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60권
216. 애생경(愛生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어떤 바라문은 외아들을 두어 지극히 사랑하고 생각하여, 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보고 보아도 싫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갑자기 죽었다. 아들이 죽자 그는 슬픔에 잠겨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옷도 입을 줄 모르며 또한 향도 바를 줄 모르고 다만 무덤에 가서 울면서, 아들이 누워 있는 곳만 생각하였다. 이에 그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 드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바라문이여, 지금 너의 모양을 보니 본 정신이 아닌 것 같구나.”
“지금 내가 무슨 경황으로 본 정신이 있겠나이까. 왜냐 하오면 나는 외아들을 두어 지극히 사랑하고 생각하여 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보고 보아도 싫증이 없었나이다. 그는 갑자기 죽었나이다. 그가 죽자 나는 슬픔에 잠겨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옷도 입을 줄 모르며 또한 향도 바르지 않고 다만 무덤에 가서 울면서 아들이 누워 있는 곳만 생각하였나이다.”
“그러하니라, 바라문이여. 그러하니라, 바라문이여.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것이니라.”
“고오타마시여, 왜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시나이까. 고오타마시여, 마땅히 아소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나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그러하니라, 바라문이여. 그러하니라, 바라문이여.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것이니라.”
“고오타마시여, 어찌하여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시나이까. 고오타마시여, 마땅히 알으소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나이다.”
라고 이렇게 거듭 말하였다.
때에 그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옳다고는 말하지 않고 다만 그르다고만 말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내졌고 떠나갔다.
그 때에 승림 문 앞에서는 많은 시장 아이들이 도박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바라문은 멀리서 그것을 보고 곧 ‘세상에 만일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저 도박꾼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저기 가서 고오타마와 함께 서로 이야기한 것을 저들에게 모두 말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시장 아이들이 도박 놀이하는 곳으로 가서 세존과 함께 서로 이야기 한 것을 저들에게 모두 이야기하였다.
많은 도박꾼 시장 아이들은 이 말을 듣고는
“바라문이여, 어찌하여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하겠는가. 바라문이여, 마땅히 알라. 만일 애정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곧 ‘도박꾼 아이들의 말은 꼭 내 생각과 같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끄덕이고 떠났다.
이에 이 이야기는 계속해 퍼져서 마침내 왕궁(王宮)에 들어갔다. 코오살라의 파세나디 왕은 사문 고오타마의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한다는 말을 듣고 말리카아[末利]황후에게 말하였다.
“나는 들으니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한다 하오.”
말리카아 황후는 이 말을 듣고
“그러하나이다, 대왕이시여. 그러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나이다.”
“스승이 주장하는 말을 들으면 그 제자는 반드시 찬동하는 것이오. 사문 고오타마는 당신의 스승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당신은 그의 제자이기 때문 그렇게 말하는 것이오. 이른바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대왕이여, 만일 믿지 못하시겠거든 몸소 가서 물으시든지 또는 사자(使者)를 보내 보십시오.”
이에 파세나디 왕은 곧 나알리장가[那利鴦伽] 바라문에게 분부하였다.
“너는 사문 고오타마에게 가서 나를 위해 ‘사문 고오타마시여,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은 한결같으시나이까.’고 문안 드려라. 그리고 코오살라국의 파세나디 왕도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은 한결같으시나이까.’고 문안 드린다고 말하라. 또 ‘사문 고오타마시여,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나이까.’고 여쭈어 보아라. 나알리장가여, 만일 사문 고오타마께서 무슨 하시는 말씀이 있거든 너는 마땅히 잘 받아 가져 외워라. 무슨 까닭인가. 그러한 사람은 끝내 망녕된 말은 하시지 않느니라.”
나알리장가 바라문은 왕의 분부를 받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 드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코오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은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은 한결같으시나이까.’고 문안드리나이다. 그러하옵고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나알리장가여,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나알리장가여, 너의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어머니가 목숨을 마치면 그는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 옷을 벗고 맨몸으로 아무 길이나 돌아다니면서 ‘여러분, 우리 어머니를 보았습니까. 여러분, 우리 어머니를 보았습니까.’하고 말한다. 나알리장가여, 이 일로써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버지, 형님, 누나, 여동생도 또한 그러하며 만일 며느리가 목숨을 마치면 그 사람은 미친증이 생겨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 옷을 벗고 맨몸으로 아무 길이나 돌아다니면서 ‘여러분, 우리 어머니를 보았습니까. 여러분, 우리 어머니를 보았습니까.’하고 말한다. 나알리장가여, 이 일로써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줄을 알 수 있느니라.
나알리장가여, 옛날 어떤 부인이 잠깐 친정에 돌아왔는데 그 친족들은 그 부인을 다시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 하였다. 그 부인은 이 말을 듣고 곧 남편 집으로 돌아가 그 남편에게 ‘여보시오,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 친족들은 나를 억지로 빼앗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고 말하였다. 그 남자는 부인 팔을 붙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우리 저승으로 같이 가자. 우리 저승으로 같이 가자.’하고 곧 날랜 칼로 그 부인을 찔러 죽이고, 자기도 함께 죽었다. 나알리장가여, 이 일로써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줄을 알 수 있느니라.
나알리장가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가져 외우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돌고 물러 나왔다.
그는 코오살라의 파세나디 왕에게 돌아와 사뢰었다.
“천왕이여,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 울음,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나이다.”
파세나디 왕은 이 말을 듣고 황후에게 말하였다.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소.”
“대왕이여, 나는 대왕에게 묻겠사온데 아시는 대로 대답하소서. 대왕이시여, 대왕의 뜻에는 어떠하나이까. 대왕은 비두우다바[鞞留羅] 대장을 사랑하시나이까.”
“진실로 사랑하오.”
“만일 비두우다바 대장이 다른 것으로 변한다면 대왕은 어떻게 하겠나이까.”
“말리카아여, 만일 비두우다바 대장이 다른 것으로 변한다면 나는 반드시 슬퍼하고 울며,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번민할 것이오.”
“대왕이여, 이 일로써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줄을 알 수 있나이다.”
말리카 황후는 다시 물었다.
“대왕이여, 대왕은 시리밧다[尸利阿茶] 대신, 일분타리(一奔陀利) 코끼리, 바지이리이[婆夷利] 처녀, 바아사바아[雨日] 일산, 카아시[加尸]국, 코오살라[拘薩羅]국을 사랑하시나이까.”
“진실로 사랑하오.”
“만일 카아시국이나 코오살라국이 다른 것으로 변한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나이까.”
“말리카아여, 내가 五욕(欲) 공덕을 구족하여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은 저 두 나라 때문이오. 만일 카아사카국과 코오살라국이 다른 것으로 변한다면 나는 목숨이 없게 될 것이어늘 하물며 슬픔,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겠는가.”
“대왕이여, 이 일로써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줄을 알 수 있나이다.”
말리카 황후는 다시 물었다.
“대왕이여, 대왕의 뜻에는 어떠하나이까. 대왕은 저를 사랑하나이까.”
“나는 진실로 그대를 사랑하오.”
“만일 제가 하루아침에 다른 것으로 변한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나이까.”
“말리카아여, 만일 그대가 하루아침에 다른 것으로 변한다면 나는 반드시 슬퍼하고 울며,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번민할 것이오.”
“대왕이여, 이 일로써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생기는 줄을 알 수 있나이다.”
이에 파세나디 왕은 말하였다.
“말리카여, 오늘부터는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고오타마는 내 스승이요, 나는 그이 제자가 되었소, 말리카아여, 나는 지금부터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하오. 다만 세존께서 나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오. 나는 오늘부터 귀의하여 목숨을 마칠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코오살라의 파세나디 왕과 말라카아 황후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17. 팔성경(八城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아 이름과 덕망이 있는 많은 높은 비구들은 파아탈리풋타[波羅利子] 성(城)에 노닐면서 계원(鷄園)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에 제십 거사(第十居士) 팔성(八城)은 많은 값진 재물을 가지고 파아탈리풋타성에 가서 장사하고 있었다. 이에 제십 거사 팔성은 그 많은 재물을 빨리 팔아 큰 이익을 얻고 너무 좋아 기뻐 뛰면서 파아탈리풋타성을 나와, 이름과 덕망이 있는 많은 높은 비구들이 머무는 계원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들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때에 이름과 덕망이 있는 여러 높은 비구들은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였다. 그들은 한량이 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한 뒤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름과 덕망이 있는, 여러 높은 비구들이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자, 이에 제십 거사 팔성은 아뢰었다.
“큰스님들이여, 지금 존자 아난은 어디 계십니까. 나는 가서 뵈옵고자 하나이다.”
“거사여, 존자 아난은 지금 베샤알리[鞞舍離]의 미후강가에 있는 높은 누각에 있소. 보고 싶으면 그리로 가시오.”
이에 거사 팔성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 높은 비구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그는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존자 아난이시여,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거사여, 마음대로 물으시오. 나는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라.”
“존자 아난이시여, 세존,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 슬기의 눈을 성취하시어 제일의(第一義)를 보셨나이다. 혹 한 법을 말씀하실 때에 만일 거룩한 제자로서 번뇌가 다해 남음이 없는 데에 머무른다면 마음의 해탈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그렇다.”
“존자 아난이시여, 세존,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 슬기의 눈을 성취하시어 제일의를 보셨나이다. 어떻게 한 법을 말씀하실 때에 만일 거룩한 제자로서 번뇌가 다해 남음이 없는 데에 머무른다면 마음의 해탈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탐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 내지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노닐며,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다이 한다. 그가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다이 하면,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게 된다는 것은 혹 그리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못하게 되면, 혹은 그 법으로 말미암아 법을 욕심 내고 법을 사랑하며, 법을 즐겨하고 법을 생각하며, 즐겨하고 기뻐하여 다섯 가지 하분결(下分結)을 끊어 다하고 저 세상에 화생(化生)하여 반열반한 뒤에는,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마침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이와 같이 二, 三, 四방, 四유(維), 상, 하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슬퍼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도 또한 그러하다. 마음은 버림[捨]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다이 한다. 그가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다이 하면,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게 된다는 것은 혹 그리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못하게 되면 혹은 그 법으로 말미암아 법을 욕심 내고 법을 사랑하며, 법을 즐겨하고 법을 생각하며, 즐겨하고 기뻐하여 다섯 가지 하분결을 끊어 다하고 저 세상에 화생하여 반열반한뒤에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마침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 슬기의 눈을 성취하여 제일의를 보시고 어떤 한 법을 말씀하실 때 만일 거룩한 제자로서 번뇌가 다하여 남음이 없으면 마음이 해탈한다는 것이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일체의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 내지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의 경계를 성취하여 노닐며,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 법다이 한다. 그가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다이 하면,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게 된다는 것은 혹 그리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못하게 되면 혹은 그 법으로 말미암아 법을 욕심내고 법을 사랑하며, 법을 즐겨하고 법을 생각하며, 즐겨하고 기뻐하여 다섯 가지 하분결을 끊어 다하고, 저 세상에 화생하여 반열반한뒤에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마침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 슬기의 눈을 성취하여 제일의를 보시고 어떤 한 법을 말씀하실 때 만일 거룩한 제자로서 번뇌가 다하여 남음이 없으면 마음이 해탈한다는 것이다.”
이에 제십 거사 팔성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사뢰었다.
“존자 아난이시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십니다. 나는 존자 아난에게 한 단 이슬문을 물었는데 존자 아난님께서는 나를 위해 열 두 단 이슬 법문(法門)을 한꺼번에 말씀하였습니다. 이제 이 열 두 단 이슬 법문은 반드시 의지하는 바를 따라 안온하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집이 있어 열 두 문을 열어 놓은 것과 같아서 혹 어떤 사람이 일이 있어 그 집안에 들어갔을 때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사람의 볼일과 이익과 안온은 생각하지 않고 그 집을 불사르더라도 존자 아난이시여, 그 사람은 반드시 그 열 두 기제 문에서 자기가 의지하는 문을 따라 나와 안온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존자 아난님께 한 단 이슬문을 물었는데 존자 아난님은 나를 위해 열 두 단 이슬 법문을 말씀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이 열 두 단 이슬 문에서 반드시 의지하는 문을 따라 안온하게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저 바라문 법에서는 착하지 않은 법을 말하여도 오히려 그 스승께 공양하거늘 하물며 내지 어찌 큰 스승 존자 아난님께 공양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팔성 거사는 그날 밤으로 지극히 묘하고 깨끗하고 맛나며 또 풍성한 음식을 마련하였다. 그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 이른 아침에 자리를 펴고 계원의 대중과 베샤알리의 대중을 청해 한 자리에 모으고 손수 손 씻을 물을 돌린 뒤에, 곧 지극히 묘하고 깨끗하고 맛나며 또 풍성한 음식을 손수 별러 모두 배불리 먹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그릇을 거두고 손씻을 물을 돌린 뒤에 五백 가지 물건으로 집을 사서 따로 존자 아난에게 보시하였다. 존자 아난은 그것을 받아 초제승(招提僧)에게 나누어주었다.
존자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제십 거사 팔성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18. 아나율타경(阿那律陀經) 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거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모든 비구들은 오후가 되어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아누룻다[阿那律陀]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사뢰었다.
“우리는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여러분, 묻고 싶으면 물으시오. 나는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다.”
때에 여러 비구들은 곧 물었다.
“어떻게 하면 비구는 어진 채로 죽고, 어진 채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까.”
“여러분, 만일 비구가 탐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내지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노닐면 이렇게 하여 이른바 어진 채로 죽고, 어진 채로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오.”
“비구가 어진 채로 죽고 어진 채로 목숨을 마치려면 그것 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어진 채로 죽고 어진 채로 목숨을 마치려면 이것만이 아니오. 다시 여러분, 만일 비구가 여의족통(如意足通), 천이통(天耳通), 타심지통(他心智通), 숙명지통(宿命智通), 생사지통(生死智通), 누진통(漏盡通)을 얻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슬기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모양을 알면, 이렇게 하여 이른바 어진 채로 죽고, 어진 채로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오.”
“비구가 어진 채로 죽고, 어진 채로 목숨을 마치려면 그것 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어진 채로 죽고, 어진 채로 목숨을 마치려면 이것뿐이오.”
이에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누룻다의 말을 들어 잘 받아 가져 외운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아누룻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존자 아누룻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누룻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19. 아나율타경(阿那律陀經) 하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거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모든 비구들은 오후가 되어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아누룻다[阿那律陀]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사뢰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묻고 싶은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여러분, 묻고 싶으면 물으시오. 나는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다.”
“어떻게 하면 비구는 번열(煩熱)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게 됩니까.”
“여러분, 만일 비구가 소견이 소박하고 순직하며, 거룩한 사랑의 계(戒)를 얻으면, 이렇게 하여 이른바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오.”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그것 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이것만이 아니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면, 이렇게 하여 이른바 비구는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게 되오.”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그 것 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이 것만이 아니오. 여러분, 만일 비구는,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여 一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고, 이와 같이 二, 三, 四방, 四유, 상, 하의 일체에 두루하며, 마음은 사랑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니오. 이와 같이 슬퍼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도 또한 그러하며, 마음은 버림과 함께 하기 때문에 맺음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면, 이렇게 하여 이른바 비구는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오.”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그 것 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이것만이 아니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일체의 빛깔이라는 생각을 지나 내지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의 경계를 성취하여 노닐면, 이렇게 하여 이른바 비구는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오.”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그 것 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이것만이 아니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의 경계를 지나 알음이 멸하고, 몸으로 부딪쳐 성취하여 노닐고, 또 슬기로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면, 이렇게 하여 이른바 비구는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오.”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그 것 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으면서 죽고, 번열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마치려면 그것뿐입니다.”
때에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누룻다의 말을 들어 잘 받아 가져 외운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아누룻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존자 아누룻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누룻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20. 견경(見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아 존자 아난은 왕사성에 노닐면서 죽림 칼란다동산에 있었다. 이 때에 어떤 이교도(異敎徒)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는 존자 아난이 아직 집을 나오기 전의 벗이었다.
그는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존자 아난에게 가서 서로 인사한 뒤에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나는 무슨 일을 물어 보고 싶은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묻고 싶으면 물으시오. 나는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라.” 이교도 바라문은 곧 물었다. “사문 고오타마는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런 소견들은 다 젖혀두고 전연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문 고오타마는 이러한 소견들을 마땅히 알아야 할만큼 아십니까.” “바라문이여, 세존,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런 소견들은 다 젖혀두고 전연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세존,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는 이러한 소견들을 마땅히 알아야 할만큼 아시느니라.” “사문 고오타마는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런 소견들은 다 젖혀두고 전연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문 고오타마는 어떻게 이러한 소견들을 알만큼 아십니까.” “바라문이여, 세존,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런 소견들은 다 젖혀두고 전연 말씀하지 않으신다. 이교도 바라문이여, 여래께서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으며, 어떻게 나아가고 어떻게 나고, 어떻게 후세에 가는가를 아신다.
세존, 여래, 무소착, 정진각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런 소견들은 다 젖혀두고 전연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이런 소견들을 이렇게 알고, 이런 소견들을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이교도 바라문은 사뢰었다. “나는 이제 아난님께 귀의합니다.” “바라문이여, 너는 내게 귀의하지 말라.
내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처럼 너도 또한 부처님께 귀의하라.” “아난이시여, 나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합니다. 세존께서 나를 받아 우바새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부터 귀의하여 목숨을 마치겠습니다.” 존자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교도 바라문은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21. 전유경(箭喩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거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만동자(鬘童子)는 혼자 편하고 고요한 곳에서 연좌(燕坐)하고 생각하다가 ‘세존께서는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러한 소견들은 다 젖혀두고 전연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으며, 나는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그 분을 따라 범행을 배우리라.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면 나는 그를 힐난한 뒤에 그를 버리고 가리라 .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러한 소견에 있어서도,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그 분을 따라 범행을 배우리라.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면, 나는 그를 힐난한 뒤에 그를 버리고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존자 만동자는 해질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나는 지금 혼자 편하고 고요한 곳에서 연좌하고 깊이 생각하다가 ‘세존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러한 소견들은 다 젖혀두고 전연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으며, 나는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나이다. 만일 세존께서 한결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아시거든 세존이시여 나를 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한결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알지 못하시거든 나는 알지 못한다고 바로 말씀하여 주소서.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있는가, 항상 됨이 없는가, 세상은 한정이 있는가. 한정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 죽은 뒤의 몸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또한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이러한 소견에 있어서도 만일 세존께서 한결같이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알으시거든 세존이시여, 나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한결같이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알지 못하시거든, 나는 알지 못한다고 바로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는 물으시었다.
“만동자여, 내가 이전에 혹 너를 위하여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너는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소견에 있어서도 내가 이전에 혹 너를 위하여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너는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동자여, 너는 이전에 혹 내게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리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소견에 있어서도 만동자여, 너는 이전에 혹 내게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리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동자여, 나도 이전에 너에게 말한 일이 없고 너도 또한 이전에 내게 말한 일이 없는데, 너 미련한 사람아, 어찌하여 너는 부질없이 나를 모함해 비방하느냐.”
이에 존자 만동자는 세존에게서 직접 꾸지람을 듣고 마음으로 근심하고 슬퍼하여 머리를 떨어뜨리고 잠자코 말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물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세존께서는 만동자를 직접 꾸짖으신 뒤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중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라는 이런 소견에 있어서도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몸에 독한 화살을 맞아 그 독한 화살로 말미암아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을 때에 그 친족들은 그를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며, 그의 이익과 안온을 위해 곧 의사를 청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그 사람은 어떤 성, 어떤 이름, 어떤 신분이며, 키는 큰가 작은가, 살결은 거친가 고운가, 얼굴빛은 검은가 흰가, 혹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가, 찰제리족인가 혹은 바라문, 거사, 공사의 종족인가, 동방, 서방, 북방 어느 쪽에 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이 산뽕나무로 되었는가, 뽕나무로 되었는가, 물푸레나무로 되었는가, 혹은 뿔로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궁찰(弓札)이 소 힘줄로 되었는가, 노루나 사슴 힘줄로 되었는가, 혹은 실로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그 활 빛이 검은가, 흰가, 붉은가, 혹은 누른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줄이 힘줄로 되었는가, 실로 되었는가, 모시로 되었는가, 혹은 삼으로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화살이 나무로 되었는가, 혹은 대로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화살 통이 소 힘줄로 되었는가, 노루나 사슴 힘줄로 되었는가, 혹은 실로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화살 깃이 매털로 되었는가, 보라 매나 독수리 털로 되었는가, 고니나 닭털로 되었는가, 혹은 학털로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던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전적(箭鏑)이 살촉으로 되었는가, 창으로 되었는가, 혹은 창칼로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한다든가, 또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전적(箭鏑)을 만든 사람은 어떤 성, 어떤 이름, 어떤 신분이며, 키는 큰가 작은가, 살결은 거친가 고운가, 얼굴빛은 흰가 검은가, 혹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가, 혹은 동방, 남방, 서방, 북방의 어느 쪽에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이런 소견들에 있어서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한결같이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는 이 소견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이런 소견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니라.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는 이 소견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옳지 못하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이런 소견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니라.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는 이 소견이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이 소견이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는 이 소견이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이 소견이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니라.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남[生]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있으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긴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고 말하는 자도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과 울음, 근심, 괴로움, 번민이 있으니, 이렇게 하여 순전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느니라.
세상은 항상 됨이 있다고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치와 맞지 않고 법과 맞지 않으며, 또 범행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 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세상은 한정이 있다, 세상은 한정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다.’고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한결 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치와 맞지 않고 법과 맞지 않으며, 또 범행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 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느니라.
그러면 나는 어떠한 법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나는 이런 이치를 한결같이 말하나니, 곧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멸함과 괴로움을 멸하는 길의 자취이니, 나는 이것을 한결같이 말한다. 무슨 까닭으로 나는 이것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이것은 이치와 맞고 법과 맞으며, 또 이것은 범행으로서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같이 이것을 말한다. 이것이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하여야 할 것은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가지고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222. 예경(例經)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승림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만일 무명(無明)을 끊고자 하거든 마땅히 네 곳을 관찰하기[四念處]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네 곳을 관찰하기를 닦아야 하는가.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다섯 가지 덮임과 내지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나니,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관찰하기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내고 넘으며,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관찰하기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네 곳을 관찰하기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임과 내지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안 몸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나니,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관찰하기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四正斷]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더하고 자라게 하고 넓고 크게 하고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나니,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해탈하고 지내고 넘으며, 빼고 끊으며, 멸하고 그치며,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더하고 자라게 하고, 넓고 크게 하며,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해,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如意足)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욕정(欲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정진정(精進定), 심정(心定)을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며, 사유정(思惟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에서 떠남을 의지하고, 탐욕이 없음을 의지하며,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해탈하고 지내고 건너며 빼고 끊으며, 멸하고 그치며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을 끊어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욕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정진정과 심정을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며, 사유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와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禪)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탐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내지 제사선(第四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내고 넘으면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무명을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탐욕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내지 제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믿음의 뿌리, 정진의 뿌리, 생각의 뿌리, 정(定)의 뿌리, 슬기의 뿌리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내고 건너며,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무명을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믿음의 뿌리, 정진의 뿌리, 생각의 뿌리, 슬기의 뿌리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생각의 힘, 정의 힘, 슬기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내고 건너며,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무명을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생각의 힘, 정의 힘, 슬기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七覺支]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생각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의 깨달음의 갈래, 정진하는 깨달음의 갈래, 기뻐하는 깨달음의 갈래, 쉬는 깨달음의 갈래, 정(定)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는 데에도 그러하며, 버리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탐욕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내고 건너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생각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의 깨달음의 갈래, 정진하는 깨달음의 갈래, 기뻐하는 깨달음의 갈래, 쉬는 깨달음의 갈래, 정(定)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는 데에도 그러하며, 버리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탐욕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 성도(聖道)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여덟 갈래 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을 닦고, 내지 바른 정(定) 등의 여덟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의 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고,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내고 건너며,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 성도[八支聖道]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 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을 닦고 내지 바른 정 등의 여덟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의 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十一切支]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열 가지 일체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첫째의 땅의 일체 경계, 곧 四유(維)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 불의 일체 경계, 바람의 일체 경계, 파랑의 일체 경계, 노랑의 일체 경계, 빨강의 일체 경계, 하얀 색의 일체 경계, 한량이 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와 열째의 한량이 없는 의식(意識)의 일체 경계, 곧 四유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고,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나고 건너며,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첫째의 땅의 일체 경계, 곧 四유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 불의 일체 경계, 바람의 일체 경계, 파랑의 일체 경계, 노랑의 일체 경계, 빨강의 일체 경계, 하얀 색의 일체 경계, 한량이 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와 열째의 한량이 없는 의식의 일체 경계, 곧 四유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이 없는 법[十無學法]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끊고자 하면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배움이 없는 바른 소견을 닦고 내지 배움이 없는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고,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지나고 건너며,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이 없는 법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배움이 없는 바른 소견을 닦고 내지 배움이 없는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과 같이 행(行)도 또한 그러하고, 행과 같이 식(息)도 또한 그러하며, 식과 같이 명색(名色)도 또한 그러하고, 명색과 같이 六처(處)도 또한 그러하며, 六처와 같이 경락(更樂)도 또한 그러하고, 갱락과 같이 각(覺)도 또한 그러하며, 각과 같이 애(愛)도 또한 그러하고, 애와 같이 수(受)도 또한 그러하며, 수와 같이 유(有)도 도한 그러하고, 유와 같이 생(生)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생각하기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생각하기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한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생각하기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자꾸 끊고,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나고 건너며, 법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생각하기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생각하기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내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한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생각하기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더 자라게 하고 넓고 크게 하며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나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어,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고 더하고 자라게 하며, 넓고 크게 하며,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바른 끊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如意足)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욕정(欲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정진정의 여의족, 심정(心定)의 여의족을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며, 사유정(思惟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내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고,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욕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욕심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정진정의 여의족과 심정의 여의족을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며, 사유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禪)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내지 제사선(第四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나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내지 제四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믿음의 뿌리, 정진의 뿌리, 생각의 뿌리, 정(定)의 뿌리, 슬기의 뿌리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나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믿음의 뿌리, 정진의 뿌리, 생각의 뿌리, 슬기의 뿌리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뿌리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생각의 힘, 정의 힘, 슬기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내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생각의 힘, 정의 힘, 슬기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생각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의 깨달음의 갈래, 정진하는 깨달음의 갈래, 기뻐하는 깨달음의 갈래, 쉬는 깨달음의 갈래, 정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며, 버리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내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생각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의 깨달음의 갈래, 정진하는 깨달음의 갈래, 기뻐하는 깨달음의 갈래, 쉬는 깨달음의 갈래, 정하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며, 버리는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 악의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의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비품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 성도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여덟 갈래 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 내지 바른 정 등의 여덟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의 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내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 성도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 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과 바른 정 등의 여덟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갈래의 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열 가지 일체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첫째의 땅의 일체 경계, 곧 四유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 불의 일체 경계, 바람의 일체 경계, 파랑의 일체 경계, 노랑의 일체 경계, 빨강의 일체 경계, 하얀 색의 일체 경계, 한량이 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와 열째의 한량이 없는 의식의 일체 경계, 곧 四유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내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를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열 가지 일체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첫째의 땅의 일체 경계, 곧 四유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 불의 일체 경계, 바람의 일체 경계, 파랑의 일체 경계, 노랑의 일체 경계, 빨강의 일체 경계, 하얀 색의 일체 경계, 한량이 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와 열째의 한량이 없는 의식의 일체 경계, 곧 四유와 상, 하가 둘이 아닌 한량이 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것이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 경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이 없는 법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배움이 없는 바른 소견과 내지 배움이 없는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을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지내고 건너며, 늙음과 죽음을 빼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아는 데에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이 없는 법을 닦아야 한다. 어찌하여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호한다. 그는 내지 다섯 가지 덮음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병을 끊고 배움이 없는 바른 소견과 내지 배움이 없는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배움의 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