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세존께서는 도사(陶師)의 집에서 나와 그 질그릇 굽는 방으로 가서, 존자 불가라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나는 이 질그릇 굽는 방에서 하룻밤을 묵고자 하는데 그대는 허락해 주겠는가?"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그대여, 나에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이 질그릇 굽는 방에는 풀자리가 이미 깔려져 있습니다. 그대가 묵고자 하거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질그릇 굽는 방에서 밖으로 나와 발을 씻으시고, 도로 안으로 들어가 풀 자리 위에 니사단(尼師檀)을 펴고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밤이 새도록 조용히 선정에 드셨다. 존자 불가라사리도 또한 밤이 새도록 조용히 선정에 들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비구는 선정에 머물러 있다. 참으로 기특하다. 나는 이제 저 비구에게 (너의 스승은 누구며, 너는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누구에게 법을 받았는가)고 물어 보리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곧 물으셨다.
"비구여, 너의 스승은 누구인가? 너는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며 누구에게 법을 받았는가?"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현자여, 사문 구담(瞿曇)이라는 석가 종족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분은 석가 종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워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얻었습니다. 그 분이 제 스승입니다. 나는 그 분을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법을 받았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비구여, 스승을 뵌 일이 있는가?"
"뵙지 못했습니다."
"만일 스승을 뵌다면 알아보겠는가?"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자여, 나는 그 분이 세존 여래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明行成爲)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道法御) 천인사 불중우(佛衆祐)라고 호칭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내 스승입니다. 나는 그 분을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법을 받았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족성자는 나를 의지해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법을 받았다. 내가 지금 어찌 그를 위해 설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존자 불가라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내가 너를 위해 설법해 주리라. 이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또한 좋다.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였고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이른바 육계(六界)를 분별하는 것이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예."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사람에게는 6계취(界聚) 6촉처(觸處) 18의행(意行) 4주처(住處)가 있다. 만일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근심스럽고 슬픈 일을 듣지 않을 것이요, 근심스럽고 슬픈 일을 듣지 않은 뒤에 마음은 곧 미워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을 것이며, 수고롭지도 않고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이 있으면 지혜에 게으르지 않게 되고, 참된 진리를 지켜 보호하게 되며, 은혜로운 보시를 기르게 되느니라. 비구여, 마땅히 이 최상을 배우고, 지극히 고요함을 배워, 6계를 분별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비구여, 사람에게는 6계취(界聚)가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지계(地界) 수계(水界) 화계(火界) 풍계(風界) 공계(空界) 식계(識界)이다. 비구여, 사람에게 6계취가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사람에게는 6촉처(觸處)가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비구여, 안촉(眼觸)은 빛깔을 보고, 이촉(耳觸)은 소리를 들으며, 비촉(鼻觸)은 냄새를 맡고, 설촉(舌觸)은 맛을 보며, 신촉(身觸)은 촉감을 느끼고, 의촉(意觸)은 법을 아느니라. 비구여, 사람에게 6촉처가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사람에게는 18의행(意行)이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비구여, 눈이 빛깔을 보아 빛깔에 기쁨[喜]이 있다고 관찰하고, 빛깔에 근심[憂]이 있다고 관찰하며, 빛깔에 기쁘지도 근심하지도 않음[捨]이 있다고 관찰한다. 이렇게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이 법을 알아 법에 희가 있다고 관찰하고, 법에 우가 있다고 관찰하며, 법에 사가 있다고 관찰한다. 비구여, 이 6희관(喜觀)과 6우관(憂觀)과 6사관(捨觀)을 합하면 18행이 된다. 비구여, 사람에게 18의행이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사람에게 4주처(住處)가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참된 진리의 주처[眞諦住處]와 지혜의 주처[慧住處]와 보시의 주처[施住處]와 쉼의 주처[息住處]니라. 비구여, 사람에게 4주처가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어떤 것이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不放逸慧]'인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지계[內地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머리털과 몸털 손톱 이 거칠고 섬세한 살갗 껍질 살 뼈 힘줄 콩팥 염통 간 허파 지라 대장 위 똥 등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 속의 단단한 것, 단단한 성질로 몸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지계라 한다. 비구여, 혹 안의 지계와 바깥의 지계[外地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지계(地界)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는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神)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나의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수계(水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뇌막(腦膜)3) 눈물 땀 콧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침 담(痰) 오줌 따위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 속의 물 종류와 물의 성질로 몸 안을 적시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수계[內水界]라 한다. 비구여, 혹 안의 수계와 바깥 수계[外水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수계(水界)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는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神)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수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또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지혜란, 만일 어떤 비구가 이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화계[內火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뜨거운 몸 따뜻한 몸 번민하는 몸 온장(溫莊)한 몸으로서, 곧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 속의 불과, 불의 성질로 몸안을 뜨겁게 하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화계라 한다. 비구여, 안의 화계와 바깥 화계[外火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화계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내가 그것의 소유도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화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또 지혜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풍계[內風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상풍(上風) 하풍(下風) 협풍(脇風) 제축풍(縮風) 축풍(蹴風) 비도풍(非道風) 절절풍(節節風) 식출풍(息出風) 식입풍(息入風) 등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 속의 바람과 바람의 성질로 몸 안을 움직이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풍계라 한다. 비구여, 안의 풍계와 바깥 풍계[外風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풍계(風界)라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는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풍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또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안의 공계[內空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구멍과 목구멍을 움직여 먹은 것과 마신 것이 조용히 목구멍에 머물거나, 혹은 밑으로 내려가 나오는 것 등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몸 속의 공간, 살과 살갗과 뼈와 힘줄에 덮이지 않은 다른 모든 빈 공간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공계라 한다. 비구여, 혹 안의 공계와 바깥 공계[外空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공계(空界)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공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 5계(界)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를 알고,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 마음이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해탈하면 오직 식(識)만이 남는다. 그것은 어떠한 식인가? 즐거워하는 식[樂識] 괴로워하는 식[苦識] 기뻐하는 식[喜識] 근심하는 식[憂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식[捨識]이니라.
비구여, 낙갱락(樂更樂)으로 인하여 즐거운 감각[樂覺]이 생기고 그는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 즐거운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즐거운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낙갱락(樂更樂)을 멸하고, 이 낙갱락을 멸한 뒤에 혹 낙갱락으로부터 생긴 즐거운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고갱락(苦更樂)으로 인하여 괴로운 감각[苦覺]이 생기고 그는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 괴로운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괴로운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고갱락을 멸하고, 이 고갱락을 멸한 뒤에 혹 고갱락으로부터 생긴 괴로운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희갱락(喜更樂)으로 인하여 기쁜 감각[喜覺]이 생기고 그는 기쁜 감각을 느낀다. 기쁜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기쁜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희갱락을 멸하고, 이 희갱락을 멸한 뒤에 혹 희갱락으로부터 생긴 기쁜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우갱락(憂更樂)으로 인하여 근심의 감각[憂覺]이 생기고 그는 근심의 감각을 느낀다. 근심의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근심의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우갱락을 멸하고, 이 우갱락을 멸한 뒤에 혹 우갱락으로부터 생긴 근심스런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사갱락(捨更樂)으로 인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捨覺]이 생기고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 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사갱락을 멸하고, 이 사갱락을 멸한 뒤에 혹 사갱락으로부터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이런저런 갱락(更樂) 때문에 이런저런 감각[覺]이 생기고, 이런저런 갱락이 멸한 뒤에는 이런저런 감각도 또한 멸한다. 그는 이 감각은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근본이요, 갱락이 원인이며,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우두머리가 되며, 갱락에 의지하여 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비구여, 마치 불씨는 찬목(鑽木)과 사람의 방편으로 말미암아 열이 생기기 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비구여, 저 많은 나무를 서로 떨어뜨려 흩어 놓으면 거기서 생겨나던 불은 다 꺼져서 차가운 나무토막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비구여, 이런저런 갱락 때문에 이런저런 감각이 생기고, 이런저런 갱락이 멸한 뒤에는 이런저런 감각도 또한 멸한다. 그는 이 감각은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근본이요, 갱락이 원인이며,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우두머리가 되며, 갱락을 의지하여 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만일 비구가 이 3각(覺)에 물들지 않고 해탈한다면, 그 비구에게는 오직 평정[捨]만 있어 지극히 청정할 것이다. 비구여,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청정한 평정[捨]으로 한량이 없는 공처(空處)로 옮겨 들어가고,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나는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식처(識處)와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로 옮겨 들어가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비구여, 마치 쇠붙이를 제련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불로 쇠붙이를 달구어 극히 얇게 만들고, 또 화람(火)으로 자꾸 불기운을 더해 여러 차례 단련하여 깨끗하게 하며, 지극히 부드럽고 광명이 나게 하는 것과 같다. 비구여, 이 쇠붙이가 그 장인에게서 여러 차례 불기운이 가해가고 여러 차례 단련되어 깨끗해지고 지극히 부드럽고 광명이 나게 된 뒤에 그 장인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대로 혹은 오색 비단을 잇기도 하고, 새옷을 꾸미기도 하며, 가락지 팔찌 영락 보만 등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든다. 이와 같아서 비구여,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공처로 옮겨 들어가,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나는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로 옮겨 들어가,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그 비구는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공처를 의지한다면 이것은 바로 유위(有爲)이다. 만일 그것이 유위라면 그것은 곧 무상(無常)한 것이다. 만일 그것이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운 것이다.'
만일 그것이 괴로운 것이라면 곧 괴로운 것인 줄 알 것이요, 괴로운 것인 줄 안 뒤에 그는 다시는 이 평정을 옮겨 한량없는 공처(空處)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를 의지한다면 이것은 바로 유위이다. 만일 그것이 유위라면 그것은 곧 무상한 것이요, 만일 그것이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운 것이다.'
만일 그것이 괴로운 것이라면 곧 괴로운 것인 줄 알 것이요, 괴로운 것인 줄 안 뒤에 그는 다시는 이 평정을 옮겨 한량없는 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비구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 네 곳을 지혜로 관찰하여 진실 그대로를 알아 마음으로 성취하지 않고, 옮겨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그 때에는 다시는 유위가 아니요, 또한 있다거나 없다고 생각할 대상도 없을 것이다. 그는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알 것이요,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알 것이다.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수명을 이미 마친 뒤에는, 그가 깨달은 모든 것들도 멸하고 쉬고 그쳐 차갑게 되는 줄을 알 것이다.
비구여, 비유컨대 타오르는 등불은 기름과 심지를 의지하나니, 만일 기름을 계속해서 더해 주지 않고, 심지를 이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먼저 것은 이미 다 타고, 뒤의 것은 계속 이어지지 않아 다시 받을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가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알고,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안다.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수명을 이미 마친 뒤에는 그가 깨달은 모든 것들도 멸하고 쉬고 그쳐 차갑게 되는 줄을 안다.
비구여, 이것을 비구의 제일 바른 지혜라 한다. 이른바 최후의 경지까지 멸한 데 이른 것이니, 누(漏)가 다한 비구가 이것을 성취한다면 제일 바른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비구여, 이 해탈은 참다운 진리[眞諦]에 머물러 이동하지 않게 되나니, 참다운 진리란 법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고, 거짓말이란 허망한 법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그는 그 제일 참다운 진리를 성취한 것이다.
비구여, 그 비구는 보시를 베푸는데, 보시 받는 사람들 중에 혹 옛날 원수가 있더라도 그는 그 때의 일을 놓아버리고 토하고 떠나서 해탈하고 멸해 없앤다.
비구여, 이것을 비구의 제일 올바른 혜시(惠施)라 한다. 이른바 일체의 세간을 모두 버리고 욕심이 없으며, 멸하고 쉬고 그치나니, 비구여, 이것을 성취한다면 제일의 혜시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비구여, 그 비구의 마음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더럽혀진다면 그는 해탈을 얻지 못한다. 비구여, 이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해 탐욕이 없어지고 멸하고 쉬고 그치면 제일의 쉼[息]을 얻게 된다. 비구여, 이것을 성취한다면 제일의 쉼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비구여, '나[我]'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요, '나는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색유(色有)가 될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요, '나는 무색유(無色有)가 될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며, '나는 색유도 무색유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想]이 있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요, '나는 생각이 없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며, '나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뽐내는 것[貢高]이요, 이것은 교만[??]이며, 이것은 방일(放逸)이다. 비구여, 만일 이 일체의 자랑과 뽐냄과 교만과 방일이 없으면 그것을 마음의 쉼[意息]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만일 그 마음이 쉬면 곧 미워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고달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비구는 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밉다고 말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미워하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을 것이요, 걱정하지 않으면 시름하지 않을 것이며, 시름하지 않으면 고달파하지 않을 것이요, 고달파하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곧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알게 될 것이니라."
이렇게 설법을 마치자, 존자 불가라사리는 티끌을 멀리 하고 때[垢]를 여의어 모든 법안(法眼)이 생겼다.
이에 존자 불가라사리는 법을 보아 법을 얻고,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을 깨달아 의심을 끊고 의혹을 벗어나 다시는 더 이상 존경할 사람이 없고, 다시는 남을 의지할 것도 없어, 아무 망설임 없이 이미 과증(果證)에 머물러 세존의 법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잘못을 뉘우칩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고백합니다. 미련한 사람처럼, 미친 사람처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바보처럼 좋은 밭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깨달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여래 무소착 등정각을 일컬어 '그대'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저는 이제 참회한 뒤에는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너는 진실로 미련하고 어리석었으며, 너는 진실로 정신이 나간 바보였다. 너는 여래 무소착 등정각을 일컬어 '그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비구여, 만일 네가 스스로 참회하고 잘못을 알아 드러내며 조심해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면, 비구여, 그와 같이 한다면 곧 거룩한 법(法)과 율(律)에 있어서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능히 스스로 참회하고 잘못을 알아 드러내었으며, 조심하여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分別六界經 대정장 1/690 중~692 중; 한글대장경 중아함경 인터넷판, pp. 120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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