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증일아함경

증일아함경 제23권

다르마 러브 2012. 7. 16. 22:26

 

증일아함경 제 二十三권

 

제 三十一 증상품(增上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생루(生漏) 바라문은 세존께 나아가 서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사뢰었다.

“굴 속에 한가히 사는 것은 매우 괴로울 것이요 혼자 있고 외로이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렵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범지여. 네 말과 같다. 굴속에서 한가히 사는 것은 매우 괴롭고 혼자 있고 외로이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렵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옛날 아직 부처 되기 전에 보살행을 닦을 때에는 늘 이렇게 생각하였다. ‘굴속에서 한가히 사는 것은 매우 괴롭고 혼자 있고 외로이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렵다’고.”

바라문은 사뢰었다.

“선남자로서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사문 고오타마께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어, 중생들을 위해 많은 이익을 끼치고 그들의 길잡이가 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바라문이여. 네 말과 같다. 모든 선남자로서 견고한 믿음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이로는 내가 우두머리가 되어, 중생들을 위해 많은 이익을 끼치고 그들의 길잡이가 된다.

만일 그들이 나를 보고 부끄러워하여 산이나 늪이나 고요한 굴속으로 가면 그 때에 나는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은 몸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다. 몸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친하더라도 그것은 한갓 수고만 더할 뿐이다. 그들은 진실한 행을 가지지 못해서 그 좋지 않은 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몸의 행이 깨끗하면서 한적한 곳을 친한다. 몸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한적한 곳을 친하는 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몸의 행이 깨끗하여, 모든 아라한으로서 몸의 행이 깨끗한 이가 굴속에서 한가히 살기를 즐기는 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스스로 내 몸을 관찰하여 그 행이 깨끗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을 즐겨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하느니라.

그 때에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뜻의 행과 명(命)의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친한다. 그들이 아무리 그것을 친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것이 아니어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모두 두루 갖추었다’고. 그러나 그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몸, 입, 뜻, 명의 행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몸, 입, 뜻, 명이 깨끗하면서 한적하고 청정한 곳에 있기를 즐긴다면 그것은 내게 관계가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몸, 입, 뜻, 명이 깨끗하니 몸, 입, 뜻, 명이 깨끗한 모든 아라한으로서 한적한 곳에 있기를 즐기는 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몸, 입, 뜻, 명이 깨끗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도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그 때에 나는 또 생각하였다. ‘이른바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두려움이 많으면서 한적한 곳에 있다. 그 때에 그들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두려워한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두려움이 전연 없으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산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적한 곳에 사는 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두려움이 전혀 없이 한적한 곳에 살면서 스스로 즐거이 놀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한적한 곳에 사는 것은 내게는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괴로움과 근심을 떠나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이런 이치를 관찰하고는 두려움이 없어 그 기쁨은 더욱 더 하느니라.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남을 헐고 자기를 칭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적한 곳에 있더라도 그 생각이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나 범지여, 나는 남을 헐지도 않고 스스로 칭찬하지도 않는다.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허는 사람은 내게는 관계가 없다. 나는 지금 교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이 없는 여러 성현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그 기쁨이 배나 더 하느니라.

저 사문들은 이익을 구해 쉴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익을 구하는 일이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남에게 구하는 것이 없고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만족할 줄 아는 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게으른 생각을 가져 부지런히 노력하지 아니하면서 한적한 곳을 친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관계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용맹스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게으르지 않다. 그러므로 용맹스런 마음을 가진 성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그 기쁨이 배나 더 하느니라.

그 때에 나는 다시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잊어버리기를 잘하면서 한적한 곳에 산다. 비록 거기 살더라도 아직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범지여, 저 잊어버리는 일은 내게는 관계없다. 그러므로 잊어버리지 않는 여러 성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한적한 곳에 사는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나는 그 때에 다시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마음이 어지러워 고요하지 못하다. 그들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어 악행을 행한다’고. 그러나 나는 지금 뜻이 전연 어지럽지 않고 마음이 늘 한결같다. 그러므로 저 뜻이 어지럽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는 것은 내게는 관계가 없다. 나는 늘 마음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성현들로서 마음이 일정한 이가 있다면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한적한 곳에 살지마는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나는 그 때에 또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어리석고 어둡기 양 떼와 같아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다’고. 그러나 그것은 내게는 관계가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항상 지혜로와 어리석지 않으면서 한적한 곳에 산다. 만일 이런 행이 있는 이라면 그는 내게 관계 있다. 나는 지금 지혜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성취한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이치를 관찰하고는 한가한 곳에 살지마는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 하느니라.

내가 항상 한적하게 사는 동안에 때로는 나무가 부러지고 짐승들이 내달리는 일이 있다. 그 때에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대외림(大畏林)이다’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만일 두려움이 생기면 방편을 구해 두려움이 생기지 않게 하리라’고. 내가 거닐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기어코 그 두려운 생각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내가 섰을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기어코 두려움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내가 앉았을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기어코 그 두려움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내가 누웠을 때에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기어코 그 두려움을 없앤 뒤에야 앉는다.

범지여, 알라.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밤이고 낮이고 도법을 모른다. 나는 지금 저들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러나 범지여, 나는 밤이나 낮이나 도법을 안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내어 허망하지 않고 뜻이 어지럽지 않으며 마음은 늘 한결같다. 탐욕은 없지마는 머트러운 관찰과 세밀한 관찰이 있어 기쁨과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첫째 선정에서 스스로 논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내가 첫째 마음으로 현세에서 스스로 즐긴다’는 것이니라.

나는 스스로 마음속에 생각이 없는 것을 관찰해 알고 몸의 즐거움을 깨달아 성현들의 바라는 보호하는 생각이 즐거운 셋째 선정에서 논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셋째 마음이라 하느니라.

다시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어지고 근심과 기쁨도 없으면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보호하는 생각이 청정한 넷째 선정에서 논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넷째의 보다 더 훌륭한 마음으로서 스스로 깨달아 마음에서 논다’는 것이니라.

나는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이 네 가지 보다 더 훌륭한 마음이 있다. 나는 이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도한 번뇌가 없으며 두려움이 없어 과거 무수한 겁의 전생 일을 스스로 안다. 그 때에 나는 一생, 二생, 三생, 四생, 五생, 十생, 二十생, 三十생, 四十생, 五十생, 백생, 천생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 일을 모두 다 아느니라.

즉 나는 어디서 나서 사는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이었던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던가, 저기서 죽어 여기서 나고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난 인연의 본말을 모두 밝게 나느니라.

범지여, 알라. 나는 혹 초저녁에 첫 지혜를 얻으면 무명을 없애어 다시는 어두움이 없고, 마음은 한적한 곳을 즐기어 스스로 깨달아 안다. 그래서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티나 더러움이 없고 또 번뇌도 없으며 두려움이 없게 되고 다시 중생의 나는 이와 죽는 이를 알게 된다.

나는 다시 하늘 눈으로 중생들의 나는 이와 죽는 이, 좋은 몸과 나쁜 몸, 좋은 길과 나쁜 길, 혹은 좋고 추한 것은 다 그 행의 선, 악을 다 따른 다는 것을 모두 분별한다. 즉 어떤 중생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악을 행하여, 성현을 비방하고 항상 삿된 소견을 가져 삿된 소견과 서로 어울리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났느니라. 또 어떤 중생은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선을 닦아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항상 바른 소견을 닦아 바른 소견과 서로 맞으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났느니라.

나는 다시 깨끗하여 더러움이 더러움이 없는 하늘 눈으로 중생들의 나는 이와 죽는 이, 좋은 몸과 나쁜 몸, 좋은 길과 나쁜 길, 혹은 좋고 추한 것은 그 본래의 행을 따른다는 것을 다 아느니라.

범지여, 알라. 혹은 밤중에 둘째 지혜를 얻으면 다시는 어두움이 없어 스스로 깨달아 한적한 곳을 즐기느니라.

나는 다시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여 티나 더러움이 없고 또 번뇌도 없으며, 생각은 고요하여 두려움이 없고 번뇌가 없어진 마음을 얻어, ‘이것은 괴로움이다.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고 안다. 내가 이 마음을 얻을 때에는 탐욕의 번뇌와 생존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함으로써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胎]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안다. 범지여, 이것이 이른바 ‘내가 새벽에 셋째 지혜를 얻어 다시는 어두움이 없다’는 것이니라.

어떠냐, 범지여. 범지는 혹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탐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 다하지 못했으면서 한적한 곳에 산다’고. 범지여, 그렇게 보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여래는 지금 모든 번뇌가 아주 없어지고 항상 한적한 곳을 즐겨 사람들 속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이치를 보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을 즐기는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스스로 한적한 곳을 즐겨 노는 것과 중생을 한량없이 제도하는 것이니라.”

생루 바라문은 사뢰었다.

“중생을 위하고 일체를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옵니다.”

범지는 다시 사뢰었다.

“이제 그만 두소서, 세존이시여. 충분히 들었나이다. 나는 마치 곱추가 등이 펴지고 헤매는 이가 길을 얻고 장님이 눈을 얻고 어두운 데서 등불을 본 것 같나이다. 그처럼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무수한 방편으로 나를 위해 설법하셨나이다. 나는 지금 부처님과 법과 중에게 귀의하나이다. 지금부터 다섯 가지 계율을 받들어 가져 다시는 살생하지 않고 우바새가 되겠나이다.”

그 때에 생루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삼비이국 코오시타라 동산의 과거의 네 부처님이 계시던 곳을 지내셨다.

그 때에 우전 왕(優塡王)과 五백 여자와 사미 부인들은 동산 놀이를 나갔다. 마침 그 때에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어떤 비구는 생각하였다. ‘나는 세존님과 헤어진 지 오래다. 지금 가서 예배하고 문안 드리리라’고.

그 비구는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슈라아바스티이에 들어가 걸식한 뒤에 가사와 바루와 좌구를 두고, 신통으로 허공을 날아 코오삼비이의 동산으로 갔다. 그는 신통을 거두고 어떤 숲으로 들어가 한적한 곳에서 가부하고 앉아, 몸과 마음을 바루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있었다.

그 때에 사미 부인은 五백 여자를 데리고 그 숲으로 왔다. 그는 멀리서 어떤 비구가 신통으로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서 있었다. 五백 부인들도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물러 서 있었다.

때에 우전 왕은 멀리서 五백 여자들이 합장하고 그 비구를 둘러싸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곧 생각하였다. ‘저기는 반드시 사슴 떼나 다른 짐승이 있을 것이다. 의심할 것 없다’고. 왕은 곧 말을 타고 급히 달려 그 여자들 모인 속으로 갔다. 사미 부인은 왕이 오는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저 우전 왕은 흉악한 성질을 가졌다. 반드시 이 비구를 해칠 것이다’고.

때에 부인은 손을 들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알으소서. 이 사람은 비구입니다. 놀라지 말으소서.”

왕은 곧 말에서 내려 활을 버리고 비구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비구여, 나를 위해 설법하라.”

비구는 눈을 들어 왕을 우러러보고는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빨리 나를 위해 설법하라.”

비구는 또 눈을 들어 왕을 우러러보고는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왕은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선정의 중간 일에 대해서 물어 보리라. 만일 나를 위해 설법하면 그를 공양하고 또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을 줄 것이요, 만일 나를 위해 설법하지 못하면 곧 잡아죽이리라’고. 왕은 다시 말하였다.

“비구여, 나를 위해 설법하라.”

비구는 여전히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에 나무 신은 왕의 마음을 알고 멀리서 사슴 떼를 변화해 만들어 왕의 이목을 어지럽혀 딴 생각을 일으키려 하였다. 왕은 멀리서 그 사슴들을 보고 생각하였다. ‘우선 이 사문을 버려두자. 제가 어디로 가 숨겠는가’고. 곧 말을 타고 가서 사슴 떼를 쏘았다.

그 때에 부인은 비구에게 말하였다.

“비구님, 어디로 가시고 싶습니까.”

비구는 대답하였다.

“네, 부처님이 계시던 곳으로 가서 세존님을 뵈오려 하오.”

“비구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빨리 그리로 가시오, 여기 머무르지 마시오, 왕의 해침을 받으면 왕의 죄는 매우 중할 것입니다.”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와 바루를 챙겨 가지고 허공을 날아 머리 떠났다. 부인은 비구가 허공을 날아 멀리 떠나는 것을 보고 곧 왕에게 소리쳤다.

“대왕은 저 비구를 보소서. 저렇게 큰 신통이 있나이다. 지금 허공에서 자유로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나이다. 저 비구도 저런 신통이 있는데 하물며 석가모니 부처님이겠나이까.”

때에 그 비구는 코오시타라 동산으로 가서 신통을 버리고 보통 법으로 돌아와 세존께 나아갔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물으셨다.

“어떤가, 비구야. 슈라아바스티이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때를 따라 걸식하기는 괴롭지 않던가.”

비구는 사뢰었다.

“저는 슈라아바스티이에 있으면서 아무 괴로움도 없었나이다.”

“그러면 왜 여기 왔는가.”

“세존께 문안 드리러 일부러 왔나이다.”

“너는 지금 나와 이 네 부처님의 사시던 곳을 보는가. 너는 지금 그 왕의 손을 벗어났는가. 그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너는 왜 왕을 위해 설법하지 않았는가. 우전 왕은 말하지 않았던가. 즉 ‘비구여, 지금 나를 위해 설법하라. 너는 왜 나를 위해 설법하지 않는가’고. 만일 네가 왕을 위해 설법하였더라면 왕은 매우 기뻐하였을 것이요, 기뻐하고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의복, 음식, 평상, 침구, 의약 등을 이바지하였을 것이다.”

“그 때에 그 왕은 선정의 중간 일에 대해서 물으려 하였나이다. 그래서 그 이치를 대답하지 않았나이다.”

“비구야, 너는 왜 왕을 위해 선정의 중간 일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우전 왕은 선정을 근본으로 삼고 흉악한 마음을 품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헤아릴 수 없이 중생을 죽였나이다. 그는 탐욕과 서로 어울리고 세 가지 독이 왕성하여, 깊은 구렁에 빠져 바른 법을 보지 못하며, 의혹하고 무지하여 온갖 악이 두루 모이고 교만을 부리나이다. 그는 왕이라는 세력을 기대어 재보를 탐하고 집착하며, 세상 사람을 업신여기고 눈이 없는 장님이옵니다. 그런 사람이 선정해서 무엇하겠나이까. 대개 선정이란 모든 법 중에서도 가장 묘하여 깨달아 알기 어렵고 형상이 없으며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어서 그것은 보통 사람의 미칠 바가 아니요 지혜로운 사람만이 알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왕을 위해 설법하지 않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헌 옷은 반드시 씻어야 깨끗해지고 왕성한 욕심은 더럽다는 생각을 닦아야 없어지며, 성내는 마음이 왕성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없애고 어리석은 어두움은 열 두 가지 인연법을 서야 없앨 수 있다. 그런데 비구야, 너는 왜 그 우전 왕을 위해 설법하지 않았느냐. 만일 그를 위해 설법하였더라면 그는 못내 기뻐하였을 것이다. 아무리 성한 불도 끌 수 있겠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비구는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여래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설사 하늘, 용, 귀신, 건달바가 와서 여래에게 이치를 묻더라도 나는 그들을 위해 설명할 것이다. 만일 국왕이나 대신이나 백성들이 와서 여래에게 이치를 묻더라도 나는 그들을 위해 설명할 것이요, 크샤트리야 등 네 가지 성받이가 와서 여래에게 이치를 묻더라도 나는 그들을 위해 설명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여래는 네 가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설법하기에 겁내거나 약하지 않고 네 가지 선정을 얻었기 때문에 거기서 자재를 얻었으며, 또 네 가지 신통을 얻어 헤아릴 수 없고 다시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쓰기 때문에 여래는 설법하기에 겁내거나 약하지 않다. 그것은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미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설법하기에 어려움이 없느니라. 너희 비구들도 방편을 구해 사랑하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보호하는 마음 등의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닦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만일 비구로서 중생이나 선지식을 위하거나 부모나 친척을 만나면 네 가지 일로써 법을 알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첫째는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때의 여래란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 지혜와 행을 갖춘 이, 잘 간 이, 세상 아는 이, 위없는 선비, 도법으로 어거하는 이, 천상과 인간의 스승, 부처, 중우로서 사람을 한량없이 제도하신 분이니라.

다음에는 법을 구하는 것이다. 바르고 진실한 법을 닦아 행해 더럽고 나쁜 행을 버리는 것이니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닦아 행할 바이니라.

다음에는 방편을 구해 중을 공양하는 것이다. 여래 무리란, 항상 서로 화합하여 다툼이 없고, 법을 성취하고 계율과 삼매와 지혜와 해탈과 해탈 지견을 성취한 사람으로서, 이른바 네 쌍과 여덟 가지 무리의 열 두 선비이다. 이 여래의 거룩한 무리는 존경할 만하고 높일 만하여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니라.

다음에는 물들거나 더러움이 없고 지극히 고요하고 함이 없는 성현의 법을 권하고 도와 행하게 하는 것이니라.

만일 비구로서 도를 행하고자 하면 이 네 가지 법을 두루 함께 행하도록 하라. 왜 그러냐 하면 거룩한 세 분에게 법으로 공경하는 것은 가장 거룩하고 가장 높아 아무 것도 거기에 미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네 가지 행적(行跡)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첫째는 즐거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미련하다. 이것을 첫째 행적이라 한다. 다음에도 즐거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날카롭다. 다음에는 괴로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미련하고 다음에도 괴로운 행적이니 그 행하는 것이 날카로우니라.

어떤 것이 즐거운 행적으로서 그 행하는 것이 미련한가. 어떤 사람은 탐욕이 왕성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왕성하여, 그 행하는 것이 매우 괴로워 행의 근본과 서로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다섯 가지 뿌리가 어리석고 어두워 날카롭지 못하다. 다섯 가지 뿌리란, 이른바 믿음 뿌리, 정진 뿌리, 생각 뿌리, 지혜 뿌리, 선정 뿌리다. 그러나 이 미련한 마음으로도 삼매를 구해 번뇌를 없애면, 이것을 일러 ‘즐거운 행적의 둔한 근기로서 도를 얻은 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즐거운 근기로서 그 행적이 날카로운가. 어떤 사람은 욕심과 음욕이 없고 또 탐욕도 치우쳐 적어 간절히 구하지 않으며, 성냄과 어리석음이 자꾸 줄어든다. 또 다섯 가지 뿌리는 날카로워 게으르지 않다. 다섯 가지 뿌리란 이른바 믿음 뿌리, 정진 뿌리, 생각 뿌리, 선정 뿌리, 지혜 뿌리니 이것이 다섯 가지 뿌리다. 그는 다섯 가지 뿌리를 얻어 삼매를 성취하고 번뇌를 없애어 번뇌가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날카로운 근기의 도둑을 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운 행적으로서 그 행이 미련한가. 어떤 사람은 음욕이 치우쳐 많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왕성하다. 그는 이 법으로 스스로 즐기면서도 번뇌를 없애고 번뇌가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괴로운 행적의 미련한 근기’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운 행적으로서 그 행이 날카로운가. 어떤 사람은 욕심도 적고 음욕도 적으며 성냄이 없고, 또 생각을 일으켜 이 세 가지 법을 행하지도 않는다. 그 때에 그는 다섯 가지 뿌리를 가져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다. 다섯 가지 뿌리란 이른바 믿음 뿌리, 정진 뿌리, 생각 뿌리, 선정 뿌리, 지혜 뿌리니 이것이 다섯 가지 뿌리다. 그는 이 법으로 삼매를 얻고 번뇌를 없애어 번뇌가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괴로운 행적의 날카로운 근기’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을 네 가지 행적이라 한다. 마땅히 방편을 구해 앞의 세 가지 행적은 버리고 뒤의 한 가지 행적을 다 받들어 행하라. 왜냐 하면 괴로운 행적의 삼매는 얻기는 어렵지마는 이미 얻고 나면 곧 도를 이루어 이 세상에 오랫동안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즐거움으로는 즐거움을 구할 수 없고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항상 방편을 구해 이 행적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의 카란다 대나무 동산에서 큰 비구들 五백인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네 범지는 모두 다섯 가지 신통을 얻었고 착한 법을 수행하면서 한 곳에 모여 의논하였다. ‘죽음의 사자(使者)가 올 때에는 그 억센 힘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제각기 숨어 그 사자로 하여금 어디로 올지 모르게 하자’고.

그래서 한 범지는 허공에 올라가 죽음을 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죽음을 못 면하고 공중에서 목숨을 마쳤다. 둘째 범지는 큰 바다 밑에 들어가 죽음을 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목숨을 마쳤다. 셋째 범지는 죽음을 면하려고 수미산 중턱에 들어갔으나 거기서 죽었다. 넷째 범지는 땅 속에 들어가 금강제(金剛際)에 이르러 죽음을 면하려 하였으나 그도 거기서 목숨을 마쳤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한 눈으로 그 네 범지들이 제각기 죽음을 피하려 하였으나, 모두 한꺼번에 목숨을 마친 것을 보시고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늘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요

험한 산의 바위 속에 들어갈 것 아니다

어디 가서 숨을 그 곳 없나니

이것을 벗어나면 죽음 받지 않으리.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범지 네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죽음을 면하려고 제각기 갈 곳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한 사람은 허공에 있었고 한 사람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으며 한 사람은 산 중턱에 들어갔고 한 사람은 땅 속에 들어갔다가 모두 한꺼번에 죽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죽음을 면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네 가지 법의 근본을 생각하라. 어떤 네 가지인가. ‘일체의 행은 덧없다.’ 이것은 첫째의 법의 근본이니 잘 생각해 수행하라. ‘일체의 행은 괴롭다.’ 이것은 둘째의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생각하라. ‘일체의 법은 <나>가 없다.’ 이것은 셋째의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생각하라. ‘아주 사라진 것은 열반이다.’ 이것은 넷째의 법의 근본이니 다 함께 생각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이 네 가지 법의 근본을 다 함께 생각하라. 왜 그러냐 하면 그로써 곧 남, 늙음, 병, 죽음, 근심, 걱정, 괴로움, 번민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괴로움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해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三十三천에 네 개의 동산이 있다. 여러 하늘은 거기서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면서 스스로 즐긴다. 어떤 넷인가. 난단반나 동산, 추삽 동산, 주야(書夜) 동산, 잡종(雜種) 동산이다.

그리고 그 네 개의 동산 안에는 네 개의 목욕 못이 있다. 그것들은 지극히 차고 향기로우며 가볍고 편리하고 몹시 맑은 못들이다. 어떤 넷인가, 첫째는 이름이 난타(難陀)요, 둘째는 이름이 난타정(難陀頂)이요, 셋째는 이름이 소마(蘇摩)요, 넷째는 이름이 환열(歡悅)이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네 개의 동산 안에는 네 개의 목욕 못이 있어 사람의 몸을 향기롭고 조촐하여 때가 없게 하느니라.

왜 난단반나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三十三천이 그 난단반나 동산에 들어가면 마음이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 즐긴다. 그러므로 난단반나 동산이라 한다. 또 왜 추삽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三十三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몸이 매우 거칠어진다. 마치 겨울에 향을 바르면 몸이 매우 거칠어지는 것처럼, 三十三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몸이 매우 거칠어져 보통 때와 달라진다. 그러므로 추삽 동산이라 한다.

또 왜 주야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三十三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그 하늘들의 얼굴빛은 각각 달라져 여러 가지 형체가 된다. 마치 여자들이 여러 가지 옷을 입으면 본래 형상과 달라지는 것처럼 三十三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모양이 되어 본래와 같지 않다. 그러므로 주야 동산이라 한다.

또 왜 잡종 동산이라 하는가. 가장 높은 하늘과 중간 하늘과 밑의 하늘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모두 동일한 종류가 되지마는, 만일 가장 밑의 하늘이면 다른 세 개의 동산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마치 전륜성왕이 들어갔던 동산에는 다른 왕은 거기 들어가 목욕하지 못하고 백성들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가장 높은 하늘이 들어가 목욕한 동산에는 다른 작은 하늘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잡종 목욕 못이라 하느니라.

다시 왜 난타 목욕 못이라 하는가. 만일 三十三천이 그 못에 들어가면 매우 기쁜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난타 목욕 못이라 한다. 또 왜 난타정 목욕 못이라 하는가. 만일 三十三천이 그 동산에 들어가면 서로 두 손 맞잡고 그 정수리를 문질러 씻는다. 하늘 아씨도 그와 같이 한다. 그러므로 난타정 목욕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소마 목욕 못이라 하는가. 三十三천이 그 못에 들어가면 그 하늘들의 얼굴은 모두 사람 모양 같아서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소마 목욕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환열 목욕 못이라 하는가. 만일 三十三천이 그 못에 들어가면, 모두 높다 낮다는 교만한 생각이 없고, 음탕한 생각이 아주 적어져 꼭 같은 마음으로 목욕한다. 그러므로 환열 목욕 못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인연으로 그런 이름이 있게 되었느니라.

그와 같이 여래의 바른 법안에도 네 개 동산의 이름이 있다. 어떤 것인가. 첫째는 사랑하는 동산이요, 둘째는 가엾이 여기는 동산이요, 셋째는 기뻐하는 동산이요, 넷째는 보호하는 동산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의 바른 법안의 네 가지 동산이니라.

왜 사랑하는 동산이라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이 사랑하는 동산으로부터 범천에 나고 범천으로부터는 마침내 귀족의 집안에 태어나 재물과 보배가 많고 항상 다섯 가지 즐거움이 있어 스스로 즐겨 하면서 잠깐도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또 왜 가엾이 여기는 동산이라 하는가. 비구들이여, 알라.

만일 가엾이 여김으로 해탈하는 마음을 친하면 범광음천(梵光音天)에 나고, 인간에 와서 나면 귀족 집안에 태어나 성냄이 없고 재물과 보배가 많다. 그러므로 가엾이 여기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또 왜 기뻐하는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기뻐하는 동산을 친하면 광음천에 나고, 인간에 와서 나면 국왕의 집에 태어나 언제나 기쁨을 가진다. 그러므로 기뻐하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또 왜 보호하는 동산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보호하기를 친하면 무상천(無想天)에 나서 八만 四천 겁을 살고 인간에 와서 나면 중국 사람 집에 태어나 성냄이 없고 언제나 법답지 않은 모든 행에서 남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보호하는 동산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여래의 바른 법안에는 이 네 개의 동산이 있어 모든 성문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즐거이 놀게 하느니라.

또 여래의 이 네 개 동산 안에는 네 개의 목욕 못이 있어, 우리 성문들로 하여금 거기서 목욕하면서 즐거이 놀게 한다. 어떤 넷인가. 첫째는 각(覺)과 관(觀)이 있는 못이요, 둘째는 각도 관도 없는 못이며, 셋째는 보호해 생각하는 못이요, 넷째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못이니라.

왜 각과 관이 있는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중생이 첫째 선정을 얻으면, 모든 법안에서 언제나 각과 관이 있어, 온갖 법을 생각하여 결박을 아주 없애어 남음이 없다. 그러므로 각과 관이 있는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각도 관도 없는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둘째 선정을 얻으면 각과 관을 없애고 선정을 먹고산다. 그러므로 각도 관도 없는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보호해 생각하는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셋째 선정을 얻으면, 각과 관을 없애고 각도 없고 관도 없게 되어 항상 셋째 선정을 보호해 생각한다. 그러므로 보호해 생각하는 못이라 하느니라.

또 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못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넷째 선정을 얻으면, 즐거움도 생각하지 않고 괴로움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 과거와 미래의 법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현재의 법에만 마음을 쓴다. 그러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못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의 바른 법안에는 이 네 개의 목욕 못이 있어, 우리 성문들로 하여금 거기서 목욕하여 스물 한 가지 번뇌를 없애고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 열반성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이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려고 하거든, 마땅히 방편을 구해 스물 한 가지 결박을 없애고 열반성에 들어가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매우 사나운 네 마리 큰 독사를 함 속에 넣어 두었다 하자. 그 때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살기를 좋아해 죽기를 꺼렸고 즐거움을 구해 괴로움을 피하였다. 또 그들은 어리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으며 마음이 어지럽지도 않고 매인 데도 없었다.

그런데 왕이나 혹은 대신이 그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여기 매우 사나운 네 마리 큰 독사가 있다. 너는 때때로 목욕시켜 깨끗이 기르되 때때로 먹이를 주어 모자람이 없게 하라. 지금 곧 실행하라.’

그 사람은 매우 두려운 생각이 들어 감히 그 앞으로 가지 못하고, 곧 그것을 버리고 내달려 어디로 갈지 몰라 해 하였다. 왕은 다시 그 사람에게 말하였다.

‘지금 다섯 사람을 시켜 칼을 들고 네 뒤를 따르게 하리라. 만일 그가 너를 잡으면 곧 죽일 것이니 너는 어물어물 하지 말라.’

그 사람은 네 마리 큰 독사와 또 칼을 든 다섯 사람이 두려워서 이리 저리 달리면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왕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다시 너의 원수 여섯 사람을 시켜 네 뒤를 따르게 하여 만일 너를 잡으면 곧 죽일 것이다. 무슨 방법이 있거든 곧 마련하라.’

그 사람은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든 다섯 사람과 여섯 사람 원수가 두려워 사방으로 내달렸다. 그는 혹 빈 마을을 보고 숨으려고 거기 들어갔으나 담이 무너져 든든한 곳이 없었고 또 빈 그릇에는 남은 음식이 없었다.

그 때에 나와 친한 어떤 사람은 그를 구원하려고 그에게 말하였다.

‘이 쓸쓸한 빈 마을에는 온갖 도적이 많다. 무슨 방법이 있으면 마음대로 하라.’

그 사람은 네 마리 독사와 칼을 든 다섯 사람과 여섯 사람 원수와 또 빈 마을이 두려워 곧 내달려 사방으로 헤매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다가 큰 강물을 만났다. 그 물은 매우 깊고 또 넓으며 사람도 없고 다리도 없어 저쪽 언덕으로 건너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서 있는 곳에는 온갖 나쁜 도둑이 많았다.

그 때에 그는 생각하였다. ‘이 강은 매우 깊고 넓은데 또 온갖 도둑이 많다. 나는 어떻게 저쪽 언덕으로 건너갈까. 나는 나무와 풀을 모아 뗏목을 만들고 그 뗏목을 타고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자’고.

그는 곧 나무와 풀을 모아 떼배를 만들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이르러 마음이 편안하였느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나는 이제 비유를 들었으니 생각해 풀어 보자. 이 말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네 마리 독사란 곧 네 가지 원소를 가리킨 것이다. 어떤 네 가지 원소인가. 이른바 땅의 원소, 물의 원소, 불의 원소, 바람의 원소이니 이것을 네 가지 원소라 한다. 칼을 든 다섯 사람이란 곧 다섯 가지 쌓임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몸뚱이,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니라.

여섯 사람의 원수란 애욕을 가리킨 것이다. 빈 마음이란 여섯 가지 감관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여섯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감관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의 감관이니라.

만일 지혜 있는 이로서 이 눈을 관찰할 때에는 그것은 모두 공(空)해 아무 것도 없으며 또한 든든한 것도 아니다. 또 귀, 코, 혀, 몸, 뜻을 관찰할 때에도 그것은 모두 공해 아무 것도 없고, 허하고 고요하며 또 든든한 것이 아니다. 강물이란 네 갈래 흐름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넷인가. 이른바 욕망의 흐름, 생존의 흐름, 무명의 흐름, 소견의 흐름이니라.

뗏목이란 성현의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여덟인가. 바른 소견, 바른 다스림, 바른 말, 바른 방편, 바른 업, 바른 생활, 바른 생각, 바른 선정이다. 이것을 성현의 여덟 가지 길이라 하느니라.

물에서 건너기를 구하는 것은 좋은 권도로서의 방편을 쓰는 정진하는 힘이다. 이쪽 언덕이란 몸에 대한 삿된 소견이요, 저쪽 언덕이란 그 삿된 소견이 없어진 것이다. 또 이쪽 언덕이란 아자아타사트루의 나라요, 저쪽 언덕이란 빔비사아라 왕의 나라니라. 또 이쪽 언덕이란 파아피이야스의 나라요, 저쪽 언덕이란 여래의 경계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서 큰 비구들 五백인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어떤 우바새는 목숨을 마치고 도로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어떤 정자의 집에 태어났는데 그 부인이 아기를 배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선 깨끗하여 흐림이 없는 하늘 눈으로 우바새가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제일 부잣집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바로 그 날에 어떤 범지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옥에 떨어졌다.

또 세존께서는 하늘 눈으로 바로 그 날에 아나아타핀디카 장자가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의 좋은 곳에 난 것을 보시고 또 바로 그 날에 어떤 비구가 열반에 든 것을 보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 네 가지 일을 보시고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다 같이 후생 몸을 받은 사람이라도

악을 행하면 지옥에 들어가고

선을 행한 이 천상에 나며

번뇌가 없는 이는 열반에 든다.

 

저 우바새는 후생 몸을 받았고

범지는 지옥에 떨어졌으며

아나아타핀디카는 천상에 났고

저 비구는 열반에 들었나니.

 

세존께서는 고요한 방에서 일어나 보집강당으로 가시어 자리에 앉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일이 있다. 사람이 그것을 닦아 행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인간에 태어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이른바 청정한 몸, 입, 뜻, 명이니, 그것이 흐림이 없으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인간에 나느니라.

비구들이여, 또 네 가지가 있다. 사람이 그것을 익혀 행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어떤 네 가지인가. 이른바 깨끗하지 않은 몸, 입, 뜻, 명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법으로서 만일 사람이 그것을 친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나느니라.

비구들이여, 또 네 가지 법이 있다. 그것을 익혀 수행하면 천상의 좋은 곳에 난다. 어떤 네 가지인가. 보시와 사랑과 남의 이익과 고른 이익이다. 비구들이여, 사람이 이 법을 행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나느니라.

비구들이여, 또 네 가지 법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닦아 행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번뇌가 없다 하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한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아느니라.

어떤 네 가지인가. 각(覺)과 관(觀)이 있는 선정, 각도 관도 없는 선정, 보호해 생각하는 선정, 괴로움도 즐거움도 사라진 선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네 가지 선정이라 한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익혀 행하면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한다. 그래서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아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만일 선남자나 네 무리로서 인간에 나고자 하거든 방편을 구해 청정한 몸, 입, 뜻, 명을 닦아 행하라. 또 만일 천상에 나려고 하거든 방편을 구해 네 가지 은혜를 행하라. 또 만일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려 하거든 방편을 구해 이 네 가지 선정을 닦아 행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이샤알리 밖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성불하기 전에 나는 저 대외산(大畏山)을 의지해 머물러 있었다. 그 때에 그 산은 욕심이 있거나 욕심이 없거나 거기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두려워 몸의 털이 일어섰다. 한창 뜨거울 때에 아지랑이가 이리 저리 끼이면 나는 몸을 드러내어 앉았다가 밤이 되어서야 깊은 숲 속에 들어갔고, 또 몹시 추운 날에 바람과 눈이 섞어 치면 낮에는 숲 속에 들어갔다가 밤에는 한데 나와 앉았었다. 나는 그 때에 한 게송을 읊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찍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나는 밤에 담담히

대외산에서 편해 했나니

그 형체를 드러내는 것

그것이 내 서원이어라.

 

나는 무덤 사이로 가면 죽은 사람의 옷을 주워 내 몸을 덮었다.

그 때에 그 안타촌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 내 귓구멍을 찌르기도 하고 혹은 콧구멍을 찔렀다. 또는 침을 뱉는 이도 있었고 오줌을 깔기는 이도 있었으며 혹은 흙을 내 몸에 끼얹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 때에는 이런 평등한 마음이 있었느니라.

그 때에는 외양간에 라서 송아지 똥을 보면 곧 그것을 집어먹었고 송아지 똥이 없으면 큰 소똥을 집어먹었다. 나는 그것을 먹고 생각하였다. ‘이제 나는 먹었으니 오늘은 한 종일 먹지 않으리라’고. 내가 이렇게 생각했을 때 저 하늘들은 내게 와서 말하였다.

‘너는 단식하지 말라. 그래도 굳이 단식한다면 우리는 단 이슬로써 정기를 대어 주어 목숨을 보전하게 할 것이다.’

그 때에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단식하였다. 그런데 무엇 하러 저 하늘들로 하여금 단 이슬을 보내어 내게 주게 하겠는가. 그것은 장차 내 몸에 대한 거짓이 될 것이다’고. 그 때에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지금부터는 깨와 싸라기를 먹자’고.

그 때부터 나는 하루에 깨 한 알과 쌀 한 알씩을 먹었다. 몸은 쇠약해서 뼈는 서로 맞붙고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겨 가죽과 살이 절로 떨어졌다. 그것은 마치 조롱박 같아서 머리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 것처럼 정수리에 부스럼이 생겨 가죽과 살이 절로 떨어졌다. 그것은 다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물 속에 별이 나타나는 것처럼 내 눈도 그와 같았다. 그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낡은 수레가 부서진 것처럼 내 몸도 모두 부서져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 낙타 다리처럼 내 엉덩이도 그와 같았다. 내가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면 곧 등뼈가 손에 대이고 또 등을 어루만지면 뱃가죽이 손에 대이었다. 몸이 이처럼 쇠약한 것은 다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에 깨 한 알과 쌀 한 알로 음식을 삼았으나 끝내 이익이 없었고 또 그 거룩한 법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또 나는 변소에 가고 싶어 일어나면 곧 땅에 넘어져,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 때에 저 하늘들은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이 사문 고오타마는 벌써 열반에 들었다’고.

또 어떤 하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곧 죽을 것이다’고.

또 어떤 하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문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 사문은 진실로 아라한이다. 대개 아라한 법에는 이런 고행이 있다’고.

나는 그 때에 그래도 아직 의식이 있어서 밖에서 오는 일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숨이 없는 선정에 들자’고. 나는 곧 숨이 없는 선정에 들어 드나드는 숨길을 세었다. 나는 그 드나드는 숨길을 세다가 어떤 기운에 귀에서 나오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

그것은 바람 소리와 우뢰소리 같았다.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숨을 나오지 못하게 하자’고. 숨은 나오지 않았다. 그 때에 나는 안 기운이 손과 다리로 좇아 나와 기운으로 하여금 귀, 코, 혀로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에 내 안 소리는 우뢰처럼 울렸다. 그 때의 내 의식은 온 몸을 따라 도는 것과 같았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다시 숨이 없는 선정에 들자’고. 나는 곧 모든 구멍의 숨길을 막았다. 모든 드나는 숨길을 막음으로써 곧 머리와 이마가 아팠다. 마치 어떤 사람이 송곳으로 머리를 쑤시는 것처럼, 내 머리 아픔도 그와 같이 심하였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다시 선정에 들어 숨길을 드나들지 못하게 하자’고. 나는 곧 드나드는 숨을 막았다. 그 때에 모든 숨은 다 배속에 모였다. 그 때의 내 숨의 움직임은 지극히 미세하였다.

그러나 마치 백정이가 칼로 소를 죽이는 것처럼 그 때의 내 고통은 심하였다. 또 건장한 두 사람이 약한 사람을 맞들고 불 위에 구우면 그 고통이 지독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그 때의 내 고통도 그와 같아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내가 좌선할 그 때에는 내 형체는 사람 꼴이 아니었다. 그 중의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문은 얼굴빛이 매우 검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문의 얼굴빛은 마지막인 것 같다.’

비구들이여, 알라. 나는 六년 동안 이렇게 고행하였다. 그러나 그 거룩한 법은 얻지 못하였다. 그 때에 나는 생각하였다. ‘오늘은 과일 하나를 먹자’고. 나는 곧 과일 하나를 먹었다. 과일 하나를 먹은 그 날도 몸이 쇠약하여 스스로 일어날 수 없었다. 나이 백 二十세가 되어 뼈마디가 허물어져 부지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의 과일 하나란 오늘의 조그만 대추와 같았느니라.

그 때에 나는 생각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도를 성취하는 근본이 아니다. 반드시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기억한다. 옛날 내가 부왕의 나무 밑에 있을 때에 음욕과 욕심이 없어 온갖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버리고 첫째 선정에 놀았고, 각과 관이 없는 둘째 선정에 놀았으며 보호하는 생각이 청정해 어떤 생각도 없는 셋째 선정에 놀았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어 생각이 청정한 넷째 선정에 놀았었다. 이것이 혹 그 길일는지 모른다. 나는 이제 그 길을 찾자’고. 그리하여 나는 六년 동안 괴로이 그 도를 구하였으나 능히 얻지 못하였느니라.

혹은 가시 위에 눕기도 하고 널판자나 쇠못 위에 눕기도 하며, 새처럼 땅에서 떨어져 달리기도 하였고 두 다리를 위로 올리고 머리를 땅에 두기도 하였으며 다리를 꼬아 걸터앉기도 하였고, 수염과 머리를 길러 깍지 않기도 하였으며, 볕에 쬐고 불로 굽기도 하였고 한 겨울에 얼음에 앉기도 하고 몸을 물에 잠그기도 하였으며 혹은 잠자코 말하지 않기도 하였다.

혹은 하루에 한 번 먹기도 하고 혹은 두 번, 세 번, 네 번 내지 일곱 번 먹기도 하였다. 혹은 나물과 과일을 먹고 벼나 깨를 먹었으며 풀뿌리와 나무 열매와 꽃 냄새를 먹기도 하고 혹은 여러 가지 과일과 고기를 먹기도 하였었다.

때로는 옷을 벗고, 때로는 헤어진 옷을 입었으며, 때로는 띠풀옷, 털옷을 입었고 때로는 사람털로 몸을 가리었으며, 때로는 머리를 길러 남의 머리털로 다리를 들이기도 하였느니라.

비구들이여, 나는 옛날 이처럼 고행하였다. 그러나 네 가지 법의 근본을 얻지 못하였다. 어떤 네 가지인가,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운 성현의 계율과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운 성현의 지혜와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운 성현의 해탈과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운 성현의 삼매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법이다. 나는 옛날 그렇게 고행하였으나 이 법은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 때에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위없는 도를 구하자’고. 어떤 것이 위없는 도인가. 이른바 네 가지 법으로 향하는 것이니, 성현의 계율과 성현의 삼매와 성현의 지혜와 성현의 해탈이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처럼 쇠약한 몸으로는 그 위없는 도를 구할 수 없다. 얼마만의 정미(精微)한 기운을 먹어 몸을 기르고 기력이 왕성한 뒤에 라야 도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정미한 기운을 먹자’고.

때에 다섯 사람 비구는 나를 버리고 돌아가면서 ‘이 사문 고오타마는 그 성행이 어지러워져 참 법을 버리고 삿된 업으로 나아갔다’고 하였다. 나는 그 때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을 향해 거닐면서 생각하였다. ‘먼 과거의 항하수 모래알 같은 모든 부처님의 성도하신 곳은 어디 있는가’고. 그 때에 허공에서 하늘 신은 내게 말하였다.

‘현자여, 알라. 과거의 항하수 모래알 같은 모든 부처 세존은 저 보리수의 시원한 그늘 밑에 앉아 부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고.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어디 앉아 부처가 되었던가. 앉았던가, 섰던가’고. 그 때에 하늘은 다시 내게 말하였다.

‘과거 항하수 모래알 같은 부처 세존은 풀 자리에 앉아 부처가 되었습니다’고.

그 때에 내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길상(吉祥)이라는 범지가 풀을 베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인가. 이름은 무엇이며 성은 무엇인가.’

범지는 대답하였다.

‘내 이름은 길상이요, 성은 불성입니다.’

나는 그 때에 그에게 말하였다.

‘좋고, 좋구나. 그런 성명은 세상에 드물다. 성명이란 헛되지 않아 반드시 그 성명대로 되는 것이다. 너는 이 현세로 하여금 길(吉)하게 하여 이익 되지 않음이 없게 하고, 남, 늙음, 병, 죽음을 아주 없앨 것이다. 네 성 <불성>은 내 옛날 성과 같구나. 나는 지금 그 풀을 조금 얻고 싶다.’

길상은 내게 물었다.

‘고오타마님은 오늘 이 풀을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그것을 나무 밑에 깔고 앉아 네 가지 법을 구하고자 한다. 어떤 네 가지인가. 이른바 성현의 계율과 성현의 삼매와 성현의 지혜와 성현의 해탈이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에 길상은 몸소 풀을 가지고 나무 밑에 가서 깔았다. 나는 그 위에서 몸과 마음을 바루고 가부하고 앉아 생각을 매어 앞에 두었다.

그 때에 나는 탐욕이 풀리고 온갖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없어지고 다만 각과 관이 있어 마음이 첫째 선정에 놀았고 다음에는 각과 관이 모두 없어져 마음이 둘째, 셋째 선정에 놀았으며, 보호하는 생각이 청정해지고 근심과 기쁨이 모두 없어져 마음이 넷째 선정에 놀았다.

그 때에 나는 이 청정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두려움이 없게 되어 과거에 무수히 변해 내려온 전생 일을 알았다.

나는 곧 스스로 무수한 세상일을 기억하였다. 즉 一생, 二생, 三생, 四생, 五생, 十생, 二十생, 三十생, 四十생, 五十생, 백생, 천생, 백천만생과 이루어진 겁, 무너진 겁과 무수한 이루어진 겁, 무수한 무너진 겁과 무수한 이루어지고 무너진 겁 동안에, 나는 일찍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났고 저기서 죽어 여기 와서 났다는 처음이 없는 그 본말과 인연의 무수한 세상일을 모두 기억하였다.

또 나는 청정하여 흐림이 없는 하늘 눈으로 중생들의 나는 이와 죽는 이, 좋은 세계와 좋은 몸, 나쁜 세계와 나쁜 몸, 혹은 좋고 추한 것은 모두 그 행의 근본을 따른 다는 것을 관찰해 알았다. 즉 어떤 중생은 몸으로 악행을 짓고 업과 뜻으로 악행을 지어, 성현을 비방하고 삿된 업의 근본을 지어, 삿된 소견과 서로 어울림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났다.

또 어떤 중생은 몸과 입과 뜻의 행이 선하여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과 서로 알맞음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인간에 태어났다. 이것이 이른바 그 중생은 몸과 입과 뜻의 삿된 업이 없었다는 것이니라.

그래서, 나는 청정하여 흐림이 없는 삼매의 마음으로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였다. 그래서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태를 받지 않을 줄을 여실히 알고 곧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었느니라.

비구들이여,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모든 세계를 밝게 안다면, 그 세계로서 내가 과거에 일찍 가지 않은 곳이 없고, 한 정거천(淨居天)을 제하고는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을 알 것이다.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장차 가서 나야 할 곳에도 내가 거기 가서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요, 이미 정거천에 났으면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이미 성현의 계율을 얻었고 나도 그것을 얻었다. 성현의 삼매를 그대들은 얻었고 나도 또 그것을 얻었다.

성현의 지혜를 그대들은 얻었고 나도 또 그것을 얻었다. 성현의 해탈을 그대들은 얻었고 나도 또 그것을 얻었다. 성현의 해탈지견을 그대들은 얻었고 나도 또 그것을 얻었다. 그래서 후생 몸을 받는 근본을 끊고 나고 죽음이 아주 다해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왜 그러냐 하면 만일 비구로서 이 네 가지 법을 얻으면 도를 이루기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룬 것도 다 이 네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결과를 이룬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먼 과거에 三十三천의 제석천왕은 여러 천녀들을 거느리고 난단반나 동산으로 나가 놀았다. 그 때에 어떤 천인은 곧 다음 게송을 읊었다.

 

난단 동산을 보지 않고는

어떠한 즐거움도 알지 못하리

모든 하늘의 사는 곳으로

이보다 나은 곳 다시없나니.

 

그 때에 어떤 하늘은 그 하늘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무지하여 바른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는구나. 근심스럽고 괴로운 것을 도리어 즐겁다 말하고 든든하지 않은 것을 든든하다 말하며 덧없는 것을 항상하다 말하고 긴요하지 않은 것을 긴요하다 말한다. 왜 그러냐 하면 너는 마침내 여래의 말씀하신 다음 게송을 듣지 못하였는가. 즉

 

일체의 행은 덧없는 것이어서

한 번 난 것은 반드시 죽음 있다

나지 않으면 결코 죽지 않나니

그 열반이 가장 즐거우니라.

 

여기에 이런 이치가 있기에 또 이 게송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이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가.’

너는 알아야 한다. 여래께서는 또 네 가지 흐름법[流法]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이 흐름에 빠져 있으면 그는 끝내 도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 네 가지란 이른바 탐욕의 흐름, 생존의 흐름, 소견의 흐름, 무명의 흐름이다.

어떤 것을 탐욕의 흐름이라 하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탐욕이 곧 그것이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만일 눈으로 빛깔을 보면 빛깔이라는 분별을 일으키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소리라는 분별을 일으키며 코로 냄새를 맡으면 냄새라는 분별을 일으키고 혀로 맛을 보면 맛이라는 분별을 일으키며 몸으로 부드러움을 알면 부드럽다는 분별을 일으킨다. 이것을 탐욕의 흐름이라 한다.

어떤 것을 생존의 흐름이라 하는가. 세 가지 생존이 곧 그것이다. 어떤 세 가지인가. 이른바 욕심 세계의 생존, 형상 세계의 생존, 무형 세계의 생존이다. 이것을 생존의 흐름이라 한다.

어떤 것을 소견의 흐름이라 하는가. 이른바 소견의 흐름이란, ‘세상은 항상 되다. 항상 되지 않다. 세상은 가이있다 가이없다. 몸은 곧 목숨이다. 목숨이 아니다. 여래는 죽음이 있다. 죽음이 없다. 여래는 죽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여래는 죽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고. 이것을 소견의 흐름이라 한다.

어떤 것을 무명의 흐름이라 하는가. 이른바 무명이란 앎이 없고 믿음이 없고 소견이 없어서, 마음에 항상 탐욕이 있고 바램이 있으며, 또 탐욕 덮개, 성냄 덮개, 잠 덮개, 들뜸 덮개, 의심 덮개의 다섯 가지 덮개가 있다. 그리고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며 그 사라짐을 알지 못하고 그 사라지는 길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무명의 흐름이라 한다.

천자여, 알라. 여래께서는 이 네 가지 흐름을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기에 빠져 있으면 도를 얻을 수 없느니라.

그 때에 그 천자는 이 말을 듣고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것 같은 동안에 三十三천에서 사라져 내게로 왔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내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내게 말하였다.

‘장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런 말씀을 잘 하셨나이다. 여래께서는 네 가지 흐름을 말씀하셨나이다. 만일 범부로서 이 네 가지 흐름을 듣지 않으면 그는 네 가지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 네 가지란 이른바 고요히 쉬는 즐거움, 바르게 깨닫는 즐거움, 사문의 즐거움, 열반의 즐거움이옵니다. 만일 범부로서 이 네 가지 흐름을 알지 못하면 그는 이 네 가지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렇게 말할 때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그렇다, 천자여. 네 말과 같다. 만일 이 네 가지 흐름을 깨닫지 못하면 이 네 가지 즐거움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곧 그를 위해 차례로 설명하였었다. 이른바 논이란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나는 데 대한 논이었고, 탐욕과 번뇌는 더럽고 큰 근심이므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천자는 기뻐하였다.

나는 다시 네 가지 흐름 법과 네 가지 즐거움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 천자는 알뜰한 마음으로 이 법을 생각하고는 온갖 번뇌가 없어져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었다. 나도 그 때에 이 네 가지 법과 네 가지 즐거움을 설명하고 곧 네 가지 진리의 법을 얻었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덧없다는 생각을 닦고 덧없다는 생각을 널리 펴라. 덧없다는 생각을 닦고 덧없는 생각을 널리 펴면 욕심 세계의 욕망을 끊고 형상 세계와 무형 세계의 욕망을 끊을 것이요. 무명과 교만을 모두 끊게 될 것이다. 마치 불을 놓아 태우면 초목이 모두 없어지는 것처럼, 만일 덧없다는 생각을 닦으면 일체 번뇌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하리라.

먼 옛날에 어떤 천자는 五백 미녀를 데리고 앞뒤로 둘러싸이어 난단반나 동산의 유희장에 나가 놀다가, 다시 가니나무 밑으로 가서 다섯 가지 향락으로 스스로 즐기었었다. 때에 그 천자는 나무에 올라가 놀았다. 거기서 마음이 어수선해져 다시 꽃을 꺾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이내 죽어 이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큰 장자 집에 태어났다.

그 때에 五백 미녀들은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면서 어쩔 줄을 몰랐었다. 나는 그 때에 하늘 눈으로 천자가 목숨을 마치고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큰 장자 집에 태어난 것을 보았었다. 八, 九월이 지나 그들은 사내를 낳았다. 단정하기 짝이 없고 도화 빛처럼 아름다웠다.

그 아들은 점점 자랐다. 부모는 그 아내를 구해 장가 들였다. 장자든지 오래지 않아 그는 이내 죽어 큰 바다의 용으로 태어났다. 이 장자는 문에 서서 아들을 생각하고 울부짖으면서 마음을 아파하였다.

그 용은 다시 금시조에게 잡아 먹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졌다. 그 때에 그 용녀의 생각하는 정의 간절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 때에 그 천자 꽃을 꺾을 때

마음이 어지러워 편하지 못해

큰물이 마을을 띄워 보내어

모두 빠져 구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때에 아름다운 그 여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통곡할 때에

그 얼굴은 그처럼 단정했건만

그는 꽃을 사랑하며 목숨 마쳤네.

 

그 부모 또한 통곡하였네

내 속에서 난 아들 잃어 버렸다

그들도 이내 목숨을 마치었나

그것은 다 덧없음이 부순 것이다.

 

용녀가 용의 뒤를 따를 그때에

모든 용들 모두 다 모여들었다

일곱 개 머리로 용맹했지만

이내 금시조한테 먹혀 죽었네.

 

모든 하늘도 근심하고 걱정하고

세상 사람도 또한 그러하였고

용녀도 근심하고 걱정하였네

그러나 지옥에서 고통받았네.

 

네 가지 진리의 묘한 그 법문

그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면

남(生)도 있고 또한 죽음도 있어

긴 흐름의 바다를 못 벗어나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생각을 내어

청정한 모든 법을 닦아 행하면

반드시 괴로움과 번민을 떠나

후생 몸의 근심을 받지 않으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항상 덧없다는 생각을 닦아 행하고 덧없다는 생각을 널리 펴면, 곧 욕심 세계의 욕망을 끊고 형상 세계와 무형 세계의 욕망을 끊고 또 교만과 무명을 아주 끊어 남음이 없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 때에 제자 모옥갈라아나와 제자 아아난다는 서로 내기하였다.

“우리 둘이 소리를 내어 경을 외워 보자, 누가 이기는가.”

때에 다른 비구들은 이 둘이 서로 내기하는 말을 듣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지금 저 두 사람은 내기하였나이다, ‘우리 둘이 소리를 내어 경을 외워 보자, 누가 잘하는가’고”

세존께서는 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그 두 비구를 불러오너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비구는 부처님 분부를 받고 곧 그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당신들을 부르십니다.”

그 두 사람은 비구의 말을 듣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 미련한 사람들아, 참으로 그런 말을 하였는가. ‘우리 소리를 내어 경을 외워 보자, 누가 잘하는가’고”

두 사람은 사뢰었다.

“그러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너희들은 혹 내가 서로 다투는 일을 설법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는가, 그런 법이라면 범지들과 무엇이 다른가.”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나는 처음부터 비구들을 위해 그런 법을 말한 일이 없다. 그런데 서로 승부를 다투어 되겠는가. 내가 지금 설법하는 것은 항복시키고 교화시키려는 것이다. 만일 어떤 비구로서 내 법을 들을 때에는 명심하여 네 가지 인연을 생각하라. 즉 ‘이 법은 경과 아비다르마와 계율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고. 그래서 만일 맞거든 받들어 행해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많이 외운다고 이익 될 것 없나니

그것은 훌륭하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머리를 셈과 같나니

사문으로서의 중요한 일 아니다.

 

적거나 많거나 외우고 익혀

그 법을 법대로 따라 행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하나니

사문의 법이라 할 만하니라.

 

아무리 一천 문장을 외운다 해도

이치 아니면 무슨 이익 있으리

그보다 차라리 한 글귀나마

들어서 도 얻음만 같지 못하다.

 

비록 천마디 말 외운다 해도

이치 아니면 무슨 이익 있으리

그보다 차라리 한 이치나마

들어서 도 얻음만 같지 못하네.

 

천을 천 곱한 적이 있을 때

나 혼자 그것을 이긴다 해도

자기를 이기는 것만 같지 못하네

스스로 참는 것이 제일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지금부터는 다투는 마음으로 승부를 겨루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일체 사람들을 항복시키려 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비구로서 승부를 겨루려는 마음으로 서로 다투면 곧 법률로써 그를 다스릴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스스로 수행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그 두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 발에 예배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지금부터는 다시 하지 않겠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이 참회를 받아 들여 주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큰 법안에서 잘 허물을 고쳤다. 겨루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알았구나. 너희들의 참회를 용서한다. 비구들이여, 다시는 그런 짓을 말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증상과 앉기와 행적과

덧없음과 동산 못과

번뇌 없음과 쉼 없음과 선정과

네 가지 즐거움과 다툼 없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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