구라도 대중 가운데서 이런 싸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고 걱정하였나이다. 왜냐 하오면, 이런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도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또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내지 천상와 인간에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내게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떤 비구가 세존 앞에 앉아 지극한 마음으로 세존을 존경하고, 세존을 잘 보호하는 것을 보았나이다. 저는 그것을 보고 곧 ‘만일 이 비구가 세존께서 돌아가신 뒤에 대중 가운데서 이런 싸움을 일으키면 그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이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내지 천상과 인간에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내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나이다.

이에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아난아, 너는 어떤 싸움이 대중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기에 그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은 도리도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내지 천상과 인간에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내게 하는 것이라 하느냐.”

“세존이시여, 이른바 어떤 싸움이 기운이 왕성한 계(戒), 기운이 왕성한 마음, 기운이 왕성한 관찰로 인하여 대중 가운데서 생기면 세존이시여, 이른바 이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은 도리도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내지 천상과 인간에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내게 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난아, 이른바 기운이 왕성한 계, 기운이 왕성한 마음, 기운이 왕성한 관찰로 인한 이 싸움은 매우 적다.

아난아, 만일 어떤 싸움이 도(道)를 인하고 도의 자취를 인해서 대중 가운데서 생기면 아난아, 이른바 이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은 도리도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다. 아난아, 네가 그 중에서 어떤 두 비구가 각기 다른 소견으로 싸움을 일으켜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 이것은 율(律)이다 이것은 율이 아니다.

이것은 범(犯)이다. 이것은 범이 아니다. 혹은 가볍다 하고 혹은 무겁다 하며, 참회해야 한다 하고, 참회할 것이 아니라 하며, 조심해야 한다 하고, 조심할 것이 아니라 하며, 남음이 있다 하고, 남음이 없다 하며, 일어난다 하고, 일어나지 않는다 하는 것을 보면 아난아,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혹 四염처(念處), 四정단(正斷), 四여의족(如意足), 五근(根), 五력(力), 七각지(覺支), 八성도(聖道)등 나의 법취(法聚)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겠는가. 아난아, 니간타 친자는 실로는 일체지(一切智)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서 일체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일컫는다. 아난아, 만일 니간타 친자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았다면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六쟁법(諍法)을 시설하여 그것을 듣고 그치게 하였을 것이니라.”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나는 너희들을 위해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하리라.”

존자 아난은 여쭈었다.

“예예, 분부대로 듣잡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혹 어떤 사람은 분을 잘 내어 원한을 맺는다. 아난아, 사람이 분을 잘 내어 원한을 맺으면 그는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않는다. 그는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않은 뒤에는, 곧 대중 가운데서 이러한 싸움을 일으킨다. 이른바 이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이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내지 천상과 인간에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내게 한다. 아난아, 이러한 싸움을 네가 안팎에서 보아 다하지 않거든 너는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빨리 방편을 구해서 지극히 부지런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게 하지 말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구해 머리를 구(求)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이와 같이 만일 네가 싸움을 안팎에서 보아 다하지 않거든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너는 빨리 방편을 구해서 지극히 부지런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게 하지 말라.

아난아, 이러한 싸움을 네가 안팎에서 보아 다 없어졌거든 너는 그 싸움을 다시 일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을 거듭 보호하여 언제나 방일하지 말게 하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구해서 머리를 구(求)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너는 싸움을 안팎에서 보아 다 없어졌거든 그것을 다시 일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마음을 거듭 보호하여 언제나 방일하게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이와 같이 말 끊음, 맺음, 아낌, 질투, 아첨, 속임, 뻔뻔함, 나쁜 욕심, 사특한 소견 등 이런 것들은 다 나쁜 성질로서 제어하기 어렵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이러한 나쁜 욕심과 사특한 소견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는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못한다. 그는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못한 뒤에는 곧 대중 가운데서 이러한 싸움을 일으키나니, 이러한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롭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이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내지 천상와 인간에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내게 하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싸움을 네가 보아 다하지 않았거든 이 싸움을 끊기 위해 너는 빨리 방편을 구해서 지극히 부지런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게 하지 말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구해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이와 같이 싸움을 네가 안팎에서 보아 다하지 않았거든 그것을 끊기 위해 너는 빨리 방편을 구해 지극히 부지런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게 하지 말라.

아난아, 이러한 싸움을 네가 안팎에서 보아 다 없어졌거든 너는 그것을 다시 일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마음을 거듭 보호하여 언제나 방일하게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구해서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싸움을 네가 안팎에서 보아 다 없어졌거든 그것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마음을 거듭 보호하여 언제나 방일하게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다시 아난아, 七지쟁(止諍)이 있다. 一은 면전(面前)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律)을 주는 것이요, 二는 기억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三은 미련하지 않음으로써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요, 四는 스스로 드러내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五는 그대라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요, 六은 계속 옮겨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七은 분소(糞掃)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다.

아난아, 어떤 것이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가. 아난아,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써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하고, 한 사람이 두 사람, 많은 사람, 여러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서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두 사람이 두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써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하고, 두 사람이 많은 사람, 여러 사람, 한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서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또 많은 사람이 많은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서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하고, 많은 사람이 여러 사람, 한 사람, 두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서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또 여러 사람이 여러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서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하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많은 사람을 가르쳐 나무래고 법률로서 단속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아난아, 이것을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기억해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기억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계를 범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면, 여러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그에게 ‘너는 일찍 계를 범하고도 스스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대는 마땅히 여러 사람에게서 기억하는 율을 구(求)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은 그대에게 기억하는 율을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그래서 만일 어느 곳에 여러 사람들이 화합해서 모이면 그 비구는 거기 가서,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신을 벗고 그 속에 들어가,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어 앉아 합장하고 ‘여러 스님네님, 나는 일찍 계를 범하고도 기억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나는 지금부터 여러 스님네들에게 기억하는 율을 구합니다. 원컨대 여러분 스님들은 화합하여 내게 기억하는 율을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아난아, 대중은 그 비구를 위해 화합하여 모였으니 응당 그에게 기억하는 율을 주고, 법과 율로서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아난아, 이것을 기억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싸움을 끊기 위해 기억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미련하지 않음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미련하지 않음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뒤집히고,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뒤집힌 뒤에는 부정한 행이 많고, 사문의 법이 아니며 법다운 행을 따르지 않으면서 또 거슬리는 말을 한다. 뒷날 그가 본심으로 돌아왔을 때에 모든 비구들은 그를 보고는 말한다. ‘너는 일찍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뒤집히고,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뒤집힌 뒤에는 부정한 행이 많고, 사문의 법다운 행을 따르지 않으면서 또 거슬리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본심으로 돌아왔다. 그대는 마땅히 여러 사람들에게서 미련하지 않은 율을 구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은 그대에게 미련하지 않은 율을 줄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느 곳에 대중이 화합해서 모이면 그 비구는 거기 가서,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신을 벗고 그 속에 들어가,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러 스님네님, 나는 일찍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뒤집히고,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뒤집힌 뒤에는 부정한 행이 많고, 사문의 법이 아니며 법다운 행을 따르지 않으면서 거슬리는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본심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지금 여러 스님네들에게 미련하지 않은 율을 구합니다. 원컨대 여러 스님네들은 화합하여 내게 미련하지 않은 율을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아난아, 대중들은 그 비구를 위해 화합하여 모이었으니 응당 그에게 미련하지 않은 율을 주고, 법과 율로서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아난아, 이것을 미련하지 않음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미련하지 않음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스스로 드러내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스스로 드러내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계를 범하는데 남이 혹은 말하고 혹은 말하지 않으며, 혹은 기억하고 혹은 기억하지 못하거든 아난아, 만일 어느 곳에 대중이 화합해서 모이면 그 비구는 거기 가서,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신을 벗고 그 속에 들어가,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러 스님네님, 내가 어떤 계를 범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나는 이제 여러 큰 스님네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내 죄를 드러내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보여 감히 숨기지 아니하오며, 보다 더 잘 보호해 가져서 뒤에는 다시 범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난아,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그에게 ‘그대는 스스로 범한 줄을 아는가’고 물어야 하고, 그는 응당 ‘나는 진실로 내가 범한 줄을 압니다.’고 대답할 것이다. 대중은 다시 그에게 ‘보다 더 잘 보호해 가져서 다시는 범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난아, 이것을 스스로 드러내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스스로 드러내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그대라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그대라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수치를 알지 못하고 보고들은 것을 뉘우치지 않으며, 다른 의심하는 사람의 나쁜 욕심을 따라서 그가 계를 범한 뒤에는 한 곳을 안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는데, 한 곳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안다고 일컫는다. 그는 또 대중 가운데서도 한 곳을 안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는데, 한 곳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컬으면, 아난아, 그 비구를 위하기 때문에 대중은 서로 화합해 모여 응당 그대라는 율을 주어야 한다. 곧 ‘그대는 도(道)가 없고, 그대는 이치가 없으며, 그대는 악해서 착하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그대는 계를 범한 뒤에 한 곳을 안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는데, 한 곳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안다고 일컫는다. 또 그대는 대중 가운데서도 한 곳을 안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는데, 한 곳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컫고, 한 곳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한 곳을 안다고 일컫기 때문이다.’라고. 아난아, 이것을 그대라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그대라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계속 옮겨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계속해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가. 아난아, 어떤 두 비구가 그 사이에 약간 뜻이 달라 싸움을 일으킨다. 곧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 이것은 율이다. 이것은 율이 아니다. 이것은 범(梵)이다. 이것은 범이 아니다. 혹은 가볍다 하고 혹은 무겁다 하며, 말해야 한다하고 말할 것이 없다 하며, 보호해야 한다 하고 보호할 것이 없다하며, 남음이 있다 하고 남음이 없다 하며, 참회해야 한다 하고 참회할 것이 없다.’고 한다. 아난아, 그 비구들은 이 싸움을 외처(猥處)에서 그친다. 만일 외처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외처에서 그치지 않으면 이 싸움은 대중에 알려야 할 것이요, 만일 대중 속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대중 속에서도 그치지 않으면 아난아, 서로 가까이 사는 사람 중에 만일 어떤 비구로서 경(經)을 가졌고, 율(律)을 가졌으며, 어머니를 가졌으면, 이 비구들은 마땅히 그리로 가서 이 싸우는 일을 말해야 하고, 만일 길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길에서도 그치지 않으면 이 싸움은 다시 대중을 향해 말해야 할 것이요, 만일 대중 앞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대중 앞에서도 그치지 않으면 아난아, 만일 도움이 많은 친구로서 경을 가졌고, 율을 가졌으며, 어머니를 가졌으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 싸움을 그치게 하고, 법과 율로서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하여야 한다. 아난아, 이것을 계속 옮겨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계속 옮겨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분소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분소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절에 모든 비구들이 서로 싸우고, 미워하며 서로 다투면 아난아, 그 모든 비구들은 두 파로 갈라진다. 두 파로 갈라진 뒤에는 만일 한 파 중에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가 있고 그 다음이 있거나 또는 종주(宗主)가 있고 그 다음이 있으면 아난아, 이 비구들은 그 비구에게 ‘여러분, 우리들의 도(道)가 없고 이치가 없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우리들은 악해서 착하지 않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이 잘 말해진 법률에 대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집이 없이 도를 배우면서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며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싸움으로 인해 우리들이 죄를 범했거든 우리들 자신을 위하고 또 여러분들을 위해 투라자(偸羅柘)로 다스리고 가상응(家相應)으로 다스리십시오. 우리들은 이제 여러분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 드러내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보이어 감히 숨기지 않사오며, 보다 더 잘 보호해 가져서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이 파 중에서 아무 비구도 응하는 자가 없으면 아난아, 이 비구들은 다시 저 둘째 파로 가서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어 앉아 합장하고 ‘여러 스님네분, 우리들의 도가 없고 이치가 없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우리들은 악해서 착하지 않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이 잘 말해진 법률에 대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집이 없이 도를 배우면서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며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싸움으로 인해 우리들이 계를 범했거든 우리를 자신을 위하고 또 여러분들을 위해 투라자로 다스리고 가상응으로 다스리십시오. 이제 여러분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 드러내고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보이어 감히 숨기지 않겠습니다. 보다 더 잘 보호하고 가져서 뒤에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한다. 아난아, 그 비구들은 이 비구들에게 ‘여러분, 너희들은 스스로 계를 범한 줄을 아는가.’고 말하면, 이 비구들은 응당 ‘실로 스스로 계를 범한 줄을 압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 비구들은 마땅히 ‘보다 더 잘 보호하고 가져서 다시는 범하지 말라.’고 말한다. 둘째 파도 또한 이와 같다.

아난아, 이것을 분소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분소를 버리듯 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느니라.

아난아, 나는 이제 너를 위해 六위로법(慰勞法)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존자 아난은 여쭈었다.

“예예, 분부대로 듣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어떤 것을 六위로법이라 하는가. 사랑하는 몸의 업(業)으로서 모든 범행인(梵行人)을 대한다. 이 법은 위로법으로서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그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둬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으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는다. 사랑하는 입의 업과 사랑하는 뜻의 업도 또한 그러하다. 또 만일 법의 이익을 법다이 얻어 자기가 얻은 밥이 바루에 있는 것까지도 이러한 이익을 나누어 모든 범행인들에게 베풀면, 이 법은 위로법으로서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그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둬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으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는다. 또 만일 계가 있어서 이지러지지 않고 뚫리지도 않으며, 더러움도 없고 검지도 않으며, 땅과 같아서 남을 따르지 않아서 성인의 칭찬하는 바로서 두루 갖추어 잘 받아 가지고, 이러한 계를 나누어 펴 모든 범행인들에게 베풀면, 이 법은 위로법으로써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그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둬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으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는다. 또 만일 생사를 뛰어나는 거룩한 소견이 있어서 밝게 보고 깊이 통달하여 능히 바로 괴로움을 없애고, 이러한 소견을 나누어 펴 모든 범행인들에게 베풀면, 이 법은 위로법으로써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그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둬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으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는다. 아난아, 내가 말하는 六위로법이란 이 때문에 말한 것이니,

아난아, 만일 너희들이 저 六쟁의 근본을 바로 끊고, 혹 대중 가운데서 싸움을 일으키더라도 이 七지쟁의 분소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로서 그치게 하며, 다시 이 六위로법을 행하면 아난아, 너희들은 내가 세상에서 떠난 뒤에도 공동으로 화합하고 기뻐하여 싸우지 않으며, 한 마음을 한 가지로 하고, 한 가르침을 한 가지로 하며, 물과 젖을 하나로 합해 쾌락 하게 노니는 것은 내가 세상에 있을 때와 같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97. 우바리경(優婆離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참파아[瞻波]국에 노닐으시면서 가가라아[恒伽]못 기슭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우바알리[優婆離]는 해질녘에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다른 업(業)을 짓고 다른 업을 말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律)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면전의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꾸짖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를 아래에 두고,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꾸짖는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위로 올리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아래에 둔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물리치고,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를 위로 올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물리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를 몰아내고,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에게 겸손하고,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를 몰아낸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를 다스리고,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에게 겸손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다른 업을 짓고 다른 업을 말하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면전의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느니라.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꾸짖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를 아래에 두고,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꾸짖는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위로 올리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아래에 둔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물리치고,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를 위로 올린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느니라.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물리친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근본으로 좇아 다스리고, 근본으로 좇아 다스릴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를 몰아내고,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를 근본으로 좇아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에게 겸손하고,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를 몰아낸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화합해 살면서 제가 짓는 업을 따라 곧 그 업을 말하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요 율다운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없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면전의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기억해야 할 율을 주며,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며,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곧 꾸짖으며,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는 곧 아래에 두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는 곧 위로 올리며,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는 곧 물리치고, 마땅히 기억할 자는 곧 기억하며,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는 곧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는 곧 몰아내며,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에게는 곧 겸손하고,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는 곧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요 율다운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없느니라.

우파알리여, 너는 마땅히 짓는 업을 따라 곧 그 업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면전의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기억할 율을 주며,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며,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곧 꾸짖으며,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는 곧 아래에 두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는 곧 위로 올리며,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는 곧 물리치고, 마땅히 기억할 자는 곧 기억하며,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는 곧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는 곧 몰아내며,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에게는 곧 겸손하며,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는 곧 다스려야 하나니, 우파알리여,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우파알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97. 우바리경(優婆離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참파아[瞻波]국에 노닐으시면서 가가라아[恒伽]못 기슭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우바알리[優婆離]는 해질녘에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다른 업(業)을 짓고 다른 업을 말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律)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면전의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꾸짖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를 아래에 두고,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꾸짖는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위로 올리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아래에 둔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물리치고,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를 위로 올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물리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를 몰아내고,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에게 겸손하고,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를 몰아낸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를 다스리고,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에게 겸손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나이까.”

“아니니라, 우파알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다른 업을 짓고 다른 업을 말하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면전의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미련하지 않을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느니라.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꾸짖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 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를 아래에 두고,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꾸짖는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위로 올리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아래에 둔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물리치고,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를 위로 올린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느니라.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에게 기억할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물리친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근본으로 좇아 다스리고, 근본으로 좇아 다스릴 자에게 기억할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를 몰아내고,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를 근본으로 좇아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에게 겸손하고,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를 몰아낸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화합해 살면서 제가 짓는 업을 따라 곧 그 업을 말하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요 율다운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없다. 우파알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면전의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기억해야 할 율을 주며,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며,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곧 꾸짖으며,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는 곧 아래에 두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는 곧 위로 올리며,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는 곧 물리치고, 마땅히 기억할 자는 곧 기억하며,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는 곧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는 곧 몰아내며,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에게는 곧 겸손하고,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는 곧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요 율다운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없느니라.

우파알리여, 너는 마땅히 짓는 업을 따라 곧 그 업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면전의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면전의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할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기억할 율을 주며, 마땅히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미련하지 않을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스스로 드러내는 율을 주며, 마땅히 그대라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그대라 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곧 꾸짖으며,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는 곧 아래에 두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는 곧 위로 올리며,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는 곧 물리치고, 마땅히 기억할 자는 곧 기억하며,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는 곧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마땅히 몰아내어야 할 자는 곧 몰아내며, 마땅히 겸손해야 할 자에게는 곧 겸손하며,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는 곧 다스려야 하나니, 우파알리여,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존자 우파알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198. 조어지경(調御地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노닐으시면서 죽림 칼란다카[迦蘭陀]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사미 아치라바토오[阿夷那和提]도 또한 왕사성에 노닐면서 일없는 곳의 선실(禪室)에 있었다.

그 때에 왕의 동자(童子) 자야세나[耆婆先那]는 오후에 천천히 걸어 사미 아치라바토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말하였다.

“현자(賢者) 아기벳사나[阿耆舍那]여, 물을 말이 있는데 들어주겠는가.”

“어진 왕동자여, 묻고 싶으면 곧 물으라. 나는 듣고 생각해 보리라.”

왕동자는 물었다.

“아기벳사나여, 참으로 비구는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되는가.”

“어진 왕동자여, 참으로 비구는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된다.”

“현자 아기벳사나여, 그러면 너는 네가 들은 법과 네가 익힌 것을 가지고 ‘참으로 비구는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내게 다 말해 보라.”

“어진 왕동자여, 나는 내가 들은 법과 내가 익힌 것을 가지고는 ‘참으로 비구는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내게 다 말할 수 없다. 왕동자여, 혹 내가 들은 법과 내가 익힌 것을 가지고 ‘참으로 비구는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말하더라고 아마 어진 왕동자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니, 그러면 나는 헛수고만 하게 될 것이다.”

왕동자는 사미에게 말했다.

“현자 아기벳사나여, 너는 아직 내게 항복하지 않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스스로 물러서는가. 현자 아기벳사나여, 네가 들은 법과 네가 익힌 것을 가지고 ‘참으로 비구는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내게 말해 보라. 만일 내가 알아들으면 좋고, 만일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나는 다시 너에게 아무 법도 묻지 않으리라.”

이에 사미 아치라바토오는 제가 들은 법과 제가 익힌 것을 가지고 왕동자 자야세나에게 ‘참으로 비구는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말하였다.”

“현자 아기벳사나여, 설령 비구가 이 법률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여 한 마음이 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왕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하직도 하지 않고 떠나 버렸다. 왕동자 자야세나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이에 사미 아치라바토오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왕동자 자야세나와 서로 이야기한 것을 모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곧 사미 아기벳사나에게 말씀하시었다.

“아기벳사나여, 그만 두라. 왕동자 자야세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여 욕애(欲愛)에 먹히고 욕심에 불 살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으로는 아무리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고 욕심의 번열(煩熱)을 끊어 욕지(欲知)가 없고 욕견(欲見)이 없으며 욕각(欲覺)이 없는 것을 지금에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아기벳사나여, 왕동자 자야세나는 언제나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니라.

아기벳사나여, 마치 코끼리 길들임, 말 길들임, 소 길들임, 사람 길들임의 四조어(調御)가 있는데 그 중에는 길들일 수 없는 둘과 길들일 수 있는 둘이 있는 것과 같다. 아기벳사나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길들일 수 없는 것으로서 아직 길들이지 못하고, 길들이지 못할 처지에 있으며, 길들이지 못할 둘은 아무리 길들이려 하더라고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길들일 수 있고, 잘 길들일 수 있는 것으로서, 아직 길들이지 못하고, 길들이지 못한 처지에 있는 둘은 만일 길들이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그만 두라. 왕동자 자야세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여 욕애에 먹히고 욕심에 불 살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으로는 아무리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고 욕심에 불 살리는 것을 끊어 욕지가 없고 욕견이 없으며 욕각이 없는 것을 지금에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아기벳사나여, 왕동자 자야세나는 언제나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니라.

아기벳사나여, 마치 마을에서 멀리 않은 곳에 큰 돌산이 있는데, 그 산은 이지러진 데도 없고 뚫린 곳도 없으며, 충실하여 비지 않았고,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고, 모두 합해서 하나가 되어 있다. 어떤 두 사람은 그것을 직접 보려고 하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빨리 산에 올라가고 둘째 사람은 산아래 머물러 있었다. 돌산 우에 올라간 사람은 돌산 너머 있는 좋은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못, 긴 강과 하수를 본 뒤에 산아래 있는 사람에게 ‘너는 저 산너머에 있는 좋은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못, 긴 강과 하수를 보느냐.’고 말하면, 산밑에 있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그 너머는 좋은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못, 긴 강과 하수가 있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돌산 위에 있는 사람은 빨리 내려와 산아래 있는 사람을 붙들고 산 위로 빨리 올라가서는 ‘너는 이 산 너머 있는 좋은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못, 긴 강과 하수를 보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이제 비로소 본다.’고 대답했다. 그는 다시 ‘네가 아까는 그것이 있을 수 없다 하고, 지금은 본다 하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고 물었다. 그 사람은 ‘나는 아까는 산이 가려서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그만 두라. 왕동자 자야세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여 욕애에 먹히고 욕심에 불 살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으로는 아무리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고 욕심의 번열을 끊어 욕지가 없고 욕견이 없으며 욕각이 없는 것을 지금에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아기벳사나여, 옛날 찰제리(刹帝利)족의 정생왕(頂生王)에게 코끼리 잡이[捕象師]가 있었다. 왕은 그에게

‘너 코끼리잡이야, 나는 위해 들코끼리를 잡아 와서 내게 알려라.’고 했다.

때에 코끼리잡이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곧 왕의 코끼리를 타고 들숲으로 갔다. 그는 들숲 속에서 큰 들코끼리를 보고 그것을 잡아 왕의 코끼리 목에 잡아매었다. 왕의 코끼리는 그 들코끼리를 목에 달고 숲 밖으로 나와 궁으로 갔다. 코끼리잡이는 정생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미 들코끼리를 잡아 와서 밖에 매어 두었나이다. 왕의 뜻대로 하소서.’

정생왕은 명령하였다.

‘좋은 조상사(調象師)여, 너는 이제 빨리 이 들코끼리를 길들이고 항복 받아 잘 길든 코끼리가 되게 하라. 그리고 잘 길들인 뒤에는 곧 내게 와서 알려라.’

이에 좋은 조상사는 왕의 명령을 받고는 아주 큰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들코끼리 있는 곳으로 가서, 막대기를 땅에 박고 들코끼리의 목을 매어 들을 즐기는 뜻을 제어하고, 둘에 대한 욕심을 제하고, 들의 피로를 즐기게 하였다. 그래서 마을을 즐기게 하고 사람을 따르게 하기 위해 조상사는 먼저 음식을 주었다. 아기벳사나여, 만일 그 들코끼리가 처음부터 조상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그 조상사는 곧 ‘이 들코끼리는 반드시 살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큰 들코끼리가 처음부터 음식을 받아먹는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들코끼리가 처음부터 조상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조상사는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 대해주고, 들코끼리는 그를 따라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기지고 버리며, 굽히고 펴고 한다. 만일 그 들코끼리가 조상사의 부드럽고 상냥한 말을 따라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가지고 버리며, 굽히고 펴고 하면, 이렇게 하여 들코끼리는 조상사의 시킴을 따른다.

아기벳사나여, 만일 그 들코끼리가 조상사의 시킴을 따르면 그 조상사는 곧 두 앞다리, 두 뒷다리, 두 볼기짝, 두 옆구리, 꼬리, 등성이, 목, 머리, 귀, 어금니를 결박하고, 또 그 코를 결박한 뒤에 사람을 시켜 갈강쇠를 가지고 그 머리 위에 타게 하고, 많은 사람을 시켜 칼, 방패, 긴 창, 양지창, 민눈창, 도끼를 가지고 그 앞에 서게 하고 조상사는 손에 칼을 들고 들코끼리 앞에서 ‘나는 이제 너를 다루어 움직이지 않게 하고, 너를 다루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리라.’고 말한다. 만일 그 들코끼리가 조상사의 다툼을 좇아 움직이지 않을 대에는 그는 앞다리를 들지 않고 또한 뒷다리도 움직이지 않으며, 두 볼기짝, 두 옆구리, 꼬리, 등성이, 목, 머리, 귀, 어금니 및 코를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하여 들코끼리는 조상사의 시킴을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느니라. 아기벳사나여, 만일 그 들코끼리가 조상사의 시킴을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느니라. 아기벳사나여, 만일 그 들코끼리가 조상사의 시킴을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그 때에는 칼과 방패, 긴 창, 양지창, 민눈창, 도끼와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을 참고, 또 고동을 불고 북을 치며 종을 치더라도 다 능히 참고 견딘다. 만일 그 들코끼리가 그것들을 능히 참고 견디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의 제일로 길들어져서, 제일 빠르고 위없이 빨라, 왕이 타게 되어 왕의 곡식을 받아먹고, 왕의 코끼리라 일컬어진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부르며, 그는 이 세상과 하늘, 악마, 범천, 사문, 바라문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거기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체험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의 설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도한 묘하며,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낸다. 그의 설법을 거사의 아들이 들으면 거사의 아들은 그것을 듣고는 여래의 설법을 믿게 되고, 그는 그것을 믿은 뒤에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어 집이 없이 도를 배우느니라.

아기벳사나여, 그 때에 거룩한 제자들은 집에서 나와 밖에 있다. 이 들코끼리가 탐욕을 내고 즐기고 집착하는 것은 숲 속에 있기 때문인 것처럼 아기벳사나여, 이 하늘과 사람이 탐욕을 내고 즐기고 집착하는 것은 빛깔, 소리, 냄새, 맛, 부딪침의 이 五욕(欲)에 있기 때문이다. 여래가 처음으로 그 비구들을 길들일 때에는 ‘너희들은 마땅히 몸과 목숨의 청정을 보호하고, 입과 뜻과 목숨의 청정을 보호하라.’고 말한다. 만일 성인의 제자가 몸과 목숨의 청정을 보호하고, 입과 뜻과 목숨의 청정을 보호하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이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안 몸을 몸다이 관찰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을 법다이 하라.’고 한다. 만일 성인의 제자들이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을 법다이 하면, 이 四념처(念處)는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어서, 그 마음을 결박하여 집을 즐겨하는 뜻을 제어하고, 집에 대한 욕심을 제하고, 집의 피로를 쉬게 한다. 그래서 바른 법을 즐기게 하고, 성인의 계를 닦아 익히게 한다.

아기벳사나여, 마치 조상사가 찰제리 정생왕의 명령을 받고는 아주 큰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들코끼리 있는 곳으로 가서, 막대기를 땅에 박고 들코끼리 목을 매어 들을 즐기는 뜻을 제어하고, 들에 대한 욕심을 제하고, 들의 피로를 쉬게 하여 마을을 즐기게 하고,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이 四념처는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어서, 그 마음을 결박하여 집을 즐겨하는 뜻을 제어하고, 집에 대한 욕심을 제하고, 집의 피로를 쉬게 한다. 그래서 바른 법을 즐기게 하고, 성인의 계를 닦아 익히게 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면, 그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이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는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는 생각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렇게 하여 거룩한 제자들은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느니라.

아기벳사나여, 마치 들코끼리가 조상사의 부드럽고 상냥한 말을 따라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가지고 버리며, 굽히고 펴고 한다면, 이렇게 하여 들코끼리는 조상사의 명령을 따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렇게 하여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느니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이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욕심을 떠나고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내지 제 四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라.’고 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욕심을 떠나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떠나, 내지 제 四선을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렇게 하여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를 따라 머물러 이동하지 않는다. 아기벳사나여, 마치 들코끼리가 조상사의 다룸을 좇아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앞다리도 들지 않고, 또한 뒷다리도 움직이지 않으며, 두 볼기짝, 두 옆구리, 꼬리, 등성이, 목, 머리, 귀, 어금니 및 코를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욕심을 떠나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떠나 내지 제 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렇게 하여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를 따라 머물러 이동하지 않느니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은 그 때에는 능히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 더위, 모기, 등에, 파리, 벼룩과 바람과 햇볕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능히 참으며, 몸이 모든 병에 걸려 지극히 고통스럽고 내지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그런 어려움을 다 능히 참고 견딘다. 아기벳사나여, 마치 들코끼리가 조상사를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그 때에는 칼과 방패, 긴 창, 양지창, 민눈창, 도끼와 큰소리로 부르는 것을 참고, 또 고동을 불고 북을 치며 종을 치더라도 다 능히 참고 견디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그 때에는 능히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 더위, 모기, 등에, 파리, 벼룩과 바람과 햇볕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능히 참으며, 몸이 모든 병에 걸려 지극히 고통스럽고 내지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그런 어려움을 다 능히 참고 견디느니라.

아기벳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가 여래를 따라 능히 참고 견디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어져서, 제일로 쉬고 최상으로 쉬어, 모든 악과 두려움, 어리석음 및 아첨을 버리고 청정하여 티끌이 없고 때가 없으며, 더러움이 없어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실로 공양할 만하여 모든 하늘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된다. 아기벳사나여, 마치 들코끼리가 능히 참으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의 제일로 길들어져서, 제일 빠르고 위없이 빨라, 왕이 타게 되어 왕의 곡식을 받아먹고, 왕의 코끼리라고 불리어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벳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능히 참고 견디면 그들은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의 제일로 길들어져서, 제일로 쉬고 최상으로 쉬어, 모든 악과 두려움, 어리석음 및 아첨을 버리고 청정하여 티끌이 없고 때가 없으며, 더러움이 없어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실로 공양할 만하여 모든 하늘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되느니라.

아기벳사나여, 젊은 들코끼리가 길들지 못하고 죽으면 길들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하며, 중늙은 들코끼리가 길들지 못하고 죽으면 길들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한다. 아기벳사나여, 젊은 거룩한 제자가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면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며, 중늙은 거룩한 제자가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면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쳤다고 말한다. 아기벳사나여, 젊은 들코끼리가 잘 길들어 죽으면 잘 길들어 죽었다고 말하고, 중늙은 들코끼리가 잘 길들어 죽으면 잘 길들어 죽었다고 말한다. 아기벳사나여, 젊은 거룩한 제자가 잘 길들어 목숨을 마치면 잘 길들어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고, 중늙은 거룩한 제자가 잘 길들어 목숨을 마치면 잘 길들어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사미 아치라바토오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중아함경 제52권.hwp

중아함경 제52권.hwp
0.07MB

'초기경전 > 중아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아함경 제54권  (0) 2012.06.26
중아함경 제53권  (0) 2012.06.26
중아함경 제51권  (0) 2012.06.26
중아함경 제50권  (0) 2012.06.26
중아함경 제49권  (0) 2012.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