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三분 나형범지경(裸形梵志經) 제 六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위야(委若)국의 금반(金槃)의 녹야림(綠野林)속에 계시면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하셨다.
때에 나형범지가 있어 성은 가섭(迦葉)이었다. 그는 세존께 나아 와 인사드리고 한 쪽에 앉았다. 나형 가섭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들었습니다. 사문 고오타마는 일체의 모든 제사의 법을 꾸짖고 모든 고행하는 사람을 욕하여 더러운 것이라 하신다고. 고오타마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사문 고오타마는 일체의 모든 제사의 법을 꾸짖고 고행하는 사람을 욕하여 더러운 것이라 한다고 하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법다운 말을 하고 법의 법을 성취한 것이 되며 사문 고오타마를 비방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가 만일 ‘사문 고오타마는 일체의 모든 제사의 법을 꾸짖고 고행하는 사람을 욕하여 더러운 것이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의 말도 아니요 법의 법을 성취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를 비방하기 위한 것으로서 성실한 말이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가섭이여, 나는 저들 고행하는 사람을 보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옥 가운데 떨어지는 자도 있고 또 고행하는 사람으로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하늘의 좋은 곳에 나는 자도 본다. 혹은 고행하는 사람이 즐거이 고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옥 가운데 나는 자도 보고 혹은 고행하는 사람이 즐거이 고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하늘의 좋은 곳에 나는 자도 본다. 가섭이여, 나는 이 두 세계의 갚음을 받는 곳을 다 알고 다 본다. 그런데 내 어찌 모든 고행자를 꾸짖어 더러운 것이라 하겠는가. 내가 바르고 옳다고 말하면 그는 곧 그르다고 말하고, 내가 바르게 그르다고 말하면 그는 곧 옳다고 말할 것이다. 가섭이여, 사문과 바라문이 같은 법도 있고 사문과 바라문이 같지 않은 법도 있다. 가섭이여, 저 같지 않은 법은 나는 곧 그것을 버려둔다. 이 법은 사문과 바라문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가섭이여, 지 지혜있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고오타마가 착하지 않은 법 탁하고 어두워 성현이 아닌 법에 있어서와 저 다른 무리의 스승의 착하지 않은 법, 탁하고 어두워 성현이 아닌 법에 있어서 어느 편이 능히 이 법을 멸할 수 있을까’라고.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할 때에 그는 이렇게 알고 보리라. ‘오직 사문 고오타마만이 능히 이 법을 멸할 것이다’라고.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追求)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에 나는 이 법 가운데 있어서 곧 명예가 있게 될 것이다. 다시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가 착하지 않은 법, 탁하고 어두워 성현이 아닌 법에 있어서와 저 다른 무리 스승의 제자가 착하지 않은 법, 탁하고 어두워 성현이 아닌 법에 있어서 어느 편이 능히 이 법을 멸할 수 있을까’라고. 가섭이여 지 지혜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알고 보리라. ‘오직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멸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에 내 제자는 곧 명예를 얻을 것이다.
다시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고오타마가 모든 착한 법, 청백하고 미묘하여 또 성현인 법에 있어서와 다른 무리 스승이 모든 착한 법, 청백하고 미묘하며 또 성현인 법에 있어서 어느 편이 능히 증광(增廣)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고.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알고 보리라. ‘오직 사문 고오타마만이 이 법을 견디어 증장(增長)하고 수행할 것이다’라고.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에는 나는 거기서 명예가 있을 것이다.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가 모든 착한 법, 청백하고 미묘하며 또 성현인 법에 있어서와 저 다른 무리 스승의 제자가 모든 착한 법, 청백하고 미묘하여 또 성현인 법에 있어서 어느 편이 능히 증장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라고.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알고 볼 것이다. ‘사문 고오타마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증장하고 수행할 것이다’라고. 가섭이여 저 지혜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에는 내 제자는 거기서 곧 명예가 있을 것이다.
가섭이여 도(道)가 있으면 자취가 있는 것이어서 비구가 그 가운데서 수행하면 곧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는 것이다. ‘사문 고오타마는 때를 알아 말하고 진실로 말하고 이치대로 말하고 법대로 말하고 율(律)대로 말하는 것임을 안다’고. 가섭이여 어떤 것이 도며 어떤 것이 자취인가. 비구는 그 가운데서 수행하여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본다. ‘사문 고오타마는 때를 알아 말하고 진실로 말하고 이치로 말하고 법대로 말하고 율(律)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가섭이여 이에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에는 지식(止息)을 의지하고 무욕(無欲)을 의지하고 출요(出要)를 의지한다. 법, 정진, 희(喜), 의, 정(定), 사(捨)의 각의(覺意)를 닦을 때에도 지식을 의지하고 무욕을 의지하고 출요를 의지한다. 가섭이여, 이것을 도라 하고 이것을 자취라 한다. 비구는 거기서 수행하면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본다. 사문 고오타마는 때를 알아 말하고 진실로 말하고 이치대로 말하고 법대로 말하고 율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가섭은 말했다.
“고오타마시여, 오직 이 도와 이 자취만이 있어 비구는 거기서 수행하여 스스로 알고 스스로 봅니다. ‘사문 고오타마는 때를 알고 말하는 사람 진실을 말하는 사람 이치를 말하는 사람 법을 말하는 사람 규칙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다만 고행의 더러움으로서 바라문의 이름을 얻는 자도 있고 사문의 이름을 얻는 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고행의 더러움으로써 바라문의 이름을 얻는 자도 있고 사문의 이름을 얻는 자도 있습니까. 고오타마시여, 옷을 벗은 나형으로서 손으로써 가리고 밤밥(夜食)은 받지 않고 썩은 밥은 받지 않으며 두 벽 중간의 밥은 받지 않고 二인의 중간의 밥은 받지 않으며 두 칼 중간의 밥은 받지 않고 두 절구 공이 중간의 밥은 받지 않으며 함께 먹는 집의 밥은 받지 않고 아이 밴 집의 밥은 받지 않으며 개가 문 앞에 있으면 그 밥은 받지 않고 파리가 있는 집의 밥은 받지 않으며 청한 법은 받지 않고 남의 말을 먼저 알면 그 밥은 받지 않으며 생선을 먹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두 그릇으로서 먹지 않으며 한 숟갈로 한 번 넘겨 七 숟갈에 이르러 그칩니다.
남의 보태 주는 밥을 받되 일곱 번을 넘기지 않고 혹은 一일에 한 번 먹고 혹은 또 과실을 먹고 혹은 또 가라지를 먹으며 혹은 밥물을 먹고 혹은 깨를 먹으며, 혹은 쭉벼를 먹고 혹은 쇠똥을 먹으며 혹은 사슴 똥을 먹고 혹은 나무뿌리, 나뭇가지, 나뭇잎, 꽃 열매를 먹으며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실을 먹습니다. 혹은 옷을 입되 혹은 잔디옷을 입고, 혹은 나무껍질을 입으며 혹은 풀을 몸에 두르고 혹은 사슴 가죽옷을 입습니다. 혹은 머리를 기르고 혹은 털을 엮어 쓰며 혹은 무덤에 버린 옷을 입습니다. 혹은 손을 항상 들고 있는 자도 있고 혹은 항상 자리에 앉지 않으며 혹은 항상 쭈그리고 앉는 자도 있습니다. 혹은 머리는 깎고 수염을 남겨 둔 자도 있습니다. 혹은 가시덤불 위에 누운 자도 있고 혹은 고미 위에 누운 자도 있으며 혹은 알몸으로 쇠똥 위에 누운 자도 있습니다. 혹은 하루에 세 번 목욕하고 혹은 하룻밤에 세 번 목욕합니다. 이렇게 무수한 고통으로 그 몸을 괴롭게 부립니다. 고오타마시여, 이것을 고행의 더러움이라 하여 혹은 사문의 이름을 얻고 혹은 바라문의 이름을 얻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옷을 벗은 나형의 고행자는 무수한 방편으로써 그 몸을 괴롭게 부린다. 그러나 그는 계(戒)를 구족하지 못하고 소견을 구족하지 못했다. 그것은 부지런히 수행하지 못하고 또한 널리 펴지도 못하는 것이다.”
가섭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계의 구족이라하며 어떤 것을 견의 구족이라 하나이까. 그래서 그것은 모든 고행을 뛰어난 미묘하기 제일이 되나이까.”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가섭은 대답했다.
“예, 고오타마시여, 원컨대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여래, 지진이 세상에 나오면 내지 四선(禪)으로써 현재에서 쾌락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정근 전념 일심으로 한적을 즐기고 방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가섭이여 이것을 계의 구족, 견의 구족이라 하여 모든 고행을 뛰어 나는 미묘하기 제일이라 하는 것이다.”
가섭은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비록 계가 구족하고 견이 구족하여 모든 고행을 뛰어나서 미묘하기 제일이라 하더라도 다만 사문의 법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법은 어떻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것은 세간의 그것과 같지 않은 법이다. 이른바 사문의 법과 바라문의 법은 어렵다는 것이다. 가섭아, 내지 우바이도 또한 능히 이 법을 안다. 옷을 벗은 나형의 고행과 내지 무수한 방편으로서 그 몸을 괴롭게 부리더라도 다만 그 마음이 성냄이 있는 마음인가 성냄이 없는 마음인가 원한이 있는 마음인가 원한이 없는 마음인가 해롭게 함이 있는 마음인가 해롭게 함이 없는 마음인가를 모른다. 만일 이 마음을 안다면 사문 바라문을 어렵다고 이름하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문 바라문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때에 가섭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사문이며 어떤 것이 바라문으로서 계가 구족하고 견이 구족 하여 상이 되고, 승(勝)이 되고 미묘하기 제 一이라고 하나이까.”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그것을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가섭은 대답했다.
“예, 고오타마시여, 원컨대 듣고자 하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저 비구는 삼매(三昧)의 마음으로써 내지 三명(明)을 얻는다. 모든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멸하고 지혜의 밝음을 내어 소위 누진지(漏盡智)를 낸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정근하고 전념하여 잊지 않으며 혼자 한적한 것을 즐기어 방일하지 않음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가섭이여, 이것을 사문 바라문의 계를 구족하고 견을 구족 하여, 최승, 최상 미묘 제일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가섭은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비록 이것을 사문 바라문의 계를 구족하고 견을 구족 하여 상이 되고 승이 되고 미묘 제일이지마는 사문 바라문의 법은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사문도 또한 알기 어렵고 바라문도 또한 알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도 또한 능히 이 법을 수행한다. 그래서 스스로 말한다. ‘나는 오늘부터 옷을 벗은 나형으로서 내지 무수한 방편으로써 이 몸을 괴롭게 부리리라’고. 그러나 이 행으로써 사문 바라문이라 이름할 수 있다면 사문은 매우 어렵다 바라문은 매우 어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행으로써 사문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문은 매우 어렵고 바라문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어느 때 라아자그리하에 있으면서 높은 산의 칠엽굴(七葉窟) 속에서, 니구타(尼俱他) 범지를 위하여 청정한 고행을 설명하였다. 때에 범지는 환희심을 내고 청정한 믿음을 얻어 내게 공양하고 나를 칭찬하였다. 제일로 나에게 공양하고 칭찬한 것이다.”
가섭은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누가 구담에 대하여 제일의 환희와 깨끗한 믿음과 공양과 칭찬을 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이제 고오타마에 대해서 제일의 환희를 내고 깨끗한 믿음을 얻어 공양하고 칭찬하며 고오타마에게 귀의하나이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세간의 있는 바 모든 계도, 이 증상계(增上戒)와 짝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 위에 뛰어 나고자 하겠는가. 있는 바 모든 삼매, 지혜, 해탈견, 해탈혜도 이 증상의 삼매, 지혜, 해탈견, 해탈혜와 짝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 위에 뛰어나고자 하겠는가. 가섭이여, 이른 바 사자(獅子)는 이 여래, 지진, 등정각이다. 여래는 대중 가운데서 널리 법을 설명할 때에 자재하여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사자라고 부른다. 어떠냐 가섭이여, 너는 여래가 사자처럼 외칠 때 용한(勇悍)하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말라. 여래의 사자후(獅子吼)는 용한하여 두려움이 없다. 가섭이여, 너는 여래가 용한하게 사자후할 때는 대중 가운데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말라. 여래는 대중 가운데 있어서 용한하게 사자후한다. 가섭이여, 너는 여래가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사자처럼 외쳐 설법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대중 가운데 있어 용한하고 두려움이 없이 사자처럼 외쳐 능히 잘 설법한다. 어떤가 가섭이여, 너는 여래가 대중 가운데서 용한하게 두려움이 없이 사자처럼 외쳐 능히 잘 설법할 때에 모인 대중들이 일심으로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생각을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대중 가운데서 용한하게 두려움이 없이 사자처럼 외쳐 능히 잘 설법할 때 모든 모여 온 대중은 일심으로 듣는다.
어떤가 가섭이여, 너는 여래가 대중 가운데서 용한하게 두려움이 없이 사자처럼 외쳐 능히 잘 설법할 때 모여 온 모든 대중들은 일심으로 듣기는 하나 환희하여 신수(信受)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대중 가운데서 용한하게 힘이 많아 사자처럼 외쳐 능히 잘 설법할 때 모여온 모든 대중이 일심으로 듣고 환희하고 신수하나 공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말라. 여래는 대중 가운에서 용한하게 사자처럼 듣고 능히 잘 설법할 때 모여 온 모든 대중은 일심으로 듣고 환희하고 신수하고 공양을 베푼다.
가섭이여, 너는 여래가 대중 가운데서 용한하게 두려움이 없이 사자처럼 외칠 때 내지 신경(信敬)하고 공양하면서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대중 가운데서 용한하고 두려움이 없는지라 내지 신경하고 공양하고 내지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는다. 가섭이여, 여래는 대중 가운에서 용한하고 두려움이 없이 내지 집을 나가 도를 닦으면서도 구경(究竟)범행으로 안온한 곳인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을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대중 가운데서 용한하여 두려움이 없는지라, 내지 집을 나가 도를 닦아 구경의 범행으로 안온한 곳인 무여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때에 가섭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떠합니까. 고오타마시여, 저는 이 법 가운데서 집을 나와 구족계[具戒]를 받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학(異學)이라도 우리 법 가운데 들어와서 집을 떠나 도를 닦고자 한다면 마땅히 四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관찰하여 여럿의 뜻에 맞은 연후에야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가섭이여, 비록 이런 법이 있기는 하지마는 또한 그 사람을 보아서 할 뿐이다.”
가섭은 여쭈었다.
“만일 이학이 불법 가운데 들어와서 범행을 닦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四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관찰하여 여럿의 뜻에 맞은 뒤에 라야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저는 이제 능히 불법 가운데서 四년 동안 관찰하여 여럿이 뜻에 맞은 뒤에야 집을 나와 계를 받겠나이다.”
부처님은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말했다. 다만 그 사람을 볼 뿐이라고.”
그 때에 가섭은 곧 불법 가운데서 집을 나와 구족계를 받았다. 때에 가섭은 계를 받은지 오래지 않아 깨끗한 믿음의 마음으로서 위없는 범행을 닦고 현재에 있어서 자신으로 증명하여 생사는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다해 마쳐 뒷목숨을 받지 않고 곧 아라한을 이루었다.
그 때에 가섭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여 받들어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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