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 제 二十一권
제 二十九 고락품(苦樂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의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고 어떤 사람은 먼저는 즐거우나 뒤에는 괴로우며, 어떤 사람은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우며 어떤 사람은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겁다.
어떤 사람이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거운가. 어떤 사람은 빈천한 집에 태어난다. 즉 사람 죽이는 종자의 집, 공사의 종자, 혹은 삿된 도(道)를 믿는 집에 나고 또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의식이 넉넉하지 못하다. 비록 그런 집에 태어났으나 그는 삿된 소견이 없어 이렇게 생각한다. ‘보시도 있고 그것을 받는 이도 있다. 이승, 저승도 있고 사문, 바라문도 있으며 아버지, 어머니도 있고, 아라한 등의 가르침을 받는 이도 있으며, 또 선, 악의 갚음도 있다’고.
그는 큰 부잣집을 보면, 옛날의 덕을 베풀고 방일하지 않는 갚음인 줄을 알고, 가난한 집을 보면 그들은 보시의 공덕을 짓지 않았으므로 항상 빈천하게 되었다고 안다. ‘내가 지금 가난하여 의식이 없는 것은, 다 옛날에 복을 짓지 않고 세상 사람을 숙이고 방일한 법을 행한 까닭이요, 그런 악행의 갚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가난하게 되어 의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착한 법을 닦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참회하고 현재의 하는 짓을 고치며, 자기의 소유에서 남는 것이 있으면 남에게 나누어준다. 그래서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타고, 만일 인간에 태어나면 재물이 많고 보배가 넉넉해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거운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먼저는 즐거우나 뒤에는 괴로운가. 어떤 사람은 귀족의 집, 즉 크샤트리야 종족, 장자의 종족, 혹은 큰 성받이에 태어나고 혹은 부잣집에 태어나 의식이 풍족하다. 비록 그런 집에 났으나 그는 항상 삿된 소견을 가지고 치우친 소견과 친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보시도 없고 그것을 받는 사람도 없으며 또 이승, 저승의 갚음도 없다.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아라한도 없으며 증득한 사람도 없고 선, 악의 갚음도 없다’고.
그는 이런 삿된 소견을 가지고, 만일 부귀한 집을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이제 다시 이런 재물을 가질 것이다. 남자는 언제나 남자요, 여자는 언제나 여자며, 축생은 언제나 축생이다’고. 그래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계율을 가지지 않는다. 계율을 받드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면 성을 내면서 ‘이 사람은 거짓이다. 무슨 복의 갚음이 있겠는가’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옥에 가고, 혹 사람이 되더라도 빈천한 집에 태어나 의식이 없어 헐벗고 굶주릴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먼저는 즐거우나 뒤에는 괴로운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운가. 어떤 사람은 빈천한 집 즉, 사람 죽이는 종족, 공사의 종족이나 또는 하천한 집에 태어나 의식이 없다. 그런 집에 태어난 그는 다시 삿된 소견을 가지고 치우친 소견을 친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보시도 없고 그것을 받는 이도 없으며 이승, 저승과 선, 악의 갚음도 없다.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아라한도 없다’고.
그래서 그는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계율을 받들어 가지지 않는다.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면 곧 성을 내어 대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본래부터 그렇다’하고, 부자를 보아도 ‘본래부터 그렇다’고 한다. 아버지를 보면 ‘옛날에는 아버지’요, 어머니를 보면 ‘옛날에는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나고, 혹 인간에 나더라도 매우 빈천해 의식이 넉넉하지 못하다. 이것이 이른바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운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거운가. 어떤 사람은 부귀한 집, 크샤트리야 종족이나 바라문 종족, 왕족, 장자족 및 재보가 많은 집에 태어나 나는 곳마다 모자라는 것이 없다. 그런 집에 난 그이지만 그는 바른 소견을 가져 삿된 소견이 없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보시도 있고 그것을 받는 사람도 있으며 이승, 저승도 있다. 세상에는 사문도 바라문도 있고 선, 악의 갚음도 있다. 아버지, 어머니도 있고 아라한도 있다’고.
그는 부귀한 집을 많은 재보를 보면 ‘이것은 이 사람이 옛날에 많이 보시한 까닭이다’고 생각하고, 빈천한 집을 보면 ‘이것은 이 사람이 옛날에 많이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부터 때때로 보시하여 뒤에는 다시 빈천한 집에 나지 않도록 하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해 사문의 도 닦는 사람을 보면 때때로 그 형편을 물어,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 등을 이바지해 모두 보시한다. 그래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나고 인간에 있으면 부귀한 집에 태어나 재물과 보배가 많다. 이것이 이른바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거운 사람이라 하느니라.
때에 어떤 비구는 세존께 사뢰었다.
“저는 보거니와 어떤 중생은 금생에서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고, 어떤 중생은 금생에서 먼저는 즐거우나 뒤에는 괴로우며, 어떤 중생은 금생에서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우며, 어떤 중생은 금생에서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겁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인연이 있어서 중생 무리들로 하여금,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고, 먼저는 즐거우나 뒤에는 괴로우며,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우며,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겁게 되느니라.”
“어떤 인연이 있기에,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고, 먼저는 즐거우나 뒤에는 괴로우며,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우며,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겁게 되나이까.”
“비구여, 알라. 사람 목숨의 백 세란 기껏 十을 十곱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목숨을 겨울, 여름, 봄, 가을로 끝나게 한다. 비구여, 한 백년 동안에는 온갖 공덕을 짓고 한 백년 동안에는 온갖 악한 업과 삿된 소견을 행하면, 뒷날에 겨울에는 즐거움을 받고 여름에는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또 그 한 백년 동안에는 공덕을 두루 갖추어 모자람이 없고 한 백년 동안에 온갖 삿된 소견과 착하지 않음을 지으면, 먼저는 그 복을 받고 뒤에는 그 죄를 받을 것이다.
또 어려서 복을 짓고 자라서 죄를 지으면 그는 후생에 어려서 복을 받고 자라서 죄를 받을 것이다. 다시 어려서도 죄를 짓고 자라서도 죄를 지으면 그는 후생에서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울 것이요, 또 어려서 온갖 덕을 지어 여러 가지를 나누어 보시하면 그는 후생에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거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어떤 인연이 있어 먼저는 괴로우나 뒤에는 즐겁고, 먼저는 즐거우나 뒤에는 괴로우며, 먼저도 괴롭고 뒤에도 괴로우며,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겁다’는 것이니라.”
비구는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중생으로서 먼저도 즐겁고 뒤에도 즐거우려 하면 마땅히 보시를 행해 그것을 구하여야 하겠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비구여, 네 말과 같다. 만일 어떤 중생으로서 열반과 아라한의 도와 부처의 도를 이루려고 한다면 마땅히 보시를 행해 공덕을 짓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어떤 사람은 몸은 즐거우나 마음은 즐겁지 않고, 어떤 사람은 마음은 즐거우나 몸은 즐겁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마음도 즐겁지 않고 몸도 즐겁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우니라.
어떤 사람이 몸이 즐거우나 마음이 즐겁지 않은가. 복을 지은 범부들은 의복, 음식, 침구, 의약의 네 가지 공양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아귀, 축생, 지옥의 길과 그 밖의 나쁜 세계를 면하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몸은 즐거우나 마음이 즐겁지 않은 사람이니라.
어떤 사람이 마음이 즐거우나 몸은 즐겁지 않은가. 이른바 아라한으로서, 그는 공덕을 짓지 않아, 네 가지 공양을 스스로 마련해 얻지 못한다. 그러나 지옥, 아귀, 축생의 길을 면하는 것은 저 아라한의 유유(唯喩)와 같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마음은 즐거우나 몸은 즐겁지 않은 사람이니라.
어떤 사람이 몸도 즐겁지 않고 마음도 즐겁지 않은가. 이른바 범부로서 공덕을 짓지 않아 의복, 음식, 침구, 의약의 네 가지 공양을 얻지 못하고 다시 지옥, 아귀, 축생의 길을 면하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몸도 즐겁지 않고 마음도 즐겁지 않은 사람이니라.
어떤 사람이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운가. 이른바 공덕을 지은 아라한이니, 그는 의복, 음식, 침구, 의약의 네 가지 공양에 모자람이 없고, 또 지옥, 아귀, 축생의 길을 면하는 것은 바로 시파라 비구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세상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방편을 구해 저 시파라 비구처럼 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범천의 복을 받을 네 가지 일을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만일 어떤 믿음이 있는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아직 탑이 서 있지 않는 곳에 탑을 세우면 이것은 범천의 복을 받을 첫째이다. 또 믿음이 있는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묵은 절을 수리하면 이것은 범천의 복을 받을 둘째이다. 또 믿음이 있는 선남자, 선녀인으로 대중을 화합시키면 이것은 범천의 복을 받을 넷째이다. 또 여래가 처음으로 법바퀴를 굴리실 때에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권하고 청하였다. 그것은 범천의 복을 받을 넷째이다.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범천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니라.”
그 때에 어떤 비구는 사뢰었다.
“범천의 복은 마침내 얼마나 되나이까.”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라. 나는 설명하리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남섬부주는 동, 서가 七천 요오자나요, 남, 북이 二만 一천 요오자나며 지형은 수레와 같다. 그 중에 사는 중생들의 공덕은 바로 한 전륜성왕의 공덕과 같다. 서우화주는 세로와 넓이가 三十二만 리인데 지형은 반달과 같다. 비구여, 알라. 남섬부주의 사람과 한 전륜성왕의 덕을 이 사람에게 견주면 이 한 사람의 덕과 같느니라.
다시 비구들이여, 동승신주는 세로와 넓이가 三十六만 리요, 지형은 방정하다. 남섬부주와 서우화주 두 군데의 복을 계산해도 이 동승신주의 한 사람의 복만 못하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북구로주는 세로와 넓이가 四十만 리요, 지형은 보름달과 같다. 한 사람의 복만 못하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네 천하 사람들의 복을 계산해도 네 천왕의 덕만 못하고, 네 천하 사람과 복과 네 천왕의 복을 계산해도 三十三천 복만 못하며, 네 천하와 네 천왕과 三十三천의 복을 계산해도 제석천왕 한 사람의 복만 못하고, 네 천하, 네 천왕, 三十三천 및 제석천왕의 복을 계산하여도 한 야마천의 복만 못하며, 네 천하, 네 천왕, 三十三천, 제석천왕 및 야마천의 복을 계산하여도 한 도솔천의 복만 못하고, 네 천하에서 도솔천까지의 복을 계산하여도 한 화자재천의 복만 못하며, 네 천하에서 화자재천까지의 복을 계산하여도 한 타화자재천의 복만 못하고, 네 천하에서 타와자재천까지의 복을 계산하여도 한 범천왕의 복만 못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이것이 범천의 복이다. 만일 선남자, 선녀인으로서 그 복을 구하는 이는 이것이 그 양(量)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범천의 복을 구하려 하거든 방편을 구해 먼저 그 공덕을 이루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에게는 네 가지 먹이가 있어 중생을 기른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크거나 작은 씹어먹기[塼食]와 닿아먹기[更樂食]와 생각먹기[念食]와 마음먹기[識食]이니 이것을 네 가지 먹기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씹어먹기인가. 씹어먹기란 지금 인간에서 먹는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으로서 씹을 수 잇는 것이니 이것을 씹어먹기라 한다. 어떤 것이 닿아먹기인가. 이른바 닿아먹기란 옷, 일산, 향, 꽃, 피우는 불 및 향유와 부인들과 어울려 몸에 감촉 되는 것이니 이것을 닿아먹기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생각먹기인가. 온갖 인상과 기억으로서 입으로 말하고 혹은 몸으로 부딪친 온갖 것을 생각하는 법이니 이것을 생각먹기라 한다. 어떤 것이 마음먹기인가. 마음먹기란 마음으로 아는 것으로서 범천을 우두머리로 하여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하늘은 다 마음으로 먹기를 삼는다. 이것을 마음먹기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먹기로서 중생들은 이 네 가지 먹기로써 나고 죽음에 흘러 구르면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다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먹기를 모두 버리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변재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의변(義辯)과 법변(法辯)과 사변(辭辯) 응변(應辯)이니라.
어떤 것이 의변인가. 의변이란 하늘이나 용이나 귀신의 모든 말에 대해 그 뜻을 다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을 의변이라 한다. 어떤 것이 법변인가. 여래께서 말씀하신 十二부 경전 즉, 계경, 기야, 본말, 게, 인연, 수결, 이설, 조송, 생경, 방등, 합집 및 모든 함이 있는 법, 함이 없는 법, 번뇌가 있는 법, 번뇌가 없는 법으로서 이것은 방해하거나 무너뜨릴 수 없고 모두 가져야 할 것이니 이것을 법변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사변인가. 앞의 중생들의 길고 짧은 말, 남자의 말, 여자의 말, 부처의 말, 범지, 하늘, 용, 귀신의 말과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의 말에 대해서 그 근본을 따라 그들을 위해 설법하는 것이니 이것을 사변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응변인가. 설법할 때에 겁내거나 약하지 않고 두려움이 없으며, 네 가지 무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응변이라 하느니라.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너희들은 카우슈틸라처럼 되라. 왜 그러냐 하면 카우슈틸라는 이 네 가지 변재가 있어 네 가지 무리들을 위해 두루 분별해 연설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보는 바로는 이 대중 가운데서 이 네 가지 변재를 얻은 이로는 카우슈틸라보다 나은 이가 없다. 이 네 가지 변재는 여래가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방편을 구해 네 가지 변재를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일은 마침내 헤아릴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중생은 헤아릴 것이 아니요, 세계는 헤아릴 것이 아니며, 용은 헤아릴 것이 아니요, 부처의 경계는 헤아릴 것이 아니니라. 왜 그러냐 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서는 열반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중생은 헤아릴 것이 아닌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엇으로 일어났고 무엇으로 마치는가 또 어디서 생겼는가’고. 중생은 이렇게 헤아릴 것이 아니다.
왜 세계는 헤아릴 것이 아닌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는 아주 없어지는 것인가, 세계는 아주 없어지지 않는 것인가, 세계는 끝이 있는가, 세계는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이 곧 몸이 아닌가, 이 세계는 범천이 지은 것인가, 큰 귀신이 지은 것인가’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람은 범천이 지은 것이다
세상은 귀신이 만든 것이다
또는 모든 귀신이 지었다
이 말을 누가 결정져 말하는가.
그것은 탐욕과 성냄의 결박
그 세 가지 말 모두 다 같이
마음의 자재를 얻지 못한 것이어니
이 세속에는 재변이 있으리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세계는 헤아릴 것이 아니니라. 왜 용의 경계는 헤아릴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 비가 용의 입에서 나오겠는가, 왜 그러냐 하면 빗방울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눈이나 귀나 코에서 나오는가.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왜 그러냐 하면 빗방울은 그 눈이나 귀나 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만 용의 생각에 있다. 악을 생각해도 비를 내리고 선을 생각해도 비를 내린다. 또 그것은 그 본래의 행으로 말미암아 내리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수미산 중턱에는 대력(大力)이라는 하늘이 있다. 그는 중생의 생각을 알아 비를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는 그 하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요, 눈이나 귀나 코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 그 하늘의 신력으로 말미암아 비를 내릴 수 잇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용의 경계는 헤아릴 것이 아니니라.
왜 부처의 경계는 헤아릴 것이 아닌가. 여래의 몸은 부모가 만든 것인가. 그것도 이상하다. 왜 그러냐 하면 여래의 몸은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어 저 하늘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이 만든 것인가. 그것도 또한 이상하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의 행에서 뛰어났기 때문이다.
여래의 몸은 크다고 할까. 그것도 이상하다. 왜 그러냐 하면 여래의 몸은 지을 수 없어 하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래의 목숨은 짧은 것인가. 그것도 이상하다. 왜 그러냐 하면 여래는 네 가지 신통이 있기 때문이다. 여래의 목숨은 긴 것인가. 그것도 이상하다. 왜 그러냐 하면 여래는 일부러 세상에 나와 세상에 돌아다니면서 권(權)의 방편으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여래의 몸은 어림할 수가 없어 크다고도 말할 수 없고 작다고도 말할 수 없다. 여래의 음성도 또 규정할 수가 없다. 그것은 범음(梵音)이기 때문이다. 여래의 지혜와 변재는 헤아릴 수 없어 사람들로서 미쳐 갈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의 경계는 헤아릴 것이 아니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일은 헤아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의 생각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일에는 선의 뿌리가 없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범행을 닦을 수 없고 쉬는 곳에 이를 수도 없으며 나아가서는 열반에 이를 수도 없다. 그것은 다만 사람을 의혹 시켜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온갖 의심의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비구들이여, 알라. 먼 과거에 이 슈라아바스티이 안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이 세계를 생각하여 보리라’고. 그는 곧 슈라아바스티이를 나가 어떤 연못가에서 가부하고 앉아 이 세계를 생각하여 보았다.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 누가 이 세계를 만들었는가, 이 중생들은 어디서 왔고 무엇에서 났으며 언제 생겼는가.’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못 가운데서 네 종류의 군사가 드나드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의혹에 빠져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이 세상은 없다. 나는 이제 보았다’고. 그는 슈라아바스티이로 도로 돌아가 거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아시오. 세상은 없는 것이오, 나는 이제 보았소.’
사람들은 그에게 말하였다.
‘세상이 없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보았소.’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아까 이렇게 생각하였소. 세계는 무엇에서 생겼는가’고 나는 슈라아바스티이를 나가 어떤 연못가에서 세계를 생각하였소. 이 세계는 어디서 왔으며 누가 만들었는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어디에 태어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할 때에 연못 가운데서 네 종류의 군사가 드나드는 것을 나는 보았소. 세계는 없는 것이오. 나는 이제 보았소.’
사람들은 말하였다.
‘당신 같은 이는 참으로 미치고 어리석소. 어떻게 연못 물 가운데 네 종류의 군사가 있을 수 있겠소. 이 세상의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 중에서 당신이 제일이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이치를 보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것은 선의 근본 되는 공덕도 아니요, 이것으로서는 범행을 닦을 수도 없으며 또한 열반에도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헤아리는 사람은 곧 사람을 미치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게 하느니라.
그러나 비구들이여, 알라. 그 사람은 진실로 네 종류의 군사를 보았다. 그 까닭을 말하리라. 옛날 여러 하늘들은 아수라와 싸웠다. 그 때에 하늘은 이기고 아수라는 졌다. 그래서 아수라들은 매우 두려워해 몸을 아주 작게 만들어 연뿌리 구명을 통해 지나갔다. 그것은 부처님의 눈으로나 볼 수 있는 것이요 다른 사람으로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네 가지 진리를 생각하라. 왜 그러냐 하면, 이 네 가지 진리는 뜻이 있고 이치가 있어 범행을 닦고 사문의 법을 행함으로써 열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 세계의 법을 버리고 방편을 구해 네 가지 진리를 생각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신족(神足)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자재삼매행진신족(自在三昧行盡神足), 심삼매행진신족(心三昧行盡足), 정진삼매행진신족(精進三昧行盡神足), 계삼매행진신족(誡三昧行盡神足)이 그것이다.
어떤 것이 자재삼매행진신족인가. 이른바 모든 삼매가 자유로와 뜻대로 마음대로 몸을 가볍고 편리하게 하여, 몸을 아주 작게 숨기는 것이니 이것이 첫째 신족이다. 어떤 것이 심삼매행진신족인가. 이른바 마음으로 아는 법이 시방에 두루 차서 능히 석벽을 지나지만 걸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심삼매행진신족이라 한다. 어떤 것이 정진삼매행진신족인가. 게으름이 없고 두려움이 없어 마음이 용맹스러운 것이니 이것을 정진삼매행진신족이라 한다. 어떤 것이 계삼매행진신족인가. 이 삼매는 중생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알아서 생기는 때와 사라지는 때를 모두 알며, 욕심이 있고 없는 것과 성내는 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빠른 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어지러운 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작은 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큰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헤아리는 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고요한 마음이 있고 없는 것과 해탈한 마음이 있고 없는 것을 모두 아는 것이니 이것을 계삼매행진신족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 신족이 있다. 만일 모든 중생들의 마음 속 생각을 알고자 하거든 이 네 가지 신족을 닦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욕망을 일으키는 네 가지 법이 있다. 비구가 욕망을 일으킬 때에는 곧 거기에 애착이 생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비구는 의복으로 말미암아 욕망을 일으키고, 음식으로 말미암아 욕망을 일으키며, 좌구(坐具)로 말미암아 욕망을 일으키고, 의약으로 말미암아 욕망을 일으킨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욕망을 일으키는 네 가지 법이 있어 거기에 집착한다는 것이니라.
어떤 비구가 의복에 집착하면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가 의복을 얻지 못할 때에는 곧 불평하고 아쉬워하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떤 비구가 음식에 집착할 때에는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음식을 얻지 못할 때에는 곧 불평하고 아쉬워하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떤 비구가 좌구에 집착하면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가 좌구를 얻지 못할 때에는 곧 불평하고 아쉬워하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떤 비구가 의약에 집착할 때에는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의약을 얻지 못할 때에는 곧 불평하고 아쉬워하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나는 지금 의복에 대해 친할 만한 것과 친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일을 말하리라. 어떤 것을 친하지 않아야 하는가. 만일 의복을 얻어 그 의복에 집착하여 착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면 그 의복을 친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의복을 얻어 착한 법이 일어나고 마음에 애착이 없으면 그것은 친할 만한 것이다.
만일 걸식할 때에 착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면 그것은 친하지 않아야 하고, 만일 걸식할 때에 착한 법이 일어나면 그것은 친할 만한 것이다. 만일 좌구를 얻었을 때에 착하지 않은 법이 일어나면 그것은 친하지 않아야 하고 만일 좌구를 얻었을 때에 착한 법이 일어나면 그것은 친할 만한 것이다. 의약에 있어서도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시주로 하여금 그 공덕을 거두어 끝없이 복을 받고 단 이슬의 열반을 얻게 하려 하거든 마땅히 좋은 법을 친하고 나쁜 법을 버리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의복과 음식과
침구를 보시 받되
거기서 애착을 일으키지 않아
여러 세계에 나지 않도록 하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개의 큰 강물은 아나바탑타 못에서 흘러나온다. 네 개의 강물이란 이른바 강가아, 신두, 바차, 시이타아니라.
저 강가아는 몸소 입에서 나와 동으로 흐르고, 신두는 사자 입에서 나와 남으로 흐르며, 시이타아는 코끼리 입에서 나와 서로 흐르고 바차는 말 입에서 나와 북으로 흐른다. 이 네 강물은 아나바탑타 못을 에워싸고는 강가아는 동쪽 바다로 들어가고 신두는 남쪽 바다로 들어가며 바차는 서쪽 바다로 들어가고 시이타아는 북쪽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 강들이 바다로 들어간 뒤에는 본 이름은 없어지고 다만 바다라고만 불리느니라.
이와 같이 네 가지 성(姓)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크샤트리야, 바라문, 장자, 거사의 종족이다. 그러나 그들도 여래에게 나아 와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옷을 입고 중이 되어 도를 배우면 본 성은 없어지고 다만 석가의 제자 사문이라고만 불리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여래의 대중은 큰 바다와 같고 네 가지 진리는 네 큰 강과 같아서 온갖 번뇌를 없애 버리고 두려움이 없는 열반성(涅槃城)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네 가지 성들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우거든 본 이름을 버리고 석가의 제자라고 스스로 일컬어라. 왜 그러냐 하면 나는 바로 석가의 아들로서 석가 종족 가운데서 집을 나와 도를 배웠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만일 아들로 태어난 뜻을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석가 종족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기는 나로 말미암아 낳고 법을 좇아 일어났으며, 법을 좇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편을 구해 석가 종족의 아들이 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사랑하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보호하는 마음이니라.
무슨 이유로 범당(梵堂)이라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범(梵) 중의 큰 범을 천(千)이라 이름한다. 그것은 견줄 것이 없고 그보다 뛰어 나는 것이 없어 一천 나라를 통솔한다. 그것이 당(堂)이기 때문에 범당(梵堂)이라 부른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개의 범당은 큰 세력이 있어 一천 세계를 관찰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범당이라 부르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네 가지 무리로서 욕심 세계의 하늘을 건너 욕심 없는 곳에 살려고 하면 마땅히 방편을 구해 이 네 개의 범당을 이루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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