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三분 포타바루경(布咤婆樓經) 제 九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위(舍衛)국의 기수급고독 동산에 계시면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하셨다.
그 때 세존은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때에 세존은 생각하였다. ‘오늘은 걸식하기에 때가 이르다. 이제 나는 차라리 포타바루(布咤婆樓)범지의 숲 속에 가서 구경하다가 때를 기다려 걸식하리라.’ 그 때에 세존은 곧 범지 숲 속으로 가셨다. 때에 포타바루 범지는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일어나 맞이하면서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고오타마시여, 오랫동안 여기 오시지 않았었는데 이제 무슨 인연으로써 굽이여 오시나이까. 자리에 앉으소서.”
그 때에 세존은 자리에 앉으시자 포타바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여기 모이어 무슨 일을 하며 무엇을 강설하는가.”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제는 많은 범지와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 바라문의 당(堂)에 모이어 이러한 일로써 서로 다투어 토론하였습니다. 고오타마시여, 어떤 범지 있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이 상(想)이 생기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상이 멸한다. 상에는 오고 감이 있어서 그것이 오면 곧 상이 생기고 가면 곧 상이 멸한다’고. 고오타마시여, 어떤 범지는 있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命)으로 말미암아 상이 생기고 명으로 말미암아 상이 멸한다. 저 상에는 오고 감이 있으니 오면 곧 상이 생기고 가면 곧 상이 멸한다’고. 고오타마시여 어떤 범지는 있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말한 것들은 그런 것이 없다. 큰 귀신이 있어 그것은 큰 위력이 있다. 그것이 상을 가지고 가고 그것이 상을 가지고 온다. 그것이 상을 가지고 가면 곧 상을 멸하고 그것이 상을 가지고 오면 곧 상은 생긴다’고. 저는 이것들을 인하여 염(念)을 내었습니다. 사문 고오타마시여, 먼저 이 뜻을 알면 반드시 능히 상지멸정(想知滅定)을 알 것입니다.”
그 때에 세존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저 모든 논자(論者)들은 다 허물이 있다. 말하기를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상이 멸한다. 상에는 오고 감이 있어 오면 곧 상이 생기고 가면 곧 상이 멸한다.’하고, 혹은 말하기를 ‘명으로 말미암아 상이 생기고 명으로 말미암아 상이 멸한다. 상에는 오고 감이 있어 오면 곧 상이 생기고 가면 곧 상이 멸한다’하기도 하고, 혹은 말하기를 ‘그럴 리가 없다. 큰 귀신이 있어 그것이 상을 가지고 오고 그것이 상을 가지고 간다. 가지고 오면 상이 생기고 가지고 가면 상이 멸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다 허물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범지여, 인연이 있어 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는 것이다.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지진, 등정각의 十호를 구족할 때에 어떤 사람이 불법 중에서 집을 나와 도를 행하여 내지 마음을 덮는 五개(蓋)를 멸하고 욕악불선(欲惡不善)법을 제거하여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어 이(離)에서 희락이 생겨 초선(初禪)에 들어간다. 그래서 먼저 욕상(浴想)을 멸하고 희락상(喜樂想)을 낸다. 범지여 이러므로 써 인연이 있어 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함을 안다.
다음에는 각과 관을 멸하고 속의 기쁨 한 마음으로 각도 없고 관도 없어 정(定)에서 생기는 희락으로 제 二선(禪)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초선의 상이 멸하고 二선의 상이 생긴다. 이럼으로써 안다.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상이 생긴다.’는 것을.
기쁨을 버리고 닦고 보호하여 생각을 오로지해 한 마음으로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알며 현성의 구하는 바로 생각을 보호해 청정하여 제 三선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二선의 상이 멸하고 三선의 상이 생긴다. 이럼으로써 안다.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상이 생긴다‘고.
다음에는 괴로움도 버리고 즐거움도 버려 먼저 걱정과 기쁨을 멸하고 생각을 보호하고 청정하여 제 四선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三선의 상이 멸하고 四선의 상이 생긴다. 이럼으로써 안다.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상이 생긴다는’것을.
일체의 색상(色想)을 버리고 성내는 마음을 멸하고 다른 생각을 생각하지 않아 공처(空處)에 들어간다. 범지여 일체의 색상은 멸하고 공처의 상은 생긴다. 이럼으로써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상이 생김을’안다. 또 일체의 공처를 뛰어나 식처(識處)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공처의 상은 멸하고 식처의 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상이 생김을 안다. 일체의 식처를 뛰어넘어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식처의 상은 멸하고 불용처의 상은 생긴다. 이럼으로써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상이 생김을 안다.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로 들어간다. 범지여, 저 불용처(不用處)의 상은 멸하고 유상무상처의 상은 생긴다. 이럼으로써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하고 인연이 있어 상이 생김을 안다. 저 유상무상처를 버리고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들어간다. 범지여, 저 유상무상처의 상은 멸하고 상지멸정의 상은 생긴다. 이럼으로써 인연이 있어 상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 상이 멸함을 안다.
그는 이 상을 얻은 뒤에 이렇게 생각한다. ‘염(念)이 있는 것은 악이요 염이 없는 것은 선이다’라고. 그가 이렇게 생각할 때 그는 미묘한 상은 멸하지 않고 다시 추한 상이 생긴다. 그는 또 생각한다. ‘나는 이제 차라리 염행(念行)도 하지 않고 사유(思惟)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그는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자 미묘한 상도 멸하고 추한 상도 생기지 않는다. 그는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아 미묘한 상도 멸하고 추한 상도 생기지 않았을 때 곧 상지멸정에 들어간다.
어떤가 범지여, 그대는 본시부터 일찍 차례로 상을 멸하는 인연을 들은 적이 있는가. 없는가.”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본시부터 진실로 이러한 차례로 상을 멸하는 인연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지금 염(念)을 내었습니다. 이른바 ‘이것은 유상(有想)이다. 이것은 무상(無想)이다. 혹은 다시 유상이다’라고. 상이 끝난 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염(念)이 있는 것은 악이요 염이 없는 것은 선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때 미묘한 상은 멸하지 않고 추한 상이 다시 생깁니다. 그는 또 생각합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염행(念行)도 하지 않고 사유(思惟)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그는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았을 때 미묘한 상은 멸하고 추한 상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가 염행도 하지 않고 사유도 일으키지 않으며 미묘한 상도 멸하고 추한 상도 생기지 않았을 때 곧 상지멸정에 들어갑니다.”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이것은 우리 현성법 중의 차제상멸상정(次第想滅想定)이다.”
범지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상 가운데서 어느 것을 위없는 상이라고 하나이까.”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불용처상이 위없는 것이 된다.”
범지는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상 가운데 어느 것이 제 一의 위없는 상이 되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유상이라 하고 무상이라 하는 그 중간에서 능히 차례로 상지멸정을 얻으면 이것이 제 一의 위없는 상이 된다.”
범지는 또 여쭈었다.
“그것은 一상입니까. 많은 상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一상이 있고 많은 상은 없다.”
범지는 또 여쭈었다.
“먼저 상이 있어 생긴 뒤에 지혜가 있습니까. 먼저 지혜가 있어 생긴 뒤에 상이 있습니까. 혹은 상과 지혜가 一시에 함께 생깁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먼저 상이 있어 생긴 뒤에 지혜가 있다. 상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있다.”
범지는 또 여쭈었다.
“상은 곧 이 <나>입니까.”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이 <나>인가.”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이 나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색신(色身)은 四대(大), 六입(入)으로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옷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항상 됨이 없어 마멸(磨滅)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색신은 四대, 六입으로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의복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무상하여 마멸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바로 나다’라고 말했다. 범지여, 잠깐 이 <나>는 두라. 다만 사람의 상(想)이 생기고 상이 멸하는 것이다.”
범지는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욕계천(浴界天)이 곧 나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욕계천이 곧 나다’라는 말을 그만 두라. 다만 사람이란 생각이 생기고 사람이란 생각이 멸하는 것이다.”
범지는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욕계천이 곧 나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색계천이 곧 나다’라는 말을 그만 두라. 다만 사람이 상이 생기고 사람의 상이 멸하는 것이다.”
범지는 여쭈었다.
“저는 ‘사람이 곧 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스스로 ‘공처(空處), 식처(識處), 불용처(不用處),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 무색천(無色天)이 나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공처, 식처, 불용처, 유상무상처의 무색천이 이 나다’라는 말을 그만 두라. 다만 사람의 상이 생기고 사람의 상이 멸하는 것이다.”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고오타마시여, 나도 어떻게 사람의 상이 생기고 사람의 상이 멸하는 것을 알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사람의 상이 생기고 사람의 상이 멸하는 것을 알고자 해도 그것은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다. 무슨 까닭인가. 그대는 다른 소견, 다른 습관, 다른 인(忍), 다른 수(受)로 다른 법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고오타마시여, 저는 다른 소견, 다른 습관, 다른 인, 다른 수로 다른 법을 의지하기 때문에 사람의 상이 생기고 사람의 상이 멸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도 그것은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저는 ‘세간은 유상(有常)하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저는 ‘세간은 유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저는 ‘세간은 유상도 아니요 무상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저는 ‘세간은 유변(有邊)이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저는 ‘세간은 무변(無邊)이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저는 ‘세간은 유변이기도 하고 무변이기도 하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저는 ‘세간은 유변도 아니요 무변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 하고.
또 ‘이 명(命)이 몸이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명이 다르며 몸이 다르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몸과 명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명도 없고 몸도 없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마지막이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마치지 아니한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마치기도 하고 마치지 아니하기도 한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며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은 유상하다. 내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나의 기(記)하지 않는 것이다.”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왜 기(記)하시지 않으십니까. ‘세간은 유상이다. 내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다 기(記)하시지 않으십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치와 맞지 않고, 법과 맞지 않다. 그것은 범행(梵行)이 아니요, 무욕(無欲)이 아니며, 무위(無爲)가 아니요, 적멸(寂滅)이 아니며, 지식(止息)이 아니요, 정각(正覺)이 아니며 사문이 아니요 열반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기(記)하지 않는다.”
범지는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이치에 맞고 법에 맞는 것이며, 어떤 것이 범행의 처음, 어떤 것이 무위, 어떤 것이 무욕, 어떤 것이 적멸, 어떤 것이 지식, 어떤 것이 정각, 어떤 것이 사문, 어떤 것이 열반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기(記)라고 하나이까.”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고제(苦諦), 고집(苦集), 고출요제(苦出要諦)를 기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뜻에 맞고 법에 맞으며 범행의 첫 머리에 그것은 무욕, 무위, 적멸, 지식, 정각, 사문, 열반이기 때문에 나는 기하는 것이다.”
그 때에 세존은 범지를 위하여 설법하시고 가르쳐 보이시어 이롭고 기쁘게 하셨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부처님이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그 뒤에 모든 다른 범지들은 포타바루 범지에게 말했다.
“너는 왜 사문 고오타마의 말을 듣고 고오타마의 말마다 인가(印可)하였는가. 고오타마는 말하기를 ‘나와 및 세간은 유상이다. 내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너는 왜 그 말을 인가하였는가. 우리는 사문 고오타마의 이러한 말은 옳다고 하지 않는다.”
포타바루는 모든 범지에게 대답했다.
“사문 고오타마의 말한 ‘나와 및 세간은 유상이다. 내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아니한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하지 않는다고 한 말은 나도 이 말을 인가하지 않는다. 다만 저 사문 고오타마는 법을 의지하여 머무르고 법으로써 말하며 법으로써 출리(出離)하신다. 나는 어찌하여 이 지혜로운 말을 거슬리겠는가. 사문 고오타마의 이러한 미묘한 법의 말에는 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때에 포타바루 범지는 또 다른 때에 상수사리불(象首舍利弗)과 함께 세존께 나아가 인사를 드린 뒤 한 쪽에 앉았다. 상수사리불도 부처님께 예배하고 앉았다.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 아까 제게 계시다가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그 뒤에 모든 다른 범지들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왜 사문 고오타마의 말을 듣고 말마다 인가하였느냐. 고오타마는 말하기를 ’나와 및 세간은 상(常)이다. 내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나는 기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너는 왜 이 말을 인가하였느냐. 우리는 사문 고오타마의 이런 말은 옳지 않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답했습니다. 사문 고오타마의 말한 ‘나와 및 세간은 유상하고 내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기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나도 또한 이 말을 인가하지 않는다. 다만 저 사문 고오타마는 법을 의지하고 법에 머무르고 법으로서 말하며 법으로써 출리(出離)하신다. 우리들은 무엇으로써 이 지혜로운 말을 어기겠는가. 사문 고오타마의 미묘한 법의 말은 어길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다른 범지들은 말했다. ‘너는 왜 사문 고오타마의 말을 듣고 그것을 인가했느냐’고. 이 말에는 허물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내가 말하는 법에는 결정기(決定記)와 불결정기(不決定記)가 있다. 어떤 것을 불결정기라고 하는가. ‘나와 및 세간은 유상이다. 내지 여래는 마친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도 또한 이런 말을 설했으나 이것은 결정기가 아니다. 그 까닭은 이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법에도 맞지 않으며 범행의 처음도 아니요 무욕도 아니며 무위도 아니요 적멸도 아니며 지식도 아니요 정각도 아니며 사문도 아니요 열반도 아니다. 그러므로 범지여, 나는 비록 이런 말을 하더라도 불결정기라고 한다. 어떤 것을 결정기라 이름하는가. 나는 고제, 고집, 고멸, 고출요제를 기(記)라고 한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법에도 맞고 이치에도 맞으며 그것은 범행의 처음이다. 무욕, 무위, 적멸, 지식, 정각, 사문, 열반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정기를 말하는 것이다.
범지여,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一처세간(處世間)에 있어서 一향(向)으로 즐거움만 말한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분명히 一처세간의 一향의 즐거움만 말하는가.’ 그는 내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너는 一처세간의 一향의 즐거움만 말하는가.’ 그는 내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一처세간의 모든 하늘은 一향으로 즐겁다 하니 너는 일찍 보았는가.’ 그는 내게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저 一처세간의 모든 하늘과 너는 함께 앉고 일어나며 서로 말하고 정진하여 정(定)을 닦는가.’ 그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저 一처세간의 모든 하늘에서 一향으로 즐거워하는 자가 일찍 너에게 와서 말한 일이 있는가. 너의 소행은 순박하고 곧기 때문에 마땅히 저 一향으로 즐거운 하늘에 태어날 것이다. 나도 소행이 순박하고 곧기 때문에 저기서 태어나 즐거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그는 내게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또 그에게 물었다. ‘너는 능히 네 몸에서 생각을 일으켜 다른 四대의 몸을 화작(化作)하여 신체가 구족하고 모든 근(根)에 빠진 것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없다’고 그는 내게 대답했다.
어떠냐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의 말은 성실한 것인가 법에 맞다고 하겠는가.”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것은 성실이 아닙니다. 법다운 말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어떤 사람이 ‘나는 저 단정한 여인과 교류했다’고 하면서 그 음녀를 칭찬할 때 다른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너는 그 여자를 아는가. 어디 있는가. 동방, 서방, 남방, 북방, 어디 있는가’고 할 때 그는 ‘모른다’하고, 또 묻기를 ‘너는 그 여자가 사는 토지, 성읍, 촌락을 아는가’고 할 때 그가 대답하기를 ‘모른다’하고. 또 묻기를 ‘너는 그 여자의 부모와 성명을 아는가.’고 할 때 그는 ‘모른다’고 대답한다면, 또 묻기를 ‘너는 그 여자가 찰제리 여자인지 바라문, 거사, 수타라 여자인지 아는가.’고 할 때 그가 대답하기를 ‘모른다’한다면 또 묻기를 ‘너는 그 여자의 장단(長短), 추세, 흑백(黑白), 호추(好醜)를 아는가.’고 할 때 그는 대답하기를 ‘모른다’고 한다면 어떤가 범지여, 이 사람의 말은 성실한가.”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범지여, 저 사문 바라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진실이 없다. 범지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사다리를 빈땅에 세울 때에 어떤 사람이 ‘사다리를 세워 무엇 하려 하는가’고 물었다. 그는 답하기를 ‘나는 당(堂)에 올라가고자 한다’고 했다. 또 ‘당은 어디 있는가’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모른다’고. 어떠냐 범지여, 저 사다리를 세우는 사람이 어찌 허망하지 아니한가.”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사문, 바라문도 또한 그와 같아서 허망하여 진실이 없다.”
부처님은 포타바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말했다. ‘내 색신 四대, 六입은 부모가 낳아 젖을 먹여 기르고 의복으로 장엄한 것으로서 무상하여 마멸한다. 이것을 <나>라 한다. 나는 이것을 염오(染汚)라 하고 청정이라 하며 득해(得解 )라 한다. 너는 혹 생각하리라. ’염오의 법은 멸할 수 없고 청정의 법을 나게 할 수 없어 항상 괴로움의 가운데 있다‘고.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염오의 법은 멸하여 다 할 수 있고 청정의 법은 나게 할 수 있으며 안락한 곳에 살면 환희하고 애락(愛樂)하여 전념하고 一심하여 지혜가 증광(增廣)하는 것이다. 범지여, 나는 욕계, 색계천, 공처, 식처, 불용처, 유상무상천을 염오라 말하고 또한 청정을 말하고 또한 득해(得解)를 말했다. 너는 혹 생각하리라. ’염오의 법은 멸할 수 없고 청정의 법은 생길 수 없어 항상 괴로움 가운데 있다‘고.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염오는 멸할 수 잇고 깨끗한 법은 생길 수 있다. 안락한 곳에 살아서 환희하고 애락하며 전념하고 一심하여 지혜가 증광하는 것이다.”
그 때 상수사리불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욕계(欲界) 사람의 몸 四대(大), 제근(諸根)이 있을 때에도 또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 식처, 불용처, 유상무상처의 몸도 동시에 있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마땅히 욕계천의 몸이 있을 때에 또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과 및 색계천의 몸, 공처, 식처, 무소유처(無所有處), 유상무상처의 몸도 동시에 있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마땅히 색계천의 몸이 있을 때 또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과 및 색계천의 몸 공처, 식처, 무소유처, 유상무상처의 몸도 동시에 있는 것입니까. 내지 유상무상처의 몸이 있을 때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과 및 욕계천의 몸, 공처, 식처, 무소유처의 몸도 동시에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상수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이 있을 뿐이요,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 식처, 무소유처, 유상무상처의 몸은 아니다. 그와 같이 내지 유상무상처의 몸이 있을 때에는 바로 유상무상처의 몸이 있을 뿐이요.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과 및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공처, 식처, 무소유처의 몸은 있을 수 없다. 상수(象首)여, 비유하면 우유와 같다. 젖은 변하여 낙(酪)이 되고 낙은 생소가 되고 생소는 숙소가 되고 숙소는 제호가 된다. 제호를 제 一이라 한다. 상수여, 젖으로 있을 때는 다만 젖이라 이름한다. 낙소나 제호라 이름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제호에 이를 때에만 다만 제호라 이름하고 젖이라고도 이름하지 않고 낙소라고도 이름하지 않는다. 상수여,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만일 욕계인 신의 四대의 모든 근으로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내지 유상무상처의 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처의 몸일 때에는 오직 유상무상처의 몸이 있을 뿐이요 욕계천의 四대의 모든 근이나 및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내지 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는 것이다. 상수여, 네 뜻에는 어떠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묻기를 ‘만일 과거의 몸으로 있을 때 과거와 현재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미래의 몸으로 있을 때 과거와 현재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 현재의 몸으로 있을 때 과거와 미래의 몸도 동시에 있느냐.’고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상수는 여쭈었다.
“만일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마땅히 대답하겠습니다. ‘과거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과거의 몸 뿐이요 미래나 현재는 없다. 미래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미래의 몸 뿐이요 과거나 현재는 없다. 현재의 몸이 있을 때는 다만 이 현재의 몸이 있을 뿐이요 과거나 미래의 몸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상수여,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내지 유상무상처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처천의 몸으로 있을 때에는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근과 및 욕계천의 몸 색계천의 몸 내지 불용처의 몸은 없다. 또 다음으로 상수여,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묻기를 ‘너는 일찍 과거에 이미 멸했는가. 미래에 마땅히 날것인가. 현재에 지금 있는가.’고 만일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마땅히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상수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일찍 과거에 이미 멸했다. 없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마땅히 날 것이다.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지금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상수여,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이 있을 때에는 욕계천의 몸 내지 유상무상천의 몸은 없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유상무상천의 몸이 있을 때에는 욕계인의 몸의 四대의 모든 근과 및 욕계천의 몸 내지 무소유처천의 몸은 없다.”
그 때에 상수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에게 귀의하나이다.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지금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때에 포타바루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불법 가운데서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학(異學)으로서 내 법 가운데서 집을 나와 도를 행하고자 하면 우선 四개월 동안 관찰하여 중인의 뜻에 맞춘 뒤에야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다. 비록 이런 벌이 있기는 하지마는 또한 사람을 보아 하는 것이다.”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이학으로서 불법 가운데서 집을 나와 계를 받고자 하면 우선 四개월 동안 관찰하여 중인의 뜻에 맞춘 뒤에 라야 집을 나와 계를 받을 수 있다면 저와 같은 자는 이제 능히 불법 가운데서 四년 동안 관찰하여 중인의 뜻에 맞춘 뒤에 집을 나와 계를 받기를 바라겠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 너에게 말했다. 비록 그런 법이 있더라도 마땅히 그 사람을 보아서 안다고.”
때에 그 범지는 곧 정법 가운데서 집을 나와 계를 받았다. 이러한지 오래지 않아 신앙이 견고함으로서 범행을 깨끗이 닦아 현재에서 자신으로 증명을 얻고 생사가 이미 다했다. 할 일을 이미 다해 마치고 뒷 목숨을 받지 않아 곧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에 포타바루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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