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三분 노차경(露遮經) 제 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구살라(拘薩羅)국에서 인간에 노닐으시면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하셨다.
사라바제(娑羅婆提)바라문의 마을의 북쪽에 있는 시사바 숲 속에 가셔서 거기서 머무르셨다. 때에 노차(露遮)라는 바라문이 사라바숲 속에 있었다. 그 마을은 풍족하여 즐겁고 인민은 번성하였다. 파사닉왕은 그 마을을 봉(封)해 그 바라문에게 주어 범분(梵分)으로 하였다. 이 바라문은 七대로 내려오면서 부모가 진정(眞正)하여 남의 업신여김이나 비방을 받지 않고 이전(異典)의 三부(部)를 외워 통달하고 각가지 경서를 다 잘 분별하였다. 또 대인(大人)의 상법 길흉을 점치는 것과 제사 의례에 능하였다. 그는 사문 고오타마 석종자(釋種子)는 집을 나와 도를 이룬 뒤 구살라 국의 인간에 노닐다가 시사바 숲 속에 계시는데 큰 이름은 천하에 두루 퍼졌고 여래, 지진, 등정각의 十호를 구족하였으며 모든 하늘, 세상, 사람, 악마 혹은 악마의 하늘, 사문, 바라문의 무리 가운데서 자신이 증명을 얻고 남을 위해 설법하시는데 그 말은 상, 중, 하가 다 착하여 의미를 구족하고 범행이 청정하다고 들었다. 이러한 참 사람은 마땅히 가서 뵈와야 한다. 나도 이제 가서 뵈올까 하고 생각했다. 때에 그 바라문은 곧 마을에서 나와 시사바 숲 속으로 갔다. 세존께 나아가 인사를 드린 뒤 한 쪽에 앉았다. 부처님은 그를 위하여 설법하시고 가르쳐 보이어 이롭고 기쁘게 하셨다. 바라문은 그 설법을 들은 뒤 부처님께 여쭈었다.
“원하옵건대 세존과 및 모든 대중들은 분명히 저의 청을 들어주소서.”
그 때에 세존은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셨다. 그 바라문은 부처님이 잠자코 계시는 것을 보고 이미 허가하신 줄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돌고 거기서 떠났다. 부처님에게서 떠난 지 오래지 않아 곧 나쁜 생각을 내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착한 법을 많이 알고 깨치어 이룬 바가 많다. 그러나 남을 위하여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 알 뿐이요 남을 위하여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비유하면 그것은 어떤 사람이 낡은 감옥을 부숴 버리고 새 감옥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것은 탐악(貪惡)하여 착하지 않은 법일 뿐이다’라고. 때에 바라문은 사라바 숲으로 돌아와 그 밤으로 온갖 요리와 음식을 준비하였다. 때가 되어 이발사에게 말했다. 너는 내 이름으로 시사바 숲 속에 가서 사문 고오타마에게 여쭈어라. ‘때가 되었으니 공양합시사’라고. 이발사는 명령을 받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여쭈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아소서’라고.
그 때에 세존은 곧 옷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모든 제자 천 二백 五十인을 데리고 사라바라 숲으로 가셨다. 이발사는 세존을 모시고 오른팔을 드러내고 길이 꿇어앉아 깍지 손을 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노차 바라문은 부처님이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나쁜 소견을 내어 말했습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착한 법을 많이 알고 깨친 것도 많다. 그러나 남을 위하여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 알고 남을 위하여 말하지 아니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묵은 감옥을 부순 뒤에 다시 새 감옥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것은 탐악 하여 착하지 않은 법일 뿐이다’라고.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그 나쁜 소견을 제거하게 하소서.”
부처님은 이발사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조그마한 일이다. 깨우치지 쉬운 일이다.”
그 때에 세존은 바라문의 집에 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때에 바라문은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을 손수 분별하여 부처님과 스님네들에게 이바지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바루를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돌렸다. 그는 작은 평상을 가져와 부처님 앞에 앉았다. 부처님은 노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젯밤에 네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나쁜 소견을 내어 ‘모든 사문, 바라문들은 착한 법을 많이 알고 깨친 것도 많다. 그러나 남을 위하여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내지 탐악하여 착하지 않은 법이다’라고 말했다. 진실로 그런 말을 하였는가.”
노차는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런 일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노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다시는 그런 나쁜 소견을 내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세상에는 三사(師)가 있다. 그것으로써 스스로의 경계를 삼아라. 어떤 것을 三이라 하는가. 一은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아 현재에 있어서 번뇌를 없애고 또 더 나아가 상인(上人)의 법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에 있어서 번뇌를 제하지 못하고 상인의 법도 얻지 못하며 자기의 업을 이루지도 못하고서 제자를 위하여 설법한다 하자. 그 제자들은 그를 공경하고 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그들을 위지하여 함께 거처한다. 노차여, 저 모든 제자들은 그 스승에게 ‘스승은 이제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현재에 있어서 번뇌를 없애고 또 상인의 훌륭한 법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현재에 있어 번뇌를 없애지 못하고 상인의 훌륭한 법도 얻지 못하고 자기의 업도 이루지 못하고서 제자를 위하여 설법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제자들은 아주 공경하거나 섬기거나 공양하지 않고 다만 함께 의지하여 같이 거처할 뿐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노차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묵은 감옥을 부숴 버리고 다시 새 감옥을 짓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탐탁(貪濁)한 악법이라 한다. 이것을 제 一의 스승이라 한다. 이것으로서 스스로의 경계를 삼아라. 이것을 현성의 계, 율계(律戒), 의계(儀戒), 시계(時戒)라 한다.
또 노차여 제 二란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아 현재에 있어서 모든 번뇌를 제하지마는 상인의 법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 있어서 모든 번뇌를 제하지 못하고 비록 다소 상인의 훌륭한 법을 얻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업을 이루지 못했으면서 제자를 위해 설법한다. 그 모든 제자들은 그를 공경하거나 섬기지 않고 그저 서로 의지해 함께 거처한다. 노차여, 저 모든 제자들은 그 스승에게 ‘스승은 이제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다면 마땅히 현재에 있어서 모든 번뇌를 없애고 상인의 법을 얻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에 있어서 모든 번뇌를 없애지 못하고 또 다소 상인의 법을 얻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이익을 이루지 못했으면서 제자를 위하여 설법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제자로 하여금 공경하고 섬기고 공양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저 서로 의지하여 함께 거처할 뿐입니다’고 말한다. 노차여,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남의 뒤를 따라 가면서 손으로 그 등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다. 이것을 탐탁한 악법이라 한다. 이것이 제 二사다. 스스로의 경계를 삼아야 한다. 이것을 현성계, 율계, 의계, 시계라 한다.
다시 제 三사란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다면 현재에 있어서 번뇌를 없애고 더 나아가 상인의 법을 얻어야 할 것인데 현재에 있어서 모든 번뇌를 없애지 못하고 또 다소 상인의 법을 얻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이익을 이루지 못했으면서 제자를 위해 설법한다. 그 모든 제자들은 그를 공경하고 섬기며 그를 의지해 함께 산다. 노차여, 저 모든 제자들은 그 스승에게 ‘스승은 지금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다면 마땅히 현재에 있어서 모든 번뇌를 없애고 다소 상인의 법을 얻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현재에 있어서 모든 번뇌를 제하지 못하고 비록 다소 상인의 법을 얻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이익은 이루지 못했으면서 제자를 위하여 설법하는데 모든 제자들은 공경하고 섬기며 함께 머물러 같이 삽니다’라고 말한다. 노차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지의 벼농사는 내버리고 남의 밭농사를 김매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탐탁한 악법이라 한다. 이것을 제 三사라 한다. 이것으로써 스스로의 경계를 삼아라. 이것을 현성계, 율계, 의계, 시계라한다.
노차여, 한 세존이라도 세상에 계시지 않으면 숭배하고 따라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것이 하나인가. 만일 여래, 지신, 등정각이 세상에 나타나면 내지 三명을 얻어 무명을 없애고 지혜의 밝음을 내어 모든 어둠을 보내며 큰 법의 광명을 내어 이른바 누진지(漏盡智)를 증(證)하실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정근하고 전념하여 잊지 않으며 홀로를 즐기고 한가히 삶을 말미암아 얻는 것이다. 노차여, 이것을 ‘제 一세존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면 숭배하고 따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노차여, 四사문의 과(과(果))가 있다. 어떤 것이 四인가. 이른바 수다원과(須陀洹果), 사다함과(斯陀含果), 아나함과(阿那含果) 아라한과가 그것이다. 어떠냐 노차여 사람이 있어 법을 들으면 마땅히 이 四 사문과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가로막아 말하기를 ‘설법하지 말라’ 한다면 그래서 만일 그 말대로 한다면 그 사람은 법을 들어 그 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얻을 수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만일 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러고도 하늘에 날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날 수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남의 설법을 막아 과를 얻지 못하고 하늘에 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을 착한 마음이라 하겠는가, 착하지 않은 마음이라 하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착하지 않습니다.”
또 물으셨다.
“착하지 않은 마음은 선취(善趣)에 태어나는가, 악취에 떨어지는가.”
그는 대답했다.
“악취에 납니다.”
“노차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파사닉 왕에게 말하기를 ‘왕의 소유인 국토와 그 안에 있는 재물을 모두 왕이 스스로 다 쓰고 남에게는 주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떠냐 노차여, 만일 왕이 그 말을 듣는다면 남의 생활을 끊는 것이 아닌가.”
그는 대답했다.
“끊는 것입니다.”
또 물으셨다.
“남의 생활을 끊는 것은 이것이 착한 마음이 되는가, 착하지 않은 마음이 되는가.”
그는 대답했다.
“착하지 않습니다.”
또 물으셨다.
“착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는 선취에 나는가, 악도에 떨어지는가.”
그는 대답했다.
“악도에 떨어집니다.”
“노차여, 저것도 또한 이와 같다. 사람이 있어 법을 들으면 마땅히 四 사문의 과를 얻을 것인데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설법하지 말라’고 하여 만일 그 사람이 그 말을 듣는다면 그는 법을 들어 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얻을 수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만일 과를 얻지 못한다면 하늘에 날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날 수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노차여, 남의 설법을 막아 도과(道科)를 얻지 못하게 하고 하늘에 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착한 마음이 되는가, 착하지 않은 마음이 되는가.”
그는 대답했다.
“착하지 않습니다.”
또 물으셨다.
“착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는 마땅히 선취에 날 것인가, 악도에 떨어질 것인가.”
그는 대답했다.
“악도에 떨어집니다.”
“노차여,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말하기를 ‘저 사라바제촌에 있는 재물을 노차가 다 스스로 쓰고 남에게는 물건을 주지 말라. 마땅히 스스로 쓸 것이지 남에게 주어 무엇 하려나’고 한다면 어떠냐 노차여, 만일 네가 그 말을 듣는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끊는 것이 아닌가.”
그는 대답했다.
“마땅히 끊습니다.”
또 물으셨다.
“사람을 시켜 남의 생활을 끊게 한다면 그것은 착한 마음이 되는가, 착하지 않은 마음이 되는가.”
그는 대답했다.
“착하지 않습니다.”
또 물으셨다.
“착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는 선취에 나는가, 악도에 떨어지는가.”
그는 대답했다.
“악도에 떨어집니다.”
“노차여, 저것도 또한 그와 같다. 사람이 있어 법을 들으면 마땅히 四사문의 과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설법하지 말라’고 하여 만일 그 말을 듣는다면 그는 법을 들어 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답했다.
“얻을 수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만일 과를 얻지 못한다면 하늘에 날 수 있겠는가.”
“날 수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남의 설법을 막아 과를 얻지 못하고 하늘에 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착한 마음이 되는가, 착하지 않은 마음이 되는가.”
그는 대답했다.
“착하지 않습니다.”
또 물으셨다.
“착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는 선취에 나는가, 악도에 떨어지는가.”
그는 대답했다.
“악도에 떨어집니다.”
그 때에 노차 바라문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네에게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정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설법을 마치시자 때에 노차 바라문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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