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일아함경 제 二十二권
제 三十 수타품(須陀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의 파사 산에서 二백 五十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고요한 방에서 나와 밖으로 거닐고 계셨다. 수타 사미는 세존 뒤에서 거닐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사미를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너에게 어떤 이치를 물으리니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라.”
“그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항상된 형상과 항상 되지 않은 형상은 그 이치가 하나인가, 혹은 여럿인가.”
수타는 사뢰었다.
“항상된 형상과 항상 되지 않은 형상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항상된 형상은 안이요, 항상 되지 않은 형상은 바깥이옵니다. 그러므로 그 이치는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착하고 착하다. 수타야, 네 말과 같다. 너는 그 뜻을 잘 설명하였다. 항상된 형상과 항상 되지 않은 형상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다. 다시 어떠냐, 수타야. 번뇌가 있다는 것과 번뇌가 없다는 것은 그 이치가 하나인가, 혹은 여럿인가.”
“번뇌가 있다는 것과 번뇌가 없다는 것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번뇌가 있다는 것은 나고 죽음의 결박이요, 번뇌가 없다는 것은 열반의 법이옵니다. 그러므로 그 이치는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착하고 착하다, 수타야. 네 말과 같다. 번뇌는 곧 나고 죽음이요, 번뇌가 없는 것은 곧 열반이니라.”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모이는 법과 흩어지는 법은 그 이치가 하나인가, 혹은 여럿인가.”
수타는 사뢰었다.
“모이는 법의 형상과 흩어지는 법의 형상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모이는 법의 형상은 네 가지 요소의 형상이요, 흩어지는 법의 형상은 괴로움이 다한 진리이옵니다. 이런 뜻에서 그 이치는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착하고 착하다, 수타야. 네 말과 같다. 모이는 법의 형상과 흩어지는 법의 형상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니라. 어떠냐 수타야, 느낌과 쌓임은 그 이치가 하나인가, 혹은 여럿인가.”
수타는 사뢰었다.
“느낌과 쌓임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느낌이란 형상이 없어 볼 수 없는 것이요, 쌓임이란 빛깔이 있어 볼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그 이치는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수타야. 네 말과 같다. 느낌과 쌓임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니라.”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그 이치가 여럿인가, 혹은 하나인가.”
수타는 사뢰었다.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그 이치가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있다는 것은 곧 나고 죽음의 결박이요, 없다는 것은 열반이옵니다. 이런 뜻에서 그 이치는 여럿이요, 하나가 아니라고 말하나이다.”
“착하고 착하다, 수타야. 네 말과 같다. 있다는 것은 곧 나고 죽음이요, 없다는 것은 곧 열반이니라.”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어떠냐, 수타야. 무슨 이유로 있다는 것은 곧 나고 죽음이요, 없다는 것은 곧 열반이라 하는가.”
수타는 사뢰었다.
“있다는 것은 남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마지막이 있고 처음이 있고, 없다는 것은 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마지막도 없고 처음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착하고 착하다, 수타야. 네 말과 같다. 있다는 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요, 없다는 것은 곧 열반의 법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사미에게 말씀하셨다.
“좋다, 네 말이 옳다. 나는 이제 네가 큰 비구임을 허락하노라.”
세존께서는 보집강당으로 돌아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마가다 나라는 좋은 이익을 얻었다. 수타 사미를 여기서 놀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의복, 음식, 침구, 의약을 공양하는 이도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요, 그를 낳은 부모도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니 이 수타 비구를 낳았기 때문이다. 또 수타 비구가 난 집도 곧 큰 이익을 거둘 것이다.
나는 지금 너희 비구들에게 말하노라. 너희들은 수타 비구를 배워야 한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수타 비구는 매우 총명하여 설법하기에 걸림이 없고 또 겁내거나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수타 비구를 배우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의 카란다 대나무 동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는데 어떤 장로 비구는 대중 가운데서 세존을 향해 발을 뻗고 졸고 있었다. 때에 수마나 사미는 나이 겨우 여덟인데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데서 가부하고 앉아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발을 뻗고 앉아 조는 장로 비구와 단정히 생각하고 앉아 있는 사미를 보시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반드시 그가 장로 아니다
그는 아무리 나이 많아도
어리석은 그 행을 면치 못한다.
만일 네 가지 진리를 보고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고
더럽고 나쁜 온갖 행 버리면
그야말로 장로라 부르느니라.
내가 말하는 이른바 장로란
반드시 남 먼저 집 떠난 이 아니다
그 착한 업의 근본을 닦고
바른 행을 분별하는 그를 말한다.
아무리 나이 어리더라도
모든 감관의 실수 없으면
그이야말로 장로라 이름하리
그는 바른 법행을 분별하거니.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혹 이 장로가 발을 뻗고 조는 것을 보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다 보나이다.”
“이 장로 비구는 五백 생 동안 죽 용으로 살았다. 만일 지금도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용으로 태어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는 부처와 법과 중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으로서 부처와 법과 중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용으로 태어나느니라.
너희들은 혹 저 수마나 사미가 나이 겨우 여덟인데도 멀지 않은 곳에서 단정히 앉아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사미는 앞으로 이레 뒤에는 네 가지 신통과 네 가지 진리를 얻고, 네 가지 선정에서 자재를 얻고, 네 가지 끊기를 잘 닦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수마나 사미는 부처와 법과 중을 향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언제나 힘써 부처와 법과 중을 공경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서 천 二백 五十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아나아타핀디카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재물과 보배가 많아 금, 은의 보배와 자거, 마노, 진주, 호박, 수정, 유리, 코끼리, 말, 소, 염소, 노비, 하인들이 이루 헬 수 없었다.
또 그때에 만부성(滿富城) 안에는 만재(滿財)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도 재물과 보배가 많아 자거, 마노, 진주, 호박, 수정, 유리, 코끼리, 말, 소, 염소, 노비, 하인들이 이루 헬 수 없었다. 그는 아나아타핀디카 장자와 어려서부터 서로 친해 사랑하고 공경하여 잊어버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늘 수천만의 보배와 재물을 만부성 안에 두고 장사하면서 만재 장자로 하여금 경리하고 돌보게 하였다. 또 만재 장자도 수천만의 보배와 재물을 슈라아바스티이 안에 두고 장사하면서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로 하여금 경리하고 돌보게 하였다.
때에 아나아타핀디카 장자에게는 수마제라는 딸이 있었다. 그는 얼굴이 단정하고 도화 빛처럼 고와 세상에서 보기 드물었다. 때에 만재 장자는 조그마한 볼일이 있어 슈라아바스티이의 아나아타핀디카 장자 집에 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때에 수마제는 고요한 방에서 먼저 그 부모에게 절하고 다음에는 만재 장자에게 절하고는 고요한 방으로 도로 들어갔다.
만재 장자는 수마제의 얼굴이 단정하고 도화 빛처럼 고와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을 보고 아나아타핀디카 장자에게 물었다.
“이제 그는 누구 집 딸입니까.”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대답하였다.
“이제 그 애는 내 딸입니다.”
“내게 아들이 있어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우리 집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일이 마땅치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마땅치 않습니까. 문벌입니까. 재물입니까.”
“문벌이나 재물은 서로 걸맞습니다. 다만 섬기는 신(神)이 우리와 다릅니다. 그 애는 부처를 섬기는 석가의 제자요, 당신들은 외도를 섬깁니다. 그 때문에 그 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때에 만재 장자는 말하였다.
“우리가 섬기는 것은 따로 제사하고 그 처녀가 섬기는 것을 따로 공양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말하였다.
“만일 내 딸이 당신 집에 가면 헤아릴 수 없는 재보를 내어야 할 것인데 당신은 헤아릴 수 없는 재보를 내겠습니까.”
“당신은 얼마만큼 재보를 요구합니까.”
“나는 六만냥 금을 요구합니다.”
그 때에 만재 장자는 곧 六만냥 금을 주었다.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방편으로 미리 거절했는데 그래도 물리치지 못했다’고.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딸을 보내려면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무슨 분부가 계시면 나는 그대로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거짓으로 일을 만들어 일이 있는 체 성을 나가 세존께 나아갔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세존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사뢰었다.
“내 딸 수마제를 만부성 안의 만재 장자가 며느리로 요구하나이다. 주어야 하겠나이까. 주지 않아야 하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그 딸 수마제가 저 나라에 가면 이익을 많이 주고 한량없이 사람들을 제도할 것이다.”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방편의 지혜로써 저 나라로 가실 수 있을 것이다’고. 그는 머리를 조아려 세존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떠나왔다.
그는 집에 돌아와 갖가지 맛난 음식을 만들어 만재 장자에게 주었다. 만재 장자는 말하였다.
“나는 이것을 먹지마는 딸 시집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생각이 꼭 그렇다면 따르지요. 지금부터 보름 뒤에 아들을 집으로 오도록 하십시오.”
그 때에 만재 장자는 모든 것을 준비해 가지고 보배깃 수레를 타고 八十 요오자나까지 나갔다.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도 그 딸을 목욕시키고 향을 피우고 장식한 뒤에 보배깃 수레를 타고 만재 장자의 아들을 맞이해 중도에서 만났다. 만재 장자는 그 처녀는 데리고 만부성으로 돌아갔다.
그 때에 만부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규칙을 만들었다. 즉 ‘만일 이 성안에 살던 처녀가 다른 나라로 나가면 중한 벌을 받는다. 또 다른 나라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사람도 중한 벌을 받는다’고. 그 때에 그 나라에는 六천명 범지가 있었다. 그들은 이 나라 사람들이 반드는 규칙을 만들어 ‘만일 이 규칙을 범하면 그는 六천 명 범지들을 먹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때에 만재 장자는 그 규칙을 범한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에 곧 六천 범지들을 먹이기로 하였다. 범지들의 먹을 것은 꼭 같이 돼지고기와 돼지고기 국과 맑은 술이었다. 또 범지들의 입을 옷은 흰 천이나 혹은 솜털이었다. 그런데 그 범지들의 법은 나라에 들어올 때에는 옷으로 오른 어깨만 덮고 몸의 반은 드러내게 되어 있었다.
그 때에 장자는 그들에게 알렸다.
“때가 되어 음식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 六천 범지들은 모두 한쪽만 옷으로 덮고 몸의 반은 드러내고 장자 집에 들어왔다. 장자는 범지들이 오는 것을 보고 무릎으로 걸어 나아가 맞아 공경하게 예배하였다. 그 중에서 우두머리 범지는 손을 들어 장하다고 칭찬하고는 장자의 목을 안고 자리로 가서 앉았다. 다른 범지들도 제각기 차례대로 앉았다.
六천 범지들이 자리에 앉자 장자는 며느리 수마제에게 말하였다.
“너는 화장하고 나와 우리 스승들에게 인사 드려라.”
수마제는 대답하였다.
“그만 두십시오, 시아버님. 나는 그 옷 벗은 사람들에게는 인사할 수 없습니다.”
장자는 말하였다.
“저들은 옷을 벗은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입은 옷은 법 옷일 뿐이다.”
“저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모두 몸을 밖으로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무슨 법옷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장자님은 들으소서. 세존께서도 세상 사람이 귀히 여겨야 할 두 가지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른바 제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입니다.
만일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부모, 형제, 친족과 다섯 친척의 높고 낮음을 분별할 수 없게 되어 지금쯤은 닭, 개, 돼지, 염소, 나귀, 노새의 무리들과 같아서 높고 낮음이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법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곧 높고 낮음의 분별이 있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닭, 개, 돼지, 염소, 나귀, 노새의 무리들과 같습니다. 나는 정말 저들을 향해 예배할 수 없습니다.”
수마제 남편은 아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우리 스승님들에게 인사드리오. 이 분들은 다 내가 하늘처럼 섬기는 분들이시오.”
수마제는 대답하였다.
“그만두십시오, 선남자님. 나는 부끄러움도 없는 벗은 사람들에게 예배할 수 없습니다. 나는 사람인데 짐승에게 절하겠습니까.”
“여보, 그만 그치오. 그런 말 마오. 입을 삼가 죄를 짓지 마오. 저 분들은 짐승이 아니오. 또 미치지도 않았소. 그 입은 옷은 바로 법 옷일 뿐이오.”
그 때에 수마제는 얼굴빛이 변하고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 보모와 다섯 친척들에게 몸이 다섯 조각이 나 목숨을 끊길지언정 마침내 이 삿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六천 범지들은 고함을 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만두오, 장자여. 왜 그 여자로 하여금 그처럼 욕하게 하는가.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음식을 돌리오.”
때에 장자와 수마제 남편은 곧 돼지고기와 돼지고기 국과 맑은 술을 내어 六천 범지들을 배불리 먹였다. 범지들은 그것을 먹고 조금 이야기하다가 곧 일어나 떠났다.
만재 장자는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앉아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생각하였다. ‘나는 그 여자를 데리고 와서 우리 집을 망쳤구나. 내가 우리 문중을 욕한 거나 다름이 없구나’고.
그 때에 수발이라는 범지가 있었다. 그는 다섯 가지 신통과 모든 선정을 얻었었다. 그리고 만재 장자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때에 수발 범지는 생각하였다. ‘나는 장자와 헤어진 지 오래다. 지금 가서 만나 보리라’고. 그는 만부성에 들어가 장자 집에 이르러 그 문지기에게 물었다.
“장자는 지금 계신가.”
문지기는 대답하였다.
“장자는 지금 높은 누각 위에서 말할 수 없이 근심하고 계십니다.”
범지는 누각 위로 빨리 올라가 장자를 보고 물었다.
“왜 이처럼 근심하고 있는가. 관청이나 도둑이나 수재나 혹은 화재의 변을 만났는가. 또는 집안에 무슨 불화라도 있지 않는가.”
장자는 대답하였다.
“관청이나 도둑의 변은 없습니다. 다만 집안 일이 조금 뜻대로 안 됩니다.”
“그 사정을 듣고 싶소. 무슨 일이오.”
“어제 며느리를 봄으로써 나라 법을 범하고 또 다섯 친척들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즉 여러 스승님을 집에 청하고 며느리를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키려 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 집은 어느 나라에 있는가. 먼데서 데려 왔는가.”
“이 여자는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에 사는 아나아타핀디카의 딸입니다.”
범지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면서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말하였다.
“아아 장자여, 그 여자가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한 일이오. 자살하지 않고 다락에서 몸을 던지지 않았다는 것은 큰 다행이오. 왜 그러냐 하면 그 여자가 섬기는 스승은 다 범행을 닦는 사람이오. 그런데 아직도 그 여자가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한 일이오.”
“나는 당신 말을 들으니 도리어 조소하고 싶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당신은 외도인데 왜 바라문 석씨의 아들의 행을 찬탄합니까. 그 여자가 섬기는 스승은 무슨 위덕이나 무슨 신변(神變)이 있습니까.”
범지는 대답하였다.
“장자여, 그대는 그 여자 스승의 신령스런 덕을 듣고 싶은가. 나는 이제 그 내력을 대강 말하겠소.”
“그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범지는 말하였다.
“나는 옛날 설산 북쪽에 가서 마을에서 걸식하였소. 나는 밥을 얻어 가지고 아나바탑타 못으로 날아 왔소. 그 때에 저 하늘, 용, 귀신들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모두 칼을 들고 내게 와서 말하였소. ‘수발 선인이여, 이 못가에 오지 말라. 이 못을 더럽히지 말라. 만일 우리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이 끊어지리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곧 그 못을 떠나 멀지 않은 데서 밥을 먹었소.
장자여, 알아야 하오. 그 여자가 섬기는 스승의 가장 어린 제자로서 균두(均頭)라는 사미가 있었소. 그도 설산 북쪽에 가서 걸식하다가 아나바탑타 못으로 날아와서 두 손으로 무덤 사이에 있는 죽은 사람의 옷을 집었소. 그것은 피에 물들어 매우 더러웠소. 그 때에 아나바탑타 못에 사는 큰 신과 하늘과 용과 귀신들은 모두 일어나 나아가 맞이하여 공경하고 문안하였소. ‘잘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스승님. 여기 앉으십시오’하고. 때에 균두 사미는 그 못으로 갔소.
장자여, 그 못 물 속에는 순금으로 된 책상이 있었소. 그 사미는 그 죽은 사람의 옷을 물에 담가 두고 물러나 앉아 밥을 먹었소. 밥을 먹고는 바루를 씻고 순금 책상 위에서 가부하고 앉아 몸과 마음을 바루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첫째 선정에 들었소.
그는 다시 첫째 선정에서 일어나 둘째 선정에 들고, 둘째 선정에서 일어나 셋째 선정에 들고, 셋째 선정에서 일어나 넷째 선정에 들고, 넷째 선정에서 일어나 허공 경계에 들고, 허공 경계에서 일어나 의식 경계에 들고, 의식 경계에서 일어나 아무 것도 없는 경계에 들고, 아무 것도 없는 경계에서 일어나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 들고,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에서 일어나 아주 사라진 삼매에 들고, 아주 사라진 삼매에서 일어나 불꽃빛 삼매에 들고, 불꽃빛 삼매에서 일어나 물기운 삼매에 들었소. 다시 물기운 삼매에서 일어나 불꽃빛 삼매에 들고, 다시 아주 사라진 삼매에 들고, 다시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삼매에 들고, 다시 아무 것도 없는 삼매에 들고, 다시 의식 삼매에 들고, 다시 허공 삼매에 들고, 다시 넷째 선정에 들고 다시 둘째 선정에 들고, 다시 첫째 선정에 들고, 첫째 선정에서 일어나서는 그 죽은 사람의 옷을 빨았소.
그 때에 하늘, 용, 귀신으로서 그 옷을 밟는 이도 있고 씻는 이도 있으며 혹은 물을 길어 마시는 이도 있었소. 그는 옷을 다 빨고는 공중에 널어 말리었소. 그는 옷을 거두어 가지고 허공을 날아 돌아왔었소.
장자여, 알아야 하오. 나는 그 때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가까이 가지는 못하였소. 그 여자가 섬기는 스승의 제일 어린 제자에게도 그런 신력이 있는데 하물며 가장 큰 제자에게야 어떻게 미쳐 가겠소. 더구나 그들의 스승인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야 어떻겠소. 나는 이런 사실을 보았기 때문에 ‘참으로 놀랍고 이상하다. 그 여자가 어떻게 자살로서 그 목숨을 끊지 않았는가.’고 말한 것이오.”
때에 장자는 말하였다.
“나도 그 여자가 섬기는 그 스승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범지는 답하였다.
“그 여자에게 물어 보오.”
때에 장자는 수마제에게 물었다.
“나는 네가 섬기는 그 스승을 뵈옵고 싶다. 그 분을 오시게 할 수 있겠는가.”
여자는 이 말을 듣고 못내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말하였다.
“원컨대 곧 음식을 준비하십시오. 내일 여래와 그 비구 중들이 이리로 오실 것입니다.”
“네가 청하여라.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 여자는 곧 목욕을 하고 향로를 들고 누각 위에 올라가 여래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사뢰었다.
“원컨대 여래께서는 잘 관찰하소서. 당신의 정수리를 보는 자는 없나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일이 없고 살피지 못하시는 일이 없나이다. 저는 지금 여기서 곤욕을 당하고 있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잘 관찰하소서.”
그는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시지 못하는 세계가 없는
부처님 눈의 살피는 힘이시네
온갖 귀신과 신(神)의 왕들과
귀신들의 자식과 어미를 항복 받네.
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
사람 손가락 잘라 꽃꾸러미를 만들고
마지막엔 그 어미 해치려 하였지만
부처님은 그것을 잡아 항복 받았네.
또 라아자그리하에서
사나운 코끼리가 해치려 하다가
스스로 돌아와 의지했을 때
하늘들은 모두 장하다 찬탄했네.
그리고 저 마제국(馬提國)에서
악한 용왕을 만났을 때에
용은 그 따른 밀적(密跡) 역사를 보고
스스로 돌아와 의지하였네.
헤아릴 수 없는 그 신통력
모든 것을 바른 길에 세워 주시네
나는 지금 이 곤욕 당해 있나니
원컨대 세존님은 굽어살피소서.
그 때에 그 향기 구름과 같이
멀리 허공에 달려 있다가
제타숲 절을 두루 채우고
여래 앞에 와 머물러 있었다.
제석천들은 저 허공에서
못내 기뻐해 예배 드리고
또 그 앞에 있는 향을 보았네
그것은 수마제의 청하는 것이다.
갖가지 꽃들을 비처럼 내려
그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저 제타 동산에 가득히 찼고
여래는 웃으시며 광명 놓으시다.
그 때에 아아난다는 제타 동산에 있는 그 향을 보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떤 향기이기에 제타숲 절에 두루 찼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향기는 부처에게 오는 사자(使者)다. 만부성 안에 사는 수마제 여자의 청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모든 비구들을 불러 한 곳에 모으고 줏대[籌作]을 돌려 이렇게 명령하라. ‘비구들이여, 번뇌가 없어진 아라한으로서 신통을 얻은 이는 이 살라아카[舍羅]를 집어라. 내일은 만부성으로 가서 수마제의 청을 받으리라’고.
“그리하겠나이다.”
아아난다는 분부를 받고 곧 비구들을 보집강당에 모으고 말하였다. “도를 얻은 아라한은 이 살라아카를 집어라.”
그 때에 여러 중의 상좌 쿤다아나는 수다원이 되었으나 아직 번뇌가 다하지 못해 신통을 얻지 못했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대중 가운데서 제일 나이가 많지마는 아직 번뇌가 다하지 못해 신통을 얻지 못했다. 나는 내일 만부성으로 가서 공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제자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균두 사미는 신통과 위력이 있어 저기 가서 청을 받는다. 나도 저기 가서 청을 받으리라’고.
그래서 그는 마음이 깨끗함으로써 아직 배움 자리에 있으면서 살라아카를 받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깨끗한 하늘 눈으로 쿤다아나가 배움 자리에 있으면서 살라아카를 받고 곧 아라한이 된 것을 보셨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제자 중에서 살라아카 받기로 으뜸가는 이는 바로 쿤다아나 비구이니라.”
세존께서는 이어 신통을 얻은 비구 마하아 모옥갈라아나, 마하아 카아샤파, 아니룻다, 이월, 수부우티, 우비카아샤파, 마하아 카필나, 존자 라아훌라, 추우다판타카, 균두 사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신통으로 먼저 저 성안으로 가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그 때에 중들의 사환으로서 건다(乾茶)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이튿날 아침에 큰 가마를 지고 공중으로 날아 그 성으로 갔다. 장자와 여러 사람들은 높은 다락에 올라 세존을 뵈오려 하다가 그 사환이 가마를 지고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장자는 그 며느리에게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흰옷을 입고 머리 기르고
드러낸 몸은 빠른 바람 같구나
거기에 또 큰 가마졌으니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저이는 스승님 제자 아니다
저이는 여래의 심부름꾼이다.
그는 세 길에서 다섯 신통 갖췄나니
그의 이름은 건다이니라.
그 때에 하인 건다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이 때에 균두 사미는 신통으로 五백 개 꽃나무를 만들었다. 여러 가지 빛깔로 모두 무성하였고 그 모양은 매우 고운 웃팔라 꽃으로서 이루 헬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그 성으로 갔다. 장자는 멀리서 사미가 오는 것을 보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물었다.
저런 아름다운 여러 꽃들이
모두 다 허공에 널려져 있고
거기 또 신통을 부리는 사람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수발님 앞에서 내가 말한 바
저이는 그 못 가의 사미 중이다.
그 스승 이름은 샤아리푸트라
저이는 그 분의 제자이니라.
이 때에 균두 사미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이 때에 존자 판타카는 신통으로 五백 마리 소를 만들었다. 그 털은 모두 푸르렀다. 그는 소위에 가부하고 앉아 성으로 갔다. 장자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저 많은 五백 마리 소 떼들
그 털은 모두 푸르구나
그 위에 혼자 앉아 있는 이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도 다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一천 비구를 잘 교화하고
라아자그리하의 동산에 살며
마음과 정신이 매우 총명하나니
저이의 이름은 판타카니라.
추우다판타카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또 라아훌라는 신통으로 五백 마리 공작을 만들었다. 그 빛깔은 여러 가지였다. 그는 공작 위에 가부하고 앉아 성으로 갔다. 장자는 또 그것을 보고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저 五백 마리 공작 떼들은
그 빛깔이 매우 아름답구나
저 군사들의 대장과 같은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도 다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계율을 말씀하시매
그 일체를 범하는 일이 없어
계율을 능히 잘 지키는
저이는 부처 아들 라아훌라다.
라아훌라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존자 카필나는 신통으로 五백 마리 금시조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매우 용맹스러웠다. 그는 그 위에서 가부하고 앉아 성으로 갔다. 장자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저 五백 마리 금시조 떼들
저들은 매우 용맹스럽다
그 위에 앉아 두려움 없는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드나드는 숨길을 잘 셀 줄 알아
그것을 돌려 마음이 착해지고
지혜의 힘이 매우 용맹스러운
저이의 이름은 카필나니라.
존자 카필나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우비 카아샤파는 신통으로 五백 마리 용을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일곱 개씩 머리를 가졌다. 그는 그 위에서 가부하고 앉아 성으로 갔다. 장자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지금 저 용들은 일곱 개 머리
위엄스런 그 모양 매우 두려워라
저들의 오는 일 헬 수 없나니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는 대답하였다.
언제나 一천 명 제자를 두고
신통으로써 빔비사알라 교화하는 이
그 우비 카아샤파란
그이가 바로 곧 저이이니라.
우비 카아샤파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존자 수부우티는 신통으로 유리 산을 만들어, 거기 들어가 가부하고 앉아 성으로 갔다. 장자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저 산은 진실로 아름다워라
모두 다 유리로 만들어져 있네
지금 저 굴속에 앉아 있는 이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는 대답하였다.
과거의 보시의 갚음으로써
지금에 저러한 공덕 거두고
이미 훌륭한 복밭을 이룬
공(空)을 잘 아는 수부우티니라.
수부우티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존자 마하아 카아탸아야나는 신통으로 五백 마리 따오기를 만들었다. 새하얀 빛깔이었다. 그는 그것을 데리고 성으로 갔다. 장자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지금 저 五백 마리 따오기
그 빛깔 모두 새하얗구나
저 허공에 가득 차 있나니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는 대답하였다.
부처님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
그 깊은 뜻을 잘 분별하고
또 번뇌 무더기 연설하나니
그 이름 카아탸아야나이니라.
존자 마하아 카아탸아야나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때에 이월(離越)은 五백 마리 호랑이를 신통으로 만들고 그 위에 앉아 그 성으로 갔다. 장자는 그것을 보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지금 저 五백 마리 호랑이 떼
그 털은 매우 윤기 있구나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이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는 대답하였다.
옛날에 저 제타숲 절에 있어
六년을 움직이지 않았었나니
좌선으로 가장 으뜸 되는 이
저이의 이름은 이월이니라.
존자 이월은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존자 아니룻다는 五백 마리 사자를 신통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매우 용맹스러웠다. 그는 그 위에 앉아 그 성으로 갔다. 장자는 그것을 보고 다시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저 五백 마리 사자 떼들은
용맹스러워 참으로 무서워라.
그들의 위에 앉아 있는 이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그이 날 때에 천지는 진동하고
온갖 보배는 땅에서 솟았나니
깨끗한 눈에 때가 없는 이
부처님 제자 아니룻다이니라.
아니룻다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존자 마하아 카아샤파는 五백 마리 말을 신통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다 꼬리가 붉고 금, 은으로 얽어 장식하였다. 그는 그 위에 앉아 하늘 꽃을 뿌리면서 그 성으로 갔다. 장자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저 말은 금빛에 꼬리는 붉고
그 마리 수는 五백이어라
저이는 아마 전륜왕이리
저이가 바로 너의 스승이신가.
여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두타 행으로 으뜸이 되고
빈궁한 이 언제나 가엾이 여겨
여래께서 그 반 자리 물리어 주신
가장 큰 카아샤파 그분이니라.
마하아 카아샤파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五백 마리 흰 코끼리를 신통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여섯 개 어금니를 가졌고 일곱 곳이 평평하며 금, 은으로 얽어 장식하였다. 그는 그 위에 앉아 오면서 큰 광명을 놓아 온 세계가 가득 찼다. 성으로 갈 때에는 허공에서 풍류를 잡히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갖가지 꽃을 뿌렸다. 또 허공에 비단과 번기와 일산을 달아 그것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장자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다음 게송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여섯 개 어금니 가진 흰 코끼리
그 위에 앉은 이 천왕 같아라
이제 또 거기서 풍류 듣나니
저이가 바로 그 석가모니인가.
여자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그는 저 큰 산 위에 있으면서
난다의 그 용을 항복시키고
신통으로 가장 으뜸 가는 이
그 이름은 모옥갈라아나.
우리 스승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그 제자들이다
거룩한 스승님 이제 오시리
그 광명 비치지 않을 데 없다.
존자 모옥갈라아나는 성을 세 번 돌고 장자의 집으로 갔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때가 된 줄을 알으시고 상가아티이를 입고 땅에서 일곱 길쯤 떨어진 허공에 계셨다. 존자 아즈냐아타 카운디냐는 여래 오른쪽에 있고 샤아리푸트라는 여래 왼쪽에 있었다. 아아난다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여래 뒤에서 총채를 잡고 있었고 천 二백 제자들은 앞, 뒤로 둘러 샀으며 여래와 신통을 얻은 제자들은 제일 한 복판에 있었다.
아즈냐아타 카운디냐는 신통으로 달천자가 되고 샤아리푸트라는 신통으로 해천자가 되었다. 다른 여러 신통 비구들은 신통으로 제석천왕이 되기도 하고 범천왕이 되기도 하며 드리타라아 슈트라, 비루우다카, 비루우파악샤, 바이슈라마나의 형상이 되어 여러 귀신들을 거느렸다. 혹 전륜성왕의 모양이 되기도 하고 혹은 불빛 삼매, 물빛 삼매에 드는 이도 있으며 혹은 광명이나 연기를 놓는 이도 있어 갖가지 신통을 나타내었다.
그 때에 범천왕은 여래 오른쪽에 있었고 제석천왕은 여래 왼쪽에서 총채를 잡고 있었으며 밀적 금강력사(密跡金剛力士)는 여래 뒤에서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있고 바이슈라마나 천왕은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일산을 들고 여래 위의 허공에 있으면서 여래 몸에 티끌이 앉을까 조심하였다. 반차순은 유리 거문고를 들고 여래 공덕을 찬탄하고 모든 하늘 신들은 허공에서 수천만 가지의 풍류를 아뢰었으며 하늘에서는 온갖 꽃을 여래 위에 내렸다.
그 때에 프라세나짓 왕과 아나아타핀디카 장자와 슈라아바스티이 성안의 사람들은 여래께서 땅에서 일곱 길쯤 떨어진 허공에 계시는 것을 보고 모두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때에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께선 참으로 신묘하여라
백성을 아들처럼 사랑하나니
행복하구나 저 수마제여
반드시 여래의 법 받으리로다.
프라세나짓 왕과 아나아타핀디카 장자는 갖가지 훌륭한 향과 꽃을 뿌렸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앞, 뒤로 둘러싸이었고 여러 귀신과 하늘들은 이루 다 헬 수 없었다. 마치 허공에 있는 봉황새처럼 여래는 그 성으로 나아가셨다. 때에 반차순은 다음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모든 생존의 결박 아주 없애고
마음은 고요해 어지럽지 않으며
아무런 번뇌의 장애도 없이
지금 그 옛 나라로 들어오시라.
마음과 성품 지극히 깨끗하여
악마의 삿된 생각 끊어 버리고
그 공덕 저 큰 바다 같거니
지금 그 옛 나라로 들어오시라.
그 얼굴 모습 뛰어나 특별하고
모든 번뇌 영원히 일으키지 않나니
그러나 스스로 난 체 안하고
지금 그 옛 나라로 들어오시라.
네 가지 흐름을 건넘으로써
나고 늙고 죽는 것 이미 벗어나
모든 생존의 뿌리 끊기었나니
지금 그 옛 나라로 들어오시라.
그 때에 만재 장자는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모든 감관은 담박하여 세상에 드물고 깨끗하기는 순금과 같으며 서른 두 가지 거룩한 모습과 八十가지의 특별한 모양으로 그 몸이 장엄한 것은 마치 수미산이 모든 산에서 뛰어난 것 같았고 또 금무더기가 광명을 놓는 것 같았다.
장자는 다음 게송으로 수마제에게 물었다.
저것은 저 태양의 모습인가
내 일찍 저런 얼굴 본 일 없나니
저처럼 빛나는 수천억 광명
감히 눈부시어 자세히 못 보겠다.
때에 수마제는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래를 향해 다음 게송으로 장자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해도 아니요 해 아님도 아니다
그러면서 一천 가지 광명 놓는다
그것은 모든 중생 위함이거니
저이가 바로 내 스승이시다.
온갖 중생들 여래 찬탄하는 것
그것은 앞에서 말한 바 같다
이제는 장차 큰 결과 얻으리니
정성껏 힘써 공양 올려라.
때에 만재 장자는 무릎을 땅에 대고 여래를 찬탄하였다.
열 가지 힘 가진 이께 귀의하나니
뚜렷한 눈 광명과 황금빛 눈 몸
천상과 인간의 찬탄 받는 이
나는 오늘 그 분께 귀의하옵네.
거룩한 당신은 중생의 태양
마치 해가 별 속에서 밝는 것 같네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주는 이
나는 오늘 그 분께 귀의하옵네.
거룩한 당신은 천제(天帝)의 형상
범행을 닦는 이의 자비심 같아
스스로 벗어나고 남도 벗겨 주는 이
나는 오늘 그 분께 귀의하옵네.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높은 이
모든 귀신 왕에서 뛰어난 이는
저 모든 외도를 항복 받나니
나는 오늘 그 분께 귀의하옵네.
때에 수마제는 꿇어앉아 합장하고 세존을 찬탄하였다.
자기도 항복 받고 남도 항복 받으며
스스로도 바르고 남도 바르며
스스로 건넘으로 남도 건네고
스스로 벗어나고 남도 벗기며,
스스로 때를 버려 남도 버리게 하고
스스로도 비추고 중생들도 비추어
제도하지 못할 이 한 사람 없고
다투기 버렸으매 다툼이 없네.
스스로 지극히 깨끗하게 머물러
그 마음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열 가지 힘 세상을 가엾이 여기나니
거듭거듭 머리 조아려 예배하옵네.
사랑하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보호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공과 생각 없음과 원 없음을 갖추시어 욕심 세계에서 가장 높으시고 천상에서도 가장 뛰어나시며 일곱 가지 보배를 두루 갖추시어, 모든 천상이나 인간이나 자연이나 범(梵)들로서 견줄 이도 없고 본뜰 이도 없나이다. 나는 지금 귀의하나이다.”
그 때에 六천 범지들은 세존의 이러한 신통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우리는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야 하겠다. 이 사문 고오타마는 이미 이 나라 백성들을 다 항복 받았다.”
그 六천 범지들은 이내 그 나라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사자왕이 산골에서 나와 사방을 돌아보고 세 번 외치고는 먹이를 찾아가면, 모든 짐승들은 제각기 내달려 갈 곳을 모르면서 날아가고 엎드려 숨고 또 힘이 센 코끼리가 사자 소리를 들으면 제각기 내달려 안심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왜 그러냐 하면 짐승의 왕 사자는 큰 위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그 六천 범지들도 세존의 큰 음성의 울림을 듣고 제각기 내달려 어쩔 줄을 몰랐다. 왜 그러냐 하면 사문 고오타마의 큰 위신 때문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온갖 신통을 거두시고 보통 때와 같이 만부성 안으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 성 문턱을 밟으시자 천지는 크게 흔들리고 모든 신들은 꽃을 뿌려 공양하였다. 사람들은 세존께서 얼굴과 감관이 고요하고 서른 두 가지 거룩한 모습과 八十가지 특별한 모양으로 스스로 장엄하신 것을 보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사람 중의 높은 이 매우 묘하여
범지들고 그이를 감당 못하네
공연히 저 범지들 섬김으로써
사람 중의 높은 이 잃어 버렸네.
세존께서는 장자 집으로 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그 나라 백성들은 매우 번성하였다. 그 때에 장자 집에 있는 八만 四천 사람들은 모두 몰려와 세존과 비구 중을 보려고 장자의 방을 헐려고 하였다. 세존께서는 생각하셨다. ‘이 사람들 반드시 큰 일이 생기겠다. 신력으로써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내 몸과 비구 중들을 보도록 하리라’고.
세존께서는 곧 신통을 부려 장자의 방을 모두 유리 빛으로 만들어 안팎에서 서로 보기를 마치 손바닥의 구슬을 보는 것 같이 하셨다.
그 때에 수마제는 세존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슬픔과 기쁨이 한데 뒤섞여 다음 게송으로 사뢰었다.
일체 지혜를 두루 갖추고
일체의 법을 모두 건너고
다시 애욕의 결박을 끊었나니
나는 지금 그분께 귀의하옵네.
나는 차라리 내 부모에게
두 눈깔 빼이는 일이 있어도
삿된 소견과 다섯 가지 죄 속인
여기는 오지 않았을 것을.
옛날에 어떤 나쁜 인연 지었기에
지금 이 곳에 오게 됐는가
마치 새가 그물에 든 것 같나니
원컨대 이 의심을 끊어주소서.
때에 세존께서도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너는 부디 지금의 그 걱정 말고
담박하게 스스로 마음을 열어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여래는 너 위해 연설하리라.
네가 지금 여기에 오게 된 것은
과거에 지은 죄의 인연 아니다
이런 중생들 제도하려고
서원을 세운 그 갚음이다.
이제는 그 근원 빼 버렸으매
세 가지 나쁜 길에 빠지지 않고
저 수천의 중생 무리들
장차 너의 앞에서 제도되리라.
오늘은 온갖 티끌 떨어버리고
그들을 지혜의 눈 얻게 함으로
천상 인간의 사람들로 하여금
너를 보기 구슬 보듯하게 하리라.
수마제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때에 장자는 하인들을 데리고 갖가지 맛나는 음식을 내어 공양하였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자 그는 깨끗한 물을 돌리고 조그만 평상을 가져다 세존 앞에 앉았다. 그 시종들 八만 四천 무리들도 차례대로 앉는데 어떤 이는 제 성명만 일컫고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장자와 八만 四천 의 대중들을 위해 묘한 논(論)을 말씀하셨다. 이른바 논이란 계율, 보시 및 천상에 나는 데 대한 논이었고, 탐욕과 번뇌는 더러운 것으로서 집을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장자와 수마제와 八만 四천 대중들의 마음이 열리고 듯이 풀린 것을 보시고 모든 부처님이 늘 말씀하시는 법, 즉 괴로움과 그것의 원인과 그것의 사라짐과 그 사라지는 길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마치 지극히 깨끗하고 흰 천은 빛깔에 쉽게 물드는 것처럼 만재 장자와 수마제와 八만 四천 대중들도 모든 번뇌가 다하고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어 다시는 의심이 없고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거룩한 세 분께 귀의하고 다섯 가지 계율을 받들어 가졌다.
그 때에 수마제는 곧 부처님 앞에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께선 그 귀가 맑고 트이어
내가 만난 이 고통 들어 아시고
굽어살피어 내려와 교화하여
많은 사람들 법의 눈을 얻었네.
세존께서는 설법을 마치시고 곧 일어나 돌아가셨다.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 수마제는 과거에 무슨 인연을 지었기에 부귀한 집에 태어났으며 또 무슨 인연을 지었기에 그런 삿된 소견을 가진 집에 떨어졌나이까. 또 어떤 좋은 공덕을 지었기에 지금은 깨끗한 법의 눈을 얻었으며 또 무슨 공덕을 지었기에 八만 四천인으로 하여금 깨끗한 법의 눈을 깨끗하게 하였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과거의 이 현겁(賢劫) 동안에 카아샤파 부처, 지혜와 행을 갖춘 이, 잘 간 이, 세상 아는 이, 위없는 선비, 도법으로 어거하는 이, 천상과 인간의 스승, 부처, 중우라고 하는 분이 계셨다. 그는 바아라아나시이에서 교화하고 다니면서 큰 비구 二만인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애민(哀愍)이라는 왕이 있었고 그에게 수마제라는 딸이 있었다. 그 딸은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카아샤파 여래를 대하였고 계율을 받들어 가졌으며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또 네 가지로 공양하였다. 네 가지 공양이란, 첫째는 보시요, 둘째는 존경이며, 셋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이익을 고루 나누는 것이다.
그는 카아샤파 여래 앞에서 법구(法句)를 배워 높은 다락 위에서 외우고 익히면서 이렇게 원을 세웠다. ‘언제나 이 네 가지 받아들이는 법을 가지고 여래 앞에서 법구를 외우며 만일 거기에 털끝 만한 복이 있으면 태어나는 곳마다 세 가지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고 또 가난한 집에 태어나지 말며, 미래에도 이런 거룩한 분을 만나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지 않으며 법의 눈을 얻게 하여지이다’고.
그 때에 그 성중 사람들은 왕녀(王女)가 이런 원을 세웠다는 말을 듣고 모두 모여 그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왕녀는 지금 믿음이 돈독하여 모든 공덕을 짓고 보시, 존경, 남의 이익, 고른 이익의 네 가지 일에 이지러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원을 세워 ‘미래 세상에서도 이런 거룩한 이를 만나게 하여 만일 나를 위해 설법하면 곧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어지이다’, 또 ‘우리 나라 백성들도 함께 제도 받아지이다’고. 왕녀는 대답하였다.
‘나는 이 공덕을 가지고 한꺼번에 너희들에게 베풀어준다. 만일 여래의 설법을 들으면 동시에 제도 받으리라.’
너희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의심하거나 달리 생각하지 말라. 그 때의 애민왕은 바로 지금의 저 아나아타핀디카 장자요, 그때의 왕녀는 바로 지금의 저 수마제가 그이며, 그 때 그 나라의 백성들은 바로 지금의 저 八만 四천의 무리니라. 저 수마제는 그 서원으로 말미암아 지금 나를 만나 법을 듣고 도를 얻게 되었고 저 대중들도 다 깨끗한 법의 눈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그 내력이니 그렇게 생각하고 받들어 행해야 한다. 왜 그러냐 하면 이 네 가지 거두는 일은 가장 좋은 복밭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어떤 비구로서 이 네 가지 거두는 일을 행하면 곧 네 가지 진리를 얻을 것이니 부디 방편을 구해 네 가지 거두는 법을 성취하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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