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장아함경

장아함경26 삼명경

다르마 러브 2012. 6. 16. 21:27

제 三분 삼명경(三明經) 제 七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구살라(俱薩羅)국에서 인간에 노닐으시면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계셨다.

이차능가라(伊車能伽羅) 구살라 바라문 촌에 이르러 이차(伊車) 숲 속에 머물으셨다.

때에 비가라바라(沸伽羅婆羅)라는 바라문과 다리차(多利車)라는 바라문이 있어 조그만 일로 이차능가라 촌에 왔다. 이 비가라바라 바라문은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가 진정하여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고 이전(異典)의 四부를 외워 통달하고 온갖 경서를 능히 분별했다. 또 능히 대인의 상법 길흉을 점치는 것과 제사 의례에 능하였다. 도 五백의 제자가 있어 교수하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그 제일의 제자에 바슬타(婆悉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도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는 진정하여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고 이학의 三부를 외워 통달하고 온갖 경서를 능히 다 분별했다. 또 대인의 상법 길흉을 점치는 것과 제사 의례에 능하였다. 또한 五백의 제자가 있어 교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다리차 바라문도 또한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는 진정하여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고 이학의 三부를 외워 통달하고 갖가지 경서를 능히 다 분별했다. 또 능히 대인의 상법 길흉을 점치는 것 제사 의례에 능하였다. 또한 五백의 제자가 있어 교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제일의 제자에 파라타(頗羅墮)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도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는 진정하여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고 이학의 三부를 외워 통달하고 갖가지 경서를 다 능히 분별했다. 또 능히 대인의 상법, 길흉을 점치는 것과 제사 의례에 능하였다. 또한 五백의 제자가 있어 교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때에 바슬타와 파라타 두 사람은 이른 아침에 동산에 들어가, 드디어 함께 이치를 의논하다가 서로 시비하게 되었다. 드디어 함께 이치를 의논하다가 서로 시비하게 되었다. 때에 바슬타는 파라타에게 말했다. ‘내 도는 진정하여 능히 출요(出要)를 얻어 범천에 이른다. 이것은 우리 대사(大師) 비가라바라 바라문의 하신 말씀이다’라고. 파라타는 말했다. ‘내 도는 진정하여 능히 출요를 얻어 범천에 이른다. 이것은 우리 대사 다리차 바라문의 말씀하신 바이다’라고 이와 같이 바슬타는 재삼 자기의 도의 진정한 것을 자랑하고 파라타도 또한 재삼 자기의 도의 진정한 것을 자랑하면서 두 사람은 각각 주장하여 결정을 짓지 못했다. 때에 바슬타는 파라타에게 말했다. ‘나는 들었다. 사문 고오타마 석종자(釋種子)는 집을 나와 도를 이룬 뒤에 구살라국에서 인간에 노닐으시다가 지금은 이차능가라 숲 속에 계시는데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펴졌다. 여래, 지진, 등정각의 十호를 구족하고 모든 하늘, 세상 사람, 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 사문, 바라문 가운데서 자신이 증명하고 남을 위해 설법하는데 그 말은 상, 중, 하가 다 진정하여 의미가 구족하고 범행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진인(眞人)은 마땅히 찾아가 뵈와야 한다. 또 나는 ‘저 고오타마가 범천의 도를 알아 능히 남을 위해 설명하고, 항상 범천들과 오가면서 말씀하신다’고 들었다. 우리는 마땅히 함께 ‘저 고오타마에게 나아가 이 뜻을 판결하자. 만일 사문 고오타마의 말씀하시는 바가 있거든 우리는 함께 받들어 가지자’라고.

그 때에 바슬타와 파라타 두 사람은 서로 이끌어 이차 숲 속에 이르러 세존께 나아가 인사하고 한 쪽에 앉았다. 그 때에 세존은 그 두 사람의 심중에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곧 바슬타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두 사람은 이른 아침에 동산에 들어가 이러한 이야기로 서로 시비했구나. 너 한 사람은 말했다. ‘내 법은 진정하여 능히 출요를 얻어 범천에 이른다. 이것은 우리 대사 비가라바라의 말씀하신 바이다’라고. 또 한 사람은 말했다. ‘내 법은 진정하여 능히 출요를 얻어 범천에 이른다. 이것은 우리 대사 다리차의 말씀하신 바이다’라고. 이렇게 재삼 다시 시비했다. 이런 일이 있었는가.”

때에 바슬타와 파라타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놀라 털이 거꾸로 섰다. 그들은 가만히 생각했다. ‘사문 고오타마는 큰 신덕(神德)이 있어 사람의 마음을 먼저 아신다. 우리들이 이야기하려는 것을 사문 고오타마가 이미 먼저 말씀하셨다’고.

때에 바슬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도와 저 도는 다 진정하여 다 출요를 얻어 범천에 이른다고 일컫습니다. 비가라사라 바라문이 말한 바가 옳은 것입니까. 다리차가 말한 것이 옳은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슬타여, 이 도와 저 도가 진정하여 출요해서 범천에 이를 수 있다면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이른 아침에 동산에 들어가 서로 재삼 시비하였는가.”

때에 바슬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三명(明) 바라문은 갖가지의 도를 말합니다. 곧 자재욕도(自在欲道), 자작도(自作道), 범천도(梵天道)입니다. 이 三도는 다 범천을 향한다고 합니다. 고오타마시여, 비유하면 촌영(村營)이 가진 모든 길은 다 성(城)으로 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바라문들이 비록 갖가지 모든 도를 말하지마는 그것은 다 범천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저 모든 도는 다 범천으로 나아가는 것인가.”

그는 대답했다.

“다 나아갑니다.”

부처님은 재삼 물으셨다.

“저 모든 도는 다 범천으로 나아가는 것인가.”

그는 대답했다.

“다 나아갑니다.”

그 때에 세존은 그 말을 결정해 마치시고 바슬타에게 말씀하셨다.

“어떠냐 三명 바라문 중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범천을 본 자가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본 사람이 없습니다.”

‘어떠냐 바슬타여, 三명 바라문의 선사(先師)로서는 얼마나 범천을 본 사람이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본 사람이 없습니다.”

“어떠냐 바슬타여, 과거의 三명 선인(仙人), 옛날의 바라문으로서 성전(聖典)을 외워 통달하여 남을 위해 옛날의 모든 찬송, 가영(歌詠)의 시서(詩書)를 말한 이가 있다. 그 이름은 아타마(阿陀摩) 바라문, 바마(婆摩) 바라문, 바마제바(婆摩堤婆) 바라문, 비바심(毘婆審) 바라문, 이니라사(伊尼羅斯) 바라문, 사바제가(蛇婆堤迦) 바라문, 바바실(婆婆悉) 바라문, 가섭(迦葉) 바라문, 아루나(阿樓那) 바라문, 구담마 바라문, 수지(首脂) 바라문, 바라손타(婆羅損陀) 바라문이다. 그들도 또한 범천을 보았는가.”

그는 대답했다.

“본 사람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일 저 三명 바라문의 한 사람도 범천을 보지 못했고 만일 三명 바라문의 선사도 범천을 보지 못했고 또 모든 옛날의 큰 선인, 三명의 바라문의 아타마바라문들도 또한 범천을 보지 못했다면 마땅히 三명 바라문의 말한 바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또 바슬타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치 음탕한 사람이 나와 저 단정한 여인과 교통하였다고 하여 음탕한 행위를 칭탄(稱歎)할 때에 다른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너는 그 여자를 아는가. 어느 곳에 있는가. 동방인가. 서방인가. 남방인가. 북방인가.’ 묻고 그가 대답하기를 ‘모른다’고 한다면 또 묻기를 ‘너는 그 여자의 사는 토지, 성읍, 촌락을 아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모른다’ 한다면, 또 ‘너는 그 여자의 부모와 성명을 아는가’를 묻고 그가 대답하기를 ‘모른다’고 한다면 또 만일 ‘너는 저 여자가 찰제리(刹帝利)여자인지 혹은 바라문 거사 수타라(首陀羅) 여자인지 아는가.’라는 물음에 그가 대답하기를 ‘모른다’ 한다면, 또 ‘너는 그 여자의 장단(長短)과 추세와, 흑백(黑白)과 호추(好醜)를 아는가.’라는 물음에 그는 대답하기를 ‘모른다’ 한다면 어떠냐 바슬타여 저 사람이 찬탄한다는 것이 사실이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같다. 바슬타여, 三명 바라문의 말도 또한 그러하여 진실이 아니다.”

“어떠냐 바슬타여, 너의 三명 바라문이 일월의 돌아다니고 나고 빠지는 곳을 보고 손을 깍지 하여 공양하고 말하기를 ‘이 도는 진정하여 마땅히 출요을 얻어 해와 달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하는가.”

그는 대답했다.

“이러한 三명 바라문은 해와 달이 노닐고 나고 빠지는 곳을 보고 손을 깍지하고 공양하나 이 도는 진정하여 마땅히 출요을 얻어 해와 달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바슬타여, 三명 바라문은 해와 달이 노닐으고 나고 빠지는 곳을 보고 깍지 손으로 공양하나 이 도는 진실하다. 마땅히 출요를 얻어 해와 달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면서 항상 깍지 손으로 공양하고 공경하는 것은 어찌 허망이 아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그는 실로 허망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사다리를 빈땅에 세우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이 물었다. ‘사다리를 무엇 하러 하는가.’ 대답하기를 ‘나는 높은 당(堂)에 올라가고자 한다.’ 또 물었다. ‘그 집은 어디 있느냐 동, 서, 남, 북 어디냐.’ 대답하기를 ‘나는 모른다’고 한다면 어떠냐 바슬타여, 이 사람이 사다리를 세워 집으로 올라가려는 것이 어찌 허망하지 않느냐.”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실로 허망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三명 바라문도 또한 그와 같아 허망하여 진실이 없다. 바슬타여, 五욕은 깨끗하여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다. 어떤 것이 五인가. 눈은 빛깔을 보면 매우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다. 귀에는 소리, 코에는 냄새, 혀에는 맛, 몸에는 촉감, 그것은 매우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다. 그러나 우리 현성의 법 가운데에서는 그것을 집착이라 하고 묶음이라 하고 갈고리와 쇠사슬이라 한다. 저 三명 바라문들은 五욕 때문에 물들이어져 애착이 굳어져서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출요을 모른다. 그는 五욕의 묶인 바 된다. 그는 바로 해와 달이 물과 불을 섬기며 불러 말하기를 ‘나를 인도하여 범천에 가서 나게 한다’고 하면 그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아이라하(阿夷羅河)의 물이 기슭에까지 편편하여 까마귀나 새들도 그 물을 먹을 수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 기슭에 있어 몸이 단단히 묶이어 있으면서 부질없이 그 기슭을 향해 부르기를 와서 나를 건네어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저 기슭이 와서 이 사람을 건네 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안됩니다.”

“바슬타여, 五욕을 깨끗하여 사랑하고 즐길 만하지마는 현성의 법 가운데 있어서는 마치 갈고리와 쇠사슬과 같다. 저 三명 바라문은 五욕에 물들이어져 애착이 굳어져서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출요을 알지 못한다. 그는 五욕에 묶인 바 되었다. 그가 해와 달과 물과 불을 받들어 섬기면서 외치기를 ‘나를 인도하여 범천에 가서 나도록 하여 달라’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마침내 그리 될 리가 없을 것이다. 바슬타여, 아이라하의 하숫물이 기슭에까지 편편하여 까마귀나 새들도 그 물을 마실 수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건너가고자 하면서, 손발과 몸의 힘을 쓰지 않고, 배나 뗏목을 의지하지 않고도 능히 건널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바슬타여, 三명 바라문도 또한 그와 같아서 사문의 청정한 범행을 닦지 않고 다른 도의 청정하지 못한 행을 닦아서 범천에 나기를 바란다면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바슬타여, 마치 산의 물이 사납게 일어나 많은 사람을 휩쓸고 또 배나 뗏목도 없고 또 다리도 없을 때 어떤 행인이 와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산의 물이 사납게 일어나 많은 사람을 휩쓸고 또 배나 뗏목도 없고 또 다리도 없음을 보고 그는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차라리 많은 초목을 모아 든든하게 뗏목을 만들어 내 자신의 힘으로써 저쪽 언덕으로 건너야 하겠다’고. 그는 곧 뗏목을 만들어 자신의 힘으로써 안온하게 건널 수 있었다. 바슬타여,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만일 비구가 사문이 아닌 청정하지 않은 행을 버리고 사문의 청정한 범행을 행해 범천에 나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그리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은 질투하는 마음이 있느냐, 질투하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질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三명 바라문은 질투하는 마음이 있느냐, 질투하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질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바슬타여, 범천에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고 三명 바라문에게는 질투하는 마음이 있다. 질투하는 마음이 있는 것과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해탈이 같지 않고 취향(趣向)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은 한가지로 같지 않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에는 성내는 마음이 있느냐, 성내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성내는 마음이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三명 바라문에게는 성내는 마음이 있느냐, 성내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성내는 마음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에는 성내는 마음이 없고 三명 바라문에게는 성내는 마음이 있다. 성내는 마음이 있는 것과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과는 가는 곳이 같지 않고 해탈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범천에 바라문과는 한가지로 같지 않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에는 원한(怨恨)의 마음이 있느냐, 원한의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원한의 마음이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三명 바라문에게는 원한의 마음이 있느냐, 원한의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원한의 마음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에는 원한의 마음이 없고 三명 바라문에게는 원한의 마음이 있다. 원한의 마음이 있는 것과 원한의 마음이 없는 것과는 가는 곳이 같지 않고 해탈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과는 한가지로 같지 않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에는 가족과 산업이 있느냐.”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三명 바라문에게는 가족과 산업이 있느냐.”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에는 가족과 산업이 없고 三명 바라문에게는 가족과 산업이 있다. 가족과 산업이 있는 것과 가족과 산업이 없는 것과는 가는 곳이 같지 않고 해탈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바슬타여, 범천은 자재(自在)를 얻었는가, 자재를 얻지 못했는가.”

그는 대답했다.

“자재를 얻었습니다.”

또 물으셨다.

“三명 바라문은 자재를 얻었는가, 자재를 얻지 못했는가.”

그는 대답했다.

“자재를 얻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은 자재를 얻었고 三명 바라문은 자재를 얻지 못했다. 자재를 얻지 못한 것과 자재를 얻은 것과는 가는 곳이 같지 않고 해탈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과는 한가지로 같지 않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저 三명 바라문은 비록 어떤 사람이 와서 깊은 뜻을 묻더라도 갖추어 대답하지 못한다. 실로 그런가.”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때에 바슬타와 파라타 두 사람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다른 이야기는 잠깐 두고 우리는 묻잡겠습니다. 사문 고오타마는 범천의 도를 밝게 알아 능히 남을 위해 설명하시고 또 범천과 서로 보고 오고가면서 이야기한다 하십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사문 고오타마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서 범천의 길을 설명하시고 열어 보이어 널리 펴소서.”

부처님은 바슬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라. 너는 뜻대로 대답하라. 어떠냐 바슬타여, 저 신념(信念)의 나라는 여기서 가까운가, 먼가.”

그는 대답했다.

“가깝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나라에서 나서 자랐다 하자. 다른 사람이 그 나라의 길을 그에게 물었을 때 어떤가 바슬타여, 두 사람이 저 나라에서 나서 자랐는데, 그 길을 대답하기에 무슨 의심이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의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서 생장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로 그 사람은 그 나라에서 생장했더라도 혹 의심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범천의 길을 묻는다면 나는 의심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항상 자주자주 저 범천의 길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때에 바슬타와 파라타는 함께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이야기는 잠깐 두고 우리는 들었습니다. 사문 고오타마는 범천의 길을 밝게 알아 남을 위해 설명하시고 또 범천과 서로 보고 오가면서 말하신다고 합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사문 고오타마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으로써 범천의 길을 설명하시고 열어 보이어 널리 펴소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그는 대답했다.

“예 듣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만일 여래, 지진, 등정각이 세상에 나타나면 十호를 구족하고 내지 四선(禪)에서 현재의 세계에서 스스로 오락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정근하고 전념하여 잊지 않으며 혼자의 한적을 즐기어 방일하지 않음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심(慈心)으로써 一방에 두루 채우고 다른 방위에도 또한 그러하다. 그 마음은 널리 퍼져 끝이 없고 둘도 없고 한량도 없으며 원망도 없고 해침도 없다. 그는 이 마음에 유희하면서 스스로 오락한다. 또 비심(悲心), 희심(喜心), 사심(捨心)도 一방에 두루 채우고 다른 방위에도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그 마음은 널리 퍼져 끝이 없고 둘도 없고 한량도 없으며 원한을 맺는 일도 없고 괴롭히고 해치는 뜻도 없다. 이 마음에 유희하면서 스스로 오락한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에는 질투하는 마음이 있느냐, 질투하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질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는 질투하는 마음이 있느냐, 질투하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질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에도 질투하는 마음이 없고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도 질투하는 마음이 없다.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는 가는 곳이 같고 해탈이 같다. 그러므로 범천과 비구와는 한가지로 같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에는 성내는 마음이 있느냐, 성내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는 성내는 마음이 있느냐, 성내는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에도 성내는 마음이 없고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도 성내는 마음이 없다.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과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과는 가는 곳이 같고 해탈이 같다. 그러므로 범천과 비구는 한가지로 같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에는 원한의 마음이 있느냐. 원한의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는 원한의 마음이 있느냐, 원한의 마음이 없느냐.”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에도 원한의 마음이 없고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도 원한의 마음이 없다. 원한의 마음이 없는 것과 원한의 마음이 없는 것과는 가는 곳이 같고 해탈이 같다. 그러므로 비구와 범천은 한가지로 같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에는 가족과 산업이 있느냐.”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는 가족과 산업이 있느냐.”

그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에도 가족과 산업이 없고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도 가족과 산업이 없다. 가족과 산업이 없는 것과 가족과 산업이 없는 것과는 가는 곳이 같고 해탈이 같다. 그러므로 범천과 비루는 한가지로 같다. 어떠냐 바슬타여, 범천은 자재를 얻었는가.”

그는 대답했다.

“자재를 얻었습니다.”

또 물으셨다.

“자비를 행하는 비구는 자재를 얻었는가.”

그는 대답했다.

“자재를 얻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범천도 자재를 얻었고 자비를 행하는 비구도 자재를 얻었다. 자재를 얻은 것과 자재를 얻은 것과는 가는 곳이 같고 해탈이 같다. 그러므로 범천과 비루는 한가지로 같다.” 부처님은 바슬타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라. 자비를 행하는 비구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화살이 나는 것과 같이 빠른 시간에 범천상에 태어난다.”

부처님이 이 법을 말씀하실 때 바슬타와 파라타는 곧 그 자리에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가운데서 법눈을 얻었다. 그 때에 바슬타와 파라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여 받들어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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